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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25 [기고]천주교 서소문 단독 성지 추진은 무리

서소문(소의문)은 서울성곽에 있는 사소문 중 하나다. 서소문은 사대문 및 사소문 사업의 일부로 태조 5년(1396년)에 건립됐다. 원래 이름은 소덕문인데 보통 서소문이라고 불린다. 강화군 또는 인천군을 향하는 관문으로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철거됐다. 한양 도성의 장례행렬이 통과할 수 있는 문은 사소문 중 서소문과 광희문밖에 없었다.

한국천주교 역사에 약 1만명의 순교자가 있다.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100여명의 천주교인이 서소문에서 처형됐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주재로 서소문의 천주교 순교자 44명이 성인품에 올려졌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서소문의 순교자 27명이 시복됐다. 다산 정약용의 형 약종(1760∼1801)도 이곳에서 참수됐다. 서소문은 이제 국내 최대의 천주교 성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서소문에서 천주교 순교자들만 처형된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사형이 서소문에서 집행됐다.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전봉준, 홍경래 같은 의인들도 여기서 처형됐다. 황사영 같은 천주교 신자도 여기서 처형됐다. 황사영은 조선을 청나라로 편입시키거나, 프랑스가 군대를 보내 정벌해 달라고 요청한 이른바 ‘황사영 백서사건’의 주인공이다. 서소문은 오랜 기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처형된 곳이다. 천주교가 이곳을 독점 소유할 권리나 명분은 없다.

서소문 단독 성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묻고 싶다. 이곳을 단독 성지로 추진하는 일이 이치에 맞는가. 국민들과 이웃 종교에 양해를 구하고 상의했는가. 똑같은 질문을 정부에 하고 싶다. 서소문에서 가톨릭 순교자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정부가 가톨릭 단독 순교성지 조성에 나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벌써 정부와 서울시가 총사업비 513억원 규모의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설계공모까지 들어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당시 서소문공원을 방문했다. 교황은 서울대교구가 추진하는 서소문 단독 성지 사업을 정확하게 보고받고 있을까. 만일 교황이 그 내막을 자세히 알게 된다면 과연 찬성할까. 교황의 서소문공원 방문 사실 자체를 마치 교황이 서소문 단독 성지 사업을 찬성하는 신호로 해석하거나 선전하는 것은 지나치다.

천주교는 서소문에 큰 의미를 둘 만하다. 그러나 서소문을 천주교 단독 성지로 만들려는 생각은 무리다. 천주교는 정부의 호의를 얻어 특혜를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이용해 천주교의 환심을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천주교는 정부에 기대지 말고, 정부는 천주교를 이용하지 마라.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 (출처 : 경향DB)


나는 서소문공원을 천주교 단독 성지로 만드는 데 반대한다. 서소문이 천주교 성지인 것은 맞지만 천주교 단독 성지인 것은 아니다. 서소문공원을 천주교 단독 성지보다는 서소문에 관계된 여러 종교의 공동 성지로 만들면 어떨까. 일종의 평화공원 말이다. 종교 간 대화와 평화를 위해서도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지난날의 순교자를 공경하는 것보다 지금 순교하는 일이 천주교에 더 중요하다. 성지 개발이 교회의 주된 임무는 또한 아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을 편드는 데 우선 더 신경 써야 한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며칠 전 한국주교회의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한국천주교와 염수정 추기경은 서소문 성지를 위해 노심초사할 것이 아니라 세월호특별법 통과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 천주교가 돌아가신 순교자를 존중하자고 외치면서, 지금 살아 있는 순교자를 외면하면 되겠는가. 서소문성지 문제에서 한국천주교의 정신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한국천주교와 정부가 어떻게 처신하는지 국민들과 이웃 종교가 지켜보고 있다.


김근수 | 평신도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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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