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더 하시죠.” 방금 한 잔 했는데 또 재촉이다. 그는 이미 혀가 약간 꼬부라져 있었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마셔요, 술 마시는 기분 나지 않아요?”

요즘 뉴스를 보는 일이 즐겁다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가 흥을 돋운다고 한다. 뉴스에는 대통령이 참모들과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초등학생이 사인 받을 종이를 찾느라 가방을 뒤적이는 동안 키를 낮춰 기다려주는 대통령도, 5·18 때 아버지를 잃은 시민을 안고 위로해주는 대통령도 볼 수 있다.

이런 일에도 시민들은 감동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말했듯이 “뭔가 특별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 세월호·광주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고도 무표정한 지도자, 비정규직을 숫자로는 이해해도 결코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로봇 같은 지도자 대신 시민의 고통과 슬픔을 느낄 줄 아는 이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지난 15일 서울 은정초등학교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사인을 받을 종이를 찾기 위해 다급하게 가방을 뒤지는 학생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처

‘사람에게 쉬운 일은 로봇에게 어렵고, 로봇에게 쉬운 일은 사람에게 어렵다.’ 모라벡의 역설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밥 먹고 말하고 걷고 커피 마시는 것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로봇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반면 복잡한 계산은 로봇에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람에겐 어렵다. 보통 사람은 절대 못하는, 정치 공학적 계산에는 능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고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걸 어려워하는 로봇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고 하자. 대통령이 그토록 쉬운 걸 왜 못하는지 사람은 절대 이해 못한다. 이렇게 속아서였을까. 5월9일까지만 해도 차선의 선택이라도 한 것인지 불안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시민은 자신의 손으로 뽑고도 놀란다. 우리처럼 말하고 우리처럼 생각하고 우리처럼 느끼는 정부를 선출했다니!

새 정부가 정말 적폐를 청산할지, 개혁에 성공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겨우 새 정부 출범 14일째다. 연합정부 없이 ‘여·야·정 협의체’만으로 여소야대 정국을 이끌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다. 앞으로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새 정부가 시민을 대하는 자세, 정부를 책임질 인물을 고르는 감각, 현안을 다루는 방식만 보고 있으면 불안감이 사라진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인기를 의식한 것도 있겠지만, 그걸로 시민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왜 하지 말아야 하는가? 가슴 태우던 세월, 절망스럽고 부끄러운 시간을 견뎌내느라 지친 시민, 낡은 권력에 시달린 시민을 위로하는 퍼포먼스가 당분간 필요하다.

새 정부는 앞으로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그건 문제가 아니다. 우리를 고통에 빠뜨린 건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묻지마 지지와 반대를 위한 반대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칭찬하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비판하면 된다. 그게 공정한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그래야 실패를 줄이고 성공을 부추긴다. 다행히 대선 이후 이념·지역에 결박된 지지와 반대가 약화됐다. 시민들은 이념·지역이 아닌 당면한 의제와 현안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과 태도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긴다. 그게 시민의 요구에 반응할 줄 아는 민주당·정의당 지지율은 오르고 세상 물정 모르고 역주행하는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폭락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TK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85%에 이르고, 민주당 지지율이 한국당을 앞선 이유도 알려준다. 한국당의 전국 지지율은 8%, 국회 의석수는 36%. 과잉대표다. 한국당은 이제 시민이 준 지지보다 4.5배나 큰 몸집을 지닌, 덩칫값 못하는 공룡이 됐다. 이것 역시 시민들이 반응성 있는 정치를 한 결과다.

예전의 한국인을 정의한다면, ‘정치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상처 때문에 정치를 혐오했고, 상처를 줄 수 있는 정치의 힘 때문에 정치를 욕망했다. 정치에 대한 이런 혐오와 집착은 한국 정치를 병들게 했고 시민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정치에 치유의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시민은 더 이상 정치 밖에 머물지 않았다. 지난해 촛불집회가 정치 참여의 마당이 된 것도 정치에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상처에 굴복하지 않고 정치 속으로 들어가는 용기를 낸 결과였다.

이제 정치는 시민을 위로하고 치유해주는 것으로 보답하고 있다. 치유된 시민은 더 많은 정치 참여를 할 것이다. 그래서 더 나은 정치, 더 나은 삶도 가능할 것이다. 이게 바로 민주화 30년 만에 뒤늦게 배달된 선물이다.

다시 어려움이 닥쳐도 시민은 극복할 수 있다. 동료 시민을 믿자. 내일 또 행진을 하는 일이 있더라도 오늘은 건배하자. 낡은 권력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세운 시민은 그럴 자격이 있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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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선거 후 일주일이 지났다.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새 정부의 지향을 보여주기에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유쾌한 변화를 예감한다. 늦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과 새 정부의 출범을 축하한다. 새 정부에서 책임을 맡게 될 분들에게도 축하와 함께 높은 소명감을 기대한다. 아울러 나랏일은 공직자만의 의무가 아니라 국민들도 함께 나누어지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몇 말씀 드리고자 한다.

대통령께서 강조하는 것처럼 반드시 성공하는 정부가 되기 바란다. 헌정사 70년이 지나도록 성공한 정부를 보지 못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과거에는 장기집권의 과욕 때문에, 최근에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오만함 때문에 실패를 거듭했다. 국민을 거스르는 정부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첫 100일의 결심이 마지막 100일까지 시종여일하길 바란다. 그 마음으로 정부가 성공하고, 성공을 바탕으로 아시아에서 우뚝 서고 세계에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미·중·일·러·유럽연합 등 주요국 특사단과 오찬 간담회를 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송영길(러시아)·문희상(일본) 특사, 문 대통령, 이해찬(중국)·홍석현(미국) 특사. 연합뉴스

새로운 정부로 새 시대를 이끌어주기 바란다.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는 겸손한 정부, 국민을 속이지 않는 착한 권력, 국민을 편 가르지 않는 통합된 나라, 특권과 반칙이 사라진 공정한 국가를 볼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5년은 매우 짧다. 단기 실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나라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임기가 끝나면 후임 대통령에게 떳떳하게 넘겨줄 수 있는 정부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새로운 대통령상을 보여주기 바란다. ‘나라다운 나라’의 첫걸음은 ‘대통령다운 대통령’에서 시작되므로 대통령의 자세가 중요하다.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닐 터인데,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대정신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겸비한 융합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 노 전 대통령은 파격의 선수였고, 김 전 대통령은 돌다리 두드리기의 선수였다. 문 대통령께서는 파격과 두드림의 장점을 균형있게 취하는 대통령이 되어주기 바란다.

국정의 큰 방향을 분단과 전쟁과 지역감정에서 연원한 분열적 대결구조를 완화하고 일체의 차별을 해소하는 데 맞추어주기 바란다. 쉬운 일이 아니고 하루 이틀에 끝날 일도 아니지만, 대통령과 정부와 국회가 공식적으로 결의하고 솔선수범함으로써 역사적인 출발을 해주기 바란다. 국민들 마음속에 깊이 내재되어 고착된 망국적인 대결의식과 차별주의에서 벗어나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하여 젊은 세대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일체의 독점구조를 타파한 공정한 나라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에드워드 기번과 폴 케네디와 시오노 나나미가 내놓은 분석을 관통하는 망국의 원인은 사치와 방종이며 그 배경에 재화의 독점이 있다. 권력의 독점과 재화의 독점은 쌍생아이다. 고려 말의 토지겸병과 조선 후기의 노론 독점이 그러했다. 국민경제를 위협하는 재벌독점, 여론 형성을 왜곡하는 언론독점, 교육을 좀먹는 사학독점,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종교독점, 지역사회의 토호독점에서 벗어나야 공정한 나라로 나아갈 수 있다.

욕심을 부리자면, 국민참여의 영역에서는 세상에 내놓을 만한 ‘가장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제안이 참여로, 참여가 통합으로, 통합이 국력으로 연결되는 참여의 선순환 구조가 국정 운영에 적용되기를 바란다. 링컨 대통령이 150년 전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미국민들에게 약속했다면, 이제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국민이 제안하고,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이 결정하는 국민에 의한 정부”를 국민들에게 약속해봄직하다.

성공하는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국정 운영의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 관료적 행정절차로 축소되어버린 국민신문고를 부활시키면 국민의 뜻을 국정 운영에 폭넓게 반영할 수 있다. 정부의 모든 결정에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면 정부 결정의 정당성을 높일 수 있다. 모든 공무원들에게 한 직급 높은 결정권을 부여하면 공직사회의 활력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모든 반대와 비판을 수렴하는 정부기구를 운영함으로써 국론분열을 치유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국운 융성의 기회는 매우 드물게 찾아온다. 조선시대 세종과 성종, 영조와 정조 연간에 국운이 융성했지만 후자의 경우 정조의 죽음으로 끝나고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영·정조 개혁이 권력 균형을 도모하는 수준에 머물러 권력의 토대인 사회적 독점구조를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사회경제적 변화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지속될 수 없다. 스타일만으로는 변화를 불러오지 못한다는 말이다. 새 정부가 꼭 유의해주기 바란다.

정대화 | 상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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