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1.04 [정동칼럼]촛불과 소수자 목소리
  2. 2017.01.02 고르게, 인간답게 사는 나라로

수년 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할 때다. “그들이 온다!”고 하면 비상이 걸렸다. 인권위 건물을 점거무대로 삼은 장애인들이었다. 칼날 같은 주장과 거친 몸싸움에 엘리베이터를 점거하고 밤샘농성도 불사했다.

왜 저럴까? 조용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더 호소력이 있지 않을까? 과격하면 거부감만 더 커진다는 것을 왜 모를까? 그런 선입견이 작동하면 그들의 울부짖음의 내용은 잘 들리지 않게 된다.

나중에 하나하나 살펴보니 구구절절 옳지 않은 주장이 없었다. “장애인도 공부하고 싶다.” “제발 지하철 타고 다닐 수 있도록 하라.” “규율이 지배하는 시설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 “우리도 사람이다. 1급, 2급으로 등급 매기지 마라.”

주장은 과격하지 않았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것에 불과했다. 장애는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눈감고 귀 막은 비장애인에게 있었다. 존중받지 못하니 목청이 높아지고 차츰 분노가 쌓이며 쇳소리가 날 수밖에.

들어주고 만나주지 않으니 행동은 더 과격해질 수밖에 없다. 혹 아는가? 장애인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고 버스 바퀴 밑으로 몸을 던진 뒤에야 휠체어로 오르내릴 수 있는 저상버스가 이 땅에 도입되었다는 것을.

[장도리]2017년 1월 2일 (출처: 경향신문DB)

광장의 일렁이는 촛불과 함께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희망을 염원하던 사람들은 이제 촛불을 들고 탄핵 이후의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촛불혁명의 목표는 정권교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나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광장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혹자는 재벌개혁을, 누군가는 특권과 부패 척결을, 어떤 이는 갑질과 학벌주의와 남성중심사회의 청산을 주장한다. 나는 평등과 정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이 구체제와 낡은 질서 대신에 들어서야 할 사회의 중심적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중에 인권위를 찾아오던 장애인들이 자꾸 떠올랐다. 탄핵과 정권교체를 외치던 광장의 사람들은 탈시설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갈 지역사회 공동체를 만들자는 주장에도 한목소리를 낼까? 터무니없는 임금과 비인격적 대우를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거나 처우 수준을 높이자고 하면 받아들일까? 인종차별을 견디며 온갖 허드렛일을 감당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민을 허용하자고 하면 어떨까? 성소수자를 차별·혐오하는 대신 존중하고 연대할 수 있을까? 그 밖에도 많다. 미혼모와 노숙인과 독거노인과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신용불량자와 난민에게도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하면 과연 얼마나 수용될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 중대한 국면에 부딪힐 때면 흔히 간과되는 것이 소수자와 약자의 문제다. 소수자의 문제는 ‘사소한’ 문제나 ‘골치 아픈’ 문제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지금은 단결이 우선이고 분열되어서는 안되니 우선 좀 참으라고 한다.

상황은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 훨씬 더 나빠진다. 다수의 표를 얻기 위해 뛰는 자들에게 소수자의 목소리는 간과되고 묵살된다. 그래서 소수자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된다.

한국의 인권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론 염려스럽다. 자신의 인권에 대해서는 민감성이 드높아졌지만 이웃의 인권 침해나 차별에는 무심하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가 아니니 소수자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권침해의 경사에 놓인 바위는 멈추지 않고 굴러떨어진다. 소수자를 위협하던 인권침해는 곧 나의 인권을 위협한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소수자이고 약자이다.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비유 중에 아흔아홉 마리의 양과 길 잃은 한 마리의 양 이야기가 있다. 목자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다. 얼핏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흔아홉 마리의 양 입장에서 한번 보자. 언젠가 길 잃은 양이 될지도 모르는 그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신뢰하게 되고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선 목자를 믿고 따르지 않을까?

소수자와 약자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곁가지로 사소하게 취급되어서는 안되며 우선적으로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인권의 가치인 자유와 평등은 따뜻한 연대를 통해 비로소 충만해진다.

촛불광장은 다양한 소수자의 목소리로 채워져야 한다. 작은 목소리를 내도록 격려하고, 광장에 나오지 않는 소리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은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촛불이 되고, 서로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것이리라.

문경란 |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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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경남 창원에서 열린 촛불집회 연단에 24세 청년이 올라왔다. 유튜브를 통해 본 영상에서, 그는 20세에 취직해 4년째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전기공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세금 떼고 나면 손에 쥐는 월급이 120만원인데, 방세와 교통비, 식비, 공과금을 내고 나면 저축을 할 돈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지금의 월급으로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궁금해서 촛불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퇴진 이후에 자기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1987년에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그다음에 노동자들이 대투쟁을 해서 임금도 오르고 삶이 나아졌다고 알고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 청년노동자의 소망처럼, 이번 촛불은 우리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유튜브에 떠 있는 자유발언 영상들을 보면, 이런 희망 섞인 기대들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반면 하루하루 밝혀지는 대한민국의 민낯은 참담하기만 하다. 소설가로 알려진 대학교수가 ‘정유라’에게 학점을 주기 위해 부정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는 뉴스가 나온다. 국회에서는 태연하게 ‘최순실을 몰랐다’고 잡아떼던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은 최순실·정유라에게 수백억원을 지원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뉴스도 나온다. 힘과 돈을 가진 이들이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나라를 바로잡겠다고 알바비 7만원을 포기하고 왕복교통비까지 들여서 촛불집회에 나왔다는 청소년이 있는 게 이 나라의 기막힌 현실이다.

(출처: 경향신문DB)

그래서 이번에는 ‘박근혜’라는 한 사람이 물러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쌓여 있는 이 나라의 적폐를 청산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지는 않다. 많이 훼손되어 왔지만, 소중한 대한민국만의 유산도 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국을 떠나,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독립운동가들이 꿈꿨던 나라의 모습이 여러 문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 문서들을 보면, 대한민국의 참된 헌법정신, 건국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은 ‘고르게 인간답게 사는 민주공화국’이다. 무슨 근거로 이런 얘기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1941년 11월2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포했던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문서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삼균주의(三均主義)’를 표방하고 있다. 조소앙이 이론적 기반을 세웠던 삼균주의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의미한다. 보통선거를 통해 정치의 균등을, 토지 국유를 통해 경제의 균등을, 무상교육을 통해 교육의 균등을 도모하고,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것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꿨던 나라는 이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런 내용은 1948년 제헌헌법에도 반영된다. 제헌헌법은 이승만 세력, 한민당 등 우파로 분류되는 집단들도 참여해서 만들어졌지만, ‘대한민국 건국강령’의 연장선상에서 ‘만민균등주의’를 기본정신으로 택했다. 그래서 ‘모든 영역에서 사람들의 기회를 균등히 한다’는 것이 헌법 전문에 담겨 있다. 헌법 제정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했던 법학자 유진오는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의 조화를 꾀하는 데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제헌헌법이 만민균등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한 내용도 있다. 대표적으로 노동자에게 이익균점권을 보장했다. 사기업의 근로자가 기업의 이익 분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이익균점권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만큼 제헌헌법을 만들 당시에는 만민균등주의에 대한 공감대가 존재했던 것이다. 만약 이런 정신만 실현되고 있다면, 24세 청년노동자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낫지 않았을까?제헌헌법은 토지 자체를 국유로 하지는 않았지만, 광물 등 지하자원은 국유로 한다고 규정했고, 운수·체신·금융·보험·전기·수도·가스 등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는 규정도 두었다. 농민이 농지를 가질 수 있도록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정했고, 이 조항을 근거로 이승만 정권도 농지개혁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과정은 끊임없는 헌법정신의 훼손이었다. 노동자 이익균점권은 5·16쿠데타 이후인 1962년 삭제되었다. 공공성 있는 기업을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는 조항은 그보다 앞선 1954년 삭제되었다.

물론 지금 이런 조항을 단순히 부활시키자는 얘기를 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조항을 두었던 헌법의 기본정신을 복원하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이, 그리고 제헌헌법이 꿈꿨던 나라는 ‘고르게 인간답게 사는 나라’였던 것이 분명하다. ‘헬조선’은 헌법정신과는 정반대의 결과이다.

그래서 박근혜 퇴진은 정경유착과 특권·기득권 구조의 퇴진이 되어야 하고, 제헌헌법의 정신을 부활시키는 강력한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 재벌 개혁, 검찰 개혁, 관료기득권 개혁, 중앙집권적 국가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에게는 정당한 대가가 보장되고,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비빌 언덕’이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나라를 이제는 만들어야 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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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