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민심에 놀라 침묵했던 새누리당 친박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떠넘긴 뒤부터다. 친박들은 개헌 추진 등 정국 전환을 시도하고, 촛불 민심을 조롱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비선 실세들 범죄의 공범이 되고 탄핵·퇴진에 몰리게 된 데는 친박 세력 책임이 가장 크다. 자숙해야 마땅한 이들이 또 돌격대인 양 나서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야당이 대통령 담화를 ‘꼼수’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 “국회 권능을 스스로 무시한 피해 의식”이라며 “국회가 역할을 못하면 ‘무기력 집단’으로 지탄을 받게 될 것이고, 국민은 절망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도둑이 몽둥이를 든 격이다.

친박계 조원진 최고위원은 “의원총회에서 (당내 비주류가 결성한) 비상시국회의를 해체하고, 당의 분열을 초래하는 탄핵을 더 이상 추진하지 말라고 요구했다”면서 “탄핵에 들어가면 지도부는 (21일로 예정된) 사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개헌이 전지전능한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광장의 함성을 통해 반영된 국민의 바람을 이어갈 수 있는 첫걸음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 정국을 개헌 정국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2월1일 (출처: 경향신문DB)

막말도 이어지고 있다. 친박계 중진 홍문종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탄핵을 위해 야당이 하나가 됐고 정치 타임테이블을 설정해놨는데, (대통령 담화로)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야당으로서는 시쳇말로 약이 좀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조롱했다. 김종태 의원은 그제 의총에서 “촛불시위는 평화시위가 아니다. 좌파 종북 세력은 통상 시위 때마다 분대 단위로, 지역별로 책임자를 다 정해 나온다”고 말했다. 촛불을 들고나온 시민이 종북 세력에 의해 조종됐다는 폄훼다. 실로 몰상식하다.

이런 사람들이 박근혜 의원을 대선후보로 만들어 대통령으로 세웠고, 여당을 이끌어 왔다. 국정농단을 방관·방조하면서, 정부와 여당의 좋은 자리를 나눠 먹는 등 이권을 챙겨온 게 이들이다. 대통령이 피의자로 전락한 시점에서도 이간질, 범죄자 보호, 사법 방해, 위력 과시, 협박에 무고까지 하고 있다. 주먹만 안 썼을 뿐 범죄 단체와 다를 바가 없다. 지금 시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여당을 지켜보고 있다. 이 당이 해체하지 않더라도 다음 21대 총선 때 선거 벽보에 박 대통령과 자신의 사진을 나란히 붙일 후보가 몇이나 되겠나. 깊게 생각하고 자중자애해야 한다. 형해나 다름없는 일부 무리가 아니라, 시민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그게 국회의원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유권자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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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친박근혜계 중진 의원들이 어제 모임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명예 퇴진’을 직접 제안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에 주목한다. 전날 전직 국회의장 등 원로들의 퇴진 제안에 이어, 여당 주류까지 퇴진 요청에 동참한 것이다. 늦었지만 전국에서 190만 촛불이 켜지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친박 핵심들도 인식하게 됐다는 증좌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들 제안을 스스로 누차 밝힌 대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주류 중진들은 어제 시내 모처에서 비공개 오찬 회동을 하고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는 것을 고집하기보다는 국가와 본인을 위해 명예로운 퇴진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건의를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들은 4~5% 지지율에 머무는 박 대통령을 지탱해주던 마지막 보루였다.

서청원 의원은 회동 후 “국가와 대통령을 위해 탄핵보다는 ‘질서있는 퇴진’이 맞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만, (야당의 본회의 표결 추진 전에) 선언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이들은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서 의원도 박 대통령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원유철·김재경·홍문종·나경원·주호영·정우택 의원(왼쪽부터 시계방향) 등 주류·비주류 중진의원 6인 협의체가 28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당 수습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당내 분위기도 급속히 퇴진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통령 탄핵 추진 요구에 펄쩍 뛰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친박 중진들의 건의에 대해 “박 대통령이 여러 의견을 듣고 있으니 참고하시지 않겠느냐”며 “고명하신 국가 원로들 고견을 바탕으로 당 어른들도 시국수습 의견을 낸 것 같아 보인다”고 평가하며 변화된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까지 민심에 맞서던 친박 주류도 대통령 임기 축소에 동의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촛불민심은 5주째 계속되면서 바람에 꺼지기는커녕 늘어가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는 박 대통령이 연루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퇴진 요구를 넘어 “체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조만간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현재 흐름이라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지지도는 한국 역사상 최저인 4%(한국갤럽)까지 떨어졌고, 국회 제1당이자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당 지지도에서 3위로 전락했다.

유권자와 부대껴야 하는 지역구 의원들은 민심 흐름을 절감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 친박 의원이 “맞아 죽을까봐 무서워 지역구에도 못 내려가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이겠는가.

정권도 내부에서 붕괴하고 있다. 사의를 표한 뒤 박 대통령의 집요한 만류를 뿌리쳐온 김현웅 법무부 장관 사표가 결국 수리됐다. 교육부마저 박근혜 정권이 추진해온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철회안을 내놓는 등 원심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친박 주류 핵심의 태도 변화로 ‘청와대에서 장기 농성’이라는 박 대통령의 기존 전략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이제 선택지는 둘로 줄었다. 퇴임 시한을 못박고 국회와 정부에 질서있게 권력을 인계하는 방안과, 끝내 버티다가 친박까지 가세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된 뒤 청와대에서 유폐돼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다. 특히 탄핵이 추진되면 헌법재판소에서 소추안이 인용되든 안되든 나라 꼴이 엉망이 된다는 점은 박 대통령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비정상인 한국 국정을 정상화하는 방안인지 두 번 다시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퇴진 선언에 개헌이나 면책 등 이런저런 조건을 달거나 퇴임 시점을 명확하게 못박지 않으면 탄핵 회피용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퇴진 선언을 계기로 국회 내 탄핵 절차 진행을 훼방한 뒤 다시 지지부진하게 끌려고 한다면 더욱 거센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0만명의 촛불시민이라면 그 정도 꼼수는 능히 들여다보고 남을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지도자로서 결단을 내릴 시점이다. 조건 없이, 가급적 이른 시점의 날짜를 분명히 택해 사임한다고 약속해야 한다. 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스스로가 초래한 국정 난맥상에 깨끗하게 사과를 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퇴진 로드맵’을 밝혀야 한다.

또 변호인 뒤에 숨어 검찰 수사를 방해할 것이 아니라, 숱하게 제기된 모든 의혹과 관련해 성실하게 조사를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때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가 살아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것도 시민에 대한 마지막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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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어제 내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또 “보수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합리적인 보수 재탄생의 밀알이 되겠다”고 말했다. 비박근혜계 세력의 중심인 김 전 대표가 대선주자 자리를 버리면서 탄핵을 주도하겠다고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야 3당 의석을 모두 합쳐도 171석밖에 되지 않아 탄핵 정족수(200석) 확보에 고심해온 야당에 그의 가세는 원군이 될 것이다.

23일 새누리당 김무성 전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하지만 김 전 대표의 다짐이 썩 미덥지는 않다. 김 전 대표는 지난 4년 내내 박 대통령의 국정 독주를 방조했다. 교과서 국정화 앞장서기 등 퇴행적 행태를 보였고 박 대통령이 국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때는 선봉에 섰다. 그런 그가 이제 와 박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니 사돈 남말 하는 격이다. 최근에는 “최순실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새누리당에 있느냐. 몰랐다면 거짓말 아니냐”며 자신의 직무유기를 덮으려는 모습까지 보인 터다.

새누리당을 합리적인 보수로 개혁하겠다는 말도 생뚱맞기는 매한가지다. 수구적인 발언, 색깔론을 무수히 제기하며 정치판을 흐려온 그가 합리적 보수가 뭔지나 아는지 모르겠다. 친박 세력이 새누리당의 당권을 쥐고 버티는 상황이니 그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박근혜 정권의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것으로는 보수의 대안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될 일이다. 과거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시인하고 통렬히 참회하는, 분명한 자기 청산 과정을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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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어제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민주주의 공적 기구를 사유화하고 자유 시장경제를 파괴했는데 새누리당은 이런 대통령을 막기는커녕 비호했다”며 헌법 수호를 포기한 당을 떠난다고 말했다. 남 지사는 “생명이 다한 새누리당을 역사의 뒷자락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정당다운 정당,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탈당의 변을 밝혔다.

남 지사와 김 의원의 이탈은 단순히 탈당의 마중물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한국 정당사에서 보수당이 갈라진 일은 없었다. 새누리당 내 비박근혜계 다수가 선뜻 탈당을 결심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탈당 감행은 새누리당이 처한 상황의 절박성을 시사한다. 새누리당은 2003년 전신인 한나라당이 재벌로부터 거액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이른바 차떼기 사건 후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에도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당이라는 굴레를 벗지 못하면 다시 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김무성·유승민 의원 등은 탈당 대신 해체 수준의 재창당으로 새누리당을 일신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이정현 대표 등 현 친박계 지도부를 모두 퇴진시킨 뒤 새 지도부로 당을 혁신해 거듭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지사(오른쪽)와 김용태 의원이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한 뒤 밖으로 나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결국 새누리당 비박 세력은 당을 깨고 새로운 당을 만들자는 탈당파와 당의 틀은 유지하면서 혁신하자는 재창당파로 갈린 것이다. 어느 해법이 현실화될지는 불투명하지만 간판만 바꿔 다는 신장개업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불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새누리당은 과거부터 보수적 가치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제도로서의 정당보다 지도자 개인 중심으로 결속한 사당(私黨)에 가까웠다. 현재 새누리당의 위기도 ‘박근혜의 당’이라는 점에 기인하고 있다. 새누리당 탈당과 진정한 보수당의 창당을 선언한 현실 인식은 옳다. 친일·반공 세력과 재벌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인물 중심의 수구 정당이 아니라 보수의 가치에 충실한 당이 나올 때가 되었다. 최근 사태와 촛불집회를 통해 드러난 시민의식으로 볼 때 토대도 충분하다.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보수는 새롭게 재편되어야 한다. 친박당이 무너진 잔재 위에 보수의 가치를 표방하는 현대적인 보수정당, 과거 낡은 유산에 기대는 기득권 집단이 아닌 진짜 보수당의 등장을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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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어제 “당 대표로서 가장 힘들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도울 수 있도록 조금만 위기관리의 시간적 여유를 허락해 달라”며 또다시 사퇴를 거부했다. 그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실이 탄로 난 이후 이런저런 변명으로 한 달 가까이 사퇴 요구를 피해왔다. 이번에 대통령 도울 시간이 필요해 대표직을 좀 더 하겠다는 것은 시민 분노가 누그러질 때까지 버텨보겠다는 ‘시간 끌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와 내각이 공중분해되거나 올스톱된 마당에 대통령 사수의 마지노선인 새누리당 친박세력마저 무너져선 안된다는 위기감의 발로일 것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4일 오후 국회에서 비선 실세 의혹 관련 사죄 인사를 마친 뒤 의원총회장에 입장해 답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젖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는 “고립무원의 대통령이 힘들게 이 난국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하시고 괴로워 신음하시는데 나 혼자 맘 편하자고 유유히 곁을 떠나는 의리없는 사람이 되기 싫다”고도 했다. 지금 가장 힘들고 신음하는 사람은 바로 시민들이다. 지난 주말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한결같은 외침은 “이게 나라냐”는 것이었다. 그런 함성을 듣고도 집권당 대표가 분노한 민심에 답하기는커녕 대통령과의 의리 때문에 자리를 지켜야겠다니 억장이 무너지고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험한 꼴을 봐야 정신을 차릴지 앞이 캄캄할 뿐이다. 이 대표는 청와대 정무·홍보수석으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당에 돌아와선 친박계 핵심으로 호위무사 역할을 수행해왔다. 비선들의 국정농단을 방치해 오늘의 파탄을 낳게 한 공범 중 한 명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유일한 비주류인 강석호 최고위원이 공식 사퇴하고 비박계의 좌장 격인 김무성 전 대표도 지도부 사퇴와 박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대표 체제는 이제 국민은 물론 당내에서도 신뢰를 잃고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국정에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느낀다면 언필칭 그가 섬기겠다는 시민 여론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깨끗이 사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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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전 대표와 정병국·나경원 의원 등 비박근혜계 새누리당 의원 40여명이 어제 긴급 회동을 갖고 이정현 대표 등 지도부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올바로 수습하려면 당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우·김세연 등 중립성향 의원 21명도 ‘최순실 사태 진상규명과 국정 정상화를 위한 새누리당 국회의원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성명을 내고 “청와대 눈치만 본 당 지도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즉각 총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정현 대표는 “난국을 수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사태를 수습해야 하니 지도부에서 물러날 수 없다”고 거부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비박계 의원 40여명이 3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개입된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긴급회동 열어 거국내각 구성과 현 새누리당 지도부의 즉각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이는 속이 들여다보이는 궤변이다. 국가적 혼란을 맞아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실제론 하야 위기에 몰린 박 대통령을 위해 방어막을 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로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박 대통령이 지명하는 상설특검을 설치하는 등 실효성 없는 수습안을 제시하면서 시간을 번 뒤 박 대통령 체제를 복원하겠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박 대통령의 국정 파행을 견제하라는 시민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박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감싸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들어 놓고서 뒤늦게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이번 사태가 벌어진 이후 당 지도부의 태도만 봐도 당을 이끌 자격을 상실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당이 할 일은 박 대통령에게 성난 민심을 전달하면서 수사에 응하도록 촉구하는 것이지만 당 지도부는 이를 굳이 회피해왔다. 어제 당내 쇄신을 요구한 의원들이 진실규명을 위해 박 대통령이 수사에 적극 응해야 한다고 입장을 모은 것과도 대비된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지금 우선 해야 할 일은 시민 앞에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석고대죄하고 물러나는 것이다. 특히 국민의 머슴을 자처한 이정현 대표는 지난 석달 동안 박 대통령의 머슴 노릇만 했다는 것을 온 국민이 다 안다. 이런 당 대표를 당의 얼굴로 그대로 두고는 새누리당이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시민들이 온통 나라를 걱정하는 마당에 국정문란을 방조한 책임이 있는 당 지도부가 기득권을 지키겠다면 누가 그 당을 지지할 것인가. 필부만도 못한 공인 의식을 가진 새누리당 지도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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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5개월이 넘도록 세월호특별법 합의를 못하고 국회 정상화를 지체시킨 데는 누구보다 집권당의 책임이 크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무능으로 발생한 것이고 현재의 교착 국면은 진상 조사에 소극적인 집권세력이 초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집권당으로서 이런 현실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전혀 자기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새누리당은 지난 26일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강행하려다 30일로 미루어지자 정의화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겠다면서 화풀이를 하고 있다. 가능한 한 여야가 함께 등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은 국회의장으로서 당연한 책무이다. 의장은 집권당의 대리인도 아니고 꼭두각시도 아니다. 의장이 집권당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집중 공격하는 것은 공당의 행태라고 보기 어렵다. 집권당으로서 책임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 일에 집중하기보다 30일 본회의가 정상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여야 간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나 30일 이전 여야 협상이 없다고 미리 못을 박았다. 여당은 야당이 세월호특별법 당론을 먼저 정하고 지도부에 권한을 위임하라는 등 사실상 야당의 항복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이 어제 여야 간 당대표 회담을 갖자는 제의를 했지만 이마저도 거절했다. 새누리당은 권력을 쥐고 있으니 아쉬울 게 없다는 식이다.

26일 오후 새누리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제3차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본회의장 야당석은 야당의원들의 불참으로 텅 비어있다. (출처 : 경향DB)


세월호 유족 측은 “수사·기소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진상 조사라는 목표에 이견이 없다면 새누리당이 그에 합당한 방안을 내놓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여야 간 대화도 해보기 전에 2차 합의안을 고수하겠다는 선언으로 진상 조사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님을 스스로 내비쳤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2차 합의안에서 더 양보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기 때문인 듯하다. 이는 조사 대상인 대통령이 자기 조사를 면하기 위해 개입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집권당은 어떤 합리성에도 눈을 감고 꼼짝달싹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의 7시간은 국회 마비를 감수하고 정국을 경색시키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덮는 한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성역인가. 진상 조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아가도 좋다는 발상이 걱정스럽다. 새누리당은 야당에 떠넘길 생각을 말고 집권당으로서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대통령도 설득하겠다는 주도적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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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죄인입니까.”

지난 2일 경찰에 가로막힌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절규하듯 한 말이다. 이들은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지 135만여명분을 전달하기 위해 삼보일배를 하면서 청와대로 향하던 중이었다.

세월호 참사 144일째. 추석을 앞둔 세월호 가족들은 ‘거꾸로 선 세상’에 살고 있다. 국가가 발 벗고 나서야 할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가족들이 단식과 농성과 삼보일배까지 하면서 호소해야 하는 세상. 사회적 위로와 공감과 치유의 말은커녕 “시체장사” “유가족충” 등 온갖 모욕의 말과 행동들을 견뎌야 하는 세상. 경제활성화의 발목을 잡는 ‘죄인’이자, 일상 복귀를 바라는 ‘일반 국민’의 바람을 거스르는 ‘반(反)국민’으로, 사회적 ‘왕따’로 몰리고 있는 세상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가슴을 치면서 비통해했던 게 불과 넉 달 전이다. 그때 300여명의 생명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눈뜨고 지켜보면서 했던 수많은 속죄와 다짐의 말들은 어디로 갔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세월호’는 이 지경까지 됐을까.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5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대 앞에 세월호 참사 실종자의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이 선선한 초가을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세월호 참사 143일째, 실종자 10명이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세월호심판론’을 내세우는 것 외엔 아무런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 야권의 지리멸렬은 논외로 하자. 넉 달 전 스스로를 ‘죄인’이라면서 “살려달라”고 읍소를 거듭했던 이들은 새누리당이었다. 최경환 당시 원내대표는 4월24일 “정말 죄인 된 심정”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도와주세요”라는 손팻말을 들거나,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며 아스팔트 위로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두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새누리당의 대응은 180도로 달라졌다. 7·30 재·보궐선거에서의 ‘11 대 4’ 압승을 “경제를 살리라는 국민명령”(이완구 원내대표)이라면서 면죄부처럼 흔들어댔다. 세월호를 지우고 그 자리에 경제를 채워넣는 모습이 확연해졌다. “경제살리기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면서 끊임없이 위기감을 자극하기도 했다. “우리 입장은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는 것”(주호영 정책위의장)이라고 보상 문제로 초점을 돌렸다. ‘외부 불순세력 개입’ 주장 등으로 색깔론을 덧씌웠고, 세월호 가족들을 국민에게서 분리하는 전략을 쓰기도 했다. 1년 전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진상규명 문제에서 새누리당이 보여줬던 ‘물타기’, ‘치고 빠지기’, ‘침소봉대’ 등의 전략들이 그대로 재현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속에 진정성과 공감이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새누리당이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 어깨를 다독이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좀체 없었다. 세월호 가족들과의 뒤늦은 면담에서 새누리당 협상단이 가족들을 얼싸안는 모습은 차라리 ‘희극’에 가까웠다. 이들에게 가족들의 국회 농성장은 “어디 뭐 노숙자들 있는 그런”(김태흠 의원) 곳이었고, 가족들의 단식은 “제대로 하면 벌써 실려가야 되는 것”(안홍준 의원)인지도 몰랐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오불관언(吾不關焉·나는 상관하지 않겠다)’의 태도를 보이는 사이 세월호 가족들은 점점 고립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신상털이와 마타도어와 조롱이 이어지고 있다. 단식 농성장 앞에서 치킨·자장면을 먹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왜곡된 증오심 앞에 세월호 가족들은 더 이상 국민이 아니라 죄인이었다. 국가는 또다시 “인간을 비인간화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해가려는”(아주대 노명우 교수)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19일 대국민담화에서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8·15 경축사에선 “적폐를 바로잡아 국가재도약의 토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과연 ‘적폐’는 누구의 적폐를 말하는가. 적폐를 바로잡을 ‘골든타임’은 누가 날려버리고 있는가.


김진우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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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하겠다고 한다.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고 다수당으로서 법안을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그 이유가 ‘위헌적인’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라는 것이다. 판·검사 출신들이 즐비한 ‘율사당’에서 이런 주장은 ‘난센스’다.

현 원내지도부가 심심하면 ‘만악의 근원’처럼 지목한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5월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을 말한다. 새누리당이 눈엣가시로 삼는 조항은 쟁점법안의 신속처리를 위해서는 관련 상임위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국회법 제85조의 2다. 이 조항이 다수결 표결을 규정한 헌법 49조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 49조는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법에 명시된 ‘5분의 3’ 조항은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로 위헌이 아닌 것이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가운데)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 모두발언에서 "국회선진화법 이대로 좋은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출처 : 경향DB)


새누리당이 헌법소원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는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가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당시 황우여 원내대표 등 친박 지도부가 주도했고, 박근혜 의원 등 다수의 친박 의원이 찬성했다. 자신들이 만든 입법으로 인해 자신들의 기본권을 침해받았다는 자가당착이다.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해 새누리당이 수사권을 가진 진상조사위는 민간수사기구 창설이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기존 실시한 특검들과 지난 6월 발효된 상설특검법에서도 민간인 특별검사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고 있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을 반대할 수 있지만, 위헌이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158명을 거느린 ‘육식 공룡’ 정당이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단독처리를 하지 못해 ‘식물정당화’된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직접 위임을 받은 국회 다수당이 억지 ‘위헌’ 논리로 사법부에 기대려는 것은 자신들의 정치력 부족을 은폐하려는 꼼수일 뿐이다.


강병한 정치부 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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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있는 이유가 있다. 진실은 말이 있어야 존재한다. 신문에 활자화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된다. 어떤 언어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적과 동지, 이익과 손해, 정의와 부정의가 달라진다. ‘신자유주의 좌파’ 정부에서부터일까. 나는 국어 해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녹색 성장’을 표방했던 이명박 정권이 절정일 줄 알았는데, 이제 더 이상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 아닌 것 같다.

대필과 표절은 사법적, 윤리적 범죄행위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캔들’이라고 한다. 성폭력은 현행법상 명백한 범죄인데 ‘실수’라고 말한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우선인데, 왜 다들 대책위원회를 만드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고위직 인사청문회에서 주로 문제되는 사안들(투기, 탈세, 병역 비리, 학력 위조)도 범죄라는 인식이 없다. “남들 다 하는데 재수 없어 걸렸다”고 생각한다. 이런 풍조에서 “이 정도면 통과”, “털어서 나는 먼지”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범죄는 사실 유무로 결정하는 것인데, ‘이 정도’는 어디서 나온 잣대인가.

학위 논문 베끼기, 서류 조작, 폭력 사건 은폐, 뇌물 수수, 피해자 협박 등 날만 새면 전과를 쌓는 이가 있다.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지만, 주변에서 하도 비난하는 사람이 많아 잘 아는 사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이상한 일은 그의 존재가 아니라 지인들의 대응이다. 사람들은 그를 성토하면서도 결론은 언제나 “악착같이 살다보니… 언젠가 정신 차리겠지”로 ‘중지(衆智)’를 모은다. 경찰과 해당 대학에 법규에 맞는 절차를 밟도록 하면 그만인데, 신고는 하지 않고 욕만 해댄다.

우리는 도덕 불감증이 아니라 도덕의 개념 자체가 바뀐 시대에 살고 있다. 후안무치가 도덕인 시대다. 세월호는 ‘도덕의 재구성’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사건 발생, 이후 대응방식, 막말 정국까지 쇼크의 연속이지만 최근 ‘세월호특별법’에 이르러 나는 결국 인식 불능 상태에 빠졌다.

대통령이 특별법에 ‘신경’ 쓰는 것이 삼권분립 위반, 권력 남용이라는 주장은 말인지 소리인지 어이가 없다. 그것이 권력 남용이라면 부디 행사했으면 한다. 발언자의 의도된 무지이기를 바랄 뿐이다. 원래 삼권분립은 분권보다는 협치(協治)에 가까운 개념이다. 어쨌든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새로운 언어는 여야가 혹은 정부·여당이 유가족과 세월호특별법을 “협상한다”는 말이었다.

우리나라는 의무교육 과정에서 배상과 보상의 구별을 가르친다. 국가폭력, 범죄, 천재지변 발생 시에는 피해자에게 배상이나 보상을 해야 한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피해는 이미 발생한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피해를 최대한 구제(救濟)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법질서의 기본이다. 세월호 탑승자들과 그 가족의 피해는 공동체의 책임이고 이는 무조건적 당위다. 그런데, 협상이라니!

유가족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과 협상은 다르다. 협상은 동급 행위자 간의 일이지, 가해자와 피해자 그것도 일방적 피해자에게 선심 베풀 듯 제안할 일도, 피해자가 쟁취할 사안도 아니다. 유가족은 아무런 의무가 없다. 타협과 협상은 힘의 균형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바람직한 정치지만, 지금 정국에서 ‘협상’은 피해자가 무슨 요구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부와 여당은 앞장서서 피해자를 위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법을 제정하면 된다.

새누리, 일반인 희생자 유족 면담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오른쪽) 등 원내지도부와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대책위원회 대표단(왼쪽)이 28일 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묵념하고 있다. _ 연합뉴스


‘협상’은 이 문제에 대한 정부·여당과 지지 세력의 세월호를 대하는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염수정 추기경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아픔 이용돼… 유가족도 양보할 수 있어야”라고 말했다.

나는 세월호의 고통이 이용될 만큼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공유되었는지부터 묻고 싶다. 누가 누구를 이용했는가? 같이 아파한 사람은 야당에 투표하고 그로 인한 여당의 아픔(?)이 안타까운 이들은 여당에 투표했다. 덕분에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유가족의 고통을 십분 이용한 세력은 바로 현 정권이다. 이용한 정도가 아니라 무시하고 모욕했다.

유가족이 양보해야? 이 말은 무슨 뜻인가. 가족의 죽음. 그 이후의 삶, 우주, 모든 것을 상실한 사람들이 누구에게 무엇을 더 양보해야 하는가. 그들에게 무엇을 더 ‘받아내야’ 저잣거리 표현으로, 속이 후련하겠는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양보하는 것이 균형인가. ‘우리’는, 사회는, 국가는 그들에게 무엇을 양보했는가.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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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세월호 유가족 대표단이 어제 만나 세월호특별법 문제를 논의했다. 지난 25일 어렵사리 첫번째 면담을 한 다음 약속했던 2차 협의를 진행한 것이다. 당장의 구체적 성과물 도출 여부를 떠나 국회 입법권을 쥐고 있는 여당이 세월호 유가족과 대화의 자리를 이어가는 것, 어찌 되었든 소망스러운 일이다. 이제 유가족이 동의하지 않는 세월호특별법은 성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세월호특별법이 풀리지 않으면 정국은 정상화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세월호특별법 타협안이 연거푸 두차례나 유가족들에 의해 거부되면서 세월호 정국은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결과적으로 여당과의 합의안을 두차례나 깬 꼴이고, 특히나 유가족들로부터 기본 신뢰마저 잃은 새정치연합은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이끌 동력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다. 새정치연합의 대여 강경투쟁은 “교섭력을 잃은 상태에서 나온 궁여지책”(심상정 정의당 대표)이라는 진단은 핵심의 일면을 꿰뚫는다. 이제 세월호특별법의 꼬인 실타래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풀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누리당과 세월호 유가족 간의 직접 대화는 세월호 정국을 타개하는 불가피한, 아니 유일한 통로라 하겠다.

두 번째 만남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왼쪽)와 세월호 유가족들(오른쪽)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2차 회동을 갖기에 앞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사실 정확한 진실과 책임소재 규명, 재발방지책 마련이라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의 본디 취지와 목적에 충실한다면 ‘매듭 풀기’가 난망한 것도 아니다. 새누리당이 내세우는 사법체계를 흔들지 않고도 여러 가능한 방법이 유가족과 야당 측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여야의 ‘재합의안’을 유가족들이 거부한 것은 진상조사위원회 대신 수사·기소권을 행사할 특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 큰 이유였다. 굳이 ‘사법체계’를 건드리지 않고도, 특검을 추천하는 방식에서 유가족 의사가 강력히 관철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터이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구체적 방안을 거론하며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쓸개를 빼놓고라도 해법을 찾겠다”(이완구 원내대표)는 그 의지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세월호 사고에 대해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있다.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책임 역시 그들에게 주어져 있다. 세월호특별법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집권여당으로서의 책임을 새긴다면, 새누리당이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을 통해 오로지 진실을 밝히기 위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전향적 결단을 내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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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가 어제부터 8일까지 예정되었으나 열리지 못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가 대치, 접점을 찾지 못한 탓이다. 특히 7·30 재·보선 승리 후 새누리당의 입장이 더욱 강경해져 이대로는 청문회가 이 달에 열릴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세월호 국정조사특위가 구성된 지 두 달을 넘겼지만 여야가 함께 국정조사를 한 것은 기관보고를 받은 8일에 불과하다.

세월호 진상과 책임 규명, 재발방지책 마련을 위해 필수적인 세월호특별법 협상은 아예 중단된 상태다. 최대 쟁점인 진상조사위의 수사권 부여와 방식을 놓고 줄다리기를 해오던 여야가 재·보선 후엔 손을 놓고 있는 꼴이다. 선거 참패로 제 몸 가누기에도 벅찬 새정치민주연합은 협상을 이끌 동력을 잃은 모습이다. 무엇보다 재·보선 승리 후 새누리당에서 강경론이 득세하며 세월호특별법을 굴절시키려는 움직임이 노골화하고 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법과 원칙 문제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야당의 양보만을 압박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호도하더니,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20일 넘게 국회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을 ‘노숙자’ 취급까지 했다. 선거 전에는 세월호 참사에 머리를 조아리며 참회와 변화를 약속하던 새누리당, 참으로 몰염치한 표변이다.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 이완구원내대표가 증인채택 문제로 파행 중인 세월호 국조특위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재·보선 후 새누리당이 보이는 행태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뭉개고 ‘세월호 국회’를 좌초시키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당장 청문회 증인에서 김기춘 비서실장과 유정복 인천시장 등을 제외하자는 것부터가 부당하다. 김 실장은 세월호 사고 당일 청와대의 대응과 대통령에 대한 보고 체계·과정을 조사하기 위해서 필수 증인이다. 세월호 사고 당시 안전행정부 장관으로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맡은 유 시장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은 진상조사위의 수사권은 물론, 재·보선 전에 여야가 의견 접근을 이룬 특별검사 도입조차 무산시키려 들고 있다. 세월호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철저히 밝혀내지 않고는 ‘세월호 이후’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새누리당은 재·보선 결과의 의미를 오판 말아야 한다. 선거 승리가 세월호 사고 대응과 후속 조치에서 드러낸 정부·여당의 잘못에 면죄부를 준 것은 결코 아니다. 선거가 어떻게 끝났든 세월호 참사의 정확한 진상과 책임 규명, 재발방지책 마련이라는 국민의 명령은 달라질 수 없다. 새누리당이 선거 승리에 도취해 ‘세월호 덮기’에 골몰한다면 이제 국민의 심판은 그들을 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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