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는 처음 가십니까? 골짜기라예, 산골짜기.”

KTX 김천 구미역에서 나를 태운 택시 기사는 비닐하우스들이 늘어선 좁은 마을 길을 달리며 그렇게 말했다. 참외 수확철이 지나 텅 빈 비닐하우스의 겉면에는 여기저기 붉은 래커로 ‘사드 반대’라고 쓰여 있었다. 

가을하늘이 높고 푸르던 토요일 오후, 동행 하나 없이 숨어들 듯 소성리를 찾아 나선 이유는 내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해서였다.

6차 핵실험을 한 지 채 2주일도 안돼 불꽃놀이하듯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쏘아올리는 북한 앞에서, 사드의 전쟁 억지력이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 같은 것들은 말 많은 페이스북 담벼락에서조차 뜸해졌다.

사드 발사대 4기가 추가 배치되는 성주군 소성리 마을 입구를 6일 주민들이 농기계로 막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 반대쪽에 사는 브라질인 친구가 “탈출 계획이라도 세워 놓았냐”고 걱정스레 보내온 메시지에 “괜찮아, 우린 이런 종류의 불안을 머리 밑에 베고 살아온 지 60년이 넘었어”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했지만,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에 주둔하지 않은 미국 전략자산으로 북한을 공격하는 것은 국제법상 남한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발언(‘미국의 소리(VOA)’ 8월25일 보도)을 공공연히 하는 상황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식으로 마음이 한가롭지는 않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드 배치는) 현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문을 발표했을 때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 사드는 어느새 설령 그것이 위약효과라 하더라도 나의 불안을 다스려줄 하나의 방패막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드 4기가 소성리에 추가 배치되던 6일 밤부터 7일 아침까지 18시간 동안 400여명의 주민과 반대자들이 8000여명 경찰 병력과 대치하다가 한 사람씩 사지가 들려 나가는 장면을 비춰주는 TV뉴스 화면을 지켜보며 나는 누구의 희생 위에 내가 발을 뻗고 누워 잠을 청하는가를 불편한 마음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성리의 그 밤은 촛불 이후의 강정이었고, 밀양이었다. 마을 입구에 이르자 택시 기사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며 차를 세웠다. 마을회관 입구를 가설무대 역할을 하는 큰 트럭 한 대가 막고 서 있었다. 트럭을 빙 둘러 돌아가니, 집회가 진행 중이었다.

무대 아래 맨 앞쪽에 앉은 이들은 소성리 주민인 할머니들. 500여명의 참석자들 중에는 세월호의 상징으로 익숙한 노란 리본 곁에 파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평화를 뜻하는 것이라 했다. 집회가 진행되는 와중에 휴대전화 창에 ‘21일, 미국 뉴욕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라는 뉴스 속보가 떴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소성리 사람들의 절절한 구호가 닿기에 뉴욕은 너무 멀었다. 집회가 끝난 뒤,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에게 안부 인사를 여쭈었다. 사드 배치 당일의 진압 이후 넋이 나가 있었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하니까 몸을 추스르고 나왔다고 했다.

“7일 이후로 마을 사람들끼리는 쳐다보기만 하면 울어예. 어떤 할매는 자다가 경찰이 쳐들어오는 꿈에 놀라서 맨발로 마을회관으로 뛰쳐나왔는데, 시간을 보이 새벽 4시더랍니다. 다들 수면제 안 묵고는 잠을 못 자요.”

밤낮없이 사드가 들어오는지, 경찰이 들어오는지 보초 서기에 바쁜 나날을 살다보니 내버려둔 밭에는 잡초가 그득하고, 추수를 해야 할 벼는 시들시들하다. 2년 전만 했어도 추석에 내려올 자식들에게 들려 보낼 밑반찬 만드는 일로 집집이 바빴을 시기인데, 지금은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이 마을회관 앞에 모여 미사일방어(MD)체계 공부를 한다. 환경영향평가가 없어도, 이들의 삶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웃음기 걷힌 그들의 얼굴이 증명한다.

좌든 우든 안보를 위해 사드 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눈 돌리지 말아야 한다. 나의 안녕을 위해 이 순간 대신 전쟁을 치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여든 두 살 할머니가 새댁 소리를 듣는 작은 마을의 100여명 주민들이 동북아 냉전이라는 태산 같은 짐에 눌려 밤잠조차 편히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서울역에서 KTX로 두 시간이면 닿는 곳. 그곳에 소성리가 있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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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문제로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토지를 포함한 환경은 공공재로서 이것을 이용해 내가 이익을 보려 하면 불특정 다수가 손해를 보게 되며, 반대로 나의 헌신으로 인한 환경 개선은 불특정 다수의 이익으로 보상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얻는 이익보다 불특정 다수가 받는 총손해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크다는 것이며, 반대로 불특정 다수가 얻는 총이익은 내가 감내해야만 하는 손해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엔이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핵심인 ‘생태계서비스’ 개념이기도 하다.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으로 특정 기업이 얻은 이익은 수많은 주민이 짊어져야 할 총손해에 비해 형편없이 미미한 것이며, 4대강 사업으로 기업이 얻은 이익에 비해 우리 국민이 평생을 두고 지불해야만 하는 손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반대로 벌거벗은 선산을 힘들게 녹화한 비용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이 얻는 총이익에 비해 역시 미미한 수준이다. 여기에는 또 다른 함정이 있는데, 환경을 오염시킨 악덕기업은 막대한 돈을 벌었다는 것이며, 선산을 복원한 종손은 이익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해 선진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국민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정부다운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참관 등을 위해 방한한 미국 새뮤얼 그리브스 미사일방어청장(왼쪽부터), 존 하이튼 전략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 등이 지난 22일 경북 성주 사드기지를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발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이 개발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뜻 당연하다. 그러나 현대경제학에서 계산하지 못하는 환경비용은 고스란히 개인들이 메워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부자에게 쥐여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각종 개발행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환경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만든 장치로 엄격할수록 개발과 관계없는 주변 개인의 손해는 적어진다. 국민이 고르게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책무를 지닌 대한민국 정부가 유독 자연환경 분야만큼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고 있다. 생선을 맡긴 사람은 이미 고양이가 취할 행동을 뻔히 알고 있다. 현재의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준 꼴이다. 현재 이 제도는 은행이 대출 신청자에게 본인의 신용평가를 하라는 것이며, 판사가 재판을 받는 자에게 자신의 죄를 목록별로 정리해서 달라는 격이다. 은행이 파산하고 범죄자가 사회를 활보하게 되는 것이 뻔한 것 아닌가?

환경영향평가는 해당 개발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의 기관이 진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당연한 것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가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환경영향평가를 개발하고자 하는 자가 작성하는 우스꽝스러운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승용차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양은 극히 미미하여 없다고 계산하면 그만이고, 멸종위기 야생동물은 어딘지 모를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잘 살 것이라고 기술하면 그만이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4대강이나 케이블카, 최근 불거진 사드 부지와 같이 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들 또한 이렇게 진행된다. 이미 문제가 없다는 답을 내어놓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 제도 하나만으로도 왜 우리나라가 전 세계 자연환경평가 꼴찌 수준에 맴돌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미세먼지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온난화는 지구 평균의 두 배에 육박한 것이 개인의 잘못이며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문제인가?

환경조사자료는 그 특성상 개발자가 숨기고자 하면 알아내기 매우 어렵다. 4대강 사업과 현재 진행 중인 오색케이블카 사업 등 대표적 정부 사업에서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가 이루어졌다면 대다수 국민은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막대한 비용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된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 날이 대한민국 ‘환경적폐’ 청산의 시작일 것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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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했다. 문 대통령은 G20 회의 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다. 여느 때 같으면 두 정상 간 상견례가 되겠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한·중 정상회담을 위한 의제 조율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만큼 긴장감이 감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성공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7월6일 (출처: 경향신문DB)

중국의 사드에 대한 입장은 문 대통령의 사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지시로 부드러워지다 최근 다시 강경해졌다. 시 주석은 그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을 통해 사드 철수를 강하게 요구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군비를 강화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사드 배치는 한반도 비핵화 목표 달성이나 역내 평화와 안정 확보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오히려 전보다 입장이 강해진 것이다. 지난주 문 대통령이 방미 중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 중국의 강경 입장 선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한·미동맹의 균열을 의심하는 미국 조야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사드 배치를 강조한 것이 중국의 반발을 부른 셈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3국 협력 강화가 대중 포위전략처럼 비친 점도 있다.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이 제시할 접근법은 사드 논의를 잠시 미루고 북핵 해결에 집중하자고 중국에 제안하는 것이다. 북핵이라는 공동 현안을 우선하고 이견이 있는 사드는 시간을 두고 논의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되는 기간만큼 시간을 벌어놓고 있다. 이 시간은 단지 유예기간이 아니다. 현재 북한의 태도나 핵개발 속도를 감안할 때 6차 핵실험과 ICBM 개발 완성으로 돌이킬 수 없는 안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기다. 한·중이 함께 북핵 해결책을 찾고 나아가 한·미·중 간 공동의 북핵 협상안을 마련,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사드 문제로 갈등을 심화시키는 마당이 아니라, 대북 공조로 북핵 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전환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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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으로 국정농단세력을 물러나게 했지만 지난 한 달 반을 반추하면 적폐세력들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서 기득권세력이 한순간에 바뀌거나 적폐들이 저절로 청산되는 것은 아니며, 얼마나 지난한 과제인가 정도는 각오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그들의 저항이 아주 빠르고, 대담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국정진행에 대한 비상식적 방해에 나선 야당의 공세는 물론이고, 최근에 불거진 사드 조기배치와 대북정책 논란은 구세력들의 조직적 저항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따지고 보면 사드 배치 문제는 처음부터 박근혜 정권의 안보 포퓰리즘의 일환이었으며, 대통령 선거와 연동해 지지자 결집을 위한 수단이었다. 이후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자 가속화에 나섰던 것이다. 심지어 탄핵된 이후에도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비밀리에 배치한 것은 의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방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미 해병대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스테판 옴스테드 예비역 해병대 중장(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미 해병1사단이 중국군의 포위를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전투로, 중국군의 진출을 지연시켜 흥남철수가 가능했다. 콴티코 _ AP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사드 배치에 대한 한·미의 원래 합의는 금년 말까지 1기를, 나머지 5기는 내년에 배치하기로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국내법과 규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탄핵국면에 들어서고 난 후 서둘러졌다고 말하면서 “매우 충격적”이라고 했다. 이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정부가 당초 합의를 깨고 사드 배치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국내법 등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국방부는 사드 배치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완전히 투명하고 긴밀하게 진행해 왔다고 반박했다. 무엇이 진실일까?

추론의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사드 조기배치는 한국 측의 강력한 요구와 미국 측의 편승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필자가 위원으로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에서 추가 4기 반입에 대한 보고를 누락했던 일에 대한 재보고 미팅을 하면서 추궁한 결과 조기배치를 주도한 것은 국가안보실이라는 답변을 분명히 들었다. 이와 관련, 김관진 전 안보실장의 1월과 3월의 연이은 방미는 주목을 끈다. 재임 시 총 3번의 방미 중 2번이 대통령 탄핵국면이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당연히 조기배치를 위한 방미였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원래 합의를 깨고 조기배치하기로 합의한 문건이 있는지, 구두로 합의한 것인지가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안보실장이 대통령 부재상황에서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했다면 분명 월권이다. 그리고 정권교체 이후 4기의 추가 배치사실에 대한 보고누락은 적폐세력의 항명이라는 맥락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최근 문정인 특보의 발언논란도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문 특보는 방미기간 북한이 핵활동을 동결할 경우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부분이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의 보수언론들과 보수야당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미동맹 훼손이라는 낙인을 덧씌웠고, 미국 내 반발을 거론하며 다가오는 한·미 정상회담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소리를 높였다. 이 모든 과정을 문 특보의 과잉발언에 대한 당연한 반발과 교정 정도로 정리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미국 내에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한국이 논란을 키워서 뒤이은 미국의 파장을 이끌어냈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지난 정부의 적폐인 반미종북 프레임의 흑백론이 재부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없는 논란을 의도적으로 키움으로써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우리 입지를 약화시켜버렸다는 점에서 국익을 훼손한 것은 그들이다. 같은 동기를 품고 이번에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흠결과 실패를 찾으려 안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대통령이 아무리 설명하고, 전제조건을 달아도 믿기는커녕 들을 생각조차도 없었다. 북한을 먼저 방문할 수도 있다고 했을 때도 미국과 협의해서라는 단서를 의도적으로 빼버렸다. 문 특보 발언에서도 미국과의 협의하에 군사훈련의 축소를 논의할 수 있다는 전제는 당연히 빠졌다. 트럼프의 햄버거 대화 용의 발언이나, 김정은과 만날 수 있다면 영예로울 것이라는 발언들이야말로 전제조건 없는 대화제의로 문 대통령의 발언보다 훨씬 더 문제의 소지가 있다. 결국 말의 내용이 아니라 누가 말했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미국 내 소수의 강경파들이 지닌 문 대통령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한국 적폐세력의 저항과 연결되면서 신정부를 흔드는 것이다. 그러나 촛불 전에는 통했을지라도, 후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을 믿고, 국민이 믿는 대통령을 믿는다. 그래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적폐들의 시대를 규정했던 ‘이것이 외교냐?’를 넘어 ‘이것이 외교다!’라고 당당히 보여줄 것을 믿는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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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미국과 중국, 일본을 다녀온 특사단과 간담회를 열고 활동 결과를 보고받았다. 문 대통령은 특사단 활동에 대해 “(정국이 혼란 상태에 빠지면서 생긴) 오랜 외교공백을 일거에 다 메우고 치유하는 역할을 한 것 같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도 그렇고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그렇고 우리가 할 말을 좀 제대로 했다고 생각이 든다”고 자평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미.중.일 특사단 간담회에 참석해 중국 특사로 다녀온 이해찬 전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일본 특사 문희상의원,미국 특사 홍석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문 대통령 ,중국 특사 이해찬 전 총리.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 특사 활동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특사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 미 행정부에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설명, 새 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상당히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트럼프가 홍석현 특사에게 “어떤 조건이 되면 관여로 (북한과) 평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평화’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점이 주목된다. 북한의 태도 변화라는 전제 조건이 붙어 있지만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의사를 확인함으로써 변화의 모멘텀은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에서도 벗어났다. 중국 정부로부터 사드 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를 한국민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일본에 확인시켜주고 국내 여론도 다독였다. 미·중·일 3국에 새 정부의 뜻을 전달하면서 협력 체제의 초석은 놓은 셈이다.

하지만 특사의 활동은 급한 불을 끈 정도이다. 미국이 핵 포기를 위한 북한의 행동 변화 없이는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은 확고하다. 북한은 새 정부 출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 측도 특사단에 사드 배치의 실질적 (철회) 조치 없이 한·중관계의 복원은 어렵다고 했다. 일본은 위안부 합의 이행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주변국 사이에서 사면초가에 놓인 기본 조건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고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어내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당장 중국의 사드 보복을 풀기 위해서는 사드 배치를 동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다음달 있을 한·미 정상회담 등 양자 외교를 통해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대북 국제 제재의 기조를 허물지 않으면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문재인 외교안보팀의 과제 풀기는 이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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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폭력은 신체에 대한 물리적인 구속이나 상해를 가하는 것으로 흔히 이해된다. 그러나 이와 매우 다르게, 그리고 더욱 교묘하게 작동하는 폭력이 우리에게 상존한다. ‘담론적 폭력’이 그것이다. 미셸 푸코는 일찍이 <지식의 고고학>에서 담론의 폐쇄적 속성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과를 폭력이라는 측면으로 논한 바 있다. 푸코에 따르면 담론은 다음과 같은 기능을 발휘한다. 첫째, 특정한 발화자와 언표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둘째, 이를 통해 향후에 발생할 수 있는 담론의 ‘무대’를 규정하여 셋째, 새로운 시각이나 대안의 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만든다. 요컨대 담론은 무엇이 발화되는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언표들의 ‘형성체계와 규칙’을 만들어냄으로써 일종의 ‘규율적’ 도구가 되는 것이다. 무엇이 발화될 수 있으며, 어떻게 발화되어야만 하며, 따라서 무엇이 수용 가능한 발화행위인지에 대한 ‘경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담론경계로 인해 경계 ‘내부’에 들어와 있는 언표들은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고, 경계 ‘밖’에 존재하는 언표들은 부자연스럽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것은 곧 규제나 배제의 대상이 된다.

담론 경쟁이 곧 정치권력 투쟁과 연동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담론 경쟁에서 승리하여 주류·지배적 담론이 되면, 그 담론을 수용하는 발화자는 정당성을 갖게 되고 이는 곧 타자에 대한 규율로 이어지게 된다. 주류 담론에 속하지 않거나 이에 상응하지 않는 시각은 배제 혹은 소거 대상이 된다. 결과적으로 담론적 ‘경계’와 ‘폐쇄’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은 개인의 새로운 시각과 대안적 행동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주류 담론에서 벗어나 있는 개인 자체를 주변화시키게 된다.

30일 사드 부지 공사를 위해 주한미군 유조차량 2대가 성주골프장으로 진입하려다 주민들의 반대로 마을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 미군 유조차는 이날 오전 8시40분부터 2시간가량 대기하다 되돌아갔다. 백경열 기자

이러한 담론적 폭력의 전형이 대선정국에서 발견된다. ‘사드’라는 기표와 이에 뒤따라 붙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사드,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대통령 후보자 검증을 위한 토론이나 인터뷰에서 거의 모든 언론은 이렇게 묻는다. 물론 사드에 관해 물을 수 있다. 사드는 한국 안보와 관련된 주요 현안 중 하나이며, 사드 배치에 대한 미·중의 상이한 입장은 한국 외교에 큰 난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드라는 기표가 안보담론의 무대 전체를 점령하고 있다는 데 있다. 마치 사드만이 한국 안보를 논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되며 이것을 말하는 발화자만이 안보담론의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인 양 매우 협소한 담론적 경계가 세워져 있는 것이다. 사드 이외의 문제는 담론의 무대 밖으로 내몰리게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후보자는 곧 안보관이 투철한 것처럼 담론적 폐쇄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드를 말하지 않거나 혹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후보자는 마치 안보관이 위험한 것처럼 인식되고 곧장 비난의 대상이 된다. “사드, 찬성이냐 반대냐”라는 질문으로 누군가의 안보관, 세계관을 따져 묻는 것은 담론적 폭력이다. 자유의지로 말하고 또한 상상되어야만 하는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들이 주변부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해법, 남북통일을 위한 장기적 전략과 목표, 국민의 삶의 질적 향상, 세월호와 같은 대형 인재사고 재발 방지를 사회안전 시스템 구축 등등.

담론의 지형을 더욱 복잡하게, 담론의 경계를 더욱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안보를 지키고 개선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사회라는 세상은 ‘말을 놓고 벌이는 투쟁의 장소’라고 했다. 변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의 등장이 필수적인 것이다. 사드로 가려진 담론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하고 다원적인 언어와 질문을 안보담론의 무대에 재등장시켜야만 한다.

담론의 ‘경계 허물기’는 누가 진짜 안보대통령에 적합한가를 판단하는 데 유용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누가 사드를 상징권력의 언어로써 행사하며 타자의 안보관과 세계관 전체를 재단하려 하는가? 누가 편협한 안보담론의 현상유지를 시도하는가? 누가 사드뿐 아니라 북핵 문제 해결, 남북통일, 사회의 안전, 국민복지 향상의 문제를 안보정책으로써 포괄적으로 ‘말’하고 있는가를 따져봐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 유권자의 몫이다. 담론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유권자이므로.

은용수 | 한양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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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는 반대하는데 핵무기 반대 구호는 왜 함께 외치지 못할까? 원자력발전소보다 더 무서운 ‘대량살상’의, 아니 절멸의 무기가 바로 한반도에 있는데 말이다. 이것은 지금 한국 반핵(아니 탈핵?) 운동의 난제다.

사실 전 세계 핵 관련 운동을 보면 ‘반핵’인가 혹은 ‘탈핵’인가 하는, 운동적으로 두 개의 큰 흐름이 있다. 비교하면 유럽은 반핵(Anti-NUKE) 운동이 주였고, 그에 따라 핵무기 반입 저지 및 미군기지 반대투쟁을 했다. 그리고 일부는 녹색당 창당의 밑거름이 됐고, 일부는 더욱 급진적인 사회운동으로 남아 이미 이익집단이 된 ‘조직노동’에 대한 견제세력이 되기도 했다.

반면 미국은 스리마일 원전 사고 등을 계기로 주로 반원전운동 혹은 원전가동 중단운동을 했다. 그리고 그들 반원전운동은 자국의 핵무기를 타국에 배치하는 문제에 미온적이거나 모른 체했다. 그들은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참전을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에 가담하기는 했으나 적극적인 군비축소 및 특히 미국산 핵무기의 폐기운동으로는 진행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반원전운동은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중산층 지향의 시민운동이었다.

지금까지 양상을 보면 한국의 핵관련 운동은 미국과 비슷하다. 반핵이 아니라 탈핵운동 일변도이며, 원전가동 중단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핵무기 및 미군기지 문제에 대체로 침묵하며, 외부세력이 아니라 주로 한국 정부와 정치권을 겨냥하고 있다. 일례로 작년 북한의 4차 핵실험 때 미국은 즉각 B-52 핵전폭기를 한반도 상공에 띄웠지만 ‘탈핵’운동단체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사드 무기를 한국에 반입하면서, 미국은 한반도 인근에 핵잠수함을 배치하고 핵무기가 포함된 한·미 군사훈련을 시행했지만 그에 대해서도 탈핵운동은 거의 침묵하고 있다.

경북 성주군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장비를 전격 배치한 26일 성주골프장의 길목인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주민들이 사드 반대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결국 탈핵은 하지만 반핵은 못하는 사회. 이는 사회적 분위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지진대의 원전 가동과 방사능 유출에 극도의 공포를 갖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북·미 긴장고조로 현실화될 수 있는 핵폭탄 투하와 가공할 방사능 구름에 대해선 강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북한 핵무기 개발을 비판하지만, 이 모든 긴장의 한 축인 미국에 대해선 현저히 불균형적인 태도 내지 침묵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 불균형, 이 의식적인 동시에 무의식적인 검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니면 탈피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면 없이 한반도의 전쟁, 핵전쟁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요원한데 말이다.

4월26일 새벽, 우리 사회의 이런 한계는 고스란히,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멀찍이 떨어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의 주민들에게 날벼락으로 떨어졌다. 그날 새벽 한국 경찰이 경비를 선 가운데 미군이 모는 트럭들이 사드 장비를 옮겼다. 70~80대의 연로한 주민들은 그 새벽 자신들의 고요한 마을을 습격한, 점령군처럼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던 미군들과 그들을 보호한 한국 경찰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외쳤다. “미국 경찰은 물러가라!”

이 구호가 바로 전율이다. 그들은 이 사회를 꼼짝 못하게 하고 있는 이념적인 편향과 왜곡을 넘어서 곧바로 알아차렸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이것은 나라가 국민을 향해서 할 짓이 아니다, 이 나라 경찰은 미국 경찰인가.

근데 왜 이 사회는 침묵하는가? 왜 우리는 박근혜의 국정농단에만 분노하고, 미국의 대한민국에 대한 ‘농단’에는 침묵하는가? 물론 여기에는 넘어서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탈핵뿐 아니라 반핵을 고민해야 하고, 친미와 반미를 다 고민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과연 이 땅의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도 현장의 상황은 너무 절박하고, 고령의 원주민들은 이 모든 현대사와 한국 사회의 못난 모습이 그들에게 전가한 부담을 안은 채 사드 배치를 온몸으로 막고 있다. 평화로워야 할 가정의 달, 과연 당신의 평화를 깨는 세력이 누군가 한번 생각해보고,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를 기억해주기 바란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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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문제가 다시 대선정국을 덮고 있다. 현 정부는 임기 내에 사드 배치를 완료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북한은 사드 문제에 개의치 않고 최근 미사일을 동해로 발사했고,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드 장비를 경기 오산시로 공수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보복을 강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 결과 한국의 경제성장이 1%대로 떨어질 것이라 하고, 심지어 이마저도 2~3차적인 영향을 고려하면 피해를 과소평가한 것이라고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이나 베트남의 경우를 들어 전의를 다지기도 하고, 애국과 주권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대응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뭔가 돌아가는 상황이 좀 이상하다. 외부 세력들은 각기 자신들의 전략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사드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이 혼돈 속의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냉정한 이해, 자신의 역량과 내구성에 대한 성찰, 안보와 경제를 결합한 포괄적인 국가안보전략에 의해 정합적으로 사드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의 정책결정자들은 이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고, 대책도 없었으며, 아직도 자신들만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마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심판이 기각될 것이라 믿었던 상황인식과 너무나 흡사하다.

최근 들어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한반도가 미·중 간 전략적 소통과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전환 중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사드 배치에서 이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한반도 현상유지 정책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과정에서 보여주듯이 중국의 점진적인 현상변경 정책에 의해 사실상 중국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미국의 판단에 기인한다. 한·중 및 한·미관계의 미래는 결국 미국이 의도하는 대중 견제정책에 대해 한·미동맹이 지역동맹화하면서 어떤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 정책이 성공하면 할수록, 한·중 마찰도 더 커질 것이다. 여기에는 퇴로가 없어 보인다. 이는 사드배치 문제를 둘러 싼 미·중의 완강한 입장과 중국의 한국에 대한 지속적인 보복조치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부지를 제공키로 한 롯데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강해지는 가운데 13일 손님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중국 상하이 롯데마트 매장에서 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상하이 _ AFP연합뉴스

우리의 운명이 미·중 전략경쟁의 한 패(牌)로 전락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미·중 세력전이라는 혼돈의 시기에 편승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생존을 보장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더욱 어려운 처지로 우리를 몰고 갈 것이다. 한국은 현재 중국으로부터의 본격적인 압력은 물론 미국의 보복으로부터도 견뎌 낼 체력이 없다. 사드로 인한 갈등과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 일반 국민들을 절망의 고통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를 주장한 위정자들은 그 고통의 최전선에 설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북한은 이 상황을 즐기며 사드 배치와 관계없이 계속 도발을 자행할 것이고, 한국을 극단적인 선택 상황으로 몰고 가고자 할 것이다.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강화에 따른 양자택일의 압력 가속과 정치·경제적 비용이 지속적으로 증대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답은 아직 대결과 결단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외교의 시대여야 하고, 이를 포기할 경우 그 끝자락에는 전쟁과 파멸밖에 남는 게 없다.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국제 공조를 잘 유지하면서, 북한에 대한 주도적인 군사역량을 강화하면서 대비하고, 한반도에서 공존의 원칙을 바탕으로 교류를 강화하면서 안정된 남북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의 역량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은 필수적이다. 사드 관련 한·미 간의 약속도 지켜져야 한다. 동시에 중국이나 러시아의 전략적 우려도 충분히 반영하는 외교를 해야 한다. 이에 기반을 두고 중국, 일본, 러시아도 함께 끌어안고 가야 한다. 21세기에는 더 이상 낡은 냉전체제의 논리로 살아갈 수 없다. 국제사회의 역량을 배제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흡수해 북핵문제, 한반도 문제, 지역 평화문제 등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현재 우리에게 외교는 만사(萬事)가 되고 있다. 국제정세의 험난함과 심각성을 잘 인지하고, 우리의 생존권, 번영권, 존엄권을 지켜줄 안정감 있고 희망을 주는 역량 있는 리더십의 출현을 대망한다. 그 지도자는 미국을 안심시키면서도 중국을 설득하여 사드 보복을 철회하게 하고, 북한을 평화의 장으로 견인해 올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은 여전히 강대국 정치, 북한의 도발, 신 냉전질서의 도래 가능성, 탐욕스러운 국제 자본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돼버릴 것이다.

김흥규 | 아주대 교수·중국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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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이 기어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국 배치를 시작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그제 사드 미사일 발사대 2기 등 일부 장비를 국내에 반입했다. 당초의 하반기 배치 방침을 전격적으로 앞당긴 것이다. 정부는 사드 조기 배치 방침을 일절 비밀에 부쳤다. 사드가 배치되는 성주 골프장은 부지 공사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다. 필수적인 환경영향평가도 한 적이 없다. 배치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에서 덜컥 장비부터 도입한 것이다. 조기 대선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뒤집을 수 없도록 대못을 박겠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사드 배치는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시민 사이에서도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사안이다. 정상적인 정부라도 밀어붙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탄핵당한 정권의 과도 정부가 시민과 소통하지도 않고 국회와 정당에도 비밀에 부친 채 도둑처럼 일을 처리했다. 박근혜 정권의 못된 습관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풀이한 것이다. 이런 사드 배치는 과도 정부의 월권이자 용납할 수 없는 폭거다.

한·미 양국군이 지난 6일 밤 미군 C-17 수송기로 전격 공수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발사대 2기가 항공기에서 내려져 경기 오산기지 활주로에 나란히 멈춰 서 있다. 주한미군사령부 제공

정부는 사드 조기 배치가 국가의 안전과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가속화돼 더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드가 군사적 실효성이 있을 때나 성립되는 말이다. 사드 미사일 48기로 1000기가 넘는 북한 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설사 막을 수 있게 됐다 해도 인구 절반이 사는 수도권은 방어망에서 벗어나 있다.

사드는 오히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한다.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사드 기지에 대한 군사 타격을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한국 여행 전면 제한과 롯데의 중국 사업장 영업정지 등 보복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수많은 중소기업과 관광업계는 경제적 손실로 고통을 겪고 있다. 중국 거주 한국인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한·미의 사드 배치 착수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것이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어제 “우리는 한·미 사드 배치를 결연히 반대하며 필요한 조치를 결연히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반발의 강도가 한층 높아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사드 배치 작업 착수 사실을 중국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사드가 주변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만 늘어 놓고 있다. 그런 행동으로는 중국의 불만과 안보 우려를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기 대선 일정에 맞춰진 사드 배치 시점도 의심스럽다. 정부는 오로지 국가 안보 차원의 결정일 뿐 절대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사드가 주요 안보 이슈로 부각되는 상황은 피할 수 없다. 그걸 모르지 않을 정부가 배치를 강행한 것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해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드 도입은 단순한 미사일 방어 무기 하나 들여오는 일이 아니다. 미·중 대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북·미 갈등 등 종횡으로 대립하는 동북아의 불안정을 조장하는 중대한 행위이다. 탄핵정국에서 안정적 관리에 집중해야 할 황 대행이 함부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안보 상황에 적절한 대안을 찾지도 못한 채 몰래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사드 배치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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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자국인들의 한국 관광을 금지하는 등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을 노골화하면서 큰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 간에 적용될 수 있는 국제적 규범은 무엇일까?

먼저 유엔총회 결의 제2625호로 채택된 ‘국가 간 우호관계 및 협력에 관한 국제법원칙 선언’(유엔우호관계선언)을 생각하게 된다. 이 선언은 “어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의 주권적 권리행사를 굴복시키거나 그 국가로부터 각종 이익을 얻기 위하여 그 국가를 강제하기 위한 경제적, 정치적 또는 기타의 조치를 사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장려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했다. 즉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주권적 권리행사를 굴복시키거나 다른 이익을 얻기 위해 경제적 보복조치 등을 통하여 그 국가를 강제하는 것은 유엔 결의에 위반되는 행위이다. 유엔우호관계선언은 1970년 유엔총회에서 반대하는 국가 없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나아가 국제사법재판소(ICJ)와 국제법 전문가들은 유엔우호관계선언을 국제관습법으로 보기 때문에 이 선언에 위반되는 행위는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고 찬반이 치열하게 대립했다. 사드 배치 결정이 앞으로 상황에 따라 변경될 여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사드 배치 결정이나 그 변경은 우리나라의 주권적 권리행사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주권적 권리행사를 중국이 경제적 보복조치 등을 통하여 굴복시키려고 한다면 유엔우호관계선언을 위반하는 것이며, 나아가 국제법 위반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유엔우호관계선언은 경제적 보복조치를 국가가 직접 사용하는 경우뿐 아니라 보복조치를 민간에 장려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직접 경제적 보복조치 등을 취하지 않더라도, 그것의 사용을 용인하고 장려한다면 유엔우호관계선언에 위반된다.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에 경제적 보복 등을 통한 강제조치를 금지하는 것에 유엔우호관계선언만 있는 것이 아니다. 1967년 미주기구헌장 제20조도 국가들이 다른 국가의 주권적 의사를 강제하거나 각종 이익을 취하기 위한 경제적 또는 정치적 성격의 강제조치 사용을 금지했다. 1975년 유럽안보협력회의가 채택한 ‘헬싱키 최종의정서’ 제6원칙도 모든 참가국들이 다른 참가국의 고유한 주권적 권리 행사를 굴복시키기 위한 군사적·정치적·경제적 또는 다른 형태의 강제적 조치를 모든 상황에서 삼가야 한다고 선포했다. 유엔의 주요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86년 니카라과 사건 판결에서 국내문제불간섭의 원칙과 관련하여 경제적 보복조치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를 종합하면 한 국가의 주권적 권리행사를 굴복시키거나, 독립성을 침해하는 목적을 가진 경제적·정치적 보복조치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해 시행하거나 시행을 장려하는 현재의 경제적·정치적 보복조치 등은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중국 내 일각에서는 한국 내 사드 배치를 1962년 구소련이 쿠바에 공격용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와 유사하다며, 한국 내 사드에 대해 ‘외과수술식 타격’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 내 강경파는 외과수술식 타격을 주장했으나, 미국은 이것이 1907년의 ‘개전에 관한 협약’에 위반된다는 판단하에 실행하지 않았다. 이 협약은 제1조에서 협약의 당사국들이 적대행위를 개시하기 전에 선전포고를 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쿠바에 있던 구소련의 미사일 기지에 대해 기습공격을 하는 것은 협약의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은 공격 대신에 쿠바를 봉쇄하기로 했다. 이 봉쇄조치는 미주기구(OAS)로부터 만장일치의 승인을 받는 등 국제사회의 견고한 지지를 얻었다. 미국의 합법적 조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견고한 지지가 구소련이 미사일과 폭격기를 쿠바에서 철수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미국이 만약 쿠바 미사일 기지에 공격을 감행했다면 미국과 구소련 간에 핵전쟁이 발생해 인류가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개전에 관한 협약’은 현재도 유효하고 중국도 협약의 당사국이다. 한국에 배치될 사드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공격은 개전에 관한 협약의 위반이 될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통해 배우는 교훈 중의 하나는 국제법에 기초한 국가 정책만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점이다. 한국과 중국이 가까운 이웃국가로서 국제법에 기초해 긴장을 해소하고 우호와 협력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영석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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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롯데가 이사회를 개최하여 경북 성주 소재 골프장과 남양주 군용지의 맞교환을 승인했다. 다음날 국방부는 롯데와 계약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필요한 부지를 확보했다. 국방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텅 빈 부지를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경계작전 인원을 투입하고, 헬기까지 동원해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어 주민들과의 충돌을 자초하고 있다. 부지도 확정되지 않은 지난해 12월부터는 기본설계조차 없이 이미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국방부는 수용한 골프장을 미군에 공여하는 절차를 서두르고 있다. 미군도 사드 기지를 조성하기 위한 설계를 시작으로 조만간 시설공사에 나설 것이다. 모든 절차를 중첩해 최대한 속도를 내어 하루라도 빨리 사드 배치를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6~7월 이전에 사드 배치를 완료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미군에 부지를 공여한 이후에는 사드 배치에 관한 형식과 절차가 미국 측 의도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한·미가 협의해서 결정한다고 하지만 얼마나 국민을 위한 목소리를 낼지 궁금하다. 환경영향평가 역시 부지 공여 이후에는 국내법을 적용받지 않음에도 국민 우려를 고려해 한다고 설명하고 있어 마지못해 한다는 느낌이다. 과연 투명한 환경영향평가가 이루어질지 의문스럽다. 국방부는 향후 비용문제에 있어서도 부지 내는 미측이, 부지 외 기반시설 공사는 한국 측이 부담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미측 부담이 결국 방위비 분담금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말끝을 흐리며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기반시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입장이 불분명하다.

롯데인터넷면세점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 서비스가 모두 3시간여 동안 중단된 2일 오후 롯데인터넷면세점 화면에 서비스 점검 중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다. 김창길 기자

이런 상황에서 사드 배치에 필요한 절차가 마무리되기 이전에 사드가 이 땅에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실제 운영에 필요한 공사가 끝나기 전에 사드 포대만이라도 도둑 이삿짐 싸듯 옮겨오는 방안에 대해 한·미 간 논의가 있었고, 지난 2월 매티스 미 국방장관 방한 시 합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사실이라면 꼼수이자 소위 알박기의 전형이다. 부지가 미군에 공여된다는 점에서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1일부터 독수리훈련이 시작되었고 오는 8일부터 시작되는 키리졸브(KR) 연습에는 사드 운용을 통한 탄도미사일 방어연습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드는 어렵지 않게 항공기나 배를 수단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훈련 명분으로 한반도에 들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월30일까지가 독수리훈련 기간임을 고려할 때 그렇게 들여온 사드를 배치 임박을 핑계로 그대로 보관하겠다는 몽니를 부리지 않을까 하는 소설을 써본다.

사드와 관련된 논란은 무수히 많다. 군사적 효용성, 안전성, 미사일방어(MD) 참여, 중국의 보복 등 지금까지 사드 배치 추진 과정에 발생한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은 정책 결정과정 중 지켜야 할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을 이해시키려는 진솔한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에게 탄핵당한 정부가 무슨 이유로 이렇게 사드 배치를 서두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진정으로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물건만을 성급하게 옮겨놓을 이유가 없다. 혼란스러운 국내 정치 상황 속에서 정말 사드 포대부터 먼저 들여오는 일이 생긴다면 오히려 선거를 의식한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절차의 비민주성과 국론의 수렴 없이 밀어붙이는 사드 배치는 앞으로 우리를 더욱 힘들고 어렵게 할 것이다. 안보를 넘어 국익과 내 아들딸들이 살아가야 할 국가의 미래를 위해 무모한 사드 배치 추진은 중단해야 한다. 지금까지 현 정부와 국방부의 솔직하지 못함으로 꼬일 대로 꼬여버린 사드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는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할 것이다. 사드는 미국도 중국도 아닌 우리 국민의 선택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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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롯데, 사드

지난해 7월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발표 이후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가 첨예화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며칠 전 애경산업, CJ라이온 등이 만든 로션·에센스·클렌징 등 한국산 19개 제품, 11t 분량에 대해 수입불허조치를 내렸다. 불합격 제품 28개 중 영국산, 태국산을 빼면 3분의 2가 한국산이다. 중국의 압박은 전방위적이다. 삼성SDI와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이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빠졌고, 항공사들이 춘제를 앞두고 신청한 전세기 운항도 불허됐다. 사드 부지를 대체 제공키로 한 롯데의 중국 법인들은 세무조사를 받았다. 계약파기, 통관지연 등으로 쓰러지는 중소기업은 부지기수이다. 한류콘텐츠도 설 곳을 잃고 있다. 당초의 인적교류 제한에서 이제는 비관세장벽 강화를 통한 수출입 불허까지 가시화되는 형국이다.

미국을 방문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정부의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와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주미대사관

중국 정부의 노골적이고 지속적인 압박에 기업과 업계는 속이 타들어가지만 정부는 헛발질만 계속하고 있다. 주중한국대사관은 이번 화장품 수입불허에 대해 “개별 사례를 조사한 결과 제조업체 책임으로 드러났으며 사드 보복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매사가 이런 식의 대응이다. 설령 한국제품에 하자가 있더라도 갑자기 중국당국이 까다로운 기준을 들이대면 배경을 따져보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럼에도 보복이 아니라고 미리 선을 긋는 것은 사드와 연관짓고 싶어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사안을 축소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유일호 부총리는 지난해 사드 배치 결정 뒤 중국의 경제보복 우려에 대해 “비상계획을 만들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껏 사드 배치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현지 공관 및 업계와의 소통을 통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필요시 양자 및 다자 채널을 통해 대응해 나가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애초부터 정부가 경제적 파장은 고려 대상에 넣지 않았거나 중국과의 마찰을 가볍게 여겼다는 방증이다. 중국은 한국의 제1 무역국이 된 지 오래다. 중국이 아니더라도 어느 나라나 비관세 장벽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이다. 극심한 외교갈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방적 배치 결정을 내린 게 원천적 잘못이지만, 경제적 피해가 가시화되는데도 우왕좌왕하는 정부를 신뢰할 수는 없다. 감당할 수 없다면 사드 배치 중단을 선언하고 차기 정부에 맡기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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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외교안보가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둘러싸고는 일본으로부터 공박당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 후 중국의 전방위적 압력에 직면해 있다. 박근혜 정부 외교정책 실패의 후과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형국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를 원칙 없이 오가다 덫에 빠지고, 미래지향적 결정이라며 성급하게 위안부 문제 합의를 했다가 일본으로부터 공격당하는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그런데도 당국은 대응책 하나 없이 외교 실패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그제는 중국군 폭격기 6대와 조기경보기 1대, 정찰기 1대 등 군용기 10여대가 제주도 남방 이어도 인근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해 들어왔다. 2013년 말 식별구역을 발표한 이후 중국 군용기가 간간이 침범한 적은 있지만 장거리 폭격기와 조기경보기 등이 한꺼번에 4~5시간 지속적으로 우리 경계선 안으로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한국군이 공군 F-15K 전투기 등 10여대로 대응 출격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류 연예인 방송 출연 금지와 한국행 전세기 운항 불허에 이은 외교적 보복 조치의 연장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 교류와 경제 통상에 이어 군사 위협으로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다.

(출처: 경향신문DB)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른 일본의 공세는 박근혜 외교의 완벽한 실패를 증명한다. 부산 총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것을 계기로 일본은 주한대사 소환과 한·일 통화 스와프 협상 중단 등 보복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10억엔을 냈으니 한국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도발도 했다. 가해자가 공세를 펴는 어이없는 상황에도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정부의 정책도 실패하면 수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국제적 신뢰를 내세워 잘못으로 드러난 정책까지 고수하겠다고 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상황 악화를 가져올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하는 게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마치 남의 일처럼 한·일 양측에 경고한 것도 잘못이지만,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주장하는 야당을 겨냥했다는 점에서도 매우 부적절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사드에 대해서도 대책은 내놓지 않은 채 중국을 방문한 야당 의원들만 비판했다.

실패한 박근혜 외교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그릇된 판단이 낳은 결과이다.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하면 또 어떤 외교적 난제가 떠오를지 모른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유산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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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에서 12월에 걸쳐 한국에서 벌어진 평화시민혁명의 의미를 지금 가늠하기에는 너무 이른지도 모르다. 일단은 잠정적 진단으로 봐주시길 바란다.

 

국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투쟁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이끌어냄으로써 1차 관문을 통과했다. 2만명에서 시작한 집회는 매번 참가자가 늘어나 급기야 2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전국에서 참여하는 초거대 집회로 발전했음에도 순조롭게 열렸다. 정말 놀랍게도 부상자, 구속자 한 명 없이 평화롭게 순항했다. 세계가 놀랐고 우리 자신도 놀랐다. 우리는 이 세기적 평화시민혁명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왜 가능했는지 곰곰이 헤아려야겠다. 이 진지한 점검에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가 걸려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필자는 갖는다.

 

한국에서 평화시민혁명이 분출한 시점은 미국에서 트럼프 정권의 집권이 예정되면서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역학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정책이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혹은 개입축소정책으로 재조정되려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한국의 동향을 북한을 비롯한 미국·중국·일본 등 관련 당사국들이 예민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가 보수로, 배타주의로, 자국이기주의로, 인종주의로 흐르고 있지만 한국의 평화시민혁명은 정의로, 화해와 공존으로, 공동체주의로 향하고 있다. 핵무장으로 자신의 생존을 찾으려는 북한은 국정파탄과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집권자를 국회에서 탄핵하고 재판에 넘기는 한국의 평화시민혁명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사드 배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으로 미·일 군사동맹에 한국을 편입시키려 하지만 평화시민혁명에 부닥쳐 주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와 대북정책에서 자신에 어깃장을 놓는 박근혜 정권이 못마땅했지만 평화시민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의 중도하차가 분명해지면서 한국에 대한 태도를 재조정하려 할 것이다.

 

간략하게 살펴봤지만 평화시민혁명은 남북한 분단대결 체제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미묘한 시기에 한반도 내부와 주변에 큰 파장을 던지면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적으로는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부정부패 사태 때문에 지난 60년 가까이 지속된 박정희·박근혜 프레임의 모든 사고와 행태가 한국 국민으로부터 폐기되었다. 이제 독재와 부정부패를 저질렀으면서 반성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지배자의 군림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이번 혁명은 분명히 보여주었다.

 

아울러 이승만 이래 미국 일변도의 의존체제가 불가피하게 전환을 강요당하는 시기에 진입하게 되었다. 우리가 미국에 그렇게 하도록 요구해서가 아니라 미국 자신이 더 이상 군비확장을 감당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군사동맹을 폐기하거나 축소해가겠다고 대선 전부터 약속했다. 이 추세는 점진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전략대화는 한반도에서의 대결보다는 힘의 균형 쪽으로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평화시민혁명은 한반도에서의 평화공존, 교류번영을 추구하고 남북의 현상변경을 추구하지 않을 경우 양 대국의 이해와 어긋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핵 문제에서 이런 흐름에 함께하느냐가 관건이 되겠다. 남북의 대화·교류가 필요한 까닭이다. 한국은 아베 정권의 일본과 대화를 이어가되 일본의 평화운동 진영과 긴밀한 논의를 깊이 있게 나눠야 한다.

 

박근혜와 그 일파가 나라망신을 저지르고 위험에 빠뜨렸다면 평화시민혁명은 세계의 찬사를 받으면서 국격을 높였다. 평화시민혁명은 이제 한국과 한반도의 운명을 위험으로부터 구해내 평화를 새롭게 확장하는 데 공헌하게 될 것이다. 이 위기의 지구촌에서 한국이 평화시민혁명의 희망으로 떠오르는 기적이 진행되고 있다. 박근혜와 그 일파들을 극복하고 나라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우리 시민들이 자랑스럽다.

 

이부영 |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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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일명 한한령(限韓令)이라 불리는 중국의 대응이 시작되고 있다. 이는 중국 측이 한국과의 인적교류와 한류를 제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 심리적 여파는 벌써 대단하다. 본격적인 경제 제재로 이어지지 않나 하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우리 무역량의 거의 30%(홍콩 포함)에 달하는 중국과의 갈등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는 공포이다.

당초 사드 배치 결정을 내릴 때, 우리 정부는 중국의 경제보복은 어려울 것이라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역시 공개적으로 이를 확인하였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마늘분쟁에서와 같은 경제보복은 발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음 논거로는 한·중 간의 경제 구조가 상호 보완적이어서 경제 제재는 중국 경제에도 타격을 안기며, 현재와 같이 중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 제재는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상황은 그렇지 않다. WTO 규약을 준수하더라도 대응수단은 너무나 많다. 한·중 경제는 점차 보완성이 약화되고 경쟁 관계로 전환 중이다. 중국이 경제협력을 필요로 하는 국가는 이제 일본이나 독일이지 한국이 아니다. 그리고 중국의 성공적인 내수시장 강화로 대외의존성은 대폭 약화되고, 자체가 완결적인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중국은 대체가 가능한 시장이 존재하는 반면 한국은 중국 시장을 대체하는 상대를 찾기 어렵다.

중국은 지난 7월8일 한·미가 사드 도입에 대한 결정을 내린 직후, 다각도로 대응책을 강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결과,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첫 번째, 사드 문제와 북핵 문제는 분리하여 대응한다. 두 번째, 사드 문제보다는 북핵 문제가 더 중요하고 사드 문제로 한·중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킬 수는 없다. 세 번째, 사드 문제에 대한 중국의 반대 입장을 한국 측이 분명히 인식하게 한다. 네 번째, 추후 중국의 입지를 고려하여 비관세 장벽이나 정당한 절차와 방식에 입각해 한국을 압박하되 문서형식으로는 그 보복의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다섯 번째, 한국이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조치를 취하면 이에 상응하여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도 사드 문제 자체가 중국의 안보이익에 심각한 위협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중국의 현 군사역량이면 사드의 용도변화를 탐지하는 것은 물론 일단 유사시 이를 쉽사리 무력화할 수 있다. 그러나 사드는 미국이 대중 전략경쟁을 가속화하는 중요한 조치의 일환이며, 한·미동맹이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바탕으로 대중 견제로 전환하는 시발점이 되고 있다는 우려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 더구나 시진핑 외교에서 대담하게 추진한 친한 정책이 가장 실패한 외교사안으로 전락하면서 시진핑의 권위에 큰 손상을 가져왔다.

최근까지 중국의 조치를 보자면 양면적이다. 우선, 불편함과 위협의식을 강화해 문제제기를 하는 수준에 아직 머물러 있다. 본격적인 대응조치를 아직 취하지도 않았다는 의미이다. 중국은 한·중관계를 파괴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타협하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취할 대응 리스트를 점검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 마찰의 단계적 확대, 영해와 영공분쟁, 군사적 조치까지 올라갈 수 있다.

한국 일각에서는 중국의 이러한 압력을 국가자존심의 문제로 치환하거나 한·미동맹을 강화해 대응하자는 논리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대응들이 북핵 위협과 경제 위기 등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턱없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더 수렁에 빠져드는 결과로 귀결될 것 같다는 불안감마저 증폭되고 있다.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 의지도 역량도 없다. 중국은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 구조를 형성해가고 있다. 이제 중국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주도하려 할 것이다. 향후 중국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점차 약화될 것이다.

국제정치에 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중이 모두 자국의 특수이익을 한국에 강요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 위기에 대응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은 극도의 명민한 전략적 판단과 신중한 안보외교 정책, 국력의 결집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해 있다. 다행히도 이번 탄핵정국이 한국의 추락하는 안보위기를 돌이킬 가능성을 던져준다. 더 이상 무능한 정권과 정책결정은 안 된다. ‘민주’와 ‘숙의’를 바탕으로 최대한의 지혜를 모으고, 국론을 결집하면서, 배타적인 방식이 아닌 포용적인 방식으로 국제관계를 풀어나가야 한다. 어렵더라도 그 길만이 살길이다.

김흥규 | 아주대 교수·중국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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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한 힐러리 클린턴의 꿈은 백인 남성들의 이해를 대변한 도널드 트럼프에 의해 좌절됐다. 클린턴은 고별사에서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한탄하면서 장차 미국 소녀들 중에서 여성 대통령이 꼭 나오기를 바란다는 비원을 전했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나오기 힘든 여성 대통령이 4년 전 한국에서 나왔다. 유교의 영향으로 가부장적 색채가 짙고, 남성 중심적인 나라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 당시 필자는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대단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는 무슨 힘으로 대통령이 됐을까. 무엇보다 대통령이었던 아버지의 후광과 영남 지역주의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의 “우리도 한번 기 펴고 살아보자”는 표심도 여성 대통령 만들기에 한몫했을 것이다.

18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신임대사 임명장 수여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입장하고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런데 박 대통령이 임기를 못 마치고, 그것도 모양새 나쁘게 내려올 것 같다. 비선 측근들이 국정을 농단하도록 방치했고,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공모 혐의까지 받고 있다. 검찰이 현직 대통령을 ‘공범’ ‘피의자’로까지 규정했다. 국정농단과 비리에 대해서는 장차 법적 조치가 따를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대신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과오에 대해 짚으려 한다. 박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내려와야 한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

2014년 1월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을 외쳤고, 작년 7월에는 “내년에라도 통일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북한 붕괴를 믿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들인데, 최근 그 발원지가 최순실이라는 비선 측근이었다고 알려졌다. 대통령이 ‘주술적’ 예언에 근거해 외교·안보정책을 펴다니? 이건 국정농단을 넘어 국가안위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다. 금년 들어 숨 가쁘게 전개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등 일련의 결정들이 북한 붕괴를 앞당기려는 조치였다는 해석이 나왔다. 북핵 문제에 대해 대화·협상 대신 압박·제재로 일관한 것도 북한붕괴론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면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밖에 안 나온다.

사드 배치를 전격 발표해서 국론분열과 국익훼손을 자초한 것도 그렇지만, 작년 말 일본에만 유리한 일본군 위안부 합의도 뭔가에 들씌워지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결과였다. 최근 대통령의 리더십이 붕괴된 상황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서두르는 것도 앞으로 국익을 해칠 것이다. 요컨대 임기 동안 박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관련 결단들은 결과적으로 나라를 절단 낼 가능성이 크다. 하루속히 시정돼야 한다. 그중에서도 전시작전권 환수 무기 연기는 최대 최악의 과오다.

요즘 박 대통령은 해외 언론의 만평을 장식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희화화한 만평들을 보면서 부끄럽다 못해 슬프기까지 하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23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이 불참했다. 박 대통령 자신이 대외적으로도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는 걸 실토한 것이다. ‘피의자’라서 다음달 한·중·일 정상회의에도 결국 못 갈 것이다. 이쯤 됐으면 대통령은 모양새가 더 나빠지기 전에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자기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지지자들마저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 사람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운운하면서 버틴단 말인가. 설사 법적으로 버틴다 할지라도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이미 식물 대통령이 되었다.

박 대통령은 여성들이 그나마 얼굴이라도 들고 살 수 있도록 깔끔하게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 소녀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고별사에 이런 말을 보태주기 바란다. “소녀들이여, 그대들은 꿈을 갖고 모든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소중하고 파워풀한 존재다. 나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립적이고 유능한 사람들이 돼라. 그리하여 여러분 중에서 성공한 여성 대통령이 꼭 나와주기 바란다”라고.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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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재장악을 위한 반격에 나서자마자 그 첫 번째 방책으로 보수 결집을 획책하고 있다. 5%에 머물고 있는 지지율을 조금만 더 끌어올리면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숨은 보수파를 결집시키기에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 자신은 청와대에서 장기농성을 하면서 바깥에서 보수 구원병을 조직해 난국을 돌파하는 전술인 셈이다. 제 살길을 찾자고 나라를 벼랑 끝으로 몰고 시민을 분열시키는 막장 승부수까지 던지는 대통령을 보면서 할 말이 없어진다.

박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보수와 진보진영 간 대결 조장도 불사하겠다는 뜻이 역력하다. 최근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은 하나같이 보수와 진보 간 견해가 다른 것들이다. 그제 국방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장소인 성주 롯데골프장과 남양주시 퇴계원 군용지를 맞바꾸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유보해야 마땅한 사업에 도리어 속도를 높이고 있다. 4년 동안 가만히 두었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갑자기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인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1일 협상 재개 선언에서부터 14일 가서명까지 초고속으로 진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00만 촛불’의 퇴진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지난 16일 밤 청와대가 어둠 속에서 적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는 국내 정치 상황과 별도로 외교안보 현안은 지속추진해야 한다는 일부 보수여론을 등에 업고 지지층을 규합하겠다는 의도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도 보수 결집용으로 동원되고 있다. 보수성향의 교육단체인 교총까지 반대 입장을 밝혔는데도 강행하고 있다. 퇴진 압력에 물러나기 일보 직전에 몰린 대통령이 국가의 중대사를 서둘러 결정하는 것은 고금을 둘러봐도 상식이 아니다. 일자리 창출이나 철도파업 등 민생과 직결된 현안은 다 제쳐두고 갈등을 조장하는 정책만 추진하는 저의는 보수층 결집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다. 다음 정권이 짊어질 부담을 배가시키는 대통령이 밤잠을 설치며 나라 걱정을 한다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친박 인사들의 억지춘향식 박 대통령 옹호작전도 시작됐다. 어제는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뜬금없이 박 대통령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일방적으로 추궁해선 안된다”며 박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사퇴 요구를 마녀사냥으로 폄훼했다. 대통령이 비선 실세에 의지해 국정을 농단하는데도 총리 자리에 있으면서 한마디 못한 사람이 무슨 염치로 나서는지 모르겠다. 당내 친박 인사들도 일제히 박 대통령 지키기에 나섰다. “불순 세력이 있다”는 등 막말까지 하면서 지지세력을 모으려 갖은 애를 썼다.

박 대통령의 보수 결집은 국정을 망치는 행위이자 이 땅의 보수세력을 모욕하는 일이다. 국정농단과 보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금 박 대통령이 시민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은 이념의 차이나 정책의 선호 때문이 아니다. 보편적 가치, 특히 전통적으로 보수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비선에게 특권을 주기 위해 권력을 사용한 것이야말로 명예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보수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이런 일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보수 결집을 시도하는 것은 보수층의 양식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어제 범시민사회단체연합 등 500여 보수단체가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광화문 거리로 나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며 새누리당 해체와 건전 보수당 재창당을 주장했다. 이것이 진정한 보수의 목소리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하는 일은 국가가 망가지든 말든 나 혼자 살겠다는 행태다. 부패는 진보·보수를 떠나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낸 국가 위기 상황에서 반성은커녕 편가르기를 조장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반국가 행위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지금 박 대통령을 따를 수도 없고, 따라서도 안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숨어 분열 책동으로 연명을 꾀하는 일을 중지해야 한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고개 숙였던 사람이 잘못이 없다며 다시 고개를 든다면 현실을 매우 잘못 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국정농단과 권력남용, 부패를 위해 박 대통령을 지켜줄 보수는 없다. 박 대통령, 정신 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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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엊그제 육군협회 주최 조찬강연회에서 “8~10개월 안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포대의 한국 전개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에 오는 사드 포대는 괌 포대보다 큰 규모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한국의 정정불안에도 사드 배치 일정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의 혼란한 정치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국의 이익만을 챙기려 한다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미국은 사드 배치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문란 파문의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더라도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의 국방부에 앞서 구체적인 사드 배치 계획을 사실상 발표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다. 한국의 안보 주권을 무시하고,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마음먹지 않고는 이렇게 할 수 없다. 지금 이 시점에 사드를 거론하는 것이 동맹국으로서 적절한 처신인지도 자문해볼 일이다.

주한미군 배치 사드 포대의 규모가 괌 포대보다 클 것이라는 발언 내용 역시 반드시 따져봐야 할 문제다. 주한미군 사드는 괌과 같이 1개 포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한·미 양국은 밝혀왔다. 그런데 누가 왜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는지 이유와 경위를 묻고 싶다. 사드 확대 방침은 여전히 사드 배치 자체를 반대하는 다수의 한국 시민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군사적 효율성이 의심되고 주변국과의 갈등을 초래하는 사드 배치를 고집하는 것은 한국을 위한 일이 될 수 없다. 미국이 진정 한국을 동맹국으로 생각한다면 사드 규모 확대가 아니라 배치 계획 자체를 철회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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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해상에서 발생한 중국 어선의 해경 고속단정 침몰 사건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이 법 집행에서 무력 사용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는데 집행 권력을 남용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불법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에 벌컨포 등 공용화기로 강력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정면 반박한 것이다. 자국 어선이 불법조업을 단속하던 해경 고속단정을 고의로 침몰시킨 일을 두고 그렇게 공격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11일 오후 전남 목포시 삼학도 해경전용부두에서 진행된 중국 어선 소감어04012호 화재 사건 실황조사 중 해경 대원이 폭음탄을 투척했던 상황을 재연해 보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전남 신안군 홍도 해상을 항해하던 소감어호에서 해경 검문검색 중 불이 나 선원 3명이 숨지고 선장 등 14명은 구조됐다. 연합뉴스

양국은 2001년 발효된 한·중어업협정을 통해 배타적 경제수역에 근거한 어업질서를 유지해 왔다. 한국 정부는 매년 중국 어선에 할당제를 적용해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조업을 허가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이 갈수록 폭력적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 어선의 불법조업으로 한국과 마찰을 빚을 때마다 어민들에 대한 교육과 지도강화를 다짐했으나 말뿐이었다. 이번 사건도 한국 정부가 범죄를 저지른 어선을 특정해 통보한 만큼 즉시 체포해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지만 이를 외면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주권 수호 차원에서 중국 어선의 불업조업을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어업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강경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국과 불법조업 단속뿐 아니라 어족자원 보호 등 장기적인 협력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한국 정부의 강온 양면 대응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한·중 관계는 그러지 않아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수교 이래 최악의 상태에 직면해 있다. 양국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소통과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12일 중국 어선의 해경 공격을 두고 전쟁 운운한 것은 사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섣부른 감정적 비난은 서로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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