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는 픽션, 즉 만들어진 사회이다.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비근대적 사회의식은 픽션에서 불안을 느끼지만, 근대정신은 픽션의 가치와 효용을 믿고 재생산한다”고 했다. 이렇게 근대를 구성하는 픽션의 정점에 헌법이 있다. 국가라는 거대한 픽션의 설계도이다. 군사정부의 성실한 마름이던 대법원이 공정하고 독립적인 사법부라는 서구적인 픽션을 갖춘 것은 역설적이게도 1987년이 계기다. 시민혁명의 대상은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정권과 법원이지만 6월항쟁은 법원에 손을 대지 않았고, 법원은 혁명에 무임승차했다. 어설픈 타협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실체를 드러낸다.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판사가 이명박 정부 당시 대법관이 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관여한 검사가 박근혜 정부에서 대법관이 됐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7월2일 (출처:경향신문DB)

세상의 모든 픽션은 내러티브를 요구한다. 경험하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고 공유하게 만들어 픽션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일본헌법이라면 일왕의 존재가, 한국헌법에는 임시정부의 시간이 있다. 독재정권에 협력한 사법부에 공정함이란 픽션을 제공한 내러티브는 우리법연구회라는 존재다. 1988년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은 군사독재 시절 인물인 김용철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했다.(1982년 7월 문재인 사법연수생에게 판사임용 불가를 통보한 사람이 김용철 법원행정처장이다.) 6월15일 서울민사지방법원에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문건이 돌며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이들은 김용철에 반대했다. 이광범, 유남석, 김종훈, 한기택 등이 주축이었다. 이에 노태우 대통령은 김용철 대신 비슷한 정기승을 대법원장에 부쳐보지만 국회에서 부결된다. 2차 사법파동이고, 이 사건 주역들이 만든 모임이 우리법연구회다.

지난해 시작된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공정한 사법부라는 픽션은 위기에 처했다. 우리가 믿어온 재판의 공정함이 실재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이 자리를 파고든 것이 ‘보수적인 양승태 대법원의 악행’ 때문이라는 소문이다. 얼마 전 어느 방송사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와 “ ‘양승태 대법원’과 ‘이용훈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의 고등부장 승진율 자료를 달라”고 했다. 나는 “지난해 기사에서 양쪽 모두 100%라고 밝혔다”고 했지만 상대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러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추진한 이유가 퇴임 이후 변호사로서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냐”고 물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느 언론사의 기자는 “상고법원을 추진한 사람은 모두 징계 대상이 아니냐”고도 했다.

양승태도, 상고법원도 악이 아니다. 대법관 12명이 연간 4만여건을 처리하는 상황은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용훈 대법원’이 추진한 고등법원 상고부와 ‘양승태 대법원’이 추진한 상고법원이 다르지 않다. 변호사로 돈을 번 걸로 치면 양 전 대법원장이야말로 깨끗하다. 대법관을 마치고 하루도 변호사로 일하지 않다가 대법원장이 됐다. 그에 비해 이 전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마치고 삼성 등의 사건을 맡아 거액을 챙기고 세금도 누락했다. 행정처의 관료화가 본격화한 것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이다. 그런데도 눈앞의 상황을 보혁구도로 파악하는 것은 진실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1987년에 구축된 공정한 사법부라는 부당한 픽션을 재생산하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양승태 개인이 아니라 관료화한 사법부 그 자체다.

재판거래 의혹을 비롯해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 작성자 상당수가 우리법연구회 회원이다. 여기에 몇 명 되지도 않는 행정처 심의관 숫자, 그보다 조금 많은 우리법연구회 회원 숫자를 생각하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는 우리법연구회가 주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검찰 손에 들어간 어마어마한 문건을 발견하고도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결론을 적어 김명수 대법원장을 궁지로 몰아넣은 특별조사단에도 우리법연구회 회원이 있다. 끝이 아니다. 우리법연구회 초기 멤버들은 불법적인 문건을 작성한 후배 판사들을 만나 수사와 재판에 대비하고 있다. 보혁구도 같은 무책임한 상상으로는 이런 상황이 설명되지도, 부당한 픽션이 붕괴되지도 않는다.

엊그제 발표된 대법관 후보자를 두고 순수 변호사 출신이라서 의미가 있다거나, 우리법연구회 소속에 여성이라서 이번 사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낡은 픽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오히려 지금까지 판례를 바꾸어온 주인공은 서·오·남(서울대, 50대, 남성)들이 더 많고, 반대로 사형제에 합헌 의견을 내거나 쌍용차 노동자를 일터에서 몰아낸 민변 회장과 여성 변호사 출신도 있다.

사법이라는 제도는 픽션이지만, 재판이라는 작용은 현실이다. 지금 당장은 제대로 된 대법관을 가려내는 것부터 해야 한다. 부당한 현실에 저항해온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가진 대법관이 무너진 사법부를 살려낼 것이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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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상고법원제 도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상고법원제란 대법원과 별도로 상고법원을 설치해 대법원으로 올라온 상고사건을 대법원과 상고법원이 나누어 재판하는 제도를 말한다. 3심제에서 대법원은 최종 재판을 담당하는데, 대법원은 법 해석의 통일을 기할 필요가 있는 사건이나 공익사건 등 중요 사건만 직접 재판하고, 그 외의 일반적인 상고사건은 별도의 상고법원이 담당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상고법원의 판사는 대법관이 아니라 일반 판사들이다. 이런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대법원이 드는 이유는 상고사건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2014년 상고사건 수는 3만8276건으로, 대법관 1인당 연 3000여건을 처리해야 하는 수치이다. 사건 수가 너무 많으니, 대법원의 재판이 지연되거나 부실해지는 사태를 피할 수 없다. 대법원의 재판이 부실해지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뭔가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상고법원 도입이 올바른 해결책일까. 대법원의 구상에 따르면, 일반 법관으로 구성되는 상고법원이 대법원을 대신해 3심 재판의 대부분을 담당하게 된다. 상고법원에서 재판할지, 대법원에서 재판할지는 사건마다 대법원이 결정한다고 한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제도는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재판청구권의 침해로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우리 헌법상 대법원장 및 대법관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되므로 대법원의 재판에는 국민주권의 원리가 반영돼 있다. 실질적인 헌법이념에 비추어 보면, 국민의 재판청구권은 대법원의 대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법원도 위헌 소지를 의식했는지, 특별상고라는 제도를 둔다고 한다. 특별상고란 상고법원의 재판에 대해 제한적으로나마 대법원에 다시 상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현행 3심제를 사실상 4심제로 운영하는 결과가 된다. 국민 정서상 재판을 시작하면 대법원까지 가서 끝장을 보려는 경우가 많다. 상고법원제는 결국 분쟁해결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증대시켜 국민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다.

사건 수가 너무 많아 대법원의 재판이 부실해지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법개혁의 과제이다. 가장 간명하면서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방안은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이다. 조금 거칠게 비유하자면, 상고법원 도입방안은 어떤 기업이 인기가 치솟은 제품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교묘하게 ‘짝퉁’을 만들어 파는 것과 같다. 기업 입장에서는 해당 제품의 생산을 늘리는 것이 옳은 길이다. 상고법원제도 마찬가지이다. 대법원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이유로 상고법원을 별도로 설치해 사건을 뚝 떼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이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에도 훨씬 부합한다. 그런 이유로 대한변호사협회도 오래전부터 대법관 증원을 주장해 왔다.

상고법원 개념도 (출처 : 경향DB)


이렇게 간명한 해결책을 굳이 외면하면서, 대법원이 상고법원이라는 짝퉁 방안을 들고 나온 이유는 뭘까. 대법원은 대법관 수가 늘어나면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주장한다. 대법원은 ‘부’ 단위로 재판하는 게 원칙이며,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재판을 말한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연간 20건 안팎에 불과하다. 대법원의 주장은 대법관 수가 늘어나면 모두가 모여서 사건을 심리해야 하는 전원합의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대법관 수가 100명쯤 되면 그럴 수도 있겠다. 현재 대법관 증원 방안은 25명 주장도 있고 40~50명 수준으로 늘리자는 주장도 있다. 이 정도라면 전원합의체 토론이 불가능하지 않다.

나는 대법원이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소수정예로 구성되는 대법원의 관료적 권위주의를 놓지 않으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50대-남성-서울대-법관 출신’으로 상징되는 대법관은 전형적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판사들의 승진 종착지이다. 상고법원제도는 대법원의 사건부담을 하위직 판사들에게 전가하면서 대법원은 소수의 엘리트 판사 출신들이 독점하는 폐쇄적이고 관료적인 사법체계의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꼼수이다. 대법원의 이러한 폐쇄적 권위주의 자체가 혁파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 첫걸음은 대법관 수를 늘리고, 다양한 직역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법원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도를 외면하지 말자.


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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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조계의 화두는 상고법원이다.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지난해 6월 대법원장에게 상고법원 도입을 건의했고, 여야 의원 168명이 지난해 12월 상고법원 설치 법안을 발의했다.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 수는 2004년 2만432건에서 2014년 3만7000건이 넘었고, 대법관 1인당 사건 수는 3000건 이상이다. 대법원이 밀려드는 사건의 홍수에 빠져 사건 처리에만 급급해지면, 대립되는 가치를 비교형량하여 분쟁 해결을 위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상고제도는 이미 여러 차례 변경됐다. 대법관과 일반 법관이 함께 재판하기도 했고, 대법원과 고등법원 상고부가 상고사건을 분담하기도 했으며, 상고허가제를 실시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심리불속행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소위 ‘이유 기재 없는 판결’에 대한 불만이 매우 커서 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점에 대하여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상고법원안은 대법원과 별도로 상고법원을 설치해 상고법원 판사가 상고사건 중 일부를 재판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건에 집중해 합리적인 가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상고법원은 개인 간의 다툼에 관한 재판에 집중해 개인의 권리구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고법원의 취지에 관해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상고법원의 신설은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도 상고허가제 등을 통해 상고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도 헌법상 재판을 받을 권리가 모든 사건에 대해 대법원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상고법원의 법관을 임명하는 데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기 때문에 상고법원의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하다거나 국민주권의 원리에 반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국민주권의 원리나 민주적 정당성을 오해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대법원에 ‘대법관이 아닌 법관’을 둘 수 있다고 하여 대법관 아닌 법관도 상고심을 담당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한편 대법관 수를 3배로 늘려서 대법원의 포화상태를 해결하자는 의견은 사법부의 본질적인 역할을 간과한 것이다. 대법원이 국가권력을 견제하면서 다수의 위험으로부터 소수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대법관 전원이 논쟁을 거쳐 결론을 도출하고, 다양한 의견이 판결문에 드러나는 전원합의체 방식이 필수적이다. 대법관의 수가 대폭 늘어나면,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열띤 법리 논쟁이나 심도 깊은 토론은 불가능해지고, 전원합의는 찬반투표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 토론을 통한 설득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한 최고법원이 소수자 보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상고법원 개념도 (출처 : 경향DB)


대법원이 최고법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하루빨리 제도화해야 하고, 상고법원안은 현재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물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여성의 종중원 자격, 퇴직연금의 재산분할 가능성 등과 같은 사회와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쟁점에 관한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가 필요하고, 국민의 진정한 권리구제를 위해서는 사실심 강화라는 과제도 동시에 해결되어야 한다.

대법원의 현재 상태가 개선되지 않아 발생하는 피해도, 상고법원 도입의 열매도 모두 대법원이 아니라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제는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하고 보다 합리적인 대안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제도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김명숙 |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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