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법부가 13일 일흔 돌을 맞았다. 그러나 ‘양승태 사법농단’의 짙은 그늘 속에 법원도, 법관도 축하받지 못했다.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하고,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삼가온 문 대통령이 ‘재판거래’라는 용어까지 사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수사 방해’에 가까운 법원의 행태로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질타로 봐야 할 것이다.

사법의 위기는 총체적이다. 정의와 인권의 보루여야 할 법원이 온 나라의 두통거리가 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관사찰·재판거래 의혹으로 전·현직 법관들이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고,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대법원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에만 골몰해 압수수색영장을 줄줄이 기각하고 있다. 그사이 핵심 피의자가 주요 증거물을 인멸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진상규명을 촉구해온 전국법관대표회의조차 ‘영장 기각률 90%’라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침묵하고 있다. 오죽하면 ‘신(新)사법농단’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농단에 대해 “매우 참담한 사건”이라며 “사법부의 대표로서 통렬히 반성하고 다시 한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또 “일선 법관의 재판에는 관여할 수 없으나,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협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시민의 분노와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는 듯하다. 지금은 법원 내부에서 통용되는 관행으로 시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관련 법률과 내규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무엇이든 결단하고 행동할 때다. 피의자와 인연이 있는데도 영장심사를 회피하지 않은 영장전담판사는 교체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판사 1명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체제에서 탈피해 합의부(법관 3명) 형태의 전담 재판부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개혁이란 없다.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사법부의 모든 구성원은 사태의 엄중함을 깨닫고 사법농단 진상규명에 협조해야 한다. 과거의 재판거래 의혹은 덮어둔 채, 앞으로 ‘좋은 재판’을 하겠다는 다짐은 허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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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에 이어 법원개혁에 대한 국민 여망이 뜨겁다. 법원이 사법개혁 귀착지라는 점에서 당연한 수순으로 보이지만 사법부 스스로 자초했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끊임없이 검찰개혁이 논의되고 있는 사이에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법원 도입에 총력을 쏟았다. 현직 법관이 입법 로비를 위해 국회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말도 들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찍이 몽테스키외 이래로 정립된 삼권분립의 근간을 해치는 행위에 가깝다.

법관 사찰, 재판거래 의혹, 법원비리 수사 기밀 유출 및 비자금 조성 사건 등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 모습이 기업의 행태와 흡사하다.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는 국민들은 참담한 심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9월4일 (출처:경향신문DB)

법관이 누구던가. 검은 천으로 두 눈을 가린 채 인간의 잘잘못을 가리고자 했던 정의의 여신 디케의 화신에 다름없다. 두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대법원 현관의 디케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상이 아니다. 혹 이러한 변형된 상에서 나온 정의 관념이 오늘날 사법부의 암울한 현실을 초래한 건 아닌지 상상이 꼬리를 문다.

민초들은 비록 팍팍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이 사회에 한 가닥 정의가 살아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드러난 사법농단은 보통사람들이 가진 일말의 기대감마저 무너뜨렸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정신적 안전망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다. 법정에서 더 이상 보편타당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사법부(司法府)는 사법부(死法府)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이를 단순히 사법부만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야말로 헌법이 보장한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가치에 확고한 믿음을 가져왔고 또 자랑스러워해 왔다. 그런데 정작 이를 수호해야 할 법원은 모든 권력이 재판으로부터 나온다고 여겼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김명수 대법원이 들어선 지 1년이 되었다. 이번 기회에 사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불법행위들을 걷어내야 한다. 적폐청산 작업에 대해 내부 저항이 있음도 간간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로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것임을 안다면 개혁작업이 생각대로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자체 개혁이 지지부진하면 결국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하루빨리 법원을 헌법이 정한 제자리로 갖다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국민들의 허탈감을 치유해 주는 동시에 묵묵히 정의를 좇아 일하는 대다수 법관들의 자긍심을 고취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올해는 법원 70돌을 맞는 뜻깊은 해다. 그에 걸맞게 사법부 내부의 적폐를 도려내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유례없이 높다. 가뜩이나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법부이기에 그 길이 험난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김 대법원장 체제에 거는 기대가 크다. 분명한 것은 국민들이 김 대법원장의 사법부를 신뢰하고 있으며 법원 제자리 찾기 시도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들은 디케를 향해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게 사법인가를.

<최영승 | 대한법무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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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정의를 세우지 않고 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세웠다. 8월14일 ‘안희정 전 지사 성폭력 사건’ 1심 선고는 피고인을 심판하지 않고 피해자를 심판한 부정의한 판결이다. 업무상 위력을 작동시키는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해석할 의지와 역량이 없음을 이번 판결은 보여준다. 페미니즘 대통령을 선언한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법부가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수많은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사건’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8월16일 (출처:경향신문DB)

재판부는 “정상적 판단력을 갖춘 성인남녀” 간에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성적자기결정권이 모두 국민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고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일까? 노동권, 교육권, 참정권 등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실현되어 왔는가? 피해와 차별을 경험한 사람의 위치에서 권리가 실현되도록 싸워야 하는 현실이다. ‘왜 성적자기결정권을 명확하게 행사하지 않았는가’란 질문은 경사로 없는 투표소를 만들어 놓고 장애인에게 ‘참정권 보장하는데 왜 투표 안 해’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다. 피해자는 성폭력이 일어난 다음날에도 피해 사실을 표현하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여성 노동자였다. 24시간 언제든 대기해야 하는 수행원, ‘맥주, 담배’ 단어만으로 지시가 가능한 권력. 일상적으로 안 전 지사가 수행원들과 맺은 업무관계는 권위적이었다. 공무수행이란 명목으로 수행업무라는 ‘일’은 공사, 시간, 장소 구분 없이 안 전 지사가 원하는 때와 방법으로 요구되었다. 그것이 수행원의 역할이자 역량으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물리적 폭력 없는 위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용허가제로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는 이주여성이 사업주의 성폭력을 신고할 수 있는가? 거주시설 원장이 가해자인 경우 장애여성은 저항하기 쉬울까? 성별 권력은 수많은 불평등과 함께 작동한다.

정상적 판단능력은 개인들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아니다. 웃으며 거절해도,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해도,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서 보이는 난처함도 그것이 거절의 메시지임을 상대방이 받아들여야 한다. 결정권을 행사해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판단능력은 무용지물이다. 피해자의 판단능력이 아니라 거절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가해자들에게 질문해야 한다. 한편으론 장애인 피해자에게 판단능력 없음이란 기준을 쉽게 적용한다. 피해자다움에 장애를 대입시킴으로써 성적자기결정권의 ‘보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성적 주체성을 제한하고 차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어떤 방식으로든 피해자다움이란 요건을 갖춰야 보호법익이 작동된다. 피해자를 믿지 않고 피해자다움을 믿는다.

이미 기울어진 저울에 서서 시작된 재판. 가해자 편에서 피해자에게 질문하기를 중단해야 부당한 판결을 끝장낼 수 있다. 그러나 수십년이 지나도록 사법부가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낮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성폭행 가해자인 스타 수영선수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애런 퍼스키 판사를 주민투표로 해임시켰다. 판사소환제도가 없는 한국에선 어려운 일이지만, 사법권력의 관점과 판단의 변화를 촉구하는 싸움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무엇보다 다시 태어나겠다는 안 전 지사의 말은 끔찍하다. 처벌과 반성 없이도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권력과 권세를 가진 자들의 공모가 무죄를 만들었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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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앞서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을 출국금지한 검찰은 두 사람이 재임 당시 임 전 차장의 ‘윗선’으로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된 각종 조치를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직 대법원장·대법관에 대한 출금 조치는 극히 이례적이다. 법원이 두 사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하자, 검찰 자체적으로 강수를 둔 것으로 본다.

대법원은 인권과 정의의 최후 보루이며, 대법원장은 그 수장이자 표상이다. 전직 대법원장이 재임기간 권력을 남용한 혐의로 출금된 것은 사법부의 불행이고 수치다. 물론 모두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고구마 줄기 캐듯 쏟아지는 의혹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행태가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보여준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행정처는 전·현직 판사가 연루된 법조비리 수사상황을 보고받고,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사돈의 형사재판 상황을 관리했다고 한다. 대법원 재판예규에 어긋나는 행태로 직권남용이나 공무상 비밀누설이 될 소지가 짙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출처:경향신문 자료사진)

사법농단의 정황이 연일 보태지는데도 법원이 요지부동인 것은 유감스럽다. 검찰 관계자는 “자료제출 범위와 관련해 법원과의 입장 차가 크다. 저희가 필요하다고 한 것의 아주 일부만 주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처 내에서도 기획조정실 외에 사법정책실·인사총괄심의관실 등의 하드디스크는 접근조차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법정책실은 상고법원 추진 주무부서이며, 인사총괄심의관실은 대법원이 특정 법관들을 사찰한 후 인사상 불이익을 가했다는 의혹과 관련된 부서다. 기조실 자료는 내놓고 다른 부서 자료는 못 내놓겠다는 것은 수사를 거부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23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농단 관련 문건 410건 중 아직 공개되지 않은 228건을 공개해야 한다고 의결했다. 진상규명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법원행정처에 대한 우회적 반발로 해석된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관료화에 대한 반성으로 상설화한 법원 내 공식 기구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의 개혁과 독립을 갈망하는 법관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문건 전면 공개와 자료 제출 협조는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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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는 19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희생자 1명당 위자료 2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목포해경은 승객 퇴선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희생자들은 구체적인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선내에서 구조 세력을 기다리다 긴 시간 공포감에 시달리며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당연한 결과다. 사법부는 앞서 선주 일가, 선장과 선원, 해경 직원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개개인에 대한 단죄에 이어 초동 대응과 구조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을 법리적으로 명시한 의미가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년3개월 만이요, 재판이 시작된 지 2년10개월 만이다.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 책임이라는 당연한 판결을 내리는 데 왜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를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4년여 만에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법은 19일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유가족들이 국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허 희생자 1명당 위자료 2억원씩 지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도서관 서울기록문화관에 걸린 세월호 추본 리본.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유례없는 국가적 재난을 당하고 대통령은 사고 후 7시간 동안 긴급회의는 물론 대면보고도 받지 않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 정부 기관은 세월호가 기울어 침몰하기까지 가능한 자원을 모두 동원해 총력구조를 하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전원 구조’ 같은 잘못된 보고를 양산하고, 대통령에게 보여줄 사고현장의 동영상 따위를 확보하는 데 급급하며 혼란만 가중시켰다. 결정적인 순간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국가 전체가 제자리에서 할 일을 하지 않았다. 정부는 그 어디에서도 존재를 찾을 수 없었다. 참사 이후엔 진상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유족들을 조롱하고, 특별조사위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유족들은 이날 1심 판결에 대해 “우리가 소송을 낸 목적은 단순히 정부가 잘못했다는 걸 인정해달라는 게 아니었다. 도대체 국가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 달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유족들의 분노와 아쉬움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 및 청해진 해운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에서 4·16세월호가족협의회가 승소한뒤 기자회견을 여는동안 유가족들이 슬픔에 눈물을 보이고 있다. 김기남 기자

유족들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국가 책임과는 별도로 진상을 정확히 밝혀내고 관련자들의 책임을 따지는 것이 마땅하다. 304명의 희생자들이 구조를 기다리다 죽어가는 동안 국가는 뭘 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규명해야 한다. 그게 밝혀져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 안전사회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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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제헌절이다. 특히 올해는 제70주년 제헌절이라 더더욱 뜻깊다. 1948년 7월17일에 제헌헌법이 만들어져 공포된 이래 70년의 헌정사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민주헌정이 권력자들에 의해 유린당하는 위기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헌법을 지켜낸 이들은 주권을 실현하려는 평범한 국민들 자신이었다. 그래서 제헌절 70주년이 더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촛불혁명의 현장에서 국민들에 의해 가장 많이 애창되었던 현행헌법 제1조 제2항은 제헌헌법에서는 제2조에 규정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썼다. 이때 “주권”은 추상적 권력으로서 ‘국가의사를 전반적·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최고권력’으로 정의되며,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권력”의 “권력”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과 같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권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법원이 행사하는 사법권도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위임받은 사법권의 행사가 주권자인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것일 때에는 이 국민주권조항에 반하는 위헌적인 사법권 오남용이 된다. 제헌헌법은 이러한 사법권을 위임받은 법원의 판사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제대로 소신껏 사법권을 행사하라고 ‘사법권 독립’을 헌법에 규정해 주었다. 법관이 재판을 함에 있어 누구의 지시나 명령에도 구속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심판한다는 원리 말이다. ‘사법권 독립’은 모든 헌법교과서들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 구현장치의 하나로서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다. 제헌헌법은 제77조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이를 조문화하였고, 1962년의 제5차 개헌에서 “헌법과 법률” 이외에 법관의 “양심”이 추가되면서 현행헌법 제103조로 이어지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70년의 헌정사 동안 국민을 위한 공정한 사법권의 행사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위해 애쓴 대법원장들도 없지 않았다. 특히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대법원장은 당시 야당의 맹장인 서민호 의원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구체적 사건 재판에 대한 각종 간섭을 막아내고 법관들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다가 지병이 도져 한쪽 다리를 절단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사법권의 국민을 위한 공정한 행사와 이를 위한 개별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제헌헌법 이래로 70년간 일관되게 이어져온 우리 헌법의 엄숙한 명령이었다.    

최근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하의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한 사법농단 사태는 그래서 국민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이미 법원의 특별조사단이 조사하고 검찰에 임의 제출한 410개의 법원행정처 문건 등에서도 여러 위헌·위법한 사법행정권 오·남용 사례들이 담겨있다. 대법원장이, 또 법원행정처가 법관의 독립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재판을 하는 법관들을 뒷조사하고 이를 문건화하는 데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국민들의 피와 눈물이 담긴 사건들의 재판에서 공권력의 오·남용으로부터 국민들의 인권을 지켜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 힘쓰기는커녕, 오히려 당시 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제 도입을 위해 당시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한 정황이 담긴 문건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상고법원제 도입에 반대한 전 대한변협 회장이나 다수의 민변 변호사 등 민간인들까지 불법사찰한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과거 독재시대의 국정원이나 기무사가 한 민간인 불법사찰을 감행한 것이다. 실로 점입가경이다. 법을 잘 알고 재판을 했던 법원행정처의 법관들이 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이다. 앞으로 국민들은 이런 사법농단 사태 때문에 얼마나 더 놀라야 하고 얼마나 더 분노해야 하는가. 민주헌정 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도 법원은 이미 스스로 진행한 자체조사에서 검토한 자료들을 제외하고는, 여러 이유를 들어 검찰의 자료 제출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국민들의 눈에는 이것이 사법농단에 관여한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야 할 당사자인 법원이 스스로의 자의적인 판단을 내세워 어떤 자료는 줄 수 있고, 어떤 자료는 줄 수 없다는 식으로 선별적인 자료 제출 거부에 나선 것으로 비칠 뿐이다. 정녕 법원은 법원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제헌절을 즈음해 헌법 제1조 제2항의 국민주권조항과 제103조의 사법권 독립 조항을 다시 소리 내어 읽어본다. 마음이 아프다. 지금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같을 것이라 믿는다. 사법부가 지금부터라도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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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 2, 그 이상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다만’이라는 부사에 대한 설명이다.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자주 쓰는 단어도 아니고, 뜻을 보니까 무슨 말인지 더 헷갈리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이 단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만’이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두 문장을 이어주는 데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강씨(32·남)는 올해 1월7일 오전 2시20분께 제주 시내 한 마트 맞은편 도로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피해자 A씨(58·여)에게 다가가 갑자기 욕설을 하며 주먹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피해자의 옷과 머리채를 잡아 길바닥에 넘어뜨린 후에도 얼굴과 몸을 수차례 주먹으로 치고 발로 걷어차 코뼈를 부러뜨린 것으로 조사됐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강씨는 피해자인 A씨와 전혀 알지 못하는 관계였다. 그런 강씨가 환갑에 가까운 여성에게 막무가내로 폭력을 저질러 코뼈를 부러뜨린 것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강씨에게는 비슷한 범죄 전력까지 있다. 이런 사람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건 그 자체로 사회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엄격한 처벌이 필요할 터였다. 송 판사 역시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징역 3년에 처한다’ 정도는 돼야 문장 흐름이 자연스러울 텐데, 송 판사가 내린 판결은 놀랍게도 집행유예였다. 송 판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다만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같이 형을 정했다.” 그러니까 ‘다만’은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아찔한 반전을 가능케 하는 단어였다. 제주도에 가면 마트 맞은편에서 택시를 기다리지 말자.

또 다른 사례. 대구의 시내버스에 탄 A군(18·남)은 옆에 선 B씨(62·여)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B씨는 해당 사건으로 얼굴, 머리, 어깨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합병증으로 끝내 숨졌다. 당시 폭행을 만류하던 C씨(22)도 A군의 구타로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는데, 재판부의 판결은 이번에도 집행유예였다. “죄질이 나쁜 데다 유족이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여 피고인의 죄책이 절대 가볍지 않다. 다만 아직 10대에 불과한 피고인이 전과가 없고 초범인 점, 비기질성 정신병적 장애상태에서 범행한 점, 유족이나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고려했다.” 대구에서 시내버스를 타는 분들은 가급적이면 숨을 부드럽게 쉬자. A군이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사법부를 ‘다만’에만 의존하는 집단으로 보는 건 그들을 무시하는 행위다. 이씨(39·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지난해 7월, 집에서 여자친구 ㄱ씨(47)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ㄱ씨는 이씨에게 주먹으로 얼굴 등을 수차례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졌고, 결국 숨졌다. 재판부는 고심했을 것이다. 사람을 죽인 범죄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그래서 재판부는 우리에게 친숙한 ‘그러나’를 등장시킨다.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상반될 때 쓰는 접속 부사’인 ‘그러나’는 전혀 이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문장을 부드럽게 연결시켜 준다. “피해자의 고통, 유족들의 처참한 심정, 여자친구를 가격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점 등을 고려하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 그러나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사실을 확인하고자 다그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인다. … 고심 끝에 피고인이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기로 했다.” 여기서 ‘그러나’를 쓰니까 집행유예란 판결이 좀 더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그전처럼 ‘다만’을 썼다면 여론의 역풍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다음 사례에도 ‘그러나’가 등장한다. 최씨(66·남)는 잠든 아내의 머리를 둔기로 수차례 내리쳐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유인즉슨 자신의 외도 사실을 안 아내가 밥을 차려주지 않았기 때문인데, 물론 이 판결에도 집행유예가 나왔다. “피고인이 자신을 피해 도망치는 아내를 쫓아가 머리를 계속 때리는 등 범행 방법이 무자비하고, 이 때문에 다친 피해자가 피를 많이 흘려 사망할 위험도 컸다. 그러나 범행이 다행히 미수에 그쳤고, 피해자가 입은 상처도 치료돼 현재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여기서 ‘그러나’는 피해자의 빠른 회복력과 더불어 이 판결을 이해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지금도 사법부는 많은 범죄자들을 사회로 돌려보내고 있는 중이다. 여기엔 ‘다만’과 ‘그러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글쓰기 책을 냈던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다만’과 ‘그러나’의 올바른 용법을 가르쳐 드린다. “사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다만 그 국민이 선량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러나 사법부는 여전히 자신들이 국민들을 위한다고 믿는다. 국민 여론과 배치된 판결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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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사법부

근대는 픽션, 즉 만들어진 사회이다.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비근대적 사회의식은 픽션에서 불안을 느끼지만, 근대정신은 픽션의 가치와 효용을 믿고 재생산한다”고 했다. 이렇게 근대를 구성하는 픽션의 정점에 헌법이 있다. 국가라는 거대한 픽션의 설계도이다. 군사정부의 성실한 마름이던 대법원이 공정하고 독립적인 사법부라는 서구적인 픽션을 갖춘 것은 역설적이게도 1987년이 계기다. 시민혁명의 대상은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정권과 법원이지만 6월항쟁은 법원에 손을 대지 않았고, 법원은 혁명에 무임승차했다. 어설픈 타협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실체를 드러낸다.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판사가 이명박 정부 당시 대법관이 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관여한 검사가 박근혜 정부에서 대법관이 됐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7월2일 (출처:경향신문DB)

세상의 모든 픽션은 내러티브를 요구한다. 경험하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고 공유하게 만들어 픽션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일본헌법이라면 일왕의 존재가, 한국헌법에는 임시정부의 시간이 있다. 독재정권에 협력한 사법부에 공정함이란 픽션을 제공한 내러티브는 우리법연구회라는 존재다. 1988년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은 군사독재 시절 인물인 김용철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했다.(1982년 7월 문재인 사법연수생에게 판사임용 불가를 통보한 사람이 김용철 법원행정처장이다.) 6월15일 서울민사지방법원에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문건이 돌며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이들은 김용철에 반대했다. 이광범, 유남석, 김종훈, 한기택 등이 주축이었다. 이에 노태우 대통령은 김용철 대신 비슷한 정기승을 대법원장에 부쳐보지만 국회에서 부결된다. 2차 사법파동이고, 이 사건 주역들이 만든 모임이 우리법연구회다.

지난해 시작된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공정한 사법부라는 픽션은 위기에 처했다. 우리가 믿어온 재판의 공정함이 실재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이 자리를 파고든 것이 ‘보수적인 양승태 대법원의 악행’ 때문이라는 소문이다. 얼마 전 어느 방송사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와 “ ‘양승태 대법원’과 ‘이용훈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의 고등부장 승진율 자료를 달라”고 했다. 나는 “지난해 기사에서 양쪽 모두 100%라고 밝혔다”고 했지만 상대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러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추진한 이유가 퇴임 이후 변호사로서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냐”고 물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느 언론사의 기자는 “상고법원을 추진한 사람은 모두 징계 대상이 아니냐”고도 했다.

양승태도, 상고법원도 악이 아니다. 대법관 12명이 연간 4만여건을 처리하는 상황은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용훈 대법원’이 추진한 고등법원 상고부와 ‘양승태 대법원’이 추진한 상고법원이 다르지 않다. 변호사로 돈을 번 걸로 치면 양 전 대법원장이야말로 깨끗하다. 대법관을 마치고 하루도 변호사로 일하지 않다가 대법원장이 됐다. 그에 비해 이 전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마치고 삼성 등의 사건을 맡아 거액을 챙기고 세금도 누락했다. 행정처의 관료화가 본격화한 것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이다. 그런데도 눈앞의 상황을 보혁구도로 파악하는 것은 진실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1987년에 구축된 공정한 사법부라는 부당한 픽션을 재생산하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양승태 개인이 아니라 관료화한 사법부 그 자체다.

재판거래 의혹을 비롯해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 작성자 상당수가 우리법연구회 회원이다. 여기에 몇 명 되지도 않는 행정처 심의관 숫자, 그보다 조금 많은 우리법연구회 회원 숫자를 생각하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는 우리법연구회가 주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검찰 손에 들어간 어마어마한 문건을 발견하고도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결론을 적어 김명수 대법원장을 궁지로 몰아넣은 특별조사단에도 우리법연구회 회원이 있다. 끝이 아니다. 우리법연구회 초기 멤버들은 불법적인 문건을 작성한 후배 판사들을 만나 수사와 재판에 대비하고 있다. 보혁구도 같은 무책임한 상상으로는 이런 상황이 설명되지도, 부당한 픽션이 붕괴되지도 않는다.

엊그제 발표된 대법관 후보자를 두고 순수 변호사 출신이라서 의미가 있다거나, 우리법연구회 소속에 여성이라서 이번 사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낡은 픽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오히려 지금까지 판례를 바꾸어온 주인공은 서·오·남(서울대, 50대, 남성)들이 더 많고, 반대로 사형제에 합헌 의견을 내거나 쌍용차 노동자를 일터에서 몰아낸 민변 회장과 여성 변호사 출신도 있다.

사법이라는 제도는 픽션이지만, 재판이라는 작용은 현실이다. 지금 당장은 제대로 된 대법관을 가려내는 것부터 해야 한다. 부당한 현실에 저항해온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가진 대법관이 무너진 사법부를 살려낼 것이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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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김선수 변호사와 이동원 제주지법원장, 노정희 법원도서관장을 대법관 후보로 제청한 것은 대법원 구성 다양화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것으로 보인다. 세 사람은 역대 대법관 대다수를 차지했던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의 범주를 모두 벗어났다. 김 변호사는 법원·검찰을 거치지 않은 순수 재야 출신의 노동·인권변호사다. 이 원장은 고려대 출신으로 법원행정처 근무 없이 재판에만 전념해온 정통 법관이다. 노 관장은 젠더 관점을 지닌 이화여대 출신 여성 법관으로 여성의 지위와 권한에 관해 주목할 판결을 여럿 남겼다. 대법원은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국민 기대를 염두에 두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에 대한 인식 등을 고려해 선별했다”고 밝혔다. 외형상 인적 구성이나 대법관 가치관의 다양성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오는 8월 2일 퇴임하는 고영한, 김창석, 김신 대법관 후임으로 김선수 변호사(왼쪽부터)와 이동원 제주지법원장, 노정희 법원도서관장이 결정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일 김 변호사 등 3명을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해달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청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입법부는 지갑을, 행정부는 칼을 가지고 있다. 사법부는 지갑도 칼도 없다.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만 가지고 있다.” 10달러 지폐에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미국의 법률가이자 정치인 알렉산더 해밀턴 얘기다. 빈털터리 사법부는 시민의 신뢰를 밑천으로 비로소 권부(權府)가 됐다. 그러나 과거 대법원은 권력에 대한 추종과 사법부 기득권 지키기 행태로 유일한 밑천인 시민의 신뢰를 잃었다. ‘양승태 대법원’은 재판을 정치권력과의 거래 대상으로 삼는 사법농단으로 사법부 신뢰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여론조사에서 시민 10명 중 6명 이상이 사법부 판결을 불신한다고 했다. 신뢰관계가 무너진다면 판결은 정당성을 상실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는 사법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시민 신뢰를 회복하고 사법개혁을 추진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안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의 보수 일변도 구성을 탈피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최종심을 담당하는 대법관은 시민의 권리를 구제하는 마지막 심판자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가진 대법관 일색으로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관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추된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야당도 진보와 보수를 망라해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인물들이 대법관으로 임명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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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는 국민들의 신뢰를 먹고 산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존립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공정한 재판을 통해 쌓아올린 국민들의 신뢰뿐이다. 진정한 사법부의 권위도 높은 법대 위의 판사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들이 켜켜이 쌓여 형성된 국민들의 신뢰 속에서 세워진다. 국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마지막으로 기대는 언덕이 사법부다. 그런 사법부에서 일어난 이번 사법농단 사태이기에 국민들이 느끼는 충격과 배신감이 그만큼 더 큰 것이다.

1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 5월25일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3차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법관 사찰의 정황들이 지난 2차 조사결과 발표 때보다 더 구체적으로 확인되었고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판결들을 청와대와의 거래 수단으로 삼았다는 의혹을 살 수 있는 여러 정황들도 추가로 더 많이 나왔다. 특별조사단의 조사로 지금까지 밝혀진 사법농단이 크게 ‘법관 사찰’과 ‘재판거래 의혹’ 두 가지라면, ‘법관 사찰’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증거 확보가 된 셈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보면, 문건 정리와 작성을 시킨 것 자체가 형법상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이미 판시했기 때문이다. 문건에 언급된 판사들에게 어떤 인사상 불이익을 줬는지는 직권남용죄의 성립과 관련이 없는 사항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재판거래 의혹’이다. 이 ‘재판거래 의혹’ 부분 때문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금요일인 6월15일까지 법원의 입장 표명을 미루고 3주간이나 경청과 장고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3차 조사결과 발표 다음 날 김 대법원장은 검찰 고발이나 수사 의뢰까지 고려대상으로 삼겠다고 공언한 후 법원 내·외부의 의견 수렴에 들어갔고, 그 결과 고발이나 ‘수사 의뢰’에서 후퇴한 ‘수사 협조’의 입장을 최종적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의견수렴 과정에서 이 사태를 바라보는 법원 내부의 입장이 검찰 고발 여부를 놓고 노·소장 판사들 사이에서 분명하게 갈렸다는 점이다. 김 대법원장도 담화문에서 “미처 해명하지 못한 의혹들에 대한 외부기관의 수사를 요청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사법부에 대한 무분별한 수사로 사법부의 독립과 신뢰가 또다시 침해되는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사태를 법관들만의 문제로 보고 법원 자체적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일부 고위법관들의 인식은 이번 사태로 충격과 실망을 느끼는 다수 국민들의 인식과 크게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이미 재판거래에 관한 ‘의혹’만으로도 국민들의 사법부 신뢰는 상당 부분 무너졌다. 또다시 더 무너질 신뢰가 별로 남지 않았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적지 않음을 고려해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대법원장의 담화문 발표 직후에 같은 날 있었던 대법관들의 입장 발표 또한 국민들의 상황 인식과 간극이 크다. “재판거래 의혹에 대하여는 대법관들은 이것이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물론 대법원 재판을 믿어 달라는 말이겠지만, 이런 말로 재판에 대한 신뢰가 다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놀란 가슴을 달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이미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에 의한 고발이 열 건이 넘는다. 재판거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어차피 수사가 진행되면 드러날 것들이다. 검찰은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증거들을 확보해야 한다. 수사에서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배제해야 한다. 검찰은 국민의 혈세로 사들인 최첨단의 디지털 포렌식 장비와 인력을 가지고 있다. 특별조사단이 조사한 410개의 파일들뿐만 아니라, 이번 일이 터지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에 의해 긴급 삭제된 2만4500개의 파일들도 모두 복구해 이번 사태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봐주기 수사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법원이 아니라 검찰이 또 다른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사법부를 불신한다는 국민 여론이 64%이다.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와 기소, 그 후 이어지는 법원의 공정한 재판만이 이번 사법농단 사태로 허물어진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둘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국민들의 사법 불신은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까지 갈지 모른다. 사법부의 존립 근거가 완전히 붕괴되는 상황 말이다. 이 일은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다. 서두르지 말고 한발 한발 나아가자. 다시 말하지만 시작은 열지 못한 나머지 파일들을 복구하고 열어서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다. 지금은 진상규명에 화력을 집중할 때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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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끝난 지 닷새가 지났지만 국회 임명동의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김 후보자가 사법부 수장으로 부적절하다며 심사경과 보고서 채택조차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후보자가 특정 이념 성향이 있는 법원 사조직을 이끌었고 국민 상식에 어긋나는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지지한다는 얘기도 흘리고 있다. 보수야당의 색깔론과 성소수자 혐오에 신물이 난다. 김 후보자가 회장을 지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은 판사들의 대중적인 학술모임에 불과하다. 동성애와 관련해서도 김 후보자는 “동성애를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해서도 안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견해를 피력하는 것도 하나의 권리로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청문회 시작 전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국민의당의 모호한 태도는 사태를 더욱 키우고 있다. 당이나 당 대표의 알량한 존재감 부각을 위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때처럼 반대표를 던질 태세다. 시민들의 사법개혁 열망을 짓밟고,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반민주적인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른바 ‘땡깡 발언’에 대한 사과와 김 후보자 인준 문제를 결부시키고 있지만 이 둘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은 김 후보자가 지난 31년간 내린 판결 중에 함량 미달이나 반인권적·비양심적인 것이 있는지, 특정 정파에 유리하거나 사상적으로 치우친 것이 있는지, 성소수자에게 특혜를 주거나 차별한 것이 있는지 구체적인 증거를 대기 바란다. 지금과 같은 엄중한 시기에 정략적으로 대법원장 후보자를 비난하고 국회 임명 절차를 지연시키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이다. 

역대 대법원장 후보자 인선은 정권 성향에 관계없이 전임자 퇴임 전에 이뤄졌다. 여야가 정파를 떠나 대승적으로 협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6년 전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보수성향의 양승태 현 대법원장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면서도 임명동의안을 처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사법부 수장 공백이라는 헌정 초유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달라”며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통과를 국회에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와의 협치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제 국회가 화답할 차례다. 바람직한 삼권분립을 위해서는 인준 절차와 과정에서 사법부에 예우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양 대법원장 임기는 오는 24일 종료된다. 시간이 별로 없다. 국회는 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사법부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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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이슈가 연일 뜨겁다. 거대한 변화가 느껴진다. 파격적이고 참신한 인사에 새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취임 후의 행보를 보면 촛불시민의 목소리에 조응하여 검찰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정상의 검찰 과거를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메시지에 검찰조직은 사태의 향방을 숨죽여 주시하고 있다. 검찰개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는 권력이 또 있다.

바로 사법부다. 사법개혁을 주장하는 판사 출신이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임명된 사실 자체가 사법부를 긴장하게 한다. 검찰에는 정치로부터의 중립성 확보가 화두지만 사법부는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문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수장인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된 일이다. 개혁의 시대에 사법부도 예외는 아닐진대, 사법부 내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통제 시도 등 최근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불거진 사태로 사법개혁의 필요성과 압박은 더해지고 있다. 사법부 내의 블랙리스트로 양심과 소신을 지키는 판결이 내려지지 않도록 길들이기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제왕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대응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증폭시켰고 재판의 독립에 대한 회의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급기야 대법원장은 법원 내부 게시판을 통해 책임을 통감하고 판사들의 전국판사회의 소집 요구를 수용한다면서 뒤늦게 사태 수습을 꾀하고 있다.

대법원 법원전시관에 법관의 독립성을 규정한 헌법 제103조 조항이 전시돼 있다. 내용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헌법 101조 제1항)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김영민 기자

헌법 제103조에 따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사법권력을 실현할 힘과 돈이라는 현실적 권력이 없는 대신 독립성을 보장해 준 것이다. 국가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는 법치주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는 최후 보루다. 무엇이 법이고 진실인지를 선언하는 최고기관이다. 그래서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심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사법 독립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언론이나 여론, 재벌, 이익집단 등 외부로부터의 영향도 있을 수 있으나, 무엇보다도 법원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여전히 과제다. 인사제도와 관료적 구조가 법관의 독립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설문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사법행정에 관하여 대법원장, 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표현을 한 법관은 보직, 평정, 사무분담 등에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법원장의 권한, 승진제도와 인사제도, 법원행정처의 조직과 권한과 같은 유·무형의 압력 요인들로 인해 법관의 독립이 해쳐질 우려가 상존한다. 이것이 사법을 서열화하고 행정조직처럼 만들기 때문이다. 사법조직이 탈관료화되고 민주화되어야 법관의 조직 내부로부터의 독립도 이룰 수 있다. 그래야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얻은 사법권을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행사한다는 믿음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위로부터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으면 마치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처럼 법관동일체가 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사법부 내부로부터 개별 법관의 독립을 저해하는 법관인사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사법개혁의 핵심은 사법의 민주화다. 법관 개개인이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 있게 재판해야 한다. 하급심이 역동적이어야 정의가 살아난다. 법관 개개인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관료화된 사법부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현행 법관 인사 방식과 대법원장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법원 구조를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과 헌법재판관 지명권처럼 헌법사항이면 개헌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만큼 그 사회적 변화를 대법원 구성에 반영해야 한다. 국민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사와 이익이 반영되도록 대법관의 직업적 배경, 성별, 정치적 성향 등에 있어 다양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법원이 변화하는 시대의 법정신을 해석하고 선도하며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최고법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법원행정처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 법관들의 업무지원을 위한 보조적 역할에 그치도록 개혁해야 한다.

일선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법관회의를 제도화·상설화하여 사법정책 결정의 민주적 정당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법원 조직을 상하 위계조직이 아니라 수평적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과 소통하는 법원, 국민이 신뢰하는 재판이 되려면 사법권력에 대한 시민적 감시와 통제, 참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사법개혁의 추동세력은 깨어있는 국민이다. 청와대나 정치권이 주도해서는 안된다. 사법권력도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사법개혁도 국민과 호흡을 같이해야 하며 국민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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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가장 큰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소장 판사들이 지난 15일 회의를 열고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과 관련해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를 요구했다. 독립성이 강하고 판사 개개인이 독립기관이나 다름없는 단독재판부 소속 판사 91명 가운데 53명이 참여했다. 앞서 지난 4월 말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들의 회의 이후 전국 18개 법원에서 11번의 판사 회의가 열렸다. 판사들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법관들의 자유로운 학술활동에 대한 침해는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서 결코 있어서는 안될 심각한 사태”라고 양 대법원장을 비판했다. 양 대법원장의 사퇴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사법부 수장을 탄핵한 것이나 다름없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일 차에서 내려 대법원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김영민 기자

사법파동으로 번진 이번 사태는 양승태 사법부의 농단에서 비롯됐다. 판사 통제를 목적으로 한 권력자의 부당한 지시와 증거인멸, 블랙리스트 운용 등 박근혜 게이트에서 발생한 모든 일이 사법부에서 똑같이 일어났다. 법원행정처를 통해 판사들의 학술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다 들통난 것이 발단이지만 자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를 꾸려놓고도 결국 사태를 수습하지 못했다. 사법부의 자정 능력이 한계에 달했음을 드러낸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양 대법원장은 지금껏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일부 진보 성향 판사들의 사법부 흔들기라는 식으로 되레 물타기를 시도했다.

요즘 대법원은 이상훈·박병대 대법관 후임 선발을 위한 대법관 제청 작업을 벌이고 있다. 대법관은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충실히 보장하는 사법부의 최고 요직이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를 아울러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시민 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대법관 임명의 제청권을 사법농단의 장본인인 양 대법원장이 행사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양 대법원장의 임기는 오는 9월까지다. 그러나 임기에 연연할 상황이 아니다. 양 대법원장 스스로 거취를 정하지 못한다면 타의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 대법원장 인사권과 법원행정처 권한 축소 등 대법원 개혁 작업도 양 대법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외부 힘으로 강제될 수밖에 없다. 시민의 신뢰를 상실하고 후배 판사들의 신임까지 잃은 사법부 수장이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 양 대법원장은 고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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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을 조사한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가 지난 18일 내놓은 보고서는 사법부의 자정 능력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일선 법관들과 시민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사태를 축소·은폐하기 위한 꼼수로 진상조사위 카드를 사용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진상조사위는 고영한 법원행정처장과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이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음에도 행정처가 조직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행정처 컴퓨터에 판사들 뒷조사를 한 파일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컴퓨터를 조사하지 않은 채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단정지었다. 양 대법원장을 조사했다면서도 무슨 내용을 묻고 어떤 답변을 들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전·현직 고위 법관 7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는 논리적 비약과 모순, 궤변으로 가득 찬 보고서를 내놓고도 “어떠한 편견과 예단도 갖지 않고 철저하고 엄정한 조사를 했고, 조사대상자들이 적극적인 태도로 조사에 응해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대법원의 법관 탄압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18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ㅣ연합뉴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이다. 행정처를 통해 판사들의 학술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다 들통난 것이 발단이다. 이 과정에서 행정처 소속 판사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해당 판사가 지시를 거부하고 사표를 내자 부임 2시간 만에 지방법원으로 인사 복귀 조치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법관 인사는 대법원장 전권이고, 특히 행정처로 발령난 판사를 되돌리는 인사를 대법원장이 모를 리 없는데도 양 대법원장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대법관인 고영한 행정처장은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하여 어떠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거짓 해명까지 했다.

권력자의 부당한 지시와 증거인멸, 보복 인사, 블랙리스트 운용 등 박근혜 게이트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판사 통제 목적으로 사법부에서도 재연됐다. 법관의 인권을 침해하고 재판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민주적·반헌법적 행위를 했다면 대법원장 탄핵 사안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사법부 내 헤게모니 다툼인 양 물타기하고, 일부 진보 성향의 판사들이 양 대법원장을 흔들기 위한 것이라는 식의 여론전을 펴고 있다. 거짓 해명과 사실 은폐로 사건을 키우는 사법부의 모습이 6개월 전 국정농단 사건 초기 청와대와 닮은꼴이다. 진상조사위의 부실 조사로 이번 사태를 사법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국회 국정조사 등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사법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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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인사자료 등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박근혜 게이트에 버금가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판사들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김모 전 심의관 컴퓨터에 대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동향을 정리한 일종의 사찰 파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찰 파일에 관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법원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법원행정처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해 발령 2시간 만에 행정처에서 인사조치당한 ㄱ판사는 이 파일 관리 업무도 맡으라고 지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과거에도 설이 무성했다. 게시판 글이나 판결 등을 분석해 법관 인사나 연수자 선발 때 활용한다는 것이다. 판사들의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설문조사에서 법관의 88.2%가 대법원장 등의 뜻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했을 때 보직 등에서 불이익이 우려된다고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4월 7일 (출처: 경향신문DB)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법관의 인권을 침해하고 재판의 독립성을 거스르는 반민주적·반헌법적 행위다.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침해한다. 대법원이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운용한 것이 확인되면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는 탄핵이 불가피하다. 양 대법원장 등 법원 수뇌부는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 존재 여부를 떠나서 판사 블랙리스트가 거론된 것 자체가 사법부엔 치욕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사법개혁 방해 의혹을 조사 중인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는 블랙리스트 관련 진술을 판사들로부터 확보하고도 쉬쉬하면서 의혹 규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블랙리스트 파일이 있었다는 컴퓨터를 당장 확보해 디지털 포렌식 등으로 복원하고 정밀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의혹의 중심에 있는 양 대법원장도 직접 조사해야 한다. 대법원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벌인 판사 통제 작업의 실체가 이번 기회에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나 검찰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최선은 지금이라도 양 대법원장이 진실을 밝히고 사죄하는 것이다. 양 대법원장과 사법부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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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이 국가정보원의 사찰을 받았다는데 3000명에 달하는 판사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법원 게시판도 조용하고 판사들 사이에 화제도 아니다. 전직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양승태 원장이 업무시간에 등산 갔다는 내용이잖아요”라고 심드렁히 말했다. 이렇게 되니 “실로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라는 헌정사상 가장 강경한 성명을 읽은 대법원 공보관만 무람한 처지가 됐다.

정권의 간섭에는 어김없이 저항해온 다섯 차례 사법파동은 우리 법원의 자랑스러운 역사다. 권력에 순종하고 협력해온 검찰은 흉내조차 내본 적이 없는 일이다. 이런 사법부의 수장이 ‘실로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를 선언하는데도 판사들은 냉담하다. “사생활을 들춰낸 것도, 재판의 결론을 알아낸 것도 아니다. 업무시간에 등산을 갔다는 것뿐이다. 대법원도 예상한 수준 아니냐”고 판사들은 말했다.

나는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법원에 출입했는데 그때도 법원 담당 국정원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공보관도 만나고 법원장도 만나 돌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이들과 정보를 주고받던 시절이 있다. 최근에는 판사들이 국정원의 사상검증을 거쳐 임관한다. 양승태 대법원은 대수롭지 않다고 반응했었다. 등산 문제로 발끈하는 대법원장이 그래서 어색한 것이다.

국회 청문회 도중 불거진 대법원장에 대한 사찰 의혹이 알려진 15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퇴근하며 기자의 질문을 받자 손사래를 치고 있다. 정지윤 기자

판사들은 속내를 털어놨다. “이미 한참 전에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수첩이 공개됐다. 청와대가 판사들을 손보려고 벼른 사실이 드러났지만 말 한마디 없던 대법원 아니냐”고 했다. 실제로 법원행정처는 관련 법관 징계는 청와대에 영향받지 않았다는 동문서답을 대통령이 탄핵된 지난 9일에야 내놓았다. 정권의 판사 위협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대법원장의 순결만 주장하는 태도였다.

청와대의 표적들은 빠짐없이 고초를 겪었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무죄 판결을 비판한 김동진 판사, 선박 사고 영장을 기각하면서 세월호 사고와 국가의 책임을 언급한 이형주 판사, 국가보안법 사범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박관근 판사 등이다. 게으른 기자인 나는 모르는 사건들이 산처럼 많을 것이다.

판사들의 싸늘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대법원은 등산사찰 항의 성명에 이렇게 덧붙였다. “청와대 등에서 법원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였다는 의혹이 최근 제기된 바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법원으로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청와대의 시도가 전달되지는 않았다며 이번에도 대법원장만 보위했다.

이런 대법원이 최근 대법원장의 강력한 인사권을 복원하는 인사 방침을 공식화했다. 역사를 되돌리는 일이다. 앞서 2010년 국회는 대법원장의 지나친 인사권을 해소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대법원장이 지방법원 부장판사 중 일부를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시키고, 이들을 다시 추려 대법관에 제청하면서 법관들을 줄 세우는 폐해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외부의 압력이 강해지자 2011년 대법원은 개혁 요구를 일부 반영해 개선안을 만들었고 올해로 시행 5년째로, 과도기였다. 그런데 양승태 대법원장이 퇴임을 열 달 앞두고 사실상 백지화한 것이다. 판사들은 자신들의 인사 문제라 발언을 주저하고 있으며, 행여 내년 2월 인사에 불이익이 있을까 숨죽이고 있다. 판사들에 대한 청와대의 위협은 외면하면서 이 와중에 제왕적 인사권을 회복했다.

“법관들은 정치권력도 두려워하지 않고 언론권력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관은 겁내는 것이 있는데 대법원장의 인사권”이라고 판사들은 말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을 앞두고는 지방법원 부장판사들이 눈치를 보고, 대법관 제청을 앞두고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움직인다. 제왕적인 대법원장은 무오류의 대법원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모든 다른 의견들을 소멸시켜가고 있다. 이것이 2016년 겨울의 사법부다.

사회부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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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시대상황에서 사법부가 사법개혁을 주도해 가치관을 제대로 정립하고 법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다해 주기를 바라는 사회적인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최근 집회·시위와 관련한 행정법원의 결정이나, 원격 심리절차 시행 등은 법원이 사법 소비자 친화적인 방향으로 변모를 시도하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그렇지만 사법제도 운영에서 사법 소비자 친화적 개혁, 판결문 공개를 통한 합리적인 사법통제 기반 조성, 그리고 신속히 해결되어야 할 전관예우 문제 등에서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법 소비자 친화적 개혁의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제도 개선이 필요한 게 많다. 먼저 현행 전자소송제도를 좀 더 확대해 모든 법원행정이 전자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거래 자체가 온라인화되는 상황에서 분쟁 해결 절차 역시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대명제를 세우고 점진적 개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제도 운영은 조속하게 사법 소비자에게 유익하고 편리하게 재편해야 한다. 법원 관할의 경우를 보자. 일반 소송사건과 지급명령 사건의 경우 관할 법원이 달라 일반인으로서는 이를 제대로 구분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용인시의 경우 일반 민사본안 사건은 수원지방법원이 관할 법원이나, 지급명령의 경우에는 수원지방법원 용인시법원이다. 법원 내부의 사정에 의해 이렇게 돼 있는 것이다. 사법 소비자가 이같이 복잡한 법원의 규정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잘못 청구를 했다면 법원은 내부적으로 간단한 이송절차를 밟으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법원 실무적으로는 관할 위반으로 각하 결정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법 소비자는 인지대 이중부담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는 과거 토요일이 법적 공휴일로 지정되기 이전에 법원 공무원들의 토요일 휴무제가 먼저 실시되면서 불변기일산정이 법원 편의 위주로 이뤄졌던 사례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법원 공무원이 토요일에 쉬기 때문에 법원 정문이 닫혀 있는 상태임에도 당일 접수를 하지 않은 경우 불변기간이 지난 것으로 보아 각하되는 불이익이 사법 소비자에게 전가됐던 것이다. 이 같은 법원의 태도는 형식적인 법논리상으로는 찬반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사법 소비자의 시각에서는 결코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 판결문 공개가 일부 이루어지고 있으나,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 가능하도록 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사법부에 대한 합리적인 통제는 판결문과 같은 재판기록 공개를 통해 사후적으로나마 실효성 있게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전향적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판결 확정 전에도 하급심의 판결문이 공개돼 사법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관예우 내지 비리와 관련한 법원의 인식전환 역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법원은 전관예우가 없다고 부인하고 있으나, 전관 비리 가능성과 위험성은 여전히 높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외국 법조계의 시각에서 국내 퇴직 법관의 변호사 활동, 특히 소송변론 활동 부분은 불공정 가능성이 높다. 고도의 윤리성을 확보해야 할 법원에서 이해관계 충돌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사법 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이므로 변호사단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 스스로 성찰하고 개선해야 한다. 이 같은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법부 신뢰 회복의 장애로 작용할 것이다. 법원의 불공정성이나 이해관계 충돌 가능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관의 행정부 진출이나 정계 진출 등은 사법부 스스로 윤리규범을 제정해 사전에 방지하고자 적극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직에 있는 법관에게 부당한 유혹요인으로 작용할 위험성이 있다.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시대 상황에서는 사법부 스스로 전관예우 내지 비리 해소 방안 등을 포함한 엄정한 사법개혁을 주도해야 한다. 바른 가치관이 정립되고 법이 제대로 설 수 있도록 사법부가 모범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김승열 변호사·카이스트 겸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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