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지 10년이다. 아직도 기억이 선하다. 2007년 7월 법 시행을 둘러싸고 노사정은 물론 사회적 논란이 컸다. 법의 필요성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다. 제도의 미흡함 때문이었다. 사실 비정규직보호법 도입 취지는 고용불안과 차별해소 목적이 명확했다. 직장에서 2년 된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과 불합리한 차별의 방지였다. 그렇다면 과연 지난 10년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정말 궁금하다.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다만 일부 정책 효과도 확인된다. 비정규직의 사회보험이나 퇴직금 적용 비율이 다소 증가했다. 그나마 노동시장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노력의 성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보수정부 시기 고용의 질 악화가 문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은 16.8%에 불과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줄지 않고 있다. 정규직이 100일 때 비정규직은 48.7의 임금을 받고 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근로기준법에나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을 심의해 의결했다. 전국 852개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기간제 근로자와 파견·용역 근로자 등 비정규직 31만명 가운데 향후 2년 이상 일할 인력은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비정규직 일터는 더 가혹하다. 폭언이나 성희롱 등 비인권적인 문제는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 협력업체 소속이기에 보호해 줄 곳은 없다. 입사 후 단 한 번도 사장 얼굴을 볼 수 없던 그들은 2년에 한 번씩 바뀌는 작업복과 출입증을 받을 때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계약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명절 때마다 관리소장의 호출은 부담스럽다. 연말 재계약을 앞두고 어떤 선물을 해야 하나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리소장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괴롭혀 사표를 쓰게 하기도 한다. 제도적 사각지대가 실질적 사각지대를 만든 것이다. 제도시행 초기 2년을 제외하면 비정규직 차별시정 신청은 1년에 고작 44건이다. 불이익을 감내하면서 차별시정을 신청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정부 정책이 개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10년이 됐지만 좀처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못 찾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 5년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9098명의 정규직 전환은 의미가 크다. 특히 정규직 전환자 중 7602명은 청소, 경비, 시설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우리 사회의 빈곤과 불안정의 덫을 제거하는 첫 작업이었다. 여름휴가, 상여금, 교육, 건강검진, 본사 직원 연락망, 정년 퇴임식 등 변화된 일터의 모습이다.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올해부터는 온전한 정규직 전환과 차별 해소를 위한 실천 과제들도 밝혔다. 정규직과의 임금격차(25%) 축소나 직군 간 통합 및 인사승진 체계였다.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자는 구성원 간 공감대가 형성되자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고 한다. 임금격차는 주로 기관 내 잔여 인건비를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어떤 기관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추가 부담 없이 해결방안을 찾았다. 현장 직원의 인사승진도 시작되고 있다. 내년부터는 서울시 민간위탁기관 등 소규모 사업장의 침해나 차별 등을 맡는 ‘노동조사관’을 신설한다고 한다.

이렇게 서울시 노동정책은 진화하고 있다. 생활임금이나 노동이사제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과 감정노동자 보호사업도 의미있는 정책이다. 서울시 노동정책은 지방정부라는 한계 속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정책의 연속이다. “우리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소속감, 처음으로 직장에서 행복이라는 생각을 해봤다”는 한 청소 노동자의 말에서 어떤 노동정책이 필요한가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이제 국가는 어떤 정책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시켜 주어야 할 시기다.

김종진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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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지하철 2호선을 탔다. 구의역에 가기 위해서였다. 날씨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이 맑았고, 초록 잎들은 빛났다. 이렇게 찬란한 5월에 살아 있었으면 스무 살이 되었을 청년의 1주기라니, 그 역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구의역 9-4번 승강장 스크린도어는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하루 전날인 27일 추모제가 열렸을 때는 김군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스크린도어 여기저기에 붙고 바닥에는 흰 국화가 놓였다는데 28일에는 흔적도 없었다. 한적한 휴일 오후이다 보니 10-4번으로 끝나는 역사의 뒤쪽까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오는 승객들도 없어, 9-4번 승강장 앞은 고즈넉했다. 그래도 일부러 9-4번 승강장을 찾아온 사람들은 눈에 띄었다. “1호선을 주로 타고 다니는 중학생”이라고 밝힌 한 소년은 목에 맨 커다란 카메라로 9-4번 승강장의 모습이 잡히도록 역으로 달려 들어오는 지하철의 모습을 반복해서 찍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중년 여성이 청소년기의 아들과 함께 9-4번 승강장 앞을 두리번거리다가 발길을 돌렸다. “저희 큰애가 올해 스무 살이에요. 김군이 살아 있었으면 우리 아이와 같은 나인데, 너무 마음이 아파서…. 저도 노동자예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1주기를 앞둔 25일 사고 지점인 구의역 승강장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지난해 5월28일 비정규직 청년노동자가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전동차에 부딪혀 사망했다. 강윤중 기자

지난해 10월 드라마 제작현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이한빛 전 CJ E&M PD는 구의역에서 김군이 목숨을 잃은 직후 9-4 승강장을 찾은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생을 향한 노동이 오히려 생의 불씨를 일찍, 아니 찰나에 꺼뜨리는 허망함. 이윤이니 효율이니 헛된 수사들은 반복적으로 실제의 일상을 쉬이 짓밟는다.”

공고를 졸업하고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던 구의역의 김군은 정규직이 될 꿈을 품고 있었다. 끼니조차 거르며 ‘1시간 이내 장애발생 현장 도착’이라는 수칙을 지켰고 그 수칙을 지키기 위해 2인1조 작업 원칙을 어긴 채 혼자 수리를 하다 변을 당했다.

정규직이었던 이한빛 PD가 꿈꿨던 것은 “사회에 따뜻한 메시지를 던져서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정작 제작현장에서 해야 했던 일은 계약해지된 동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선지급금을 환수하는 일이었다. 월급을 쪼개어 KTX 해고 승무원들을 돕는 데 썼던 그가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고 이한빛 PD 유서 중) 하는 삶의 부조리를 견뎌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구의역에서 다시 2호선을 타고 시청 방향으로 15분을 더 달리면 평화시장이 있는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 평화시장 입구에는 생전에 평화시장을 ‘내 마음의 고향, 내 이상의 전부’라고 했던 전태일의 동상이 서 있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전태일 평전> 중)고 전태일이 고발했던 것이 거의 반 세기 전인데, 구의역의 김군도, 상암동의 이한빛 PD도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살자고 하는 노동이 삶을 꺼뜨리는 현실에 맞닥뜨려야 했다.

문재인 정부가 제1의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일자리 만들기다. 대통령 집무실에 걸린 ‘일자리 상황판’의 18개 지표 중에는 고용률, 취업자 증감뿐만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 근로형태별 연간 근로시간 등 일자리의 질을 나타내는 것들도 있다. 열아홉 살에 스러진 김군의 꿈도, 스물여덟에 생을 접은 이한빛 PD의 절망도 그 상황판에 별빛처럼 또렷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구의역 김군의 1주기 행사가 있었던 27일 이한빛 PD의 아버지는 9-4번 승강장을 찾아 이런 다짐을 적어 스크린도어에 붙여 놓았었다. “남은 일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어 줄테니 부디 편안하게 지내기 바라오. 젊은이가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줄게.” 부디 남은 우리가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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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1호 과제인 일자리 정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어제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는 취임 13일 만에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됐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기획재정부에 신속한 추경 편성을 주문하는 등 일자리 추경도 시야에 들어왔다. 6월 임시국회에 10조원 규모의 추경안이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위원회도 산하에 공공·민간·사회경제 등 3개 소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업무영역 조정과 인선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일자리 상황이 최악이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 실제 일자리 부족은 양극화 심화, 소비부진, 가계부채 악화, 결혼 기피 등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신속한 대응은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조치임에 틀림없다. 문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은 공공 81만개의 일자리 창출, 노동시간 감소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 철폐 등을 통한 일자리 질 높이기, 4차 산업혁명을 통한 민간 일자리 동력 창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득주도 성장이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 가계소득을 늘리면서 성장에 필요한 수요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성장을 정책의 최우선에 두고 고용을 창출하려 했던 과거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접근법이다. 

24일 문재인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상황판 앞에서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참모진에게 일자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첫 시험대는 추경 편성이다. 자유한국당은 “공공 일자리만을 위한 추경은 안된다”고 반대하고 있어 순탄한 처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는 민간의 회복에 앞서 공공이 마중물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부 추경안에 공감한다. 다행히 세수 여건도 좋은 편이다. 다만 일자리 창출은 기업 몫이라는 야당의 지적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협치 차원에서도 야당의 이해를 구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된다. 야당도 뚜렷한 대안 없이 발목잡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일자리 정책은 느긋해서도, 조급해서도 안된다. 청와대 상황판에만 의존한 채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흘러서도 안된다. 비정규직 문제 등을 놓고도 노·노 간 갈등이 야기될 것이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장하는 재계·야당과는 눈을 흘기는 장면이 자주 연출될 수 있다. 이럴 때마다 일자리 정책이 최고의 성장전략이자 복지정책이란 인식을 바탕으로 인내심을 갖고 설득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들어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등 고용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진정성을 갖고 확산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정부 정책 중 수십조원씩 뭉칫돈을 쏟아부었음에도 성과를 내지 못한 청년창업 정책 등은 백지에서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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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부평공장 노동조합의 추악한 채용 비리 행태가 드러났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본사 정규직으로 발탁하는 과정에 개입해 거액의 뒷돈을 챙긴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전·현직 노조위원장 3명 등 노조 간부 17명이 총 8억7300만원을 받았다고 하니 일부 노조원의 우발적인 일탈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정규 생산직에 결원이 생기면 하청업체 비정규직 중에서 매년 40~110명가량을 발탁하는 기회를 악용한 전직 노조 간부들이 취업 브로커 역할을 한 것이다. 정규직 일자리 1개당 7000만원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돈을 받은 전직 노조 간부들이 노조 집행부나 사측 노무담당 임원에게 청탁하면 인사팀 실무자들이 지원자의 성적과 면접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키는 수법을 썼다. 이렇게 해서 이 회사에서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123명의 정규직이 채용됐다.

뒷돈을 댄 비정규직들의 사연을 들으면 그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2006년부터 정규직 채용시험에 지원해 10번이나 떨어진 한 비정규직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길이 없다고 생각해 부모의 아파트로 대출을 받았다. 6번 떨어진 또 다른 비정규직은 자신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미화원 친척을 찾아가 사정 끝에 돈을 빌려 뇌물을 마련했다. 대기업 노조가 가난하고 불쌍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고혈을 빨아먹은 셈이니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전 노조위원장 정모씨는 납품 비리 혐의도 받고 있다. 회사 행사나 명절에 직원들 선물을 대는 납품 업체로부터 5억6000만원을 받아 자신의 집 화장실·천장 등에 현금 뭉치를 숨겨뒀다가 적발됐다. 사측은 노조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노조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줬다고 한다.

한국지엠 노조의 채용 비리는 한국 사회 고질인 비정규직 차별에도 원인이 있다. 정규직이 되면 연봉이 2배 이상 오르니 뒷돈을 내고라도 정규직이 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이다. 특히 일자리가 줄고 실업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대기업 정규직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사협약에 ‘고용세습’ 조항을 요구하는 노조도 많다. 그러나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이런 식이면 이들을 기반으로 한 노동운동은 희망이 없다. 도덕성을 상실한 노조, 비정규직과 청년 등 사회적 약자를 보듬지 않고 사익만 추구하는 노조는 재벌·대기업 못지않은 개혁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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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기업이 부담되더라도 근로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찬성 79.1%, 반대 20.9%) “우리가 다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찬성 82.8%, 반대 17.2%)

어떤 여론조사 결과일까? 놀라지 마시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겨레가 실시한 국민 이념조사 결과이다. 다른 여론조사와 달리 ‘다소 부담되더라도’ ‘다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를 지지하는지를 물어본 것인데, 우리 국민들 5명 중 4명이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10년이 지나 2017년 대선을 앞둔 지금 다시 한번 조사해 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생업을 잠시 접고 국정농단 세력 단죄에 나서고, 도심 교통체증을 인내하며 광장에 나오는 촛불 민심을 들여다보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목도 존재한다. 최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과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추진되어온 ‘교육공무직법’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고작 11개 조항과 부칙으로 만들어진 이 법안에 대해 선동적인 반대 의견이 쇄도해 결국 이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측이 사회적 토론을 통한 재추진을 전제로 발의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법안 내용의 핵심은 아니었지만 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교사로 채용토록 노력한다는 조항에 대한 취업준비생들의 반대 의견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취업전선에 선 수많은 청년들의 절망은 폭발 직전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교사, 공무원들의 반대 의견은 이해하기 어렵다. “시험도 보지 않고 정규직이 되겠다는 거냐?” “예산도 충분치 않은데 가능한 일이냐?”

이런 의견은 그나마 신사적인 수준이다. 업무 자체가 정규직과 다른데 어떻게 동일 처우를 바라느냐, 아는 사람 추천으로 들어온 이도 있는데 모조리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하느냐 등 노동과 비정규직을 비하하는 의견들까지 개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선 간단한 오해부터 풀고 시작하자. 교육공무직법은 37만여명에 달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를 (공무원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처우를 개선하자는 취지이다. 따라서 시험 얘기가 끼어들 이유가 없다. 예산이 충분치 않다? 이 얘기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교사, 공무원들의 처우 악화로 이어지는 논리가 되고 말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학교 비정규직 업무의 노동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휴가 한 번 쓰기도 어렵고 근골격계 질환도 심각하다. 업무가 정규직 노동과 다르다? 맞다. 훨씬 힘들고 어렵고 기피하고픈 업무들이다. 하루만 일해봐도 처우가 이래선 정말 곤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 주자고는 못할망정 처우의 획기적 개선 필요성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교육공무직법이 담고 있는 핵심 내용은 11개밖에 되지 않는 법조항 숫자만큼이나 단순명쾌하다. 우선 상시적인 업무에는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말고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다. 정부 역시 올해 4월7일 ‘기간제 고용안정 가이드라인’에 이러한 취지를 담은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법이 아니라 지침에 불과해서 사업장에 적용을 강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선 교육현장에서만이라도 이 원칙을 법으로 강제하자는 것이다.

다음으로 ‘근속을 인정한 임금체계’를 도입하라는 것이다. 1년을 일해도, 10년을 일해도, 어제 입사한 노동자와 똑같은 임금을 받는 게 과연 합리적인가? 호봉제나 근속수당 도입 등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교육공무직법은 구체적 방법은 명시하지 않되 임금과 처우에 대해서는 “근속 기간을 고려하여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길게 보면 교육공무직법 제정은 교사와 공무원의 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된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교사·공무원들이 함께한다면,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은 교사·공무원의 권리 확대를 위한 사업에 연대할 것이다. 교사·공무원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가 성사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교육 현장의 모든 노동자들이 K스포츠재단이나 미르재단 설립 등에 투입되는 예산, 재벌들만 배불리는 정책에 투여되는 예산을 찾아내는 집단적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쓸데없는 곳에 투입돼 낭비되는 예산을 교육현장에 투입하자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대중운동이 구성된다. 정규직 혼자서, 또는 비정규직 혼자서 운동을 하는 것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같이 나선다면 여기에서 뿜어지는 거대한 에너지는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권리 보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2007 이념 지도에 나타난 국민들 의식, 즉 ‘다소 부담되더라도’ ‘다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정규직 전환이 필요하고 이주노동자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의 바탕에도 그런 것이 깔려 있다. 즉, 이러한 시각은 “손해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당장은 손해와 불이익처럼 보이지만 길게 보면 나를 포함해 전체 사회 구성원에게 이익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라는 영리한 생각이다. 이제 며칠 뒤면 2016년이 끝난다. 2017년의 이념 지도는 어떻게 그려 나가야 할까.

오민규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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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아르바이트·단시간 일자리 등은 청년층으로 채워진 지 오래다. 낮은 임금, 낮은 고용의 질, 낮은 삶의 질 등은 청년층을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가 돼 버렸다. 소득양극화와 취업난, 주거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은 ‘N포 세대’를 넘어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1일 내놓은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는 청년세대가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지난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하위 20%)의 한 달 소득은 80만7000원으로 집계됐다. 취업난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탓이다. 한때 저소득 청년층을 일컫던 ‘88만원 세대’가 ‘77만원 세대’로 대체될 시점이 머지않은 것이다.

청년 가구의 소득불평등도 심화돼 최상위 20%와 최하위 20%의 연평균 소득 격차는 9.56배에 달했다. 가계빚도 2년 새 900만원 넘게 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대 청년층 2명 중 1명꼴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겼다고 체념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가구의 경제난은 출산율 하락과 맞물리면서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효성 있는 청년고용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뒷짐만 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고용률 70% 정책은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것으로 변질됐다. 청년고용할당제는 공공기관에서 민간기업으로 확대되지 않아 ‘반쪽 대책’에 그쳤다. 내년 최저임금을 고작 7.3% 오른 시급 6470원으로 결정한 정부는 미취업 청년들에게 최장 6개월간 일정액을 지급하는 서울시와 성남시의 청년수당·배당 사업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무능한 정부가 보인 옹졸함의 극치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기본급·상여금·수당 차별을 없애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비정규직의 저임금 문제를 해결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청년세대가 꿈을 잃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나라의 미래는 기대할 게 없다. 청년세대가 광장에서 촛불을 든 것은 불평등한 사회를 바꿔보려는 간절함 때문이란 것을 정부와 정치권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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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한 비정규직 여직원이 약속된 정규직 전환 대신 해고통보를 받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공개된 유서에 따르면 그녀는 정규직 전환을 위해 중년 남성들의 성희롱을 참아왔다고 한다. 같은 해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로 고생하다 자살을 선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자살하기 몇 년 전부터 복지급여를 지원받으려 했으나 대상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2015년에는 롯데호텔에서 일하던 청년의 쪼개기 계약 실상이 드러났는데, 이 청년은 3개월 19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을 갱신하다가 어느 날 해고당했다. 지난 6월에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19세 청년이 근무 중 사고로 사망했다. 미숙련의 비정규직 계약직인 이 청년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뛰어다니며 위험천만한 일을 소화해야 했다. 또 올여름에는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한 시인이 생계가 어려워져 저소득층 지원대상이 되었다. 최근에는 대학가의 동아리 회장 선거가 속속 무산됐다. 후보자로 나서는 학생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스펙 쌓기,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바쁜 학생들에게 이제 동아리 활동은 꿈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성추행 같은 모멸의 강요, 자신의 빈곤에 대한 증명의 강요, 매일 다음날의 계약서를 쓰며 느꼈을 굴욕의 강요, 위험한 일의 강요, 예술가의 작품에 대한 ‘쓸모’의 강요, 그리고 꿈꾸던 대학생활을 시작해도 곧바로 시장에서의 ‘가격매김’을 준비하도록 하는 강요가 판치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우리가 원하는 사회일까. 안전하게 일할 권리,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 예술을 생산하고 취미활동을 즐길 권리, 어느 정도 먹고살 권리, 그리고 무엇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권리를 누가 모조리 납치해갔는가? ‘생산적인 일’ ‘쓸모’ ‘높은 가격매김’ 등 반복되는 강요에 길들여져, 우리는 소중한 것들이 모래가루마냥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뿐 반문도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일, 노동, 인정, 쓸모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다 적극적으로 구상해야 한다. 삶의 영위를 위한 다양한 인간의 활동이 그 자체로 평가될 때 노동, 일, 활동은 근본적인 인간의 욕구이자, 필수적인 사회 유대, 미덕 및 타인에 대한 존중의 근원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중활동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은 먼저 어느 정도 수준의 무조건적 소득 보장이다. 여기서 ‘무조건성’은 소득, 근로 이력과 무관하게 권리로서 급여를 지급받는 것이다. 사실 현재 법과 제도로 규정될 수 있는 ‘근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비전형적 일들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조건’을 정의하고 부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한국 노동시장에 어떤 고용형태들이 존재하고 있는지 실태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고용관계가 청년들을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제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청년 노동시장의 변화들을 고려했을 때 ‘청년기본소득’은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도가 제한된 시간 내에 전면적으로 도입될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제의 단계적 도입을 위해 먼저 청년과 같이 기존 소득보장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대상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일, 노동, 인정, 쓸모의 의미가 변화하면 개인들의 삶의 방식이 변화하고 사회의 모습도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일, 노동, 인정, 쓸모의 의미가 바뀌기 위해서는 강요가 지배하는 작금의 시스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모든 개인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조금씩 더 주어진다면,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노동과 일이 실험, 탐험, 자원봉사, 다양한 문화적·예술적 활동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면, 시장에서의 일은 일생의 다양한 활동 중 하나로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는 궁극적으로 어떤 일이 시장에 기여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생산성과 쓸모에 대한 강요는 사라질 수 있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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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비정규직의 증가가 몰고 올 암울한 미래상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지난 29일 한국은행은 65세 이상 고령층을 제외한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서 2020년부터 취업자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또 정규· 비정규직 간 극심한 격차가 지속될 경우 청년층의 경제참여를 위축시켜 고용여건은 더욱 나빠진다고 진단했다.

30일 고용노동부의 상시고용 300인 이상 대기업의 고용형태 공시 결과 발표도 이 한은의 경고를 뒷받침하고 있다.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이 20%로 지난해보다 0.1%포인트 높아졌고 기간제 비율까지 합치면 대기업 노동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이었다. 기아차 모닝 생산공장이나 롯데 영등포역 백화점처럼 운영 인력이 100% 간접고용이지만 정규직이 워낙 적어 공시에서 제외된 기업까지 포함하면 이미 비정규직 비율은 절반을 넘어섰다고 봐야 한다. 한은 조사에 따르면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급여는 49% 수준이다. 청년들의 구직 욕구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청년실업이 아니라 일시 취업과 해고를 반복하며 숙련 형성 기회에서 영구적으로 배제되는 ‘청년 낭인’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영화 <카트>의 실제 주인공들인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부의 대책을 반대하며 행동계획을 발표하고 있다._경향DB

 


하지만 대기업들은 비정규직 비중을 낮추고 고용 안정과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청년들의 취업 욕구를 높이기 위한 사회적 책임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은 “ ‘베이비부머 세대’는 자녀세대에게 안정된 미래를 물려줄 책임이 있다”며 청년실업 문제를 세대갈등의 문제로 접근했다. 기업의 책임은 외면한 것이다. 대한상의도 ‘청년실업 전망과 대책’ 보고서에서 20년 전 ‘대학정원 자율화’를 원망할 뿐 고학력 실업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하는 기업의 노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사용자위원들은 시종 ‘최저임금을 동결하지 않으면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급기야 법정활동 마감시한인 지난 29일에는 최저임금을 시급·월급제로 병행 표기하자는 제안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회의를 거부했다.

인구고령화는 당장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대기업의 저임·비정규직 남용은 막아야 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심각한 고용지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계속 대기업들의 ‘이기적 고용’에 끌려다닐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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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십 년도 더 한결같이 비정규직 철폐 싸움을 하고 있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가노을빛’ 그런다.

가노을빛이라니…, 서로 사랑하고 있건만 만날 길이 없어 한 번도 속내를 내대보질 못하다가 문뜩 들녘에서 마주쳤을 때 저도 모르게 바알갛게 달아오르는 얼굴빛을 일러 가노을빛 그런다.

그 빛은 그 어떤 하늘빛하고도 다르다. 들녘의 갖가지 꽃닢하고도 달라 그림으로도 아니 드러나는 빛이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고 따라서 절로 피울 수도 있는 빛이라, 그 누구도 이를 짓이겨선 안 된다는 순결과 거룩의 상징이다.

그러니까 2008년 캄캄한 새벽녘이었다. 송경동 시인으로부터 기륭전자로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어제도 갔었는데 또? 송 시인의 숨이 먼저 넘어가는 듯해 달려가니 그 캄캄한 새벽에도 눈이 어지러웠다. 밥 안 먹기(단식) 94일째 되는 김소연의 목숨이 어려웠건만 웬일로 얼굴만큼은 바알갛게 피어오르고 있질 않는가 말이다. 나는 무릎을 쳤다. 저건 얼씨구 가노을빛이라고. 죽음 바로 한 발 앞서서야 해방을 만나 피는 가노을빛이라고.

그런 가노을빛의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오늘부터 또다시 배밀이(오체투지)로 청와대까지 가겠다고 한다. 놀랄 일이다.

2010년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끈질긴 싸움 끝에 노사합의를 사회적으로 매듭지어 복직이 되었다. 다만 회사 측에서 2년 반만 시간을 달라고 해 꼬박이 그 약속을 지킨 뒤 출근을 했으나 일거리도 안 주고 돈도 한 푼 안 주고.

그러니까 만인이 환호한 사회적 합의를 노동자들에겐 단 한마디 말도 없이 깨고, 법의 판결도 찢어발기고, 그 모든 사람됨의 합리성도 갈기갈기 찢겼지만 꾹 참고 몇 해째 출근을 했다.

하지만 이참엔 회사가 없어지고 회사 건물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된 유령의 집에서 외로이 버티다 못해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이제 거리로 나서되, 배밀이로 나선다는 것이다. 주먹도 아니 쥐고 촛불도 안 들고.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는 2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기륭전자 농성장을 정리하고 비정규직 법.제도 폐기를 선언하는 기자회견문을 발표 했다. 이와함께 사회적 투쟁을 선언하고,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요구하는 '오체투지' 행진을 청와대까지 시작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러나 그네들의 결단엔 늘어졌던 기운이 퍼뜩 든다.

첫째, 비정규직은 노예라는 지적이다. 알다시피 노예란 자유권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권과 생명권이 없는 존재, 노동의 모든 창조성을 말살당한 꼭두각시다. 그런 900만 비정규직이 노예라고 하면 누군가가 나서 깨트려야 하는 게 문명사적 사명이 아니겠는가.

둘째, 그들은 복직이 아니라 아예 비정규직 제도를 폐기하라는 것인데 이것은 곧 오늘의 자본축적의 틀거리를 깨자는 것이다. 때문에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할지 몰라도 이건 가능,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일구어야 할 문제로 들고 나온 것이다.

그렇다, 기륭전자 노동자라고 해보았자, 가시나 아홉, 머슴아 하나, 모두 열 명. 그들이 이 압도적인 착취구조를 바탕으로 한 박근혜 독재의 부조리를 타파할 수가 있을까.

나는 그 가능성을 기륭전자의 순결, 가노을빛에서 찾는 사람이다. 올바르고 아름다울 것이면 저도 모르게 두 볼이 바알갛게 달아오르는 그 가노을빛, 그것마저 짓밟힐 것이 뻔해 이제 때는 왔다고 혀를 차본다.

그림 좋아하는 이들과 사진가들은 그 가노을빛을 실상으로 꾸려내야 하지 않을까. 시인과 소설가들은 그 가노을빛을 살아있는 살티(생명)로 빚어내고, 소리꾼들은 가노을빛의 염원을 노래로 꾸리고, 춤꾼들은 그 가노을빛을 산 형상으로 어기차게 구현하고, 연극인들은 이 현실을 무대처럼 살리고, 철학과 학문은 이 썩어문드러진 자본주의 문명을 해체·청산하는 데 앞장서고, 사람들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 하고 부르던 그 가슴으로 이 가노을빛을 길라잡이로 굽이치게 해야 하질 않을까.

그렇다, 이참 거짓된 빛으로 멀미져온 우리 인류는 저 기륭전자의 가노을빛을 시대의 횃불로 삼아야 하리라고 믿는다.


백기완 |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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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이 말을 믿었다. 불편만 감수한다면, 돈이 없어도 누구나 자신만의 삶을 꾸려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이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돈은 세상을 조종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돈 많은 대기업들의 영향력을 보면서다. 특히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며칠 전 판결이 하나 나왔다. ‘이마트는 대형마트가 아니다’라는 서울고법의 판결이다. 재판부가 이렇게 판단한 이유 중 하나는 이렇다. “시장경영진흥원이나 소상공인진흥원의 조사 결과는 영업 제한에 우호적인 단체가 단기간 조사한 결과인 반면, 연세대 정진욱·최윤정 교수가 집필한 ‘대형 소매점 영업 제한의 경제적 효과 분석’은 광범위한 조사를 거친 객관적, 과학적 연구 결과로 신빙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진욱·최윤정 교수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의 의뢰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 협회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운영사들이 회원사로 있는 단체다. 재판부가 처음부터 대형마트 편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형마트들이 연구에 훨씬 많은 돈을 쓴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준정부기관인 시장경영진흥원이나 소상공인진흥원의 예산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

지난달 13일 대법원은 쌍용차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구조조정의 근거인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한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뒤집혔다. 쌍용차는 이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대법관 출신 2명, 서울고등법원장 출신 등 19명의 변호인단을 선임했다.

지난해 봄 양승태 대법원장이 기자들과 함께 등산을 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제발, 법원이 보수적이라고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의미로 생각했다. 잘못 생각한 것 같다. ‘보수적인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이해해달라’는 얘기였던 것 같다.

돈 많은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곳곳에 돈을 쓴다. 얼마 전 정윤회씨 관련 청와대 문건이 대기업의 ‘정보맨’에게 넘어간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 ‘정보맨’은 공무원들과 만나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협조를 구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수십명의 ‘정보맨’을 둔 기업도 있다고 한다. 언론사를 갖고 있는 대기업들도 있다. 돈의 힘은 정부 부처에, 학계에, 법원에, 연구소에, 언론사에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손님을 빼앗겨도, 일자리를 잃어도 의지할 곳을 찾기 힘들다.

지난 6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성당에서 열린 ‘쌍용차 해고자들의 특별한 은퇴식’에서 김승태씨(왼쪽)와 박일씨가 후배들로부터 받은 꽃다발을 안은 채 웃고 있다. (출처 : 경향DB)


날씨가 춥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가 떠오른다. 굶주린 성냥팔이 소녀가 추운 거리에서 성냥을 팔지만 아무도 사주지 않는다. 소녀는 꽁꽁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성냥을 켠다. 소녀는 성냥의 불꽃 속에서 환상을 본다. 난로를, 맛있는 음식을, 크리스마스트리를, 그리고 할머니를. 날이 밝은 뒤 사람들은 미소를 띤 채 죽어 있는 소녀를 본다.

지난 13일 새벽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정욱과 이창근이 평택공장의 굴뚝에 올랐다. 높이 70m의 굴뚝이다. 이들은 말했다. “우리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굴뚝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약하고 무서움 또한 많고 여린 인간인지를 알리기 위해 올랐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많지 않다. “사측에 당장 뭘 해달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얘기 좀 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6년째 내밀고 있는 손을 이젠 잡아줬으면 한다”고 말한다.

18일 평택의 최저기온은 영하 10.3도였다. 밖에 나가본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을 이해할 것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결말은 보고 싶지 않다. 땅에 내려와 환하게 웃는 그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돈보다 힘이 센 것이 있음을 보고 싶다.


김석 비즈 n 라이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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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해가 바뀌면 내가 해고된 지도 만 30년이 된다. 어제 만난 사람의 이름도 까먹고, 사무실 전화번호가 가물거릴 만큼 기억력이 떨어졌지만 해고되던 날의 날씨, 하늘빛, 대문 앞에서 해고장을 읽던 근로과 대리의 이름, 목소리, 그의 입에서 나오던 말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선각공사부 선대조립과 용접 1직 사원, 사번 23733 김진숙을 명령불복종으로 인한 해고에 처한다.”

그 말을 들으며 영도다리보다 튼실하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직각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단련된 스물여섯 살의 내 다리가 주저앉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옴짝달싹 못하고 30년을 살았다.

아버진 실향민이었다. 명절이면 술을 마시고 “오마이, 순진아, 순남아” 끼익끽 울던 아버지. 난 그래서 명절이 싫었다. 아귀 안 맞는 문짝처럼 끼익끽 우는 아버지의 궁상스러운 울음소리도 싫고, 다른 애들은 친척집을 다니며 주머니가 불룩해질 때 세배 갈 곳 하나 없던 그 사고무친의 쓸쓸함도 싫었다.

그런 아버지의 눈물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건 해고되고 출근투쟁을 할 때였다. 삼팔선보다 높고 단단했던 경비아저씨들, 관리자들, 그리고 어용노조 간부들. 그 넘을 수 없는 벽 너머에 있던 강씨 아저씨, 허씨 아저씨들, 내 파이버, 내 공구통, 내 작업복, 내 안전화. 그전엔 무시로 드나들며 장사를 했던 삼팔선이 어느 날 막히고 ‘내일은 뚫리갓지, 모레는 뚫리지 않카서’, 그렇게 장자장손이었던 아버지는 부모님과 동생들, 그리고 처자식을 두고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채 쓸쓸히 눈을 감으셨다.

남한에서 가정을 이루어 자식을 낳고 기르고 살면서도 늘 이방인 같던 아버지. 눈은 나를 보고 있으면서도 다른 데를 더듬던, 흔들리던 아버지의 눈빛. ‘뚫리기만’ 하면 언제든 우리를 버리고 날아갈 듯 불안하던 아버지. 술 취하면 울며 부르던 ‘부평초’처럼 그 흔들리던 눈빛이 내내 원망과 미움의 근거가 됐던 아버지. 어느 날 쓰러져 7년을 누우신 채로 명절이면 찾아가는 내게 복직했느냐고 첫마디로 묻던 아버지. 가야 할 곳을 못 간 채, 만나야 할 사람들을 다시는 못 본 채 산다는 게 어떤 일인지 아셨던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야 짚어지는 그 마음들.

그 마음으로 현재 단식 37일차인 코오롱 해고자 최일배와 그 동료들을 떠올려본다. 해고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브랜드 있는 투쟁사업장도 아니고, SNS에서마저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무명의 투쟁사업장, 코오롱. 10년을 넘길 순 없다고 최일배가 다시 단식을 결단했을 땐 얼마나 막막했을까. 10년 동안 해볼 거 다해보고 이제 단식부터 다시 시작. 해본 사람은, 아니 안해 본 사람도 다 말리는 단식.

올해 전태일노동상을 받은 최일배 코오롱 정리해고분쇄 투쟁위원장이 11일 경기 과천시 코오롱 본사 앞 천막농성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나도 크레인의 309일보다 단식 24일의 후유증이 훨씬 크다. 위를 상해 밥도 못 먹고, 먹으면 체하고, 끼니마다 신물이 올라오고. 4년 동안 꾸준히 치료한 끝에 이제야 밥을 조금씩 먹어가는 중이다. 잇몸이 내려앉아 이빨 치료를 몇 년 동안 했는데, 하고 돌아서면 또 다른 이빨이 말썽이다. 다이어트를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생긴다는 담낭 결석까지 생겼고, 기억력은 금붕어 수준으로 떨어졌다. 관절이 상한 건 물론 단식 후 골다공증 진단을 받았다. 그걸 다 알면서도 해야겠다고 했을 땐 그만큼 절박한 거고, 그거밖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2년 넘게 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했지만 한번도 본관엘 들어갈 수 없었던 최일배가 지난 민주노총 총력결의 대회가 있던 날은 면담요청서를 들고 코오롱 본관까지 들어갔다 왔다. 그렇게 힘을 모아내면 끝나겠지. 10년. 그 지난하고 피눈물 나는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그 간절한 꿈을 이룰 수 있겠지. 창자가 뒤틀리고 혓바닥이 목구멍으로 말려 들어가는 고통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었던 저 간절한 희망을 이룰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자. 이번주 토요일인 12월13일, 과천 코오롱 본사 앞이다.


김진숙 | 한진중공업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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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관련해 기업 부담을 줄인다며 정규직의 해고 요건 완화 검토 방침을 거론했다. 노동계가 격앙된 반응을 내놓자 입장을 번복했지만 이대로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친기업 기조의 정부가 출범 때부터 이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운 데다 재계가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와 허약한 사회안전망을 감안할 때 해고 요건을 강화해도 시원찮을 판에 완화라니 절대 안될 말이다. 틈만 나면 “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몰고가는 행태도 지겹다.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정부와 기업의 자체 노력이 우선 필요한 것 아닌가.

정부의 해고 요건 완화 검토 방침은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사유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폭넓게 해석하려는 재계의 이해와 맞닿아 있다. 경영이 당장 어렵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 정리해고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재계 요구다. 기업의 부담 완화를 위해 ‘고용 재앙’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한국 노동자는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등 상시적인 감원의 피해자로 전락해왔다. 정리해고 사유만 해도 ‘기업의 존폐 위기에 직면하는 급박한 경영상 필요’로 좁게 해석하던 것에서 외환위기 때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크게 완화됐다. 이로 인해 고용 불안정성은 이미 오래전에 임계치에 도달한 상태다. 더구나 실업급여나 연금을 주조로 하는 사회안전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권이고 해고 후 재고용률도 낮다. 노동자는 처우 개선과 보호를 강화해야 하는 사회적 약자이다. 또한 기업과 함께 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기둥이지 경제 발목을 잡는 훼방꾼이 아니다.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 전광판 위에서 케이블방송 씨앤엠(C&M)의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_ AP연합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정규직의 정리해고를 연계하려는 정부의 의도도 불순해 보인다. 정규직의 자원을 빼앗아 비정규직 처우 개선으로 기업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제로섬 게임 형태로 몰고가 갈등을 유발하려 한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근로자 소득을 키워 소비와 성장을 유도한다는 구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정규직의 정리해고 요건 완화 방침을 거두어야 한다.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으로 소비 증대가 이뤄진다고 해도 정규직이 정리해고되면 소비와 성장을 유도할 동력원이 사라져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 아닌가. 아울러 기업의 고용 유연성 요구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행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노동분야에서 기업 편향성을 보이는 현실도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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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기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싸워보니 우리가 현대차라는 회사 하나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를 상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폐부를 찌른다.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 판결하자 “그럼 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현대차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말도 안되는 소송이라 기각함이 당연한데도 헌법재판소는 4년째 판결을 미루고 있다. 비슷한 취지의 기간제법 헌법소원은 이미 1년 전에 기각한 헌재는, 유독 현대차가 제기한 소송만 ‘쥐고 있다’. 불법파견은 범죄행위가 분명하니 정몽구 회장 등 회사 임원을 처벌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대검이 직접 회의까지 주재하며 작년 연말까지 결론을 내겠다고 해놓고, 4년이 지난 오늘까지 기소조차 안 하고 있다. 1000명 넘는 비정규직을 불법파견이라 선언한 판결문이 나왔는데도, 검찰은 처벌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하지 않는다.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이 제기한 소송은 1심에 이어 4년 전에 2심도 승소했지만, 대법원은 아직까지 판결을 미루고 있다. 쌍용차 사건은 2심 판결 후 단 9개월 만에 결론을 뒤집은 대법원이 말이다. 검찰,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거대 국가기구가 유독 현대차 사안만 4년 넘게 시간을 끌어주고 있으니, “국가를 상대하는 것 같다”는 얘기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러는 동안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삶은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현대차 자본이 제기한 수백억원대의 손해배상소송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며 조합원들을 옥죈다. 게다가 이 소송은 파업에 대한 손해를 받아낼 목적이 아니라 노조 파괴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소속 회원들이 30일 현대차 신차 발표회가 열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불법파견 시정 및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현대차가 300여명의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 대해, 지난 10월23일 울산지방법원이 70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대차는 판결 선고 이전에 68명, 선고 직후에 51명에 대해 소송을 취하한다. 이유가 뭘까? 소송이 취하된 총 119명 중 118명이 노조 탈퇴자들이며 이들 중 97명은 현대차를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도 취하한 이들이다. 유일한 조합원 1명은 애초부터 현대차 상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경우였다. 즉 현대차는 손해배상 취하를 미끼로 노조 탈퇴와 현대차 상대 소송을 포기하도록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손해를 받아낼 목적이 아니라 권리 행사를 방해하려는 소송을 미국에서는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 하여 각 주별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한국의 민사소송법 전문가들 상당수도 이런 종류의 소송에 대해서는 법원이 ‘소권 남용’으로 보아 기각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현대차에 책임을 묻는 소송은 4년째 지연되지만, 현대차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은 법원이 청구액을 거의 100% 인정하고 있다. 억울하게도 판결에 항소하려면 인지대만 수천만~수억원을 내야 한다. 돈 없으면 정당하게 재판받을 헌법상 권리도 무시된단 말인가.

급기야 지난 6일, 손해배상 대상이 된 비정규직 조합원 1명이 자살을 기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천만다행으로 생명엔 지장이 없지만, 그가 쓴 유서에는 “현대에게 꼭 이기세요” “현대는 다 개○○다”라는 분노가 절절히 녹아 있다. 가족들에겐 져주는 걸 한없이 행복해하던 이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단 한번이라도 이기고 싶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지난 10년 동안 상대한 건 ‘한국의 비정규직 제도’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비정규직의 승리가 저 노예제도를 허물어뜨리는 교두보인 것이다. 이제 손해배상소송 1심에 이어 줄줄이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소송은 기각함이 마땅하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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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통찰을 빌리자면 도구적 존재로서의 사물은 역설적으로 도구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그 존재의 의미가 드러난다. 도구로서 망치가 정상 기능을 하는 동안 우리의 시선은 망치로 내리치려는 못에 고정돼 있을 뿐이다. 망치가 부러져서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비로소 우리의 시선은 못에서 망가진 망치로 옮겨간다.

최근 압구정동 아파트 경비원 노동자의 분신사건을 보면서 하이데거의 철학적 통찰에 가슴이 섬뜩해졌다. 입주민의 막말에 상처 받은 쉰 넘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도구적 존재로서 노동자가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노동을 멈추는 순간이다. 잔인하고 독해진 세상에서 뼈와 살과 영혼을 가진 인격체로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는 이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지난 9월 말에는 경제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정규직 전환의 약속을 믿고 7번의 쪼개기 계약에 시달리던 한 여성노동자가 계약해지 한달 만에 목을 매 자살했다. 계약해지 시점은 수많은 성희롱 사실을 상부에 보고한 직후였고 기간제 보호법상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2년의 근무기간을 채우기 3일 전이었다. 정규직 전환의 ‘희망고문’에 시달리다 직장으로부터 버려진 25살 가냘픈 해고 노동자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일 방법은 스스로 존재를 멈추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죽은 노동자의 빈자리에 바쳐진 조화가 채 시들기도 전 세상은 그를 다시 한번 우롱했다. 지난달 말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기간제법상 비정규직 사용기한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며 사용자의 온갖 횡포를 견뎌내야 할 희망고문의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것을 쪼개기 계약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평생을 ‘성 소수자’로서 세상과 불화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마지막 안식처였던 어머니를 잃고 난 후 <애도일기>에서 “자신의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으며 세상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하긴 세월호와 같은 미증유의 슬픔을 ‘교통사고’라는 메마른 기호 속에 가두려는 짐승 같은 사회에서 바르트의 슬픔을 거론하는 게 공허할지 모른다.

영화 <카트>의 실제 주인공들인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부의 대책을 반대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와 재계는 그렇다치고 노동운동 진영은 비정규직의 슬픔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내년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직선제로 치러지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나선 4명의 후보는 모두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강조하고 있다. 압구정 아파트 장례식장에 모인 노동운동 지도부는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1970년과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한 2014년은 다르지 않다’며 분노의 목소리도 키우고 있다. 문제는 ‘분노’가 아니라 ‘행동’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포기를 강요당하는 비정규직의 처참한 현실은 정규직에 ‘저항의 동력’보다 ‘공포에 대한 복종’을 강화하고 있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해방’이라는 구호는 이제 기억조차 희미해져가고 박노해 시인의 말대로 “노동착취보다 착취당할 기회를 잃는 것이 더 두려운 세상”이 되었다.

전태일의 삶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재단사’로써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시다’로 불리던 어린 여공들의 삶을 고민하다 분신했다는 것이다. ‘재단사’와 ‘시다’는 지금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불법파업 엄단’ 엄포에 노동계의 총파업이 ‘뻥파업’이 된 지 오래된 지금 전태일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고 했던 비트겐슈타인의 가르침대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무수한 언어는 더 낮아져야 한다. 행동할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라.


강진구 정책사회부 노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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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독거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를 봤다. 서울 장안동의 다가구주택이었다. 주검을 수습할 이들에게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쪽지엔 “고맙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라. 개의치 말고”라 써 있었다. 빈곤의 바닥으로 또 하나의 목숨이 푹 꺼졌다. 그런데 ‘스스로 끊었다’는 말이 오랜 시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스스로라니. 모순이지 않은가. 목숨은 스스로 끊는 게 아니다. 극단으로 몰린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벼랑으로 떨어지는 과정일 뿐이다. 송파 세 모녀도 집단으로 벼랑으로 몰린 예가 아니던가. ‘스스로’라는 말은 그저 남은 자들의 면피처럼 읽혔다. 이들의 죽음이 주목된 이유는 그들이 남긴 짧은 글이었다. 노인은 ‘고맙다’는 말을 남겼고 송파 세 모녀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가느다란 신음 같은 말이다. 무엇이 고맙고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인가. 질식해가는 이들은 큰소리조차 낼 수 없다. 기절과 탈진을 반복한 이들이 남기는 마지막 말은 그래서 언제나 낮고 가늘다. 말할 힘까지 소진했기 때문이다.

유서가 없었다. 궁금했고 한편으로 화가 났다. 단서라도 남기지 않았을까 싶어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 헤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유서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억울하다는 말이 담긴 유서를 흔들어대며 회사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6년 동안 침묵의 죽음만 이어졌다. 그 숫자가 25로 바뀌었다. 이들은 왜 조용하게 숨졌을까. 난리라도 한번 치고 죽지 왜 그렇게 하나같이 조용하게 죽어갔을까. 궁금함보다 원망스러움이 컸다. 다투고 싸우는 것도 그들에겐 그저 번잡스러움이었을까. 의문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지만 이해는 조금씩 넓어졌다. 체념과 극단의 좌절이 불러온 죽음은 소리가 없다. 뚝뚝 끊기며 가늘게 이어지던 소리는 죽음 주변에 맴돌았다. 그러나 주파수가 달라 우리가 듣지 못한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들이 근로자 지위 확인 가처분소송 판결을 10여일 앞둔 2일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평택지원까지 3보1배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2000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맞서 싸운 시간. 다가오는 11월11일이다. 까마득한 시간이 하얗게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정리해고를 막겠다며 겁 없이 경찰 특공대의 진압을 온몸으로 막아섰던 시간들이다. 한여름 공장 옥상에서 최루액을 몽땅 뒤집어쓰고, 사회적으로 빨갱이라 불렸다. 집 밖 나서기가 두려웠고 이어지는 동료의 부음에 오금 저렸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한국 사회를 향해 던진 질문에 사회는 응답했다. 정리해고 폐해와 비정규직 남용의 문제가 대선 시기 공약으로까지 밀어올라간 것이다. 사회적 논의는 불이 붙었고 뭐라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또 제자리걸음이었다. 무겁게 밀어올린 돌덩이가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체념의 반복이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기엔 비탄스럽기만 한 세월이다. 취업의 문은 막혀 있고 해고의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다.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지난 과정의 반면교사들은 등을 돌렸다.

쌍용차 문제는 재난의 문제다. 인간이 만든 해고가 인간 삶을 부수는 인간 재난이 극단의 형태로 드러난 정치적 사건이다. 정치권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고 여전히 낙인찍기 의도와 편가르기 소재로만 삼고 있다. 화재가 나면 119 소방차가 출동하고 사람들은 길을 열어준다. 불 끄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일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열었지만 정작 정치 난전판은 길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재난 경보음을 정치권만 듣지 않았다. 쌍용차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치권의 이 같은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 소복하게 쌓여만 가는 인고의 시간 앞에 정치가 답을 찾고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 소리 없는 죽음이라지만 귀를 열면 들리는 죽음이며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사건 이후 요란 떨 게 아니라 그들의 가늘고 작은 신음 소리에 주목해야 재난은 방지할 수 있다. 더는 이대로 살 수 없지 않은가. 2000일이 두렵다.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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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권 노동부 장관이 비정규직 고용제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2년 안에 실직하는 것보다 비정규직일지언정 오랫동안 근무하는 것이 낫지 않으냐는 발상이다. 노동부 장관으로서 열악한 처우와 저임금도 모자라 해고 위협에 떨어야 하는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을 숙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제도를 회피하려는 온갖 편법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고용제한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는 것이 적절한 해결책일까 싶다. 특히 재계가 유사한 주장을 한 뒤 이 장관의 발언이 나와 진정성 논란도 일고 있다. 비정규직보다는 경제살리기란 명목으로 재계의 노동비용절감과 고용유연성 목소리를 반영한 방침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당장 노동계로부터 비정규직만 양산하게 되는 땜질식 처방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 방안을 포함해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만들어 연내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노동계가 반대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반발만 살 것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소속 회원들이 30일 현대차 신차 발표회가 열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불법파견 시정 및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경제활성화와 대기업 우선정책의 틀 속에서 이뤄진 측면이 강하다. 외환위기 때 한국경제의 목줄을 쥐었던 국제통화기금(IMF)의 고용유연화 요구에 따라 정부가 근로자파견법을 제정하면서 비정규직 확산이 시작된 것이 좋은 사례다. 아이러니하게도 2007년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비정규직을 옥죄는 계기가 됐다. 비정규직은 비정상적 고용이므로 일정 기간 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의 취지이지만 현실과 맞지 않았다.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려 노동비용을 절약하려는 기업들의 고용 패턴이 이 법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정규직 전환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기업들의 탈법과 편법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최근엔 2~3개월로 근로계약기간을 자르는 ‘쪼개기 계약’까지 등장했다.

비정규직은 정부 공식 통계로도 600만명을 넘었다. 가구당 3인 가족으로 잡으면 전체 인구의 절반가까이가 비정규직과 그 가족이라는 얘기가 된다. 비정규직 증가가 노동시장을 이중구조화하고 소득분배구조를 악화시켜 사회통합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한국 사회는 지난 20년간 고통스럽게 경험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비정규직 문제는 보다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처가 요구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함께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고려해봄 직하다. 4대 보험 등 당장 비정규직에 도움이 되는 대책도 물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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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에도 일부 부자들은 “이대로”를 외쳤다고 한다. 금리가 치솟으면서 이자 소득이 급격히 불어났기 때문이다. 다수의 손실이 소수에게는 이익이 되곤 한다. 최근 현대차와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 판결을 보면서 다시 ‘이대로’가 떠올랐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월 취임사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구조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전체 임금근로자의 3분의 1에 달하는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서 어떻게 ‘국민 행복 시대’를 얘기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친기업 성향을 가진 정부의 경제 수장 발언으로는 이례적으로 비칠만도 하다.

하지만 정부가 어떤 식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풀려 하는지는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울산공장을 제외한 비정규직 노조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속을 일부 인정하는 방식으로 ‘채용’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판결을 코앞에 둔 시점에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의 합의였다. 선고를 앞둔 전략적 합의로 보였다. 아니나다를까 지난 18~19일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차 공장 내에서 적법한 도급은 성립할 수 없다”는 요지의 판결을 내놓았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완패’했지만 사전 합의를 통해 그나마 영향을 줄인 셈이 됐다.

사내하청이란 방식의 비정규직이 양산된 것도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대기업들이 잇따라 넘어가는 공포 속에서 ‘기업 살리기’를 지상과제로 삼아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편으로 비정규직이 이용됐다. 워낙 비상 상황이다보니 암묵적인 사회의 동의가 뒷받침됐다. 하지만 노동자가 가져가야 할 몫을 중간에 떼가는 형태는 본질적으로 불법이다. 이번 판결은 그런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비상 상황에서 확대된 비정규직 고용을 이제는 정규직으로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다.

오진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출처 : 경향DB)


“비정규직이 꼭 나쁜 건가요?” 한 대기업 직원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그가 불쑥 내뱉은 말이다. 기업인들이 이래저래 비정규직 고용의 적법성을 주장하지만 결국 근저에는 그런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이 받는 차별과 경제적 고충을 불가피한 기업 경쟁력의 발판으로 보는 것이며, 그렇게 그동안 누려왔던 혜택을 놓기가 싫은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예전처럼 버티기에는 법이나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현대차처럼 ‘완패’를 피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일부 전문직에 국한하고 있는 파견을 아예 전면 허용하자는 요구를 하고 있다.

정부의 시각도 비정규직 사용의 판을 유지하면서 격차를 줄이자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차 판결 직후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간제 법처럼 원·하청 간 상생발전 측면에서 봤을 때 이번 판결이 작은 것보다 큰 것을 잃게 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정규직과의 임금이나 처우 격차를 줄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는 정부 개입보다 노사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법이 현대차와 기아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본 법리를 적용하면 대부분 업종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판을 깨뜨리는 판결이다. 복잡한 비정규직 대책이 필요없는 셈이다.

기업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일 수는 없다. ‘국가는 국민’이고 국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양질의 일자리다. 그래서 비정규직 고용은 나쁘다. 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쌓여간다고 국민이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차별없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국민 행복 시대 아니겠는가. ‘이대로’는 안된다.


박철응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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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소송에서 이겼다. 소송의 원고인 1100여명의 노동자들 모두 그동안의 근속을 인정받고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밀린 임금도 받아 마땅하다는 법적 타당성이 확인됐다.

소송만 4년, 불법파견에 맞서 싸워온 지 10년이다. 집회도 하고, 파업도 하고, 노숙 농성, 고공 농성, 단식 투쟁 등 안 해본 게 없다. 고민과 상처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 그 긴 시간을 견뎌온 끝에 마침내 정규직 전환 요구가 법적 정당성을 확인받았으니 당사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뻐할 일이다.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수많은 사업장에서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이루어지고 있는 불법파견에 제동이 걸리려나 기대도 된다.

하지만 이렇게 이번 판결이 제대로 의미를 가지려면 현대자동차가 법원의 판결을 수용하고 이행해야 한다. 만일 회사가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다면 노동자들은 다시 몇 년을 더 견뎌야 할지 모른다.

기쁨 나누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출처 : 경향DB)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 노동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11년 6월, 서울행정법원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고 황유미, 고 이숙영씨의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판결했고, 4년 만에 얻은 소중한 결실에 온 세상이 함께 기뻐했다.

그러나 피고 측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전자는 산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물론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에 항소할 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항소함으로써 피해 노동자 가족들의 고통은 그만큼 가중됐다. 산재 신청을 준비하던 다른 피해자들은 몇 년씩 싸우면서 견딜 자신이 없어 지레 포기하기도 했다.

공식 산재 인정을 계기로 삼성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관리를 점검하고 개선할 기회도 그만큼 미뤄졌다. 단적으로 2013년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로 젊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나서야 2000건 이상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됐다.

이런 점검이 2년 먼저 이루어졌더라면 어땠을까. 결국 3년을 더 기다린 끝에 지난 8월 고등법원에서도 산재 인정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 3년 동안 당사자들과 이 사회의 불필요한 고통과 피해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소송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고용노동부에서 불법파견이라고 판정을 했지만 현대자동차는 문제를 시정하지 않고 버텼다. 회사가 버틴 10년 동안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버티면서 싸웠다. 하지만 양쪽의 버티기는 질적으로 다르다. 회사는 명약관화한 불법행위를 해놓고도 책임지지 않고 버틴 것이고, 노동자들은 정당한 요구를 하면서도 생존을 위협당하면서 버텼다.

이번 판결은 노동자의 입장이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확인, 현대자동차의 버티기에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는 확인이다.

만일 현대자동차가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다면, 다음 판결까지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수많은 사업장들의 불법파견 관행 시정도 미뤄지게 된다.

결국 수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지 않도록 현대자동차는 법원의 불법파견 인정 판결을 받아들이고 하루속히 정규직 전환을 이행해야 한다.


공유정옥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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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영화 <카트> 촬영장엘 갔었다. 보조 출연으로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출연이 있었기 때문인데, 촬영신 배경은 11월. 그런데 12월에 촬영을 하다보니 출연자들의 옷이 문제였다. 온통 점퍼 차림이라 계절과 맞지 않다는 얘기였다. 추운 날씨에 겉옷을 벗었다 입었다를 반복했다. 늦은 저녁 시작된 촬영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다룬 이 영화는 곧 개봉된다. 11월에 어울리는 옷이 있겠지만 소위 거리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가장 빨리 입고 가장 늦게 벗는다. 계절을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두 해도 아니니 계절과 무관하게 날씨 따라 산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게다. 그러니 영화에서 다소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이들이 있다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오히려 그것이 일상의 리얼리티가 아닐까. 가을이라지만 벌써 겨울 문턱이다. 짧은 봄만큼이나 가을도 짧다. 반팔 티셔츠는 옷장 속에 들어가고 점퍼들이 하나둘 옷걸이 앞쪽에 걸린다. 겨울을 꿈꾸는 계절이라며 낭만적으로 말하기엔 현실은 사납기만 하다.

승리의 즐거움도 만끽할 새 없이 두꺼운 옷을 꺼내 입는 이들이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지난 18일 933명 그리고 19일 246명이 정규직 지위를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은 이들이다. 샴페인이 있을 자리에 쓴 소주가 놓였다. 짧은 승리 후 긴 기다림을 알고 있는 것일까. 10년 만의 승리지만 즐거움이 없어보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 지위를 확인받았지만 이제 겨우 1심이다. 현대차가 법망을 피해 보려 3년11개월을 끌어오던 재판이다. 대형 로펌을 동원한 법적 다툼을 했지만 법리적으로 진 싸움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또다시 항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항소를 접고 정규직으로 채용하란 것이 현대차의 결단의 몫인가. 기업의 사회적 책무란 점에서 사회적 지탄의 목소리를 현대차가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우선 확인해야 한다. 현대차가 그동안 벌여온 법치 능멸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 즉각적인 정규직 채용의 길을 열어야 한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황인화씨가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로 처우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온 18일 서울중앙지법 법정을 나서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 : 경향DB)


지난 18일 현대차는 한전 본사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낙찰받았다. 감정평가액보다 세 배 넘게 베팅한 것이다. 이를 두고 투자이익보다 개발이익이 못 미칠 것이기 때문에 승자의 저주가 따를 것이란 얘기가 한창이다. 현대차가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 매입을 통해 한국판 ‘아우토슈타트’를 꿈꾸고 설계하겠다는 것을 뭐라 탓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11조원에 육박하는 베팅금액이 누구의 돈인가는 따져야 할 문제다. 현대차는 비정규직 노동자 탄압의 살아있는 역사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쥐어짠 결과 오늘의 현대차를 구성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따라서 현대차가 지금 우선 해야 할 일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밀린 빚 청산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 그야말로 생때같은 빚 청산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오히려 신규채용으로 상황을 눙치려 들고 있다.

지난해 11월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 4명도 정규직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2심재판에 끌려다닐 뿐 신분의 어떤 변화도 없다. 또한 삼성전자서비스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1500여명이 사측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비롯해 기아차, 현대하이스코, 한국지엠도 심리가 진행 중이다.

“근로자의 3분의 1에 달하는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는 민생회복이 어렵다.” 이 말은 박근혜 정부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의 취임 일성이다. 민생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정답은 이미 나와있다.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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