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당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담 결과를 깎아내리고 있다.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일 “비핵화 문제는 거의 진전이 없고 우리 국방력은 상당히 약화시켜 버렸다”며 “(대북)정찰에서 우리 국방의 눈을 빼버리는 합의를 했다”고 말했다. 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비핵화 조치에서 종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최소한의 객관적 평가도 없이 회담 흠집내기에만 급급한 보수당의 태도가 참으로 유감스럽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평양선언은 한반도 평화를 획기적으로 앞당기는 역사적인 합의다. 김 위원장은 전 세계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 그런데 보수당은 공동선언문에서 핵 사찰과 핵 신고 리스트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폄훼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 세계가 환영한 마당에 한국의 보수당만 인색하게 평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남북 군사분야 합의에 대한 혹평은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번 합의는 사실상의 불가침선언으로, 남북 모두 지긋지긋한 전쟁 공포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이마저 남측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합의라고 주장했다. 서해 북방한계선 해상과 군사분계선 인근 공중에서 적대행위 금지 구역을 정하면서 남측이 과도하게 양보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국방부 설명에 따르면 이번 합의가 남측의 정찰기 운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오히려 북한이 유일한 정찰 수단인 무인기를 띄우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비무장지대 내 초소 철수도 이곳에서 대규모로 경작하는 북한이 더 불리하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비판만 한 것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다음주부터 속도를 낸다. 잘 풀리면 연내에 종전선언까지 한걸음에 갈 수도 있다. 평양선언이 순조롭게 이행되려면 수많은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한국당 등 보수당들이 진정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에 동의한다면 태도를 바꿔야 한다.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사실을 바탕으로 제대로 따져야 한다.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동의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결정적 시기에 초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당이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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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비핵화와 관련해 2021년 1월 북한 비핵화 완성을 목표로 이른 시일 안에 북·미관계 전환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자고 전격 제안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성명에서 평양 정상회담의 성공을 축하하면서 “미국은 북·미관계를 전환하기 위한 협상에 즉각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며 “리용호 외무상을 다음주 뉴욕에서 만나자고 초청했다”고 밝혔다. 또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조속히 만날 것을 북한에 요청했다”고 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빈과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에서 동시 협상을 벌이자고 제안한 것이다. 미국이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적극 평가하면서 즉각적인 북·미 협상 재개 방침을 제시한 것을 환영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일 백두산 천지 앞에서 맞잡은 손을 들어올리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정상회담 당일까지도 대북 제재 이행을 외치며 대북 압박에 나서던 미국이 태도를 바꾼 것은 평양공동선언에 담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평가한 결과이다. 나아가 모종의 비핵화 추가 계획을 전달받았고, 그 내용이 전향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폼페이오는 성명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과 IAEA 사찰단의 참관 아래 영변의 모든 시설을 영구히 해체하는 것을 포함,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재확인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IAEA 사찰단 참관’이란 표현은 평양공동선언에도, 공동 기자회견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이 줄곧 강조해온 검증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북한이 남한 측 혹은 별도 채널을 통해 미국에 전달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성립한다. ‘영변의 모든 시설’은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흑연감속로와 고농축우라늄 생산시설을 가리킨다. 북핵 생산시설을 국제사회의 검증하에 영구 폐기하겠다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강력히 뒷받침한다. 김 위원장이 결단하고, 그 진정성을 미국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이 또다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폼페이오 성명은 시사하고 있다. 북·미대화 재개를 위해 노심초사해온 문재인 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이룬 셈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빈 채널’에 대해 “2021년 1월까지 완성될 비핵화 과정을 통해 북·미관계를 변화시키는 한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협상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1년 1월은 김 위원장이 지난 5일 대북특사단에 제시한 ‘트럼프 임기 내’라는 비핵화 시간표와 일치한다. 이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물밑조율 과정에서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한 미국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 과제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완결짓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드러낸 것이다.

미국의 적극적인 자세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라도 미국은 협상에 집중력을 발휘할 것이고, 이는 협상 전체에도 긍정적일 것이다. 다시 신발끈을 조이고 나선 북·미가 이번에야말로 25년간의 협상 실패 역사를 떨치고 한반도 정세 대전환을 이뤄내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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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연내 서울 답방을 약속했다.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은 육·해·공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넘어 군사력 감축까지 포함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 비무장지대(DMZ) 내 GP(감시초소) 시범철수, 공동유해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즉각 실천에 옮길 조치에도 구체적으로 합의했다. 남북은 또 올 연말까지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고, 이산가족들이 상시로 만나는 상설면회소도 설치하기로 했다. 하나같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는 조치들이다. 이보다 더 큰 한가위 선물이 있을 수 없다.

무지개차에 탑승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8일 평양 순안국제공항을 출발해 백화원 초대소로 이동하며 북한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공식화이다. 분단 이래 북한 최고지도자의 첫 남한 방문이 성사되면 남북 정상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정상회담 정례화가 가시화된다. 한반도가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비핵화 의지를 담보하는 효과도 있다. 남측 내 반대 여론과 경호 우려를 뛰어넘은 김 위원장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 실질적으로 가장 큰 진전을 이룬 것은 군사분야 합의다. 남북이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고 모든 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기로 한 것은 사실상의 남북 간 종전합의이자 불가침선언이다. 남북은 이번 합의로 육·해·공 전 공간에서 우발적 충돌을 막는 완충지대를 설정했다. 이는 군사분계선 5㎞ 이내 지역과 서해 5도 및 북방한계선(NLL) 내 훈련 등을 금지함으로써 군사 긴장을 결정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이다. 군사분계선 1㎞ 이내 GP 11개를 각각 철수하고 JSA 내 지뢰제거, 초소 내 인원·화력 철수 등 합의도 한반도 평화를 추동할 실천적 조치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5년 만에 처음으로 군비축소가 시작되는 셈이다. 합의대로 진행된다면 북한의 핵무기에 의한 위협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로 인한 군사적 긴장까지 해소하는 단계로 진입한다. 이는 더 이상 남북 군사대결로 치르는 비용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된다.

남북 간 도로와 철도 연결은 한반도 경제지도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사업이 시작되면 남북 간 사회간접자본 건설 협력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국토교통부 등은 반드시 연내 착공을 성사시켜야 한다. 대북 제재와 무관한 남측 구간부터 공사한 뒤 북한과 연결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개소에 대해서는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상봉 정례화를 실현한 뒤 이산가족의 화상 상봉과 편지 교환까지 성공한다면 이산가족의 염원은 상당 부분 풀린다고 볼 수 있다. 다방면에 걸쳐 남북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담보하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 이번 평양공동선언의 의미다.

하지만 가야 할 길도 멀다.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설정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수두룩하다. 동·서해 경제·관광특구 조성과 한강하구 골재채취 등은 대북 제재가 해결되어야 추진이 가능하다.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에 앞서 남측 내 여론도 정리해야 한다. 후속 조치가 내실있게 진행돼야 남북관계가 진정한 의미의 불가역적 상태로 돌입한다. 각계각층의 지원과 협조가 필요하다. 특히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들은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남북 간 군사분야 합의를 두고 “북한은 달라지지 않는데 우리만 무장해제하는 꼴”이라며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을 향해 상호주의를 외치면서 정작 상호주의를 어기는 자가당착적 행태다. 뜨거운 여름을 나는 과정에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가 없을 리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 천둥과 벼락 안에서 한반도평화가 영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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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그 세부조치로 북한은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 또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전 세계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처음 육성으로 ‘비핵화’를 확약한 것은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가시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육성이 갖는 권위와 무게감을 감안하면 이만큼 확고한 비핵화 의지도 드물 터이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환영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한반도 전역의 전쟁 위험 해소 등을 담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합의서를 들어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한 것에 비하면 이번 9월 평양공동선언은 한발 더 들어가 실질적인 세부조치를 담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북·미 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비핵화 방안을 남북이 처음으로 합의한 것도 의미가 크다.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이 비핵화를 공식 의제로 삼고 실천 방안까지 도출함으로써 남북대화가 북·미관계를 이끌어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고 평가해도 어색하지 않다.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영구폐기하기로 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서 거쳐야 할 국제사회의 검증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전향적이다. 핵시설이 아닌 운반체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향후 북·미 협상이 진전될 경우 핵시설 검증도 수용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등 추가조치에 ‘미국의 상응조치’라는 단서가 붙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 이후 후속협상 과정에서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북한이 조건 없이 나서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미국과의 협상에서나 사용할 카드를 남북대화에서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두 정상이) 공동선언 내용 외에도 많은 논의를 했다”고 밝힌 것을 보면 이번에 공개된 것 외에 비핵화 조치가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정상이 이틀간에 걸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북·미대화에 탄력을 부여할 다양한 방안을 깊숙이 논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 약속도 비핵화와 관련지어 비상하게 음미해볼 대목이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비핵화와 별개로 생각하기 어렵다. 비핵화와 남북관계가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 현실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서울을 방문하기 전까지 비핵화와 관련한 신뢰를 쌓지 않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서울방문 제안을 수용함으로써 그렇게 하겠다는 각오를 비친 셈이다.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강력한 비핵화 실천 의지를 밝힘으로써 공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9월 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 트위터에서 “매우 흥분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 어떻게 정리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상응조치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같은 추가조치 용의를 분명히 밝힌 점,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확약한 것을 미국이 가볍게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음주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석달간 멈춰 있던 한반도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움직이는 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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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8일 평양에서 세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연다. 문 대통령의 방북은 대통령으로서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세번째다. 앞선 두 대통령의 방북에 비해 문 대통령의 이번 평양행 발걸음은 가볍지 않을 것이다. 2000년 정상회담 때는 핵 문제가 현안이 아니었고, 2007년에는 6자회담과 북·미 후속합의로 비핵화 해결의 가닥이 잡힌 터라 남북관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핵화 의제가 정상회담을 짓누르고 있다. 게다가 방북 첫날 유엔에서 대북 제재 이행을 논의하기 위한 안보리 긴급회의가 열리는 등 대외여건도 ‘맑음’이 아니다.

달리 보자면 문 대통령의 역할이 그만큼 더 커지고 무거워졌음을 방증한다. 남북대화가 북·미 협상에 종속돼온 과거와는 전혀 다른 구도하에서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가 정식 의제로 다뤄진다는 점이 그 증거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17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핵화 의제는 북·미 간에 다뤄지고 비핵화 문제를 우리가 꺼내는 데 대해 북·미도 달가워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비핵화가 매우 중요한 중심의제가 돼 있다”고 했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서도 핵 문제가 다뤄지긴 했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라는 포괄적인 방향을 확인하는 정도였을 뿐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협상이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5월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비핵화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깊숙한 논의가 오간다 해도 합의문에 명시적으로 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이를 북·미 협상의 담판 카드로 남겨두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김 위원장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비핵화에 조속히 나설 것을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천명하는 장(場)으로 이번 정상회담을 활용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일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에 자신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국제사회가 의심하고 있는 것에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풍계리 핵실험장 및 동창리 미사일 발사 실험장 폐기 등 선제적 조치들이 저평가되고 있음을 가리킨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을 국제사회의 대북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답보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대담한 조치를 기대한다.

군사적 긴장완화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지난 13~14일 군사 실무회담에서 의견접근이 이뤄진 비무장지대 감시초소 철수와 공동유해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등은 물론 입장 차가 있는 서해 평화수역 조성도 정상 간의 담판으로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 군사적 긴장완화는 남북평화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뿐 아니라 북한이 안심하고 비핵화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든든한 배경이 될 것이다. 남북 경제협력 방안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한계가 있지만 경제공동체의 청사진을 그리는 수준으로는 얼마든지 협의가 가능하다. 남북경협이야말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 경제의 주요한 활로가 될 수 있음을 이번에 분명하게 증명할 필요가 있다.

보수세력들도 한반도 정세의 중대 분수령이 될 이번 회담의 무게를 감안해 대승적 태도로 지켜볼 것을 당부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 정치권을 중심으로 “김정은 입맛에 맞게 꾸려진 방북단”(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이라는 비아냥이 나도는 것은 유감스럽다. 초당적 지지는 못할망정 분명한 성과조차 폄훼하는 식의 정치공세는 자제해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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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20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대북 제재 위반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대북 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미국 쪽과 긴밀한 협의하에서 진행 중”이라고 했다. 김 대변인은 “연락사무소 설치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사업이며, 남북 간 상시적인 소통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고 했다.

대북 제재 이유가 비핵화를 앞당기기 위한 것이며, 연락사무소 설치도 동일한 목적이기 때문에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우리 정부의 활동과 편의를 위한 목적에만 사무소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며 북한에 경제적 이익을 주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남북연락사무소는 4·27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이고 그 내용이 6·12 북·미 정상회담 합의에도 포괄적으로 계승돼 있다”며 “제재 위반으로 보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행정부 고위 관료가 ‘남북연락사무소 개소가 대북 제재 위반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는 한 국내언론의 보도에 대해 청와대가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이미 넉달 전 판문점선언에서 합의된 사항인 데다 북측과의 협의를 거쳐 개소식 날짜와 운영방안 등이 거의 타결된 이 시점에 청와대가 대북 제재 위반이 아니라는 점을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청와대의 설명 외에 추가로 강조돼야 할 점이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2375호 27항은 대북 제재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른 외교활동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제법적으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는 주권국가의 외교활동에 해당된다. 따라서 사무소 설치·운영에 필요한 유류·발전시설 공급 등 외교활동에 필요한 행위도 유엔의 제재에 저촉되지 않으며 제재 예외를 인정받아야 할 사항도 아니다. 미국의 독자제재도 안보리의 제재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미측 인사가 그런 말을 했다면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는 남북관계 발전을 비핵화의 장애물로 간주하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 문제 당사국이자 동맹국을 불신하고,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이 비핵화 이전까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고 대북 압박만 해야 한다는 건지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이런 시각을 가진 미국 내 관료들이 한·미 공조를 균열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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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벽(窮僻)한 국가에서 온 일행들은 싱가포르의 작은 섬 ‘센토사’에 여장을 채 풀기도 전 회담이 끝나자 흑기사로 나선 중국이 보내준 전세기를 타고 곧장 돌아갔다.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를 뜻하는 센토사에서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은 그렇게 ‘담백하게’ 끝났다. 68년 묵은 적대적 감정은 잠시 뒤로한 채 양쪽 긴 회랑(回廊)을 걸어 나온 두 정상은 서로의 선의(善意)를 직접 확인하려 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은 아니었다”며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했다. ‘늙다리 미치광이’에게 밀리지 않으려는 젊은 독재자의 결기로 읽혔다.

북·미관계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언제 그런 일들이 있었나 싶다. 북·미 정상회담은 마치 흑백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북한을 드론 영상으로 보여주려는 듯했다. 셀카를 찍고,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김 위원장을 보면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일이 더는 없을 듯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전날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정말로 멋진 방문이었다"며 회담 성과를 높이 자평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게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정말로 멋진 방문을 마치고 싱가포르에서 귀국하는 길"이라며 "북한 비핵화에 대해 위대한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억류됐던) 인질들은 집으로 돌아왔고, 우리의 위대한 영웅의 유해를 가족 품에 돌아가도록 할 것"이라며 "미사일 발사도 없고, (핵·미사일) 연구도 없고, (핵·미사일) 현장은 문을 닫을 것"이라고 강조했다.[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강한 힘을 신뢰’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주고받은 언어는 공동성명 이상이었다. 겉으로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그래서 각주(脚註)가 필요한 A4 두 장 분량의 짧은 문서이긴 해도 그것은 보다 복잡한 연관 속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쏟아낸 발언에서 북·미 양국이 앞으로 보여줄 행동 대 행동을 준비하고 있으리라고 능히 짐작되었다. 평양과 워싱턴은 이제 평화와 비핵화 그리고 번영의 구조물을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일까.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을 공동성명 맨 앞에 두었다. 관계 정상화의 시작을 알리는 닻이 올라간 것이다. 당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해체(CVID)’는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CD)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로 둔갑했다. 합의문에 CVID가 없다는 기자 질문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CD가 곧 CVID’라고 일갈(一喝)했다. 그러면서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져야만 제재 완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뒤늦게 복선을 까는 듯이 언급했다.

북한 역시 노동신문을 통해 미국이 진정한 신뢰구축 조처를 취할 경우 상응하게 추가적인 선의의 조처들을 취해 나갈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양국 지도자가 비핵화를 이룩해 나가는 과정에서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대하여 인식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좋게 보면 타협이고, 나쁘게 보면 야합이다.

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엄청난 비용이 드는 도발적인 전쟁연습’이라고 규정한 뒤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전쟁연습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중단 의사를 밝혔다. 동맹의 지도자가 한·미 군사훈련을 두고 ‘도발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우발적이긴 해도 이런 기조라면 당분간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는 잊고 지내도 될 듯싶다.

그럼에도 무조건 아멘을 외칠 수는 없는 일. 목사의 기도와 설교가 울림으로 다가올 때만 아멘을 외쳐야 하듯, 비핵화의 진정성을 느끼고 상응하는 보상이 실제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아멘을 외쳐야 옳다. 그렇다면 주고받을 ‘비핵화 레시피’라는 게 재봉틀로 한 번에 박을 것들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야 하는 정치(精緻)한 작업의 결과인 셈이다.

16년 전 6월, 우리는 붉은 전설에 열광했다. 광장으로, 호프집으로 달려가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지금 이 땅에서는 평화의 목소리가 소리 없이 퍼져나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남북이 어떻게 살든 공동 번영하며 평화롭게 지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비핵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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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온몸으로 뛰고 있는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지난달 30일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도 있는 핵 재처리 연구 개발을 2020년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용후핵연료를 건식 재처리하여 이를 연료로 쓰는 고속로라는 원자로를 연구 개발하겠다는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은 1997년부터 20년간 6700억원의 혈세를 낭비했지만 경제성도 안전성도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를 실제 하려면 한·미 원자력협정상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한데, 원자력계가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여 연료로 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핵 확산 가능성이 있는 재처리로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 1층에서 완전한 비핵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이 담긴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뒤 맞잡은 손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판문점 _ 공동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공약하였고, 지난해 국회도 전문가와 국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조건으로 예산을 집행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과기정통부가 구성한 ‘재검토위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공개로 일관하였고, 공개토론회 한번 열리지 않았다. 반대의 목소리가 철저히 배제된 채 사업 추진 측의 해명만 거듭된 위원회가 어떻게 ‘재검토’를 할 수 있는가? 재검토위원회는 반대 측 패널에 대해서는 단 한 번만 질의·회신을 한 반면, 찬성 측 패널에 대해서는 4차례의 질의·회신을 했다. 찬성 측 패널에게 3차례 추가 질의를 할 때 반대 측 패널에게는 그런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전문가 의견 청취와 청문회도 찬성 측 패널에 대해서만 이루어졌고 그것도 비공개로 진행되어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른다. 당초 과기정통부는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검증에 활용한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보도자료를 냈으나 자료 공개는커녕 재검토위원회 진행 과정조차 알려진 바 없다. 과기정통부는 재검토위원회 보고서가 나온 다음에도 공개하지 않았다가 이를 강력하게 문제 삼자 겨우 공개하였다.

과기정통부가 내건 ‘객관적인 검토’가 되자면 찬반 양측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토론이 공개되었어야 했다. 그래야 재검토위원회가 내리는 결론의 타당성에 대해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사업 강행을 의도한 이름뿐인 재검토였기에 반대 측 패널은 재검토위원회 해체를 요구했지만 과기정통부는 반대 측 패널을 철저히 배제하였다. 이래서야 반대논리를 가진 집단이 어떻게 정부 공론화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하반기에 예상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도 신뢰할 수가 없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역시 시민들이 40년 이상 원전 홍보에만 길들여져 있고, 정보 비대칭으로 철저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를 미국이 허용할 수 없어 성공할 수 없는 사업인 데다 한반도 비핵화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또한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을 위해서는 원전보다 엄청나게 많은 방사능을 배출하는 재처리 시설과 최소한 10기 이상의 훨씬 위험한 고속로 원전을 지어야 하는데 어느 지역이 이런 핵 시설을 받아들일 것인가? 이처럼 한반도 비핵화와 신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겠다는 에너지 전환정책에 역행하는 연구 개발에 왜 혈세를 쏟아붓겠다는 것인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 모임 해바라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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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북부 핵실험장을 5월 중 폐쇄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북에 초청하겠다고 말했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9일 밝혔다. 북부 핵실험장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2006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6차례 핵실험이 이뤄진 북한 핵무력 개발의 핵심시설이다. 북한은 지난 2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는 한편 핵실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결정을 채택한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못 쓰게 된 것을 폐쇄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실험 시설보다 더 큰 두 개의 갱도가 더 있고 이는 아주 건재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언급은 남북정상회담 합의에서 비핵화의 내용이 빈약하다는 일각의 비판을 불식시키는 의미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북한이 정상회담 다음 날인 지난 28일 대내외 매체를 통해 ‘판문점선언’의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 것도 비핵화 의지를 가늠케 한다. 조선중앙통신은 “회담에서는 북남관계 문제와 조선반도(한반도) 평화보장 문제,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를 비롯하여 호상(상호)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의견들이 교환됐다”고 보도했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과 대내용 라디오 방송인 조선중앙방송도 선언 전문을 그대로 전달했다. 이는 ‘완전한 비핵화’가 김 위원장의 사적 약속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의지로 실천할 뜻이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선대 수령의 업적’이라고 해왔고, 지난해 11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만큼 핵무기의 폐기를 뜻하는 비핵화를 주민들에게 공표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정도라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평가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를 넘는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하고 확인할 과제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체제보장과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폐기 등 비핵화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와 함께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완성하면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이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한 것은 이런 예상을 뒷받침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30분 차이가 나는 남북의 표준시를 남측에 맞추겠다고 한 점도 평가할 대목이다. 행정적인 어려움과 비용이 따르는 표준시의 통일을 선제적으로 결정한 것은 남북 간 교류협력의 장애물을 제거하겠다는 결단으로 보인다.

보수세력들은 그럼에도 의구심을 품은 채 폄훼·왜곡하기에 바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남북 위장평화쇼”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조차 명기하지 못한 말의 성찬”이라고 했다. 한국당은 지난 27일 “노무현 정부의 10·4 남북공동선언에서 북한이 약속했던 비핵화보다도 오히려 후퇴한 수준”이라고 논평했지만 아예 사실과도 다르다. 10·4 공동선언에는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돼 있을 뿐 ‘비핵화’란 단어가 없다. 6월 지방선거 국면이 본격화되면 한국당의 사실 왜곡과 막말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거대한 전환흐름에서 소외될 것을 자처하는 딱한 모습이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판문점선언의 실질적인 이행을 위해 국회 비준을 추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장정에 북한은 돌아갈 다리마저 불사르겠다는 각오로 나섰다. 이제 우리 정치권이 화답할 차례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정쟁으로 실종시키는 일이 또다시 있어서는 안된다. 판문점선언은 국회 비준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적 합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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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7월 일본에서 김수용 김일성종합대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나진·선봉 지대 투자유치단의 일원인 그는 겸손하고 예의바른 신사였다. 처음 말을 걸었을 때의 긴장감이 곧 사라진 것도 그런 성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대화할수록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종류의 사람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경계심을 완전히 풀어 버린 어느 순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그가 느닷없이 호통을 친 것이다. 그리고 나를 한참 닦아세웠다. 갑작스러운 분노의 격발, 착해 보이는 얼굴에 뚜렷이 새겨진 살기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다음부터는 말을 붙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고위급회담 종료를 앞두고 공동보도문을 교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리선권 북측 대표가 버럭 했다는 소식에 22년 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회담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회담을 마치고 공개 발언을 하는 자리에서 리선권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불쑥 목청을 높여 남측을 비판했다. 김수용의 뇌관을 건드린 것이 있었던 것처럼 리선권에게도 그게 있었다. 바로 비핵화다.

남북대화가 시작되자 국내 보수세력과 미국은 한목소리로 비핵화하지 않으면 대화는 소용없는 일이라며 비핵화부터 하라고 몰아붙였다. 비핵화가 북한에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비핵화는 핵보유국이라고 명시한 북한 헌법, 경제·핵 병진을 당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채택한 당규약, 핵보유를 최대 성과라고 한 7차 당대회 결의를 폐기하는 일이다. 할아버지·아버지도 해내지 못한 김정은의 역사적 대업이 사기였다고 고백하는 일이다. 60년 만에 이룬 염원을 저버리고, 체제 안전을 포기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북한이 핵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김정은이 지난해 8월 당중앙위원회에서 보고한 내용을 북한은 이렇게 전했다. “우리의 핵무기가 우리 인민의 피어린 투쟁이 안아온 고귀한 결실이며…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을 믿음직하게 담보하는 위력한 억제력으로, 인류에게 참혹한 재앙을 들씌우려는 폭제의 핵구름을 몰아내고 인민들이 맑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 자주적인 행복한 삶을 누려갈 수 있게 하는 정의의 보검이라는 데 대하여 엄숙히 천명하시였다.” 핵이 가져올 미래를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한 나라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묻지마 비핵화? 지금이라도 깨끗이 포기하는 게 좋다.

묻지마 비핵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표현으로서의 비핵화다. 현실을 반영하지도 바꾸지도 못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과시하기 위해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비핵화 이데올로기다. 다른 하나는 정치 공세로서의 비핵화다.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적을 골탕 먹이기 위해 비핵화를 다그치는 것이다. 비핵화 실용주의다. 어느 것이든 비핵화에 도움 되지 않는다.

북한을 남북대화로 나오게 만든 직접 요인이 무엇일 것 같은가?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다. 북한은 군사훈련에 관한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북한의 관점에서 훈련을 연기할 2~3월과 훈련을 재개할 4~5월은 완전히 다른 시공간이다. 이 차이는 하나의 세상을 닫고 다른 세상을 여는 것만큼 결정적이다. 4월 훈련을 재개하는 순간 2~3월의 대화 국면은 찰나의 불꽃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걸 바라지 않는다면 2~3월의 공간을 확장해야 한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적어도 9월까지 훈련이 중단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내비쳤다. 훈련을 중단하면 핵 실험·미사일 발사 유예는 물론 핵동결 합의도 가능할지 모른다.

비핵화의 문턱을 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북한은 자기만의 한계선을 그어놓고 누구든 선을 넘으면 예고 없이 물어버린다. 남북대화가 진행 중인데도 “비핵화는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을뻐꾸기 같은 수작”을 한다고 험담했다. 북한 사람의 버럭 성질은 개인적 성격이라기보다 북한 체제의 특질이다. 북측을 만나게 됐으니 비핵화를 우선 따지라는 건 망치를 손에 쥐게 되었으니 불발탄을 두드려 보라고 재촉하는 것과 같다. 막대사탕을 문 아이를 보고 충치 생긴다며 사탕을 갑자기 뺏어보라. 감당할 부모가 없을 것이다. 현명한 부모라면 사탕을 뺏기 전에 입에 물릴 다른 것을 준비한다. 사탕만큼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줄 것이다.

진정 비핵화를 원한다면 북한 핵무장의 근거인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 그러려면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하고, 이를 위해 연합훈련 전면 중단은 물론 군축, 동맹의 변화, 주한미군 역할 전환, 북·미수교를 해야 한다. 이걸 준비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비핵화, 함부로 말하지 마라.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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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북한 외화벌이의 주력 품목인 석탄을 비롯해 철·철광석 등 주요 광물, 수산물의 수출이 전면 금지된다. 북한의 신규 해외 노동자 송출도 차단된다. 북한이 지난달 4일 첫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한 지 33일 만이다. 제재가 실행될 경우 북한으로서는 연간 10억달러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북한 연간 수출액의 3분의 1 규모라고 한다. 미국이 가장 강력한 제재 중 하나로 추진해왔던 북한으로의 원유 수출 금지는 제외됐지만, 지금껏 국제사회가 취한 대북 조치 가운데 가장 파급력이 크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이번 세대의 가장 혹독한 제재이자 북한 정권에 대한 단일 제재로서는 가장 광범위한 경제제재 패키지”라고 했다. 그만큼 국제사회 전체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북한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가 이번 결의에 동참했다는 사실은 두 나라도 인내의 한계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나란히 필리핀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6일 오후(현지시간) 마닐라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나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 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신규 대북제재 결의 이행 방안 등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국제사회 여론은 북한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 북한의 경거망동을 규탄하는 여론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 회원국 외교장관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데 엄중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 세계가 한목소리로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북한의 무모함을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군사적 모험은 한반도와 국제 평화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더 큰 제재와 압박을 불러들이는 자충수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대착오적 도발을 계속한다면 국제적 고립무원의 처지를 자초할 뿐이다. 북한은 군사적 강공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고 자기파괴적 상황만 만들어낼 뿐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핵과 미사일 개발을 다 끝낸 뒤 미국과의 담판으로 한몫 챙기겠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중국과 러시아조차 대북 제재에 동참할 정도로 국제사회 내 기류가 달라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북한은 최악의 상황을 맞기 전에 스스로 비핵화라는 현실적인 생존 방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이번에도 국제사회의 핵·미사일 포기 요구를 의례적인 수사일 뿐이라고 무시한다면 치명적인 오판이 될 것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요구에 응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만이 살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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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연설을 통해 새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핵과 전쟁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추구,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새로운 한반도 신경제지도, 일관성 있는 비정치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 등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5대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한반도 평화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는 쉬운 일부터 해야 한다며 추석 이산상봉,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 행위 상호 중단 등을 제안했다. 남북정상회담도 공식 제안했다. 문재인판 ‘베를린 선언’인 셈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은 새 정부의 한반도정책의 큰 방향과 원칙을 밝힌 점에서 무게를 갖는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한반도 정세가 엄중한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최대 당사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천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대해 분노와 실망감이 크지만, 그럴수록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대화가 절실하다. 위중한 정세를 고려하면 남북정상회담 제안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은 핵문제 등 모든 한반도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자리다. 열 수만 있다면 언제든 여는 것이 맞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당사자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종식시킬 수도 있는 결정권자이기도 하다.

독일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옛 베를린시청에서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밝히고 있다. 베를린 _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문 대통령의 구상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고려할 때 자칫 비현실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 평화로운 한반도는 가만히 기다린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직접 당사국의 문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북한은 물론 국제사회를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설득하고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구상이 빈말과 겉치레가 아니라면, 지속적이고 집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 대통령에 앞서 역대 대통령들도 독일에서 대북구상을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져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꽃을 피웠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은 남북 대결로 귀결되었다. 구상을 실천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은 대화를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긴장이 높아질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대화다. 북한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회복하려는 굳은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북한이라는 문도 열릴 것이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선언적 의미를 넘어 우리 모두의 실천 강령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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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는 상당 부분 북·미 간 문제다. 북·미 간 타협과 갈등으로 점철된 북핵 문제의 긴 역사가 잘 말해준다. 그런데도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목줄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중국이 쉽게 끝낼 수 있다며 중국에 떠넘겼다. 그런데 그건 미국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미국은 선제타격으로 북한을 무릎 꿇릴 수도 있고, 대북 경제 지원으로 북한 태도를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두 그게 전략적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오바마가 북핵 문제를 북·중 간의 문제로 바꿔치기하려 갖은 노력을 했음에도 실패한 이유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과 트럼프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김정은은 손을 뻗어 트럼프의 옷깃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 단계에 있다고 발표하자 트럼프는 “그럴 일 없을 것”이라고 즉각 반응했다. 그리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한국과 일본에 보내 북핵을 주요 위협으로 다룰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북·미가 신호를 주고받은 것은 미·중이 서로 책임전가하며 시간을 낭비한 것보다는 나아 보인다. 그러나 이건 두 거친 남자가 치명적 무기를 다루는 일이다. 김정은은 정말 ICBM을 발사하거나 6차 핵실험을 할지 모른다. 트럼프와 네오콘 못지않은 그의 주변 인물들도 어떤 카드를 꺼낼지 알 수 없다.

이런 정세에서는 종잇장 차이로도 험한 대결과 큰 거래라는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김정은·트럼프 간 교신이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협상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예측불가능성과 불확실성은 잘 알려져 있다. 안 그래도 불안정한 게 요즘 한반도 주변 정세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오른쪽)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예방하기에 앞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6년 한국 국방백서는 미국이 군사 우위를 지키는 가운데 중국, 러시아, 일본이 해·공군 중심의 군사력을 경쟁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2016년 1월 기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의 군사비 합계는 세계 군사비의 57.6%다. 동북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비를 쓰고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상대를 겨누는, 세계 최고의 중무장 지역이다. 이런 긴장 상태라도 대화와 교류가 활발하다면 위기감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 북·미 사이뿐 아니라 한·중, 한·일, 북·중, 중·일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은 깊은 불신과 적대감이다. 이런 상태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결정, 불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 되었다.

한반도와 주변에 지금 모자란 것은 군비, 무기, 적의가 아니다. 부족한 건 대화다. 급한 것도 대화다. 그렇다면 정당하다는 이유만으로 상대가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는 건 피해야 한다. 북한이 수용할 것 같지 않은 당위적 주장보다 북한이 원하고 한·미가 들어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 바로 한·미 연합훈련 일시 중단이다. 북한은 연합훈련을 일시 중단하면 핵실험도 일시 중단하겠다고 줄기차게 제안했지만 한·미는 일관되게 거부했다. 결과는 핵전력을 총동원한 더 강력한 훈련, 북핵 개발의 가속화, 한반도와 주변에 만연한 위험과 불안이다. 그럴수록 한국은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3각 협력체제에 깊숙이 끌려들어갔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훈련 일시 중단은 비핵화에 관한 북한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낡은 도그마를 깨는 선제적 조치다. 그건 북한을 대화의 마당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 문제와 북핵의 핵심에도 다가가게 해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 북핵은 평화의 부재가 낳은 것이다. 과감하게 군사 문제로 대화의 물꼬를 튼다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로도 진전시킬 수 있다. 미·중에 휘둘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수렁에 빠진 한반도 상황을 탈피하고 싶다면 한국이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군비통제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서울에 온 매티스는 북핵 문제에 관해 A부터 Z까지, 24시간 365일 긴밀히 소통하고, 3각 협력 및 연합훈련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더 강력하게 한국을 미국의 손안에 틀어쥐고, 북한과 중국에 맞서겠다는 말로 들린다. 다음 한국 정부가 너무 나서지 못하게 미리 쐐기를 박아 놓자는 것일 수도 있다.

김정은의 무모한 모험을 부추겨도 안되고, 트럼프의 변덕에 휘둘려도 안된다. 그러자면 선택해야 한다. 김정은·트럼프가 추는 지뢰밭 위의 탱고를 구경만 할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 운명의 주인으로서 나설 것인가.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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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임을출 | 경남대 극동문제연 연구교수



 

북한의 3차 핵실험이 끝난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멘붕’이다.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등 주변국들 내부에서는 대북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에 이어 한층 증강된 핵능력을 과시하면서 핵보유국의 자리에 성큼 다가섰다. 더구나 북한은 미국이 제재 강화 등 적대시정책을 지속할 경우 제2, 제3의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한 마당이다. 이 때문에 이제껏 해왔던 안이한 임기응변식 조치로는 상황관리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매우 신속하게, 그러면서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북한 핵실험 강행에 대한 국방부 발표 (경향신문DB)


북한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그간 ‘전략적 인내’ 운운하며 기존 대북 적대시정책을 유지해온 것에 대해 이제는 ‘말’로 해결할 단계가 지났다고 판단한 듯하다. 며칠 전 조선중앙통신은 “핵실험보다 더한 것도 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우리가 도달한 최종 결론이고, 이것은 민심의 요구”라며 “우리에게는 끝장을 볼 때까지 나가는 길밖에 다른 선택이란 없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따라서 지금 한국, 미국 등이 고려하고 있는 더 강력한 제재가 현재의 위기 상황을 완화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현 위기 성격은 이전과는 판이하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이제 핵보유국으로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미국과 담판 짓겠다는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이 단기간에 이뤄지기 힘든 것이라는 점은 북한도 잘 알고 있을 터이므로 최소한 북한 경제를 옥죄는 제재라도 완화되면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정책 변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로 봐서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귀담아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북한 정권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한 마당이어서 어느 나라 지도자도 먼저 나서 경제제재 완화는 물론 군사적 접근 일변도가 아닌 포용적 접근도 언급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할 경우 핵공갈의 위협에 굴복하는 모양새로 비칠 것이기 때문에 나라 안팎의 비난을 감수하고 이런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이는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안보를 중시해온 박 당선인의 스타일을 볼 때도 당장 회유책을 꺼내 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평화적 해법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단기적인 강경대응에 몰두하기보다는 ‘핵무기와 북한 정권은 운명공동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침착하게 비핵화와 평화체제 및 경제협력 증진 등을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적 패키지 딜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더 강력한 제재 방식을 고민하기보다는 북한의 핵도박을 제어할 수 있는 제재가 아닌 다른 수단도 동시에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패키지 딜 구상도 너무 뻔한 접근을 하기보다는 북한 지도부의 허를 찌르는 새로운 접근이라면 더욱 좋겠다. 설익은 견해이기는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 핵실험을 반대하는 강력한 목소리가 나오도록 명분을 제공할 수 있는 제안들이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강조하고 있는 주민생활 향상에 초점을 맞추면서 개방효과가 큰 경제협력의 추진도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제재의 수준과 북한의 미사일, 핵능력 증강 수준이 비례해왔다는 점, 국제사회의 제재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만 가중시켜온 점 등도 세심하게 감안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우선 강력한 억제력을 토대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핵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북·미 양자대화의 조기 성사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실질적인 주도권을 갖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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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