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기소된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 15명에 대한 결심 공판이 어제 열렸다. 검찰은 살인 혐의가 적용된 이 선장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하고, 나머지 선원 14명에게는 무기징역~징역 15년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의 행위로 304명이 희생되는 중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유족과 생존자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안겼다”고 구형 사유를 밝혔다. 이로써 1심 재판 절차는 사실상 마무리되고 다음달 선고만 남겨두게 됐다.

검찰 수사와 1심 재판에서 드러난 선원들의 행태는 차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들은 해경에 가장 먼저 구조될 때까지 퇴선 안내 방송 등 구조를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퇴선한 후에도 승객 구조 활동을 외면했다. 법정에서도 깊이 자성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는 대신 변명과 핑계,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해 공분을 샀다. 특히 이 선장은 “나는 정식 선장이 아니라 교대 선장이다” “(참사 당시) 정신적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주장하는 등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였다. 어처구니없는 증언이 나올 때마다 법정은 유가족들의 한숨과 탄식으로 가득찼다고 한다. 피고인들에게는 반드시 엄정한 단죄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세월호 선원들의 결심 공판이 열린 27일 이준석 세월호 선장이 광주지방법원으로 향하는 호송차 안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다. 검찰은 이 선장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_ 연합뉴스


그러나 선장과 선원들을 단죄하는 데서 멈춰선 안된다. 1심 재판 과정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극히 일부의 진실만 드러났을 뿐이다. ‘그날’ 이후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저물어가지만 온전한 진실은 여전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 앞서 검찰이 최종 수사 결과를 내놓았으나 변죽만 울리고 사건의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감사원 역시 청와대 감싸기에만 골몰하는 양태를 보였다. 5급 공무원 2명을 청와대에 보내 행정관들을 조사했을 뿐, 내부 자료는 단 한 건도 열람하지 못했다.

이제 기대를 걸 곳은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할 국회뿐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진상조사위원장 선출방식을 느닷없이 쟁점화하면서 특별법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여권은 유가족의 독립적 수사·기소권 보장 요구를 거부하더니, 이제는 진상조사위원회 자체를 허수아비로 만들 참인가. 특별법마저 정략의 제물로 전락하고 만다면, 진상규명은 물 건너가고 한국 사회는 ‘세월호 이전’보다 뒷걸음질치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을 만드는 일은 유가족의 해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다. 나흘 후면 세월호가 침몰한 지 200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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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고통으로 한 번 구겨진 사람은 제아무리 반듯이 펴놓는다 해도 은박지가 그러하듯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나는 초등학생이었던 어느 해를 기억한다. 나른한 휴일 오후였고 태양은 맹금류처럼 서쪽 하늘로 느리게 활강하는 중이었다. 마을 회관 앞에서 놀던 내게 동네 어른 가운데 누군가 달려와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전했다. 탈곡기에 손이 빨려 들어가 오른손 집게손가락이 절단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하던 동네 어른의 말투는 안도와 경악을 오갔는데, 아직 어린아이였던 나로서는 아버지의 오른손목이 뭉텅 잘려나가지 않아 다행이라는 건지 집게손가락이 잘려나간 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질 만큼 슬픈 일이라는 건지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마루 끝에 앉아 노을이 물든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땅거미가 내리고 여기저기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솟아올랐다. 병원에 간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어둠이 번져오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난생처음 어떤 방식으로 세상이 어두워지는가를 알게 된 듯한 기분이었다. 소가 울어댔고 개가 낑낑거렸다. 쇠죽을 쑤어 외양간 여물통에 부어주고 개밥그릇에 사료를 부어주었다. 할머니의 상을 치른 지 삼 년이 되지 않았기에 마루 한 귀퉁이에는 상청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아침저녁으로 할머니 영정 앞에 밥과 국을 올렸던 걸 떠올린 나는 부엌의 큰 솥을 부신 뒤 쌀을 안치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설익은 밥 한 그릇과 김치 한 보시기를 상식으로 올리고 나니 더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러자 마당을 채운 어둠이 내게 와락 덤벼드는 것 같았고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숨을 죽인 채 터뜨리는 비명이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자정 즈음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왔으나 우리 세 식구 가운데 누구도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다. 그건 아마 이 슬픔도 언젠가는 잊힐 것이니 굳이 반추하여 견고한 기억으로 남길 필요가 없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도 나는 그날 밤 느꼈던 쓸쓸함과 두려움을 되풀이해서 겪어야 했고 그 탓에 기억은 견고해졌다. 그런 순간은 언제나 불현듯 찾아왔다. 이를테면 어느 날 무심코 집안 구석에 버려진 낡은 목장갑을 발견했을 때처럼. 그 목장갑에도 집게손가락이 없었다. 그러면 집게손가락 없는 목장갑을 끼고 다니던 아버지가 떠오르게 마련이었고 뒤이어 여지없이 그날 밤 홀로 마루 끝에 앉아 부모를 기다리던 어린 나를 보게 마련이었다. 아마 한쪽 팔을 잃은 누군가를 안다면 그이의 한쪽 소매가 없는 셔츠를 볼 때마다 이와 비슷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농기구를 챙겨 새벽길을 나서는 아버지의 뒷모습마저 예사롭게 볼 수 없었고 아버지의 등에 새겨진 침묵을 해석하려 애써야 했다. 아버지는 이전과 분명히 다른 존재였으나 어떻게 달라졌는지 분명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나는 괴로웠다. 스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그의 시 “기억이 나를 본다”에서 이처럼 문득 찾아오는 기억을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이라고 불렀다. 내가 눈을 감아도 기억은 눈을 뜬 채 나를 따라온다. 아버지 역시 그랬던 것이리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촉구하는 노동,청년,교사 등 각계 제안자들과 세월호 유가족 및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대표자 등이 100일째 농성을 이어가며 광화문 광장에는 곳곳에 아픔의 흔적들이 묻어 있다. (출처 : 경향DB)


한 번 지나간 순간은 재현할 수 없지만 앞에 놓인 무수한 시간들 안에서 그 순간은 수많은 변형태로 돌연 되살아나게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참혹한 순간을 겪어야 했던 이들에게 이제 그만 떼쓰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자들은 정녕 알지 못한단 말인가. 그이들에게는 돌아가야 할 일상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한 번 구겨진 그이들은 아무리 반듯이 펴도 잔금 하나 없던 매끈한 은박지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그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참혹했던 순간의 변주에 불과한 영원히 고통스러운 순간을 매번 맞닥뜨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책을 읽다 ‘세월’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문득 오열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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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대검찰청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를 어제 발표했다. 검찰은 무리한 증축 및 과적으로 복원성이 악화된 상태에서 조타 미숙으로 배가 기울며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화물이 한쪽으로 쏠린 게 침몰 원인이라고 밝혔다. 구조 부실과 관련해선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목포해양경찰청 123정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하는 데 그쳤다. 해경 지휘부에는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줬고, 청와대 등의 보고와 대응은 아예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반면 국가정보원 개입설 등 각종 의혹은 적극 부인하고 나섰다. 국민은 그동안 ‘왜 침몰했는가’를 넘어 ‘왜 눈앞에서 304명이 죽어갔는가’를 물었다. 검찰은 그러나 이 같은 질문을 외면했다.

검찰이 해경에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한 것은 구조 과정의 위법과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계급이 경위에 불과한 현장지휘관 한 사람에게 책임을 미룬 것은 ‘꼬리 자르기’의 혐의가 짙다. 조은석 대검 형사부장은 “123정장이 퇴선 명령만 내렸으면 충분히 구조가 가능했다. 개인적 업무자세가 문제”라고 말했다. 청와대 조사 부분에 대해선 “청와대까지 갈 필요도 없다. 사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범위와 상관없다”며 선을 그었다고 한다.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선장·선원 10여명과 청해진해운 임직원 몇 명, 해경 말단 지휘관에게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니 어처구니가 없다. 더욱이 해경 정장에 대해선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다시 청구하는 대신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세월호 유족에겐 단순폭행 사건으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한 바 있다. 명백한 이중잣대는 123정장이 혼자 다 뒤집어쓰는 데 대한 은전(恩典)인가.

조은석 대검찰청 형사부장이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6일 사실상의 세월호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7·30 재·보선 승리 이후 ‘탈(脫)세월호’ 작전을 본격적으로 전개해왔다. 이번 수사발표를 기화로 세월호 지우기 움직임은 가속화할 게 분명하다. 검찰 수사와 선원들의 재판을 통해 ‘밝혀질 것은 다 밝혀졌다’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침몰의 진상’은 규명됐을지 모르나 ‘참사의 진상’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세월호특별법에 따른 진상조사위원회와 특별검사를 통해 세월호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의혹을 포함해 청와대의 보고와 대응 경위도 규명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지 않고선 한국 사회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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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세월호특별법에 여야가 합의하면서 이른바 ‘세월호 정국’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사건 초기부터 넓은 의미에서 야권과 적잖이 다른 입장을 표명해온 사람으로서, 나는 이 결말 앞에 한없이 착잡한 심정이다.

야권은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의 입장을 대변해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로 인해 세월호특별법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그 중에서도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것이냐 말 것이냐가 논의의 쟁점이 되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다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모든 의혹을 낱낱이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 야권의 설명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이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성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을 수사하고 기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특검이 됐건 진상조사위원회가 됐건,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하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 많은 경우 공소가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그러므로 세월호특별법에 부여하고자 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은 ‘성역’을, 다시 말해 청와대를 겨냥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점까지 왔으니 부디 아니라고 하지 말자. 굳이 범위를 더 넓히자면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정도가 기존 합동수사본부의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셋째, 그렇다면 야권은 세월호특별법을 통해, 청와대를 수사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청와대에 요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요구를 상대방이 받아줄 턱이 없다. 설령 야권이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을 모두 압승했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선거에 졌기 때문에 세월호특별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기보다는, 통과시킬 수 없는 법을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시켰기 때문에 선거에서 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은가?

전국 단위의 지방선거라 해도 지방선거는 어디까지나 지방의 살림을 책임질 사람들을 선출하는 선거다. 제아무리 규모가 커도 재·보선은 국회의 빈자리를 채워넣기 위한 선거다. 하지만 야권은 이 각각의 선거에 세월호특별법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뉘앙스를 한껏 깔았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세월호특별법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주장하는 바는 다를 수 있지만, 앞서 말했듯 ‘성역’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 대해서는 이미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여권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세월호특별법’을 ‘박근혜 특별법’쯤으로 받아들인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논의의 초점은 어느새 세월호에서 박근혜로 넘어가 버렸다. 닳고 닳은 표현을 빌리자면 ‘프레임’을 빼앗긴 셈이다. 경제학자 우석훈이 <내릴 수 없는 배>에서 말한 것처럼, 세월호가 침몰한 후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정작 사람들은 여객선이 아니라 박근혜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니 27년 된 노후 선박 바캉스호가 세월호 참사 다음날 안전검사를 통과해 운항하고 있었던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 ‘특별법’에 정신이 팔려 ‘세월호’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문재인 의원을 포함해 야권의 주요 정치인들이 단식까지 해가며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진상 없는 성역 규명’뿐이다. 우리는 세월호라는 배에 대해, 그 배의 침몰 원인 등에 대해,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이번 세월호 정국을 통해, 박근혜라는 한 정치인이 한국 사회의 성역으로 올라섰다는 것만큼은 확실해졌다.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인신공격과 비방을 삼가라고 대통령이 국민들을 향해 직접 훈계하는 시대가 열리고 만 것이다.

기다림의 버스 성공을 기원하며 (출처 : 경향DB)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한, 스스로를 성역으로 규정하는 성역의 존재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위주의적·구시대적 사고방식에 맞서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권과 시민들의 몫이다. 가족과 친지를 잃고 형언할 수 없는 비탄에 빠진 세월호 유족들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한 것부터가 큰 잘못이라는 말이다. 세월호 유족을 앞세웠던 야권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통렬한 반성과 자기 비판을 요구한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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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방송인 김제동씨의 만담에는 페이소스가 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탁월한 공감능력이 바탕에 있는 듯하다. 지난 8월말 김씨는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상대로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김씨는 이런 말을 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나온 숱한 말들 중 사람의 사람됨에 호소하는 가장 강력한 발언으로 생각되기에 다소 길지만 인용한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지난 달 29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과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인근 서울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농성중인 유가족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제가 어렸을 때 촌에서 자라서 그 새끼 송아지를 먼저 팔면 어미소나 아빠소가 밤새도록 웁니다. 그냥 하루만 우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 열흘을 끊이지 않고 웁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고 막 끊어질 듯이 웁니다. 그러면 적어도 제 기억에는 새끼 소를 팔았던 우리 삼촌, 우리 동네 아저씨가 (울먹이면서) 이렇게 그 다음날 아침에 담배 하나 피워 물고 소죽을 더 정성껏 끓였고 영문도 몰랐지만 동네 아이들은 그 소 앞에 가서 지푸라기 들고 뭐라도 먹이려고 했어요.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고, 어떤 이웃도 어떤 사람도 저 소새끼 왜 우느냐고 하는 이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소에게도 짐승에게도 그렇습니다. 적어도 그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요.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슬픔이 멈추는 날까지 그때까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과 사회구성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건 공감과 진실이었다. 공감은 두 차원에 걸쳐 있다. 하나는 유가족의 슬픔을 내 슬픔에 가깝게 느끼고 배려하는 것이다. 위 발언으로 김씨가 말하려던 게 이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됨의 기초를 이루는 이런 성정을 연민이나 연대감이라고 달리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월호 참사가 곧 내 일이라는, 참사를 불러온 정치·사회·경제적 구조에서 나도, 내 자식도 희생자가 될 수 있었고 언제고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구체적 실감이다. 유가족의 문제를 내 문제로, 사회구성원 모두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이다.

진실의 효용 역시 두 가지로 나눠봄직하다. 첫째, 피해자 치유적 측면이다. 진실이 바탕이 됐을 때 유가족의 상처는 치유된다. 유가족에 대한 동료 시민의 연민은 유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진실규명으로 향하는 게 자연스럽다. 둘째, 시스템 치유적 측면이다. 진실을 토대로 잘못된 것을 모조리 뜯어고칠 때 비로소 사회는 참사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직접적인 삶의 문제이다.

공감과 진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둘 중 하나만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진실 규명에 소극적인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유가족에게 모질고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7시간의 진실’에 대해 침묵하고, 새누리당은 유가족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통에 공감한다. 극우세력은 단식하는 유가족 앞에서 ‘폭식투쟁’이니 뭐니 하는 저열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해방공간에서 백색테러로 악명을 떨친 서북청년단의 재건을 주장한다. 보수언론은 소위 ‘정치화된’ 유가족의 개인사를 침소봉대하며 ‘말 몽둥이’ ‘글 몽둥이’로 두들겨패는 데 여념이 없다. 유가족이 ‘정치적 행동’의 전면에 나선 것은 정부·여당이 진실 규명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세월호 문제의 가장 큰 책임자는 유가족이 아닌가 착각이 들 지경이다.

며칠 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3차 합의안을 내놨다. 유가족의 의사는 그다지 반영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유가족을 이긴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조성된 거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허물고 사회를 ‘내 편, 네 편’으로 찢어놓은 대가로 얻은 승리다. ‘참사 이후’ 한국 사회는 도리어 ‘참사 이전’보다 퇴행했다. 박 대통령은 승리했지만 한국 사회는 패배했다. 대통령이 참사 피해자인 유가족과 싸울 때부터 예고된 패배였다.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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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대리기사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김병권 전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 등 세월호 유가족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고 한다. 서울남부지법은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와 피의자들의 주거, 생활환경 등에 비춰볼 때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영장 기각은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다. 영장을 신청·청구한 경찰과 검찰은 정치적 의도로 과잉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통렬하게 자성해야 마땅하다.

검경은 구속수사가 필요한 사유로 ‘사안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우려’를 들었으나 완패했다. 애초부터 법조계에서는 구속수사가 무리수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우선 사안의 중대성 측면에서 검경은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조차 무시하고 자의적 판단을 내렸다. 대검찰청 내규는 일반상해의 경우 ‘전치 8주 이상 미합의’, 이번 사건 같은 공동상해는 ‘전치 6주 이상 미합의’일 때 구속영장을 청구토록 하고 있다. 이 사건 피해자인 대리기사와 행인들은 전치 2~4주의 진단서를 제출했다. 실제로 경찰이 2012년 처리한 폭행사건 17만여건을 살펴보면 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긴 비율이 0.0022%에 그쳤다. 그나마 이 중 3분의 1이 보복범죄이고 나머지도 대부분 폭행치사나 존속폭행 등이다. 검경은 또 유족들이 폐쇄회로(CC)TV에 나오는 장면까지 부인하는 만큼 증거인멸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배척했다.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과 문인들이 3일 저녁 진도 팽목항에 모여 노란 리본 모양의 불빛이 밝혀진 등대 앞에서 세월호 실종자 10명의 귀환을 기원하는 문화제를 하고 있다. _ 연합뉴스


누구든 타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이라고 법 집행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구속영장 청구는 누가 봐도 이례적이고 지나친 처사였다. 검경은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사회적 약자인 대리기사” “싸움을 말리는 선량한 시민” 등으로 묘사하며 세월호 유가족을 몰아붙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순수 유가족”을 거론하며 세월호 가족을 압박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세월호특별법 문제를 두고 여권과 대립해온 유가족에게 검경이 총대를 메고 ‘괘씸죄’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사회 일각에서 폭행사건을 빌미로 세월호 가족 전체를 부도덕한 집단처럼 매도하는 것 또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잘못은 잘못대로 엄정하게 수사하고 처벌하면 된다. 일부의 실수가 있었다 하여 세월호 가족이 약자이자 피해자라는 명제가 바뀔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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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하면 진다. 승패가 다라면 그렇다. 상대를 흥분시키되 자신은 흥분하지 않는 기술이 이긴다. 경기나 싸움 혹은 잘못된 토론에선 이런 처세가 먹힌다. 하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는 승패를 떠난 소중한 경험과 결정적인 순간이 훨씬 많다. 고백하면 거절당할까봐 못나게 굴고 차일까봐 먼저 차버리는 꼼수로 살면 인생은 후져진다. 함께 흥분하지 못하는 불감증과 무정함이 만연하면 불행해진다. 인류 역사는 함께 흥분한 사람들이 사랑하고 응원하며 축제와 민주주의를 창조하고 향유해온 과정이다. 그것이 승리가 아니었고 불완전했으며 짧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타인의 감정에 내 감정도 같이 흥분하는 상태가 바로 공감이다. 요즘 유행대로 ‘공감 능력’이라 표현한다면 이는 이성의 힘이 아니라 텔레파시 같은 것이 통하는 정념의 힘이다. 그 공감의 에너지가 무척 예민하고 큰 연예인을 꼽자면 김장훈씨가 아닐까. 그는 공연을 취소하고 팽목항에서 봉사를 했다. 서명운동과 추모 콘서트에 앞장섰다. 24일간 광화문에서 단식을 했다. 이도 모자라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비롯해 위기를 겪은 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이를 “우리 프로젝트”라 부른 그의 활동은 석 달째에 접어든다.

이런 그를 유난스럽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기부하고 분향하고 애도를 밝힌 연예인들이 여럿이다. 그들에 비하면 그는 확실히 과도했다. 이번만이 아니다. ‘공연의 황제’가 된 것도, 150억원이 넘는 ‘기부천사’로 살아온 것도 같은 과도함에서 나왔다.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려는 ‘지킴이’의 과도함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과도함은 여러 개가 아니라 하나이며 그것이 김장훈씨의 인생인가 싶다. 이쯤에서 밝히면 앞으로 그를 존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년 전이었다. 그는 바다를 횡단해 독도까지 가는 릴레이 수영 끝에 탈진과 공황장애 재발로 쓰러졌다. 그때 한 의사의 블로그에는 이런 분석이 실렸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극한까지 몰아붙여서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훨씬 뛰어넘는 정도를 해내고자 하는” 일종의 콤플렉스다. 그의 공황장애가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 성정분석”을 통해 치유할 수 있다고 의사는 썼다. 이 글을 보며 당시엔 ‘그가 큰 슬픔과 외로움을 가진 연예인이구나’ 하고 말았다.

그러다 올해 단식 중이던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한 문장을 전해듣고는 마음이 뭉클했다. “무엇인가 혼란스럽고 아프고 슬프다”는 그 한마디가 ‘희망을 갖자’는 말들보다 더 묵직하게 내 감정을 흔들어놨다. 그랬다. 모든 사람이 혼란과 아픔과 슬픔을 갖고 산다. 해법이 뭔지, 출구가 어딘지 모른 채 가끔씩 웃고 떠들지만 다들 우울하다. 함께 아우성도 질러보지만 누군가는 차분해지자고 하고, 누군가는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렇게 자리를 뜨면 누군가는 쓸쓸하게 남겨진다.

추석날 가수 김장훈이 세월호를 수색하는 잠수사에게 치킨가 피자 350인분을 전달하기 위해 바지선으로 이동하다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다. (출처 : 경향DB)


며칠 전 세월호특별법에 여야가 합의했다. 거부의사를 밝힌 가족대책위의 기자회견장 사진 속에는 유가족들이 고개와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뉴스를 지켜본 누군가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진 것 같다고 평했다. 그러나 혼란스럽고 아프고 슬픈 그 ‘무엇인가’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해 진다손 쳐도 같이 분노하고 아파했던 사람들의 이 공감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게 만드는 소중하고 결정적인 경험이 되고 있다.

김장훈씨는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소외되고 나약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도리”로 시작한 자신의 단식이 “진흙탕으로 끝난다면 그동안 모진 칼 맞고 똥 뒤집어쓰고 견뎌온 날들이 참 허망”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과도함으로 허망할 일 없이 ‘우리 프로젝트’를 하고 산다. 그 힘은 이성이 논하는 승패가 아니라 혼란스러운 상태일지언정 공감하는 감정에서 고스란히 솟아나온다. 그의 공황장애와 어떤 콤플렉스에서 기인할지도 모르는 그 과도함의 즉각적인 공감과 실천 때문에 말이다.

나는 대체로 이런 연예인을 선호해왔다. 음악다운 음악을 하는 후배들을 가려서 키우려는 윤종신씨. 협동조합을 만들어 동료들의 권리를 찾고 지키려는 신대철씨. 여기에 새 유형이 생겼다. 김장훈씨다. 그는 자신의 장애와 콤플렉스와 아픔과 슬픔을 훤히 드러내서 타인의 감정을 온몸으로 공감하고 노래한다. 늘 먼저 고백해서 퇴짜 맞고 차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주는 그런 과도함이 내 안 어디에 숨어 있는지 좀 찾아봐야겠다. 흥분해서 지더라도 내 안의 찌질이와 못난이들을 모두 불러내 시인처럼 묻고 싶다. 넌 김장훈씨처럼 한 번이라도 과도하게 해봤어?


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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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원을 갔다가 연락도 없이 늦을 때가 있었습니다. 큰 애와는 다르게 휴대폰 배터리 충전을 제때 해놓지 않는 탓에 귀가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연락이 되지 않으면 혹시라도 흉한 일을 당했을까 초조해져 애타게 아이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4월16일 참사가 발생하고 부모들은 하루하루를 이러한 기다림과 백배 천배의 간절함으로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그 간절함은 우리의 목숨줄까지 끊어 놓을 수도 있겠다는, 거의 죽음의 문앞에까지 갔다가도 오늘은 찾을 수 있겠지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목숨을 부지하던 날들이었습니다.

팽목항의 시계는 이렇게 늘 24시간을 지나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9월30일이 유가족이나 실종자들에게 168일째의 ‘4월16일’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매번 미뤄지는 수색완료 목표 예정일을 마주하면서 실종자 가족들은 몸의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는 경험을 합니다. 한 번도 아니고 수십 번의 약속을 미루고 이미 되었다고 믿었던 일들이 아직 안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려주었을 때, 과연 제대로 수색이 이뤄지고 있나 화가 나지만 마지막까지 믿고 맡겨야 할 이들이기에 실종자 가족들은 마음을 추스릅니다.

세월호에는 아직도 수색을 못한 객실이 있습니다. 내려앉은 옷장들과 이불 틈바구니에서 지금도 매일 아이들의 유품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객실도 다 수색한 것이 아니고 유품도 계속 나오고 있으니 실종자 가족은 매일 오늘이라도 아이가 나오겠지 하는 희망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구해주지 못했는데, 시신 수습이라도 해야, 아니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부모로서 아이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일도 못하면 남은 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기에, 나중에 아이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기에 버틸 수밖에 없습니다.

박은희 단원고 故 유예은양 어머니 (출처 : 경향DB)


4월16일 이후 아이를 찾은 부모들이 하나둘 진도를 떠나면서 실종자 가족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외로운 싸움입니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적거릴 때도 정부의 구조와 수색은 늘 답답했고 주요 언론들은 문제의 본질이 아닌 이야기들로 분주했습니다. 이제 10명의 실종자 가족만이 남았으니 과연 국민과 정부와 언론은 우리를 얼마나 기억하고 함께 애를 써줄까 생각합니다. 진도체육관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그곳에 가득 찼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때의 기억 속에서 버틸 힘을 찾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물어봅니다. 형제들끼리 투닥거리며 싸우다가도 누가 형이나 동생에게 해코지를 하면 성을 내며 한편이 되어줍니다. 지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유가족과 실종자에게 필요한 것은 ‘저희도 한편이에요’ 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글로 또는 집회에서 그리고 분향소나 진도 방문으로….

매주 금요일에 팽목항으로 출발하는 ‘기다림의 버스’를 타는 것은 ‘저희가 함께할게요. 제대로 수색이 되는지 함께 지켜봐 줄게요’라고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오늘도 가늘어진 숨을 힘들게 헐떡이며 쉬고 있는 이들에게 인공호흡기가 되어줄 겁니다. 10월3일, 전국에서 팽목항을 향하는 ‘기다림의 버스’가 출발합니다.


박은희 | 단원고 故 유예은양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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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참 나쁜 정치를 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정치권력이다. 그 위임에는 적어도 국민에 대한 책임이 전제되어 있다. 대통령과 여당이 나라 안의 모든 일에 대해 무한책임의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정부와 관련된 사태의 경우 더욱이 직접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 책임을 회피하는 정치야말로 나쁜 정치이다. 그보다 더 질 나쁜 정치는 책임을 회피하려고 국민을 두 편으로 가르는 정치이다. 말하자면 ‘두 국민 정치’이다.

세월호 정국이 길어지면서 정치가 국민들에게 증오와 적대감를 심고 있다. 애초에 대통령은 세월호의 진상이 곧 ‘유병언’이라고 이해한 듯하다. 책임을 물어야 할 유병언이 죽었으니 이제 진상은 더 캘 것이 없고, 나머지는 국회가 알아서 하라는 식의 매정함이 섬뜩하다. 게다가 여·야의 2차 합의안을 언급하며 이른바 가이드라인을 대통령이 제시하는 형국을 만들었다. 절규하는 유족과 시민들은 더 이상 대통령의 국민이 아니었다. 유가족이 전례 없는 보상을 요구한다는 유언비어가 돌고 보수언론은 앞 다투어 유족과 시민을 향해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푸념했다. 자신들이 뱉은 말과 자신들의 기분을 이름 지어 ‘세월호 피로증’이라고 불렀다. ‘대한민국이 당신들만의 것이냐’는 지탄과, 단식하는 유족과 시민 앞에서 ‘막 먹어대는’ 막가파식 패악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가족과 대리운전기사의 폭력사건은 이 애끓는 참사의 본말을 더욱 더 기형적으로 뒤틀었다. 사태를 책임져야할 대통령과 여당에게 가야할 화살이 오히려 유족을 향하는 기이한 반이성적 야만의 질서가 만들어졌다.

해방이후 분단의 세월 속에 우리는 증오와 적대의 역사를 누적시켰다. 아무리 냉전의 시대라 해도 극단의 분열과 갈등은 이념 그 자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고비마다 겪게 되는 가학적 국가폭력과 희생의 체험이 증오의 싹을 틔우고 적대의 전선을 만들어 낸다. 48년의 제주, 같은 해의 여수 순천, 80년의 광주는 증오와 적대를 생산하는 우리의 집합적 체험이었다. 이제 세월호 참사가 증오와 한으로 적대를 쌓는 또 하나의 현대사가 될 것 같아 두렵다. 국민을 둘로 나눈 후 위기의 정국을 벗어나는 전가의 보도는 늘 그랬듯이 ‘민생’이었다. 누구의 민생이고 어떤 민생인가? ‘세월호의 국민’에게 민생의 구호는 기만의 언어일 뿐이다. 대통령과 여당에게 세월호의 유족이나 유족 편에 선 시민은 더 이상 국민이 아니다. ‘촛불시민’과 ‘안녕들 하십니까’를 외친 청년들, ‘앵그리 맘’, 쌍용차의 노동자들, 강정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들, 송전탑을 반대하는 밀양의 주민도 그들의 국민일 수 없다. 국민을 둘로 나누고 적대와 증오를 심는 참으로 나쁜 정치가 아닐 수 없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표들이 16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대한 대책위의 입장을 밝히는 동안 청와대를 방문하고 돌아온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기자회견장을 지나 본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출처 : 경향DB)


며칠 전, 문재인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기념 학술심포지엄의 기조연설에서 오늘날 정당정치의 위기를 정체성의 위기, 당 기반과 시민참여의 위기, 소통의 위기라는 3중의 위기로 진단했다. 아울러 정치와 정당,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생활민주주의’, ‘생활정당’, 그리고 ‘모든 이를 위한 정치’라는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문재인 의원으로서는 우리 정치가 나아갈 큰 그림을 그린 셈인데, 언론에서는 고약하게도 네트워크 정당 만들어서 당권 잡아 보자는 속내로 해석하니 꽤 섭섭하고 답답했던 모양이다. 트위터에 글을 올려 ‘전문’을 봐달라며 생활정당, 생활민주주의, 모든 이를 위한 정치를 재차 강조했다.

문재인의 ‘모든 이를 위한 정치’는 ‘두 국민 정치’의 대척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모든 이를 위한 정치’를 탈냉전 시대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넘어선 모든 계층과 모든 지역, 모든 세대, 모든 성을 위한 정치로 규정하고, 모든 이의 ‘생활’이 중심이 되는 정치를 강조했다. 어떤 처지의 국민도 보듬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고 누구에게도 편향되지 않는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져서 좋다. 화합과 화해의 정치가 그려져 더 의미가 있다. 두 국민의 나라는 미래가 없다. 적대와 갈등으로 버티는 정치에서 시민의 삶과 시민의 생명은 정치를 위한 수단이요 장식일 뿐이다. 그래서 정치와 국가와 민주주의의 중심에 시민의 삶이 있는 ‘모든 이를 위한 생활민주주의’야말로 우리 정치의 새로운 미래라고 할 법하다. ‘모든 이를 위한 정치’는 문재인의 정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가 필연적으로 나아가야할 길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곧 정치가 살고 나라가 사는 길일 수 있다. 나쁜 정치를 버리고 참 좋은 정치로 가는 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이 모두 눈과 귀를 크게 열어야 할 대목이다.


조대엽 |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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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대리기사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어제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김병권 전 위원장, 김형기 전 수석부위원장, 한상철 전 대외협력분과 부위원장 등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사안의 중대성’과 ‘증거 인멸 우려’를 구속 필요 사유로 제시했다. 불구속 수사 원칙은 차치하고라도, 전치 4주의 피해를 입은 단순 폭행 사건에 대해 무더기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법 상식에 비춰봐도 과잉이다. ‘묻지마 폭행’이나 존속 폭행, 재범 등 죄질이 나쁜 경우를 빼곤 이번 같은 수준의 폭행 사건에 대해 구속영장까지 신청한 전례가 얼마나 있는지 묻고 싶다.

사안의 중대성뿐 아니라 증거 인멸 우려를 주요한 구속 사유로 든 것도 어이가 없다. ‘대리기사 폭행’ 사건은 이미 CCTV 장면과 목격자 진술 등 관련 ‘증거’를 모두 경찰이 확보한 상태다. 피의자들이 불구속 상태라고 해서 어떤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는 것인가. 경찰이 이유로 대는 “피의자들이 일부 범행 사실을 부인하는” 진술의 문제는 증거 인멸과는 무관하다. 그 진술의 허위 여부는 경찰이 제시하는 증거를 바탕으로 재판에서 판가름할 일이다. 더욱이 폭행 사건에 연루된 유가족들은 책임을 지고 세월호 유가족대책위에서 전원 사퇴하고, 피해자인 대리기사에게 사과하고 병문안을 하는 등 자성의 모습을 보여왔다.

김병권 세월호 가족대책위 위원장(가운데)이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와 3차 면담이 파행으로 끝나자 불쾌감을 표시하며 국회를 나서고 있다. (출처 : 경향DB)


물론 세월호 유족이라고 해서 해당 혐의에 대한 응당한 법 적용의 예외를 받아서는 안될 터이다. 하지만 세월호 유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행여 ‘다른 의도’가 개입되어 과잉 수사를 받는다면 더더욱 안될 일이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참혹한 슬픔과 고통을 겪는 유족들의 처지를 감안하면 너무 모질고 가혹한 처사다. 다른 사건과의 형평성에 비춰봐도 명백히 어긋나는 이러한 강경 조치는 어떤 이유로도 설득력이 없다. 가뜩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외부 세력의 정치적 악용” 발언 이후 세월호 유족들을 향한 야만적 폭력이 기승을 부리고, 유족들을 분열·고립시키려는 공세가 전방위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 역시 이러한 세월호 유족들의 분열과 고립화를 겨냥한 공안 기획의 일환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더욱이 여야 원내대표와 세월호 유족들이 처음으로 만나 세월호특별법 협상의 진전을 이루는 시각에 딱 맞춰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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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9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에 관해 발언하는 가운데 진상규명도 얼추 이루어졌고 또 많은 관계자들이 문책도 당했다고 말했다. 세월호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고집하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한번 보자. 그동안 검찰 수사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얼마나 밝혀졌을까. 검찰은 선장과 선원들을 기소했고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들이 승객 구조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급변침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는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것이 조타의 실수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 때문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국민들은 참사 당일 해경이 골든타임에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해경은 수십 척의 함정을 동원했다고 하지만 침몰 초기 6시간 동안 고작 8명이 딱 10분 입수한 것이 전부였다. 왜 그랬는지는 오리무중이다. 당시 어선들은 승객이 많은 세월호 선미로 접근해 승객을 구조하고 있었는데도 유독 해경만은 선수로 다가가서 선원들을 먼저 구조하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제대로 수사한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세월호 선원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노트북에서 복원한 파일 중에 ‘국정원 지적사항’이라는 문건이 있었다. 사고 초기 국정원에 보고했는지에 관한 의혹이 제기된 터라, 국정원의 개입 의혹이 더욱 커지는 대목이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수사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밝혀야 할 의혹은 너무나도 많은데 검찰 수사는 그냥 그 정도로 마무리되는 듯하다. 그런 검찰이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말이 있자마자 부리나케 허위사실 유포 사범을 철저하게 단속하고 엄벌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허위사실 유포로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국민들의 정당한 의혹제기마저 입단속을 할 모양이다. 세월호 참사에 관해 제기된 수많은 의혹에는 수사를 미적대면서 재빠르게 ‘청와대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서는 검찰의 모습에서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 참석한 각계 대표들이 19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전국 대표자회의 열고 대통령 특별법 관련 발언 입장과 향후 활동계획을 밝히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일부에서는 검찰 수사로 어느 정도 팩트가 확인됐으니 ‘이제는’ 세월호 참사 원인이 된 시스템과 제도를 개혁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이 진상조사위원회와 특검을 분리하는 내용의 여야 합의안을 정당화하는 논거가 되고 있다. 수사에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차후 특검의 수사에 맡기면 된다는 논리이다.

해경의 부실한 구조대응 체계의 원인을 분석하고 화물 과적을 용인할 수 있었던 제도적 문제점을 조사하는 등 제도개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고 또 중요한 과제임은 틀림없다. 유가족과 국민들도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해 철저한 진실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제도개선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관련자 처벌을 위한 수사’와 ‘제도개혁을 위한 진실규명’이 그렇게 분리될 수 있는 것일까.

‘진실’을 규명한다는 것은 단지 몇몇 ‘팩트’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확인된 사실들을 놓고 그것을 사회적 가치와 정의의 기준에 입각해 사건의 실체를 ‘규정짓는’ 작업이어야 한다. 이 작업은 분명 ‘이윤보다 생명·안전’이라는 사회적 가치 기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 어떤 사회적 개혁이 필요한지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 관련 ‘팩트’들이 충분히 확인돼야 한다. 세월호가 화물을 과적한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가족과 국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왜 과적을 일삼아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출항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진실’이다. 해경이 초기 구조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왜 그리했는지에 관한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세월호에 관련된 의혹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은 ‘제도적 개선을 위한 진실규명’의 전제이자 그것과 한 묶음이어야 한다. 아직도 세월호의 진실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하다. 검찰 수사에 이것을 기대할 수 없으니, 유가족과 많은 국민들은 철저한 진실규명을 위한 수사권이 보장되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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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세월호 참사 희생·실종·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족대책위)가 어제 총회를 열어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했다. 유가족 5명이 대리기사 폭행사건에 연루된 데 책임을 지고 집행부 전원이 사퇴한 데 따른 조치다. 사건의 진상은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겠지만, 경위야 어찌됐든 폭력행위에 연루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세월호 가족과 함께 특별법 제정운동을 벌여온 시민들마저 크게 실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건 관련자들은 깊이 자성하고 자숙해야 마땅하다. 경찰 조사에 성실하게 응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는 그러나 이번 사건과 세월호특별법 제정 문제를 연계시키려는 일부 세력의 책동 역시 비판한다.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었거나 아직도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304명에 이른다. 부모와 형제자매 등 직계가족만 1000명은 넘을 터이다. 이들 가운데 극소수가 폭력사건에 관련됐다고 가족 전체가 합의해 추진해온 사안을 공격하는 일은 난센스 중 난센스다. 국회의원 300명 중 1~2명이 형사사건에 연루되면 국회 차원에서 합의했던 사안을 없던 일로 돌려야 하나. 도대체 이런 비합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폭행사건은 폭행사건대로 엄정하게 수사하고, 특별법은 특별법대로 상식과 정의에 맞게 만들면 된다. 둘 사이에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있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 참석한 각계 대표들이 19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전국 대표자회의 열고 대통령 특별법 관련 발언 입장과 향후 활동계획을 밝히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세월호 희생자 오영석군의 어머니 권미화씨는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이렇게 호소했다고 한다. “크게 실수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두 번 다시 이런 실수가 나오지 않도록 반성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저희들에겐 위로가 필요합니다. 손 놓지 말고 잡아주세요.” 시간이 흐르며 잊혀져가고 있지만, 세월호 가족은 상상조차 힘든 고통에 시달리는 피해자다. 사랑하는 혈육을 잃은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든데 폭식투쟁 같은 ‘2차 가해’까지 당하는 터다. 일부의 실수가 있었다고 이들을 외면해선 안된다. 끔찍한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보듬어야 한다. 그게 사람 사는 공동체의 도리다.

어제 선출된 가족대책위 집행부에도 당부한다. 5개월이 넘도록 진상규명이 지연되는 데 대한 조바심과 답답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월호 가족의 모든 행동이 이해받을 수는 없다. 아직 길고 험한 도정이 남아 있다. 고통스럽더라도 인내가 필요하다. 여야 정치권도 새 집행부 출범을 계기로 가족들의 뜻에 부합하는 특별법 제정 작업을 서두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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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태국만에 있는 아름다운 열대의 섬. 세계에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자급 공동체를 이루었다. 매일 하는 일은 해변에서 수영을 하거나 파티를 벌이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도 누구 하나 야단치지 않는 완벽한 낙원이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상어에게 물리는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한다. 자신들의 낙원이 다른 이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젊은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비명을 지른다. 그러자 다른 젊은이들은 파티 분위기를 깬다는 이유로 죽어가는 친구를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에 유기해버린다.

대니 보일 감독이 영화로 만든 알렉스 갈런드의 베스트셀러 소설 <비치>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진정한 낙원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낙원에는 문자 그대로 불행이나 고통 따위는 없을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갈런드의 소설은 그렇게 불행과 고통이 없는 낙원이 역설적으로 또 다른 지옥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진정한 낙원은 무엇일까. 남의 불행과 고통을 외면하거나 방치해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을 필요가 없는 곳이 낙원일까. 아니면, 그 불행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지혜와 대책을 함께 내놓을 수 있는 곳이 낙원일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불행과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삶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불행과 고통을 아예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불행과 고통의 실체를 인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일 터이다. 그것을 위해 근대 이후 인류는 민주주의 정치체를 발전시켜왔다. 불행과 고통을 사전에 차단하고 봉쇄해버리는 전체주의보다 사후에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훨씬 인간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떤 불가항력적인 문제를 사후에 해결하기 위한 정교한 정치기술의 결과물이 정부체계였다고 볼 수 있다. 한국도 ‘민주화’ 이후에 이런 정치기술을 선진화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학습하고 실현하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난항을 겪고 있는 세월호특별법만을 보더라도 과연 한국에 제대로 된 정부의 기능이 있는지 삼척동자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참사 현장인 진도 팽목항에 내려가서 유가족들에게 모든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하겠다고 장담한 장본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의 수장 대통령이었다. ‘해경 해체’라는 특단의 조처를 대국민담화로 발표하면서 눈물까지 보인 당사자도 바로 대통령이었다. 그런데도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책임 지고 해결하겠다던 대통령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갑자기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삼권분립’에 위배되기 때문에 특별법은 자신이 관여하지 않겠고 밝혔다. 당연히 유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 당신이 직접 해결해주겠다고 나섰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발을 빼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국민담화 도중 눈물을 흘리던 박근혜 대통령.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출처 : 경향DB)


교과서적으로 본다면, 대통령의 발언은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삼권분립 원칙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대통령 당신은 왜 참사 현장을 직접 찾았고, 온갖 해결책을 유가족 면담에서 손수 지시했는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다. 여당은 이제 와서 세월호 문제를 특정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지만, ‘순수 유가족’이라는 논법을 동원해 불순세력에 조종당하는 듯한 뉘앙스로 사안을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 이들은 정작 누구였던가. 원칙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삼권분립이나 사법체계라는 것은 왜 필요한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한 것이지 자신의 지지자들만 바라보는 정부와 여당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기 위한 핑계가 아니다.

지리멸렬한 야당의 위기를 정부와 여당이 이용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회피한다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정치적 입장을 넘어선 공동체 자체의 문제이다. 대승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안이지 정세를 이용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계기로 삼을 순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낙원은 불행과 고통을 아예 원천봉쇄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불행과 고통을 제대로 처리하고 해결할 수 있을 때 도래한다. 정부와 여당은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반쪽의 지지율에 만족해서 손을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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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그제 리본 달기 등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교사들의 행동을 금지하는 공문을 각 시·도 교육청에 하달했다고 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가치판단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학교 앞 1인시위, 세월호 공동수업, 중식 단식, 리본 달기 등을 하지 말도록 지시한 것이다. 교육부가 금지한 사항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교사 집중실천 주간’(9월15~19일)의 행동지침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교사와 학생의 자발적인 실천활동을 문제 삼는 것은 독재시대에나 가능한 억지라고 할 수 있다. 1인시위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집시법이 정한 시위에 해당되지 않아 금지 대상이 될 수 없다. 전교조의 주장대로 1인시위는 일과 전에 학교 밖에서 하는 것이고 중식 단식도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면 문제 될 게 없는 것이다. 리본 달기 또한 공권력이 사전에 금지할 수 없는 헌법적 권리에 해당한다. 교육부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세종문화회관 돌계단에 노란리본이 그려져 있다. (출처 : 경향DB)


세월호 공동수업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전교조의 세월호 관련 공동수업은 세월호 참사로 제자와 동료를 잃은 아픔을 달래고 참사의 교훈을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나누기 위해 지난 4월과 5월에 이어 세 번째 실시하고 있는 이른바 ‘계기수업’이다. 교육부는 교사가 계기수업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학교운영위 심의와 학교장의 승인을 거치도록 한 계기수업 지침을 들어 전교조의 세월호 공동수업에 제동을 걸고 있다. 교육부의 계기수업 지침은 계기수업 실시 여부와 교육 내용 일체를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것으로서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게 전교조의 주장이다. 이를 근거로 교육부가 계기수업을 진행한 교사와 수업 내용, 교장 승인 여부를 조사해 보고하라고 각 교육청에 지시한 것은 그리 교육적이라고 할 수 없다.

더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교육부가 내세우는 이유다.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말한다면 전교조를 탓하기 이전에 교육부 스스로 되돌아보고 반성할 게 더 많을 것이다. 이번 공문 파문이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관련 강경 입장 표명에 맞춰 일어난 것도 우연이 아닐 터이다. 리본 달기조차 “교육활동과 무관하고 정치적 활동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며 정치적으로 재단하는 것이 정치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기 때문에 추모 리본을 다는 일까지 입맛대로 하겠다는 황당하고 민망스럽기까지 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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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이 최다관객, 최대흥행을 기록하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명량>은 스펙터클한 전투장면과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버무려진 영화입니다. CG를 활용한 전투신도 볼만하지만 장군이 던진 한마디, 한마디가 국민들의 가슴에 와 닿은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장군이 남긴 많은 말들 중에서 저는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두려움은 인류가 이 땅에서 삶을 꾸려온 이후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도 가득합니다. 물론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훨씬 일상적이고 은밀합니다. 바로 생존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50여일이 흘렀습니다. 참사가 일어났을 때만해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세월호에 붙잡혀 있을 줄 몰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이 확실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약속은 어떻게 됐습니까. 다시는 자식을 잃는 사람이 없도록 진실을 알려달라는 유가족들의 기본적인 요구마저 묵살되고 있습니다. 뿐입니까. 단식농성장에서는 짐승 같은 인간들이 ‘폭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손주까지 있을 할아버지들은 유가족을 향해 “죽어라”라는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지난 150여일간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그동안 이 땅에는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두 가지만 존재했습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유가족과 국민들의 진상규명 요구요, 변한 것은 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약속입니다. 그럼 그들은 왜 이렇게 이성을 잃은 파쇼 같은 행태를 보이는 걸까요. 혹시 그들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건 아닐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들 뇌리에 또아리 틀고 있는 두려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560명을 뽑는 순경공채에 6만여명이 몰리고, 대학생들은 취업전선에 내몰리고, 청소년들은 수능에, 직장인들은 월급에 목숨을 거는 이 시시포스와 같은 칼날 위의 삶 말입니다. 이 두려움이 기껏해야 리본 달고 조문하고 서명이나 하는 소극적인 저항만을 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니 값비싼 도자기를 깬 형보다 그것을 제대로 꿰맞추지 못하는 동생을 향해 더 많은 비난과 채찍을 휘두르는 건 아닐까요. 약자를 향한 비겁한 폭력 말입니다.

지난주 추석에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거기서도 서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곁을 지나며 ‘서명을 받으면 뭘 해’라는 못된 생각을 했습니다. 500만여명의 서명에도, 목숨을 건 45일간의 단식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게 그들입니다. 유가족들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먹고살기 바쁜 우리들이 촛불을 다시 켜고 거대한 물결을 이뤄 청와대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존의 두려움에서 한발짝 벗어나 농성장을 찾고, 토·일요일 집회에 참석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촛불을 다시 피워내는 용기를 가진다면 그래도 그들이 진상규명 요구를 외면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순신 장군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이 말은 오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화두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3일 오후 새누리당과의 세월호특별법 관련 3차면담이 소득없이 결렬되자 국회 본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이 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대통령이 답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박 대통령에게도 필요합니다. 지금 세월호 정국을 풀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은 박 대통령입니다. 그에게 쏟아지는 평가절하는 차마 입에 올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게다가 진상규명을 꺼리는 이유가 4·16 그날의 ‘사라진 7시간’ 때문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그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을 외면한 채 규제개혁을 외치고, 자갈치시장을 찾고, 사진까지 곁들인 한가한 추석 안부를 전한다 해도 그 의혹은 쉽게 묻히지 않을 겁니다. 물론 대통령으로서는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두려움마저 떨쳐내는 것이 국민에 대한 무한봉사를 선서했던 대통령이라는 공직자가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요.

사실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가장 마음에 두었던 대사는 “이 쌓인 원한들, 어찌할꼬”였습니다. 만약 이대로 진실이 덮여 버린다면 세월호 창문을 긁으며 서로 부둥켜 안고 죽어간 어린 넋들의 원한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더욱 박 대통령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두려워 마십시오. 용기를 내세요”.


배병문 대중문화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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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여름 끝자락과 가을 어귀에서 추석을 보냈다. 여느 해보다 빨라도 한참 빠른 ‘풋추석’이었다. 그만큼 설렘도 빨랐고 반가움도 빨랐다.

조개 국물로 무쳐낸 시어머니의 나물 솜씨는 여전했다. 아픈 허리를 붙잡고 밤새 끓여낸 친정 엄마의 탕국에는 굵은 토란이 보태졌다. 나물을 친정으로, 탕국을 시댁으로 가져가서 나눠 먹으니 온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명절이란 이런 거다. 누군가는 ‘명절은 시간의 한 매듭’일 뿐이라 하지만 너무 팍팍한 해석이다. 먼길 헤쳐 품어 온 음식을 풀어놓고, 자식의 부모임을 부모의 자식임을 가장 애틋하게 느끼는 때, 연대와 애틋함이라는 의미쯤은 덧붙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번 추석은 목엣가시 같다. 명절의 ‘연대’와 애틋함 대신 굴뚝에서, 아스팔트에서 고립된 사람들이 자꾸 걸렸다.

세월호 참사가 150여일째다. 자식 잃고 첫 명절, 부모는 먹는 건 고사하고 떡 한 조각도 만들 수 없었다. 쌀 불려 방앗간에서 떡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행여나 가슴에 묻은 자식이 생각날까 싶어서다. 그저 광화문광장에서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 되는데 정작 부모는 제대로 된 설명 하나 듣지도 못했다”며 울먹일 수밖에 없었다. 정작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쥐어짠 건 ‘고립’이었다. 슬픔을 함께하던 국민들이 이제 피로증이라는 말을 꺼낸다. 세월호는 어느 순간 민생 경제와 대척점이 됐다.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알아야겠다는 상식적인 요구는 극단적이고 과격한 구호로 취급받았다. 누가 이 부모들을 광화문광장 안에 꽁꽁 가둬버렸나.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씨는 경북 칠곡군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있는 45m 높이 공장 굴뚝 위에 100일 넘게 올라 있다. 2010년 스타케미칼(모회사 스타플렉스)이 한국합섬을 인수한 뒤 힘들게 고용승계를 이뤘지만 공장 기계는 지난해 1월 멈춰섰다. 노동자들은 분할매각, 권고사직이라는 이름에 떠밀려 거리로 쫓겨났다. 그는 굴뚝일기에서 “내 청춘을 바친 공장을 지키기 위해 굴뚝에 올랐다”고 절규했다. 회사와 경찰은 음식 외 생필품 반입마저 막았다. 차씨는 추석을 가족들과 보내지 못했다. ‘장모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에도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경북 칠곡군 구미국가산업단지 스타케미칼 공장 내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차광호씨의 모습 (출처 : 경향DB)


밀양 송전탑 사태는 비슷한 ‘고립’을 낳고 있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 송전탑, 경북 울진군 신경기변전소 문제가 대표적이다. 주민들은 ‘흉측한’ 철탑 위에 덩그러니 떠 있는 추석 달을 보며 울다 지친 목울대만 셀 수 없이 부여잡았으리라.

고립된 사람들을 여지껏 지켜준 건 또 다른 고립된 사람들이었다. 세월호 부모에겐 아픔을 겪었던 부모들이, 차씨에겐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버스가, 청도 할머니들에겐 밀양 할머니들이…. 일본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와 사회비평가 오카다 도시오의 대담집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이 시사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절망적인 사람을 돌보라”는 메시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또다시 정치다. 전선이 한없이 길어지면 고립되는 건 필연적이다. 단지 연대 의식에만 의지하기엔 사건이 너무 많다. 고립을 막으려면 ‘다수를 얻는 것’이 기본인 정치가 나서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가 그때그때 중재 역할만 맡으면 고립된 사람들은 늘 목숨을 거는 배수진을 쳐야 한다. 그럼 정치가 뭘 해야 할 것인가. 당장 사회 구석구석에 공감 지대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정치학자인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이를 ‘포월의(포용하고 초월하는) 정치’라고 했다. 조 총장은 “정치는 타인을 포용하고 한계를 초월해야 한다. 그래야 공감 지대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공감 지대가 법안이든, 범사회적 공감위원회가 됐든 이제 정치가 고립을 막아야 할 때다.


구혜영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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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은 추석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길바닥과 광장에서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채 슬프고 잔인한 추석을 지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는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좋아했던 음식을 한 가지씩 올린 합동기림상이, 광화문광장에는 세월호 유족들과 같이하려는 시민들이 마련한 한가위상이 차려졌다. 진도 팽목항에는 아직껏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실종자들을 애타게 부르는 추석 밥상이 놓였다. 세월호 참사 발생 146일, “추석까지 이렇게 보낼 줄 몰랐다”는 유족들의 호곡이 가슴 저린다. 생때같은 아들딸이 왜 그토록 속절없이 수장되었는지, 그 진실을 알고 싶다는 바람이 이토록 무참히 외면당하고 꺾일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진상규명에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약속한 대통령, 앞다퉈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며 안전한 나라를 다짐한 여야 정치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올린 추석 메시지, 추석 당일 명절 인사에서도 세월호의 ‘세’자도 꺼내지 않았다. 세월호특별법은 고사하고 한데에서 ‘슬픈 추석’을 쇠는 유족들에 대해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부산 자갈치시장을 찾아 상인을 격려하고, 태릉선수촌을 방문하고, 뮤지컬 공연을 관람한 박 대통령의 ‘민생 돌보기’에서 유독 세월호 유족만 제외한 것과 매한가지다. 박 대통령이 소원하는 “국민 행복”의 국민은 대체 어느 국민을 말하는 것인가. 세월호 유족들이야말로 지금 가장 먼저 만나고 보듬을 국민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3일 오후 새누리당과의 세월호특별법 관련 3차면담이 소득없이 결렬되자 국회 본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이 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대통령이 답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세월호특별법 문제를 풀지 않고는 국정도, 정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무책임에다 야당의 무능이 더해지면서 세월호특별법이 마냥 표류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특별법은 방기한 채 무조건 국회 정상화와 소위 민생법안 처리를 야당에 압박하고 있다. 세월호와 ‘민생’을 대립항에 놓고 의도적으로 사회 갈등을 조장해 탈출구를 마련하려는 속셈이라면 참으로 무책임하고 비겁한 짓이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밝히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자’는 세월호특별법의 목적에 충실한다면 길은 나 있다. 쟁점인 진상조사위의 수사권과 특검 추천권 문제의 매듭을 자르면 된다. 박 대통령이 “나를 포함해 청와대와 정부의 사건 관계자 모두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조사를 받겠다”고 진솔히 선언하는 것이다. 정부·여당에 대한 유족들의 깊은 불신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터이다. 새누리당이 세월호특별법의 문턱을 높여놓고 꿈쩍도 못하는 것은 대통령과 청와대 ‘성역 보호’ 말고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만이 꽉 막힌 세월호특별법 문제를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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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우리가 죄인입니까.”

지난 2일 경찰에 가로막힌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절규하듯 한 말이다. 이들은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지 135만여명분을 전달하기 위해 삼보일배를 하면서 청와대로 향하던 중이었다.

세월호 참사 144일째. 추석을 앞둔 세월호 가족들은 ‘거꾸로 선 세상’에 살고 있다. 국가가 발 벗고 나서야 할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가족들이 단식과 농성과 삼보일배까지 하면서 호소해야 하는 세상. 사회적 위로와 공감과 치유의 말은커녕 “시체장사” “유가족충” 등 온갖 모욕의 말과 행동들을 견뎌야 하는 세상. 경제활성화의 발목을 잡는 ‘죄인’이자, 일상 복귀를 바라는 ‘일반 국민’의 바람을 거스르는 ‘반(反)국민’으로, 사회적 ‘왕따’로 몰리고 있는 세상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가슴을 치면서 비통해했던 게 불과 넉 달 전이다. 그때 300여명의 생명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눈뜨고 지켜보면서 했던 수많은 속죄와 다짐의 말들은 어디로 갔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세월호’는 이 지경까지 됐을까.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5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대 앞에 세월호 참사 실종자의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이 선선한 초가을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세월호 참사 143일째, 실종자 10명이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세월호심판론’을 내세우는 것 외엔 아무런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 야권의 지리멸렬은 논외로 하자. 넉 달 전 스스로를 ‘죄인’이라면서 “살려달라”고 읍소를 거듭했던 이들은 새누리당이었다. 최경환 당시 원내대표는 4월24일 “정말 죄인 된 심정”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도와주세요”라는 손팻말을 들거나,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며 아스팔트 위로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두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새누리당의 대응은 180도로 달라졌다. 7·30 재·보궐선거에서의 ‘11 대 4’ 압승을 “경제를 살리라는 국민명령”(이완구 원내대표)이라면서 면죄부처럼 흔들어댔다. 세월호를 지우고 그 자리에 경제를 채워넣는 모습이 확연해졌다. “경제살리기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면서 끊임없이 위기감을 자극하기도 했다. “우리 입장은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는 것”(주호영 정책위의장)이라고 보상 문제로 초점을 돌렸다. ‘외부 불순세력 개입’ 주장 등으로 색깔론을 덧씌웠고, 세월호 가족들을 국민에게서 분리하는 전략을 쓰기도 했다. 1년 전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진상규명 문제에서 새누리당이 보여줬던 ‘물타기’, ‘치고 빠지기’, ‘침소봉대’ 등의 전략들이 그대로 재현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속에 진정성과 공감이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새누리당이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 어깨를 다독이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좀체 없었다. 세월호 가족들과의 뒤늦은 면담에서 새누리당 협상단이 가족들을 얼싸안는 모습은 차라리 ‘희극’에 가까웠다. 이들에게 가족들의 국회 농성장은 “어디 뭐 노숙자들 있는 그런”(김태흠 의원) 곳이었고, 가족들의 단식은 “제대로 하면 벌써 실려가야 되는 것”(안홍준 의원)인지도 몰랐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오불관언(吾不關焉·나는 상관하지 않겠다)’의 태도를 보이는 사이 세월호 가족들은 점점 고립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신상털이와 마타도어와 조롱이 이어지고 있다. 단식 농성장 앞에서 치킨·자장면을 먹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왜곡된 증오심 앞에 세월호 가족들은 더 이상 국민이 아니라 죄인이었다. 국가는 또다시 “인간을 비인간화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해가려는”(아주대 노명우 교수)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19일 대국민담화에서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8·15 경축사에선 “적폐를 바로잡아 국가재도약의 토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과연 ‘적폐’는 누구의 적폐를 말하는가. 적폐를 바로잡을 ‘골든타임’은 누가 날려버리고 있는가.


김진우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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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못을 따지다가 정 안되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 뭐야?” 이 말은 연령차가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선 “너 몇 살이야?”로 변형돼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말은 일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나와 너의 관계로 일을 해결해 보겠다는 억지라는 데서 기본적으로 똑같습니다. 당신 뭐야라는 물음은 당신이 어떤 권위가 있어서 이렇게 따지느냐는 물음입니다. 일의 옳고 그름을 권위의 있고 없고의 문제로 변질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이죠. 대개 이런 말은 자신의 사회적 권위가 상대방보다 좀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 먼저 꺼내기 마련입니다. 너 몇 살이냐는 물음도 같습니다. 나이가 곧 계급인 사회에서 계급을 밝히라는 것이죠. 물론 딱 보기에도 나이 든 사람이 묻는 게 보통입니다.

이런 억지에 “내가 누군 줄 알기나 해?” 또는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어” 이렇게 반응하면 그 덫에 걸려드는 셈입니다.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뒷전이 되고 상대편의 권위에 맞서는 나의 권위를 찾기에 바쁩니다. ‘내 주장이 옳다’는 ‘내가 더 낫다’로 바뀌는 것이죠. 물론 이는 애초에 상대가 원했던 것입니다. 왜냐면 상대는 자신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거나 빠르게 깨달은 후이니까요. 논의가 변질되면 애초의 시비를 따지는 것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답답함만 더해가죠.

답답하기는 침묵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은데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경우엔 정말 환장할 것 같죠. 그나마 상대방이 친한 사람이거나 아랫사람이라면 불러서 호소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윗사람이어서 불러 앉힐 수도 없는 경우엔 말 그대로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 답답한 침묵은 나와 상대의 힘의 관계를,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힘이 없다는 사실을 더 뼈아프게 보여주기 때문이죠.

상대의 침묵이 지속되면 옳고 그름은 뒷전이 됩니다. 그 침묵 자체가 논란거리가 되기 때문이죠. 어느덧 시비를 따지고 싶은 쪽은 상대방의 침묵을 깨뜨리는 것이 목표가 됩니다. 물론 그래야 시비를 따질 수 있어서이기는 하지만 그 침묵이 유지되는 동안 상대방은 논란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가 침묵을 지킬 수 있는 여력 또는 권력이 있는 쪽이라면 그쪽으로선 더 바랄 것이 없겠죠.

[장도리] 2014년 8월 29일 (출처 : 경향DB)


이렇게 교묘한 억지와 간교한 침묵에 빠지는 것을 상상해 보시죠. 정말 답답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낯설지는 않지요? 이 불쾌한 낯설지 않음은 4월16일 이후 세월호 정국을 헤쳐나가고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사생활을 탈탈 털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자격이 있는지, 어떤 흠이 있는지로 논의를 변질시켰죠. 또 다른 한쪽으로 대통령은 세월호 유가족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함으로써 ‘대통령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대답하라’고 요구하는 사태를 성공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누가, 얼마만큼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고, 얼마만큼의 책임을 물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우리는 그만큼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답답한 것은 지금의 사태가 진실을 밝히고 시비를 가리는 데 발목을 잡고 있어서만이 아닙니다. 나아가 저렇게 무능한 정부가 왜 필요한지, 어떤 정당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한다는 데 있어서도 큰 걱정인 것이죠. 정부가 정당성을 잃으면 가장 큰 피해는 또다시 민중들의 어깨에 고스란히 떨어지니까요. 이런 걱정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것은 국정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키고 나라의 안정을 해치는 커다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을 모르나 봅니다. 억지와 침묵을 당장에 걷어내고 대통령의 의무에 충실할 것을 엄중히 요구합니다.


남태현 | 미국 메릴랜드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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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시국선언과 조퇴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과 이영주 수석부위원장, 이모 교사에 대해 청구한 사전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은 “피의자들의 주거 및 직업관계 등에 비춰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합리적 판단으로 본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가 교사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교원노조법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리자 바로 다음날 김 위원장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 재범 가능성,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 등을 구속 필요 사유로 제시했다. 사안의 중대성은 차치하고라도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를 근거로 든 것은 어이가 없다. 전교조는 수차례 압수수색을 당해 인멸할 증거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핵심 집행부도 아닌 이 교사는 현직 중학교 교사로, 단 하루만 무단결근해도 문제될 처지다. 검찰은 이 교사에 대한 영장 청구서에서 ‘외국에 서버를 둔 특정 메일을 사용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한다. ‘특정 메일’은 전 세계인이 쓰는 구글의 지메일이다. 이렇게 궁색한 근거까지 들이대며 영장을 청구한 것은 ‘괘씸죄’ 적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교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 게시판에 ‘아이들, 그리고 국민을 버린 박근혜 정권 퇴진에 나서는 교사 선언’이란 글을 실명으로 올린 바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하는 시국선언으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과 이영주 부위원장, 이민숙 선생님이 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사전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출처 : 경향DB)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래 전교조에 대한 마녀사냥을 계속해왔다. 국제적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법외노조화를 강행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학교에 복귀하지 않은 전교조 전임자들을 직권면직하겠다고 나섰다. 검찰도 이러한 기조에 맞춰보려다 망신살을 자초한 셈이다. 그나마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불의의 참사로 학생을 잃은 교사가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전해지며 국제적 웃음거리가 됐을 터이다.

교사의 노조활동 자유 보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조건이었다. 한국은 1999년 전교조 합법화와 2004년 공무원노조법 제정 이후에야 특별노동감시국에서 벗어났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박근혜 정부가 역주행을 거듭하는 것은 정권에 비판적인 전교조를 ‘불순세력’으로 몰아 지지층 결집을 강화하려는 통치전략의 일환일 법하다. 하지만 무리한 ‘전교조 죽이기’는 역풍을 부르고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정부는 전교조 배제 전략을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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