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척이던 새벽잠, 그의 목소리가 들려 번쩍 눈이 떠졌다. 2015년 4월9일 아침 북한산을 오르며 48분간 마지막 인터뷰를 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었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다음날이다. 밖은 아직도 어두웠다. 5시56분. 스마트폰에는 20분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다는 긴급뉴스가 떠 있었다.

홍 지사의 항소심 재판장은 다섯 달 전 이완구 전 총리에게도 무죄를 선고한 판사였다. 두 사람의 1·2심 판결문 4개를 밑줄 그으며 읽고 또 읽었다. 판사로부터, 나 스스로부터 생길 수 있는 선입견을 줄이는 데까지 줄이고 싶었다. 남은 것은 유감스럽게도 온갖 물음표였다. 홍 지사의 무죄 판결문은 시작과 끝이 급반전했다. 재판부는 ‘금품 전달자 윤승모가 성완종에게 1억원을 받아 홍준표에게 전달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제했다. 이완구 재판 때 배제한 성완종 녹취록은 다시 증거로 채택했다. 홍 지사 쪽 사람들이 “홍 지사는 모르는 돈으로 해달라”고 윤씨에게 노골적으로 ‘거짓 증언’을 회유한 전화 녹음파일도 증거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끝에는 ‘윤승모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사정이 있고 검찰 증거도 미흡했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국회 의원회관이 공사 중인 걸 왜 기억하지 못했는지, 띠지를 고무줄로 바꾼 곳이 집 거실인지 안방인지, 여의도로 가는 차에서 부인은 옆에 앉았는지 뒤에 앉았는지…. 판결문에는 검찰이나 법정에서 바뀌거나 헷갈린 윤씨의 진술이 여럿 적시됐다. 1심에선 설암 투병 중에 4년 전 상황이 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해 참작된 부분이다. 사실관계를 다툴 여백을 인정하면서도 항소심은 방어권을 더 톺아봤다. 처벌을 자처한 금품 전달자의 말은 배척되고, 끝까지 돈의 행방은 모른 채 끝낸 재판이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6일 열린 성완종 게이트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왜 홍준표를 메모와 인터뷰에 담았을까. 내내 곱씹어본 물음이다. 8명의 리스트에서 홍 지사는 친박도 아니고, 박근혜 대통령과의 거리도 가장 멀었다. 그 답은 성 전 회장이 죽기 사흘 전 윤씨의 병실을 찾아 사실대로 말할 의지가 있는지 확인한 데서 열린다. “녹취록과 메모에 대한 신뢰도, 검찰 수사도 여기서부터 풀리길 바랐던 거지요.” 성 전 회장의 아들과 측근이 돌아보는 말이다.

2015년 12월31일자 경향신문 1면엔 성 전 회장이 ‘올해의 인물’로 기록됐다. 기사는 “여전히 부정부패와 검은돈 뉴스가 이어지고, 살아있는 권력은 단죄하지 못한 2015년이었다”고 맺었다. 소름 돋게 맞는 얘기였다. 박 대통령이 “정유라 지원이 왜 안되느냐”고 삼성을 재차 닦달한 것은 성 전 회장이 죽고 3개월이 지난 뒤였다. 재벌들의 손목을 비틀어 미르재단이 출범한 것은 그해 10월이다. “이런 기업인은 나 하나로 끝나야 한다”는 성완종의 외침이 권력의 심부에선 희화화되고, ‘거악들의 모의’는 계속된 것이다. 입시 특혜를 준 대학 총장, 블랙리스트를 지휘한 비서실장, 삼성 79년사에서 처음 구속된 총수, 진시황의 생부였던 거상 여불위처럼 “세상에서 가장 큰 장사는 권력을 얻는 것”임을 보여준 최순실까지…. 여기저기 꼭짓점을 따고 대통령을 겨누는 특검을 보며 속에 맺히는 게 있다. ‘성완종 특검’이 떴다면 이리 엉성하고 기울어진 정경유착 수사가 됐을까. 낯부끄러운 ‘8 대 0’ 성적표를 받아든 검찰은 명예회복의 마지막 벼랑에 섰다.

‘만사구비지흠동풍(萬事俱備只欠東風).’ 홍 지사가 승소 후 페이스북에 올린 삼국지의 고사다. 적벽대전을 앞둔 제갈량이 주유에게 ‘모든 조건이 갖춰졌고 가장 중요한 동풍만 남았다’고 한 말이다. 그 동풍에 무죄 판결을 빗대고픈 속마음을 실은 셈이다. ‘천하대란에는 크게 통치해야 한다’→‘박근혜의 위기이지 보수의 위기가 아니다’→‘큰 선거를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다’. 페이스북에선 대선을 곁눈질하는 ‘일일준표’ 정치가 다시 시작됐다. 무상급식과 평생 싸우고 진주의료원 폐쇄를 밀어붙인 그는 ‘서민복지’와 ‘핵무장론’을 앞세워 보수의 정치에너지를 쌓고 있다고 생각할 터다. 하나, 그가 넘어야 할 대선의 심리적 벽은 성완종 녹취록이다. 그의 재판에는 묻혀 있는 의혹과 더 살펴야 할 팩트가 수두룩하다. 좌불안석이 돼 금품 전달자를 회유하려 한 녹음파일의 비밀은 깨끗이 풀려야 하고, 띠지가 고무줄로 바뀐 채 묘연해진 1억원의 행방도 궁금하다. 3심제로 가는 ‘법정게임’과 달리, 선거판은 2심의 ‘무죄 판결’과 세간에 걷히지 않은 ‘유죄 심증’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는 면죄부를 받았다고 하루하루 자기최면을 걸고 있을까. 그의 보폭이 커질수록 맹성과 자숙을 권하는 역풍도 커질 것이다. 개운치 않은 홍준표의 정치가 제갈량이 기다린 동풍을 만날까. 마이동풍이 될 수도 있는 봄이다.

이기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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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홍준표 경남지사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금품 전달자 윤승모씨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서울고법 형사2부(이상주 부장판사)는 16일 “1억원을 전달하기 위해 홍 지사의 국회 의원회관 집무실을 찾아간 과정이나 집무실의 구조 등에 대한 윤씨의 진술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면이 있다”고 밝혔다. 윤씨가 의원회관을 찾아가는 이동 경로와 의원실 내부에 대한 일부 진술이 실제와 다른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금품 전달이 4년 전 일인 데다 수사 당시 윤씨가 설암(舌癌)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세한 부분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6일 열린 성완종 게이트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윤씨는 성완종 전 회장이 자살 전 병원에 입원한 자신을 찾아왔을 때는 물론 검찰과 법원에서도 일관되게 1억원이 담긴 쇼핑백을 전달했다는 진술이 흔들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윤씨는 정치자금법상 공여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그가 중간에서 돈을 가로채는 이른바 ‘배달사고’를 냈다면 법적으론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바보가 아닌 바에야 처벌을 감수하고 주지도 않은 돈을 전달했다고 거짓 진술했다고 보긴 어렵다. 

홍 지사의 측근들은 2015년 4월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 윤씨에게 “(홍 지사) 보좌관이 돈을 받은 것으로 해달라”고 제안하는 등 회유·조작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구린 사실이 없다면 핵심 증인에게 접근해 홍 지사와 무관한 것으로 해달라거나 다른 사람이 쓴 것으로 하자고 애원할 이유가 없다. 재판부도 이 부분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윤씨의 다른 진술이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다.   

이번 재판부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게도 1심을 뒤집고 지난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당시엔 성 전 회장의 자살 전 인터뷰 중 이 전 총리 부분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이번엔 홍 지사에 대한 인터뷰 부분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성 전 회장 인터뷰를 두고 같은 재판부가 증거능력을 달리 보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검찰 내에서 “무죄 선고를 작심하고 법리를 꿰맞춘 정무적 판결”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법원에서는 이런 터무니없는 의문점들이 해소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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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하기 전날인 어제 그의 친동생 기상씨와 조카 주현씨가 미국 연방법원에서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됐다. 반 전 총장의 동생과 조카는 베트남에 있는 경남기업 소유의 초고층빌딩 ‘랜드마크 72’의 매각을 위해 중동 관료들에게 50만달러의 뇌물을 주려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 사법당국은 이들의 범죄를 매우 무겁게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의 대변인은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반 전 총장도 보도를 보고 알았다. 전혀 아는 바가 없을 것이고, 굉장히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조카 반주현씨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뇌물 혐의로 기소된 뉴욕 연방법원에서 심문을 받은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 전 총장의 동생·조카 문제는 이미 알려진 사건으로, 반 전 총장의 연루설이 계속 제기돼왔다. 2013년 자금 압박에 몰린 경남기업이 회사고문인 반기상씨와 미국에서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는 그 아들 주현씨에게 랜드마크 72의 매입자 알선을 요청했지만 이들은 카타르 관료의 가짜 대리인에게 속아 돈만 날렸다. 이 과정에서 주현씨가 경남기업에 제시한 카타르 투자청 명의의 인수의향서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매각이 무산되자 경남기업은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국내법원에 제기했고, 지난해 10월 6억5000만원을 배상받으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경남기업의 성완종 전 회장은 바로 반 전 총장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인물이다. 2015년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반 전 총장을 후원한 것 때문에 자신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밝힌 바도 있다. 이런 관계인 만큼 경남기업과 기상씨 간 계약 체결이 반 전 총장과 무관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주현씨가 큰아버지인 반 전 총장과 카타르 국왕 간 면담을 주선할 수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증언도 있다. 그런데도 반 전 총장이 이들이 기소되는 것 자체를 몰랐다니 믿기지 않는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정치 신인이지만 그의 출발이 신선하지는 않다. 비전·정책은 따지지도 않고 충청권이 집권해야 한다는 지역주의는 구태일 뿐이다. 우후죽순처럼 나오는 지지단체들의 모습에서도 신선함을 찾을 수 없다. 반 전 총장은 에둘러 말하는 애매한 화법으로 비판받아왔다.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일성으로 박연차씨로부터 23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할 것이라고 한다.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이 되어야 한다. 동생의 기소를 마치 남의 일로 치부하듯 해명한다면 그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반 전 총장의 산뜻한 출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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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해온 검찰 특별수사팀이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에게 소환을 통보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특별사면과 관련,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도 불러 조사키로 했다. 결과 발표만 남았다던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갑자기 야당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리스트에 오른 8인 중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만 재판에 넘기고 나머지 6인은 불기소키로 사실상 결정된 터다. 의혹의 몸통은 건드리지 않고 가지만 손댄다면, 그런 수사 결과를 누가 납득하겠는가.

거듭 밝힌 바와 같이 성완종 리스트 수사의 ‘본류’는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 대선자금이다. 검찰은 그러나 새누리당 선대위 핵심이던 홍문종 의원과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에 대한 수사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홍 의원을 한 차례 불러 조사하긴 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유·서 시장에게는 서면답변서만 받고 면죄부를 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리스트에 나오지도 않은 야당 의원을 소환하는 것은 수사의 형평성에 어긋난다. 검찰은 이인제 의원도 소환 대상인 만큼 야당을 겨냥한 표적수사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의원은 정권 실세도 아니고, 제1 야당 전 대표인 김 의원에 견줘 무게감도 떨어진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5년 6월 16일 (출처 : 경향DB)


노건평씨는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누구든 범죄 혐의가 있다면 수사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황교안 국무총리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황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2012년 1월 ‘사면 자문’ 사건을 수임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황 총리가 자문을 맡은 날로부터 8일 후 특별사면이 실시됐는데, 당시 실무를 총괄한 정진영 청와대 민정수석은 황 총리의 사법연수원 동기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사면로비 의혹과 관련,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황 총리를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노씨를 수사한다면 황 총리에 대해서도 즉각 수사하는 게 공정한 법집행이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이제 총체적 부실수사로 판명 나고 있다. 여기에 야당 인사를 끼워 넣어 ‘물타기’를 시도한들 부실수사의 흔적이 감춰지지 않는다. 검찰의 무리한 행태는 오히려 특별검사 재수사를 불러들이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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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해온 검찰이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 대선자금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수석 부대변인으로 일했던 김모씨의 대전 소재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김씨를 소환 조사했다. 검찰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대선자금 제공 의혹에 연루된 인물을 겨냥해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앞서 경남기업의 ‘금고지기’였던 한장섭 전 부사장으로부터 ‘대선 무렵 성 전 회장 지시로 김씨에게 줄 2억원을 마련했으며 실제로 돈이 전달된 것으로 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성 전 회장은 이와 별개로 경향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2012년 홍문종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에게 2억원을 줬다”고 밝힌 바 있다. ‘두 2억원’이 별개의 자금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검찰의 의지다. 검찰은 충분한 수사 단서를 갖고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소환 조사하고 불구속 기소 방침을 언론에 공표한 뒤에는 열흘 가까이 침잠했다. 대선자금 수사를 사실상 포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이유다.

그런 검찰이 뒤늦게나마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석연찮은 대목은 여전하다. 검찰은 어제 성 전 회장의 메모에 등장한 홍문종 의원과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김기춘·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병기 현 비서실장 등 6인에게 서면질의서를 보내고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사전에 파악해 둔 자금 흐름을 제시하며 소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특정 사건에 연루된 6인에 대해 한꺼번에 서면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서면조사는 통상 소환조사 등 강제수사가 여의치 않거나 불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이뤄지기 때문이다. 검찰이 박근혜 정권의 핵심 실세 6인을 조사했다는 ‘기록’만 남기고 정권과 연루 인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이 자리 잡은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 유리문 너머로 검찰 관계자가 걸어가고 있다. (출처 : 경향DB)


불법 대선자금 수수 의혹은 정권의 정통성이 걸린 사안이다. 검찰이 수사에 부담을 느끼는 것을 아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대선자금 문제는 덮으려 한다고 덮일 사안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번에 덮는다 해도 언젠가는 또다시 불거지고 쟁점화할 수밖에 없다.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을 비롯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수사해야 한다. 검찰에 퇴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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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특정인이 특정인을 찍은 것에 국한해 수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불법 정치자금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황 장관은 국회에서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에 기재된 8명을 우선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하자 이같이 말했다. 메모에 등장하는 이완구 국무총리,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허태열 전 비서실장,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홍준표 경남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부산시장 외에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로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8명에 대한 소환조사도 시작되기 전에 ‘수사 확대’를 거론한 것은 일의 선후에 맞지 않고 의도 역시 의심스럽다. 벌써부터 ‘물타기’를 하겠다는 건가.

황 장관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과도 맥을 같이한다. 박 대통령은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뒤 “검찰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이번에 총리께서 추진하는 부패청산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마시고 국민과 나라 경제를 위해 사명감으로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총리가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정부패 발본색원’을 다짐한 데 전폭적 지원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던 주체가 발본색원의 대상으로 바뀌면서 대통령의 말도 함께 바뀌었다. ‘부패청산’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별안간 ‘정치개혁’이 등장했다. 정권 출범 이후 최악의 위기를 정치권 사정을 통해 돌파해보겠다는 속내가 비친다. 황 장관은 대통령 뜻을 미리 읽고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22일 취재진이 소환 대상자 등을 기다리고 있다. (출처 : 경향DB)


여당이든 야당이든, 친박근혜계이든 친이명박계이든, 불법행위를 저지른 혐의가 있다면 마땅히 수사해야 한다. 다만 수사는 법과 원칙, 사실과 증거에 따라 하는 것이다. 금품을 공여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도 공소시효부터 따지던 검찰이 갑자기 ‘불법 정치자금 전반’을 수사하겠다면 어느 누가 납득하겠는가.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수사가 어떠한 결말을 낳는지는 성 전 회장의 비극적 죽음이 이미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정권이 또다시 검찰 수사를 왜곡시키려 한다면 시민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특별수사팀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직 사실을 캐겠다는 일념으로 철저하고 공정하게 수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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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성완종

<타인의 삶>이라는 영화에는 동독의 국가안전부 요원이 취조 기술에 대해 강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서독으로 몰래 넘어간 공화국 배신자의 조력자를 붙잡아놓고 또 다른 공범을 대라고 다그친다. 조력자는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며 그때 아이들과 공원에 산책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를 만났다고 주장한다. 요원은 학생들에게 40시간 동안 계속 취조하면 진실이 밝혀진다고 말한다. 40시간의 끈기란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을 말하는데, 그동안 잠을 못 자서 정신이 혼미한 조력자는 부인을 체포하고 아이들을 보육원에 보낸다는 말에 두 손을 들고 만다. 요원은 학생들 앞에서 죄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에 대해 설명한다. 죄가 없는 사람은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분노하게 되지만, 죄가 있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말이 없어지거나 운다고 말한다.

당시의 동독은 자살률이 매우 높았다. 회색의 도시에서 우울한 삶을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이 아마 절망 속에서 자살로 내몰렸던 탓일 것이다. 1980년 동독의 자살률은 10만명당 약 33명이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한국의 자살률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통계는 없지만 한국의 높은 자살률에는 검찰 조사 중 자살도 일조하는 것 같다. 그런데 영화 속의 죄 없는 사람에 대한 국가안전부 요원의 설명은 그럴듯하지만, 한국의 취조 중에 발생하는 자살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억울해하고 분노하고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며 싸워야 할 터인데 종종 결백을 주장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걸 최후의 저항수단이라고 보면 영화 속 요원의 설명이 들어맞을 것 같기도 하지만.

신문 보도를 믿는다면 한국의 취조도 동독의 취조와 비슷하게 진행된다. 다른 탈출 조력자의 이름을 대지 않으니까 부인과 아이들을 벌주겠다며 압박하는 것이나 부인이 하는 사업까지 샅샅이 뒤지며 ‘딜’을 하자고 조여드는 게 다를 바 없잖은가? 민주화된 지 30년이 되어가는 한국의 취조 방식이 국가안전부가 침실까지 감시하던 동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 현실이 혼란스러워서 올해 스무 살이 된 대학생하고 이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좀 나누어보았다. 그는 한국이 원래 그런 것 아니냐, 요란 떨 것 뭐 있느냐는 식으로 반응한다. 냉소적이라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착잡해졌다. “다 선거 때마다 조금씩 주고받고 그러는 거잖아요”라는 당사자의 증언도 있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이게 정말 정치권의 일반적인 관행이고 가끔 폭로나 수사를 통해서 드러나는 경우에만 처벌받는 게 현실일 것 같다.

이야기는 앞으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아마 수사는 꽤 크게 벌일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나 엉뚱한 걸 끼워넣어서 물타기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완전히 망할 것이기 때문에. 그 엉뚱한 건 아마 야당 쪽 사람들의 선거자금 수사일 것이다. 조금씩 주고받은 걸 캐려고 들기만 하면 뭐든지 캐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양쪽에서 몇 사람 잡혀들어가고, 요란하게 보도되고, 여당이나 야당 모두 마찬가지이고 정치는 그런 것이라는 식으로 결론이 맺어질 것이다. 이런 예측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벌써 야당까지 수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15일 서울 서초동 (주)모바일랩 사무실에서 디지털포렌식 전문가 김인성씨가 경향신문이 검찰에 제출하기로 한 성완종녹취록 파일에 대한 증거보전 작업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조금씩 ‘주고받는 것’, 이게 우리의 현실일 것이다. ‘김영란법’까지 나와야만 할 정도로 ‘주고받는 것’이 일상화된 이 현실이 바로잡힐 수는 있을지, 잘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또 착잡해진다. 엄격한 정치자금법이 있지만 여전히 선거 때마다 조금씩 주고받고 있는데, ‘김영란법’만 특별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 회의적, 비관적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나도 냉소적인 대학생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이필렬 | 방송대 교수·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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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성완종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2012년 박근혜 캠프의 대선자금 문제로 확장되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어제 “여야가 함께 2012년 대통령 선거 자금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김 대표는 “대선자금 수사에 응하겠다”며 “대선자금 조사하려면 야당도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완종 리스트’가 불법 대선자금 의혹으로 번지자 이를 차단하기 위해 야당을 끌어들이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은 홍문종 의원에게 2억원의 선거자금을 건넸다고 밝혔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대선자금 의혹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김 대표의 주장은 대선자금 수사를 할 경우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측의 대선자금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검찰에 대한 노골적인 압박이다. “검찰에 외압이 없도록 새누리당이 앞장서 책임지겠다”던 다짐은 어디다 팽개친 것인가. 야당 대선자금도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성을 지니려면 구체적 근거나 혐의가 있어야 한다. 성 전 회장의 인터뷰나 ‘메모지’에는 야당의 ‘야’자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성완종 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야당과 관련한 증거나 증언이 나오면 그때 가서 조사하면 될 일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야당 대선자금 수사를 운위하는 것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가리기 위한 치졸한 정치공세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 대표는 검찰에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출처 : 경향DB)


이번 사건은 대통령의 전·현직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한꺼번에 ‘검은돈 의혹’에 휩싸인 전대미문의 ‘권력형 게이트’이다. 거기에 ‘홍문종 2억’으로 불법 대선자금 의혹이 꼬리를 드러냈다.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나, 성 전 회장이 1억원을 건넸다고 한 홍준표 경남지사의 측근이 사실상 시인한 데서 보듯 ‘성완종 리스트’는 진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찰이 그야말로 성역없이 엄정한 수사로 임한다면 진실을 규명해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문제는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느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러한 의구심과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연루된 사건이라고 해서 수사기관이 눈치 보고 좌고우면해선 안된다는 점을 직접 천명해 검찰이 독립적인 특검처럼 수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 판국에 여당 대표가 야당의 대선자금 수사를 거론하며 압박을 가하는 것은 엄정해야 할 검찰 수사의 발목을 비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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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성완종 리스트’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자원외교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거액을 전달했다고 폭로하면서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힌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내 하나가 희생되므로 해서 다른 사람이 더 희생되지 않도록 하려고 말한다”며 보도를 부탁했다.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성 전 회장은 “김기춘 전 실장이 2006년 9월 VIP(박근혜 대통령) 모시고 벨기에·독일 갈 때, 10만달러를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캠프 때 허태열 직능총괄본부장을 리베라호텔에서 만나 7억원을 서너 차례 나눠 현금으로 줬다. 그 돈 갖고 경선을 치른 것”이라고도 했다. 홍문종 의원과 관련해선 “(2012년) 대선 때 2억원 정도를 현금으로 줬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이었다. 공식 회계처리를 하지 않았다면 불법 대선자금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도 고인의 옷 주머니에서 김·허 전 실장과 홍 의원, 홍 지사 등 현 정권 실세 8명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발견한 사실을 공개했다. 특히 두 전 실장 관련 내용은 경향신문 보도와 일치한다고 확인했다.

2012년 10월 25일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 합당기자회견에서 성완종 경남기업 前회장이 연설하는 모습 (출처 : 경향DB)


당사자들은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의 수사 착수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우선 의혹을 받는 이들이 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다. 적당히 유야무야하려 했다가는 의혹이 박 대통령에게까지 옮겨붙을 수도 있다. 또한 성 전 회장이 인터뷰에서 전한 정황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돈을 건넨 시기와 장소, 액수를 특정한 것은 물론 김 전 실장을 만날 때는 “수행비서”가, 허 전 실장 회동 때는 “우리 직원들”이 동행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당혹감을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안일수록 정도로 가는 게 옳다. 역대 정권에서도 권력형 비리 의혹을 어물쩍 덮으려 했다가 국민의 분노를 키운 사례가 많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사실무근이라면 검찰 수사를 자청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검찰은 또다시 기로에 섰다. ‘죽은 권력’의 비리를 파헤치겠다고 나섰다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 대상으로 삼을 판이다. 정권의 ‘역린’을 건드려야 할 처지가 되었으니 고심이 깊을 게 분명하다. 공소시효를 따져봐야 한다거나 메모·육성파일의 증거능력 여부를 살펴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올 것이다. 하지만 법리를 방패막이 삼거나 ‘가이드라인’을 기다리며 좌고우면하기에는 의혹이 심각하고 관련 정황이 구체적이다. 더욱이 성 전 회장의 죽음에 검찰의 수사 관행이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오는 터다.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것 외에 다른 해법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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