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끝난 지 닷새가 지났지만 국회 임명동의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김 후보자가 사법부 수장으로 부적절하다며 심사경과 보고서 채택조차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후보자가 특정 이념 성향이 있는 법원 사조직을 이끌었고 국민 상식에 어긋나는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지지한다는 얘기도 흘리고 있다. 보수야당의 색깔론과 성소수자 혐오에 신물이 난다. 김 후보자가 회장을 지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은 판사들의 대중적인 학술모임에 불과하다. 동성애와 관련해서도 김 후보자는 “동성애를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해서도 안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견해를 피력하는 것도 하나의 권리로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청문회 시작 전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국민의당의 모호한 태도는 사태를 더욱 키우고 있다. 당이나 당 대표의 알량한 존재감 부각을 위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때처럼 반대표를 던질 태세다. 시민들의 사법개혁 열망을 짓밟고,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반민주적인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른바 ‘땡깡 발언’에 대한 사과와 김 후보자 인준 문제를 결부시키고 있지만 이 둘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은 김 후보자가 지난 31년간 내린 판결 중에 함량 미달이나 반인권적·비양심적인 것이 있는지, 특정 정파에 유리하거나 사상적으로 치우친 것이 있는지, 성소수자에게 특혜를 주거나 차별한 것이 있는지 구체적인 증거를 대기 바란다. 지금과 같은 엄중한 시기에 정략적으로 대법원장 후보자를 비난하고 국회 임명 절차를 지연시키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이다. 

역대 대법원장 후보자 인선은 정권 성향에 관계없이 전임자 퇴임 전에 이뤄졌다. 여야가 정파를 떠나 대승적으로 협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6년 전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보수성향의 양승태 현 대법원장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면서도 임명동의안을 처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사법부 수장 공백이라는 헌정 초유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달라”며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통과를 국회에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와의 협치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제 국회가 화답할 차례다. 바람직한 삼권분립을 위해서는 인준 절차와 과정에서 사법부에 예우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양 대법원장 임기는 오는 24일 종료된다. 시간이 별로 없다. 국회는 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사법부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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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이슈가 연일 뜨겁다. 거대한 변화가 느껴진다. 파격적이고 참신한 인사에 새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취임 후의 행보를 보면 촛불시민의 목소리에 조응하여 검찰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정상의 검찰 과거를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메시지에 검찰조직은 사태의 향방을 숨죽여 주시하고 있다. 검찰개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는 권력이 또 있다.

바로 사법부다. 사법개혁을 주장하는 판사 출신이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임명된 사실 자체가 사법부를 긴장하게 한다. 검찰에는 정치로부터의 중립성 확보가 화두지만 사법부는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문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수장인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된 일이다. 개혁의 시대에 사법부도 예외는 아닐진대, 사법부 내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통제 시도 등 최근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불거진 사태로 사법개혁의 필요성과 압박은 더해지고 있다. 사법부 내의 블랙리스트로 양심과 소신을 지키는 판결이 내려지지 않도록 길들이기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제왕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대응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증폭시켰고 재판의 독립에 대한 회의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급기야 대법원장은 법원 내부 게시판을 통해 책임을 통감하고 판사들의 전국판사회의 소집 요구를 수용한다면서 뒤늦게 사태 수습을 꾀하고 있다.

대법원 법원전시관에 법관의 독립성을 규정한 헌법 제103조 조항이 전시돼 있다. 내용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헌법 101조 제1항)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김영민 기자

헌법 제103조에 따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사법권력을 실현할 힘과 돈이라는 현실적 권력이 없는 대신 독립성을 보장해 준 것이다. 국가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는 법치주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는 최후 보루다. 무엇이 법이고 진실인지를 선언하는 최고기관이다. 그래서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심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사법 독립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언론이나 여론, 재벌, 이익집단 등 외부로부터의 영향도 있을 수 있으나, 무엇보다도 법원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여전히 과제다. 인사제도와 관료적 구조가 법관의 독립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설문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사법행정에 관하여 대법원장, 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표현을 한 법관은 보직, 평정, 사무분담 등에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법원장의 권한, 승진제도와 인사제도, 법원행정처의 조직과 권한과 같은 유·무형의 압력 요인들로 인해 법관의 독립이 해쳐질 우려가 상존한다. 이것이 사법을 서열화하고 행정조직처럼 만들기 때문이다. 사법조직이 탈관료화되고 민주화되어야 법관의 조직 내부로부터의 독립도 이룰 수 있다. 그래야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얻은 사법권을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행사한다는 믿음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위로부터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으면 마치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처럼 법관동일체가 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사법부 내부로부터 개별 법관의 독립을 저해하는 법관인사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사법개혁의 핵심은 사법의 민주화다. 법관 개개인이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 있게 재판해야 한다. 하급심이 역동적이어야 정의가 살아난다. 법관 개개인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관료화된 사법부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현행 법관 인사 방식과 대법원장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법원 구조를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과 헌법재판관 지명권처럼 헌법사항이면 개헌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만큼 그 사회적 변화를 대법원 구성에 반영해야 한다. 국민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사와 이익이 반영되도록 대법관의 직업적 배경, 성별, 정치적 성향 등에 있어 다양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법원이 변화하는 시대의 법정신을 해석하고 선도하며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최고법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법원행정처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 법관들의 업무지원을 위한 보조적 역할에 그치도록 개혁해야 한다.

일선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법관회의를 제도화·상설화하여 사법정책 결정의 민주적 정당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법원 조직을 상하 위계조직이 아니라 수평적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과 소통하는 법원, 국민이 신뢰하는 재판이 되려면 사법권력에 대한 시민적 감시와 통제, 참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사법개혁의 추동세력은 깨어있는 국민이다. 청와대나 정치권이 주도해서는 안된다. 사법권력도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사법개혁도 국민과 호흡을 같이해야 하며 국민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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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가장 큰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소장 판사들이 지난 15일 회의를 열고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과 관련해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를 요구했다. 독립성이 강하고 판사 개개인이 독립기관이나 다름없는 단독재판부 소속 판사 91명 가운데 53명이 참여했다. 앞서 지난 4월 말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들의 회의 이후 전국 18개 법원에서 11번의 판사 회의가 열렸다. 판사들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법관들의 자유로운 학술활동에 대한 침해는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서 결코 있어서는 안될 심각한 사태”라고 양 대법원장을 비판했다. 양 대법원장의 사퇴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사법부 수장을 탄핵한 것이나 다름없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일 차에서 내려 대법원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김영민 기자

사법파동으로 번진 이번 사태는 양승태 사법부의 농단에서 비롯됐다. 판사 통제를 목적으로 한 권력자의 부당한 지시와 증거인멸, 블랙리스트 운용 등 박근혜 게이트에서 발생한 모든 일이 사법부에서 똑같이 일어났다. 법원행정처를 통해 판사들의 학술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다 들통난 것이 발단이지만 자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를 꾸려놓고도 결국 사태를 수습하지 못했다. 사법부의 자정 능력이 한계에 달했음을 드러낸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양 대법원장은 지금껏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일부 진보 성향 판사들의 사법부 흔들기라는 식으로 되레 물타기를 시도했다.

요즘 대법원은 이상훈·박병대 대법관 후임 선발을 위한 대법관 제청 작업을 벌이고 있다. 대법관은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충실히 보장하는 사법부의 최고 요직이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를 아울러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시민 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대법관 임명의 제청권을 사법농단의 장본인인 양 대법원장이 행사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양 대법원장의 임기는 오는 9월까지다. 그러나 임기에 연연할 상황이 아니다. 양 대법원장 스스로 거취를 정하지 못한다면 타의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 대법원장 인사권과 법원행정처 권한 축소 등 대법원 개혁 작업도 양 대법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외부 힘으로 강제될 수밖에 없다. 시민의 신뢰를 상실하고 후배 판사들의 신임까지 잃은 사법부 수장이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 양 대법원장은 고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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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을 조사한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가 지난 18일 내놓은 보고서는 사법부의 자정 능력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일선 법관들과 시민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사태를 축소·은폐하기 위한 꼼수로 진상조사위 카드를 사용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진상조사위는 고영한 법원행정처장과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이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음에도 행정처가 조직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행정처 컴퓨터에 판사들 뒷조사를 한 파일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컴퓨터를 조사하지 않은 채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단정지었다. 양 대법원장을 조사했다면서도 무슨 내용을 묻고 어떤 답변을 들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전·현직 고위 법관 7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는 논리적 비약과 모순, 궤변으로 가득 찬 보고서를 내놓고도 “어떠한 편견과 예단도 갖지 않고 철저하고 엄정한 조사를 했고, 조사대상자들이 적극적인 태도로 조사에 응해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대법원의 법관 탄압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18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ㅣ연합뉴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이다. 행정처를 통해 판사들의 학술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다 들통난 것이 발단이다. 이 과정에서 행정처 소속 판사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해당 판사가 지시를 거부하고 사표를 내자 부임 2시간 만에 지방법원으로 인사 복귀 조치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법관 인사는 대법원장 전권이고, 특히 행정처로 발령난 판사를 되돌리는 인사를 대법원장이 모를 리 없는데도 양 대법원장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대법관인 고영한 행정처장은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하여 어떠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거짓 해명까지 했다.

권력자의 부당한 지시와 증거인멸, 보복 인사, 블랙리스트 운용 등 박근혜 게이트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판사 통제 목적으로 사법부에서도 재연됐다. 법관의 인권을 침해하고 재판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민주적·반헌법적 행위를 했다면 대법원장 탄핵 사안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사법부 내 헤게모니 다툼인 양 물타기하고, 일부 진보 성향의 판사들이 양 대법원장을 흔들기 위한 것이라는 식의 여론전을 펴고 있다. 거짓 해명과 사실 은폐로 사건을 키우는 사법부의 모습이 6개월 전 국정농단 사건 초기 청와대와 닮은꼴이다. 진상조사위의 부실 조사로 이번 사태를 사법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국회 국정조사 등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사법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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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인사자료 등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박근혜 게이트에 버금가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판사들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김모 전 심의관 컴퓨터에 대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동향을 정리한 일종의 사찰 파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찰 파일에 관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법원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법원행정처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해 발령 2시간 만에 행정처에서 인사조치당한 ㄱ판사는 이 파일 관리 업무도 맡으라고 지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과거에도 설이 무성했다. 게시판 글이나 판결 등을 분석해 법관 인사나 연수자 선발 때 활용한다는 것이다. 판사들의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설문조사에서 법관의 88.2%가 대법원장 등의 뜻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했을 때 보직 등에서 불이익이 우려된다고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4월 7일 (출처: 경향신문DB)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법관의 인권을 침해하고 재판의 독립성을 거스르는 반민주적·반헌법적 행위다.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침해한다. 대법원이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운용한 것이 확인되면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는 탄핵이 불가피하다. 양 대법원장 등 법원 수뇌부는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 존재 여부를 떠나서 판사 블랙리스트가 거론된 것 자체가 사법부엔 치욕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사법개혁 방해 의혹을 조사 중인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는 블랙리스트 관련 진술을 판사들로부터 확보하고도 쉬쉬하면서 의혹 규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블랙리스트 파일이 있었다는 컴퓨터를 당장 확보해 디지털 포렌식 등으로 복원하고 정밀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의혹의 중심에 있는 양 대법원장도 직접 조사해야 한다. 대법원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벌인 판사 통제 작업의 실체가 이번 기회에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나 검찰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최선은 지금이라도 양 대법원장이 진실을 밝히고 사죄하는 것이다. 양 대법원장과 사법부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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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이 국가정보원의 사찰을 받았다는데 3000명에 달하는 판사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법원 게시판도 조용하고 판사들 사이에 화제도 아니다. 전직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양승태 원장이 업무시간에 등산 갔다는 내용이잖아요”라고 심드렁히 말했다. 이렇게 되니 “실로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라는 헌정사상 가장 강경한 성명을 읽은 대법원 공보관만 무람한 처지가 됐다.

정권의 간섭에는 어김없이 저항해온 다섯 차례 사법파동은 우리 법원의 자랑스러운 역사다. 권력에 순종하고 협력해온 검찰은 흉내조차 내본 적이 없는 일이다. 이런 사법부의 수장이 ‘실로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를 선언하는데도 판사들은 냉담하다. “사생활을 들춰낸 것도, 재판의 결론을 알아낸 것도 아니다. 업무시간에 등산을 갔다는 것뿐이다. 대법원도 예상한 수준 아니냐”고 판사들은 말했다.

나는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법원에 출입했는데 그때도 법원 담당 국정원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공보관도 만나고 법원장도 만나 돌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이들과 정보를 주고받던 시절이 있다. 최근에는 판사들이 국정원의 사상검증을 거쳐 임관한다. 양승태 대법원은 대수롭지 않다고 반응했었다. 등산 문제로 발끈하는 대법원장이 그래서 어색한 것이다.

국회 청문회 도중 불거진 대법원장에 대한 사찰 의혹이 알려진 15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퇴근하며 기자의 질문을 받자 손사래를 치고 있다. 정지윤 기자

판사들은 속내를 털어놨다. “이미 한참 전에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수첩이 공개됐다. 청와대가 판사들을 손보려고 벼른 사실이 드러났지만 말 한마디 없던 대법원 아니냐”고 했다. 실제로 법원행정처는 관련 법관 징계는 청와대에 영향받지 않았다는 동문서답을 대통령이 탄핵된 지난 9일에야 내놓았다. 정권의 판사 위협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대법원장의 순결만 주장하는 태도였다.

청와대의 표적들은 빠짐없이 고초를 겪었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무죄 판결을 비판한 김동진 판사, 선박 사고 영장을 기각하면서 세월호 사고와 국가의 책임을 언급한 이형주 판사, 국가보안법 사범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박관근 판사 등이다. 게으른 기자인 나는 모르는 사건들이 산처럼 많을 것이다.

판사들의 싸늘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대법원은 등산사찰 항의 성명에 이렇게 덧붙였다. “청와대 등에서 법원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였다는 의혹이 최근 제기된 바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법원으로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청와대의 시도가 전달되지는 않았다며 이번에도 대법원장만 보위했다.

이런 대법원이 최근 대법원장의 강력한 인사권을 복원하는 인사 방침을 공식화했다. 역사를 되돌리는 일이다. 앞서 2010년 국회는 대법원장의 지나친 인사권을 해소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대법원장이 지방법원 부장판사 중 일부를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시키고, 이들을 다시 추려 대법관에 제청하면서 법관들을 줄 세우는 폐해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외부의 압력이 강해지자 2011년 대법원은 개혁 요구를 일부 반영해 개선안을 만들었고 올해로 시행 5년째로, 과도기였다. 그런데 양승태 대법원장이 퇴임을 열 달 앞두고 사실상 백지화한 것이다. 판사들은 자신들의 인사 문제라 발언을 주저하고 있으며, 행여 내년 2월 인사에 불이익이 있을까 숨죽이고 있다. 판사들에 대한 청와대의 위협은 외면하면서 이 와중에 제왕적 인사권을 회복했다.

“법관들은 정치권력도 두려워하지 않고 언론권력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관은 겁내는 것이 있는데 대법원장의 인사권”이라고 판사들은 말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을 앞두고는 지방법원 부장판사들이 눈치를 보고, 대법관 제청을 앞두고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움직인다. 제왕적인 대법원장은 무오류의 대법원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모든 다른 의견들을 소멸시켜가고 있다. 이것이 2016년 겨울의 사법부다.

사회부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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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시대상황에서 사법부가 사법개혁을 주도해 가치관을 제대로 정립하고 법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다해 주기를 바라는 사회적인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최근 집회·시위와 관련한 행정법원의 결정이나, 원격 심리절차 시행 등은 법원이 사법 소비자 친화적인 방향으로 변모를 시도하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그렇지만 사법제도 운영에서 사법 소비자 친화적 개혁, 판결문 공개를 통한 합리적인 사법통제 기반 조성, 그리고 신속히 해결되어야 할 전관예우 문제 등에서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법 소비자 친화적 개혁의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제도 개선이 필요한 게 많다. 먼저 현행 전자소송제도를 좀 더 확대해 모든 법원행정이 전자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거래 자체가 온라인화되는 상황에서 분쟁 해결 절차 역시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대명제를 세우고 점진적 개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제도 운영은 조속하게 사법 소비자에게 유익하고 편리하게 재편해야 한다. 법원 관할의 경우를 보자. 일반 소송사건과 지급명령 사건의 경우 관할 법원이 달라 일반인으로서는 이를 제대로 구분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용인시의 경우 일반 민사본안 사건은 수원지방법원이 관할 법원이나, 지급명령의 경우에는 수원지방법원 용인시법원이다. 법원 내부의 사정에 의해 이렇게 돼 있는 것이다. 사법 소비자가 이같이 복잡한 법원의 규정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잘못 청구를 했다면 법원은 내부적으로 간단한 이송절차를 밟으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법원 실무적으로는 관할 위반으로 각하 결정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법 소비자는 인지대 이중부담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는 과거 토요일이 법적 공휴일로 지정되기 이전에 법원 공무원들의 토요일 휴무제가 먼저 실시되면서 불변기일산정이 법원 편의 위주로 이뤄졌던 사례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법원 공무원이 토요일에 쉬기 때문에 법원 정문이 닫혀 있는 상태임에도 당일 접수를 하지 않은 경우 불변기간이 지난 것으로 보아 각하되는 불이익이 사법 소비자에게 전가됐던 것이다. 이 같은 법원의 태도는 형식적인 법논리상으로는 찬반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사법 소비자의 시각에서는 결코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 판결문 공개가 일부 이루어지고 있으나,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 가능하도록 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사법부에 대한 합리적인 통제는 판결문과 같은 재판기록 공개를 통해 사후적으로나마 실효성 있게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전향적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판결 확정 전에도 하급심의 판결문이 공개돼 사법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관예우 내지 비리와 관련한 법원의 인식전환 역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법원은 전관예우가 없다고 부인하고 있으나, 전관 비리 가능성과 위험성은 여전히 높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외국 법조계의 시각에서 국내 퇴직 법관의 변호사 활동, 특히 소송변론 활동 부분은 불공정 가능성이 높다. 고도의 윤리성을 확보해야 할 법원에서 이해관계 충돌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사법 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이므로 변호사단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 스스로 성찰하고 개선해야 한다. 이 같은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법부 신뢰 회복의 장애로 작용할 것이다. 법원의 불공정성이나 이해관계 충돌 가능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관의 행정부 진출이나 정계 진출 등은 사법부 스스로 윤리규범을 제정해 사전에 방지하고자 적극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직에 있는 법관에게 부당한 유혹요인으로 작용할 위험성이 있다.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시대 상황에서는 사법부 스스로 전관예우 내지 비리 해소 방안 등을 포함한 엄정한 사법개혁을 주도해야 한다. 바른 가치관이 정립되고 법이 제대로 설 수 있도록 사법부가 모범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김승열 변호사·카이스트 겸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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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