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2.09 [세상읽기]동네 편의점, 명절 하루는 쉬자
  2. 2017.11.24 “죄송합니다”의 웃음이 왜

1인 가구 시대, 혼밥족을 위한 공간. 바로 편의점을 빗댄 말이다. 어느 순간 거리마다 편의점이 없는 곳이 없다. 너무 많다 보니, 있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편의점은 정말 다양하다. 도시락과 같은 제품부터 택배와 은행 그리고 세탁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다. 흡연자 절반 이상은 담배 구입을 위해 편의점을 찾는다. 그만큼 편의점은 우리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를 잡았다.

편의점은 언제부터 우리 주위에 자리 잡았을까. 1989년 5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물건을 파는 가게가 서울 송파에 생겼다. 당시 언론은 ‘구미식 구멍가게’ ‘심야 만물 슈퍼’란 별칭을 붙여 소개했다. 30년 전 편의점의 시작이었다. ‘편의점 왕국’ ‘편의점 나라’로 불리는 일본은 1974년 도쿄에서 세븐일레븐이 처음 문을 열었다. 사실 1927년 미국 텍사스에서 처음 개점할 때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영업한다는 뜻으로 ‘세븐일레븐’이라고 상호를 정했지만, 이후 거짓말이 되었다. 24시간 내내 영업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편의점 1개당 인구는 한국이 일본과 미국에 비해서도 많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퇴직자 사이에서는 ‘만만한 게 편의점’ 운영이었다. 창업비용이 여타 프랜차이즈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한때 편의점은 ‘퇴직자의 꿈’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편의점 수익률은 점차 하락세다. 전체 시장은 커졌지만, 점포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수익은 점점 줄고 있다. 일부 편의점은 가맹본사에 내는 로열티가 인건비보다 많은 곳도 있다. 그래서인지 “더는 못 버텨”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럼에도 ‘연중무휴 24시간 의무영업’ 가맹계약에 따라 손님이 없는 심야시간에도 영업을 해야 한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본사 눈치를 봐야 하는 점주들은 어디다 하소연도 못한다. 건강이 악화되어 폐점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가맹본부에 지불해야 할 위약금 때문이다.

자주 가는 동네 편의점 사장에게 물어보니 지난 몇 년간 명절에 단 한번도 쉰 적이 없다고 한다. 2013년 개점을 했으니 잘 버틴 편이다. 그런데 2013년은 프랜차이즈 편의점 점주들이 생활고로 잇단 자살을 하던 해다. 국내 최대 편의점 대표가 대국민 사과까지 했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변한 것은 무엇인가.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한 영업시간 구속’을 명시한 것의 조정을 피력한 정도다. 가맹본부가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비추어 부당하게 가맹점주의 영업시간을 구속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은 실효성에 의문이 많다.

오히려 가맹본부는 심야시간이나 명절 연휴기간 영업은 고객들이 더 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댄다. 본질이 아닌 이유들이다. 그래서 편의점 영업시간 단축 규정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주의를 조금만 밖으로 돌리면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의 편의점과 비슷한 독일 ‘키오스크(Kiosk)’는 매주 일요일 정기 휴점이다. 최근 일본 패밀리마트는 고객이 적은 점포를 대상으로 심야시간 영업 중단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교토를 비롯해 6개 지자체는 편의점 영업시간 규제도입 시도도 했다. 프랑스는 독립 자영업자들에게 프랜차이즈 본사와 협상할 권한까지 주고 있다.

유럽 몇몇 나라들은 아직도 일요일 정기휴점을 유지하고 있다. 공항이나 관광지 등 일부 예외지역을 제외하면 영업시간도 규제한다. 영업시간 규제나 의무휴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사회적 배경 이외에도 노동자와 중소 상공인들의 건강 보호 때문이다. 편의점 점주나 가족들은 1주일에 65시간 넘게 일한다. 세계 최장시간 노동은 자영업자와 무급 가족 종사자들이 더 심각하다. 이제 곧 설 연휴가 시작된다. 소박하지만 명절 하루라도 편의점 점주들이 쉴 수 있으면 좋겠다. 최소한 심야영업 시간의 조정 정도는 검토해야 한다. 그리 어렵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가맹사업법 시행령에 ‘편의점 명절 휴점’ 조항을 추가하면 된다. 물론 시민과 고객의 불편함은 있다. 그래서 과거 동네 약국처럼 지역 거점별로 순번을 정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한 번의 불편함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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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여러 해 전, 바람이 얼음처럼 찼던 초겨울 아침이었다. 지하철역 바깥으로 나오니 여느 때처럼 출구에 전단을 나누어주는 분들이 서 계셨다. 요리조리 전단 받기를 피하던 중에 강한 포스로 종이를 내미는 분과 맞닥뜨렸다. “죄송합니다” 웃으면서 옆으로 비켜 걷는데, 스치는 귓가로 이렇게 나직이 되뇌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웃어. 썅, 좀 받으라고.”

대학 입학을 앞둔 열아홉의 겨울, 친구들과 처음 번화가로 나들이해본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골목마다 미용실과 피부관리실, 어학원 등이 즐비했던 그곳에서 홍보용 전단을 쥐여주려는 아주머니들과 그것을 받지 않고 휙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가진 전단을 전부 나누어주기만 하면 저분들은 그날 치 품삯을 받으실 텐데, 그러면 추운 날 조금이라도 일찍 귀가하여 몸 녹일 수 있을 텐데, 종이 한 장 받아가는 것이 무엇이 그리 힘들까. 필요 없더라도 일단 받고 나서 나중에 버리면 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짐했다. 길에서 전단을 나누어주면 전부 받자고 말이다.

실제 여러 해 동안 의지적으로 그렇게 행했다. 받지 않으려 피하는 행인들을 밀치고 “그걸 그냥 저한테 주세요”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거리를 걸을 때면 품에 전단이 한 아름씩 쌓였다. 서너 장을 받아들면 ‘받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집중적으로 안겨주셨던 것이다. 더욱이 한동안 서울시 미화정책이 바뀌었던지, 노상에 휴지통이 대거 줄어드는 바람에 전단 10여장을 끌어안고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점차 대상 모를 짜증과 미움이 내면에서 솟구쳤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진정으로 누군가의 고단한 일손을 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스스로와의 첫 약속을 지키려는 강박 때문일 텐데, 대체 이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그리하여 언젠가부터 전단 받는 것을 멈추었다. 대신 마주할 때면 할 수 있는 한 예의 바르게 웃으며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곤 했다. 그렇게 지나칠 수 있게 되니 내 쪽에서는 몸도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한데 그 웃음이 바로 그 아침, 전단을 나누어주던 어떤 분의 마음을 할퀴었던 셈이다.

그날 온종일 생각했다. “죄송합니다”라며 웃었던 것이 왜 상대방의 심경을 불편하게 하였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 때문에 웃음을 지었을까.

사실 후자의 답이야 자명했다. 누군가에게 무정하고 싸늘한 표정을 내보이기 싫은 자기애적인 위선이었을 테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부끄러움과는 별개로, 여전히 무언가 생선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전자, 즉 무엇이 그분의 마음을 그토록 상하게 하였는지는 나의 위선과는 별개의 문제인 듯했기 때문이다. 위선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의 성찰마저 이쪽의 사치스러운 감상일 뿐 막상 상대방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분에게 더 절실했던 것은 어쩌면 웃음에 담긴 진정성이 아닌, 짜증스럽게나마 전단 한 장 더 가져가는 손길 아니었을까.

각종 광고전화가 걸려올 때면 어떻게든 ‘덜 모질게’ 얼른 끊으려는 이쪽과 설령 모진 말을 듣더라도 조금이나마 길게 통화를 이어가야만 하는 저쪽 사이의 일분일초를 둔 실랑이처럼, 어쩌면 이 또한 그런 성질의 문제일지 모른다. 개인의 인격이나 진정성으로만 환원되지 못할, 이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로서 벗어나기 어려운 관계구도 같은 것 말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선생은 모로 누워서 칼잠을 청해야 하는 비좁은 감옥의 잠자리가 옆 사람을 단지 섭씨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하였던 비정함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곳은 찜통감방처럼 타인의 살갗이 닿으면 증오가 솟아나는 극한상황도 아닐진대, 세상은 왜 ‘어떻게든 빨리 상대방을 떼어놓고 싶은 자’와 ‘어떻게든 상대방을 붙잡고 시간을 끌어야 사는 자’의 대립구도로 우리네 삶을 밀어 넣는 것일까. 거기서 나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소영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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