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3.22 [정동칼럼]그 관료들이 사는 세상
  2. 2014.10.03 [시론]인터넷 게임, 자율규제는 꿈일까

<한비자>의 관료들은 대체로 무능하거나 복지부동하거나 혹은 그때그때의 보신에 뛰어난 재주를 보인다. 일반인이 한나절 만에 찾아내는 굽은 지팡이는 어떤 관료의 눈에도 띄지 않으며, 남의 벼모종을 먹어치우는 소는 명령이 거듭되어야만 제대로 단속된다. 눈치 빠른 관료는 있지도 않은 백마가 방금 지나갔다고 보고하며, 제후가 거짓으로 손톱을 잃어버렸다고 할 때 좌우의 측근들은 자기의 손톱을 잘라 바친다.

지난 12일 방송통신위원회가 확정의결한 전기통신사업법시행령은 <한비자>의 이런 비난을 자초한다. 이 시행령은 이동통신사들이 청소년에게 휴대전화를 판매할 때 음란물 차단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주기적으로 감시하도록 하였다. 또 그 앱이 삭제되거나 작동되지 않을 경우에는 부모에게 알리도록 하는 의무조항까지 덧붙였다.

이런 규정은 모법의 위임 범위를 넘어선다. 지난해 10월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은 차단 앱의 ‘제공’만 규정할 뿐, 그것을 ‘설치’하고 상시적으로 감시하는 조항은 두지 않았다. 게다가 특이한 앱스토어 정책을 사용하는 아이폰의 경우나 요즘 성행하는 통신판매와 같은 경우에는 이런 앱의 설치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에 앱의 설치 여부나 작동기간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휴대전화의 운영체제를 바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이 정책은 차별적인 동시에 집행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관료들이 만들어낸 이런 식의 황당한 규제들은 비일비재하다. 자정이 되면 어린 게이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고 해서 ‘신데렐라법’이라 이름 붙은 셧다운제를 비롯해, 애매모호한 잣대에다 실질적인 검열이 되어버린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제도 같은 것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별다른 효과도 거두지 못하면서, “청소년 보호”라는 미명하에 사생활의 비밀이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혹은 알 권리와 같은 기본적 권리들을 무참하게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정부가 부모-자녀의 관계에까지 개입하여 해체해버린다는 점에 있다. 청소년 보호라는 말이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면 그 책무와 권리는 부모에게 있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도 말하듯 부모의 양육권은 무엇보다 우선한다. 그래서 차단 앱의 설치 문제는 자녀와 부모 간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시행령은 이런 선택의 기회를 박탈한다. 부모의 몫이어야 할 자녀양육 문제를 정부가 가로채 자녀의 스마트폰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며 그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려 하는지 낱낱이 감시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현시대의 우리 부모들과 자녀들은 이런 고민을 함께할 시간이 없다. 신자유주의의 압박은 모든 부모들이 무한경쟁의 소용돌이로부터 숨돌릴 틈도 못 찾게 만들고, 적자생존만을 외치는 우리 교육체계는 자녀들조차 부모의 시선 밖에서 일상을 보내게 한다. 여기서 부모는 노동자이거나 가계의 경영자 내지는 자녀 입시의 관리자 수준으로 내몰릴 뿐이다. 관료들의 정책 아이디어가 절실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집 밖으로 내몰린 부모들에게 제자리를 찾게 하며, 학생 혹은 청소년으로 호명되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녀라는 이름을 복원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 시행령은 이런 요청을 정면에서 거부한다. 정부가 스스로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고 나서면서, 서로 설명하고 이해하며 공감함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가족의 기회를 박탈해버린다.

셧다운제에 항의하는 청소년들이 여성가족부 앞에서 밤샘게임 시위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비자>가 말하는 예의 관료들은 정확하게 이 지점에 자리한다. 그들은 그저 이런저런 제도나 정책 수단들을 동원하여 모든 청소년들에게 대리부모의 통제 아래 들어서기를 명령한다. 관료들의 무능함이나 약삭빠름이 청소년을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가족이라는 가장 보수적인 가치조차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셧다운제도가 그러했듯, 차단 앱의 설치와 실시간 감시 또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런 제도를 만든다는 것만으로 관료들은 자기 자리를 보전하게 되며, 부모들은 자녀와의 대화보다는 내일 아침의 출근 준비에 전념할 것을 명령받게 된다.

그뿐 아니다.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기에 세간의 걱정거리는 여전히 남아 있거나 혹은 더 커져만 간다. 그리고 그 걱정을 핑계로 관료들은 부랴부랴 또 다른 방안을 찾아 나선다. 없는 것을 있는 것이라 우기거나 이것을 저것이라 둘러대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정책실패-정책과잉의 악순환을 무한반복한다.

이 시행령은 세월호 참사 1주년이 되는 4월16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조차도 책임지지 못했던 이 정부가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윽박지른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통찰도, 그 시행 결과에 대한 예측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해야 하기에 만들었고 만들었기에 시행한다. 그뿐이다. 이것이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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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심야시간대(밤 12시~아침 6시)에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게임 이용을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인터넷게임 제공제한 제도’, 일명 셧다운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해 개선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개선안의 핵심 내용은 부모선택권 확대이다. 부모가 자녀의 심야시간대 게임 이용을 허용할 경우에 한해 셧다운제 적용을 제외할 수 있으며, 재적용도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이다.

게임업계는 2011년 셧다운제를 원치 않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이 심각하다는 여론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올 들어서는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일명 4대 중독 법을 대표 발의하면서 인터넷게임을 마약·도박·알코올과 마찬가지로 중독을 유발하는 물질로 분류했다.

다급해진 게임업계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위원회 회의에서 셧다운제 폐지를 강하게 요구했다. 산업논리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 점유율 하락과 국내 게임사의 해외이전 우려 등을 내세웠고 마침내 부모 선택권제라는 선물을 받았다.

그러나 청소년의 게임중독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셧다운제가 우리 사회에 왜 등장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이후 과도한 게임 이용 또는 게임중독으로 인한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 성인의 게임중독은 점차 감소해온 반면, 청소년의 게임중독은 증가해왔다.

청소년들이 게임에 중독되는 시점도 고등학생에서 점차적으로 중학생, 초등학생으로 내려갔다. 청소년의 게임중독은 특성상 가정 불화와 파괴로까지 이어졌다. 국내 인터넷게임의 성공 이면에는 이러한 폐해가 존재해왔다.

이에 따라 학부모들은 최소한 청소년들의 건강한 수면을 보장해달라고 지난 10여년간 요구했고 그 결과물이 심야시간대 셧다운제였다. 핵심은 게임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초등·중학생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해 심야시간대에만 이용을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셧다운제는 국내 게임업계의 수출과 고용창출 효과의 의미를 훼손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이들의 창의성을 제한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청소년의 건강한 수면을 게임업계도 함께 보호해달라는 학부모들의 요청이었다.

혜화역에서 한 여학생이 셧다운제 폐지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많은 게임 기업들이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게임업계가 논의 초기단계에서 셧다운제를 사회적 공헌활동의 일환으로 받아들였다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게임업계는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는 나쁜 규제라고만 강조하고 있다. 그 와중에 게임은 한편으로 가장 창의적인 콘텐츠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박·알코올·마약과 동등한 위치를 가지는 중독물질로 분류될 수 있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한 규제, 착한 규제는 ‘자율규제’이다. 게임업계와 마찬가지로 학부모들도 궁극적으로 인터넷게임에 대한 자율규제를 꿈꾸고 있다. 게임에 대한 자율규제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학부모, 게임업계, 규제기관 모두가 공동의 노력을 해야 한다.

주목할 점은 자율규제의 핵심은 게임업계에 있다는 것이다. 게임업계가 게임이라는 ‘문화상품’을 생산·판매하고 있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업계가 자율규제를 원한다면 이를 앞당기기 위한 토대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게임 기획단계부터 청소년과 어린이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고, 게임중독과 같은 피해를 회복시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반대편에 있는 학부모·청소년, 시민단체, 관련 전문가들의 평가와 비판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게임업계, 학부모, 규제 당국 모두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불만족을 만족으로 전환시킬 수 있고, 자율적 규제 문화로 진일보할 수 있다.


유홍식 | 중앙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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