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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23 함께 그려요, 여섯 빛깔 무지개

무지개에는 두 종류가 있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비 오고 난 후 하늘에 뜨는 일곱 빛깔 무지개도 있지만, 빨주노초파남보 7개 색에서 남색이 빠진 ‘여섯 빛깔 무지개’도 있다. 여섯 빛깔 무지개는 성 소수자 혹은 다양성의 상징이다.

이 무지개는 1979년 이래 가장 대중적이고 국제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퍼레이드 등의 행사에 깃발로도 자주 등장하는데, 지금 소개하려는 팟캐스트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오픈리 게이인 미술디자인 평론가 임근준이 진행하고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여섯 빛깔 무지개> 팟캐스트는 다양한 LGBT들이 출연해 자신들의 속얘기를 들려준다. 레즈비언 변호사, 게이 번역가, 트랜스젠더 뮤지컬 배우, 드랙 아티스트 등 출연자들의 면면만 봐도 다채롭기 이를 데 없다. 16회까지 올라가는 동안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팟캐스트의 ‘핫 아이템’으로 등극, 업데이트할 때마다 관련 분야의 상위에 랭크되는 인기를 조용히(!) 누리는 중이다. LGBT가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를 의미한다는 것도 모르던 사람들이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고 청취 소감을 전해올 때의 뿌듯함이란!

그 청취자의 말마따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야 하는 팟캐스트의 특성상 우여곡절도 많았다. 일단 출연자 섭외부터가 쉽지 않다. 진행자의 인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이 팟캐스트에 출연하기 위한 조건은 꽤 까다로운 편인데 커밍아웃을 하고,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2시간 가까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사를 공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보니 생각 외로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이 드물었다. 게이는 상대적으로 섭외가 쉬운 반면 다른 성 소수자들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홍석천이나 하리수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이 없는 레즈비언이나 F2M(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 트랜스젠더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 성 소수자 내의 상대적 소수자들은 정체성을 대표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스피커’가 드물다 보니, 사회적으로도 더욱 고립되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출연을 약속해놓고 번복하는 건 예사, 녹음을 다 끝내고 없던 일로 하고 싶다는 게스트도 있었다. 온라인에서는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출연을 요청하면 한마디로 거절하거나 아예 무응답인 경우도 있었다.

이런 반응은 성 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처럼 완전히 이성애자인 척하는 패싱(passing), 벽장 안에 들어간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다는 뜻의 클로짓(closet) 등 정체성을 부정하고 낮과 밤에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성 소수자들이 많다는 것도 한국의 특징이다. 팟캐스트에 나온 사람들마저 사적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하던 이야기를 마이크 앞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되고, 어색하다는 반응이 많았으니 오죽하겠는가.

20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던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청회가 동성애 반대단체들의 실력행사로 무산되자 성소수자들이 단상에 올라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존중"을 주장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팟캐스트의 모든 에피소드에는 커밍아웃부터 시작해 한 개인이 성 정체성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 출연자의 인생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목이 메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 출연자들의 사연은 하나하나가 절절해서 16회를 진행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정체성을 고민하는 많은 성 소수자 청소년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경험에 바탕을 둔 실질적인 조언도 에피소드마다 빠지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자신이 행동하고 느끼는 대로 움직이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치면서 해결해가는 과정으로서의 인생 그 자체다. 성 소수자의 정체성에 짓눌리거나 피해자 콤플렉스에 빠지지 않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성 소수자로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과 전혀 다르지 않다.

여섯 빛깔 무지개가 일곱 빛깔 무지개와 공존할 수 있는 사회라면, 우리는 다같이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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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