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8.08.20 [여적]종교의 몰락
  2. 2017.11.14 괜찮아, 사랑이야? 아니야!
  3. 2017.11.01 [정유진의 사이시옷]성폭력의 목격자들

미국의 보스턴글로브가 2002년 탐사보도로 미국을 흔든 적이 있다. 미국 가톨릭 성직자들이 30년에 걸쳐 아동을 성추행하고, 교회는 이를 은폐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그건 놀라운 뉴스였지만, 사실 오래된 일이었다. 지난 14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검찰총장은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300명이 넘는 가톨릭 성직자가 1940년대에서 2010년대까지 1000명 정도의 아동을 성추행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문화역사기념관에서 열린 중앙종회 임시회에 참석하고 있다. 설정 스님은 이날 자신에 대한 불신임 안건 처리를 앞두고 "종헌종법에 근거한다면 불신임안을 다룰 근거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미국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바티칸 서열 3위인 조지 펠 추기경이 지난 26일 아동성범죄 혐의로 모국인 호주 법정에 섰다. 가톨릭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개신교 목사의 성범죄도 흔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03년의 일이다. 개신교 신자들이 꼽은 10대 뉴스 가운데 6개가 대형 교회 원로급 목사들의 불륜이었다. 스님이 룸살롱 가고 처를 두는 일도 흔하다. 성폭행에 처자식을 둔 의혹을 받은 설정 총무원장도 지난 16일 임시 중앙종회에서 탄핵당했다. 이를 일부의 일탈이라고 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전 세계에 걸쳐 종교를 가리지 않고 수십년간 계속되고, 그걸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현상을 ‘일부의 일탈’이라고 하는 것은 어법에 맞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는 전 사제의 5.8%가 성추행을 했다고 밝혔다. 2010년 미국인의 성범죄 비율은 0.007%였다.

보통 사람보다 더 욕망에 흔들리는 이들을 계속 존경할지는 신도의 자유이다. 그러나 신부·목사·스님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약화되고 있다. 자연재해를 신의 뜻으로 믿던 수천년 전의 교리를 21세기 시민에게 강요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신부와 목사는 낙태·동성애 반대에 결사적이다. 자연의 법칙 위배라는 것이다.

동성애자인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가 유튜브를 통해 반론을 내놨다. 교통법칙을 위반하면 딱지를 떼지만, 자연법칙에는 그런 게 없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더 빨리 달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손가락은 애초 영장류가 나무에 오르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은 피아노를 치기 위해 그걸 사용한다.” 신이 용도를 미리 정해준 적이 없다. 종교의 쓸모도 시대와 사회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것 없이는 맹목이 된다.

<이대근 논설고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 같은 제목의 기사에 눈길이 끌렸다. 훈훈한 로맨스 이야기인가 싶어 클릭해 몇줄 읽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욕설을 쏟아내고 말았다. 여중생을 성폭행해 임신까지 하게 만든 40대 연예기획사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내용. 법원은 피해자였던 여학생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 했고, 순수한 사랑을 나눴다는 남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에는 무수한 댓글이 줄을 이었고 분노로 들끓었다. 2년 전의 일이었다.

며칠 전 같은 사안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이 확정됐다. 달라진 건 없다. 아니, 통념상 납득되기 힘들거나 상식의 기준을 넘어서는 관계라도, 경우에 따라 위계나 강압에 의한 성폭행일지라도 법률가들이 사용하는 게임의 룰만 잘 파악한다면 ‘순수한 사랑’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천하에 확인시켜 줬다.

이 무게를 짊어지는 것을 도와줘요.’ 2014년 10월29일 대학 캠퍼스 성폭행 반대를 위한 전국 행동의 날 시위의 포스터.

물론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건의 개요만을 본 나는 이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모른다. 또 다른 극적인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건지, 정말 그들의 관계가 순수한 사랑이었던 건지 단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40대의 유부남이 15세의 여자 중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뭐가 정상이고 상식인지 뒤죽박죽인 세상이 됐다지만 적어도 이건 아니지 않나.

법적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근거로 해야 함도 옳다. 하지만 이번 사안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법을 다루는 이들 사이에 뿌리내린 성폭행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다. 행위가 발생한 그 순간의 위력이나 협박 유무, 피해자의 대처 정도가 처벌과 판단의 주된 근거가 된다는 점 말이다. 어린 여학생이 쓴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와 문자메시지는 판결의 중요한 증거가 됐다. 그런데 첫 만남에서부터 임신, 가출, 출산까지의 과정에서 그 여학생이 겪었을 무력감과 고통의 무게는 그 판단에 얼마나 작용했을까. 같은 판결문이 여학생에게는 “왜 그 정도 나이 먹고 앞가림도 못하냐”는 질책으로, 40대 남자에게는 “순애보의 주인공”이라는 감탄으로 들리는 것은 나뿐만일까. 성폭행 피해 여성을 두고 ‘흔들리는 바늘에 실을 꿸 수 없다’는 식의 가공할 망언을 일삼으며 능멸하던 우리 사회의 수준은 여전히 한발도 진전하지 않은 것 같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의제강간 연령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강해지고 있다. 의제강간은 사랑이나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강간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현행 법령에선 만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적용된다. 즉 이 나이 미만은 성적 행동이나 성관계에 동의할 능력이 없으므로 이런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관계는 처벌받는다.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에서는 이 연령을 16세로 높이자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왔고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논란은 분분하다. 그렇다면 성숙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적절한 연령대는 몇살인가. 문득 드는 의문은 정치적 결정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연령의 판단기준이다. 투표권과 같은 정치적 결정권은 19세, 성적 자기결정권은 14세다. 둘 다 중요한 판단력이 필요한 일인데 그 차이가 너무 커 종잡을 수 없다.

성폭행에 대한 처벌은 엄정해야 하고 법적 장치도 잘 정비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에 앞서 청소년이 성폭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이 시급하다. 위계관계에서 권력이나 경제력을 무기로 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일은 너무나 흔한 일상이 됐다. 그 기반엔 “어릴수록 좋다” “딸 같아서…”라는 말로 통용되는 남성들의 그릇된 성적 가치관이 도사리고 있다.

얼마 전 코미디언 유병재씨가 낸 <블랙코미디>에 실린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맘 같아선 국회의사당과 법원, 검찰청, 경찰서마다 붙여놓고 싶다.

‘딸 같아서 만졌다니, 딸 치려고 만졌겠지.’(‘딸 같아서 만졌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성폭행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스캔들로 촉발된 ‘#미투(Me Too)’ 캠페인에 동참한 여성들의 이름을 보며 다시 한번 실감했다.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라는 후천적 권력도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선천적 약점을 상쇄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와인스타인에게 성추행당했을 때 귀네스 팰트로는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영화배우였다. 현재 미국 민주당 차기 대선주자 중 하나로 꼽히는 엘리자베스 워런조차 대학교수 시절 동료 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심지어 네덜란드의 한 상원의원은 정치를 막 시작했을 무렵 장관(!)에게 성추행당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들마저 이럴진대, 하물며 후천적 권력은커녕 선천적 약점에 후천적 약점까지 덤으로 얹힌 대다수 여성들은 더 말해 무엇할까.

성폭력을 당할 위험이 비무장지대의 지뢰밭만큼이나 도처에 널려 있는 세상이지만, 사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확률 못지않게 성폭력의 목격자가 될 확률이 높다. 성폭력이 제3자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성폭력은 순간의 충동을 참지 못해 어쩌다 저지르는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내면화된 습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런 습성은 수위를 조금씩 달리할 뿐, 타인 앞에서도 쉽게 감춰지지 않는다.

와인스타인은 자그마치 30년 동안 성희롱하고, 성추행하고, 성폭행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할리우드의 동료배우와 제작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꿈에도 몰랐다. 알았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란 글을 잇달아 올리며 분노를 쏟아냈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30년 동안 아무것도 몰랐을까. 그리고 ‘알았다면’ 과연 가만있지 않았을까. 와인스타인과 여러 차례 작업했던 각본가 스콧 로젠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고백을 남기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하는 할리우드의 위선을 비판했다.

“이건 명확히 하고 가자. 모두가 X나 잘 알고 있었다. 성폭행까지는 몰라도, 그의 게걸스러운 탐욕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나는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당신들을 봤으니까. 당신들과 그것(와인스타인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바로 당신들. 유명 제작자들, 감독들, 에이전트들, 투자자들, 남자 배우들, 여자 배우들, 모델들, 언론인들, 정치인들! 모두가 X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저 하비와 좋은 시간을 즐겼지. 하비는 나의 형편없는 각본에도 거액을 투자해줬다. 나는 (하비와 일하면서 생긴) 이득을 취했고, 대신 입을 닫았다. 결국 나도 공범자다. 그래서 다시 한번 진정으로 미안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성폭력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개입해 말릴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실제 그런 일이 닥쳤을 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조지 B 커닝햄 텍사스 A&M 대학 교수는 2012년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실험을 했다. 한 그룹은 성폭력 상황이 담긴 시나리오를 읽기만 하게 했고, 다른 그룹은 성폭력 상황을 실제로 목격하게 했다. 시나리오를 읽은 사람들 상당수는 ‘이런 일이 실제 벌어진다면 직접 개입해 말리겠다’고 답했지만, 그 상황을 목격한 그룹에서 성폭력을 중단시키기 위해 실제 행동을 취한 사람들의 숫자는 훨씬 적었다.

그래서 미국 등 해외의 초·중등학교, 대학교, 사회단체 등에는 잠재적 성폭력 목격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목격자 개입 프로그램(bystander intervention program)’이란 것도 존재한다. ‘저 정도는 친밀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여자가 반항하지 않는 걸로 봐서 서로 즐기는 것 아닐까.’ 개입을 망설이는 목격자들을 위해 구체적인 개입 기준과 요령을 알려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몇년 전 오하이오 대학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하는데도 목격자들이 아무도 말리지 않아 충격을 안긴 바 있다. 당시 목격자들은 “남녀가 둘 다 술에 취한 듯 보였고, 여성이 반항하지 않아 서로 즐기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답했다. ‘목격자 개입 프로그램’은 “여성이 반항의사를 표하지 않더라도 어떤 이유에서든 명료한 의식이 없는 상태라면 반드시 목격자가 개입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본인의 신변까지 위협받을 가능성이 큰 경우엔 경찰에 신고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접근해 남성에게 길을 묻는 방식으로 주의를 흐트러뜨린다는 등 구체적인 개입 요령도 훈련시킨다.

물론 목격자가 나섰다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실제 한국에서는 성희롱당한 동료를 위해 증언을 해줬다가 사측으로부터 노골적인 보복징계를 받은 사례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그러나 그럴 때는 그 목격자의 불이익을 목격한 사람들이 또다시 나서면 되지 않을까. 침묵의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목격자들의 개입뿐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목격자의 몫이니까.

<정유진 토요판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