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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21 [기고]산후우울증 극복, 사회가 도와야

30대 초반의 여성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처음 왔다. 출산 후 아이를 위해 일을 그만두었고 주변에서는 모두 축복해주었지만 그럴수록 지쳐가는 속내를 드러내긴 어려웠다. 잠도 못 자고 밥맛을 잃은 지 오래였고, 아이를 돌보려 해도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의욕이 없었다. 전형적인 산후우울증이었다. 한참 눈물을 흘리고서야 아이와 함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이 한없이 초라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여성은 오른쪽 눈가에 멍이 들어있었다. 어쩌다 그랬는지 묻자 옆에 있던 남편이 고개를 숙였다. 게으른 줄 알았다고 얘기했다. 산후우울증 증상은 흔히 게으름이나 무책임으로 오인된다. 이런 인식이 두려워 정작 아픈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산후우울증은 매우 흔하다. 출산 후 산모의 90%는 우울감을 경험한다. 이러한 상태는 대개 주변의 관심과 배려와 함께 며칠이면 사라진다. 하지만 10~15%는 우울증으로 진행한다. 우울증은 뇌질환이다.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아픈 것이다. 미국에서는 연간 500만명이 출산을 하고, 그중 40만명이 산후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다. 한국에선 연간 40만명이 넘는 산모 가운데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는 4000명에 불과하다. 미국과 한국의 산모와 산후우울증 환자 수를 비교하면 한국의 산후우울증 환자 발생 규모는 미국의 10%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여러 연구를 보면 한국의 산후우울증 유병률은 미국보다 높다. 그러므로 한국의 산후우울증 치료율이 미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고, 환자의 90%는 치료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산후우울증 피해는 당사자뿐 아니라 아이와 가족을 위협한다. 산후우울증 어머니를 둔 아이는 발달과 성장이 늦고 무엇보다 부모와의 애착 형성이 어렵다. 심지어 미국에선 장기적으로 대입 성적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보고도 있다. 증상을 태도의 문제로 여긴 배우자와는 갈등을 겪는 일이 많다. 기대했던 아이의 탄생이 어느덧 지옥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자살이다. 영아살해 후 자살은 최악의 비극이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산후우울증에 대한 지원법을 제정하여 조기진단과 법을 제도화하고 있다. 산업화와 함께 핵가족 시대의 ‘육아독박’은 산후우울증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므로 국가적 대책이 필요하다. 보건소와 의료기관에서 검진을 무료로 받는 것은 물론 밖으로 나오기 힘든 산모를 돕기 위해 양육에 대한 방문지원과 함께 검진을 진행한다. 필요하면 의료진도 가정집을 방문한다. 일본도 산후우울증 검진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자살에 대한 원인조사에서 가임기 여성의 경우 산후우울증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국회는 지난 11월 산후우울증 지원을 포함하는 모자개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선진국처럼 특별법은 아니며 실태조사 등 포괄적인 대책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산후우울증 문제의 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산후우울증은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 사회가 조금만 도와도 효과는 오래 지속된다. 아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돕고, 배우자와 가족이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교육하고,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치료를 받으려고 고민할 때 불이익을 걱정하는 제도와 분위기부터 없애야 한다. 산후우울증은 우리 사회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기쁨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백종우 | 경희대 의대 교수·중앙심리부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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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