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들은 추석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길바닥과 광장에서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채 슬프고 잔인한 추석을 지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는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좋아했던 음식을 한 가지씩 올린 합동기림상이, 광화문광장에는 세월호 유족들과 같이하려는 시민들이 마련한 한가위상이 차려졌다. 진도 팽목항에는 아직껏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실종자들을 애타게 부르는 추석 밥상이 놓였다. 세월호 참사 발생 146일, “추석까지 이렇게 보낼 줄 몰랐다”는 유족들의 호곡이 가슴 저린다. 생때같은 아들딸이 왜 그토록 속절없이 수장되었는지, 그 진실을 알고 싶다는 바람이 이토록 무참히 외면당하고 꺾일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진상규명에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약속한 대통령, 앞다퉈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며 안전한 나라를 다짐한 여야 정치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올린 추석 메시지, 추석 당일 명절 인사에서도 세월호의 ‘세’자도 꺼내지 않았다. 세월호특별법은 고사하고 한데에서 ‘슬픈 추석’을 쇠는 유족들에 대해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부산 자갈치시장을 찾아 상인을 격려하고, 태릉선수촌을 방문하고, 뮤지컬 공연을 관람한 박 대통령의 ‘민생 돌보기’에서 유독 세월호 유족만 제외한 것과 매한가지다. 박 대통령이 소원하는 “국민 행복”의 국민은 대체 어느 국민을 말하는 것인가. 세월호 유족들이야말로 지금 가장 먼저 만나고 보듬을 국민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3일 오후 새누리당과의 세월호특별법 관련 3차면담이 소득없이 결렬되자 국회 본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이 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대통령이 답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세월호특별법 문제를 풀지 않고는 국정도, 정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무책임에다 야당의 무능이 더해지면서 세월호특별법이 마냥 표류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특별법은 방기한 채 무조건 국회 정상화와 소위 민생법안 처리를 야당에 압박하고 있다. 세월호와 ‘민생’을 대립항에 놓고 의도적으로 사회 갈등을 조장해 탈출구를 마련하려는 속셈이라면 참으로 무책임하고 비겁한 짓이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밝히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자’는 세월호특별법의 목적에 충실한다면 길은 나 있다. 쟁점인 진상조사위의 수사권과 특검 추천권 문제의 매듭을 자르면 된다. 박 대통령이 “나를 포함해 청와대와 정부의 사건 관계자 모두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조사를 받겠다”고 진솔히 선언하는 것이다. 정부·여당에 대한 유족들의 깊은 불신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터이다. 새누리당이 세월호특별법의 문턱을 높여놓고 꿈쩍도 못하는 것은 대통령과 청와대 ‘성역 보호’ 말고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만이 꽉 막힌 세월호특별법 문제를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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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우리가 죄인입니까.”

지난 2일 경찰에 가로막힌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절규하듯 한 말이다. 이들은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지 135만여명분을 전달하기 위해 삼보일배를 하면서 청와대로 향하던 중이었다.

세월호 참사 144일째. 추석을 앞둔 세월호 가족들은 ‘거꾸로 선 세상’에 살고 있다. 국가가 발 벗고 나서야 할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가족들이 단식과 농성과 삼보일배까지 하면서 호소해야 하는 세상. 사회적 위로와 공감과 치유의 말은커녕 “시체장사” “유가족충” 등 온갖 모욕의 말과 행동들을 견뎌야 하는 세상. 경제활성화의 발목을 잡는 ‘죄인’이자, 일상 복귀를 바라는 ‘일반 국민’의 바람을 거스르는 ‘반(反)국민’으로, 사회적 ‘왕따’로 몰리고 있는 세상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가슴을 치면서 비통해했던 게 불과 넉 달 전이다. 그때 300여명의 생명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눈뜨고 지켜보면서 했던 수많은 속죄와 다짐의 말들은 어디로 갔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세월호’는 이 지경까지 됐을까.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5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대 앞에 세월호 참사 실종자의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이 선선한 초가을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세월호 참사 143일째, 실종자 10명이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세월호심판론’을 내세우는 것 외엔 아무런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 야권의 지리멸렬은 논외로 하자. 넉 달 전 스스로를 ‘죄인’이라면서 “살려달라”고 읍소를 거듭했던 이들은 새누리당이었다. 최경환 당시 원내대표는 4월24일 “정말 죄인 된 심정”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도와주세요”라는 손팻말을 들거나,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며 아스팔트 위로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두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새누리당의 대응은 180도로 달라졌다. 7·30 재·보궐선거에서의 ‘11 대 4’ 압승을 “경제를 살리라는 국민명령”(이완구 원내대표)이라면서 면죄부처럼 흔들어댔다. 세월호를 지우고 그 자리에 경제를 채워넣는 모습이 확연해졌다. “경제살리기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면서 끊임없이 위기감을 자극하기도 했다. “우리 입장은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는 것”(주호영 정책위의장)이라고 보상 문제로 초점을 돌렸다. ‘외부 불순세력 개입’ 주장 등으로 색깔론을 덧씌웠고, 세월호 가족들을 국민에게서 분리하는 전략을 쓰기도 했다. 1년 전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진상규명 문제에서 새누리당이 보여줬던 ‘물타기’, ‘치고 빠지기’, ‘침소봉대’ 등의 전략들이 그대로 재현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속에 진정성과 공감이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새누리당이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 어깨를 다독이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좀체 없었다. 세월호 가족들과의 뒤늦은 면담에서 새누리당 협상단이 가족들을 얼싸안는 모습은 차라리 ‘희극’에 가까웠다. 이들에게 가족들의 국회 농성장은 “어디 뭐 노숙자들 있는 그런”(김태흠 의원) 곳이었고, 가족들의 단식은 “제대로 하면 벌써 실려가야 되는 것”(안홍준 의원)인지도 몰랐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오불관언(吾不關焉·나는 상관하지 않겠다)’의 태도를 보이는 사이 세월호 가족들은 점점 고립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신상털이와 마타도어와 조롱이 이어지고 있다. 단식 농성장 앞에서 치킨·자장면을 먹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왜곡된 증오심 앞에 세월호 가족들은 더 이상 국민이 아니라 죄인이었다. 국가는 또다시 “인간을 비인간화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해가려는”(아주대 노명우 교수)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19일 대국민담화에서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8·15 경축사에선 “적폐를 바로잡아 국가재도약의 토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과연 ‘적폐’는 누구의 적폐를 말하는가. 적폐를 바로잡을 ‘골든타임’은 누가 날려버리고 있는가.


김진우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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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못을 따지다가 정 안되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 뭐야?” 이 말은 연령차가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선 “너 몇 살이야?”로 변형돼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말은 일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나와 너의 관계로 일을 해결해 보겠다는 억지라는 데서 기본적으로 똑같습니다. 당신 뭐야라는 물음은 당신이 어떤 권위가 있어서 이렇게 따지느냐는 물음입니다. 일의 옳고 그름을 권위의 있고 없고의 문제로 변질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이죠. 대개 이런 말은 자신의 사회적 권위가 상대방보다 좀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 먼저 꺼내기 마련입니다. 너 몇 살이냐는 물음도 같습니다. 나이가 곧 계급인 사회에서 계급을 밝히라는 것이죠. 물론 딱 보기에도 나이 든 사람이 묻는 게 보통입니다.

이런 억지에 “내가 누군 줄 알기나 해?” 또는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어” 이렇게 반응하면 그 덫에 걸려드는 셈입니다.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뒷전이 되고 상대편의 권위에 맞서는 나의 권위를 찾기에 바쁩니다. ‘내 주장이 옳다’는 ‘내가 더 낫다’로 바뀌는 것이죠. 물론 이는 애초에 상대가 원했던 것입니다. 왜냐면 상대는 자신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거나 빠르게 깨달은 후이니까요. 논의가 변질되면 애초의 시비를 따지는 것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답답함만 더해가죠.

답답하기는 침묵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은데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경우엔 정말 환장할 것 같죠. 그나마 상대방이 친한 사람이거나 아랫사람이라면 불러서 호소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윗사람이어서 불러 앉힐 수도 없는 경우엔 말 그대로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 답답한 침묵은 나와 상대의 힘의 관계를,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힘이 없다는 사실을 더 뼈아프게 보여주기 때문이죠.

상대의 침묵이 지속되면 옳고 그름은 뒷전이 됩니다. 그 침묵 자체가 논란거리가 되기 때문이죠. 어느덧 시비를 따지고 싶은 쪽은 상대방의 침묵을 깨뜨리는 것이 목표가 됩니다. 물론 그래야 시비를 따질 수 있어서이기는 하지만 그 침묵이 유지되는 동안 상대방은 논란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가 침묵을 지킬 수 있는 여력 또는 권력이 있는 쪽이라면 그쪽으로선 더 바랄 것이 없겠죠.

[장도리] 2014년 8월 29일 (출처 : 경향DB)


이렇게 교묘한 억지와 간교한 침묵에 빠지는 것을 상상해 보시죠. 정말 답답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낯설지는 않지요? 이 불쾌한 낯설지 않음은 4월16일 이후 세월호 정국을 헤쳐나가고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사생활을 탈탈 털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자격이 있는지, 어떤 흠이 있는지로 논의를 변질시켰죠. 또 다른 한쪽으로 대통령은 세월호 유가족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함으로써 ‘대통령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대답하라’고 요구하는 사태를 성공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누가, 얼마만큼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고, 얼마만큼의 책임을 물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우리는 그만큼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답답한 것은 지금의 사태가 진실을 밝히고 시비를 가리는 데 발목을 잡고 있어서만이 아닙니다. 나아가 저렇게 무능한 정부가 왜 필요한지, 어떤 정당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한다는 데 있어서도 큰 걱정인 것이죠. 정부가 정당성을 잃으면 가장 큰 피해는 또다시 민중들의 어깨에 고스란히 떨어지니까요. 이런 걱정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것은 국정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키고 나라의 안정을 해치는 커다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을 모르나 봅니다. 억지와 침묵을 당장에 걷어내고 대통령의 의무에 충실할 것을 엄중히 요구합니다.


남태현 | 미국 메릴랜드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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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검찰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시국선언과 조퇴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과 이영주 수석부위원장, 이모 교사에 대해 청구한 사전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은 “피의자들의 주거 및 직업관계 등에 비춰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합리적 판단으로 본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가 교사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교원노조법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리자 바로 다음날 김 위원장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 재범 가능성,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 등을 구속 필요 사유로 제시했다. 사안의 중대성은 차치하고라도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를 근거로 든 것은 어이가 없다. 전교조는 수차례 압수수색을 당해 인멸할 증거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핵심 집행부도 아닌 이 교사는 현직 중학교 교사로, 단 하루만 무단결근해도 문제될 처지다. 검찰은 이 교사에 대한 영장 청구서에서 ‘외국에 서버를 둔 특정 메일을 사용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한다. ‘특정 메일’은 전 세계인이 쓰는 구글의 지메일이다. 이렇게 궁색한 근거까지 들이대며 영장을 청구한 것은 ‘괘씸죄’ 적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교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 게시판에 ‘아이들, 그리고 국민을 버린 박근혜 정권 퇴진에 나서는 교사 선언’이란 글을 실명으로 올린 바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하는 시국선언으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과 이영주 부위원장, 이민숙 선생님이 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사전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출처 : 경향DB)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래 전교조에 대한 마녀사냥을 계속해왔다. 국제적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법외노조화를 강행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학교에 복귀하지 않은 전교조 전임자들을 직권면직하겠다고 나섰다. 검찰도 이러한 기조에 맞춰보려다 망신살을 자초한 셈이다. 그나마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불의의 참사로 학생을 잃은 교사가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전해지며 국제적 웃음거리가 됐을 터이다.

교사의 노조활동 자유 보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조건이었다. 한국은 1999년 전교조 합법화와 2004년 공무원노조법 제정 이후에야 특별노동감시국에서 벗어났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박근혜 정부가 역주행을 거듭하는 것은 정권에 비판적인 전교조를 ‘불순세력’으로 몰아 지지층 결집을 강화하려는 통치전략의 일환일 법하다. 하지만 무리한 ‘전교조 죽이기’는 역풍을 부르고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정부는 전교조 배제 전략을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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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제2의 세월호 사고를 막기 위한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대책을 내놨다. 노후선박 연령 제한을 30년에서 25년으로 단축하고 영세 노선에 공영제를 도입하는 게 주된 골자다. 안전투자가 소홀한 노선은 정부가 직접 선사 운영에 참여해 안전관리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신규 선사의 진입 장벽을 해소하고 안전검사 대행을 해외 선박검사기관에 개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세월호 참사가 우리나라 해양사고의 마침표가 되도록 안전대책을 철저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이번 대책의 최대 수혜자는 해수부다. 해운조합이 맡고 있는 운항관리자와 해경의 연안여객선 관리 업무가 정부로 이관되는 데다 공영제 도입도 조직 확대와 맞물려 있다. 세월호 이후 해체 위기를 맞은 해수부의 부활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정부의 지도·감독 강화 방안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안전관리 소홀에 따른 과징금을 3000만원에서 10억원으로 올려 슬그머니 민간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 흔한 안전관리 예산마저 대책에서 빠진 것은 정부 의지의 문제이자 직무유기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 해수부 기자실에서 연안여객선 안전혁신 대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참사의 교훈에 비해 이렇다 할 눈에 띄는 대책도 없다. 그나마 새롭다는 공영제마저 따지고 보면 한낱 수사에 그칠 공산이 커 보인다. 정부는 지금도 영세한 26개 연안 항로에 연간 11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이 공영제로 바뀐다고 뭐가 달라질 것인가. 이번 대책에 포함된 해양안전의날 지정, 연안여객선 현대화 5개년 계획, 항해안전기록장치 의무화 같은 내용은 매년 되풀이돼온 정부 대책의 단골메뉴다. 그나마 선장의 책임성을 강화한다며 제복 착용을 의무화한 것은 실소에 가깝다. 승객을 팽개치고 도망간 이준석 선장이 제복이 없어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수차 지적했듯 세월호 사고는 선사의 탈·불법 행위, 조합의 부실한 운항관리, 정부의 지도·감독 소홀이 빚은 합작품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이런 총체적 부실을 바로잡기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민관 유착의 연결고리인 ‘해피아’에 대한 진솔한 반성이나 개선안이 빠진 것은 유감이다. 정부의 지도·감독 기능을 무력화하는 부패 고리를 차단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돈에 눈이 먼 민간 사업자의 불법행위를 차단할 수 있는 근본 대책도 뒤따라야 한다. 세월호 사고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안전대책을 전면 재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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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단식을 하겠다고 나섰다. 450만명이나 되는 국민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서명했다. 두 아이의 평범한 아버지,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장기간 단식으로 촉발된 국민 동조 단식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김영오씨와 고통을 함께해야 한다는 공감 속에서 시작된 동조 단식은 이제 종교계와 예술계, 정치인, 시민사회단체를 넘어서 일반인들까지 확산되고 있다. 죽기를 각오하고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하라는 동조 단식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왜 이러한 단식투쟁이 군사독재시절도 아닌데, 박근혜 정부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일까.

정치적 저항으로서의 단식은 극한상황에 처해 있을 때 나타났다. 영국의 식민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18회나 단식투쟁을 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감옥 안에서 죄수들의 인권투쟁을 위해서 단식을 했다고 하는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 전 대통령. 1905년 일본군에게 압송돼 대마도에서 곡기를 끊고 죽을 때까지 항일의병 전사로 남은 최익현, 그는 임금이 보낸 마실 물도 거절하고 선비로서의 죽음을 택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죄인이 무슨 낯으로 나라의 물을 마실 수 있겠느냐”며 망국의 분노와 수치심을 단식으로 대신했다.

서슬 퍼렇던 1983년 전두환 정권 시절, 가택연금 등으로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던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회복하기 위해 23일 동안 단식을 감행, 민주화 정치 투사로서의 재기에 성공했다. 평민당 총재였던 DJ(김대중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여권의 보수세력이 총집결, 소수 야당의 존재감이 흔들리고 있을 때였다. DJ는 13일간의 단식을 통해 보수대연합의 내각제 개헌 의도를 막아내고 지방자치제 실현까지, 야당으로서의 평민당 지위를 확실하게 받아냈다. 1970, 1980년대 암울한 시절, 폭압적인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기 위한 투쟁으로 단식을 선택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죽음으로 저항 의사를 표시했다.

정치적 저항운동으로서의 단식, 그것은 자신이 단식으로 내건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죽겠다는 극단의 정치적 의사표시이다. YS는 자신의 회상에서 “의사와 간호사들도 죽어가는 몸에서 나오는 악취로 가득 찬 방에 들어오기를 꺼려 하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시대가 된 지 30여년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릴레이 단식을 하고 있다. 그것도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세월호특별법을 제대로 제정하라고 요구하면서 곡기를 끊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6일째 단식농성을 이어온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8월 28일 단식을 중단한 후 첫 식사인 미음을 먹고 있다. 이날 김영오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단식은 배부른 강자들이 할 이유가 없다.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마지막 수단이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단식을 했던 정치인과 사회운동가들은 더 이상 호소할 방법을 현실 정치에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 단식을 택했다. 지금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단식을 하고 있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 통할 수 있는 수단이 단식밖에 없다는, 불통의 시대, 절망의 정치현실을 웅변하는 것이다.

정치가 갈등과 대립을 풀어내야 한다고, 약자들을 위해서 그 대변자 노릇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은 해묵은 정치학자들의 하소연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 1년반이 지났다. 19대 국회가 출범한 지도 2년여가 훌쩍 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식 잃은 부모들의 절규로, 한사람 한사람 생명의 소중함으로 이어가고 있는 단식 행렬을 때로는 방관자로, 어떨 때는 정치 흥정의 대상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동조 단식이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절망과 분노의 처참한 정치현실을 곡기를 함께 끊어서 희망을 만들어 보자고 하는 것 같다. 힘들고 희망 없는 정치현실이다. 단식의 정치학, 그것은 우리의 정치현실이 무능하고 무력하다 못해, 나쁜 정치인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게 한다. 단식의 정치학으로 세월호 정국이 풀리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정치해법이 들어설까. 더 두렵고 폭력적인 정치해법이 등장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유용화 | 시사평론가·동국대 대외교류硏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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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변협) 전임 회장 7명이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한 변협의 정치적 중립성에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변협 회장을 지낸 정재헌 변호사 등 4명은 어제 위철환 현 회장을 만나 이 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전달했다. 앞서 김두현 전 회장 등 3명도 정 변호사 등과 모임을 갖고 의견을 조율했다. 대부분 보수 성향인 전임 회장들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기소권을 주는 방안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고 한다.

변협은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부터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법률지원을 맡아왔다. 그 일환으로 진상조사위에 독립적 지위를 부여하고 수사·기소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세월호특별법안을 입법청원했다. 성역없는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세월호 가족의 뜻을 반영한 것이었다. 변협의 이러한 활동은 지극히 온당하다. 변협 웹사이트를 보면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독립된 법률전문직으로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할 사명이 있다’고 규정돼 있다. 영미권에서도 변호사를 지칭하는 ‘애드버킷(advocate)’은 본래 ‘옹호자, 지지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변호사는 누구를 옹호하고 지지해야 하는가. 강자, 부자, 다수자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약자, 빈자, 소수자는 그러기 어렵다. 변호사가 옹호하고 지지해야 할 사람은 바로 이들이다. 불의의 참사로 혈육을 잃은 세월호 가족이야말로 변호사가 손 내밀어 마땅한 사람들이다. 특별법 제정을 지원하는 변협의 활동을 정치적 중립성이란 잣대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이유다.

8월 초 세월호특별법에 관한 대한변협의 입장과 여야의 입장 (출처 : 경향DB)


전임 변협 회장들도 “(세월호 가족을 지원하는) 변협 활동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법치주의에 입각해 역할을 잘해달라고 당부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외부에서 갈등을 부추겨 정쟁에 활용하려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전임 회장들의 ‘항의 방문’을 거론하며 “현 집행부가 회원 전체 의사를 반영하고 있는지, 균형 잡힌 시각이 반영된 것인지 돌아보라”고 공격했다. 고통받는 세월호 가족을 돕는 이들을 가리켜 ‘배후세력’ 운운하더니 이제는 변협마저 무력화할 심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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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의 시신이 발견된 후, ‘뉴욕타임스’에 장문의 기사가 실렸다. 그 제목은 “In Ferry Deaths, a South Korean Tycoon’s Downfall”(여객선 사고, 한국의 한 부호의 몰락)이었다. 200개에 육박하는 댓글 중 유독 하나가 눈에 띄었고, 한국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간에서도 화제가 됐다. “북한은 공산주의의 문제를 보여주고, 남한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보여준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물론 그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가 한국 자본주의의 어떤 측면을 폭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문제의 기사를 읽어보자.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목포해양대학원 김우숙 학장은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가 그 정도로 많은 화물을 싣고 그렇게 항해할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세월호에 화물은 곧 현찰이었다.”

세월호가 보여준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는 이런 것이다. 한국선급은 청해진해운이 세월호를 개조했을 때, 그것이 안전의 기준선을 넘지 않았는지 제대로 감독했어야 한다.

한국해운조합은 세월호에 실린 화물이 너무 많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지나치다면 그것을 제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단체다. 만약 지금까지 밝혀진 대로, 세월호가 무게중심을 잃고 쓰러진 이유가 제대로 묶여 있지 않은 컨테이너 때문이라면, 그 책임 중 적지 않은 부분이 한국해운조합에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리해보자. 세월호라는 배는 인천에서 제주도까지의 항로를 수도 없이 오갔다. 세월호 참사는 그 수많은 항해 중 어떤 하나가 잘못되어 벌어진 일이다. 적지 않은 분들은 세월호 참사에서 어떤 음모, 특히 정권 차원에서의 음모를 직감하고 있는 듯하지만, 배가 넘어지지 않았다면 이 참사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가 침몰한 것은,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이 감수했던 ‘위험’의 범위 안에 속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 영리 기업을 감독해야 할 공적 프로세스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선급은 사실상 선주들의 이익단체이고, 한국해운조합의 양심적인 직원들은 문제를 고발할 수 있을 만한 발언권을 갖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배를 가진 사람들은 사실상 외부의 관리·감독 없이, ‘셀프 감시’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연안여객선의 안전 기준이 실제로 점점 후퇴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지난 4월 인천 여객터미널에서 발견된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 내부문건. 인천지부가 지난 23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대비해 내부 문건을 대량으로 파기한 것으로 보인다. _ 연합뉴스


우리가 28사단 폭행 사망사건, 일명 ‘윤 일병 사건’에서 보게 되는 모습이 그와 같다. 현 법체계상, 군의 사단장급 이상 지휘관은 병력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면서, 동시에 사법권도 행사한다. 그러니 본인이 지휘하는 부대가 ‘이상무’이기를 바라는, 그렇게 무사히 전역해서 연금을 수령하는 편안한 삶을 꿈꾸는 지휘관들은, 내부에서 사람을 두들겨 패고 죽이는 일이 벌어져도 그것을 감추려 든다.

한국선급으로서는, 모든 일이 무사히 잘 돌아간다고 가정할 경우, 세월호의 증축과 개조를 문제삼을 필요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28사단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군부대의 지휘관들도 내부의 가혹행위를 그저 덮어두고 쉬쉬하고 싶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28사단 폭행 사망사건. 전혀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한 이유로 ‘참사’가 되어버렸다. 공식적인 지휘 통제권을 가진 누군가가 제 역할을 했더라면 그 피해는 최소화되었을 것이다. 세월호의 선장이 승객들에게 제대로 탈출 안내 방송을 했더라면, 그리고 윤 일병이 소속되었던 의무대의 부사관이 가해자 병장의 가혹행위를 저지했더라면 말이다.

이후의 전개도 비슷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작 한국의 연안여객선 관리의 복마전에 대한 조사 및 처분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듯, 28사단 폭행 사망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군은 자신들이 가진 재판권을 전혀 내놓을 생각이 없다.

여기서 세월호 참사와 28사단 폭행 사망사건의 접점이 보인다. 우리는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그들이 ‘내부’에서 행사하던 관리·감독의 권리를 ‘외부’로 끌어내야 한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을 햇볕으로 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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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어제 단식을 중단했다. 45일 만이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달 14일 단식에 돌입한 김씨는 병원 이송 후에도 식사를 거부해왔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남은 딸 유나양과 노모의 눈물 어린 호소에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정치권이 김씨를 비롯한 세월호 참사 가족들에게 답을 내놓을 때다.

김씨는 목숨 건 단식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잊어가던 시민들의 양심을 다시 깨웠다. 그의 아픔에 공감한 수만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혹은 각자의 일터에서 동조단식에 참여했다.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를 위로하는 장면은 국내를 넘어 국제사회의 관심까지 불러일으켰다. 세월호 가족 뜻과 동떨어진 여야의 특별법 합의가 무산된 것도 김씨 단식의 영향이 컸다.


김씨의 싸움은 그러나 공동체의 부끄러운 민낯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정치의 역할은 국가와 시민이 단절될 때 그 간격을 메우고 소통을 돕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45일 동안 ‘부재중’이었다. 김씨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세월호특별법 처리 전망이 불투명한 점이 이를 방증한다. “진상 규명에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던 대통령은 그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김씨에게 위로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대통령은 대신 영화와 뮤지컬을 보고, 자갈치시장과 태릉선수촌에 갔다. 여당은 청와대 눈치를 보며 야당 뒤편에 숨어 있다가 뒤늦게 떠밀리다시피 세월호 가족과 마주 앉았다. 가족 뜻을 대변하겠다던 야당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들만의 합의’를 들고 돌아왔다. 이제는 협상 테이블에 앉기조차 힘든 ‘잉여정당’ 처지로 전락했다.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가 46일째 단식 중단을 선언한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 동부병원 병실에서 김영오 씨가 병문안을 온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치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일부 언론과 누리꾼은 김씨가 이혼했다는 등의 이유로 ‘아빠 자격’을 문제 삼는 등 악의적 비방을 일삼았다. 유나양이 인터뷰를 통해 해명한 뒤에도 악성 루머와 왜곡보도는 끊이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딸들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와 양육비 통장 사본까지 공개해야 했다.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아비가 ‘2차 가해’에까지 맞서야 하다니, 이 사회의 야만성에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다.

김씨는 “몸을 추스르면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가 싸울 것”이라고 했다. 그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또다시 농성하는 일이 있어선 안될 터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라도 세월호 가족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의 아픔을 감싸안기 바란다. 새누리당도 담대한 태도로 특별법 협상에 임해 조기에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깊이 자성하고 야당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새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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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세월호 유가족 대표단이 어제 만나 세월호특별법 문제를 논의했다. 지난 25일 어렵사리 첫번째 면담을 한 다음 약속했던 2차 협의를 진행한 것이다. 당장의 구체적 성과물 도출 여부를 떠나 국회 입법권을 쥐고 있는 여당이 세월호 유가족과 대화의 자리를 이어가는 것, 어찌 되었든 소망스러운 일이다. 이제 유가족이 동의하지 않는 세월호특별법은 성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세월호특별법이 풀리지 않으면 정국은 정상화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세월호특별법 타협안이 연거푸 두차례나 유가족들에 의해 거부되면서 세월호 정국은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결과적으로 여당과의 합의안을 두차례나 깬 꼴이고, 특히나 유가족들로부터 기본 신뢰마저 잃은 새정치연합은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이끌 동력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다. 새정치연합의 대여 강경투쟁은 “교섭력을 잃은 상태에서 나온 궁여지책”(심상정 정의당 대표)이라는 진단은 핵심의 일면을 꿰뚫는다. 이제 세월호특별법의 꼬인 실타래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풀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누리당과 세월호 유가족 간의 직접 대화는 세월호 정국을 타개하는 불가피한, 아니 유일한 통로라 하겠다.

두 번째 만남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왼쪽)와 세월호 유가족들(오른쪽)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2차 회동을 갖기에 앞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사실 정확한 진실과 책임소재 규명, 재발방지책 마련이라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의 본디 취지와 목적에 충실한다면 ‘매듭 풀기’가 난망한 것도 아니다. 새누리당이 내세우는 사법체계를 흔들지 않고도 여러 가능한 방법이 유가족과 야당 측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여야의 ‘재합의안’을 유가족들이 거부한 것은 진상조사위원회 대신 수사·기소권을 행사할 특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 큰 이유였다. 굳이 ‘사법체계’를 건드리지 않고도, 특검을 추천하는 방식에서 유가족 의사가 강력히 관철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터이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구체적 방안을 거론하며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쓸개를 빼놓고라도 해법을 찾겠다”(이완구 원내대표)는 그 의지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세월호 사고에 대해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있다.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책임 역시 그들에게 주어져 있다. 세월호특별법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집권여당으로서의 책임을 새긴다면, 새누리당이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을 통해 오로지 진실을 밝히기 위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전향적 결단을 내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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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세월호를 기억하며 모인 시민들의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유민 아빠 김영오님은 단식 40일째 되던 지난 금요일 병원으로 이송되었지요. 병원에서도 단식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유민 아빠가 머물던 천막의 빈자리를 보면 가슴 한쪽에 아련한 슬픔이 밀려오지만, 요즘 광화문광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더 많은 시민들께서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루 단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시민들, 벌써 여러 날째 단식을 이어가면서 광장을 떠나지 않는 시민들도 있고, 잠시이지만 시간을 내어 지지방문으로 성원을 보태주는 분들도 많지요. 보태는 방식은 서로 달라도, 그 마음은 하나일 것입니다. 특별법을 제정하여 성역 없이 철저하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자는 것, 그리하여 앞으로 우리 사회가 다시는 그와 같은 참사를 겪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기틀을 함께 만들자는 것이지요. 일상에 바빠서 광화문광장에 들르지 못해도 모든 국민들의 마음은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참사와 관련된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었는데도 참사 넉달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수사권을 가진 경찰과 검찰은 세월호 선원들을 기소한 것 외에는 변죽만 울리고 있지요. 유병언 일가와 그의 도피를 도와준 이들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지만, 그 수사는 유병언 일가의 횡령·배임, 범인도피를 도와 준 이들에 대한 수사일 뿐이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과는 거리가 멉니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아무리 소소한 사건이라도 그 사건의 전말과 진상을 밝히는 것이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상식이지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무엇이 켕기는지 진실규명이라는 소박하고도 당연한 국민들의 요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냥 외면만 하는 게 아니라, 논리도 근거도 없는 궤변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네요.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이 사법체계를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수많은 법학자와 변호사들이 말했는데도, 새누리당은 여전히 그런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수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문명국가가 아니라고 했다지요. 어이없네요. 유가족들은 스스로 수사하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유가족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고 성역 없는 진실규명을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수렴할 수 있는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 유가족과 국민의 요구입니다. 이런 당연한 요구를 그따위로 왜곡하다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합리적 이성을 갖춘 분들인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은 대통령의 책임 있는 결단과 답변을 기다리며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노숙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유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무엇보다 진상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언제든지 다시 찾아오라고 말했습니다. 대국민담화에서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온 국민 앞에서 약속했지요. 그런데도 왜 그저 침묵만 하고 있는지요? 정말이지 대통령의 침묵이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전국 15개 대학의 대학생들과 교수, 시민들이 25일 서울대와 경희대를 출발해 서울 광화문광장에 도착한 뒤 청와대로 행진하려다 경찰에 저지당하자 "평화 행진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어느새 광화문광장은 국민들의 마음의 터가 되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희망을 다짐하며, 따스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연대를 확인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지요. SNS에서 사진 하나를 보았습니다. 서울 서대문구의 시민 30여분이 세월호 가족의 염원과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각자의 이름으로 노란색 현수막을 만들어서 동네 가로수마다 걸어 놓은 것입니다. 노란 리본 달기, 노란 풍선에 마음을 담아 날리기, 사진전시, 막말과 유언비어에 대응하여 진실을 알리기 등 다양하고 기발한 행동으로 국민들은 성역 없는 진실규명과 특별법 제정에 마음을 보태고 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성역 없는 진실규명’을 외치는 국민들의 목소리와 행동이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절대로 끊어질 수 없는 마음과 마음이 모아지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더 크게 들불처럼 번져 나갔으면 합니다. 특별법 제정은 유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안전한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가는데 꼭 필요한 출발점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주권자인 국민의 힘이니까요.


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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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보성씨가 철 지난 마초풍 분장에 주먹을 치켜올리며 “남자는 의리!”를 외치기 시작한 건 꽤 된 일이다.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 웃긴 했으되 그 웃음에 존중은 적었던 것 같다. 차라리 조소의 맥락마저 보였다고 할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모습이 광고와 선거에 무수히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분명한 호감이 들어 있었다. 사회 정의도, 인간에 대한 신뢰도 깡그리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 투박한 의리 주장에 조소 대신 호감을 보이게 된 것이다.

물론 김보성의 의리를 포함, 의리라는 말은 얼마간 걸러질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의리라는 말은 대개 남성들의 인간관계에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현실적 이득을 도모하는 일을 뜻해왔다. 그러나 그건 의리가 아니라 ‘기리’다. 기리는 의리와 한자가 같은 일본말로 ‘자신이 받은 만큼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루스 베네딕트의 일본 문화 연구서 <국화와 칼>은 기리, 즉 일본식 의리를 아예 한 장으로 다루기도 한다.

의리(義理)란 본디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뜻한다. 의리는 남성적인 말도 아니고 사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사적 관계에 불편이나 손실을 초래하더라도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 것, 눈앞의 이해득실을 넘어 대의를 따르는 것이 의리다. 의리라는 말에 정서적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많지만(나 역시 그렇다) 알고 보면 인간의 삶에서 의리만큼 귀한 것도 없다. 공자는 말한다.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의리는 역사와 현실의 큰 흐름과 맥락을 읽게 해주며, 내가 누구인지와 뭘 하고 있는지를 또렷하게 밝혀준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행태는 정치에서 의리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세월호특별법의 두 번째 여야 합의안을 유족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광화문팀, 안산팀 등 네 개의 팀까지 만들어 작업했다. 매우 주도면밀했으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었다.

물론 세월호 유가족도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인이니 정치인들의 ‘현실적 제안’에 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의사자 지정, 대학 특례입학 따위 회유책을 마다하고 ‘기소권과 수사권이 있는 특별법’으로 진실 규명에 집중하기로 했다. 의리를 선택한 것이다. 많은 시민이 그들을 단지 ‘불쌍한 사람들’로 여기지 않고 각별한 존중심을 보이는 이유도 그것이다.

의리를 선택한 사람의 마음을 한낱 정치적 기술로 흔들 순 없는 법이다. 그런데 왜 새정치연합은 이 당연한 이치를 모르고 되도 않는 뻘짓을 해댄 걸까. 그들의 정신세계가 이미 쓰레기통이기 때문이다. 의리가 실종된 정치, 정치적 기술과 타협과 조율은 단지 쓰레기일 뿐이다. 의리를 잃은 정치인은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뭘 하는지조차 모른다.

박영선이 비대위원장 취임 일성으로“투쟁정당을 벗어나겠다” 말하고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 임종석과 이인영이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중도 노선으로 가야 한다” 말한 건 그 일단이다. 그들은 ‘새누리와 다른 게 뭐냐’ 항의하는 사람들 앞에서 매우 진지한 얼굴로 ‘새누리와 다른 게 문제’라고 대꾸한다.


▲ “‘인간이 마땅히 할 도리’가 의리
교황은 예수님에 대한 의리 좇고
김영오씨 단식은 딸에 대한 의리
정치인들은 민심에 의리 지켜야”


오늘 전 지구적으로 정치인의 의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교황이다. 교황이 정치인인가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교황은 정치인 중의 정치인이다. 프란치스코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를테면 왜 교황은 강우일이 아니라 염수정을 추기경으로 임명했으며 기어코 꽃동네를 방문했을까.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교황이 속아서, 몰라서 그렇게 한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만일 그렇게 어리숙한 사람이었다면 애당초 교황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길 위의 신부’ 문정현이 교황이 될 수 없듯 프란치스코는 길 위의 신부가 될 수 없다. 프란치스코는 고도로 세련된 정치인이되, 예수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정치인이다. 그래서 그는 특별한 교황이고 마몬의 세상이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교황이다.

한국 정치인들이 정치에서 의리가 무엇인가를 좀 더 쉽고 생생하게 배우고 싶다면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보면 된다. 그는 메말라가는 제 신체로 한국 정치에서 의리가 얼마나 바닥이 났는지, 민심이 얼마나 의리를 갈구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알다시피 그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금속노조 깃발마저 마다하고 어떤 정치적 기술이나 타협 조율도 거부한 채 오로지 억울하게 죽어간 딸에 대한 의리만 좇았다. 가장 비정치적인 선택으로 일관한 그는 역설적이게도 정치의 중심이 되어갔다.

오늘 대한민국이라는 지상의 지옥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치인에게 바라는 건 단지 의리다. 진정성이 담겨 있는가, 쇼인가를 꼬치꼬치 따지려들 여력도 없다. 그저 눈앞의 이해득실보다 대의를 좇는 정치인을 보며 구멍 뚫린 마음부터 달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멍청하고 멍청한 정치인들아, 민심을 얻고 싶다면 무슨 연합이니 타협이니 조율이니 쓰레기 정치 기술일랑 당장 걷어치우고 의리에 우직해라. 우직한 시늉이라도 해라. 극우 정치인이라면 국가에 대한 의리에, 자유주의 정치인이라면 시민에 대한 의리에, 진보 정치인이라면 민중에 대한 의리에.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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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처서를 지나 이제는 가을 문턱에 걸터앉았다. 때아닌 가을장마가 열대야를 저만치 밀어내고 있다. 가을 바람 한 줄기가 끈적함을 빼앗더니 달아난 입맛까지 돌아온다. 벌초 행렬이 주말 고속도로를 꽉 채웠고 이제는 추석 차례상을 준비해야 할 때다. 가을이 시작됐다. 추석을 코앞에 두고 단식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었다. 2013년 9월의 얘기다. 쌍용차 국정조사 촉구를 요구하며 21명이 대한문 앞에서 단식을 했다. 그 전 2012년 10월엔 같은 장소에서 쌍용차 김정우 전 지부장이 쌍용차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42일간 단식을 했다. 단식은 의식적으로 굶는 행위다. 온몸을 바쳐 절박한 요구를 관철하려는 정치적 행위다. 이런 단식에 숱한 마타도어(흑색선전)만이 횡행했다. 굶어서 무엇이 해결되느냐를 물었고 조롱한다. 심지어 무엇을 먹고 하는 것 아니냐는 악의적인 정치 공세만 높았다. 달래고 으르기만 할 뿐 쌍용차 문제 해결은 결국 없었다.

44일째.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가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단식이 길어지니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김영오씨 신상털기가 한창이다. 이혼 전력과 금속노조 조합원이란 이유를 교묘하게 짜깁기하고 있다. 인과관계 없는 항렬이 조합되고 상관관계 없는 근거들조차 하나로 뭉뚱그려져 공격의 수단이 되고 있다. 가족관계의 슬픔이 공격의 재료로 재등장한다. 44일 단식의 고통이 일반 시민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발악이며 몰염치다. 단 하루라도 굶어본 적이 있는 자들이라면 감히 할 수 없는 짓이다. 오장육부가 말라비틀어지는 경험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인간이라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소금뿌리기다. 이런 정치 공세는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의 주객을 바꿔 청와대와 집권여당으로 응집하는 화살 부러뜨리기다.

김영오 씨에 대한 악성루머 캡쳐본


하루 종일 틀어대는 종편에선 한국 사회에 단식 투쟁이 난무한다고 한다. 단식 투쟁이 무분별하다는 훈계와 조롱만이 커지고 있다. 단식의 절박한 현실은 뒤로한 채 의도와 꿍꿍이가 있지 않으냐는 혐의는 더욱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단식 투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이 같은 한국 사회의 저열하고 졸렬한 정치 때문이다. 조정과 조율의 정치가 작동하지 않은 채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가는 정치 현실이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믿음이 한 자락도 있을 수 있겠는가. 단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위가 잘못이 아니라 모든 수단을 박탈한 채 단식밖에 할 수 없게 만드는 발가벗은 정치가 문제의 원인인 것이다. 이것에 대한 해결은 결국 정치가 자기 자리를 잡아야 하지만 남 탓만 하고 있다.

단식의 후유증은 상상 이상이다. 잇몸이 내려앉고 장기가 헛돌기 일쑤다. 시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기억력은 가뭇거린다. 일상의 회복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장기간의 단식은 생명의 불씨를 작게 만든다. 그럼에도 단식이란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엄중한 현실이 있다. 자식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야 한다 하지 않는가. 어떤 이유로 수백의 목숨이 그렇게 무참히 한순간에 사라진 것인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지 않는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여기다. 세월호특별법이 정치 흥정거리로 추락하고 여야 거래의 산물로 전락하는 현실을 두고 어떻게 단식을 포기할 수 있는가. 길어지는 단식을 무작정 비난하고 중단할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단식을 끝낼 수 있는 여건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병원으로 이송되기 전 사진에 찍힌 김영오씨의 마를 대로 마른 다리를 봤다. 앙상하게 말라 기력 없는 정치, 참혹한 정치가 부른 비참한 현실. 그 모습이 한국 정치다. 어디까지 밀어낼 것인가. 어디까지 죽음의 문턱으로 손짓할 텐가. 죽음을 부르는 정치를 끝낼 방법은 무엇이고 죽음의 사선에서 생명의 불씨를 살릴 방안은 어디에 있는가.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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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은 적어도 세월호특별법 문제에 관한 한 역할이 없다. 새누리당과 합의한 세월호특별법을 두 번 모두 세월호 참사 가족으로부터 거절당함으로써 가족들의 의사를 대변할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어떤 형식이든 다시 협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협상을 요구할 명분도 없다. 새정치연합이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집권세력에 부탁하는 일이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야당의 청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야당이 유가족을 설득하든지, 합의안을 추인하든지 뭔가 해야 한다”며 야당에 책임을 돌렸다. 더 이상 야당이 역할을 할 공간이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문제를 풀려는 자세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밤샘을 하거나 목숨을 건 단식을 하며 박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것은 그것 말고 달리 할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이 세상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것처럼 호언하던 대통령, 여당, 야당이 정작 그들이 필요할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을 듣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이게 바로 4월16일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다. 이렇게 한국의 시간은 4월16일에 멈춰 있다.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일반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동조단식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야당이 어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여야, 세월호 참사 가족이 참여하는 3자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의하자 여당은 즉각 거부했다. 야당이 합의를 깨고 새로 협상하자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다는 이유였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이다. 여당은 야당을 비판할 만한 자격이 있다. 그러나 그건 야당 문제일 뿐이다. 야당을 비판한다고 해서 세월호특별법을 해결해야 할 집권세력의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야당에 떠넘겨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는 있겠지만, 결국 집권세력의 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3자협의체가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찾으면 좋을 것이다. 지금 대화 형식을 따질 때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나라의 국정을 책임진 세력이 세월호 가족을 만나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대화하는 일이다. 그래서 가족의 의사를 수용하든지, 아니면 가족을 설득하든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그게 꼭 야당의 일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아니, 사실은 여당이 앞장서야 할 일이다. 여당이 언제까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서 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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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여야가 협상과 결렬을 반복하며 대립하던 세월호특별법에 합의했으나 유가족의 반발로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여야 원내대표는 어제 핵심 쟁점인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문제에서 국회 몫 위원 4명 가운데 여당 몫 위원 2명을 세월호 사고 유족의 사전 동의를 받아 추천키로 했다. 이는 특검을 야당 추천인으로 임명하고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당초 야당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특검을 누구로 할 것인가의 핵심은 빠진 채 특검추천위원 문제에 맴돈 결과다. 야당 추천 특검이었으면 거둘 수 있는 성과와 비교할 때 한참 부족할 수밖에 없다. 지난 1차 합의 때와 같은 최악은 피했지만, 여전히 최소 수준의 합의에 머물고 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결과는 집권세력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태도 변화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세월호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집권당으로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세력이라면 진상규명에 앞장서고 대책을 세워야 마땅하다. 그러나 7·30 재·보선 승리 이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성찰적 자세를 버리고 세월호 국면을 조기에 끝내는 데만 집중했다. 그 때문에 여야 간 협상이 ‘가장 효과적인 진상규명 방안’보다 그저 무난한 방법을 찾아 절충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야당도 협상력 결여, 지도력 부족, 신뢰 상실 속에서 새누리당에 이러저리 휘둘리다 길을 잃고 여기에 이르렀다.

새누리당 주호영(왼쪽),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정책위의장이 임시국회 종료일(19일)을 이틀 앞둔 17일 오후 교착상태에 빠진 세월호특별법 등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서 회동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유가족들은 이번 합의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1차 합의에서 형식적 절차만 조금 수정한 정도로는 애초 유족 측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런데도 1차 합의의 틀을 유지한 채 미세조정하는 협상으로 일관했다. 여야 합의와 유족 측의 거부가 반복되는 이 과정은 야당의 실패를 넘어 정치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특별법도 여야 간 협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타협이 불가피하다. 유가족 측의 요구를 다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엄정하게 적극적으로 진상을 조사할 수 있는 특검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여야 합의라면 그런 원칙을 반영했다고 당당히 설득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협상에 많은 시간을 낭비했지만, 수용 가능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여야는 이번에 정치적 역량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치적 거부를 당한 여야는 각자 자기 역할을 성찰하며 이 난국을 풀기 위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유족 측의 거부는 정치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치의 기본을 다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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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투항에 가까운 세월호특별법 여야 합의는 국민 여론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여당은 재협상에 응할 의사가 당분간 없어 진상규명 노력은 다시 표류하게 되었다. 실망스러운 야당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집권당도 이번 연휴를 넘기고 나면 만만찮은 여론 압박에 직면할 것이다. 일반 국민이 수긍할 정치적 타협을 어떻게든 이끌어내야만 김무성 체제는 원만한 정국 운영을 꾀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어렵다.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며,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가 압축된 의문투성이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멀리 내다보고 차분하게 대처할 사안이다. 하지만 세월호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 해경 123정의 구조활동이 단적으로 드러낸 해경의 실상을 떠올리는 순간 유가족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참지 못할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수백명 승객과 동료 승무원들마저 내팽개치고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은 비난하기 이전에 이해조차 쉽지 않다. 자신들만 살아난 후 벌어질 일에 그토록 생각이 못 미쳤을까. 더 밝혀야 할 진실이 많다.

해체가 결정된 해경은 유병언 일가와 더불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해경 해체와 소방방재청 조직 개편, 국가안전처 신설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또한 국회에서 장기간 표류 중이다. 진상규명을 위한 정치적 합의의 실패 탓이지만, 문제의 핵심에서 빗나간 해경 해체라는 발상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해경 해체가 옳다면 최근 연이어 사고가 터진 육군 22사단과 28사단 등 대한민국 국군도 해체할 건가.

123정은 순찰과 단속이 주된 업무이지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등 긴급 구조도 당연히 해왔고, 당시 해경 10명과 의경 3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러나 엊그제 재판에서 지휘자들은 여객선 침몰에 대비한 선내 진입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필요한 장비도 없다고 증언했다. 그런 여건에서 50도 이상 크게 기운 대형 여객선을 평생 처음 본 순간, 해경 경력이 30년 넘은 정장도 무척 당황하고 공포마저 느꼈을 것이다. 당장 뒤집힐 듯한 사고 선박에 경비정을 붙여 구조에 나서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은 공개된 동영상에도 확연하다.

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회'를 마친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물론 조사가 더 필요한 어이없고 치명적인 실책들이 많다. 우선 정장은 상황실과 협조하며 출동 과정에서 선장과 적극적으로 통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정장과 선장이 교신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공유하고 승객들이 갑판으로 올라오도록 결정했더라면. 이와 관련해 123정이 선원들만 구하면서 선원인 줄도 몰랐고 선장의 소재를 찾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기가 막힌다. 엔진 과열로 불이 나 어부들이 물에 뛰어든 통통배도 이렇게 엉성하게 구하지는 않는다.

선장 등과 교신해 세월호의 상태를 미리 정확하게 파악했더라면 123정의 행동은 좀 달랐을 것이다. 확성기 방송으로 아이들을 움직이게 했을 것이고, 망치 한두 개로도 창문 여럿을 깨고 인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과 30여분의 ‘골든타임’이었지만 위험을 무릅쓴다면 선내 진입도 가능했다.

도착 직후 승객들에게 퇴선 지시 방송을 반복했다는 정장의 거짓말과 일지 조작 등은 명백히 과실이 아닌 범죄에 해당한다. 유가족과 국민은 해경의 무능과 태만 못지않게 거짓과 은폐에 분노한다. 그러나 해경에 대한 문책은 123정의 하급자들을 비롯해 해경에 투신한 숱한 젊은이들이 느끼고 있는 죄책감과 수치심, 정신적 고통에 대한 성찰과 함께 가야 한다. 문제 해결의 길은 해경 해체가 아니라 혁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여름휴가 중 백사장에 ‘저도의 추억’을 쓰는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리의 바다에는 아름다운 저도를 비롯해 3000개가 넘는 섬과 굴곡 많은 해안과 갯벌이 펼쳐져 있다. 이 자연은 그 자체로 기쁨이요, 많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자 이웃나라와의 경쟁과 갈등의 장이다. 이런 바다를 지키기 위해 유능하고 독립적인 해양경찰은 필수적이다. 국정 책임자는 개인의 추억을 국가 경영의 비전과 실행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김명환 |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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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펠리컨의 새끼 사랑’. 얼마 전 인터넷 메일함에 들어온 글의 제목이다. ‘유인수님’의 글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부리 아래에 주머니가 달려 있는 펠리컨이라는 새가 있습니다. 이 주머니는 펠리컨의 위가 담을 수 있는 양의 무려 3배나 더 담을 수 있습니다. 펠리컨의 주머니는 먹이를 잡을 때 사용할 뿐만 아니라, 새끼들에게 먹이를 줄 때도 사용합니다. 북극 지방에 햇빛이 잠깐 비추는 몇 개월 동안 먹이를 이 주머니에 저장한 후, 먹이를 구할 수 없는 추운 겨울에는 새끼들에게 저장한 먹이를 나누어주어 겨울을 나게 합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을 나기 전에 먹이가 떨어지면 펠리컨은 제 가슴살을 찢어 새끼들에게 먹입니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새끼에게는 자신의 핏줄을 터뜨려 그 피를 입에 넣어줍니다. 어미 펠리컨은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새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칩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펠리컨을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그렇구나.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구나. 만약 펠리컨이 새끼를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새끼에게 먹이기 위해 가슴살을 찢었는데, 핏줄을 터뜨렸는데 갑자기 새끼가 사라지고 없다면 펠리컨은 얼마나 슬퍼할까.

한국에 자식 잃은 부모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던 아들딸을 잃은 부모들의 울음소리가 100일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씩씩한 사나이가 돼서 돌아오겠다며 군대에 갔던 아들을 이유도 모른 채 저세상으로 보낸 부모들의 눈물이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말한다. 유가족들에게.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그래, 유가족들도 일상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도록 보고 싶다. 우리 아들 살려달라.” “대통령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어보면 우리 아들이라고 하고 싶다.”

지난 13일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향하던 유가족들의 외침이다. 유가족들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일상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사랑하던 아들딸을 위해 살던, 사고 이전의 일상으로….

이들의 아들딸을 살려낼 수 있나? 그런데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거지? 가슴살을 찢어도, 핏줄을 터뜨려도 먹여줄 새끼가 없는데….

지금 유가족들에게 돌아갈 일상은 없다. 새로운 일상이 있을 뿐.

12일 국회 본청 앞에서 씨랜드화재참사, 대구지하철참사, 태안해병대캠프참사 등 대형 참사 유가족들이 참가한 '재난안전가족협의회'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들에게 마음의 치유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이번 사건의 진실규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선 이번 참사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거나 유가족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참사의 원인을 바로잡아 ‘내 자식은 억울하게 죽었지만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은 세상에서 산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아이들을 놓아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부터 제대로 만들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 유가족들한테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인지….

‘윤 일병 사건’ 이후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가 잃은 ‘국군사상자 유가족연대’ 부모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자식들 죽음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어떤 어머니는 10년째 아들이 죽은 이유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며칠 전 여군 장교이던 딸의 자살이 상관의 성희롱 때문인 것을 밝혀낸 어머니는 4년 동안이나 이유를 찾아 헤매야 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도 제대로 밝혀내지 않으면 앞으로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일상으로 삼게 될 것이다. 사고예방도 못하고, 구조도 못하고, 뒤처리까지…. 정부가 잘하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김석 비즈n라이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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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다는 말로도 모자란다. 수백 명의 목숨이 달린 경각의 순간에 “깜빡 잊고” 구조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공무원이 있다. 구해야 할 사람이 얼마나 되는 줄도 모른 채 ‘먹통 출동’을 했다는 구조대원도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해양경찰의 부실 대응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법정 진술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드러나면서 다시 한번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제 광주지법에서 열린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재판은 울분과 탄식으로 가득 찼다. 증인으로 출석한 목포해경 소속 123정 김모 정장의 황당한 증언 때문이다. 해경 123정은 세월호 침몰 당시 가장 먼저 사고 해역에 도착하고도 적극적 구조에 나서지 않아 비판을 받아왔다. 법정에서 김 정장은 상부의 선체 진입 지시에 따르지 않은 데 대해 “당황해서 깜빡 잊었다”고 진술했다. 사고 초기 “퇴선 방송을 했다”고 허위 주장을 했던 그는 “거짓말해서 죄송하다”며 사실을 털어놨다. 방송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런 훈련을 안 해봐서 생각 못했다”고 답했다. 김 정장이 “(해경에서 일한) 34년간 침몰사고 관련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자 방청석에서는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헬리콥터를 타고 출동했던 해경 항공구조사들은 “선내에 다수 승객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증언했다. 이들 역시 세월호 침몰과 같은 대형 사고에 대한 훈련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

세월호 모든 실종자들이 가족품으로 돌아오기를, 특별법 제정으로 세월호 진상이 규명되기를, 세월호 참사가 잊혀지지 않기를 기원하며 경기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전남 진도 팽목항을 거쳐 교황이 방문할 예정인 대전까지 걸어서 순례를 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학일씨와 이호진씨가 14일 순례를 마치고 대전 유성성당에서 순례를 함께해 준 사람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앞서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단원고 생존 학생들도 해경의 무능을 생생히 증언한 바 있다. 해경은 그럼에도 자성하기는커녕 거짓말을 하고 근무일지를 훼손하는 등 은폐·조작을 시도했다고 한다. 기막힐 뿐이다. 이게 시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는 공직자들이 할 일인가. 검찰은 구조 부실의 실체를 수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은폐·조작 과정에 해경의 윗선이 개입했는지도 철저히 파헤쳐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도 이제는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하며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옳다. 해경은 국가기관이고, 해경의 무능만으로도 국가의 무능은 덮을 수 없다. 참사의 최종 책임을 유병언 일가에게 돌리려던 시도도 사실상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집권세력이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고 겸허하게 인정할 때 진상 규명과 상처 치유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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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독립적 수사·기소가 가능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과 농성, 집회가 잇따르고 있다. 시민 416명은 그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닷새간의 ‘416 국민농성’에 돌입했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 이후 8년 만에 거리로 나선 영화인들은 엿새째 릴레이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집권세력은 이들의 절규를 언제까지 외면하려 하는가.

‘416 국민농성’은 세월호 참사 발생일인 4월16일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명명됐다. 주부와 대학생, 고교생, 스님, 수녀, 변호사, 용산참사 유가족 등 각계각층이 참여하고 있다. 일부는 고 김유민양 아버지 김영오씨의 단식에도 동참했다. 농성 참가자들은 수사·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결단을 압박하고 있다. 봉준호, 박찬욱, 변영주, 임순례 감독과 배우 문소리, 고창석, 장현성씨 등은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참여했다. 씨랜드 화재 참사 등 9개 재난사건 피해 가족들은 ‘재난안전가족협의회’를 결성하고 세월호 가족의 의사를 존중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고교생 100여명도 광화문광장에 모여 “세월호 유족들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말라”고 외쳤다.

고등학생들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 참석자가 학생들 앞에 나와 발언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시민의 외침은 봇물 터지듯 하는데 새누리당은 오불관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세월호특별법 재협상 요구에 대해 “여야 원내대표간 합의정신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며 사실상 거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는 “법 체계를 흔들지 않는다면 특별검사 추천권을 야당에 줄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휴지조각이 돼버린 원내대표 합의에 매달리는 대신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때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녀를 잃은 유족들이 동의하지 않는 법으로는 어떠한 상처도 치유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새누리당은 집권여당으로서 정치력을 발휘해 재협상이든 추가협상이든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영화인 단식에 동참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이사는 “특별법은 세월호 가족만을 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고,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간명하지만 핵심을 꿰뚫는 이야기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어제 위원장 성명을 통해 “세월호 참사는 유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해법 마련을 촉구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진정으로 진상규명 의지를 갖고 있다면 이 같은 호소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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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416, 세월호


<노트북>으로 유명해진 배우 라이언 고슬링이 2008년도에 찍은 영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Lars and a real girl)>는 언뜻 별나고 정신이 좀 이상한 청년에 대한 영화인 것 같지만, 세월호 사건을 거치고 나서 보니 정신이 좀 아프고 외로운 청년 하나에 대해 동네 전체가 어떻게 그를 돌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시골에 살면서 직장에 다니는 스물일곱 청년 라스는 지나치게 내성적이다. 엄마가 그를 낳으면서 죽고 형은 일찍 집을 나가 외롭게 자랐지만, 외롭게 자란 것치고도 지나치게 내성적이라 아버지가 살던 집에서 임신한 아내와 사는 형이 이사를 들어오라고 해도 꿋꿋이 차고에서 산다. 다른 사람과의 교제도 전혀 없어서 형과 형수는 물론 마을 사람들이 다 걱정할 정도다.

그런데 이 청년이 직장 옆자리 오타쿠 동료가 보여준 사이트에서 리얼 돌, 그러니까 ‘섹스 돌’을 산다. 그런데 이 인형의 원래 용도대로 사용하지 않고, 양갓집 아가씨 부럽지 않게 존엄을 지켜 주면서 휠체어에 태워 비앙카라는 이름을 가진 자기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며 여기저기 다닌다.

형과 형수는 라스의 이상 행동을 걱정하며 온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요즘 애들 약해 빠졌다고 흥분하는 이웃 아저씨도 있지만, 결국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라는 목사님의 말에 이웃들은 모두 라스의 이상한 사랑놀이에 장단을 맞춰준다.

단 한 사람도 라스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사람은 없다. 마침내 비앙카가 위독하다며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라스를 위해 동네 아주머니들이 음식을 만들어 주고 함께 있어준다. 그러면서 ‘친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함께 있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정신이 아픈 이웃을 다 함께 걱정하고 돌보는 동네가 과연 가능할까. 한 사람을 위해 한 동네가 마음을 쓰는데, 큰 상처를 당한 한 동네를 위해서는 과연 몇 나라나 나서면 좋을까.

9월1일 안산에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한 치유공간 ‘이웃’이 열린다고 한다. 이곳에서 집밥을 만들어 줄 봉사자와 잠을 자지 못해 뻣뻣하게 굳어 있는 유가족들의 몸을 온화하게 마사지해 줄 자원봉사자를 찾는다고, 문의는 malyma@daum.net으로 하면 된다고 한다. 나도 가을이 되면 그저 ‘같이 있어’ 볼 생각이다.


김현진 |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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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