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13일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교사 43명의 글이 올라왔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틀 뒤인 5월15일 스승의날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후속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교사들의 성명이 낭독됐다. 그해 6월까지 박 대통령 퇴진을 주장한 교사는 123명, 일간지 광고 등에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교사는 161명이었다. 박근혜 정권이 이들을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세월호 관련 여론이 잠잠해지자 교육부와 보수 단체를 시켜 교사들을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고 집단행동을 했다는 이유였다. 200여명이 검찰 조사를 받았고, 100명 가까운 교사들이 지금도 재판과 교육청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달 30일 최저임금 1만원 등을 요구하며 비정규직 노조가 주도한 ‘사회적 총파업’에 일부 교사들이 참여했다. 교사들은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문제는 앞으로 사회에 진출할 제자들의 삶과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말이 파업이지 수업 결손은 거의 없었고 교사들 대부분이 개인 휴가를 내고 집회에 참가했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들 역시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교사들의 연가(年暇)투쟁도 국가공무원법·교원노조법 위반 등으로 징계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6월28일 (출처: 경향신문DB)

한국에서 교사는 선망받는 직업이다. 그러나 ‘나쁜 정권’하에서는 시민으로서 자유와 권리를 향유하기는커녕 시국 사범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들은 정권을 비판하면 정치적 중립을 어긴 것으로 간주되고, 집회·시위에 참여하면 집단행동을 한 것이 돼 불이익을 받기 일쑤다. 시대착오적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반대하는 것도 교사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같은 논리라면 정권을 지지하는 발언이나 행동도 금지돼야 하지만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다. 결국 교사들의 입을 틀어막아 정권의 하수인으로 부리기 위해서라고밖에 볼 수 없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은 필요하다. 가치관이 미성숙한 어린 학생에게 정치적 편견을 심어주거나 학교 교육이 특정 정파에 유리하게 진행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도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빌미로 양심의 자유를 억누르고 국민 주권의 상징인 참정권을 제한해 교사를 ‘사상적 정치적 금치산자’로 만드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교사는 정당 가입은커녕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할 수도 없다. 교원노조가 교육감 선거에서 의견을 내고, 후원금을 내는 것도 법에 저촉된다. 전교조 조합원인 한 교사는 지난해 총선 직전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내건 교육감 직선 폐지 공약을 비판하는 내용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이유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교사들은 노동자로서 단결하고 단체 교섭할 권리도 박탈당했다. 고용노동부는 2013년 10월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포함시켰다는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 노조’로 만들었다. 교육부는 법외 노조가 된 전교조에서 전임활동을 하던 변성호 전 위원장 등 34명을 직권면직 형식으로 쫓아냈다.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했다는 이유로 법외 노조 낙인을 찍고, 이를 근거로 노조 전임을 맡은 교사들을 모두 해고한 것이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을 보면 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집요하게 전교조를 탄압했는지 알 수 있다. 비망록에는 2014년 6월15일부터 같은 해 12월1일까지 170일 가운데 42일에 걸쳐 전교조 관련 내용이 나온다. 나흘에 한 번꼴이다. 김 전 수석은 전교조 법외 노조화를 ‘긴 프로세스 끝에 얻은 성과’라고 표현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자주적인 의사로 설립하고 운영된다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 노동조합이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포함시키든 말든 그것은 노조원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사항이 아니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도 인정하는 노동자의 보편적인 권리이다.

국정농단이 발각되면서 박근혜 정권은 탄핵됐고, 박 전 대통령은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박근혜 정권에서 해직된 교사들을 하루빨리 교단에 복귀시켜야 한다.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거나 교육청의 징계를 받은 교사들은 명예가 회복돼야 하고, 전교조는 합법 노조로 복권돼야 한다. 이런 것들은 국가 재정을 투입해야 할 문제도 아니고, 법을 바꾸기 위해 보수 야당을 설득해야 하는 사안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마음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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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가 어느 순간 떠나고 나면 남는 것은 ‘진실’에 대한 기억뿐이다. 건너가지도 못한 진실, 건너갔으나 닿자마자 변형된 진실, 나에게 비로소 도달했으나 알 수 없었던 그의 진실. 상호모순되는 진실들이 어느 순간 뒤죽박죽 엉키면서 안개가 어리기 시작한다. 우리의 진실이 어느 시공간에서 부유하고 있는지 어디선가 공허한 바람 소리도 난다. 그때의 진실을 이제 와 감정으로 만져본 것뿐이데 어느새 해지고 있다. 진실은 본래 그토록 연약한 것일까.

박사 과정 초기 시절 꽤나 여러번 지도교수들과 사회과학에서의 ‘사실’과 ‘의견’에 대해 논쟁을 했다. 어느 날 나는 두 분의 지도교수들에게 한국과 일본의 비정규직 확대에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해보겠다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분이 나에게 “너 과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 맞니?”하고 물었다. 다른 한분은 키득 웃으시며 “우리는 왜 자꾸 네가 정치가 같을까?”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무척 당혹스러웠지만 그 에피소드는 연구할 때마다 나를 긴장하게 한다. 증거가 되는 자료, 사실 등을 찾아내어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리다 보면 진실이 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보여주는 예쁜 무지갯빛처럼, 나는 진실이 비추고 있는 여러 색깔 중 마음에 드는 색만 골라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당시 생존했던 단원고 학생들이 7일 세월호 참사 1000일 추모 11차 촛불집회에서 무대에 올라 발언하자 희생된 학생들의 부모들이 다가가 안아주고 있다. 강윤중 기자

연구자가 진실을 분석하고자 할 때는 사실에 기반을 둔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특히, 사회과학에서는 개별적 삶에 대한 구체성이 결여되면 어떤 정책이나 이론도 허무한 맹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가의 말에는 늘 추상성이 있다. 추상화된 언어는 사실 권력자들만 구사할 수 있다. 권력자의 힘이 강할수록 구체성과 사실은 감추고 뻔뻔하게 사실을 추상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추상성의 정도가 곧 권력의 정도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2016년을 ‘탈진실(post-truth)’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이 단어는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개인적 신념이 사람들의 의견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뜻한다. 개인들이 과학적 증거들보다 감정에 쉽게 설득당할 수 있게 되면 진실에 대한 판단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따르게 된다. 진실은 온데간데없거나 ‘저마다의 진실’들이 너무 많아져, 감정의 설득력이 더 커지는 것이다.

탈진실은 공적 정보 및 자료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과 냉소가 팽배해질 때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나 온라인상의 상호작용을 통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댓글과 ‘좋아요’ 횟수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감정 묻은 정보들이 진실의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이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지식은 점점 세분화되어 파편화된 진실의 조각들은 각 개인들을 설득하기가 너무 가벼워졌다. 작은 진실의 조각들은 범람하고 있는데 우리는 점점 더 진실을 갈구하게 됐다.

이러한 탈진실의 시대에 위험한 것은 권력가의 현혹이다. 이 때문에 탈진실의 시대에 권력자의 말은 위험하고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사실보다 감정이 개인들의 의견에 영향을 미치는 탈진실 시대에 최고 권력자가 ‘북한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라고 추상적인 말 한마디를 한다면, 그 효과를 그가 모를 리가 없거니와 몰라서도 안된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저마다의 진실이 공존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저마다의 진실들이 경합하는 경우 각 개인들이 이성에 따라 판단할 수 있도록 열린 토론과 원활한 정보검증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매체들, 시민단체, 학자 그리고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진실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지속적으로 정보공개를 요청하고 사실을 검증해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대해 잘 모른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문인과 예술인들조차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니 제대로 된 진실 경합은 언제 시작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이미 닳고 있는 진실이 만질 수도 없는 안개 속으로 영영 사라질까 두렵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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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9일은 304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0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참사의 원인, 과정, 결과가 지닌 이해 불가의 무능과 사악함에 대한 분노는 인간은 본시 망각의 동물이라는 표현이 끼어들 자리조차 없애야 하지만, 맹목으로 확산되던 세월호 피로감과 못된 버릇을 못 버린 종북론의 마녀사냥,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변함없는 후안무치의 조직적 방해로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바다 밑바닥에 박힌 세월호는 우리들 심장 밑바닥에 박힌 가시다. 맨밥 꿀꺽 삼키듯 덮어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가시의 존재는 더 분명해지고, 고통은 더 선명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끄러워하며 슬퍼하며 비루한 공범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날 이후 대한민국은 바다 깊이 침몰했다.

하지만 그렇게 덮어버릴 수 있는 일은 애초부터 아니었다. 바다 밑의 세월호는 꿈틀거리고 있었고, 진실을 향한 핏빛 절규는 나라를 통째로 농단하던 거대한 범죄 집단의 실체를 마침내 세상에 드러나게 하고야 말았다. 세월호를 인양하지 않는 것은 진실을 인양하지 않으려는 것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들은 세월호만 침몰시킨 것이 아니었음을 모두가 알게 됐다. 정의가 살아있다면 악한 세력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죽인 자’들을 반드시 벌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가 있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은 9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서 미수습자 가족 권오복씨(오른쪽)가 동생 재근씨의 귀환을 염원하며 연을 띄우고 있다. 연합뉴스

진실규명과 심판의 역할은 바다에서 땅 위로 올라왔고, 촛불이 이어받았다. 촛불은 대한민국의 가짜들을 태워버리기 위해 타올랐다. 가해자들의 폭력과는 정반대로 평화롭게 진행된 촛불혁명이 대한민국을 수렁에서 건져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을 필두로 대한민국을 말아먹은 가해자들은 예상대로 거짓과 침묵으로 일관한다. 여전히 모르쇠로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넘쳐나고, 누구 하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혼자만 살겠다고 뛰쳐나온 선장처럼 그 배후에서 거대한 악을 만든 폭력집단은 만천하에 드러난 숱한 증거들마저도 깡그리 부인한다. 물속에서 자기만 살아나온 게 미안하다고 오열하던 생존 학생처럼, 슬픔과 고통은 언제나처럼 약자의 몫이고 피해자의 짐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이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적기이자 마지막 기회를 맞이했다. 이미 공공성을 잃어버리고 한 줌 사적 집단의 소유물이 되어버린 국가는 대통령의 직무정지에도 불구하고 관성처럼 국민들을 향해 움직이지 말라고 시대를 착각하며 헛짓을 반복한다. 세월호 침몰이 시작된 이후 첫마디가 움직이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한 것이라는 생존자의 처절한 증언처럼 살기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초래했던 사적 국가를 거부하고 탈출해야 한다. 평화로운 혁명으로 폭력과 불공정의 패악권력을 몰아내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끌어내려야 할 것과 끌어올려야 할 것이 확실해졌다. 끌어내려야 할 것은 앞서 말한 가해자 집단과 함께 그들이 피해자들을 양산하며 누려온 적폐들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끌어올려야 하는 것은 세월호이며, 또 대한민국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의와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으며, 악이 정의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국내정치도 외교도 엉망진창이지만 이는 도약을 위한 치열한 재정비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 세계정세의 불확실성과 배타적 민족주의로 인해 동네북의 사면초가에 빠졌지만 국민들이 인양을 결심하고 실행한다면 에어포켓이 생기고, 골든타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아무도 쉽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리 불가능하다고 하지 말자. 냉소와 순환 반복을 철칙으로 주장하는 자들의 숨은 동기와 배후를 예의주시해야 할 때다. 그릇된 정치를 향해 분노를 품되 그것이 정치를 버리고 외면하는 이유가 아니라, 정치를 회복하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촛불혁명의 과실을 권력교체로만 한정 지으려는 세력들도 아니 된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과 ‘샌더스 현상’을 차단하는 또 다른 기득권의 모습을 보였기에 도널드 트럼프 같은 포퓰리즘 국가주의에 패배했다는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 힘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가 극우포퓰리즘의 헬게이트로 들어가고 있다면, 우리는 헬게이트에서 나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세계평화를 이끄는 촛불이 될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했다면, ‘광화문의 기적’은 내일의 우리를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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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밝히기 위해 국회 청문회가 열렸지만 궁금증 해소는커녕 의혹만 증폭되고 있다. 국가 안보 실무 책임자로 대통령에게 24시간 보고 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국가안보실장은 박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서면보고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어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당시 대통령의 위치를 알지 못한 탓에 집무실과 관저 두 곳에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서면보고를 올렸다고 진술했다. 중대 재난이 발생한 상황에서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의 소재를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이 서면보고를 수령했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반 기업의 말단 사원이라도 일을 이렇게 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청와대 보고 체계가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다. 앞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박 대통령의 소재를 몰랐다고 밝혔다. 세월호 사고가 나기 전에도 근무 시간에 대통령의 소재파악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보니 참모들의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다는 것으로밖에 설명이 안된다.

김영재 원장(아래에서 세번째)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위 3차 청문회에서 피멍 자국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 사진을 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사고 당일 박 대통령은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제외하면 숙소가 있는 관저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당일 오전 신보라 전 청와대 의무실 간호장교는 박 대통령에게 가글액과 안약을 갖다주기 위해 관저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전 청와대 조리장도 박 대통령이 관저에서 혼자 점심과 저녁 밥을 먹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오후 3시쯤 전속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손질한 것은 이미 확인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남은 시간 뭘 했는지 청문회에서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성형시술 등을 받았다는 의혹에 최순실씨 단골 성형외과 원장 김영재씨나 전 대통령 자문의인 김상만씨, 전·현직 대통령 주치의, 청와대 의무실장 등은 하나같이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일정과 동선을 꿰뚫고 있는 윤전추·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은 아예 청문회장에 나오지 않았다. 핵심 증인인 의무실 간호장교 조여옥 대위도 미국 연수를 이유로 불출석했다. 국정조사 특위는 두 행정관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지만 이들은 전화를 받지 않고 명령장 수령을 피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썼던 수법이다.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7시간의 의혹을 밝히려는 국회의 노력에 청와대가 어깃장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럴수록 의혹을 밝혀야 하는 이유 또한 분명해진다. 7시간 행적은 물론 청와대의 방해 공작까지 특검이 적극 수사하고, 국회에서의 증언·감정법 등 청문회 제도도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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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매화 꽃봉오리가 젖꼭지처럼 부풀었을 때였다. 별 기별도 없이 그는 톱과 사다리를 트럭에 싣고 내 작업실로 왔다. 폭설을 뒤집어쓰고 쓰러진 마당의 소나무를 일으켜 세우는가 싶더니 우지직 끊어졌던 가지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 내가 박근혜 대통령 후보에게 안중근 의사 유묵 소장 여부를 물었다가 뜬금없이 검찰에 기소당했을 때에도 그는 법원 앞에 누구보다 빨리 얼굴을 내밀었다.

“자네도 그런가? 나도 분이 안 풀려서 긍가 입맛도 없고 통 잠도 안 오네.”

그는 세월호 참사 얼마 후에 나를 호출했다. 급한 일을 대충 마무리한 나는 그의 집으로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집 마당에 당도했을 때 그는 없었다. 마당 귀퉁이에 걸린 화덕에서 뭔가가 푹푹 끓고 있었는데 김이 올라오는 솥단지 뚜껑을 열어보니 토종닭 두어 마리가 삶아지고 있었다. 그는 머지않아 자전거를 타고 들어왔다. 자전거 앞쪽과 뒤쪽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 ‘구조 0명, 진상을 밝혀라!’라는 구호가 코팅된 채로 붙어 있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 세월호 참사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면소재지를 한 바퀴 돌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장터이든 정류장이든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세월호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그는 다름 아닌 내 친구 정진섭이다. 언제나 나를 속수무책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내 친구 정진섭과의 인연은 내 시집 <그리운 여우>와 관련이 있다. 1990년대 중반, 나는 전교조 해직교사로 살다가 전북 장수군 산서고등학교로 복직을 했다. 거기서 그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는데 그 무렵에 그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었다. 그가 그 시집을 들고 몇 년 후에 나를 찾아왔고, 턱수염이 늘 덥수룩한 그와 단번에 마음이 통했다.

나보다 한 살이 더 많은 그를 유혹해 친구 삼자고 꼬인 것도 나다. 그는 시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군대에 가기 전 20대 초반에 이미 시인의 문턱에 다다른 사람이었다. 농사일도 하고 목수일도 하는 내 친구 진섭이. 그는 샘이 날 정도로 시를 잘 쓰는 친구이기도 하다. 정진섭은 1984년 ‘현대문학’ 400호 기념 지상백일장에서 장원을 해 1회 추천을 받는다. 그때 심사위원은 박재삼 시인과 김춘수 시인이었다. 그때 현대문학에서 1회 추천만 더 받았다면 그는 진즉 큰 시인이 되었을 터이다. 하지만 장수 촌놈인 그는 흘려보냈어도 좋을 한마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너, 그거 했다가는 가난에서 못 벗어나니 절대 그거 하지 마라!”

당시 국어 선생님이던 고종형님의 말을 듣고 곧 갈등에 빠져들었다. 군에 다녀온 정진섭은 점차 시에서 손을 놓고 전국 각지를 떠도는 떠돌이를 자처했다. 배달원으로, 공사현장 잡부로, 탄광촌 광부로 떠돌았다. 그가 초보 광부가 되어 태백의 어느 갱도에서 일을 할 때였다. 연장을 내려놓고 도시락을 까먹고 있는데 커다란 쥐가 어슬렁거렸다. 정진섭은 의기양양하게 쥐를 잡았다. 하지만 선배 광부들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쥐는 탄광이 위태로운 상황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신호를 보내오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던 것.

가끔 그는 나를 ‘두목’으로 부른다. 시를 가르치는 자신의 두목이라는 것. 그렇지만 나는 그에게 시를 가르치기보다 그를 통해 사람살이와 세상의 일을 배울 때가 많다. 마늘을 어떻게 심고 가꾸는지, 철쭉의 전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못된 일을 벌이는 권력자들에게는 어떤 욕을 해줘야 하는지…. 그가 나의 선생이다.

내 친구 정진섭은 작업실 보일러가 더 이상 못 돌겠다고 떼를 썼을 때도, 감나무가 깊은 병에 들어 시름시름 앓을 때도 두말없이 찾아와 고쳐주고 갔다. 여름에 말벌 떼가 작업실 처마 밑에 집을 짓고는 자기네 집이라고 우겨댈 적에는 단숨에 말벌 무리를 박살 내고 갔다. 119 소방대원보다 빠르게 말이다.

때로는 개울에서 아내와 함께 몇 줌 주웠다는 다슬기를 들고 오기도 했고, 농사지은 햇감자며 옥수수며 양파며 참깨 같은 걸 은근슬쩍 놓고 가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맛이나 보고 말기에는 너무 많은 김장김치를 들고 왔다. “노모가 ‘짐치통’ 왜 안 찾아 오냐고 맨날 노래를 부르신당께.”

며칠 전에는 또 김장김치 한 통을 들고 와 여간 멋쩍어하는 내 앞에서 호탕하게 웃고 갔다. “작년 김장김치가 너무 짜서 올해는 소금에 절일 때 내가 옆에서 감독을 했지.”

여름철에 날을 잡아 그와 함께 낚시를 몇 번 간 적이 있다. 그는 경운기에 텐트와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싣고 우리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그가 다루는 도마 가까이 우리는 가지 못한다. 올해 여름에도 그랬다. 고기를 굽고 닭을 삶고 텐트를 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모두 그의 손끝에서 이루어진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빗소리를 들으며 밤새 통음을 한 것도 다 그의 덕분이다. 올여름에도 나는 밤늦게까지 붕어 한 마리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새벽녘에 낚싯바늘 하나로 참붕어 대여섯 마리를 조용히 건져 올렸다. 이거야말로 여지없이 기가 죽는 순간이다.

이쯤에서 정진섭의 비리를 하나 말해야겠다. 언젠가 밤에 트럭을 몰고 가다 빙판길에 미끄러졌으나 다행히(?) 파출소를 들이받고 멈추는 바람에 죽다 살아난 적이 있다. 차는 폐차되었다. 그 이후로 술 마시는 실력은 내가 한 수 위가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도대체 내가 그를 앞지를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내 친구 정진섭은 올해 여든다섯인 아버지와 일흔다섯인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묵묵히 산서를 지킨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첫눈에 반해 결혼한 아내 김숙희와 함께 알뜰살뜰 살아간다. 고등학교 3학년인 ‘가을’이와 중학교 2학년인 딸 ‘겨울’이는 아버지를 친구처럼 잘 따른다. 두 딸의 이름을 가을과 겨울이라고 지은 것만 봐도 내 친구 진섭이가 예사 시인이 아니지 않은가. 이런 정진섭이 요새 시를 다시 쓰고 있다.

“내가 강호로 나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안이하게 시 쓰는 시인들은 바짝, 긴장해야 할 터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트럭을 끌고 다니면서 남의 집을 고쳐주고 길 닦고 하는 일이 이제는 힘겹다고 한다. 요즘은 농사를 슬슬 지어볼까 궁리 중이다. 얼마 전에는 밭 2000평을 얻어 양파를 심었다. 나는 내년에 양파를 한 알도 사지 않고 그에게 매달릴 작정이다.

안도현 우석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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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명한 책의 서문을 빌려 지금의 대한민국을 나는 이렇게 규정하고 싶다.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세월호라는 유령이.’ 지금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을 흔들고, 광장을 사람들로 메우고, 촛불과 횃불을 타오르게 만드는 것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이전에 ‘세월호’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라는 정식명칭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은 거듭 ‘세월호 7시간’을 추궁하고 있다. 매스컴도 연일 최순실 국정농단과 함께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한 해부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2014년 4월16일 참사로부터 2년 반이 지난 현재, 왜 세월호는 자꾸 돌아오는가.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분석한 어느 글에서 이렇게 얘기한 바 있다. 햄릿이 우울증과 광기에 시달리는 것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햄릿은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못했고, 그는 유령이 되어 거듭 그 앞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아마도 하야와 탄핵을 외치는 촛불에 세월호 7시간의 민낯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304명의 원혼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국가수반이자 책임자인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진심 어린 애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촌각을 다투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한 대응을 진두지휘하기는커녕,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데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든가요?”라는 황당무계한 질문을 던졌다. 이어 세월호 유가족에게 그가 보여준 냉대와 외면은 전 국민의 무의식을 곧장 우울증과 광기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로부터 한 시도 그 장면에서 떠날 수 없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세월호는 왜 자꾸 돌아오는가, 그리고 어떻게 돌아오는가. 누군가 좋아한다는 샤머니즘적으로 말하자면 세월호 아이들로 가득 찬 우주의 기운이 태블릿 PC를 찾아내 최순실을 꿇어 앉히고, 광장에 촛불을 밝히고, 셈이나 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꾸짖고, 다시 촛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고 있다. 인양되지 못한 선체처럼 전 국민의 저 깊은 곳에 내려앉은 세월호의 영령들이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우리를 광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어떤 끔찍한 사고를 당한 후 그 사건을 자꾸 되새기는 ‘반복강박’은 그 사건을 이해가능한 것으로 돌려놓고 안전한 것으로 처리하기 위한 방어적 심리기제이다.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 주체는 그 사건에 의해 압도되고 사로잡히지만 계속적인 추체험과 반복을 통해 그 괴물스러움은 이해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반복강박의 효과이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수백 번, 수천 번의 호명과 되새김은 희생자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우리가 미치지 않기 위해 수행하는 일종의 몸부림이다. 이 반복강박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작업, 그리고 집단적 우울과 광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애도의 첫걸음은, 정확한 ‘사실의 재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지 않고 있다. 오보·괴담 바로잡기라는 청와대의 ‘이것이 팩트입니다’는 ‘굿판을 벌였다, 성형시술을 했다, 잠을 잤다’ 등등의 의혹에 대해 “아니다”라고 부정만 했을 뿐 그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팩트라며 밝힌 7시간의 일정표에 대통령의 육성과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을 상대로 무슨 스무고개라도 하자는 것인가. “아니다”라고만 말하는 그 끝에는 무엇이 있길래, 그토록 수많은 루머와 의혹에도 끝내 밝히지 못하는 것일까. 이제까지의 모든 의혹을 뛰어넘는 더 무시무시한 무엇이라도 있다는 것일까.

지난달 26일 광장에 나갔다. 촛불행렬을 따라 줄줄이 걷는 그 길에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추모노래가 흘러나왔다. ‘하야가’를 부르고 퇴진을 외치던 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나도, 내 앞의 사람도, 내 옆의 사람도, 내 뒤의 사람도, 선뜻 따라 부르지 못했다. 양희은의 ‘상록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전인권의 ‘애국가’보다 더 먹먹한 선율. 감히 떼창도 할 수 없는 그 노래가 광장의 사람들을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과연 그러한가. 과연 그렇다고 나는 말할 수 있는가. 국가수장이 광장에 무릎 꿇고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는 한 우리가 함께 묻은 그 아이들은 영영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노래는 계속될 것이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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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겨울이 되었다. 토요일의 삶을 잃어버린 지 한 달 하고도 열흘, 그사이, 가을 산야는 속절없이 불타올랐고, 광장에는 진눈깨비 첫눈이 내렸다. 광장을 다시 찾았고, 어둠이 내린 거리를 낯모르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촛불을 들고 걸었으며,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어제 정오 수업에서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소설들과 김탁환의 최근 소설에 대한 학생들의 발표가 있었다.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와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는 장르적으로 ‘소설’로 분류되지만, 내용적으로는 다큐멘터리(르포르타주)에 가깝다.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전쟁과 원전 사고를 겪은 구소련권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지역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200명의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 김관홍 민간 잠수사의 탄원서 내용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진실에 접근해간다.

제5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소설은 픽션, 곧 지어낸 허구물이다. 그러나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 지어낸다 해도, 현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당해낼 수 없는 경우, 곧 현실이 픽션을 압도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재난 참사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이것은 소설인가’, 소설 속 인물들을 만나면서 ‘이것이 인간인가’ 끊임없이 자문한다. 수많은 밤 이러한 질문들과 맞서며 혼신의 힘으로 써온 것이기에, 학생들의 발표는 뜨겁고, 감동적이다. 그들은 자신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온 사건이 어느 순간 자신의 삶 한가운데로 육박해 들어오는 경험을 하고, 눈앞에 벌어진 사실 뒤에 은폐된 진실을 직시하고,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주시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절규하는 목소리들을 온몸으로 겪고 온 날 밤에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다가 추스르듯 촛불 하나 켜놓고 플로베르의 소설을 펼친다. 펠리시테라는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린 <단순한 마음>이다. 단순한 마음이란, 삶에 바치는 소박한 마음, 인간을 대하는 순박한 마음이다. 소설사에서 대가로 추앙받는 플로베르가 말년에 발표한 소설인데, 주인공은 펠리시테라는 프랑스 북부 작은 포구 마을에 사는 가정부이다. 플로베르는 이 여성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그녀는 착한 마음씨와 옳은 일에 헌신하는 뜨거운 정신의 소유자일 뿐, 털끝만큼도 사심(私心)을 거느리지 않은 견결한 여성이다. 그녀의 일생을 둘러싸고 커다란 사건이 벌어지지 않음에도 읽어갈수록 인간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경험해서인지 깊은 여운이 남는다.

다시 토요일은 돌아오고, 올곧은 마음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은 언제나 가능한 걸까. 그날을 하루빨리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물러서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을 일이다.

함정임 |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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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홈페이지 ‘오보·괴담 바로잡기’ 코너에 글을 올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의혹에 관해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7시간 동안 굿판을 벌이거나 성형시술을 받았다는 괴담이 퍼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지만 결과적으로 의구심만 더 증폭시키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사고 신고가 접수된 지 1시간11분이 지난 오전 10시 국가안보실로부터 최초로 서면보고를 받았다. 이후 10시15분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전화로 지시하고 10시30분에는 해경청장에게 전화해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지시는 이것이 전부였다. 이후 안보실과 정무수석실·교육문화수석설 등으로부터 오전 10시36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14차례에 걸쳐 서면·유선보고를 받았지만 추가 지시는 내리지 않았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16일 청와대 인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박 대통령이 근무 시간에 왜 숙소가 있는 관저에 머물렀는지도 의문이다. 그런 난리 상황에 박 대통령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면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청와대는 이에 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박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간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15분이다.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잠긴 지 5시간이 지났을 때다.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짧게는 3분, 평균 20분 간격으로 쉼없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고 강변했다. ‘박 대통령의 7시간’ 규명은 특검의 몫이 됐다. 특검은 박 대통령뿐 아니라 청와대 주요 참모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도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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