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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10 [굴뚝에서 보내온 편지]‘분홍도서관’ 함께 짓자

반짝 빛났다. 햇살이 바큇살에 닿았다. 부산 영도 바닷바람을 돛대 삼아 자전거가 앞으로 나갔다. 몇 미터 지나기 무섭게 기우뚱. 평소 자전거 타지 않은 탓이다. 3월 초. 따뜻했다. 상가 앞 묶여 있는 짐들이 검은 고무 밧줄로 악착같이 묶여 있다. 짐수레 끄는 노인의 허리가 자전거 타는 우리보다 더 휘어 있다. 봄이 악착같이 굽은 겨울을 펴댄다. 부산을 출발해 평택 쌍용차 굴뚝까지 700㎞를 자전거로 달리는 ‘희망질주’. 거리 가늠하니 아득했다. 겨울 장작처럼 바짝 마른 두 다리 내려다보니 더욱 까마득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그 시각 평택 노조사무실이 분주했다. 굴뚝에 아침밥 올리는 해고자는 죽을 젓고 샌드위치를 타지 않게 뒤집었다. 기름을 얇게 두르고 연신 불 조절을 한다.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희망질주 3일째 아침. 사타구니가 아팠다. 꼬리뼈가 욱신거렸고 골프공 여러 개가 들어 있는 것처럼 종아리가 뭉쳤다.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바큇살을 돌려본다. 공기압은 손으로 눌러보고 안장까지 꼼꼼하게 확인한 후 만족한 듯 씨익 웃는다. 페달에 발을 올리자 ‘끙’ 하는 소리가 툭 튀어나온다. 역풍이 불어오자 바퀴가 움켜쥐듯 바닥을 잡아 끌었다. 어색한 헬멧을 보며 사진도 찍고 멋도 부려본다. 그 앞이 자동차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자전거는 이내 줄 지어 도로 위를 달린다.

오후 3시. 같은 시각 해고자는 평택 자기 집 방안에 있었다. 그 흔한 스마트폰도 없이 세상물정 보지 않으려고 까막눈 안대를 하고 7년째 살아내고 있다. 텔레비전은 예전에 박살내버렸고 라디오 지직거리는 소리도 듣기 싫다. 쌍용차의 ‘쌍’자만 나와도 피했다. 공장 생활에서 예비군 대대 조교로 있었던 시절만 아련하다. 파업 과정에서 허리뼈 부러져 1년 반을 병원에 있었고 퇴원 후 산재처리 문제로 이곳저곳 불려 다니느라 물리치료도 때를 놓쳤다. 결국 그 잘난 돈 몇 푼 개나 줘버리란 마음으로 집 안에서 옥쇄파업 중이다. 전화도 문자도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자신을 ‘쌍’으로부터 지켜내야 했다.

추풍령까지 왔다. 휴가철에 자동차로 밖을 보며 넘었던 기억은 있지만 자전거는 처음이다. 엄청난 바람에 결국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어야 했다. 굴뚝 위 두 사람이 생각나자 바람이 서러웠다. 이 산을 넘어 강원도로 넘어가면 쌍용차 하계휴양소가 있다. 밤새 술잔 나눴던 상무님과 부장님 생각이 났다. 갑자기 옆자리에 앉아 술 한잔 달라던 사장님 생각도 났다. 눈이 뻘건 디자인팀 대리는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 때면 빨간 매화꽃마냥 그 눈이 그렇게 예뻤다. 엔진개발과 시작팀과 주행테스트 동료들은 일의 자부심이 강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시험차를 몰아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봤을 땐 회사가 뿌듯하기만 했다. 그들은 회사를 제 집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파업 기간 있었던 77일보다 평소 더 많은 날들을 공장에서 먹고 자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회사 이마엔 ‘해고는 살인이다’ 구호가 낙인처럼 박혔고 이들의 사기는 7년 동안 어지럽게 짓밟혔다.

점점 근육이 뭉치고 팔다리가 저렸다. 칼바람 맞은 얼굴은 감각이 사라졌고 딱딱한 바람이 모래처럼 따가울 때만 이따금씩 감각이 돌아왔다. 얼굴과 몸이 벌겋게 달았다 하얗게 식어가며 담금질을 한다. 장애인들의 휠체어 미는 손이 얼마나 아픈지 알겠다 말하는 반백의 노동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죽겠다면서도 허리뼈 부러져 자전거를 함께 타지 못하는 동료를 생각하는 이제 갓 마흔 넘긴 해고자에게 파란 잎사귀 하나 더 돋는다.

살아 있는 것과 살아내는 것이 고맙고 죽음의 숫자가 26에서 멈춰선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그 기적을 일궈낸 그들이지만 삶은 복원되지도 않았고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 공권력의 진압과 삶의 아킬레스건까지 잘라버린 경기경찰청장의 일그러진 승진욕이 버무려진 참사 때문이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통신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8일 서울 명동 중앙우체국 앞에서 “해고자 복직”을 주장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으로 자전거 행진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쌍용차 희생자 26명의 명예회복은 역설적이게도 회사에 가장 이로운 요구안이다. 분홍도서관을 노사가 함께 짓고 그곳을 방문하는 숱한 사람들에게 이곳이 26명 쌍용차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해 노와 사가 함께 만든 공간이라 소개하는 것이 왜 해고자에게만 좋은 일인가. 분홍도서관 입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분홍도서관 쌍용차영업점을 만들면 얼마나 좋겠는가. 출판시장이 얼어 붙어 있으나 <이창근의 해고일기>가 한 달 사이 벌써 8쇄를 찍고 매일 수천권의 책이 팔려 나가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쌍용차는 내수와 수출의 불균형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주기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고질적인 판매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내수를 안정화시켜야 한다. 시장 점유율이 아닌 생각 점유율을 높이는 길이 진정으로 어려운 일인가. 분홍도서관을 시작으로 노사 모두가 7년간의 갈등과 대립의 시간을 섞고 녹여 ‘생각하는 기업 쌍용자동차’로 다시 태어나자.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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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