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7월 일본에서 김수용 김일성종합대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나진·선봉 지대 투자유치단의 일원인 그는 겸손하고 예의바른 신사였다. 처음 말을 걸었을 때의 긴장감이 곧 사라진 것도 그런 성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대화할수록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종류의 사람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경계심을 완전히 풀어 버린 어느 순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그가 느닷없이 호통을 친 것이다. 그리고 나를 한참 닦아세웠다. 갑작스러운 분노의 격발, 착해 보이는 얼굴에 뚜렷이 새겨진 살기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다음부터는 말을 붙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고위급회담 종료를 앞두고 공동보도문을 교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리선권 북측 대표가 버럭 했다는 소식에 22년 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회담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회담을 마치고 공개 발언을 하는 자리에서 리선권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불쑥 목청을 높여 남측을 비판했다. 김수용의 뇌관을 건드린 것이 있었던 것처럼 리선권에게도 그게 있었다. 바로 비핵화다.

남북대화가 시작되자 국내 보수세력과 미국은 한목소리로 비핵화하지 않으면 대화는 소용없는 일이라며 비핵화부터 하라고 몰아붙였다. 비핵화가 북한에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비핵화는 핵보유국이라고 명시한 북한 헌법, 경제·핵 병진을 당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채택한 당규약, 핵보유를 최대 성과라고 한 7차 당대회 결의를 폐기하는 일이다. 할아버지·아버지도 해내지 못한 김정은의 역사적 대업이 사기였다고 고백하는 일이다. 60년 만에 이룬 염원을 저버리고, 체제 안전을 포기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북한이 핵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김정은이 지난해 8월 당중앙위원회에서 보고한 내용을 북한은 이렇게 전했다. “우리의 핵무기가 우리 인민의 피어린 투쟁이 안아온 고귀한 결실이며…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을 믿음직하게 담보하는 위력한 억제력으로, 인류에게 참혹한 재앙을 들씌우려는 폭제의 핵구름을 몰아내고 인민들이 맑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 자주적인 행복한 삶을 누려갈 수 있게 하는 정의의 보검이라는 데 대하여 엄숙히 천명하시였다.” 핵이 가져올 미래를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한 나라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묻지마 비핵화? 지금이라도 깨끗이 포기하는 게 좋다.

묻지마 비핵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표현으로서의 비핵화다. 현실을 반영하지도 바꾸지도 못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과시하기 위해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비핵화 이데올로기다. 다른 하나는 정치 공세로서의 비핵화다.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적을 골탕 먹이기 위해 비핵화를 다그치는 것이다. 비핵화 실용주의다. 어느 것이든 비핵화에 도움 되지 않는다.

북한을 남북대화로 나오게 만든 직접 요인이 무엇일 것 같은가?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다. 북한은 군사훈련에 관한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북한의 관점에서 훈련을 연기할 2~3월과 훈련을 재개할 4~5월은 완전히 다른 시공간이다. 이 차이는 하나의 세상을 닫고 다른 세상을 여는 것만큼 결정적이다. 4월 훈련을 재개하는 순간 2~3월의 대화 국면은 찰나의 불꽃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걸 바라지 않는다면 2~3월의 공간을 확장해야 한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적어도 9월까지 훈련이 중단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내비쳤다. 훈련을 중단하면 핵 실험·미사일 발사 유예는 물론 핵동결 합의도 가능할지 모른다.

비핵화의 문턱을 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북한은 자기만의 한계선을 그어놓고 누구든 선을 넘으면 예고 없이 물어버린다. 남북대화가 진행 중인데도 “비핵화는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을뻐꾸기 같은 수작”을 한다고 험담했다. 북한 사람의 버럭 성질은 개인적 성격이라기보다 북한 체제의 특질이다. 북측을 만나게 됐으니 비핵화를 우선 따지라는 건 망치를 손에 쥐게 되었으니 불발탄을 두드려 보라고 재촉하는 것과 같다. 막대사탕을 문 아이를 보고 충치 생긴다며 사탕을 갑자기 뺏어보라. 감당할 부모가 없을 것이다. 현명한 부모라면 사탕을 뺏기 전에 입에 물릴 다른 것을 준비한다. 사탕만큼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줄 것이다.

진정 비핵화를 원한다면 북한 핵무장의 근거인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 그러려면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하고, 이를 위해 연합훈련 전면 중단은 물론 군축, 동맹의 변화, 주한미군 역할 전환, 북·미수교를 해야 한다. 이걸 준비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비핵화, 함부로 말하지 마라.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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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북한 외화벌이의 주력 품목인 석탄을 비롯해 철·철광석 등 주요 광물, 수산물의 수출이 전면 금지된다. 북한의 신규 해외 노동자 송출도 차단된다. 북한이 지난달 4일 첫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한 지 33일 만이다. 제재가 실행될 경우 북한으로서는 연간 10억달러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북한 연간 수출액의 3분의 1 규모라고 한다. 미국이 가장 강력한 제재 중 하나로 추진해왔던 북한으로의 원유 수출 금지는 제외됐지만, 지금껏 국제사회가 취한 대북 조치 가운데 가장 파급력이 크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이번 세대의 가장 혹독한 제재이자 북한 정권에 대한 단일 제재로서는 가장 광범위한 경제제재 패키지”라고 했다. 그만큼 국제사회 전체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북한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가 이번 결의에 동참했다는 사실은 두 나라도 인내의 한계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나란히 필리핀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6일 오후(현지시간) 마닐라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나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 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신규 대북제재 결의 이행 방안 등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국제사회 여론은 북한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 북한의 경거망동을 규탄하는 여론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 회원국 외교장관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데 엄중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 세계가 한목소리로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북한의 무모함을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군사적 모험은 한반도와 국제 평화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더 큰 제재와 압박을 불러들이는 자충수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대착오적 도발을 계속한다면 국제적 고립무원의 처지를 자초할 뿐이다. 북한은 군사적 강공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고 자기파괴적 상황만 만들어낼 뿐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핵과 미사일 개발을 다 끝낸 뒤 미국과의 담판으로 한몫 챙기겠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중국과 러시아조차 대북 제재에 동참할 정도로 국제사회 내 기류가 달라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북한은 최악의 상황을 맞기 전에 스스로 비핵화라는 현실적인 생존 방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이번에도 국제사회의 핵·미사일 포기 요구를 의례적인 수사일 뿐이라고 무시한다면 치명적인 오판이 될 것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요구에 응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만이 살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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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연설을 통해 새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핵과 전쟁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추구,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새로운 한반도 신경제지도, 일관성 있는 비정치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 등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5대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한반도 평화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는 쉬운 일부터 해야 한다며 추석 이산상봉,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 행위 상호 중단 등을 제안했다. 남북정상회담도 공식 제안했다. 문재인판 ‘베를린 선언’인 셈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은 새 정부의 한반도정책의 큰 방향과 원칙을 밝힌 점에서 무게를 갖는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한반도 정세가 엄중한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최대 당사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천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대해 분노와 실망감이 크지만, 그럴수록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대화가 절실하다. 위중한 정세를 고려하면 남북정상회담 제안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은 핵문제 등 모든 한반도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자리다. 열 수만 있다면 언제든 여는 것이 맞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당사자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종식시킬 수도 있는 결정권자이기도 하다.

독일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옛 베를린시청에서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밝히고 있다. 베를린 _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문 대통령의 구상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고려할 때 자칫 비현실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 평화로운 한반도는 가만히 기다린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직접 당사국의 문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북한은 물론 국제사회를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설득하고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구상이 빈말과 겉치레가 아니라면, 지속적이고 집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 대통령에 앞서 역대 대통령들도 독일에서 대북구상을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져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꽃을 피웠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은 남북 대결로 귀결되었다. 구상을 실천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은 대화를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긴장이 높아질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대화다. 북한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회복하려는 굳은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북한이라는 문도 열릴 것이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선언적 의미를 넘어 우리 모두의 실천 강령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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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는 상당 부분 북·미 간 문제다. 북·미 간 타협과 갈등으로 점철된 북핵 문제의 긴 역사가 잘 말해준다. 그런데도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목줄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중국이 쉽게 끝낼 수 있다며 중국에 떠넘겼다. 그런데 그건 미국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미국은 선제타격으로 북한을 무릎 꿇릴 수도 있고, 대북 경제 지원으로 북한 태도를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두 그게 전략적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오바마가 북핵 문제를 북·중 간의 문제로 바꿔치기하려 갖은 노력을 했음에도 실패한 이유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과 트럼프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김정은은 손을 뻗어 트럼프의 옷깃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 단계에 있다고 발표하자 트럼프는 “그럴 일 없을 것”이라고 즉각 반응했다. 그리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한국과 일본에 보내 북핵을 주요 위협으로 다룰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북·미가 신호를 주고받은 것은 미·중이 서로 책임전가하며 시간을 낭비한 것보다는 나아 보인다. 그러나 이건 두 거친 남자가 치명적 무기를 다루는 일이다. 김정은은 정말 ICBM을 발사하거나 6차 핵실험을 할지 모른다. 트럼프와 네오콘 못지않은 그의 주변 인물들도 어떤 카드를 꺼낼지 알 수 없다.

이런 정세에서는 종잇장 차이로도 험한 대결과 큰 거래라는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김정은·트럼프 간 교신이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협상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예측불가능성과 불확실성은 잘 알려져 있다. 안 그래도 불안정한 게 요즘 한반도 주변 정세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오른쪽)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예방하기에 앞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6년 한국 국방백서는 미국이 군사 우위를 지키는 가운데 중국, 러시아, 일본이 해·공군 중심의 군사력을 경쟁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2016년 1월 기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의 군사비 합계는 세계 군사비의 57.6%다. 동북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비를 쓰고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상대를 겨누는, 세계 최고의 중무장 지역이다. 이런 긴장 상태라도 대화와 교류가 활발하다면 위기감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 북·미 사이뿐 아니라 한·중, 한·일, 북·중, 중·일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은 깊은 불신과 적대감이다. 이런 상태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결정, 불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 되었다.

한반도와 주변에 지금 모자란 것은 군비, 무기, 적의가 아니다. 부족한 건 대화다. 급한 것도 대화다. 그렇다면 정당하다는 이유만으로 상대가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는 건 피해야 한다. 북한이 수용할 것 같지 않은 당위적 주장보다 북한이 원하고 한·미가 들어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 바로 한·미 연합훈련 일시 중단이다. 북한은 연합훈련을 일시 중단하면 핵실험도 일시 중단하겠다고 줄기차게 제안했지만 한·미는 일관되게 거부했다. 결과는 핵전력을 총동원한 더 강력한 훈련, 북핵 개발의 가속화, 한반도와 주변에 만연한 위험과 불안이다. 그럴수록 한국은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3각 협력체제에 깊숙이 끌려들어갔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훈련 일시 중단은 비핵화에 관한 북한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낡은 도그마를 깨는 선제적 조치다. 그건 북한을 대화의 마당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 문제와 북핵의 핵심에도 다가가게 해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 북핵은 평화의 부재가 낳은 것이다. 과감하게 군사 문제로 대화의 물꼬를 튼다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로도 진전시킬 수 있다. 미·중에 휘둘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수렁에 빠진 한반도 상황을 탈피하고 싶다면 한국이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군비통제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서울에 온 매티스는 북핵 문제에 관해 A부터 Z까지, 24시간 365일 긴밀히 소통하고, 3각 협력 및 연합훈련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더 강력하게 한국을 미국의 손안에 틀어쥐고, 북한과 중국에 맞서겠다는 말로 들린다. 다음 한국 정부가 너무 나서지 못하게 미리 쐐기를 박아 놓자는 것일 수도 있다.

김정은의 무모한 모험을 부추겨도 안되고, 트럼프의 변덕에 휘둘려도 안된다. 그러자면 선택해야 한다. 김정은·트럼프가 추는 지뢰밭 위의 탱고를 구경만 할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 운명의 주인으로서 나설 것인가.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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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출 | 경남대 극동문제연 연구교수



 

북한의 3차 핵실험이 끝난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멘붕’이다.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등 주변국들 내부에서는 대북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에 이어 한층 증강된 핵능력을 과시하면서 핵보유국의 자리에 성큼 다가섰다. 더구나 북한은 미국이 제재 강화 등 적대시정책을 지속할 경우 제2, 제3의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한 마당이다. 이 때문에 이제껏 해왔던 안이한 임기응변식 조치로는 상황관리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매우 신속하게, 그러면서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북한 핵실험 강행에 대한 국방부 발표 (경향신문DB)


북한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그간 ‘전략적 인내’ 운운하며 기존 대북 적대시정책을 유지해온 것에 대해 이제는 ‘말’로 해결할 단계가 지났다고 판단한 듯하다. 며칠 전 조선중앙통신은 “핵실험보다 더한 것도 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우리가 도달한 최종 결론이고, 이것은 민심의 요구”라며 “우리에게는 끝장을 볼 때까지 나가는 길밖에 다른 선택이란 없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따라서 지금 한국, 미국 등이 고려하고 있는 더 강력한 제재가 현재의 위기 상황을 완화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현 위기 성격은 이전과는 판이하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이제 핵보유국으로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미국과 담판 짓겠다는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이 단기간에 이뤄지기 힘든 것이라는 점은 북한도 잘 알고 있을 터이므로 최소한 북한 경제를 옥죄는 제재라도 완화되면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정책 변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로 봐서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귀담아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북한 정권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한 마당이어서 어느 나라 지도자도 먼저 나서 경제제재 완화는 물론 군사적 접근 일변도가 아닌 포용적 접근도 언급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할 경우 핵공갈의 위협에 굴복하는 모양새로 비칠 것이기 때문에 나라 안팎의 비난을 감수하고 이런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이는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안보를 중시해온 박 당선인의 스타일을 볼 때도 당장 회유책을 꺼내 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평화적 해법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단기적인 강경대응에 몰두하기보다는 ‘핵무기와 북한 정권은 운명공동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침착하게 비핵화와 평화체제 및 경제협력 증진 등을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적 패키지 딜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더 강력한 제재 방식을 고민하기보다는 북한의 핵도박을 제어할 수 있는 제재가 아닌 다른 수단도 동시에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패키지 딜 구상도 너무 뻔한 접근을 하기보다는 북한 지도부의 허를 찌르는 새로운 접근이라면 더욱 좋겠다. 설익은 견해이기는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 핵실험을 반대하는 강력한 목소리가 나오도록 명분을 제공할 수 있는 제안들이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강조하고 있는 주민생활 향상에 초점을 맞추면서 개방효과가 큰 경제협력의 추진도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제재의 수준과 북한의 미사일, 핵능력 증강 수준이 비례해왔다는 점, 국제사회의 제재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만 가중시켜온 점 등도 세심하게 감안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우선 강력한 억제력을 토대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핵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북·미 양자대화의 조기 성사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실질적인 주도권을 갖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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