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이 참으로 착잡하다. 우리에겐 너무도 간절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성공적 수립을 위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승리하는 게 낫겠다 싶다가도, 그 승리가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더 가파르게 무너지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싶어 마음이 편치 않다. 반대로 민주당이 이긴다면 미국 민주주의의 급격한 붕괴는 어느 정도 막아내겠지만, 트럼프에 대한 강한 반감 때문에 민주당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 과정을 방해하고 나서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세계 최초의 민주공화국 미국이 어쩌다 이렇게 민주주의 문제 때문에 세계의 우환 거리가 되었을까?

미국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한 데 대해 많은 학자들은 하나같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더불어 진행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그 근본 배경으로 지목한다. 그동안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미국의 복지국가 체계를 만들었던 뉴딜 이후의 근간적 사회경제 구조를 흔들면서 그 과정에 적응하지 못한 숱한 하층 노동자 및 실업자 계층을 양산해 냈는데, 민주당은 진보를 내세우면서도 그들을 제대로 대변하고 포용하지 못하며 우왕좌왕했고, 그사이 극우 포퓰리즘이 그들을 정치적으로 포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1일(현지시간) 중간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들을 지지하기 위해 플로리다주 에스테로의 헤르츠 아리나에서 열린 유세집회에 참석해 경례를 하고 있다. 에스테로_AFP연합뉴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미국만큼이나 불평등의 정도가 심각하고, 그 완화를 위한 노력도 부족하다.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정부 때의 민주주의 파괴 시도를 극복해 내었다고 우리 민주주의가 안전할 거라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지금과 같은 심각한 불평등을 방치한다면 그에 대한 반동으로 더 심각한 민주주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 불평등은 단순히 사회적 불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바로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며 광범위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의 체계를 갖춘 포용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민주당은 그동안 증세나 부동산 보유세 강화같이 복지 확충과 불평등 완화를 위한 결정적 조처들 앞에서 늘 머뭇거리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주의 깊고 실효성 있는 실천이다. 단기적인 지지율 관리를 넘어 긴 호흡으로 우리 민주주의의 운명을 생각하는 정치를 기대한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미국식 민주주의가 지닌 근본적인 한계도 놓쳐서는 안된다. 마이클 샌델은 미국이라는 ‘절차주의적 공화국’이 낳은 ‘민주주의의 불만’을 이야기한다. 그는 진작부터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이 공정한 절차만 강조하며 정치 과정에서 모든 도덕적 지향을 몰아내려 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시장논리가 들어서 지배하고 결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되리라 걱정했다. 샌델이 볼 때 정치가 지향해야 할 도덕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애써 괄호 속에 넣어 두려고만 하는 미국식 자유주의 정치에선 결국 원초적인 민족주의적 언사들만이 대중들을 사로잡게 될 터였다.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하고 ‘미국 우선’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대통령이 된 트럼프를 보면, 샌델은 오래전부터 그의 등장을 예견했던 셈이다.

물론 우리 민주주의는 미국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우리 민주주의에서는 오랜 성리학적 전통의 영향 탓인지 미국과는 달리 오히려 정치를 온통 도덕주의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재단하는 도덕정치가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도덕은 너무 적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해야 한다. 법과 공정한 절차도 너무 자주 무시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절차주의의 한계에 대한 샌델의 경고를 약간 초점을 달리해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오랜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조밀하게 잘 짜인 견제와 균형의 제도적 체계를 갖추었지만 트럼프 같은 권위주의자를 제대로 걸러내지도, 제어하지도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절차와 제도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적들로부터 지켜내려 하며 삶의 지향 자체를 기꺼이 거기에 맞추어 내려는 시민들의 태도가 사회적 습관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때에만 살 수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이기 이전에 하나의 가치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개혁만큼이나 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한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도 절실하다. 우리나라는 촛불혁명을 통해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한 모범을 보였다고 자랑하지만, 예컨대 절대 다수의 시민들, 특히 청년들은 제주도에 온 예멘인들의 난민 신청을 수용하지 말라는 의견을 갖고 있다. 이런 상태를 계속 방치해 둔다면, 언젠가 한국판 트럼프가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교육의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자유한국당에서 모처럼 울림이 있는 정책을 내놓았다. 여당에선 “전근대적이고 해괴망측”하다며 비아냥댔지만, 출산주도성장 정책은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길을 언어유희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제안의 핵심은 많은 사람이 비난하듯 여성들을 출산 ATM으로 만들어 출산율을 높이자는 게 아니다. 그보다도, 제안자는 몰랐겠지만 아이가 있는 가정에 스웨덴, 독일, 프랑스 같은 유럽 선진국 수준의 지원금을 지급해 선별복지를 넘어 보편복지로 가자는 것이다.

[시사 2판4판]사람이 먼저다 (출처:경향신문DB)

자유한국당의 제안대로 아기를 낳으면 2000만원, 20세 이하의 모든 국민에게 매년 400만원을 지급한다면 1년에 투입되어야 할 예산은 45조원 정도이다. 큰돈처럼 보이지만, 보편복지를 시행하는 유럽 선진국이 아이 양육지원금으로 사용하는 돈에 비하면 얼마 안된다. 독일에서는 아이가 있는 가정을 위해 해마다 25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다. 프랑스에서도 그에 맞먹는 예산을 사용한다. 여기에 고등학교뿐 아니라 국공립대학의 무상교육을 위해 투입하는 예산까지 더하면 이들 나라에서는 아이 하나가 커가는 동안 우리보다 훨씬 많은 돈을 사용하게 된다. 이에 비하면 45조원은 보편복지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지불해야 하는 통과비용 정도에 불과하다. 이 길목의 통과를 돕겠다는 것이 야당의 출산주도성장이다.

여당에서는 출산주도성장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장난으로만 보는 것 같다. 말장난에 현혹돼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일 터인데, 자유한국당에서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출산주도성장은 사실 소득주도성장의 각론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소득주도성장의 대항담론을 내놓았다고 의기양양해할지 모르지만, 조금만 들어가보면 소득주도성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가 둘 있는 가정에 매달 70만원 가까운 돈이 지급되면 이들 가정의 소득이 크게 늘어나고 이것이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그 돈을 확보하기 위해 고소득자와 지대소득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두면 소득분배 효과도 얻을 수 있으니 출산주도성장이야말로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는 각론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여당이 야당 원내대표의 현 정부에 대한 수준 낮은 비아냥으로 가득 찬 연설 중에 튀어나온 출산주도성장을 거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여당이 야당과의 협치를 모색한다면 진정성이 의심되더라도 출산주도성장을 ‘덜컥’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면 아마 야당도 대통령의 큰 관심사인 판문점선언 비준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출산율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는다. 출산율은 선진산업국가가 되어 에너지소비가 크게 늘어나면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럽 선진국 중에서는 프랑스와 스웨덴이 출산율이 높은 나라에 속하는데, 두 나라의 출산율이 양육수당을 많이 주기 때문에 높은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이미 20년 전부터, 스웨덴은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출산율이 1.9 수준에서 큰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 일인당 에너지소비도 늘어나지 않고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반면에 일인당 소득은 그때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고령사회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일본도 두 나라와 차이가 없다. 30년 전에 비해 소득은 크게 늘었지만 에너지소비는 변동이 거의 없고, 출산율은 1.4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30년 전 1.7 수준이었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인당 에너지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30년 전에 비해 3배가량 늘어났다.

스웨덴, 독일, 프랑스에선 아동 양육지원금을 꾸준히 늘려왔다. 그래도 출산율이 증가하지는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출산주도성장 정책을 펴더라도 출산율이 증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한국당의 제안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것이 보편복지를 본격적으로 열어주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가까운 미래,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획책한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들은 국명을 ‘길리어드’라 바꾸고, 신정주의·전체주의·가부장제에 기반해 나라를 운영한다.

이곳에선 책이 사라진다. 화장품, 대중영화, 개성 있는 의상같이 쾌락을 주는 물건들도 찾을 수 없다. 공개처형이 부활해 가톨릭, 퀘이커 등 ‘이교도’의 시신이 거리에 내걸린다. 인간은 오직 신의 뜻, 혹은 신의 뜻이라고 가장된 국가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 길리어드에서 특히 영향받은 건 여성들의 삶이다. 길리어드는 주변국들과의 오랜 전쟁, 환경 오염 등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극도로 떨어져 있다. 길리어드에는 소수의 남성 ‘사령관’과 그들의 아내가 있다. 아내는 대부분 불임이기에, 조금이라도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들은 사령관의 집에 ‘시녀’로 배속된다. 시녀는 태어나면서 받은 이름을 잊은 채 ‘오브프레드’(‘프레드’의), ‘오브글렌’(‘글렌’의)처럼 사령관의 성(姓)을 이름으로 받고, 사령관의 아이를 임신할 의무를 지닌다. 물론 이 섹스엔 조금의 쾌락도 개입되어선 안된다. 사령관과 시녀의 섹스는 지금껏 그 어느 소설이나 영화에서 묘사된 것보다 기괴하다. 아내가 침대 머리맡에 사지를 벌린 채 자리하면 시녀는 그 다리 사이에 눕는다. 아내는 시녀의 두 손을 잡아, 두 여자가 하나임을 보여준다. 두 여자 모두 옷을 차려입었고, 시녀는 속옷만 벗은 상태다. 사령관은 시녀의 하반신 쪽에 자리해 할 일을 한다. 세 번의 기간 내에 임신하지 못하면, 시녀는 다른 시녀로 대체된다.

오랫동안 서가에 꽂아두고 잊고 있던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1985년작 SF <시녀 이야기>를 마침내 읽은 건 하나의 단어, 하나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단어는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언급한 ‘출산주도성장’이다. 출산주도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대안으로, 아이를 낳으면 출산장려금 2000만원, 성년까지 1억원의 수당을 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각종 복지 수당을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하던 자유한국당이 입장을 바꿔 의아하고, ‘돈 주면 애 낳을 것’이라는 발상이 당황스럽다. 

이미지는 현실 세계에 나타난 ‘시녀’와 관련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시녀 이야기> 속 시녀의 의상을 입은 여성 시위대가 세계 곳곳에 출현했다. 이들은 텔레비전 속 시녀 의상 그대로, 빨간 외투에 하얀 두건을 썼다. ‘시녀 시위대’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앞에 나타났고, 영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반대했다. 아일랜드와 아르헨티나에선 낙태권 관련 시위에 등장했다. 시녀들은 때로 정치인과 법률가들이 자리 잡은 의회의 방청석에 나타나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소설 속에 묘사된 대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침묵했으나, 검은 양복의 남성들 사이에 채도 높은 빨간 의상만으로도 눈에 띄었다. 여성 문제, 특히 낙태 관련 이슈를 제기하는 데 있어서 ‘시녀 복장’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지난달 5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텔레비전 시리즈 ‘시녀 이야기’ 속 ‘시녀’ 복장을 한 시위대가 낙태권에 찬성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소설 <시녀 이야기> 속 아이 낳을 수 있는 여성은 ‘다리 둘 달린 자궁’이자 ‘아기를 담는 그릇’ 취급을 받고, 아이 낳을 수 없는 여성들은 ‘비여성’이라 불린다. 가임 여성은 워낙 적어 귀하게 여겨지지만, 그들은 인간이기에 귀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귀하다. 여성의 출산 능력은 여성 개인의 행복이나 의지가 아니라, 국가의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된다. 일찌감치 애트우드는 ‘애 낳아서 애국하자’는 주장이 횡행하는 디스토피아 사회를 상상하고 경고했다. 33년이 지나 들려온 ‘출산주도성장’이란 해괴한 어휘엔 <시녀 이야기> 풍의 끔찍한 세계관이 깔려 있다. 김성태 의원의 제안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것이라 애써 이해한다 하더라도, ‘출산주도성장’이란 발상에는 그 어떤 여성도 국가경쟁력이나 경제성장을 생각하며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는 당연한 상식이 빠져 있다.

가녀리고 존귀한 생명의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즐겁고 보람있다. 부모의 단점과 장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이와 함께 한 삶을 보내는 것은 우주의 순환을 체험하는 것처럼 경이로운 일이다. 젊은 여성과 남성들이 이 기쁨을 포기하지 않도록,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라의 일이다. 냉소적으로 말해, 젊은이들이 생명체의 근본 목적인 출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회의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크다고 할 수 있나.

붉은 복장의 시녀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낙태권 찬성론자는 말했다. “아이는 그 자체로 선물이지만,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이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온전히 부모의 선택과 기쁨을 출발선으로 삼아야 한다. 국가는 빠져달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달라.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달 취업자가 1년 전에 비해 3000명 늘어나는 데 그치는 등 고용 부진이 심화되고 있다. 급기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저임금 속도조절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최근의 고용 악화는 조선·자동차 등 제조업의 구조조정과 불황이 서비스업으로까지 번지는 경기적 요인에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요인,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 같은 원인에 맞춰 당장의 추락한 고용지표를 회복시킬 단기적 처방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용 여건을 개선할 중장기 대책도 고민해야 한다.

2018 서울국제트래블마트 관광산업 취업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힐튼 호텔을 찾은 구직자가 12일 채용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김영민 기자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을 보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증가는 3000명으로 지난 7월 5000명에 이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실업자는 1년 전보다 13만4000명 늘어난 113만3000명으로 8월 기준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136만4000명) 이후 가장 많았다. 청년(15~29세) 실업률도 10.0%로 8월 기준으로 1999년(10.7%) 이후 가장 높다. 무엇보다 도·소매업 취업자가 12만3000명 감소하는 등 서비스업이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불황으로 내수가 줄면서 서비스업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아르바이트생 고용 등이 줄어든 이유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곤혹스러운 입장이 드러난다. 김동연 부총리는 이날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기 위해 당·청과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최저임금이 고용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에둘러 표현해 오던 김 부총리가 속도조절론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다만 김 부총리는 이미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은 바꿀 수 없고 최저임금 결정 제도의 개선 등을 예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 부총리의 언급에 대해 “소득주도성장의 각론에 대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라며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 악화의 원인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저임금이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최저임금 정책에서도 한국 사회의 최대 문제인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선방안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정부의 노동자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전략에 대한 일부 소상공인들의 우려에 보수정치권이 가세하면서, 지난달 29일 광화문광장에서 소상공인단체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

최저시급 1만원을 주장하는 노동자는 소상공인의 적이 아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본질을 외면하고 해법을 잘못 짚었다. 소상공인 생존권이 위태해진 근본적인 원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로 인한 소득격차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60% 수준이다. 외환위기 시절 77% 수준에서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심각하다.

그 원인의 단초는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 소상공인 1만여명이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 제도 개선 촉구 국민대회’를 열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규탄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당시 정부는 대기업의 수출 주도를 장려했고 대기업에 온갖 특혜를 주었다. 대기업은 고용인원을 감축하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을’의 입장인 비정규직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자영업에도 뛰어들었다. 비정규직의 자영업 진출은 이때부터 가속화되었다. 또한 ‘을’들인 자영업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제적 양극화의 소외된 울타리에 남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30대 재벌 대기업 자산 유보금은 700조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늘어난 유보금이 176조원을 넘는다. 서민들의 가계부채 또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 대기업은 자산 보유액이 늘고 있지만 골목상권까지 잠식하고 있다.

1996년 유통시장 전면 개방 후 대형마트, 백화점, 프리미엄 아웃렛, 복합쇼핑몰 등 대규모 점포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심지어 떡볶이 매장까지 체인화했다. 이로 인해 소상공인, 골목상권은 초토화됐다. 뿐만 아니라 임대료 인상으로 인해 권리금도 회수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현실에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과도한 체인점 수수료로 인해 소상공 영세자영업자들은 초주검에 이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소상공인 생존 문제는 시급 1만원의 문제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온갖 특혜로 자산을 축적한 ‘갑’인 재벌 대기업이 시장경제 침탈과 불공정거래 등으로 ‘을’들인 소상공인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구조에 원인이 있다. 소상공인과 비정규직은 같은 ‘을’들로 동전의 양면이며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이다. 진심으로 서민, 소상공인, 노동자를 생각한다면 보수정당은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 아니라 여야를 넘어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맞물려 돌아갈 수 있도록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정재안 | 소상공자영업연합회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관료들은 내부적으로 치열한 토론이 오갈지라도 이견 자체를 밖으로 잘 표출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관료들 간 갈등이 뉴스의 중심에 서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하지만 문 정부에서는 예외적인 현상이 빚어지면서 한국경제의 한 리스크 요인이 돼 왔다. ‘늘공’(늘 공무원)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어공’(어쩌다 공무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얘기다.

앞서 청와대 개편에서 자리를 지킨 장 실장에 이어 8·30 개각에서 김 부총리가 유임되면서 둘의 갈등은 일단 봉합된 모양새다. 그럼에도 충돌지점을 찾아내고 교정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두 사람을 ‘김&장 갈등’의 프레임에 가둬놓으려는 세력이 엄존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회동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사실 문 정부 출범 초부터 두 사람 간 갈등은 예고된 측면이 있었다. 김 부총리는 지난해 취임사에서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세 개의 축이 필요하다며 사람중심투자,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언급했다. J노믹스의 3대 축 가운데 혁신성장과 공정경제는 포함시켰지만 소득주도성장 대신 사람중심투자를 내세웠다. 필요하다면 논쟁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에게 주문했다. 소득주도성장이 가져올 경제적 논란을 예감하고 좀 더 포괄적 개념인 사람중심투자를 꺼낸 건 아니었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최저임금과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싸고 두 사람의 발언은 온도차를 드러냈고, 경제주체들이 불안해하는 이유가 됐다. 소득분배와 고용 악화를 계기로 최근 김 부총리는 소득주도성장 수정·보완을 암시했고 장 실장은 소득주도성장을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으니 갈등이 더 커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당초 김 부총리는 개혁의 충실한 집행자 역할을 할 것이란 시각이 많았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내건 문 정부의 개혁 밑그림을 장 실장이 짜고 김 부총리는 집행자로 역할이 나뉠 것이란 분석이었다. 김 부총리가 현 정부와 특별한 연줄이 없었다는 점도 이런 분석의 근거였다. 실제 김 부총리를 건너뛰고 여당과 청와대 중심으로 세제개편안 등 주요 경제정책이 결정되면서 김동연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아마 이는 김 부총리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을 가능성이 높다.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의 갈등 이면에는 김 부총리의 사고와 스타일을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장 실장의 책임도 있다고 보여진다. 한편으로는 장 실장이 김 부총리의 개혁성과 추진력에 만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에 우호적인 진보진영에서는 김 부총리가 소득주도성장 방어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최저임금 인상만 아니면 경제가 풀릴 것처럼 야당이 말하는데, 경제부처가 부화뇌동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고 지적한 게 대표적이다.

둘의 갈등을 증폭시킨 외부세력의 책임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보수세력은 ‘소득분배·고용 악화→최저임금 탓→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정책으로 하는 소득주도성장 흔들기→장하성과 김동연 갈라치기→장하성 교체 요구’로 끊임없이 공격을 가했다. 김 부총리가 자유한국당의 비호를 받고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인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다. 소득주도성장이 반기업정책의 상징처럼 돼버린 것도 두 사람의 갈등이 낳은 안타까운 장면이다.

둘의 갈등이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예상외로 갈등의 골이 더 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관가에서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게 금이 가 있다는 말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고, 시장에서도 상당부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서민, 영세상인, 비정규직, 청년들이 많다.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는 걸 막고 포용적 사회로 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둘이 빛 샐 틈 없는 공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찰떡 공조를 이뤄내길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 김 부총리는 개혁성향을 좀 더 강화하고, 장 실장은 보다 실용적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김 부총리는 지난 1월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의 저서 <위대한 탈출>을 읽고 왔다며 한국경제에서 양극화 해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비서진이 써준 원고를 물리치고 본인이 직접 준비했다고 했다. 이런 그가 소득주도성장의 강력한 집행자로 나선들 이상할 게 없다. 현재 소득주도성장을 어려움에 처한 한국경제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참 나쁜 프레임이 횡행하고 있다.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장 실장의 역할이 누구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개혁의 굳은 심지를 유지하되 지혜롭고 유연하게 대처하길 바란다.

<오관철 경제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정부는 28일 내년 예산안을 올해보다 9.7% 늘어난 470조5000억원으로 확정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대폭 증액했던 2009년(10.6%) 이후 10년 만에 가장 확장적인 예산안이다. ‘슈퍼예산’을 통해 고용 악화, 소득 양극화, 저출산, 저성장의 악순환 문제를 극복하고 경제의 역동성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경기가 주저앉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정책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출처:경향신문 DB)

이번 예산안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재정집행의 청사진’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고용과 분배지표가 나빠지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이랄 수 있다. 특히 ‘일자리·복지 예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부문에 예산을 집중 배정했다. 예컨대 일자리 예산을 올해(19조2000억원)보다 22.0% 늘려 사상 최대인 23조5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이를 투입해 취약계층 일자리, 사회서비스·공무원 일자리를 100만개 이상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고용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업급여 확대 및 기간 연장, 전직 훈련, 신중년 재취업을 위한 예산도 일자리와 관련된 것이다. 일자리와 복지 예산을 합하면 전체 예산의 3분의 1이 넘는 35%에 달할 정도다.

혁신성장 관련 예산도 확대했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예산은 전년 대비 14.3% 늘었고, 연구·개발 예산도 증액했다. 연구·개발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었다. 궁극적으로 보면 연구·개발 예산도 일자리 예산이다. 일자리가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데 이번 예산안의 방점을 둔 것이다.

효과가 의심스럽거나 응급 처방으로 보이는 예산도 일부 눈에 띈다. 특히 일자리 예산을 지속 가능한 사업에 투입하는 건지 살펴봐야 한다. 청년고용을 위한 내일채움공제,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은 단기대책일 가능성이 높다. 취약계층 일자리나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 등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좋은 일자리’라고 말하기 어렵다. 또한 혁신성장을 위한 투자의 경우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투자 대비 효용성에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혈세 낭비가 없도록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과감한 보완이 필요하다.

재정확대는 역동성이 떨어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정부는 고용과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행히 세수여건이 양호하고 국가부채비율도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나라의 곳간을 푸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필요하다면 예산을 늘려서라도 경제가 활력을 찾는 데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