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명한 책의 서문을 빌려 지금의 대한민국을 나는 이렇게 규정하고 싶다.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세월호라는 유령이.’ 지금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을 흔들고, 광장을 사람들로 메우고, 촛불과 횃불을 타오르게 만드는 것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이전에 ‘세월호’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라는 정식명칭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은 거듭 ‘세월호 7시간’을 추궁하고 있다. 매스컴도 연일 최순실 국정농단과 함께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한 해부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2014년 4월16일 참사로부터 2년 반이 지난 현재, 왜 세월호는 자꾸 돌아오는가.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분석한 어느 글에서 이렇게 얘기한 바 있다. 햄릿이 우울증과 광기에 시달리는 것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햄릿은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못했고, 그는 유령이 되어 거듭 그 앞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아마도 하야와 탄핵을 외치는 촛불에 세월호 7시간의 민낯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304명의 원혼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국가수반이자 책임자인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진심 어린 애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촌각을 다투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한 대응을 진두지휘하기는커녕,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데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든가요?”라는 황당무계한 질문을 던졌다. 이어 세월호 유가족에게 그가 보여준 냉대와 외면은 전 국민의 무의식을 곧장 우울증과 광기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로부터 한 시도 그 장면에서 떠날 수 없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세월호는 왜 자꾸 돌아오는가, 그리고 어떻게 돌아오는가. 누군가 좋아한다는 샤머니즘적으로 말하자면 세월호 아이들로 가득 찬 우주의 기운이 태블릿 PC를 찾아내 최순실을 꿇어 앉히고, 광장에 촛불을 밝히고, 셈이나 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꾸짖고, 다시 촛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고 있다. 인양되지 못한 선체처럼 전 국민의 저 깊은 곳에 내려앉은 세월호의 영령들이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우리를 광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어떤 끔찍한 사고를 당한 후 그 사건을 자꾸 되새기는 ‘반복강박’은 그 사건을 이해가능한 것으로 돌려놓고 안전한 것으로 처리하기 위한 방어적 심리기제이다.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 주체는 그 사건에 의해 압도되고 사로잡히지만 계속적인 추체험과 반복을 통해 그 괴물스러움은 이해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반복강박의 효과이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수백 번, 수천 번의 호명과 되새김은 희생자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우리가 미치지 않기 위해 수행하는 일종의 몸부림이다. 이 반복강박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작업, 그리고 집단적 우울과 광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애도의 첫걸음은, 정확한 ‘사실의 재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지 않고 있다. 오보·괴담 바로잡기라는 청와대의 ‘이것이 팩트입니다’는 ‘굿판을 벌였다, 성형시술을 했다, 잠을 잤다’ 등등의 의혹에 대해 “아니다”라고 부정만 했을 뿐 그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팩트라며 밝힌 7시간의 일정표에 대통령의 육성과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을 상대로 무슨 스무고개라도 하자는 것인가. “아니다”라고만 말하는 그 끝에는 무엇이 있길래, 그토록 수많은 루머와 의혹에도 끝내 밝히지 못하는 것일까. 이제까지의 모든 의혹을 뛰어넘는 더 무시무시한 무엇이라도 있다는 것일까.

지난달 26일 광장에 나갔다. 촛불행렬을 따라 줄줄이 걷는 그 길에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추모노래가 흘러나왔다. ‘하야가’를 부르고 퇴진을 외치던 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나도, 내 앞의 사람도, 내 옆의 사람도, 내 뒤의 사람도, 선뜻 따라 부르지 못했다. 양희은의 ‘상록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전인권의 ‘애국가’보다 더 먹먹한 선율. 감히 떼창도 할 수 없는 그 노래가 광장의 사람들을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과연 그러한가. 과연 그렇다고 나는 말할 수 있는가. 국가수장이 광장에 무릎 꿇고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는 한 우리가 함께 묻은 그 아이들은 영영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노래는 계속될 것이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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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낮이었다. 길을 걸으면서 한 낱말을 되뇌었다. 모르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처음 들은 말인 양 계속 중얼거렸다. 머금다, 머금고, 머금으며…. 그러다 그만 턱이 진 길에서 발을 헛디뎠다. 등에 배낭을 멘 채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두 무릎이 얼얼했다.

2014년 4월16일에 딸을 잃은 엄마로부터 “우리는 머금고 사는데…”라는 말을 듣고 헤어진 뒤였다. 그 말이 그렇게 힘들고 아픈 말일 줄 몰랐다.

그이는 ‘빈자리’도 말했다. 딸과 아들, 부부, 해서 늘 네 자리였다. 집에서 마주앉는 식탁에서도, 외식을 할 때도 네 자리. 그러나 그날 이후 다시는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생겼다. 빈자리는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다. 그 사람이 아니고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 사람의 자리, 딸 자리, 누나 자리, 친구 자리…. 모든 자리가 사라졌다. 딸아이와 의견이 달라 부딪쳐도 먹는 입맛이 비슷해 금방 풀고, 함께 옷을 사러 가는 일도 즐거웠다는데 이젠 그럴 자리가 없다. 무엇보다 딸에게 “네 꿈을 활짝 펼쳐나가라”며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일이 행복했건만 딸 자리를, 엄마 자리를 빼앗겼다.

6차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근처 경찰버스 차벽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희생된 아이들의 얼굴이 새겨진 보자기를 두른 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엄마는 ‘사소한 행복을 꿈꿨던 아이들’이라 말했다. 딸이 단짝과 함께 종이 가득 빽빽하게 적은 버킷리스트를 사람들에게 꼭 알리고 싶다고 했다. 사소한 행복을 꿈꾸던 아이들을 으스러뜨린 한국사회와 이 정부 모두에게.

한 아빠는 ‘가장 슬픈 사진’을 말했다. 스마트폰 대기화면에서 딸은 구명조끼를 입고 기다렸다. 차분했다. 당연히 구조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사진 속 학생들의 모습만 보아도 그때 거기, 구조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빠에게는 딸의 사진 가운데 가장 기쁜 사진과 가장 슬픈 사진이 있다 했는데 가장 슬픈 사진을 스마트폰 첫 화면에 담은 건, 어쩌다 잠시라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일까.

어떤 엄마는 자신에게 ‘전부였던 아이’를 말했다. 전부인 아이가 가고 나니 세상을 온통 다 잃은 듯하다 했다. 세상에 대고 아이를 자랑하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남이 흉볼까 나중에 더 크면 해야지, 미뤄두고 참았건만 그 자랑, 전부를 쏙 앗겼다.

다른 엄마는 ‘생일’을 말했다. 돌아온 딸의 생일, 너무 힘들었다 말하는데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실컷 울면 좀 나을까 싶지만, 어린 막내가 볼까 맘껏 울 수도 없었다. 한 해 365일 하루하루는 세월호에서 희생된 304명이 세상에 왔던 하루하루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전율’이라 말했다. 딸을 잃은 딸은 부모 앞에서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가 잠든 추모공원을 찾아가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을 하면서 울었다.” 그러고도 눈물이 차고 넘치는 날이면 딸은 새벽 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다 눈이 퉁퉁 부은 채 출근했다.

할머니가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의 그리움을 말했다. “17년을 살면서 식구들과 떨어져 지낸 게 길어야 하루 이틀이고, 그럴 때도 집에 오고 싶다고 그랬던 아이인데, 이렇게 오래 가족 곁을 떠나 얼마나 식구들이 보고 싶겠어요, 집에 오고 싶겠어요.” 언제든 왔다 가라고, 잠시라도 쉬었다 가라고 손녀의 방문을 늘 열어둔다. 책상도, 책상 위 컴퓨터도, 책꽂이의 책도, 좋아하던 기타도, 액자 속 사진도, 서랍장 안 즐겨 입던 초록빛 스웨터도 다 그대로다. 주인 없는 빈방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부르며 달려 들어올 듯한 방이다.

어느 엄마는 ‘이름’을 말했다. 불러도 대답하지 않을 게 분명한데 불러보고 싶다 했다. 2015년 3월30일 월요일 오후 7시39분,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맞은편 푸르메재단 앞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간 엄마, 아빠들이 몇 번이고 외쳤다. “내 새끼 보고 싶다!” 마지막 외침 뒤에는 다들 목메어 울었다.

지난주 토요일, 이제까지 가로막혔던 청와대 가는 길을 한 걸음 더 나아갔다. 304명을 구하지 않은 책임만으로도, 진실을 규명하라는 이들을 외면한 것만으로도 대통령은 옳지 않다. 6차 촛불집회, 여기저기 광장이 된 곳에서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박수정 |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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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믿었다. 김주열의 피로, 경무대 앞에서 쓰러진 학생들의 피로 4·19혁명이 이뤄졌다. 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자신의 몸을 불사른 많은 열사들의 피는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자유를 위해 비상해 본 사람이면 안다. 자유에는, 민주주의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는 걸.

어느새 아득한 시절이 돼 버린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절. 학교엔, 거리엔 화염병과 최루탄, 쇠파이프와 곤봉이 난무했다. 그걸 당연시했다. 이렇게 온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고는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믿었다.

요즘은 민주주의가 촛불을 먹고 자란다. 100만명, 200만명이 촛불을 들고 권력자를 쫓아내려는 집회와 행진을 이어가지만 경찰과의 충돌은 없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는 촛불 시민들의 구호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무서운 비난과 분노가 권력자를 향해 외쳐졌다. 그러나 그들 모두 어쨌거나 임기는 마쳤다. 이번에는 정치적 꼼수가 훤히 보이긴 하지만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말은 꺼내놓은 상태다. 화염병보다 촛불의 폭발력이 더 강하다.

6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한 새누리당 해체 요구 집회에서 시민들이 '4월 퇴진, 6월 조기대선'을 당론으로 채택, 탄핵 추진에 제동을 건 새누리당의 대형 깃발을 찢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서 현 상황을 명예혁명이라 부르는 이들도 많다. 명예혁명은 1688년 영국에서 무력충돌 없이 왕을 몰아낸 혁명을 말한다. 이 혁명은 국왕의 전횡에 맞서 의회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일으킨 반란이다. 입법권, 조세제정권 등 당시 의회가 쟁취한 권리와 자유가 일반 민중들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영국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가 되긴 했다. 하지만 혁명의 과실을 가장 많이 차지한 것은 의회의 주인인 귀족과 부자들이다.

무엇보다 명예혁명이라는 말은 혁명의 대상을 주인공으로 하는 명칭이다. 당시 영국 왕 제임스 2세는 새로 들어설 왕의 묵인 아래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도피할 수 있었다. 모름지기 혁명이라면 왕을 단두대나 교수대로 보내는 거지만 왕은 스스로 물러났고, 혁명세력도 쫓겨난 왕에게 살길을 열어줬다는 의미에서 명예혁명이라 불린다.

그러나 지금 거리의 촛불은 박 대통령에게 명예로운 퇴진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래서 지금 상황을 명예혁명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혁명의 대상이 아니라 혁명의 주체가 주인공이 되는 이번 혁명의 이름은 촛불혁명이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과 두 달여 전만 해도 현재 펼쳐지는 상황을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과연 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듯 촛불혁명은 우리 앞에 툭 떨어진 것일까. 아니다. 촛불혁명은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 수백명의 피, 메르스로 고통 속에 숨진 시민 수십명의 피, 경찰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피를 먹고 자랐다. 시민들은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보며 ‘이게 나라냐’고 절망했고, 남북관계를 일촉즉발의 위기로만 치닫게 하는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에 절망했고, 아버지를 미화하겠다는 ‘박근혜 국정교과서’에 절망했다. 쌓여만 가는 절망들이 결국 촛불혁명으로 폭발했다.

피와 절망으로 점철된 이 땅에서 우리는 그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을 뿐이다.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때 세월호에 타고 있지 않아서, 그때 메르스 감염자와 접촉하지 않아서 지금 살아 있다.

수많은 이들의 고통으로 차려진 밥상에 정치인들은 숟가락을 들고 쇄도하고 있다. 대선을 어느 시점에 치러야 유리한지 주판알을 굴리고, 누구 뒤에 줄을 서고 누구와 합종연횡해야 살아남을지 탐색하는 이들의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다. 본디 자기가 차린 밥상도 아닌데 독차지하겠다고 싸우고 있다. 밥상을 엎을 기세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새 대통령을 뽑겠다고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이 분노하는 것도 단지 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절망 때문만은 아니다. 근저에는 특권과 반칙의 늪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실망이 깔려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어처구니없는 일련의 사건들은 더욱 심각해지는 부의 양극화, 전혀 변하지 않는 권력과 재벌의 유착, 그리고 시류에 표변하는 하이에나 같은 언론과 검찰 등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상징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래서 촛불을 든 시민들은 다음 대통령이 아니라 이런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아달라고 요구한다.

밥상이나 엎지 마라. 그게 살아남은 자의 의무이고 최소한의 염치다. 지난 주말 거리를 비춘 232만개의 촛불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에게 주는 경고이기도 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또 다른 촛불혁명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김준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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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100m 앞까지 다가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세월호 사건 진실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구호도 외쳤다. 지난 3일 열린 6차 촛불집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시위는 사건 발생 이후 처음이다. 이날 전국에서 촛불을 든 230만 시민이 유가족들의 든든한 원군이었다. 전명선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그동안 한번도 못 온 곳인데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에 답변 한번도 없다. 그에 대한 사과, 꼭 받아내겠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박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일대에서 수백일간 농성을 하고 집회를 열었지만 경찰에 가로막혔다.

6차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근처 경찰버스 차벽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희생된 아이들의 얼굴이 새겨진 보자기를 두른 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박 대통령은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무성의와 외면으로 일관했다. 박 대통령은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을 찾아가 유가족들 앞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해내겠다며 눈물을 흘렸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유가족이 원하면 언제든지 면담을 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말뿐이었다. 사건 발생 한 달 뒤인 2014년 5월16일 유가족 대표와의 면담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유가족들을 사회적으로 따돌림하는 일에 골몰했고 세월호특별법과 특별조사위원회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유가족들의 마지막 바람이라 할 수 있는 세월호 선체 인양은 언제 이뤄질지 기약도 없다.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불가분의 관계다. 게이트 정점에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이 있다. 전 국민이 TV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보고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출근도 않고 숙소인 관저에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참모들도 공범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이 짧게는 3분, 평균 20분 간격으로 쉼없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그랬다는 박 대통령은 7시간 만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하는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을 보면 김 전 실장은 ‘대리기사 폭행’ 건에 검찰의 엄정 수사를 주문하는 등 유가족과 야당 의원을 범죄자로 내몰아 상황의 반전을 꾀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박 대통령의 7시간 의혹도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판단이다. 유가족들의 한과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해소하지 못하는 수사는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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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올려다보기도 힘들 만큼 고압적인 광화문이 그토록 처연한 모습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귀를 때리는 스피커의 울림이 멀리 보이는 화면과 전혀 맞지 않는, 각자의 외침과 노랫소리가 100만, 혹은 200만의 인파와 함께 뒤엉기는 혼돈 속에서 문득 치밀어 올라온 것은 깊은 서러움이었다. 내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 광장을 메운 낯선 이들을 이곳으로 불러낸 것도 이런 서러움이며, 그들도 지금 목이 메고 있을까. 문득 스피커에서는 ‘길가에 버려지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광장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는 점이다. 분노는 강력하나 일시적이고 이토록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다. 이토록 철저하게 질서있고, 차갑도록 뒷정리에 신경을 쓰며, 가족과 함께 유모차를 밀고 오게 하는 힘은 분노는 결코 아닐 것이다. 바람이 불면 꺼지는 분노보다도 훨씬 더 서늘하게 깊고 무거운 그 무엇일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버려진’ 서러움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유전자에 각인될 정도로 소소한 일상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는 국가, 좌측통행을 어느날 우측통행으로 바꿀 수 있으며 조의금을 얼마나 주고받을 수 있는지까지 결정해주는 국가, ‘한강의 기적’을 이끄는 엔진이었으며 사회경제 모든 분야를 베 짜듯이 효율적으로 지휘하는 국가. 그 국가가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한낱 홑이불 뭉치에 불과했다는 자각이야말로 이 상실감과 서러움의 원인이 아닐까. 경외하면서도 미워하고, 그 무능함에 치를 떨면서도 그 존재를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던 국가가 사실은 한번도 ‘거기 없었다’는 사실이 이 열패감의 원인이 아닐까.

26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서울 도심인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석우 기자

이런 ‘버려진 서러움’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다만 세월호 참사나 백남기 농민을 잃는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가 실패하였다고 생각했다. 메르스 창궐이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국가가 시민들의 생명권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개성공단 폐쇄에서, 그리고 각종 사안들에서 국가가 시민들의 말을 듣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 공적 과정으로 국가가 ‘부재’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서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던지는 물음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며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정치적이라 함은 법적 책임을 묻는 지점을 넘어선다는 의미이고, 포괄적이라 함은 청와대를 넘어서서 국가와 사회 전반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는 의미이다.

청와대의 법적 책임은 물론 ‘입증의 책무’(onus probandi)를 진 검찰과 특검이 범법을 확증할 수 있는 지점까지만 한정될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법정에서 가려질 법적 책임과는 달리 청와대와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은 스스로의 결백과 여러 의사 결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국민과 동맹국가들에 납득시켜야 하는 또 다른 무겁고 지난한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 조사나 특검이 책임질 법적 절차 못지않게 중요하고 의미있게 지켜보고 평가해야 할 것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의 다른 축인 국회가 밟게 될 국정조사 과정이다. 나는 대통령의 사임이나 탄핵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명백하고 정직하게 밝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제2, 제3의 ‘박근혜 정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광장이 제기하는 문제들의 근본적인 포괄성은 청와대의 범위를 넘어서 정부와 정당,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거버넌스 구조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국정농단’이라는 편리한 말로 뭉뚱그려지는 결과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특정 사익 집단이 어떤 경로로 공적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었고, 어떻게 공당(公黨)과 의회와 사회집단이라는 저지선을 돌파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재벌과의 상호침투가 가능했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이 편리하게도 준비하고 있는 ‘개헌’이라는 답변은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손쉬운 해답일 따름이다.

이러한 일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당장 손쉬운 대답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광장을 메웠던 사람들이 많이 했던 말이 이러한 나라를 아들딸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는 바람이었던 것처럼 광장은 과연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물을 것이며, 끊임없이 찾으려 할 것이다. 마치 ‘길가에 버려지다’가 이렇게 노래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의지에 날개가 돋아서/ 정의의 비상구라도 찾을 수 있길.”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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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민심과 국민 여론은 거듭 대통령의 하야다. 하지만 대통령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헌법을 무기로 대통령이 국민을 이기겠다고 작정했다는 뜻이다. 선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마지막 가능성으로 남았던 대통령의 정치는 완료됐으며 명예혁명과 망명을 운운했던 일각의 로망은 소멸했다. 남은 것은 국회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다. 국회의 정치는 이제 외길로 보인다. 탄핵을 가결하고 헌법재판소로 가는 길, 대통령의 헌법과 국회의 헌법이 맞붙는 막다른 길이다. 반면 시민의 정치는 이 길과 함께 또 다른 길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사문화된 원칙을 되살려 엘리트 독과점 정치의 대의 민주제를 넘어서겠다는 국민혁명의 길이다.

날마다 특종과 속보와 가십성 뉴스가 홍수를 이루지만 국민은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지 않는다. 대통령의 하야를 마땅하게 여기는 민심은 하야한들 지난한 탄핵으로 간들 그다음이 마땅치 못한 이 난국을 냉정하고 차분하게 직시하고 있다. 국민은 마음속에서 대통령을 지웠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과 처벌은 응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가 무엇을 위해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만들 것인가이다. 초겨울의 주말문화이자 저녁문화가 된 광장 행렬이 100만 촛불을 켜면 때맞춰 청와대 실내등이 꺼지고 경복궁과 북악산이 깜깜해지는 광경은 우연이 아니다.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을 교차하는 이 빛과 어둠의 대비는 국민 저마다의 간절한 ‘보디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거대한 ‘미디어 아트’다.

이 ‘국민예술’이 열망하는 국회의 정치는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의 4대 국정과제를 사사로운 먹잇감으로 갈취한 ‘비선 실세’의 공범들과 이들을 공권력으로 뒷바라지한 국가 시스템의 적폐를 대청소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진 국회를 정당득표 연동 비례대표제를 통해 일신하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탄핵 정국을 경과하는 동안 국회의 정치가 보여줘야 할 기본이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고 대통령 선거로 가서 차기정부가 하겠노라 공약한들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민심은 안다. 51%로 당선된 대통령을 95%가 마음에서 버리게 된 국민의 자괴감은 더 이상 무력감이나 패배감이 아니라 새 판 짜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집단지성의 장기전으로 가고 있다.

이 점에서 민심의 향배를 요약하면 이렇지 않을까 한다. 못 볼 것의 끝을 끝내 보았다, 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는 데까지 왔다, 그리고 이 몹쓸 사태를 단숨에 정리할 방법을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국회는 죄인의 심정으로 탄핵의 외길에서 입법, 행정, 사법, 헌법재판, 선거관리에 이르는 헌법기관 전체의 정상화를 위한 대장정에 그 어떤 지름길도 샛길도 없음을 직시하고 국가 대개조의 가시밭길을 정직하게 걸어가라고 말이다. 이렇게 국민과 소통하며 탄핵 정국이 일단락되어야 대통령 선거가 의미를 갖는다.

시민의 정치는 국회의 정치를 견인하되 따로 가야 할 길이 있다. 그것은 100만 촛불이 부른 그 노래의 후렴구 그대로다. “후회 없이 꿈을 꾸겠다 말해요”이고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이다. 이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소설가 부희령은 “오래오래 광장을 지킬 수 있으면 되는 거”라 믿지만 그러기 위해선 “촛불이 꺼지면 언제든지 옆 사람에게 붙여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강풍이 불고 한파가 와도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국민과 함께 만들 공적 주체는 누구일까. 이 난국에도 국민의 일상과 안전을 책임지는 최후의 헌법기관, 바로 전국 17개 광역 지방정부와 의회이며 228개 기초 지방정부와 의회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국민은 경험했다. 중앙권력의 갑질 횡포에 위축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지만 주민자치를 위해 깨알같이 많은 일을 해 왔으며 특히 위기 때 국민이 믿고 의지할 언덕이 되었던 공공이 누구였는지 말이다. 그 지방정부와 의회가 전국 각지에 한겨울의 촛불 민심을 환대하는 공간을 마련한다면, 시민의 정치는 겨울밤 내내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천일야화를 이어갈 것이다. 이 천일야화를 통해 헌법을 공부하고 민주주의 교과서를 집필하며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행복한 나라를 후회 없이 꿈꿀 수 있어야 한다. 대중문화 평론가 황진미의 통찰대로 “허깨비가 사라진 이후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꿈꾸는 것”이야말로 시민의 정치가 갖는 힘이자 국민혁명을 만들어가는 길이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이라면 국회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를 연결하는 플랫폼은 대통령이나 중앙정부가 아니라 충분한 권력을 가진 지방자치의 각양각색 정치여야 할 것이다.

내년이면 6월 국민항쟁 30년이다. 그 사이에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여섯 명의 대통령을 뽑았다. 국민이 원하는 바는 일곱번째 대통령을 뽑기 전에 헌법 제1조의 원칙이 살아 숨 쉬는 민주공화국을 맘껏 꿈꾸는 일이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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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지난 한 주 트위터 사용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촛불 여론을 폄훼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에 대한 분노도 높았다.

트위터코리아가 다음소프트와 함께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트위터상에서 가장 이슈가 된 핫 키워드들 중 주목할 만한 단어를 분석해 22일 발표했다.

지난 한 주간 언급량이 가장 많았던 단어는 <그것이 알고 싶다>였다. 19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이 밝혀지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을 다루며 19%에 달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주요 방송 내용을 공유하며 줄기세포 시술 의혹과 7시간의 행적이 철저히 밝혀지기를 촉구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이름은 두번째로 많이 언급됐다. 김 의원은 지난 17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꺼지게 돼 있다”고 발언해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김 의원의 지역구인 춘천 트위터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트윗이 급증하기도 했다.

올해 첫 가요계 시상식인 ‘멜론뮤직어워드’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미국 대선’ 이슈를 제외하면 비정치적인 키워드가 순위에 이름을 올린 것은 처음이다. 트위터 내에서 평소 인기가 높은 엑소,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등 인기 뮤지션들이 주요 부문에서의 수상을 위해 참석하면서 젊은층 이용자들의 트윗이 집중됐다.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강행도 주요 이슈였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등 야권 인사들은 트위터를 통해 정부의 독단적인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일반 이용자들은 국방부 대변인실 계정을 언급한 비판 글을 다수 게재하기도 했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도 자주 언급됐다. 많은 이용자들은 상식을 벗어난 맹목적인 지지를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으나, 일부는 이들의 정치적 견해 표명 역시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논쟁을 벌였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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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위가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장면들의 한 주인공은 10대들이다. 그들은 이번 시위에서 최초이자 거의 유일하게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급진적인 성인들도 꺼렸을 단어를 그들은 거리낌없이 내걸었고, 이 싸움이 박근혜 퇴진을 넘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임을 환기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감동할 것 하나를 빠트린 듯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걸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가 가르친 건 이 고약한 자본 체제에서 나만 살아남는 법이었고, 그들의 미래를 위한 최선이라 믿었다. 그런데 혁명이라니, 세상에. 나는 잠시 어쭙잖은 감회에 젖는다.

15년 전 어느 날, 불현듯 나는 한국의 아이들이 전에 없던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발견했다. 동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일제히 사라졌다는 것과 함께 늘 이어오던 중요한 가르침이 일제히 중단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하지만 공부만 잘한다고 훌륭한 사람 되는 건 아니다.’ ‘돈 많이 벌면 좋지. 하지만 사람이 돈만 알면 죄 받는 법이란다.’ 상하좌우를 막론하고 제정신을 가진 어른이라면 으레 아이에게 거듭하던 가르침이었다. 한국 교육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아니라 ‘얼마짜리가 되는가’에 관한 일이 되면서 가르침은 사라졌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죄책감을 물리치기 어려웠고, 어린이 책 출판과는 전혀 무관하던 나는 ‘고래가그랬어’를 만들게 되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2014년 ‘고그’(아이들은 ‘고래가그랬어’를 이렇게 부른다)의 지면 개편은 전에 없이 심각했다. 고그는 ‘어린이 교양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아이들에게 직접 강의하는 방식의 콘텐츠는 지양해왔다. 학과 공부에 짓눌린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공부거리를 만들어줄 게 아니라, 함께 놀며 느끼는 동무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이 원칙을 재고하게 했다. 동료들과 나는 ‘그들은 왜 가만있었을까’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즈음 방한한 놀이터 연구가 귄터 벨치히는 우리에게 ‘독일 학생들이라면 절대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고, 대부분 생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의 실종이 아이들의 목숨마저 위협하는 긴급한 현실에서 고그의 원칙은 지나치게 낭만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조기 교육을 해야 할 건 영어도 수학도 아닌 민주주의였다. 사회, 경제, 역사, 과학, 생태 등 전문가들의 흔쾌한 참여로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라는 이름의 지면 강의 섹션이 생겨났다.

옛 혁명가들이 파업을 ‘노동자의 정치학교’라 일컬었듯, 시위는 ‘시민의 민주주의 학교’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순간 전국 도처의 공간에서 각양각색의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자치적 민주주의 학교를 목격한다. 이번 시위는 고질적인 진영 논리를 넘어서 합리적 성향의 보수 시민들까지 참여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늘 시민들의 일반적 의식 수준과는 워낙 동떨어진 1970년대의 망령이 부활한 사건이다 보니 생긴 역설적 현상이다. 덕분에 시위는 왕의 목을 잘라본 경험이 없고, 스스로 공화정을 만들지 못한 탓에 살아남아 내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전근대적 병증들을 치유하는 학교 노릇을 하게 되었다.

이 시위가 갖는 또 하나 각별한 의미는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태어나 거의 처음으로 무기력한 각자도생의 태도를 벗어난 어른들을, 나와 내 새끼를 넘어 ‘사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며 함께 싸우는 어른들을 보고 있다. 시민의 민주주의 학교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민주주의 학교가 되고 있다. 이 귀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좀 더 긴장하고 좀 더 성찰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교육에 대한 전향적 태도 변화를, 교육을 아이가 ‘얼마짜리가 되는가’에 관한 일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관한 일로 바로잡는 일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이 시위에서 갖는 자부와 희열만큼이나, 이 시위가 배제한 시위와 배제된 사람들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주요한 노동 의제를 가진 시위에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참여했던가. 우리는 단지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동정하지 않은 게 아니라, 대다수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싸움을 외면해왔다. 우리는 시위의 방식을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외면했다. 가장 간절하게 평화 시위를 원하는 사람들은 까마득한 고공이나 길바닥에서 몇달 몇년을 먹고 자며 싸워야만 하는 사람들과, ‘폭력적’이라 손가락질받으면서도 공권력과 격렬히 충돌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왔다. 10대들은 이미 ‘비폭력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위는 시민의 민주주의 학교이자 아이들의 민주주의 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학교는 시위의 시간을 넘어 지속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학교는 상당 기간 사회와 사회 성원의 가장 중요한 일이자 사명이어야 한다. 민주주의 학교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아가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힘과 지혜를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 민주주의 학교는 가급적 평화로워야 한다. 그러나 평화의 진열이 민주주의 학교의 목적은 아니다. 민주주의 학교의 목적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 혁명이어야 한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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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2016년 가을을 ‘사기꾼들의 전성시대’로 기록할 것이다. 미국에서 사기꾼들이 최고의 호경기를 누렸던 때는 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의 재임 기간이었다. 금시장을 공황 상태에 빠뜨렸던 ‘검은 금요일’과 대통령의 개인 비서 등이 정부 돈 수백만달러를 빼내 썼던 ‘위스키 링’ 추문은 모두 그랜트의 비호 또는 묵인 아래 발생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그랜트주의’는 무능, 부패, 담합, 족벌주의, 정실인사가 버무려진 ‘잡탕 스캔들’을 상징한다. ‘그랜트주의’는 내년부터는 ‘트럼프주의’에 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 역사상 가장 자질이 떨어지는 대통령을 주연으로 캐스팅한 막장 드라마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의 막장 드라마는 종영을 앞두고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대통령과 호위무사들은 지금 물러나는 건 무책임하다며 하야를 원한다면 탄핵하라고 뻔뻔하게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 달리 이 드라마가 그리 오래갈 것 같진 않다. 감춰진 진실이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지만, 이미 밝혀진 것만으로도 대통령 자격은 이미 박탈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 핵심부의 추악한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국정개입은 루머라더니 ‘수사 대비 지침서’를 만들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려 했다는 물증까지 드러났다.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는 대통령과 그의 수하들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민심은 철저하게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렸고 국민의 분노와 인내심도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그들은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시간을 벌려 하겠지만, 결국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민들을 능멸한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그들의 단죄만이 아니다. 해야 할 질문이 많다. ‘박근혜·최순실’이 다시는 출현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들의 전횡을 알면서도 눈을 감았던 세력의 책임 추궁은 어떻게 해야 하나. 대통령 퇴진 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 대한민국은 과연 달라질 것인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대통령 개인의 자질 부족이나 ‘비선 실세’들의 불장난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붕괴는 박정희 패러다임이 지배해왔던 구체제의 해체’라는 최장집 교수의 진단에 주목하게 된다. 미국에 ‘그랜트주의’가 있다면, 한국에서는 아직도 ‘박정희주의’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인데, 누구나 알고 있듯이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패러다임’을 관철시키는 가장 충실한 아바타였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구체제가 해체되는 자리에 나라다운 나라의 비전을 세우는 일이다. ‘박정희 패러다임’이 상징하는 구체제는 단순히 ‘견제받지 않는 권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패 스캔들로 점철된 ‘그랜트주의’와도 다르다. 최장집 교수는 국가와 재벌 대기업의 동맹, 노동 시민권의 부정, 자유로운 시민사회 억압, 지역 권력 분산 금지, 반공의식과 국가주의 이념 주입 등을 꼽았다. 어디 그뿐이랴. ‘경제발전이라면 공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던 경제 제국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비전은 소수의 정치인들과 엘리트만이 아니라 국민들이 함께 그려나가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나라의 비전이 ‘존중 사회’였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노동 존중, 생명 존중, 평화 존중, 인권 존중, 문화 존중을 기본으로 하는 ‘복지국가’를 우리가 가야 할 이정표로 삼는 것이다. ‘존중’을 기본으로 하는 복지국가의 틀 내에서라면 경제 양극화가 신분사회의 고착을 만들어내는 반헌법적인 질서도 금세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잃어버린 진실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세월호 진실규명과 국정교과서 철회 등 ‘비정상의 정상화’ 말이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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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변호인 선임을 계기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기존 태도를 갑자기 바꿨다. 그동안 민심에 정면으로 맞서기를 피하며 눈치 보던 박 대통령이 구차한 이유로 검찰 수사를 미루면서 반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 때맞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친박 세력도 대통령 옹호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위기 때마다 동원했던 박 대통령의 수법 그대로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과 백남기 농민의 사망 등 자신에게 불리한 사태가 발생하면 버티면서 책임을 회피해왔다. 야당과 전 정권에 책임을 돌리기 일쑤였고, 여의치 않으면 색깔론을 제기해 지지자들의 결집을 꾀했다. 문제 해결을 미룬 채 소모적 갈등을 불러일으킨 뒤 시민들이 피로감을 느낀다는 핑계로 덮고 넘어가려 했다. 여당과 지지자들은 이런 박 대통령을 타협하지 않는 원칙론자로 포장했다. 그 결과 세월호 유족들은 거리에서 세번째 겨울을 보내게 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통하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 17일 (출처: 경향신문DB)

박 대통령의 행동은 이미 법과 상식을 벗어난 지 오래다. 박 대통령의 온갖 주문에 봉사해온 검찰조차 박 대통령의 불법 행위 입증을 자신하는 판이다. 그런데 어제 박 대통령은 부산 엘시티 사건에 대해 김현웅 법무장관에게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신속, 철저하게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할 것”을 지시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자금이 여야 정치인과 공직자들에게 뇌물로 제공됐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며 표적까지 지정해줬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현직 대통령이 사돈 남 말 하듯 하는, 정말 몰상식하고 후안무치한 발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박 대통령의 리더십 회복이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사를 일시적으로 피하고 버틴다고 반전될 상황은 이미 지났다는 점을 박 대통령이 받아들여야 한다. 박 대통령이 임기를 다 마치겠다는 것은 국가적인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정은 마비 상태를 넘어 파탄으로 갈 게 불 보듯 뻔하다. 여당은 분열하다 존재감을 잃을 것이고 야당과 시민은 거리로 나서고, 국회는 파행되고 공직자들은 일손을 놓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라앉는 경제와 민생은 누가 챙길 것인가. 20대 지지율이 0%인 군 통수권자가 60만 장병을 지휘하는데 안보인들 튼튼해질 리 없다. 한반도 불안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박 대통령이 나설수록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박 대통령이 1년3개월간 버틴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포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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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국가의 행위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중·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웠던 사회계약설의 개념이다. 사회계약설은 계몽사상의 핵심 논리로 근대 민주주의 사회를 형성하는 기반이 됐다. 구태여 사회계약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적어도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에서 그런 믿음을 저버리는 국가의 행위가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국가’의 이름을 내세운 정치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탄압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나치 독일이나 군국주의 일본이 그러했으며, 3대 세습체제인 북한도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행위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1970년대 유신체제하에서 우리도 그런 경험을 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던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또다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잃게 된다.

9월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사망 국가폭력 규탄 시국선언’에서 백씨의 둘째딸 민주화씨가 발언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세월호 사건에서, 백남기씨 사망에서 우리는 이런 현실을 본다. 많은 시민이 TV 화면으로 지켜보는 앞에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월호 배 안에 갇혀서 목숨을 잃었다. 사고신고 접수 후부터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2시간 이상의 시간이 있었으며 침몰 후에도 당일에는 상당수 생존자가 배 안에 갇혀있을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국가는 거의 손을 쓰지 못했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는 의식을 찾지 못한 채 317일 동안 병원에서 투병하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상당수 시민들에게 공권력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의법 조치도 할 수 있다는 위협이 그러하다.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황교안 총리는 “의혹은 누구나 얘기할 수 있으나 의혹제기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했다.

이제 국민은 정부와 관련된 문제라면 이해가 가지 않거나 의심할 만한 일이 생겨도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으면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가에 의해 법적 조치를 당할 수도 있다. 정부 정책과 의견을 달리하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1970년대 포장마차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정부를 비판하다가 공안당국에 끌려갔다는 사건을 연상시킨다.

사실 사회계약설과는 달리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반드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국가가 잘못된 정책을 시행하거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지만, 어쩌다 그런 잘못을 했다고 해서 국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사상으로 일컬어지는 사회계약설은 현실에는 적용되지 않는 그저 ‘이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가 그런 잘못을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밝혀야 한다. 그렇지만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무엇인지, 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승객을 구조하지 못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사건의 책임 소재도 불투명하다. 그저 승객을 내버려둔 채 탈출한 선원들과 선박회사, 현장 구조를 효과적으로 하지 못한 해경의 책임만 물었을 뿐이다. 백남기씨가 시위 도중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병원에 갔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목격했으며 영상으로도 남아 있다. 병원의 진료기록에서도 ‘외상성 뇌출혈’을 선행 사인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원인 규명은 사건을 불러일으킨 시위 진압 방식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 문제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채 고인의 부검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위진압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논의도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세월호나 백남기씨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시민들을 국가는 다시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억누르는 악순환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국가는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 ‘국가’의 이름을 내건 정부는 자신과 이념이나 노선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보호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적대시한다. 국민들에게 국가에 보호를 요구할 수 있는 ‘시민’이 아니라 국가의 눈치를 보는 ‘신민’이 되기를 요구한다. 정부가 그토록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를 이룬 근간인 시민적 권리는 그저 교과서 안에 나오는 책상 지식으로 전락한다. 국가가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함께 사라진다.

김한종 |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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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고창석,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아직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대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진도 앞바다, 차가운 맹골수로에 갇혀버린 그대들의 꿈을 생각합니다. 4월16일, 슬프고 잔인했던 그 봄날을 다시 맞습니다. 노란 리본을 꺼내어 가슴에 달아봅니다. 리본 다는 손이 이내 부끄러워집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지나 또 한 번의 봄을 맞기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요.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 국가의 무능, 정부의 부재

2014년 4월16일, 그날의 풍경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TV 화면 속 대형 여객선은 기울고 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온 나라가 두 눈 뜨고 지켜보는데 곧 모두 구조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대참사, 대재앙을 눈앞에 둔 줄도 모르고 편안히 점심을 먹었습니다. 상식은 그러나 배반당했습니다. 선장은 퇴선 명령이나 구호조치 없이 도망쳤습니다. 승객은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따르다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구조·수습 과정에서는 국가 위기관리 능력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발생 7시간이 다 되도록 회의를 주재하거나 대면보고를 받지 않았습니다. 해경은 사고 해역에 도착하고도 선체 진입 등 적극적 구조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탑승·구조·희생자 집계는 발표와 수정을 거듭하며 혼선을 빚었습니다. 정부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 복지를 책임지는 대가로 통치권을 행사합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실질적 의미의 정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공무원들만 우왕좌왕했을 뿐입니다. 결국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304명 가운데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했습니다. 절망한 가족, 분노한 시민은 묻고 또 물었습니다. 이것이 나라인가, 이것이 국가인가를.

고통과 탄식 속에서 자성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부터 필부필부에 이르기까지 눈물 흘리며 ‘4·16 이후’를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시간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했습니다.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과 효율을 중시했던 사회를 밑동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잠시였습니다. 분향소에서 국화꽃 한 송이 바치려 기다리던 대열이 어느 결에 줄었습니다. 애통의 자리엔 야만이 똬리를 틀었습니다. ‘세월호 피로증’을 언급하며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하는 가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으로 조롱하는 이도 나타났습니다. “진상규명에 유족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던 대통령은 40일 넘게 곡기 끊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에게 위로 한마디 건네지 않았습니다. ‘안전 대한민국’이 멀어져간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관피아(관료+마피아)’가 빠진 자리엔 ‘정피아(정치인+마피아)’가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고양종합터미널과 장성 요양병원에서 불이 나고, 판교에선 환풍구가 무너졌으며, 베링해에선 오룡호가 침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결과는 참혹합니다.

그러나 희망의 여린 싹도 보았습니다. 오로지 진실을 캐내기 위해 거리에 선 세월호 가족들이 그 증거입니다. 국가의 무능과 정치의 부재 속에 온갖 고통과 비난을 감내하며 싸워온 이들에게서 인간적 존엄을 보았습니다. 이들의 아픔에 공감한 시민 600여만명이 특별법 제정 요구 서명운동에 참여했고, 수만명이 서울 광화문에서, 혹은 각자의 일터에서 동조단식에 참여했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킨 사람들이며, 슬픔과 분노를 개개인의 각성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입니다. 살아남은 이들의 책임을 다하는 실천가들입니다.


■ 바닷속 잠긴 진실 인양해야


문제는 다시 국가요, 정부일 것입니다. 정부는 사랑하는 혈육을 잃은 사람들에게 돈봉투를 들이밉니다. 진상규명에 절실한 선체 인양에 대해선 자꾸 말을 바꿉니다. 박 대통령이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인양의 위험과 실패 가능성을 충분히 알리고서 결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세월호 가족이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어제 “원만한 해결”을 지시했으나 정부와 새누리당은 ‘부분 수정’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집회에 나선 유가족에게 최루액을 뿌리더니, 오늘 열리는 추모집회엔 차벽을 설치하겠다고 공언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1주기인 오늘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납니다. 참으로 낯두꺼운 정부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목숨을 잃은 304명과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어느 누구도 세월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깊은 바닷속에 잠긴 진실을 인양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라틴어 사전에서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라고 합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 다시 약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 선 자리에서 약속을 이행해야 합니다. 선체를 인양하고 진상을 파헤치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시민뿐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형’임을 잊어선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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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내가 세월호인 것이다. 내가 바로 차디찬 바다로 가라앉으며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은 ‘부실한 배’였던 거다. 그러지 않고선 목련과 벚꽃을 피우는 이 따스한 봄날의 햇살 아래서도 이리 추울 리가 없다.

‘4·16’을 여드레 앞둔 지난 8일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세월호 북콘서트’가 열렸다. 유가족들의 육성기록을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란 책을 갖고 유가족과 선생과 학생들이 모여 앉아 세월호 참사 1년을 되짚어보고 앞날의 과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북콘서트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두 시간 넘게 진행됐다. 1부에서는 선생과 학생과 인권운동가를, 2부에서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출간에 참여한 유가족과 작가를 모셔 이야기를 들었다. 1부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1년은 ‘참사’란 말의 의미를 실감한 시간이었다고, 배가 침몰해 수많은 아이들이 생명을 잃은 그 자체가 참사가 아님을 알았다고, 진짜 참사는 사랑하는 아이를 잃고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조차 모멸하고 괄시하는 이 나라와 사회의 작동원리였다고. 그리고 그 작동원리는 바로 ‘돈귀신’이라고. 너나없이 돈에 홀려 그것이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하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생각과 행동방식이라고.

2부에서 나눈 이야기는 이러했다. 뭐든지 양보하며 괜찮다고 했던 대책없는 긍정 마인드의 아이가 죽은 것이라고. 그래서 더욱더 슬프다고. 아니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괜찮지 않은 세상에 살게 해놓고선 괜찮다는 말을 하게 한 내가, 우리가, 이 사회가 죽인 것임을 알았다고. 자신의 꿈은 결코 양보하지 않았던 그 아이의 꿈을 살려주지 못한 내가, 우리가, 이 사회가 너무나 원망스럽다고. 아직 진상규명도 안됐고, 아직 아이들을 찾지 못한 이들이 있는데도 배·보상금이란 이름으로 돈을 꺼내 흔들며 “이제 그만 잊으라” 하는 ‘그들’은 대체 어떤 사람인 것이냐고, 아니, 사람이기는 한 것이냐고.

이 이야기들을 들으며 든 생각이 바로 ‘내가 세월호인 것이다’였다. 그리고 추워졌던 거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 학생들에게 사죄했다. 부실한 배를 방치하고 여러분들을 싣고 바다로 나가게 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죄송스럽다고. 앞으로는 그리 살지 않겠다고. 괜찮지 않은 세상을 ‘현실’이란 이름으로,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억측으로 ‘이리 가야 해, 저리 가야 해’ 하는 어른으로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좀 도와달라고, 형편없는 어른이 되지 않게 지켜봐주고 이끌어달라고 뻔뻔한 부탁까지 했다. 선생들끼리 그런 마음을 담아 성명서란 이름의 ‘반성문’도 만들어 발표했다.

촛불 들고 듣는 세월호 이야기 (출처 : 경향DB)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부끄러움이, 죄스러움이 밀려왔다. 이런 저런 말로 정치와 세상을 탓하고 간혹 행진하고 광장에 나가기도 했지만, 내 삶의 현장에서 무엇을 얼마나 바꿔냈을까. 아니, 바꿔내려고 노력했을까. 여전히 더 많은 손님과 화물을 싣기 위해 평형수마저 빼낸 채 탐욕의 출항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사 그것은 아니라고 해도 또다시 어쩔 수 없어, 괜찮아, 다들 그리 살고 있잖아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런 물음의 형태를 취하는 것마저 비겁한 것이다. 분명 그리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도,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은 ‘방법’을 몰라 그런 거야. 누가 방법을 알려주면 달라질 거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은 그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혹은 달리 방법이 있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그리했다. 방법은 이문재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오래된 기도’에 있다.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되고, 꽃진 자리에서 지난 봄을 떠올리기만 해도 되고,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되는 그런 기도를 모른 척하며 딴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바로 세월호임을 알아채지 못했고, 내 자신부터 바꾸면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거다. 그래서 한 달 중 하루라도 빼서 참사를 기억할 언어와 반복하지 않게 할 대책을 뭇사람들과 함께 찾아보는 일조차 하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또다시, 나야말로 세월호인 것이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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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2044년 4월, 한국 국민들의 눈이 뉴스 화면으로 쏠렸다. 아나운서가 흥분한 목소리로 인양 장면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네, 드디어 선체가 인양되고 있습니다. 오랜 수색에도 찾지 못했던 실종자의 유해가 배 안에 있을지, 또 침몰 원인도 규명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2014년 304명의 희생자를 내며 침몰했던 세월호는 그 뒤 무려 30년간을 차가운 바닷속에 있다가 햇빛을 봤다.

“할아버지, 당시엔 인양 기술이 없었나 봐요? 이제야 배를 꺼내는 걸 보면.”

14살 손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줬다. “그렇지 않아. 기술은 충분했단다. 다만 당시 정부가 인양에 적극적이지 않았어.”

손자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아니, 왜요? 배를 꺼내야 사고 원인을 규명하지 않나요?”

손자의 당연한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래. 하지만 정부는 진상규명을 원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오히려 세월호 사고를 그저 교통사고쯤으로 축소하려고 했으니까.”

손자가 되물었다.

“할아버지 생각은 어떤데요? 그게 정말 교통사고인가요?”

“세월호 침몰 자체는 교통사고로 볼 수도 있지. 그런데 말이다, 달리던 버스가 사고가 났는데 운전자는 물론이고 그 뒤에 온 경찰이 승객들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고 해보자. 그 뒤 버스가 폭발해 모두 죽었다면, 그걸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불러도 될까?

손자는 어이없어했다. 그게 도대체 말이나 되느냐고.

“세월호 사고가 바로 그랬어. 사고 당시 선장과 선원들은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반복했거든.”

손자가 바로 반박했다. “정말요. 선장이 판단을 잘못한 모양이네요. 하지만 해경이 왔을 거 아니에요. 그들은 왜 승객들을 대피시키지 않았죠?”

“믿기 어렵겠지만.” 난 차 한 잔을 마신 후 말을 이었다. 당시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 구조선은 배에 들어가 승객들한테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그 대신 조타실로 가서 팬티 차림의 선장과 선원들만 구조했다고. 날 닮아 작은 손자의 눈이 일반인 수준으로 커졌다. “선원들만 구조했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그뿐이 아니야. 국방부 자료를 보면 해경은 해군의 최정예 잠수요원인 SSU 대원과 해군 특수부대(UDT) 요원이 도와주겠다는 걸 거절해. 또한 사고 직후 미군 소속 헬기 2대가 돕겠다고 왔지만 역시 해경의 거부로 그냥 돌아가지. 그뿐이 아니야. 구조작업을 돕는다고 전국에서 민간 잠수사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들의 도움 역시 거절해.”

손자의 얼굴이 분노로 바뀌었다.


“해경은 도대체 왜 그랬대요? 세월호 승객들을 구하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었나요?”

“이것도 믿기 어렵겠지만.” 난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그 시절의 법은 사고가 났을 때 민간업체가 구조를 담당하도록 돼 있었어. 배가 침몰하면 회사가 구난업체를 선정해 구조를 부탁하는 것이지. 구난업체는 구조를 해야 돈을 버는데, 그 당시 해경은 ‘언딘’이라는 업체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단다. 그래서 해경은 언딘이 오기 전까지는 다른 누구도 구조에 뛰어들지 못하게 했던 거야.

그 뒤 이 말을 덧붙였다. 마땅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은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무려 7시간여 동안 행적을 감췄다고.

“그럼 국민들은요?”

말도 안 된다면서 혼자 분을 삭이던 손자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런 걸 가지고 교통사고로 우기는 정부를 그냥 보고만 있었나요?”

국민 얘기를 하려니 갑자기 가슴이 갑갑해졌다.

슬프게도 우리 국민들은 세월호 유족들을 적대시했어. 죽은 자식을 이용해서 한몫을 챙기려 든다고. 사실 유족들이 원한 것은 진상규명이었는데 말이야. 세월호 사건 후 한 달 반 만에 지방선거가 치러졌거든? 거기서 여당이 압승을 해요. 그 후에 있었던 재·보선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이에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유족들을 대놓고 무시했지. 한 번만 만나달라고 사정해도 대통령은 듣지 않았으니까. 진상규명 특별법도 마지못해 통과시키기는 했지만, 아무 의미도 없었어.”

손자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니까 지금 세월호가 30년 만에 인양이 되는 것은 35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탓도 있는 거네요.”

난 씁쓸히 웃었다.

“그렇지. 그나마도 인양비를 국민성금으로 모았으니 망정이지, 세금으로 한다고 했으면 쉽지 않았을 거야. 그래도 다행이지. 내 살아생전 세월호가 인양되는 광경을 볼 수 있어서. 저승에서 그 학생들을 만나도 조금은 덜 미안할 것 같아.”

손자는 내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는 정말 야만의 시대를 사셨군요. 우리 역사지만, 정말 부끄럽네요.

나도 말없이 손자의 손을 잡았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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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지난해 8월 한국을 찾아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또다시 세월호 문제를 거론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 만난 자리에서다. 교황은 첫 질문으로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한다. 교황의 관심이 반가우면서도 부끄럽다. 지구 반대편의 교황은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는데 ‘지금 이 땅’에선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는가.

방한한 교황은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네 차례 세월호 가족을 만났다. 서울 광화문 시복미사 전 차에서 내려 단식 중이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손을 잡은 장면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한국에 머물던 내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았던 그는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유를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정치적 중립을 위해 리본을 떼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

교황이 떠난 뒤, 잠깐의 열광에서 벗어난 한국 사회는 다시 싸늘해졌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전가의 보도 격인 ‘외부세력 배후론’을 꺼내 유가족을 국민에게서 분리시키려는 전략을 폈다. 세월호특별법은 특별조사위원회의 수사·기소권과 유가족의 특별검사 추천권이 빠진 반쪽짜리로 통과됐다. 최근 특별조사위가 출범하긴 했으나 새누리당 측 위원들의 방해 책동으로 활동이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선체 인양 문제 역시 답보 상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립 서비스’만 되풀이하는 터다. 정부·민간 합동조사팀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내부 결론을 내렸고, 국민의 60%가 인양에 찬성하는데도 말이다. 그뿐만 아니다. 인천에 건립하려던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은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예산을 지원할 중앙정부 주무부서가 정해지지 않은 게 이유라고 한다.

최혜정 단원고 교사와 박지영 승무원의 유족들이 8일 미국 필라델피아 네이비야드에서 골드메달을 받고 있다. 왼쪽에서 세번째부터 최 교사 아버지 최재규씨, 박 승무원 이모부 유진규씨, 최 교사 어머니 송명순씨, 박 승무원 어머니 이시윤씨. _ 연합뉴스


지난해 4월16일 이후, 모두가 ‘세월호 이후’를 이야기했다.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잊으라고 압박하는 세력, 그 틈을 타 잊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목숨을 잃은 304명과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의 생존방식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 사건이다. 이 질문에서 자유로운 구성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호의 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공동체 전체가 거짓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체 인양과 진상 규명을 서둘러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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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세월호 침몰 당시 부실구조 책임으로 기소된 전 해경 정장의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인정했다. 광주지법은 전 목포해경 123정장 김경일 경위(해임)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구조 업무를 맡은 공무원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것은 처음이다. 사법부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 판결로 평가한다.

재판부는 “김 전 경위는 123정 승조원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사람을 건져 올리도록 지시했을 뿐 승객들을 배에서 빠져나오도록 유도하지 않았다”며 “김 전 경위의 과실로 상당수 승객이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하면서 유가족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김 전 경위가 123정 방송장비로 퇴선 방송을 하거나 승조원들을 통해 퇴선 유도 조치를 했다면, 일부 승객들은 선체에서 빠져나와 생존할 수 있었다”며 업무상 과실과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봤다. 다만 세월호 선원이나 청해진해운 임직원보다 책임이 무겁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김 전 경위에게 선고된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며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가족들의 고통과 분노는 십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형량과 별개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유죄 판결이 나온 것 자체는 의미가 작지 않다고 본다. 법원이 구조 과정의 위법을 인정함으로써, 향후 유족들이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통해 국가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세월호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화문 농성 200일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세월호 사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총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는 사실상 ‘꼬리 자르기’였다. 304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선장·선원 10여명과 청해진해운 임직원 몇 명, 해경 말단 지휘관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났다. 해경 수뇌부에는 면죄부를 줬고, 청와대와 정부의 보고·대응은 아예 수사대상에서 제외했다.

온전한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안전한 국가를 만드는 일은 요원하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조기 가동하는 일이 시급한 이유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방해 책동을 그만두고 세월호특위 출범에 협조해야 한다. 선체 인양 작업에도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정부·민간 합동조사팀은 이미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국민 여론도 인양 찬성이 다수다. 한국갤럽이 지난 6일 공개한 여론조사를 보면 61%가 인양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세월호가 침몰한 지 벌써 303일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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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송년 모임에서 사람들에게 물었다. “갈수록 나쁜 일만 기억나는 건 나이 탓일까요, 세상이 절망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일까요?”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 이런 답이 돌아온다. “잘 생각해보면 좋은 일도 많이 있었을 겁니다. 일상의 행복은 살금살금 내딛는 고양이 발걸음 같아서 잘 기억나지 않는 법이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이 탓이건, 세상 탓이건 기억은 선택되기 마련이고, 기억이 아니라 오히려 망각이 문제일 수 있겠구나 싶다.

그래도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다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우리는 강물을 마시면 이승에서의 기억을 잊어버리는 ‘레테의 강’을 숙명적으로 건너야 하는 존재다. 니체의 말처럼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삶 속에서 짊어진 고통과 슬픔을 평생 기억하는 건 아마도 지옥 같은 형벌일 것이다. 망각의 원인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기억은 모래 위의 흔적처럼 세월에 따라 소멸되는 속성이 있다는 설과, 과거의 기억은 새로운 기억의 저장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방을 비워준다는 설이 그것이다.

하지만 망각을 해석하는 사회학의 관점은 다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열광적으로 조각상을 만들고 도기 그릇에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은 신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망각은 때로 치명적이다. 한 사회가 집단적으로 기억 재생에 실패하게 되면 비판 기능이 상실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통치체제에 위협이 되는 사회적 기억을 지우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책과 그림부터 불태워버렸던 진시황과 로마 군대가 대표적인 예다.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갈파하지 않았던가.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

기억 상실은 사회적으로 구조화되고 조장된다. 망각은 수집되지 않은 기억이다. 스포츠의 역사에서 성소수자들은 좋은 기록을 내더라도 공식 인정을 받을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이들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동성애 혐오주의가 스포츠계에도 스며들어 뿌리를 내린 탓이다. 기억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약자라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였다면, 기획된 고립과 모진 망각에 맞서 싸우는 일이 그토록 어렵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월호 수색중단이 발표된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희생자 사진을 한 시민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기억은 저장되는 순간 망각되기 시작한다. 빠른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서 기억의 유통기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단축된다. 쏟아지는 상품과 사건은 하루 전의 것조차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기억의 저장소에 머무르는 것은 극히 제한된 시간 내에서만 가능하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는 초 단위로 바뀐다. 정윤회, 십상시, 문고리 3인방의 기억은 어느 순간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기호로 대체된다. 르네상스 시대의 풍자 문학가 프랑수아 라블레는 이런 현상을 일찌감치 예견했던 인물이다. 1532년에 출간한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서 그는 뇌가 잡다한 지식으로 꽉 채워져 있어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한 거인 왕을 그리고 있다.

망각은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생체실험 관련 문서를 폐기한 일본의 731부대, 대선 여론조작 댓글 지우기에 나섰던 한국의 국가정보원 등이 원했던 것은 다름 아닌 ‘기억의 삭제’였다.

반면 ‘기억의 복원’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도 있다. 기록필름을 1피트씩 사들여 오키나와전쟁의 잔혹상을 증언한 오키나와 시민들, 70m 높이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접착식 메모지에 적은 시민들의 추모글들을 A4 용지에 하나하나 옮겨 붙이는 세월호 기록저장소의 자원봉사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의 경계, 그 언저리에서 건너지 말아야 할 ‘망각의 강’의 의미를 생각한다.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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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회항 사건에서 계속 생각나는 것은 승무원들의 스트레스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14시간가량, 그들의 몸과 마음은 어떤 지경이었을까. 이후 기내 상황은 알 수 없지만 큰 사고 없이 업무를 수행했으니 다행이다. 극심한 감정노동 수행 중에 ‘라면 상무’ 같은 승객이 탑승했다면? 만일 조현아씨로 인한 승무원의 스트레스 때문에 사고가 났다면, 안전사고인가. 승무원과 승객, 국민의 안전 불감증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사고가 났다면 명칭은 ‘조현아씨 사고’다.

나는 세월호 역시 안전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인식이 사건의 본질을 은폐한다. 재난, 재해가 모두 안전사고는 아니다. 발단에 따라 다르다. 세월호가 안전사고라는 인식 때문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 통념이 전 국민을 혼내고 있다. 세월호를 안전사고로 본 관료들이 처음 제시한 정책(?)은 “수학여행 전면 금지”였다. 그리고 결론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인 데다 관료 수는 많고 재난 구조 인력은 적은 옥상옥 조직, 국민안전처의 출범이었다.

안전 강조 담론은 국가안보 이데올로기처럼 사회 구성원을 통제하는 효과가 있다. 안전 불감증 때문이라면 누가 불감증인가. 학생 승객들이? 세월호 승무원이? 해경이? 세월호 선주라는 故(???) 유병언씨가? 아니면 구원파가 무서운 사람들이? 이처럼 안전 불감증 담론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똑같이 잘못했다고 본다. 우리가 “내 탓이오”를 강요당할 때 정권은 가해 구조에서 모습을 감춘다.

세월호가 진짜 안전사고였다면 국가와 대통령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그랬던가? 대통령은 유가족 앞에서 불쾌한 듯 몸이 굳어 외국 언론의 분석 대상이 되었다. 청와대와 일부 언론, ‘여론 지도층’은 유가족에게 상식 위에 군림하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는 유가족을 보호했나? 유가족은 위로받기는커녕 “불순한 유가족”을 외치는 일부 정치인과 시민들로 인해 끊임없는 의심에 시달리고 있다.

안전 문제에는 시비가 있는 법이다. 특히 세월호 사건은 누구나 알다시피 잘못한 사람, 무고한 피해자가 명백하다. 안전 의식은 평소에 필요한 것일 뿐, 세월호와 무관하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서 안전 불감증을 반성하는 태도는 성찰이 아니라 문제를 왜곡하는 부정의다.

세월호 진실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해 행동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6일 국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보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물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사고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에서 사고가 안 난다면 오히려 이상한 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나는 세월호를 이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의 구조적인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낡은 선박, 훈련되지 않은 승무원, 과적도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위와 같은 상황은 이미 관련자들의 ‘선택’이었다. 무의식적 의도다. 왜? 남들도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불성실하고 능력 없는 사람들이 더 잘 살고 큰소리치는 세상이다. ‘조현아 기시감.’ 주변을 보면 어느 조직이나 “저런 사람이 어떻게 저 자리까지 갔을까” 싶은 이들이 있다. 드라마 <미생>의 마부장 같은 사람이다. 무능에 불성실, 탐욕, 인간성 종말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 지식인이나 사회운동가, 여성주의자 중에도 상당히 많다. 좌우, 계급, 성별을 막론한, 시대를 표상하는 인간성의 출현이다.

이들은 중심과 최고에 대한 열망, 약자 멸시, 출세 만능 이데올로기, 유명인사 증후군에 사로잡혀 있다. 조현아씨 같은 이들을 부러워하고 그와 마인드를 공유하고 있다. 당연히 업무는 대강이고 일은 ‘관계’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 조씨처럼 강자(이 사건의 경우, 여론)의 움직임에 따라 태도가 표변하고 약자에게 함부로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움직이면 사고를 치는 걸어다니는 재앙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매스컴에 노출되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뿐이다. 재벌가가 홍보에 막대한 비용을 쓰는 이유다.

대형 참사의 원인이 개인의 문제라는 얘기가 아니다. 요지는 당대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특정한 타입의 인성(캐릭터)이 형성되었고,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들이 ‘잘나가면’, 사람들은 비난하면서도 그들을 선망하게 된다. 이들이 뿜어내는 나쁜 기운과 라이프스타일은 주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전체를 집단 우울증 상태로 만든다. 뻔뻔한 이들 중 일부는 세월호 참화를 만들었고, 일부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대응을 보여주었고, 일부는 지방선거에서 이들을 당선시켰다. 조현아씨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세월호 대책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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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와 진도군·의회·군민대책위가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실종자 9명을 찾아 가족 품에 돌려주기 위해, 명확한 진상규명을 위해, 사고해역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어민들을 위해 선체를 반드시 인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회견을 주도한 진도군민대책위는 “진도 주민들은 세월호 선체 인양과 그 후속 조치들이 참사의 아픔을 치유하고 대형 재난사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모범적 선례로 남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들의 호소를 경청해 인양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인양을 포함한 선체 처리 방안은 해양수산부 산하 태스크포스(TF)의 기술검토를 거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결정하게 된다. 기술적 논의와 사회적 공론화 작업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최종 결정에 이르는 과정이 지나치게 길어져선 안된다고 본다. 구조 작업에 이어 인양 작업에서까지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일부에서 돈과 시간을 들먹이며 ‘인양 포기’나 ‘해상추모공원 조성’을 거론하는 것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인양 예상방법 (출처 : 경향DB)


국내외 선박구난 전문가들은 세월호 인양에 작업일 기준 5개월, 사전조사까지 포함하면 1년가량 걸리고 1000억원 정도 들 것으로 추산한다고 한다. 짧은 기간이나 작은 금액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양 문제는 계산기 두드려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세월호 참사를 야기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이었나.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고 자본의 논리만 떠받드는 천박한 인식 아니었던가. 시간과 비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 한명까지 모두 가족 품으로 돌려드리겠다’던 정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일 터이다. 선체 인양이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회복하는 길로 이어진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도 기꺼이 지불할 가치가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국민 10명 중 6명이 인양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양 논의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종자·희생자 가족을 배려하는 일이다. TF 단계에서부터 가족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선체는 그 자체가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증거인 만큼 가능한 한 훼손 없이 인양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인양 작업 중 추가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치밀한 대비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인양 논의가 또 다른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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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첫 번째 다큐멘터리영화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다이빙벨>이 관객 3만명을 돌파했다. 독립영화의 열악한 배급 여건을 아는 사람이라면, 1만명이라는 관객 수조차도 얼마나 넘기 어려운 고지인지 잘 알 것이다. 개봉일 겨우 19개의 스크린으로 시작한 <다이빙벨>은 스크린 수의 절대적 열세에도 단 5일 만에 관객수 1만명을 돌파, 개봉 11일 만에 2만명 돌파, 개봉 3주차에 3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다이빙벨>의 흥행이 ‘기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작은 영화관들의 연대와 국민들의 호응만으로 이뤄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전폭적 지지에도 멀티플렉스 극장은 <다이빙벨>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관객들이 멀티플렉스 극장에 직접 전화를 걸어 상영을 요청해도 “상영계획이 없다”는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직접 한 관을 대여하여 상영관을 만드는 방식인 ‘대관상영’을 진행하기 위해 멀티플렉스에 상영요청을 하였으나 상영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밝혀 30여개의 상영이 취소되는 사례도 이어졌다. ‘개봉 영화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대관 상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해당 극장의 개봉 영화가 아님에도 대관상영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또 하나의 약속> <블랙딜> <두 개의 문> <슬기로운 해법> 등의 사례로 볼 때 <다이빙벨> 상영 불가의 이유에 대해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국 각지의 작은 영화관들이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가고 있다. 전주 시네마타운, 청주 SFX시네마, 구례 자연드림 시네마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 아님에도 <다이빙벨>을 개봉했으며, 충청남도 부여군에 위치한 금성시네마와 경기도 동두천시의 문화극장3 역시 개봉을 확정했다. 여주 월드시네마, 양평시네마, 이천 씨네세븐, 고창 동리시네마 등에서는 대관상영이 확정되었으며 명화극장, 고센시네마, 동리시네마 등의 작은 극장들이 대관상영을 적극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다이빙벨> 영화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다이빙벨>은 ‘세월호 침몰 직후 72시간의 골든 타임 동안 도대체 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한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가 취재에 착수하여 팽목항 현장에서 고군분투 뛰어다니며 만든 다큐멘터리영화로서, ‘수중장비 다이빙벨의 투입과 철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참사 이후 펼쳐진 숱한 부조리의 한 사례를 다룬 이 한 편의 영화에 관객들이 이토록 뜨겁게 호응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언론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궤도를 돌며 제 기능을 하지 않았는지, 그래서 국민들이 얼마나 진실에 목말랐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영화는 대단한 극적 장치나 감정을 자극하는 음악도 많이 사용하지 않은 채, 탐사보도처럼 사실에 입각해 기록하고 당시 정황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런데도 관객들이 분노의 탄식과 눈물을 쏟아내는 것은, ‘구조하지 않는 해경, 책임지지 않는 정부, 거짓을 퍼뜨리는 언론’의 끔찍한 실체와 민낯을 낱낱이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살해 협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한 사람이라도 살리기 위해 사비를 털어 구조를 시도했던 의인은 사기꾼으로 몰렸고,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은 어이없이 죽어갔다.

희생자 문지성양 아버지는 이 영화에서 드러난 충격적인 현실이 ‘티끌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또 다른 다큐멘터리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뇌경색 투병 중에 사투를 벌이며 이 영화를 만든 이상호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양심의 부력으로 함께할 때만 그렇습니다.” 바다를 떠도는 원혼들을 달래고 또 다른 참사를 막는 유일한 길, 끝없이 침몰하는 이 사회를 인양하는 힘, 그것은 진실의 횃불을 활활 밝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황윤 | 다큐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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