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기억교실에서, 희생 학생의 책상에 추모객이 두고 간 초콜릿을 재학생 후배가 먹어버렸다. 교사는 이 사실을 유가족에게 알리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한 유가족 엄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하긴요. 오히려 고맙죠.”

그 엄마는 기억교실이 엄숙한 곳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후배들이 먼저 간 선배들을 찾아와 과자도 먹고 노는 곳이기를 바랐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만들자고 하는 416 생명안전공원도 그와 같다. 그동안 슬퍼하고 힘들어했던 안산 시민들에게는 휴식과 회복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월호 이전과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대한민국을 안전한 나라로 만들자고 그토록 다짐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우리가 품어야만 하는 안산의 희생자들, 희생자 가족들이 있다. 즉 우리에겐 슬픔 대신 웃음이 있는 공간, 별이 된 아이들과 가족을 우리 안에 품는 공간, 동시에 안전 사회를 향한 다짐을 확인하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416 생명안전공원이다.

416 생명안전공원의 형태와 부지를 정하기 위하여 안산시는 2016년부터 현재까지 다섯 차례의 주민 경청회와 두 차례의 시민 토론회 등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화랑유원지 내 미조성부지를 봉안시설이 포함된 공원의 최적격 후보지로 제시했다. 화랑유원지는 희생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라는 상징성, 시민들의 접근 용이성, 별도로 부지를 매입할 필요가 없고 부지 규모도 넉넉하다는 점에서 다른 후보지들보다 조건이 뛰어나다.

어떻게 납골당을 시민의 휴식 공간인 화랑유원지에 들이느냐며 반대하는 시민들이 있다. 봉안시설은 음울하고 칙칙한 곳이라는 통념에 비춰 볼 때 반대 입장을 이해하지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유가족과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공원의 모습은 그런 통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공원에는 숲, 정원, 복합문화시설이 어우러지고, 봉안시설은 공원의 작은 일부에 그것도 지하에 자리 잡는다. 희생 학생들이 놀던 장소에 청소년의 공연장과 시민의 쉼터가 조성된다. 세계에서 유일한 ‘생명안전공원’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또 해외에서 사람들이 올 것이다. 봉안시설은 음울한 시설이기는커녕, 공원의 의미를 빛내주고 별이 된 아이들과 유가족을 품어 안는 안산 시민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다. 공원이 안산에 가져올 ‘생명안전 도시’라는 브랜드 가치와 경제적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원 추진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민 경청회와 시민 토론회 등 공론의 장이 여러 차례 열렸고, 이 과정에서 공원에 대한 오해를 풀거나 우려에서 지지로 돌아선 시민도 많다.

새 정부 들어 안산을 생명안전 도시로 만들자는 논의에 힘이 실리는 중이다. 유가족과 안산 시민이 세월호 진상규명과 공동체 회복을 위해 함께 노력한 결과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안산시와 정부에 의견을 제시하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416 생명안전공원과 함께 안산을 생명안전 도시로 바꾸는 데 필요한 일들, 예를 들면 트라우마 전문병원이나 정부 생명안전 부처의 안산 유치도 제안할 만하다. 안산의 ‘빅 픽처’를 그리자는 이야기다. 안산이 세월호의 슬픔을 딛고 희망의 도시로 나아갈 것인가,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것인가? 선택은 시민의 몫이다.

<오준호 | 안산 시민·<세월호를 기록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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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세월호 참사와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의 선처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검찰과 법원에 제출했다. 박근혜 정부는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이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했다며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김 부총리는 의견서에서 “교사들이 세월호의 아픔을 공감한 것에 대해 ‘소통과 화합’ ‘화해와 미래’라는 측면에서 선처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시국선언과 관련해서는 “국정 역사교과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폐지됐으니 교육자적 양심과 소신에 근거한 발언과 행동을 선처해달라”고 밝혔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이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간담회를 하고 있다 .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집행부와의 간담회에서 전교조 관계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창길 기자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전교조 교사들은 세 차례에 걸쳐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그러자 교육부는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며 교사 28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33명을 기소했고, 이 중 32명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고 항소해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학생 250명과 교사 12명이 숨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정권의 책임을 묻는 건 양심적인 시민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다. 더구나 제자와 동료를 잃은 슬픔과 분노를 표현한 교사들을 검찰에 고발한 박근혜 정부의 처사는 최소한의 염치도 없는 것이었다. 교육부는 2015~2016년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 86명도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교사들은 실명과 소속 학교를 공개하며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헌법을 부정하는 국정 역사교과서는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은 신분상 불이익을 감수하며 시국선언에 참여한 양심적인 교사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지만 박근혜 정부는 탄압의 칼날을 치켜세웠다.

교육부는 결자해지의 자세로 시국선언 참여 교사들에 대한 고발을 취소해야 마땅하다. 이참에 교사들을 비롯해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표현과 집단행위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도 개정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참여 확대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현재 국회에는 공무원과 교원의 정당 가입 및 정치활동을 허용하는 법안이 제출돼 있다. 공무원과 교사도 시민인 만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21세기에 시민권을 박탈당한 이들을 복권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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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13일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교사 43명의 글이 올라왔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틀 뒤인 5월15일 스승의날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후속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교사들의 성명이 낭독됐다. 그해 6월까지 박 대통령 퇴진을 주장한 교사는 123명, 일간지 광고 등에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교사는 161명이었다. 박근혜 정권이 이들을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세월호 관련 여론이 잠잠해지자 교육부와 보수 단체를 시켜 교사들을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고 집단행동을 했다는 이유였다. 200여명이 검찰 조사를 받았고, 100명 가까운 교사들이 지금도 재판과 교육청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달 30일 최저임금 1만원 등을 요구하며 비정규직 노조가 주도한 ‘사회적 총파업’에 일부 교사들이 참여했다. 교사들은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문제는 앞으로 사회에 진출할 제자들의 삶과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말이 파업이지 수업 결손은 거의 없었고 교사들 대부분이 개인 휴가를 내고 집회에 참가했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들 역시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교사들의 연가(年暇)투쟁도 국가공무원법·교원노조법 위반 등으로 징계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6월28일 (출처: 경향신문DB)

한국에서 교사는 선망받는 직업이다. 그러나 ‘나쁜 정권’하에서는 시민으로서 자유와 권리를 향유하기는커녕 시국 사범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들은 정권을 비판하면 정치적 중립을 어긴 것으로 간주되고, 집회·시위에 참여하면 집단행동을 한 것이 돼 불이익을 받기 일쑤다. 시대착오적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반대하는 것도 교사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같은 논리라면 정권을 지지하는 발언이나 행동도 금지돼야 하지만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다. 결국 교사들의 입을 틀어막아 정권의 하수인으로 부리기 위해서라고밖에 볼 수 없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은 필요하다. 가치관이 미성숙한 어린 학생에게 정치적 편견을 심어주거나 학교 교육이 특정 정파에 유리하게 진행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도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빌미로 양심의 자유를 억누르고 국민 주권의 상징인 참정권을 제한해 교사를 ‘사상적 정치적 금치산자’로 만드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교사는 정당 가입은커녕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할 수도 없다. 교원노조가 교육감 선거에서 의견을 내고, 후원금을 내는 것도 법에 저촉된다. 전교조 조합원인 한 교사는 지난해 총선 직전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내건 교육감 직선 폐지 공약을 비판하는 내용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이유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교사들은 노동자로서 단결하고 단체 교섭할 권리도 박탈당했다. 고용노동부는 2013년 10월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포함시켰다는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 노조’로 만들었다. 교육부는 법외 노조가 된 전교조에서 전임활동을 하던 변성호 전 위원장 등 34명을 직권면직 형식으로 쫓아냈다.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했다는 이유로 법외 노조 낙인을 찍고, 이를 근거로 노조 전임을 맡은 교사들을 모두 해고한 것이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을 보면 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집요하게 전교조를 탄압했는지 알 수 있다. 비망록에는 2014년 6월15일부터 같은 해 12월1일까지 170일 가운데 42일에 걸쳐 전교조 관련 내용이 나온다. 나흘에 한 번꼴이다. 김 전 수석은 전교조 법외 노조화를 ‘긴 프로세스 끝에 얻은 성과’라고 표현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자주적인 의사로 설립하고 운영된다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 노동조합이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포함시키든 말든 그것은 노조원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사항이 아니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도 인정하는 노동자의 보편적인 권리이다.

국정농단이 발각되면서 박근혜 정권은 탄핵됐고, 박 전 대통령은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박근혜 정권에서 해직된 교사들을 하루빨리 교단에 복귀시켜야 한다.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거나 교육청의 징계를 받은 교사들은 명예가 회복돼야 하고, 전교조는 합법 노조로 복권돼야 한다. 이런 것들은 국가 재정을 투입해야 할 문제도 아니고, 법을 바꾸기 위해 보수 야당을 설득해야 하는 사안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마음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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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우여곡절 끝에 3년 만에 인양됐다. 미수습자들을 찾아야 하는 가족들의 고통은 또다시 시작됐는데, 공직사회에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11월까지 세월호 인양추진단장을 맡았던 전직 해양수산부 고위공무원이 산하 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간 것이다.

해수부는 지난 17일 산하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 새 원장에 연영진 전 해수부 해양정책실장(59)을 임명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뒤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없애겠다고 법까지 제정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정작 세월호 수습을 맡은 공무원을 보란 듯 관피아로 앉힌 것이다.

해수부는 “진흥원은 안전문제나 이권과 관련된 산하 기관이 아니고, 관피아 방지법의 적용 대상도 아니라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는 본질을 비켜간 설명이다. 그간 관피아 방지법은 규제 대상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낙하산 공무원 문제가 비단 안전문제, 이권 관련 기관에서만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어서다.

세월호가 참사 1091일 만에 육지로 완전 인양된 이튿날인 지난 12일 해질 녘 전남 목포신항 부두에 모로 누워 있다. 선진국들은 승객이 모두 산 사고라도 철저히 조사해 교훈으로 삼는 반면, 한국은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백서도 못 내고 강제 해산되는 등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해수부는 또 연 전 실장이 해양과학 연구·개발(R&D)을 담당했고, 진흥원 산파역도 했다는 점을 들어 낙점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국민들에겐 황당한 발상으로 들릴 수 있다. 공무원이 재직 중 산하 기관을 만들고 퇴직 뒤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이런 논리라면 공무원들은 퇴직 후 들어갈 기관 만들기에 더 노력할지도 모를 일이다.

연 전 실장의 임명 시점도 공교롭다. 진흥원장에 지원한 직후 이미 관피아 논란이 대두됐고, 그 뒤 탄핵 정국까지 겹치며 원장 인사는 무기한 연기됐었다. 대선도 불과 20여일 앞뒀다.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 옛 식구에게 자리를 내어줄 마지막 기회를 노린 것은 아닐까. 게다가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까지 인양된 직후 인양추진단장을 맡던 인사라니 더 곱잖은 시선을 받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절망을 극복하고 거리로 나섰던 것은, 우리 사회를 바꿔보자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 전 실장의 영전 소식을 들은 미수습자 가족이나 유가족 마음은 어떨까. 해수부가 세월호 때문에 흘렸다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나.

박용하 | 경제부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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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3주기, 가만있으려니 견딜 수 없는 불안증이 엄습해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4월의 찬란한 햇살 아래 유채꽃처럼 눈부시게 피어나던 아이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배와 함께 침몰해야 했던 이들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람들은 눈물을 닦기에 바쁘다. 노랫말이 가슴에 와 꽂힌다.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국가의 실패’, 인천항을 출발할 때부터 침몰까지의 과정, 정부의 방해로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중단된 세월호특조위, 그리고 탄핵을 신호로 처참하게 인양되기까지 세월호에 숨어 있는 본질은 ‘국가의 실패’이며, 실패의 본질을 감추기 위한 불의한 ‘국가폭력’이기도 하다.

실패한 국가와 부당한 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살아남은 죄로 참사의 기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등 국가의 실패는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평생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상처의 늪에 가두었다.

17일 오전 전남 목포시 호남동 목포신항 철재부두에서 코리아쌀베지 직원들이 워킹타워를 이용해 세월호 우현에 올라 미수습자 수습 작업에 앞서 선체 조사를 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희생자의 친지뿐 아니라 자원봉사자, 심지어 멀리서 TV를 통해 참사 광경을 지켜본 사람까지도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거듭된 참사를 뚫고 살아남은 우리의 내면은 마치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다를 바가 없다.

깊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상처가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는 자신이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평생을 죄인으로 살아간다. 끔찍한 기억 때문에 수면제를 복용하거나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셔야 잠을 잘 수 있다. 길을 걷다가도 아이를 연상시키는 소리나 향기, 장소를 접하면 깊은 슬픔에 빠져든다. 너무 괴로워 기억을 지워버리려는 욕구가 솟아나기도 하지만, 그런 욕구 자체를 곧 후회한다. 아무리 아파도 끌어안고 기억하지 않으면 떠나간 아이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과 몸을 아이를 위한 기념비 혹은 분향소로 삼는 것이다.

정신적 트라우마는 신체에도 깊은 흔적을 남긴다.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의 신체는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수많은 건강 문제를 겪게 된다. 만성두통과 근육통에 시달리며, 내부 장기의 기능이 파괴된다. 면역체계가 과도하게 작동해 자가면역질환에 걸리기도 하고, 솟구치는 슬픔을 차단하는 방법을 습득한 결과 자기 기분마저 파악하지 못하는 감정인지불능증에 걸리기도 한다. 이성을 관장하는 영장류의 뇌가 몸을 통제하려고 해도 감정을 조절하는 포유류의 뇌, 위협회피를 관장하는 파충류의 뇌에 트라우마가 깊게 새겨져 계속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그래서 트라우마 피해자의 눈에 세상은 트라우마를 겪어본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뉜다.

우리 현대사는 연이은 트라우마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 4·3항쟁, 한국전쟁, 고문과 조작, 광주민주화운동 등 ‘국가의 실패’와 ‘국가폭력’의 목록은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이들을 위해 국가가 한 일은 무엇인가? 19대 대선을 20여일 앞둔 지금, 차기 정부가 걸머져야 하는 치유의 책무를 되새기고 싶다. 역사는 너무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의 치료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진상규명이 앞서야 하지만, 정신과적 치료만이 아니라 사회적 치유, 그리고 스트레스에 대한 몸의 반응구조를 변화시키는 포괄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제 국가가 치유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우리 내면의 살아있는 상처를 보듬어 치유하는 일이야말로 새로운 민주정부가 감당해야 할 첫 번째 책무가 아니겠는가? 이 사명이 완수될 때 비로소 ‘고통을 통해서 얻은 상처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원천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진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인류의 상처, 세계사의 상처까지 보듬는 소중한 치유자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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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을 떠난 지 1081일 만에 다시 뭍으로 돌아오는 세월호를 맞는 가족들의 모습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가 촬영한 동영상으로 지켜보았다. 보안구역인 목포신항만의 철조망에 막힌 한 어머니는 “우리 아이들이 거기 있었다고요. 거기에서, 마지막 시간을 살려고 보냈다고요. 세월호 안에서…”라며 세월호를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들여보내 달라고 절규했다. 결국 항만으로 들어선 가족들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녹슨 세월호가 눈앞에 다가오자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아 머리를 짓찧으며 통곡했다. 화면을 지켜보는 나는 2014년 4월16일 그날처럼, 또다시 그 애끊는 오열의 무력한 목격자가 되었다.

“남을 도울 힘이 없으면서 남의 고정(苦情)을 듣는다는 것은 매우 마음 아픈 일입니다. 그것은 단지 마음 아픔에 그치지 않고 무슨 경우에 어긋난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도운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임을 모르지 않습니다만, 빈손으로 앉아 다만 귀를 크게 갖는다는 것이 과연 비를 함께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인양된 세월호가 육상에 거치될 전남 목포신항 앞 철망에 3일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는 글귀가 적힌 노란 리본들이 매달려 나부끼고 있다. 김창길 기자

대전교도소에서 무기징역형을 살고 있던 신영복 선생이 1985년 5월 형수에게 보낸 엽서의 한 대목은 세월호 그날 이후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죄책감의 정체를 음각으로 한 자 한 자 새겨 놓은 것만 같은 내용이다. 저 아픈 울음을 멈추고 달랠 아무런 방도도 없이 오로지 눈과 귀를 열어둔다는 것이 도대체 통곡하는 유족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 일인가라는 무력감에서 도무지 헤어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2014년 4월16일 이후 나는 자신의 힘없음을 부끄러워하는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지하철역 입구에 서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을 받거나, 광화문광장에 몇 시간씩 앉아 노란 리본을 만들거나, 시민들에게 세월호 배지를 나눠주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먹일 따스한 밥을 지은 사람도 있었고, 신부가 되고 싶어했던 세월호의 아이를 위해 그 아이의 이름을 딴 작은 성당을 지은 목수도 있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내가 이만큼이나 했다”고 자부하는 이는 없었다.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라고 할 뿐이었다. 그러나 주체와 타인의 관계의 철학자인 레비나스를 연구해온 철학자 강영안의 관점을 빌리면, 그들은 고통받는 타인의 얼굴을 기꺼이 맞닥뜨림으로써 최소한의 윤리적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이다.

“타인의 얼굴과 접할 때, 그에게 귀 기울일 때, 그때 윤리가 경제적 삶에 침입하게 된다. (중략) 윤리는 봄이고 동시에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강영안, <타인의 얼굴> 중)

세월호가 마지막 항해를 하던 그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함께 서울구치소에 갇혀있다. 한자리에 모인 이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고통받는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를 헤아렸어야 할 위치에 있을 때 외면했다는 것이다. 아니 외면을 넘어, 고통을 호소하는 타인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거나, 더 큰 고통을 안겨주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했다는 정치에서 윤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다시 신영복 선생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출소를 앞두고 자신에게 일자리 하나 주선해주기를 부탁하는 젊은 동료 수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고정(苦情)에 자주 접하게 됨으로써 아픔이 둔감해지는 대신에 그것이 고정의 원인을 깊이 천착해 들어갈 수 있는 확실한 조건이 되어주길” 바랐다. 그리하여 누군가 비를 맞고 있는데, “저 혼자만 쓰고 있는 우산은 없는가를 끊임없이 돌이켜보는 엄한 자기성찰의 계기가 되길” 소망했다.

세월호의 고통 앞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일, 그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윤리를 실천하며 살아가기 위함이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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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그해 봄, 바다는 눈물이었다. 검은 섬을 휘감는 시퍼런 바닷물을 마주한 어머니의 멈추지 않는 눈물은 바다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그대로 바다가 넘쳐 내 자식이 내 혈육이 멀쩡하게 뭍으로 나오기만 한다면 육신이 사그라진다 해도 울고 또 울었을 것이다.

시뻘겋게 녹슨 바닥을 드러낸 배를 보면서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또 울었다고 했다. 우는 것밖에 할 게 없어서 다리 뻗고 앉아 가슴 치며 울었던 그해 봄처럼.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봄은 또다시 되풀이되는 눈물의 봄이다.

건져 올린 배 앞에서 어머니는 낯선 항구로 부리나케 달려간 그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 구조했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갔는데, 체육관은 텅 비어있고 행여 병원으로 갔나 싶어 물어보니 아직 아무도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아침잠 많은 딸이 깨어있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스무날이 넘도록 딸은 바다에서 나오지 못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했다고 밝힌 28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인근 미수습자 가족 임시거처에서 허다윤양 어머니 박은미씨(왼쪽)와 조은화양 어머니 이금희씨가 오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유골’은 동물뼈로 확인됐다. 진도 _ 연합뉴스

사람들은 3년 동안 배가 바닷속에 있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고개를 내젓는다. 그 배는, 어머니의 온몸에서 뻗친 팽팽한 아딧줄로 매어져 있었다. 슬쩍 바람만 스쳐도 파도만 일렁여도 어머니의 가슴이 찢기었다. 병원에 가니 가슴뼈가 벌어져 있다고 하더라는 어머니는 큰딸 앞에서는 의연하려고 애쓴다. 행여 어머니가 쓰러질까 봐 뭍에 오른 동생을 혼자 맞이했던, 큰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큰딸이 어느 날 그러더란다.

“엄마, 나는 이제 행복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

어머니는 그 말에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아니다, 봄이 올 것이다. 네 봄이 올 것이다. 어머니는 큰딸을 위해 단단히 땅을 딛고 일어나 새봄을 보여주고 싶다.

“부모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싶어서 궁리 중이에요. 내가 이제 할 일은 그것뿐인 것 같아요.”

내가 그리하면 우리 딸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며 또 눈물을 보이던 어머니는 아직 딸을 기다리는 다른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면서 눈물 자국을 닦아낸다. 그래, 꼭 돌아올 거야. 몸 잘 챙기면서 기다려. 어머니 둘이 전화 통화를 하는 중에 속보가 떴다. 그의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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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은 신문기자였던 아버지의 정치적 망명으로 페루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고갱의 젊은 시절 꿈은 배를 타고 세계일주 항해에 나서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견습 도선사(導船士)로 일하며 상선을 타고 라틴 아메리카와 북극의 바다를 떠돌았다. 모친의 부고를 듣고 파리로 돌아와 35세 때 늦깎이 전업화가가 된 고갱은 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 섬,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 등으로 옮겨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고갱이 화가가 된 이후 방랑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견습 도선사로 일했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도선사는 선박이 항구에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전문직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겐 낯선 직종이다. 수년 전 한 해군 장교가 114 안내원에게 도선사협회를 연결해달라고 했더니 서울 우이동에 있는 사찰인 도선사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7일 공개한 ‘직업만족도 조사’에서 도선사가 판사에 이어 2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도 시민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세월호 사고 미수습자 가족들이 27일 전남 진도 동거차도 앞바다의 반잠수식 선박에서 유류를 배출 중인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도선사는 선박이나 항구의 ‘눈’과 같은 존재다. 낯선 항구의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 선박들은 도선사의 도움 없이 입·출항을 할 수 없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도 산타마리아호에는 지안 데 라 코사라는 도선사가 타고 있었다. 세계 최강 스페인 함대가 1588년 영국 함대에 패한 것은 도선사가 없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바닷속 지형과 뱃길을 훤히 알고 있어야 하는 도선사 면허 취득 조건은 까다롭다. 면허시험에 응시하려면 6000t급 이상 선박의 선장으로 5년 이상 승선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내 250여명의 도선사들은 대부분 항해사로 10년, 선장으로 10년간 오대양을 누빈 경력을 갖고 있다. 평균 연봉은 1억2000만원가량이며, 경력에 따라 5억원이 넘기도 한다.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를 싣고 이르면 30일 목포신항으로 출발하는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말린호에도 도선사가 탑승한다. 암초를 피하고, 시속 6~12㎞의 물살을 헤쳐 가려면 베테랑 도선사의 인도가 필수적이다. 도선사의 인도로 화이트말린호가 목포신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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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일요일인 지난 26일 오후.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린 안산 세월호 분향소 광장은 춥고 쓸쓸했다. 추모의 마음으로 걸치고 갔던 노란색 머플러를 목 주위로 돌려 감아도 파고드는 냉기를 막을 수가 없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1072일 만에야 물 위로 올라온 세월호를 지켜보는 단원고 희생자 엄마들은 자신들의 마음이 꼭 그렇다고 했다. “3주기가 다가오니 너무 힘들어요. 선체 인양을 바라보는 것도 그렇고요.” 매달 단원고 희생자 부모들과 함께하는 모임에 따라나섰다 만난 영만이 엄마는 두어 마디 끝에 결국 울먹였다.

“이제야 세월호가 올라오네요. 곧 미수습자 가족들이 그렇게 원하던 유가족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우리 유가족들의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유가족이 되고 난 뒤 또 얼마나 절망할지, 두려운 마음이 들어요.”

애써 담담한 예은이 엄마의 말에 순간 명치 끝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유가족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니. 정신병리학자이자 대형 참사의 유족들을 상담해온 일본의 노다 마사아키 교수는 “유족들이 처참한 시신임에도 집착하는 이유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한번도 생각지 않았던 가족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례를 치른 유가족은 피해자가 잠들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수습자 가족은 시신의 일부라도 확인하지 않고는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도군민들이 28일 진도 팽목항 등대 앞에서 세월호 선체의 무사이동과 미수습자들의 온전한 수습을 기원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행사를 가진 뒤 노란풍선을 날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단원고 희생자 아버지들이 동거차도 산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지난 18개월 동안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생활하는 강행군을 해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버지들은 망원렌즈를 통해 세월호 인양작업을 모니터링하면서 아이들이 숨져간 현장을 하루 종일 바라보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세월호가 인양되고 미수습자 가족이 유가족이 된다면 못할 일이 뭐 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노다 마사아키 교수의 설명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이들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한 부모들은 미수습자 가족만이 아니었다. 유가족 부모 또한 아이들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정부와 일부 정치인이 세월호의 기억을 지우려고 유가족을 조롱하고 모욕하자, 희생자 가족들은 타는 가슴과 슬픔의 시간을 단식투쟁으로, 삭발로, 촛불로, 그리고 간절한 외침으로 맞서고 버텨왔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꽃잎편지 전시회’ 또한 그런 기억투쟁의 하나였다.

분향소 건너편 경기도미술관에서 5월9일까지 열리는 ‘세 번째 봄, 너희를 담은 시간전(展)’. 전시회에는 색색깔 꽃잎과 거친 나무껍질과 얇게 말린 채소로 꾸민 꽃잎 편지와 꽃잎 수공예품들이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과 간절함을 담은 채 전시되고 있었다.

“그립고, 그립고, 그리운…” 영원히 잊을 수 없어 편지 제목에 마침표를 찍지 못한 지숙이 엄마는 “푹신 푹신 네 뱃살 맞대 꼭 안아주고 싶고 … 젖은 머릿결 잡고 뽀뽀하고 몸이 으스러지도록 안고 싶다”고 꽃잎 편지를 썼다. 차웅이 엄마는 엄마의 예쁜 마음을 꽃밥에 수북이 담고 “여전히 아이에게 따순 밥 한 끼만 먹이고 싶고, 그러지 못해 마음 한구석이 내내 쓰리다”고 했다.

훅 불면 나비가 되어 날아갈 것 같은 여린 꽃잎은 그리움의 세월호 리본으로 형상화되고 간절한 기다림의 빈 의자와 주인 없는 신발과 못다 공부한 책으로 되살아났다. 샛노란 꽃잎 자동차를 그린 세영이 아빠는 “대학 들어가면 자동차 사 줄게라는 말을 생전에 하지 못해 아빠가 많이 미안하다”는 편지를 띄웠다.

“낮고 더 낮게 엎드립니다. 부디 모두를 보내주소서.” 지난 3년 동안 팽목항에서 애타게 아이들을 기다리던 미수습자 가족들은 촛불을 밝히는 창호지 램프에 9명의 미수습자 명단과 함께 “머리칼 한번 쓸어줄 시간을 허락하소서”라고 써넣었다.

이 아이들이 우리 모두의 아이일진대, 이 부모의 “머리칼 한번 쓸어줄 시간”은 우리 모두의 가장 간절한 순간이다. 네 생명을 지극히 존중할 때, 내 생명도 존중받는 법이다. 생명의 침몰 앞에 올림머리부터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먹던 것도 뱉어내고 맨발로 뛰어가는 그런 마음은 너, 나,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이제 곧 목포신항에 세월호가 도착하면 미수습자의 흔적을 찾고,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일에 착수할 것이다. 수많은 난관과 불가능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 그건 기적 같은 일이지만, 창현 엄마의 말대로 “희생자 가족과 국민이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생명의 존엄함과 국가의 책무를 일깨웠다. 그 진실을 기억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뒤따를 때 또 다른 억울한 희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며 새로운 생명존중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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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식 선박 갑판 위에서 뼛조각 7점과 신발 등 유류품이 발견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뼛조각은 미수습자의 유해가 아닌 동물의 것으로 확인됐다. 실종자의 유류품이 발견된 것은 미수습자 수색작업이 끝난 지 2년4개월여 만이다. 정부가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을 종료한 뒤 절망 속에 살던 미수습자 9명의 가족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유류품이 선체 밖에서 발견돼 유실 가능성에 대한 대책이 부실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배가 기울고 있어요.” 2014년 4월16일 단원고의 한 학생은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에 첫 신고를 했다. 세월호 참사의 시작이다. 배가 기울고 침몰하는데도 ‘기다리라’는 말을 따르다 단원고 학생을 포함해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는 서서히 침몰했고 일각에서는 ‘에어포켓’ 안에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고문’이 시작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배가 침몰한 뒤 시신이 발견되자 서로가 자신의 가족이 아니기를 바랐다.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비명이 귀를 갈랐다. 피붙이임을 확인하는 순간 가족들은 비명과 함께 혼절했다. 잠수사들은 숨진 아이들을 인양했다. 그러나 차가운 바닷속 아이들은 “왜 이제 왔냐”고 원망하듯 움직이질 않았다. 잠수사들이 “이제 집에 가자”고 어르고 달래야 그제야 움직였다.

28일 4대 종단의 미수습자 조기수습기원제가 반잠수식 선박 인근에서 열리고 있던 상황에서 세월호 조타실 옆을 받친 반목 쪽(네모 표시)에서 뼛조각들이 발견되자 작업자들이 주변을 수색하고 있다. 진도 _ 사진공동취재단

며칠이 지나 희망의 끈이었던 에어포켓도 사라졌다. 세월호 생존의 희망도 사라졌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젠 시신이라도 발견되기만을 바랐다. 시신이 발견되면서 유가족들도 하나둘 떠났다. 세월호 침몰 102일 만에 295명째 희생자 황지현양의 시신이 수습됐다. 18번째 생일을 맞은 황양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황양의 친구들은 빈소의 조화에 “잊지 않을게. 돌아와줘서 고마워”라고 적었다. 그해 11월 정부의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은 종료됐다. 배에 탔으나 아직도 내리지 못한 9명만이 남았다. 그리고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상에서 잊혀져 갔다.

지난 23일 진도 맹골수도에 가라앉은 세월호가 1073일 만에 인양됐다. 완전히 드러난 세월호를 본 미수습자 가족들은 오열했다. 곳곳이 녹슬고 찌그러진 세월호에 내 아이가 있다며 탄식과 함께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 딸이 저 안에서 얼마나 엄마를 불렀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며 주저앉았다. 세월호에서 추가로 유류품이라도 발견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희망은 있다. 지상으로 올린 선체와 세월호가 누워 있던 해저도 샅샅이 수색해야 한다. 그래서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눈물로 지새는 미수습자 가족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그게 나라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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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인양을 시도할 것이라는 속보를 본 순간부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양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다시 접했다. 기상 여건에 따라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머지않아 세월호 인양이 시도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부디 인양에 성공하기를. 최대한 온전하게 세월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를.

꽃 같은 아이들을 태운 배가 무참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사건은 온 국민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상처가 너무 컸던 탓인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세월호를 입 밖에 꺼내기를 주저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광화문광장을 지날 때면, 불편한 마음에 발걸음도 빨라졌다. 작년에 선거를 준비하던 누군가가 “이제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국민들이 싫어한다”고 말할 때, 나조차도 그 앞에서 아니라고 말하질 못했었다. 그렇게 세월호가 사람들의 눈과 귀에서 멀어지는 동안,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은 외로운 싸움을 해야만 했고, 온갖 험한 일을 감수해야만 했다.

세월호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기를 바라는 지배세력의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촛불혁명이 시작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비록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지만, 어느 누구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헌법재판소는 세월호를 탄핵심판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국민이 권력자를 몰아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세월호였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촛불도, 탄핵도 세월호가 시작이었다.

다음달 세월호 인양작업에 투입되는 재킹바지선 2척이 17일 진도 서망항 앞바다에 대기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제공

세월호 인양으로 진상이 저절로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의 눈물이 저절로 씻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제 진상 규명과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시작된 것일 뿐이다. 진상 규명의 주체가 되어야 할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박근혜 정부에 의해서 강제 해산된 상태다. 세월호특조위가 다시 설치되지 않는다면, 해양수산부가 진상 규명의 역할을 맡게 된다. 조사 대상인 해양수산부가 진상 규명의 주체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2기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를 조속히 설치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도록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일도 시급하다. 진상 규명은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의 선결조건이다. 일각의 패륜적인 말과 행동이 재발하지 않도록 엄정한 법적 장치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귀를 씻고 눈을 가리고 싶은 패륜적인 말과 행동은 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을 향한 테러였다. 공동체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윤리조차 내팽개치는 이들에게는 용서 없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세월호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멀리는 5·18 희생자에서부터 최근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청년에 이르기까지 억울한 희생을 조롱하는 말과 행동을 더 이상 철없는 행동이나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용인해서는 안된다.

세월호 참사 시작부터 진상 규명 마지막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국가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는 누가 어떤 말과 행동을 했었는지, 세월호는 그만 잊고 경제를 살리자고 말했던 사회 지도층은 누구였는지, 보상 때문에 가족들이 저런다고 보도한 언론은 어디였는지도 포함되어야 한다.

가족들의 바람은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이윤을 위해 안전을 뒤로 미루는 관행과 이를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고, 책임 있는 국가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족들이 원하는 궁극적인 명예 회복이고 상처 치유이다. 세월호가 촛불과 탄핵의 출발이었다면,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가족의 상처 치유, 안전사회를 위한 국가체계의 확립은 촛불과 탄핵의 마침표이다.

작년에 아이들과 팀 버튼 감독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봤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등장한다. 세상은 그 아이들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미스 페레그린의 돌봄을 받으면서 영원히 살고 있다. 영화 막바지에 미스 페레그린이 악당에게 잡혀간다. 공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여자 아이가 바닷속에 수십년째 침몰해 있던 배에 잠수해서 들어간다. 길게 숨을 내뿜자, 공기가 가득 차면서 거대한 여객선이 순식간에 물 위로 떠오른다. 아이들은 그 배를 타고 미스 페레그린을 구하러 나선다.

꽃 같은 아이들아, 정말 염치없는 부탁 하나만 들어주렴. 어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 혹여 세월호 인양이 늦춰진다면, 너희가 도와주렴. 너희의 숨을 불어넣어 세월호를 세상으로 띄워주렴. 그리고 약속하마. 더 이상 억울한 눈물이 없도록 우리 어른들이 정신 똑똑히 챙기겠다고. 너희를 잊지 않겠다고.

이진석 |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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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9일은 304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0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참사의 원인, 과정, 결과가 지닌 이해 불가의 무능과 사악함에 대한 분노는 인간은 본시 망각의 동물이라는 표현이 끼어들 자리조차 없애야 하지만, 맹목으로 확산되던 세월호 피로감과 못된 버릇을 못 버린 종북론의 마녀사냥,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변함없는 후안무치의 조직적 방해로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바다 밑바닥에 박힌 세월호는 우리들 심장 밑바닥에 박힌 가시다. 맨밥 꿀꺽 삼키듯 덮어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가시의 존재는 더 분명해지고, 고통은 더 선명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끄러워하며 슬퍼하며 비루한 공범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날 이후 대한민국은 바다 깊이 침몰했다.

하지만 그렇게 덮어버릴 수 있는 일은 애초부터 아니었다. 바다 밑의 세월호는 꿈틀거리고 있었고, 진실을 향한 핏빛 절규는 나라를 통째로 농단하던 거대한 범죄 집단의 실체를 마침내 세상에 드러나게 하고야 말았다. 세월호를 인양하지 않는 것은 진실을 인양하지 않으려는 것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들은 세월호만 침몰시킨 것이 아니었음을 모두가 알게 됐다. 정의가 살아있다면 악한 세력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죽인 자’들을 반드시 벌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가 있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은 9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서 미수습자 가족 권오복씨(오른쪽)가 동생 재근씨의 귀환을 염원하며 연을 띄우고 있다. 연합뉴스

진실규명과 심판의 역할은 바다에서 땅 위로 올라왔고, 촛불이 이어받았다. 촛불은 대한민국의 가짜들을 태워버리기 위해 타올랐다. 가해자들의 폭력과는 정반대로 평화롭게 진행된 촛불혁명이 대한민국을 수렁에서 건져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을 필두로 대한민국을 말아먹은 가해자들은 예상대로 거짓과 침묵으로 일관한다. 여전히 모르쇠로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넘쳐나고, 누구 하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혼자만 살겠다고 뛰쳐나온 선장처럼 그 배후에서 거대한 악을 만든 폭력집단은 만천하에 드러난 숱한 증거들마저도 깡그리 부인한다. 물속에서 자기만 살아나온 게 미안하다고 오열하던 생존 학생처럼, 슬픔과 고통은 언제나처럼 약자의 몫이고 피해자의 짐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이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적기이자 마지막 기회를 맞이했다. 이미 공공성을 잃어버리고 한 줌 사적 집단의 소유물이 되어버린 국가는 대통령의 직무정지에도 불구하고 관성처럼 국민들을 향해 움직이지 말라고 시대를 착각하며 헛짓을 반복한다. 세월호 침몰이 시작된 이후 첫마디가 움직이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한 것이라는 생존자의 처절한 증언처럼 살기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초래했던 사적 국가를 거부하고 탈출해야 한다. 평화로운 혁명으로 폭력과 불공정의 패악권력을 몰아내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끌어내려야 할 것과 끌어올려야 할 것이 확실해졌다. 끌어내려야 할 것은 앞서 말한 가해자 집단과 함께 그들이 피해자들을 양산하며 누려온 적폐들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끌어올려야 하는 것은 세월호이며, 또 대한민국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의와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으며, 악이 정의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국내정치도 외교도 엉망진창이지만 이는 도약을 위한 치열한 재정비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 세계정세의 불확실성과 배타적 민족주의로 인해 동네북의 사면초가에 빠졌지만 국민들이 인양을 결심하고 실행한다면 에어포켓이 생기고, 골든타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아무도 쉽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리 불가능하다고 하지 말자. 냉소와 순환 반복을 철칙으로 주장하는 자들의 숨은 동기와 배후를 예의주시해야 할 때다. 그릇된 정치를 향해 분노를 품되 그것이 정치를 버리고 외면하는 이유가 아니라, 정치를 회복하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촛불혁명의 과실을 권력교체로만 한정 지으려는 세력들도 아니 된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과 ‘샌더스 현상’을 차단하는 또 다른 기득권의 모습을 보였기에 도널드 트럼프 같은 포퓰리즘 국가주의에 패배했다는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 힘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가 극우포퓰리즘의 헬게이트로 들어가고 있다면, 우리는 헬게이트에서 나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세계평화를 이끄는 촛불이 될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했다면, ‘광화문의 기적’은 내일의 우리를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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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밤 9시30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극장 향. 방금 연극 공연을 마친 일곱 명의 중년여성 배우들이 객석에 인사를 하기 위해 무대 앞에 둘러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2학년 8반 안주현 엄마입니다.” “6반 이영만 엄마입니다.” “4반 김동혁 엄마입니다.” “저는 생존학생 2학년 1반 장애진 엄마입니다.” “7반 정동수 엄마입니다.” “3반 정예진 엄마입니다.” “7반 곽수인 엄마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아이들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밝힌 이들은 ‘416가족극단 노란 리본’의 단원인 세월호 엄마들. 손에는 ‘끝까지 밝혀줄게’라는 일곱 글자 팻말을 나누어 들고 있었다.

‘416가족극단 노란 리본’은 자신들이 출연하는 창작극 <그와 그녀의 옷장>을 1월 들어 벌써 세 번 무대에 올렸다. 4일과 5일 ‘성미산 동네 연극축제’ 개막작으로 공연을 마친 뒤 7일에는 부산 일터소극장에서 공연했다. 23, 24일에는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맞서 문화예술인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운 블랙텐트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연극 작품 속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사는 것을 통해 심리치료를 한다는 것이 연극을 시작한 목표였지만, 세월호 엄마들은 “나를 치유하는 것보다는 연극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고 공연 이유를 밝혔다. “ ‘세월호는 빨갱이’라는 인식을 넘어서는 데 노래나 연극 같은 문화적인 접근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기 때문”(동혁 엄마)이었다.

5일 전남 진도군 팽목 진도항. 세월호 1000일의 흔적. 이준헌 기자 ifwedont@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것, 세월호 유가족이 되는 일”을 당하고 난 뒤, 엄마들은 내 인생에 있으리라고 상상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쉼 없이 겪어왔다. 연극에 나선 엄마들은 스스로 그런 변화를 더 나서서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결혼 10년 만에 얻은 아들 뒷바라지한다고 집에서 살림만 하던” 수줍음 많은 수인이 엄마는 극 중에서 300일 넘게 파업을 벌이는 억척스러운 비정규직 엄마 순심이 노릇을 익살스럽게 해 낸다. 극 중 새내기 노동자인 아들 수일 역을 맡은 동수 엄마는 “연극을 하면서도 한참 동안이나 내가 아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이제 없을 날들, 넥타이를 매고 회사에 출근하는 아들을 배웅하는 그런 날들을 그는 아들로서 연기하고 있다. 1인6역을 하는 예진이 엄마는 뮤지컬 배우가 되려 했던 딸 예진이를 대신해 무대에 오른다. 지난해 10월 첫 공연 전 예진 엄마는 딸이 잠들어있는 추모공원으로 달려가 울고 웃으며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일 먼저 보여줬다.

코믹 연기로 객석의 웃음을 이끌어내지만, 세월호 엄마들의 가슴속은 웃지 못한다. 진상이 규명되어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한, 희망이나 소망이라는 말은 자신들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월호가 1000일째가 되었다는 것은 “4월16일을 1000번째 사는 것”(주현 엄마)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들은 멈춰 서 있을 수가 없다. “ ‘엄마 아빠가 이만큼 하고 왔다’고, 이 다음에 아이들 만났을 때 할 말이 있게끔, 다 쏟아 넣어야 하기”(동혁 엄마)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로 향하는 간절한 마음은 이웃과 세상에 가 닿았다. 4·16가족협의회와 엄마의 이야기공방은 2015년과 2016년 연속해서 ‘엄마랑 함께하장’이라는 바자회를 세 차례 열어 수익금을 지역아동센터 난방비 등으로 후원했다. 2016년의 마지막 밤에는 서울 통인동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4160그릇의 카레덮밥을 나누기도 했다. “내 새끼 잃은 것에 대한 억울함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부모님들의 생각이 승화한 것 같다. 그건 그냥 알아진 것 같다. 세상의 부조리와 부패를 알지 못했고, 그걸 볼 눈이나, 들을 귀도 없었는데, 아이들을 위한 싸움을 하면서, 나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한 싸움, 어느 누구도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변화해왔다.”(영만 엄마)

아직은 무대가 어색한 세월호의 엄마들. 공연을 마치고 객석의 박수갈채 앞에서 그들이 느끼는 것은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구나’라는 아이들에 대한 떳떳함이다. 세월호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416가족극단 노란 리본’의 공연은 계속된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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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들의 자괴감을 높여 주기도 했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준 또 다른 긍정적인 영향은 세월호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꿔줬다는 점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공론화되기 전까지 세월호에 대한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제 그만 좀 우려먹어라, 지겹다. 둘째, 유족들이 돈 더 받으려고 저러는 거다. 셋째, 교통사고인데 무슨 진상규명이 필요하냐. 넷째, 인양하지 마라. 돈 아깝다. 모든 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을 통해 표출되는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정부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공모관계가 밝혀진 이후 세월호는 다시금 조명되기 시작한다. 사건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혹은 세월호가 어떻게 침몰했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는데, 이유인즉슨 검찰 수사로 인해 밝혀진 침몰 원인인 과적과 급변침에 대해 대부분 수긍했기 때문이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배를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소위 인신공양설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여기에 동조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작년 말, ‘자로’라는 닉네임을 쓰는 누리꾼이 2년의 노력 끝에 ‘세월X’라는 동영상을 만들어 유포했다. 무려 8시간49분에 달하는 이 동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자로와 그를 도운 김관묵 이화여대 교수의 노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자로는 그간 발표된 침몰 원인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세월호를 가라앉힌 진짜 이유에 접근해 나간다. 일단 급변침은 침몰 원인이 될 수 없다. 방향을 그 정도 틀었다고 해서 배가 넘어진다면, 우리나라 해역은 침몰하는 배들로 인해 연일 난리가 날 것이란다. 또한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달리 세월호의 복원력은 그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적이 원인일까? 세월호 운항일지를 보면 사고 당일보다 3배 가까이 물건을 실은 날도 있었단다. 자로가 존경스러운 점은 사소한 주장을 할 때조차 관련된 증거를 산더미처럼 제시한다는 데 있다.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결과가 인용되기도 하고, 언론보도나 검찰수사 자료, 그리고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라는 책이 동원된다. 과적이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자로는 세월호 당일 배에 화물이 실리는 폐쇄회로(CC)TV를 동원하기도 한다. ‘이 많은 자료를 다 어떻게 구했을까?’라는 감탄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노력 끝에 자로가 본 진실은 ‘외력’이었다. 사고 당일 세월호는 충격과 함께 45도로 기울었다. 3층 로비에 있던 양승진 선생님(실종)은 이 충격으로 바다로 튕겨 나가기까지 했는데, 이건 급변침으로 인한 침몰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실제로 세월호 생존자들 중 ‘쿵’ 소리를 들은 이가 많다고 하니, 이게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그 외력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사고 장소가 바다인 만큼 암초나 다른 선박일 수밖에 없는데, 사고 당시 세월호 주위에는 둘 다 없었다고 발표된 바 있다. 자로는 그걸 잠수함이라고 추정한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레이더에 나타난 괴물체가 그 증거다. 원래 이 물체는 세월호에서 떨어진 컨테이너라고 발표됐다. 하지만 자로는 이것이 컨테이너가 아닌, 나름의 동력을 가진 물체라고 주장한다. 레이더에 따르면 그 물체는 독자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레이더에서 사라졌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는 물체는 잠수함밖에 없단다.

그렇다고 자로가 자기주장이 맞다고 일방적으로 우기는 것은 아니다. 자로는 말한다. 자신의 주장도 하나의 가설일 뿐이며,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이 나온다면 기꺼이 잠수함 주장을 철회하겠다고. 보다 정확한 진실을 알기 위해 자로가 원하는 것은 세월호의 인양이다. 무엇인가에 부딪혔다면 세월호의 어딘가에 그 흔적이 남아있을 테니 말이다.

2016년 해양수산부 장관은 “올해 인양에 성공하겠다”고 여러 번 밝힌 바 있지만, 결국 세월호 인양은 해를 넘겼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인양에 별 뜻이 없는 게 아니냐 의심한다. 그간 인양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데다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떨어지는 상하이샐비지를 인양업체로 선정한 사실은 의심을 증폭시킨다. 중국업체인 만큼 인해전술로 배를 빨리 인양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지만, 인양이 언제쯤 될지 오리무중이다. 오히려 이들은 배에 130개의 구멍을 뚫는 등 선체를 훼손하고 있는데, 이러다간 배를 인양해도 침몰 원인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혹자는 자로의 영상을 또 다른 음모론으로 치부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음모론은 진실의 당사자가 뭔가를 자꾸 숨기려고 할 때 만들어진다. 박 대통령의 청와대 7시간에 대해 갖가지 음모론이 나오는 것도 당시 행적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다 사실이 드러나면 그제야 인정하는 청와대의 석연치 않은 태도 때문이 아닌가? 세월호 침몰에 대한 음모론이 부담스러우면 하루빨리 배를 인양하자. 그리고 과학자를 포함한 검증단을 만들어 침몰 원인을 재조사하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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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잎이 난분분히 흩날리고 있다. 화사한 봄빛을 터트린 벚나무 아래에 모여 선 아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눈부시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아이들과 함께 다소곳하게 서 있는 앳된 선생님은 아이들만큼이나 순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마지막 봄이 그렇게 사진 속에 있었다.

정유년 새해 첫날, 기억교실에서는 세월호 유가족 몇이 반별로 찍은 단체 사진을 벽에 걸고 있었다. 의자에 올라선 아버지의 못질은 서툴렀고, 의자를 꼭 잡고 있는 어머니의 눈매는 매서웠다. 못이 단단히 박혔는지, 한쪽으로 기울지나 않았는지 한참 공을 들인 뒤에야 사진 하나가 걸렸다. 아이에게 떡국을 끓여줄 수도, 새해 덕담을 해줄 수도 없는 부모들은 사진을 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양 온 힘을 쏟았다.

2016년 마지막 날 열린 10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서울 경복궁 앞에서 새해 세월호 인양을 소망하는 의미에서 촛불로 배 모형과 숫자 ‘2017’을 만들고 있다. 김창길 기자

“9반은 반 아이들이 다 나온 사진이 없네요.” 9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말을 건 어머니가 희미하게 웃었다. 정말 아이들이 몇 되지 않았다. 다른 반처럼 모두 함께 찍은 사진이 있을 텐데, 못 찾은 것이다. 못 찾은 게 어디 사진뿐이랴. 물어보고 싶은 게 어디 그것뿐이랴. 그러니까 사진이라도 있었더라면…….

새해 스물한 살이 되었을 아이들은 여전히 교복을 입은 열여덟 살의 모습으로 사진 속에 있다. 교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아이들 사진은 존재가 아니라 부재를 보여주지만, 부모들은 그 사진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이 어엿하게 이 세상에 살아있었음을, 그날만 아니었다면 꿈꾸고 부딪치면서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그것뿐이다.

기억교실을 돌아보고 나오다 아까 말을 건 어머니와 다시 마주쳤다. 조심히 가라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데, 그 인사가 슬퍼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인사를 받나, 또 그들은 뭐 고마울 게 있다고 인사를 하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사 하나가 떴다. 뜬금없이 기자들을 불러 모은 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날 자신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을 다 했다고. 그의 오만함이 부끄러워 정말 견딜 수가 없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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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가 일단락됐다. 이번 국정조사에서 핵심 증인인 최순실씨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은 공개된 청문회장에 끝내 나서지 않는 등 시민 우롱으로 일관했다. 어제 국정조사특위는 19년 만에 구치소 현장 청문회를 했다. 최씨는 청문회장까지 나오기를 거부했고, 의원들은 수감동을 찾아가 비공개 신문을 했다. 검찰 출두 당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울던 최씨는 이날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속 짜증을 냈다고 의원들은 전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아느냐”는 질의에 최씨는 “모른다”고 잡아뗐고, 미르·K스포츠 재단 문제에서 “나는 그런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딸 정유라씨 부정입학 의혹에는 “딸은 이화여대에 정당하게 들어갔다”고 답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과의 통화 여부를 묻자 최씨는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기억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백번 양보해 피의자의 방어권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답변 내용과 태도는 기가 찰 일이다. 최씨는 사익을 꾀하려고 정부와 청와대를 주물렀다가 국정 마비 상태로까지 몰고 온 장본인이다. 혐의를 모두 부인하면, 도깨비가 박 대통령을 홀려 일을 했다는 건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앞줄 왼쪽)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오른쪽)이 26일 수감 중인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에서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위가 개최한 현장 청문회에서 여야 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남부구치소 제공

이번 국정조사에서도 고질이 재발한 점은 아쉽다. 의원들은 의혹을 재탕, 중복 질문을 했다. 특히 새누리당 이완영·이만희 의원은 위증 교사 의혹을 불렀다. 이는 국정조사제도의 근간을 흔들 중차대한 문제로, 수사를 통해서라도 규명돼야 한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있었다. 정·관·재계가 어떻게 최씨와 얽혀 이익을 주고받았는지, 그 민낯이 생중계됐다. 누리꾼의 실시간 제보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 등 시민참여형 청문회 가능성도 보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증인·참고인 출석 거부와 모르쇠 답변, 위증 등을 막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 증언·감정법과 형법상 ‘국회 회의장 모욕죄’ 형량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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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는 여러 가지 눈물이 있다. 기쁨의 눈물, 억울한 눈물, 겁먹은 눈물, 회한의 눈물, 고통의 눈물, 웃음 끝의 눈물, 마지막 숨을 몰아쉰 눈물, 웃픈 눈물, 거짓 눈물…. 눈물을 흘리는 사람과 상황에 맞춰 이름을 짓자고 하면 세상에는 사람들 생김새만큼이나 많은 눈물이 존재할 것이다.

이날의 눈물은 어떤 눈물이었을까. 지난 9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날이다. 남보라색 재킷에 회색 바지를 입은 그는 오후 4시53분 청와대 위민1관 영상 국무회의실에 입장해 국무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대통령 신분’이란 껍데기만 갖게 된 그는 4분54초간 모두발언했고 우리는 TV로 이를 지켜봤다.

이후 TV로는 볼 수 없는 비공개 간담회가 이어졌다.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자리였을 것이다. 그는 국무위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고 악수하며 개별 인사를 나눴고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황교안, 유일호, 이준식 등 국무위원들과 한광옥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끝내 모두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영국 BBC방송이 9일 페이스북 계정에 ‘박근혜가 탄핵안 가결로 한국 대통령직에서 축출됐다’는 문구와 함께 박 대통령의 사진을 올렸다. BBC 페이스북

우리는 최근 그의 눈물 몇 가지를 기억한다. 지난 1일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이후 35일간의 칩거를 깨고 화염에 휩싸여 잿더미로 변한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점포 839곳 중 679곳이 소실된 곳이다. 소실된 점포 가운데는 2005년 당시 화재로 빚을 지고 아직 그 빚에서 벗어나지 못한 곳들도 있다.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 상인들의 피눈물이 뚝뚝 떨어진 자리다. 무엇을 위한 방문이었는지 그는 10여분간 일부 지역을 둘러본 뒤 시장을 빠져나왔다. “청와대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지난달 4일의 눈물도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2차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면서다. 올해 최대 유행어를 낳은 이날 담화문에서 그는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라며 눈물을 보였다.

좀 더 시간을 돌려보자. 2년7개월 전 2014년 5월19일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9일 만에 청와대 춘추관에서 발표된 세월호 참사 대국민담화다. 그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두 줄기 굵은 눈물을 흘렸다. 또렷이 정면을 응시한 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비장한 목소리로 희생자들을 호명하며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 “감사합니다”라는 맺음말에선 할 일을 잘해낸 사람의 당당함마저 느껴졌다. 그때까지도 닦지 않은 눈물은 카메라를 통해 그대로 생중계됐다. 이때의 눈물이 무엇이었는지 이후 그는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대통령의 눈물은 그때마다 회자가 됐다. 정치적 해석은 물론 심리학, 생물학 등 과학 영역의 분석 대상이 되기도 했다. 눈물샘의 위치, 주름살의 모양, 눈물이 맺혔다 내린 초시간, 흘러내린 뺨의 위치 등을 근거로 눈물의 진의를 따지는 정밀한 분석도 나온다. 과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지지율을 올리는 반전도 낳았다. 반대로 조롱과 분노를 일으키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는 것)에도 자격이 있을까. 지난 3일 232만명이 촛불을 든 6차 촛불집회에서는 세월호 미수습자인 단원고 조은화양의 엄마가 무대에 올랐다. 은화 엄마는 “지금도 팽목항에서 4월16일을 살고 있다”면서 “최소한 엄마로서, 최소한 사람으로서 은화를 떠나보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왜 세월호가 인양돼야 하는지 담담히 그 정당성을 얘기하는 엄마는 울먹이지 않았다. 말을 끝맺을 때서야 그리움과 억울함에 울음을 토했다.

대통령이 탄핵 후 국무위원들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던 그 순간 또 다른 눈물이 있었다. 국회 방청석에서 탄핵 표결을 지켜봤던 세월호 유가족들이다. 엄마들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유경근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탄핵 가결 후 심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무겁게 입을 뗐다. “이제 시작이죠. 국민들의 힘이, 촛불의 힘이 이렇게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고, 기쁜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1~2초간 뜨거운 눈물을 속으로 삼킨 그는 대통령이 하루라도 더 청와대에 있는 것은 국민에게 고통이라고 분명히 했다.

지난 10일 탄핵 가결의 한 파고를 넘긴 광화문광장과 전국에서는 또다시 104만개의 촛불이 타올랐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촛불을 든 고사리손들도 많았다. 이날의 촛불은 한층 더 밝았고 더 예리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황교안이 웬 말이냐” “김기춘·우병우를 구속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한상균을 석방하라”…. 소리 없이 자신의 몸을 태워 칠흑 같은 어둠을 몰아내는 촛불은 반전의 눈물을 허락지 않는다.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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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한민국 운명의 날이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 표결에 부쳐진다. 만약 이 안이 가결되고 장차 헌법재판소를 통과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실로 오랜만에 우리나라에서 정의가 승리하는 장면을 국민이 목격하게 된다. 세월호 유족들은 먼저 간 자식을 생각하며 눈물 흘릴 것이다. 토요일 촛불집회에서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 뒤 정국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하면서 여러 후보가 대선의 급류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개헌 주장도 더러 나오겠지만 현 국면에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불과하다. 지금은 오직 탄핵과 정권교체뿐이다. 박 대통령을 포함하여 개헌파 중에는 속셈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많으므로 양두구육이 아닌지 잘 봐야 한다. 경기 전날 갑자기 경기규칙을 바꾸자고 하는 사람은 저의를 의심할 만하다.

물론 현재 헌법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고치는 것은 차후 과제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적폐를 해소할 철저한 개혁을 단행하는 것이 다음 대통령의 임무다. 다음 대통령이 재벌개혁, 사법개혁, 관료개혁, 교육개혁, 언론개혁 등을 완수한 뒤 임기 후반에 가서 개헌을 논의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 그때 가서는 대통령중심제냐 의회중심제냐, 비례대표를 얼마나 늘릴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까 등을 포함해 백가쟁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은 개헌을 논할 때가 아니다.

그런데 만일 탄핵안이 부결되면 그 이후 정국은 먹구름 속으로 빠져들어 한 치가 아니라 반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된다. 탄핵안 통과에 실패한 야당 국회의원들은 ‘내가 이러려고 국회의원 했나’라는 자괴감에 빠져 집단 사표를 던질 것이다. 지금까지 사상 유례 없는 평화시위로 세계의 찬탄을 받았던 시민들도 참을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성난 촛불은 민의를 배반한 국회와 새누리당사를 에워싸 국회를 마비시킬 것이고, 국정 혼란은 극에 달할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 기능이 마비된 나라가 어떤 모양일지는 전대미문이라 도저히 상상하기 어렵다.

탄핵은 찬성하는 게 옳은가? 백번 옳다. 대통령의 헌법 파괴, 범법 행위는 현재 밝혀진 것만 해도 차고 넘친다. 세월호 7시간만 해도 여러 의혹에 대해 부인만 하지 그 시간에 대통령이 뭘 했는지 왜 말하지 않는가. 결국 최태민, 최순실은 박정희의 유신독재 그늘에 똬리 튼 독버섯이다. 이번 국정농단은 박정희, 최태민을 극복하지 못한 박근혜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빚은 사태다. 아버지 미화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폐기하고, 백해무익한 사드는 없애고, 자존심 상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위안부 합의는 폐지하고, 억울하게 문 닫은 개성공단은 다시 열어야 한다. 박정희 독재의 망령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며 법 위에 군림해온 간신배들은 심판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실하고 정직한 소시민들, 촛불집회가 끝나면 열심히 거리를 청소하는 애국시민들이 자존심을 갖고 어깨 펴고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온 세계에 대통령이 떨어뜨린 국격을 국민이 회복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오늘 결정되니 오늘은 진정 운명의 날이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이 운명의 결정은 국정농단의 공범인 새누리당 의원들의 손에 달려 있다. 골수 ‘진박’은 개전의 정이 없으므로 눈곱만큼도 기대할 게 없다. 어차피 이 사람들은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고, 정계에서 쫓겨날 운명이다.

반대로 새누리당을 탈당해서 대통령 탄핵을 열심히 외치는 남경필, 김용태의 주장에 비박, 친박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새누리당에 마지막 남은 양심과 애국심이 있다면 당연히 압도적 국민이 요구하는 탄핵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무자격 대통령을 내세워 국민과 역사 앞에 지은 죄를 속죄할 마지막 기회가 오늘이다. 잘못을 회개하고 새 출발을 하려는 사람은 용서하자.

독일의 나치 정권은 작곡가 ‘막스 브루흐’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모든 음악 연주를 금지했다. 브루흐가 작곡한 ‘콜 니드라이’도 물론 금지당했다. 콜 니드라이는 ‘신의 날’이란 뜻인데, 이 노래에 의해 인간은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고 한다. 이 곡은 속죄의 날을 기리는 관현악 반주의 첼로곡으로, 장중하게 흐르는 동양적 비애의 멜로디가 듣는 이의 가슴을 적신다. 오늘 운명의 날이 속죄의 날이 되기를 빈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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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역사적인 날이 밝았다. 결과에 따라 조금은 달라지겠지만 우리 모두의 신념은 확고하다. 탄핵이 성사된다고 해도 마냥 기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실패한다고 해도 결코 끝이 아니며, 따라서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보장된 것은 없지만 오늘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추악한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마침내 칼을 빼든 날이다. 국민을 철저하게 기만하고 정치를 난도질해 온 대통령을 심판하는 날이다.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며 반성 없는 대통령에게 국가를 사유화했던 잘못이 얼마나 큰 것임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날이다. 치부은폐와 권력연장을 위해 눈 닫고, 귀 막고, 무릎 꿇어왔던 정치인과 정부 관리들에게도 죄를 묻는 날이다.

그리고 홀린 듯이, 취한 듯이 무지몽매하게 나라를 맡겼던 우리 모두의 실수와 오판에 대해 처절히 반성하는 날이다. 숨이란 계속 들이마시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숨이 넘어가지 않으려면 숨을 뱉어내야 하듯이 임계점에 닿은 우리는 이제 이 부조리의 썩어서 악취 나는 호흡을 뱉을 때다. 기도를 꽉 막고 있던 찌든 가래덩어리를 내뱉어 버려야 할 때다.

혁명적 상황이 아니라 혁명이다. 이것이 혁명이 아니면 무엇이 혁명일까? 민의에 의한 혁명을 더럽히는 선택을 국회가 한다면, 역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된 적이 있었던가? 박근혜 대통령은 고립무원이다. 고립무원이어야만 한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부역자들이야 남겠지만 그들과 함께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만 우리의 미래가 살길이 생긴다.

탄핵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사퇴를 요구한다. 이유는 아까운 대한민국의 시간이 낭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깨달을 사람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깨달을 사람이었다면 후안무치의 3차례 담화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너무도 아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런 귀중한 시간을 지연시킬 권리는 대통령, 국회, 헌재를 포함해 누구에게도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곧 2014년 4월16일의 세월호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도 그랬듯이 지금의 골든타임은 대통령이 멋 부리며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국민의 목숨과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시간이다. 정부가 야만성에 항거하고, 이웃의 경박한 피로감에 의해 매장당한 공동체 의식을 살려내어 이번에는 침몰을 막아야 한다.

세월호 대책모임 ‘연장전’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을 떠올린다. “박근혜 정부가 열어버린 지옥에서 우리는 생명보다 죽음에, 진실보다 왜곡에, 슬픔보다 분노에, 애도보다 투쟁에 익숙해져야 했다. 우리는 이 지옥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와 연대를 만들어 낼 진심들을 반드시 인양할 것이며, 또 우리는 304개의 우주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한국의 미래가 민주주의 퇴행을 막고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담아 함께 피눈물로 쓴다. 각계각층의 외침과 준엄한 심판의 소리들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통곡이며, 미래를 위한 기대와 공감의 위대한 합창이다.

창자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신음은 입을 통과해 소리가 되어 울리며, 깊숙이 숨어있던 성찰은 손을 통과해 글이 되어 던져진다. 글과 소리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행동이 되어 저항의 광장으로 돌진한다. 촛불은 횃불이 되고, 횃불은 들불이 되듯이, 결코 뿔뿔이 낱개로 흩어지지 않고 모두 모여 싸워 이기도록 기원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 박근혜 게이트는 위기와 기회를 모두 품고 있다. 박근혜와 최순실 무리들이 대한민국을 세계의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렸지만, 국민은 일순간에 찬사로 바꿔버렸다. 세계적인 극우준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안보장사꾼들이 판치는 동북아에서 평화를 주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국민의 힘으로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한 다음 정치권을 쇄신하여 양극화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다. 국가의 진짜 주인이 정치를 되살릴 때다. 시민의 힘으로 민의의 대변자가 되기를 포기한 대통령과 군주의 가신으로 호가호위하는 정치인들에게 준엄한 심판을 직접 내릴 수밖에 없다.

지난 몇 주 동안 부를 때마다 모두를 울컥하게 만들었던 노래를 다시 되뇌어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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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세월호가 침몰할 때 박근혜 대통령은 전속 미용사를 불러 90분간 머리를 손질했다는 보도가 그제 나왔다. 300명 넘는 목숨이 생사의 기로에 선 금쪽같은 시간을 올림머리 하느라 허비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로부터 오전 11시23분쯤 ‘315명의 미구조 인원들이 실종 또는 선체 잔류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별다른 주문을 하지 않았고, 미용사는 평소와 다름없이 머리를 손질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전속 미용사가) 오후 3시20분쯤부터 1시간가량 청와대에 머물렀다”며 “당사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머리 손질에 소요된 시간은 20여분”이라고 말했다. 기껏 해명한다는 게 머리 손질에 소요된 시간이 90분이 아니라 20분이라는 것이다.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시간에 ‘90분’간 머리 손질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꽃 같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때 대통령이 ‘딴전’을 피웠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과 화장을 맡긴 바로 그 순간은 해경이 선체에 남은 생존자들을 찾기 위해 수중 수색 작업에 나선 때이다. 300여명이 수장되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은 머리치장을 하면서 구조 관련 내용을 묻거나 지시를 내린 정황은 없다. 그런 급박한 상황이라면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 장삼이사라도 맨발로 뛰쳐나가 상황 파악과 구조에 나서는 게 인지상정이다.

박 대통령 당시 행태를 보면, 어린 생명보다 자신의 머리 모양을 더 중시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경중을 가릴 줄 모르는, 이성마비 상태나 다름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그 뒤 보도대로라면 4시간 뒤, 청와대 주장대로라도 1시간 뒤인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민방위복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그러고는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청와대는 거짓말도 했다. 이영석 청와대 경호실 차장은 지난 5일 국회 국정조사 청와대 기관보고에서 “참사 당일 외부에서 (청와대로) 들어온 인원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미용실 원장 출입 사실이 드러나자 “미용사는 계약직 직원이라 출입증을 찍고 들어간다. 외부인이 아니다”라며 말장난을 했다.

머리 손질 외에도 7시간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이 침묵한다고 가려질 수 없다. 특별검사는 이미 7시간을 조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곧 의문의 시간, 의문의 행적이 드러난다. 남에 의해 폭로되기 전에 박 대통령 스스로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를 지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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