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큰 사회적 파장을 가져온 사건들 중 하나로 서지현 검사의 미투 선언을 돌아본다. 이 사건은 검찰의 성불평등과 폭력적 관행을 폭로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런 문제제기가 얼마나 뿌리 깊은 조직적·대중적 저항에 부딪히는지를 보여주고, 평등한 사회를 향한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의미가 더 크다.

그의 고발이 큰 반향과 공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서 검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검찰 조사단은 공소시효가 지나 사실상 수사를 할 수 없는 추행 사건에 집중했고, 애초의 문제제기 후 자신에게 가해졌던 부당한 인사조치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상화된 추행도 문제였지만, 서 검사가 말하는 사건의 핵심은 남성 권위와 성폭력적 문화에 반발하는 구성원에 대한 조직적 억압과 응징이다. 그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검찰조직을 흔드는 일종의 ‘꽃뱀’이라는 공격을 수없이 당한 듯하다. 그럼에도 검찰과 법무부의 미온적 대응을 꿋꿋이 비판해 온 그는 최근 안태근과 국가를 상대로 강제추행과 직권남용에 따른 보복인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배상 요구가 ‘꽃뱀’ 논란을 악화시킬 것을 알지만 피해자들이 적법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한다.

서 검사는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꽃뱀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성폭력 사건에 무고 비율이 40%가 넘는다는 가짜뉴스에 직업적 전문성으로 맞선 것이다. 2016년 대검찰청 통계에서 성폭력 사건들 중 24.8%가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됐는데 은밀히 일어나는 사건의 특성상 ‘증거 불충분’으로 인해 혐의 입증이 어렵다는 판결에 이르는 것이며, 고소가 허위로 입증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그는 15년차 검사로서 강변한다.

‘꽃뱀’이라는 오명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당하는 가장 흔하고 괴로운 2차 피해이다. 피해자 대다수가 꽃뱀 운운하는 댓글, 소문에 시달린다. 꽃뱀 서사는 가해자 및 다수 대중의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사건을 왜곡하여 피해 여성을 침묵시키고 그의 자존감을 파괴하는 무기로 보편화되었다. ‘꽃뱀’ 공격으로 가해자는 피해자 서사를 가로채,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우고 피해자를 도리어 징벌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권력자의 과오를 피해자에게 전가하여 권력관계를 철저히 가해자 중심으로 유지하려 하는 이 비겁한 논리는,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의 표출이기도 하다.

서구 문화에서도 머리카락이 뱀인 메두사는 여성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한다. 신화 속 메두사가 언제나 괴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는, 아름다운 메두사를 탐하던 포세이돈이 아테나의 신전에서 메두사를 강간하고, 이에 분노한 아테나가 메두사를 괴물로 만든다. 포세이돈이 아닌 메두사가 징벌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익숙한 서사구조 아닌가? 피해자임에도 벌을 받은 메두사는 바라보는 남자를 돌로 만드는 운명에 처한다. 남성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남성을 무력화하는 괴물이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메두사 신화로 남성의 거세불안을 설명한 사실은 유명하다.

메두사는 아테나의 청동방패를 빌려 저주를 피한 페르세우스에게 참수당한다. 이로써 메두사 신화는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고 권위를 위협하는 여성에 대한 불안을, 또 그런 여성에 대한 남성의 처벌과 응징을 표상하게 되었다. 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이나 양차 대전 후 사회참여를 거세게 요구했던 여성들은 괴물 메두사에 비유되곤 했다. 남성 특권을 위협하는 여성에 대한 적대감을 메두사 이미지로 치환해 온 역사에서 메두사가 성폭력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잊혀졌다.

서 검사는 며칠 전에도 ‘꽃뱀이란 무엇인가2-꽃뱀의 늪’이라는 글을 올렸다. “돈 많고 사치하면 돈 좋아하니 꽃뱀/ 돈 없고 초라하면 돈 필요하니 꽃뱀/ 예쁘면 예뻐서 남자들 정신 못차리게 꼬셨으니 꽃뱀/ 안 예쁘면 안 예쁜데 성폭력 당하려고 남자 꼬셨으니 꽃뱀/ 능력과 지위 있으면 그 자리까지 가려고 몸로비했을거니 꽃뱀/ 능력과 지위 없으면 가진 건 몸뿐이라 몸로비했을거니 꽃뱀…” 그는 정말 꽃뱀 소리를 지겹게도 들었나 보다. 하지만 그런 공격은 침묵 대신 그를 시(詩)의 경지로 이끄는 모양이다.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본부는 12월9일 반부패의날을 맞이하여, 투명사회상 수상자 중 한 명으로 서지현 검사를 선정했다. 오래 지속되어야 할 변화를 그가 재촉했다는 점에 대한 작은 인정이다. 메두사가 흘린 피에서는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가 솟아났고, 메두사는 수많은 시인들과 페미니스트들의 영감으로 다시 태어났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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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종목에서 국가대표를 지낸 한 선수는 지난여름을 해외에서 보냈다. 폭염을 피해 출국한 게 아니다. 앞서 그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개혁을 촉구하는 움직임에 참여했다.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전 연맹 부회장)로 대표되는 기득권세력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결국 홀로 외국으로 떠났다. 개인훈련을 하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서야 귀국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컬링 전 국가대표 ‘팀킴’이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그의 딸·사위인 김민정·장반석 감독으로부터 폭언과 사생활 통제,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겨울동화’에 열광하던 대중은 충격에 빠졌다. 컬링계 내부를 아는 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터질 게 터졌을 뿐이라고 했다.

컬링 전 여자 국가대표팀인 김경애 김영미 김선영 김은정 김초희(사진 왼쪽부터) 가 1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최근 불거진 논란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팀킴은 “가족이라 칭하는 틀 안에서 억압, 부당함, 부조리에 불안해했고 무력감과 좌절감 속에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격려금과 포상금을 제대로 배분받지 못했으며, 팬들로부터 받은 선물과 편지도 뜯겨진 채로 받았다고 했다. 김·장 감독 부부 아들의 어린이집 행사에 동원되고, 스킵(주장) 김은정 선수의 결혼을 이유로 포지션 변경을 강요당했다고도 했다. 실체적 진실은 19일 시작된 문화체육관광부·경상북도·대한체육회 합동감사에서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 출신 피터 갤런트 전 코치도 팀킴을 100% 지지한다고 밝힌 걸 보면 팀킴 주장이 사실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김 전 부회장 측은 “감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스포츠, 인권을 만나다>의 공동저자인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상당수가 인지하고 있던 일인데도, 결국 피해 당사자들이 입을 열어야 했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번 사건이 한국 스포츠인권의 미래를 가름할 것으로 봤다.

“지도자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세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하게 됩니다. 운동을 그만두는 유형이 있고, 남아서 버티며 똑같은 괴물이 되어가는 유형도 있습니다. 나머지가 팀킴처럼 내부고발하는 유형인데, 드물고 귀한 경우지요. 만약 이번 폭로가 그대로 묻힌다면 ‘팀킴을 봐라’ 이렇게 될 수 있어요. 팀킴 같은 국제적 스타플레이어가 나서도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선수들의 무기력증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수가 오랜 기간 해당 종목을 일궜다는 ‘개척자 프레임’으로 독재적 전횡을 하는 사례가 다른 종목에도 많습니다. 이번 사태는 한국 스포츠의 낡은 악습이 사라지느냐, ‘학습된 무기력증’의 심화로 이어지느냐 갈림길이 될 겁니다. 기성 스포츠계가 결단을 내려 제대로 처리하고, 시민들도 계속 주목했으면 합니다.”

서지현 검사. 정지윤 기자

검찰의 내부고발자 서지현 검사가 최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함으로써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의 본격 시발점이 된 서 검사는 검찰이 변한 게 없다고 했다. “검찰에서 제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해요. 우리는 너를 괴롭힌 사람을 잘 대해주고 있다. 서지현을 다시 검사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우리 조직은 아무 문제가 없다….”

지난 17일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폭로 이후)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누군가 말했다. ‘이제 가만히 있어라. 그만하면 됐지 않으냐.’ 나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더 가만히 있는가? 가해자에 대한 1심 판결조차 나지 않았다. 상정된 미투 관련 법안은 하나도 통과가 안됐다 한다. 뭐가 그만하면 됐단 말인가?”

곳곳에 ‘가만히 있으라’투성이다. 검찰에선 서지현을 보라, 고 한다. 서지현을 배제하고, 대신 서지현을 공격한 이들을 껴안으면서. 팀킴은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김경두 전 부회장, 김민정 감독과 올림픽 전부터 대화하려고 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너희가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았는지 아느냐’는 말뿐이었다. 얘기를 하려는 선수를 배제하려고 했다.”

KBS 드라마 <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이다. 백진상 팀장(강지환)은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강인한 사장(인교진)에게 저항한다. 직원들은 침묵한다. 강인한은 “영웅 행세하면 박수라도 쳐줄 줄 알았느냐”며 비웃는다. 백진상은 “뭐라도 소리를 내. 벨소리든 발소리든. 내 말에 동의는 하지만 겁은 나고, 그렇지만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의사표시를 하라”고 외친다. 하나둘씩 휴대전화 알람 소리가 들리더니 박수가 터진다.

팀킴과 서지현의 입을 막는다 해도 또 다른 이들의 알람이 울려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고립되기 전에, 영웅 행세한다는 비웃음을 듣기 전에 법과 제도와 시스템이 먼저 알람을 울려주기 바란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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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료인·언론인·교수·회계사 등 전문직 여성들의 상당수가 직장에서 각종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5일 전문직 여성 10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올해 불붙은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은 현직 검사인 서지현 검사가 폭로한 상급자의 성추행 사건에서 시작됐다.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성폭력이 전문직이자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검사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이번 조사결과는 이 같은 잘못된 성문화가 우리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5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한국여성변호사회 주최로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폭력 실태조사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조사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541명)이 ‘외모, 옷차림, 몸매 등을 성적으로 희롱·비하·평가받는 행위’를 직·간접적으로 당했다고 답했다. 성적인 이야기나 음담패설을 듣거나, 고의로 신체 부위를 건드리거나 몸을 밀착시키는 행위를 당하거나 이성의 옆에 앉기나 러브샷 등을 강요당했다는 응답자도 각각 절반가량 됐다. 대면조사에 응한 전문직 여성들은 직장 상사 등이 회식 중이나 후, 또는 차량을 함께 타고 가면서 강제로 신체접촉을 하거나 모텔 등에 끌고 가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특히 전문직 여성들은 향후 불이익이 클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성폭력을 당해도 제대로 문제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도 성폭력 피해 이후 문제 제기를 한 328명 중 10%가량인 33명이 ‘업무상 부당 대우를 겪었다’고 답했다. 악의적 소문이나 따돌림에 노출된 사례도 14.6%나 됐다.

조사결과는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엘리트’ 조직이라 불리는 법조계·의료계·언론계·학계 등에도 어김없이 고질화된 남성중심적인 조직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 조직에서 근무하는 남성들 대부분이 평균 이상의 교육을 받은 이들이다. 그럼에도 상당수 남성들이 여성 동료를 성적 대상으로 삼는 잘못된 문화에 물들어 있는 것이다. 남성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성폭력 예방과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처벌을 위한 법적·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최근 여성의 사회진출이 크게 늘면서 전문직에서도 새로 진입하는 인력 중 여성이 절반을 넘고 있다. 이제는 단지 ‘소수자’인 여성 배려 차원이 아니라 조직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서도 구시대적인 남성중심적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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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국가인권위원장에 최영애 서울시 인권위원장이 내정됐다. 최 내정자는 한국 최초의 성폭력 전담 상담기관인 한국성폭력상담소 설립을 주도하는 등 여성 인권 신장에 힘써왔고 인권위 사무총장과 상임위원을 지냈다.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추천위의 공모·심사를 거쳐 내정된 첫 사례다. 최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절차를 거쳐 임명되면 첫 여성 국가인권위원장이 된다. 역대 인권위원장은 모두 남성 법조인이거나 법학자였다. 최초의 여성·시민운동가 출신 인권위원장 내정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내정자가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시절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여성 인권위원장이라고 여성만을 강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 전반적인 인권과 민주적 절차에 대해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발언 취지를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성폭력특별법 제정 추진위원장과 서울대 조교 성희롱사건 공동대책위원장을 지내는 등 반(反)성폭력 운동을 주도해온 인사를 내정하며 굳이 그런 설명까지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올해 초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 이후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된 터다.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폭력 근절을 요구하고, 임신중단 합법화(낙태죄 폐지)를 외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성평등 문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지 가름할 중대 이슈로 부상했다. 청와대는 사회 일각의 백래시(반격·역풍)에 주춤할 게 아니라, 여성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 개선에 보다 과감하고 단호한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

2001년 출범한 인권위는 사형제와 국가보안법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등에 대한 권고·의견표명을 통해 한국 사회에 새로운 인권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위상이 급락했다.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에서 2004년 A등급을 받았던 한국 인권위는 2014~2015년 세 차례나 등급보류 결정을 받는 수모를 겪었다. 용산참사 등 심대한 인권침해 사안을 외면하고, 공권력의 반인권적 행태를 옹호한 결과였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인권위원장의 대통령 특별보고를 부활하는 등 인권위 위상 강화를 지시한 바 있다. 인권위가 새로운 위원장 내정을 계기로 약자와 소수자들의 ‘인권 지킴이’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국회와 정부도 인권위 위상이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뒷받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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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연극계는 ‘미투(#MeToo)’ 운동으로 뜨거웠다.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던 유명 연출가 이윤택씨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전직 단원 등의 증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성추행을 넘어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연극인들의 모임 게시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씨 외 또 다른 가해자들의 성폭력을 증언하는 글도 잇따랐다. 피해자들은 수업이나 연기지도를 빙자한 성희롱,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의 성추행 사례 등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연쇄 성폭력 범죄 사실이 최근 폭로되기 시작한 연극 연출가 이윤택.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이윤택씨가 저질러온 성폭력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씨는 연희단거리패 시절 여성 배우들을 심야에 극단 별채인 황토방으로 불러 부적절한 안마를 시켰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배우 개개인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작용했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상처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해자는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로 승승장구했으니 기막힐 따름이다.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의 용기있는 ‘미투’가 없었다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

이씨는 그동안 연희단거리패 뒤에 숨어 ‘간접 사과’로 일관해왔다. 추가 폭로가 계속되고 비판이 거세지자 뒤늦게 19일 공개 사과를 하기로 했다. 한국연극협회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가해자의 책임을 묻고,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를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당연한 조치들이지만 충분치는 않다. 이씨의 행태는 고백과 사과로 용서받을 수준을 넘어섰다고 본다. “스스로 벌을 달게 받겠다”(14일 경향신문 인터뷰)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수사를 자청해야 옳다. 연극협회도 철저한 진상규명 작업은 물론 연극계 전반의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위계서열 문화를 청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지난달 말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며 불붙은 반(反)성폭력 운동은 법조계·기업·문학계를 넘어 연극계로까지 확산됐다. 이는 성폭력이 특정 분야나 집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말해준다.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모든 조직에 상존하며,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음을 일깨운다. 연극계를 넘어 또 다른 분야에서도 ‘미투’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은 ‘강요된 침묵’에서 벗어나 비로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회는 이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 정부는 제도적 차원에서 응답을 내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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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분노를 넘어 행동하기 시작했다. 성폭력 피해를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결단이다. 피해자들이 불이익을 받는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온·오프라인에서 ‘역대급’ 광풍이 불고 있다. 8년 만에 용기를 낸 서지현 검사의 발언이 여성들에게 힘을 준 결과이다.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이 세상에 나오는 데 8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 것처럼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를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미국발 미투(#Me Too)는 아니었지만 1983년 여성의전화 핫라인 상담전화를 통해 여성들은 납득할 수 없는 피해, 있어서는 안되는 일에 대해 이미 말하기 시작했다.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개소했을 때 성폭력의 피해를 말하는, 계속 울려대던 전화 소리를 필자는 잊을 수 없다. 또 2003년 최초로, 비공개 공식장소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SPEAK OUT’이라는 형식으로 말하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제기한 서지현 검사가 4일 서울동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후 청사를 나서고 있다. 정지윤 기자

그러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린 서지현 검사는 용기 있는 고백 하루 만에 업무능력과 근무태도 등과 관련한 근거 없는 각종 소문이 보도되며 2차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대중들은 성폭력 범죄 사건을 접했을 때 ‘왜 이제야 말하는 걸까’ ‘피해자는 어떤 여성일까’ ‘피해자가 왜 더 강력하게 저항하지 않았을까’라며 개인의 잣대로 평가한다. 서지현 검사의 말하기를 최초 보도한 JTBC 방송마저도, 2차 피해의 문제점을 보도하는 그 순간에 서지현 검사의 ‘조용한 스타일’이라든가 ‘과거 업적’이 어떠한지에 대해 묻고 있었다. 동료들이 말하는 서지현 검사, 업적을 통해 말하는 서지현 검사를 통해 서지현 검사의 진술이 진실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8년 전에 발생했다는 성폭력 피해에 집중해야 한다. 피해자가 말하는 사실이 무엇인지, 왜 그동안 말하기 힘들었는지를 중심으로 사건화되지 않았던 그간의 고통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팩트’와 그 팩트가 왜 이제 말해지고 있는지 피해자의 목소리에 집중하면서 ‘성폭력 가해 사실’에 대해 들어야 한다.

만약 서지현 검사가 과거 장관상을 받지 않았고 (그 사건으로 너무 힘들어서, 아니면 여러 이유로) 형편없는 업적을 수행했다면 강제추행을 당하지 않았을까? 만약 인간관계가 형편없었다면 강제추행을 당하지 않았을까? 말도 안되는 질문이라 여길 것이다. 그러니 서지현 검사가 훌륭한 업적을 수행했다는 사실에 안심하지도 말고 묻지도 말자. 훌륭한 업적을 수행하지 않아도, 조용한 스타일이 아니어도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말이다. 피해자가 어떠한 사람이든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피해자, 피해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시작한다. 여성의 정조가 더럽혀지고, 순결을 잃은 것으로 조명되어 왔던 오랜 역사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말할 수 없었다. 피해를 당한 것도 억울하지만 그 피해를 말하는 순간 자신의 피해가 이해되기는커녕 더러운 여성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말하면 혹 남성 가해자나 조직을 망치기 위한 ‘거짓말’이라며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까지 피해자들은 자신의 잘못이라는 자책으로, 더러운 여성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피해를 말하는 의도, 목적을 의심받으면서까지 그 피해를 말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회적 통념이 작동되는 상황에서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고, 가해자의 역차별 논리, 무고죄, 명예훼손 등까지 가세해 피해자들은 정말 힘들었다.

서지현 검사의 ‘말하기’의 불씨가 그 의미를 갖도록 우리는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미투’를 넘어서 전 국민적인 응원과 지지의 ‘위드유(#With You)’, 그리고 ‘나부터 나서서 성폭력을 막자’는 ‘미퍼스트(#Me First)’ 성폭력 방지 운동을 통해 우리는 여성인권을 지켜내야 한다.

<변혜정 |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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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이후 ‘미투(MeToo)’ 물결이 거세다. 그러나 지난해 미투 캠페인이 활발했던 미국과 다른 점이 눈에 띈다. 피해자가 공개적으로 나설 때도 가해자의 실명을 폭로하는 일은 흔치 않다. 가해자의 실명을 고발할 때는 피해자가 익명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인들의 익명 앱 ‘블라인드’에 올라온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승무원들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해왔다’는 글이 대표적이다.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제기한 서지현 검사가 4일 밤 서울 송파구 동부지검에 설치된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한국의 법체계는 거짓은 물론 ‘사실’을 공개한 데 따른 명예훼손죄도 인정한다. 형법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경우 2년 이하 징역·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의 벌칙은 더 세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폭로에 앞장섰던 탁수정씨는 경향신문에 “우리는 열악한 성폭력법을 가진 나라에 산다. 가해자들은 법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이기 때문에 법으로 걸고 넘어진다”고 말했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를 겪었던 이은의 변호사는 “성폭력 고소에 맞고소하는 ‘가해자 시장’이 늘었다”(한국일보 인터뷰)고 비판했다.

명예훼손죄 고소·고발이 남용되면 내부고발 등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이 때문에 영미권에서는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부분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도록 한다. 한국과 같은 대륙법체계인 독일도 내용이 허위일 때만 처벌한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1년 “명예훼손의 비형사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2016년 서울지방변호사회 설문조사에서도 응답한 변호사의 49.9%가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에 찬성했고, 16.5%는 유지하더라도 징역형은 삭제하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2016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없애는 내용의 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강자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약자인 피해자에게 수사·재판의 부담까지 안기는 족쇄 노릇을 한다. 8년 만에 용기 내 폭로한 서 검사도 “(안 전 검사장이나 최교일 의원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위헌법률심판 소송으로 다퉈볼 생각”(JTBC 인터뷰)이라며 역고소를 각오하는 상황이다. 피해자의 ‘말할 자유’를 막는 명예훼손죄, 반드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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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검찰 고위간부에게 성추행당하고, 8년 동안 고통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했다는 그의 고백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부끄럽게 한다. 서 검사는 31일 변호인을 통해 입장을 내고 “까마득한 터널 속에 있는 기분이었는데 많은 분들의 공감, 응원 덕분에 이제 여러분과 같은 세상 속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본질은 제가 어떤 추행을 당했는지에 있지 않다. 무엇이 문제였으며,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에 관심 가져주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는 서 검사의 호소에 응답해야 한다.

지난 29일 오후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자신이 겪은 검찰 내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 JTBC 화면 캡쳐

무엇이 문제였나. 이른바 ‘가해자들의 연대’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서 검사가 성추행을 당한 장소는 장례식장이었다. 법무부 장관과 다수 검사들이 함께 있었다. 그럼에도 가해자 안태근 전 검사장의 행동을 제지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공익의 대표자’라는 검사들이 눈앞에서 범죄가 벌어지는데 방관했다. 이후 성추행 사실이 덮이는 과정에서도 가해자들의 연대가 작동했을 가능성이 짙다. ‘미투(MeToo)’ 운동을 촉발한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와인스타인이 영화 캐스팅을 빌미로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고 폭로한 여배우 레아 세이두는 “가장 역겨운 건 와인스타인이 그러고 다니는 것을 모두 알았지만, 아무도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성폭력을 직접 저질러야만 가해자인 것은 아니다. 성폭력을 외면하거나, 방관하거나, 알고도 침묵하거나, 피해자의 침묵을 강요하거나, ‘피해자 책임론’을 들먹이는 이들 모두 가해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한 하원 의사당에서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 ‘미투’를 지지하는 취지로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 문유석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투 운동에 지지를 보내는 것에 그치지 말고, 내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방관하지 않고 나부터 먼저 나서서 막겠다는 미퍼스트(MeFirst) 운동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다. 성추행이나 성희롱에 대한 항의가 ‘분위기 깨는 일’이라는 유의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문 부장판사의 말대로 “단 한 명이라도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하며 제지한다면” 가해자는 고립되고 범죄행위는 중단된다. 다수가 침묵을 깨 가해자를 제지하고, 목격한 사실을 증언할 때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피해자들은 공감과 지지 속에 용기를 내 진실을 드러낼 것이다. 모두가 눈 부릅뜨고 ‘고발자’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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