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친 걸까 아니면 다른 이들이 다 미친 것인가? 어제 대통령의 일상으로 복귀 명령에 따라 오랜만에 애국하는 심정으로 극장에 들렀다. 메르스 여파로 극장은 한산했다. 텅 빈 객석에서 <매드 맥스>를 보고 나왔지만 계속해서 첫 장면에서의 주인공 독백이 자꾸만 머리에 맴돈다. 최근 마치 ‘닥터 둠’처럼 가는 곳마다 다가오는 대붕괴를 언급하면서 급진적 전환을 외치고 다니는 나도 주인공과 같은 독백을 하곤 한다. 영화에서의 황폐한 디스토피아 풍경처럼 대한민국의 대붕괴가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단단해보였던 기존 압축성장 시대의 경제, 정치, 사회의 모든 틀이, 심지어 지구 자체가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메르스, 저성장, 기후변화 등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기존 문명의 작동불가능을 시사한다. 영화는 녹색 유토피아를 찾아 나선 여정 끝에 놀랍게도 결국 사막만 남아있음에 절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나는 여기서 영화가 끝나는 줄 알고 우울증이 도질 뻔했다. 일어서려고 하는데 놀라운 다음 장면이 이어진다.

아직도 꼰대가 되지 않은 조지 밀러 감독은 도발적으로 다시 그 지긋지긋한 장소로 돌아가는 주인공들의 경이로운 결단을 보여준다. 미치지 않고는 그 지옥과 같은 장소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감독은 우리 모두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우리의 새로운 유토피아는 없음을 안다. 지구 자체가 지금 6번째 대멸종을 심각하게 이야기하는데 이주 준비 클럽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라리 그 지긋지긋한 장소로 돌아가 정면 돌파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정상적인 길은 아닐까? 아직은 너무나 불완전한 돌파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작은 씨앗은 있다. 나는 이를 박원순, 유승민, 손석희, 조성주에게서 본다. 휴, 벌써 지인들이 야단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환청처럼 들린다.

박원순현상. 나는 그의 조치에 다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박원순현상은 기존 압축성장 시스템이 이제 수명을 다해 헐떡이는 상태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시행착오 속에서도 자라나고 있음의 징후이다. 21세기는 연방제적 조직, 개방, 공유, 생명, 안전, 기후변화, 예방, 인간적 도시 등 압축성장 시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키워드의 시대이다. 최근 메르스 사태는 비극이지만 21세기의 모든 비밀을 다 드러내 보이는 시대정신의 출현이다. 만약 지금 혁신 지자체장들이 함께 만드는 박원순현상이 그 거칠고 부족함을 반성하면서 21세기 리더십으로 성숙해간다면 10년 후에는 그래도 다시 희망이 있다.

유승민의 고투. 나는 과거 박근혜 후보가 ‘규율있는 자본주의론’으로 대박을 터뜨렸을 때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당시 이 흐름을 주도했던 유승민 현 원내대표는 최근 천민 보수주의와 제왕적 대통령제에 맞서 연이어 정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극단적이고 자의적 정치, 경제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야말로 대한민국을 건국한 민주공화국 정신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의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그가 여의도의 진흙탕 현실 속에서 좌절하거나 혹은 기대의 배반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제 정신을 가진 보수주의자들이 있어 함께 유승민현상이 더 담대하게 확대되어 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좀 덜 불안할 것이다.

새누리당 유승민(가운데) 원내대표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을 경청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 : 경향DB)


손석희현상. 나는 가끔 이 채널의 <정치부 회의 시간>과 <손석희 뉴스>를 보곤 한다. <비정상회담>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예능 대통령 유재석마저 곧 합류한다고한다. 미디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이다. 극단적으로 힘의 균형이 일그러진 미디어 생태계는 대한민국의 붕괴를 재촉하는 인화물질일 수밖에 없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이 채널이 이후 미국의 MSNBC처럼 성장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조성주는 누구지? 최근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청년유니온 출신의 신세대이다. 난 그의 출마 선언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근래 5년간 이토록 내공과 영혼이 담긴 연설문을 처음 보았다. 그의 등장은 마치 <매드 맥스>에서 기존 체제에 반기를 든 청년처럼 가뭄에 단비와 같다. 그는 청년들을 조연으로만 취급하는 꼰대 체제에 대해 이제 잠자는 거인들인 청년들이 깨어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난 그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 과연 그가 어떻게 성장해갈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주류 언론의 조명 바깥에서는 수많은 조성주가 자라고 있다. 만약 이들이 향후 10년간 무럭무럭 자라난다면 대한민국의 디스토피아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이제는 정직한 절망과 담대한 정면돌파가 필요한 시기이다. 매드 맥스처럼 말이다.


안병진 |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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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혁명의 시대는 아니었으나 시절의 공기에는 혁명의 신열이 가시지 않고 남아 있었다. 군부정권이었지만 군부독재라고 부르기도 힘들었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정권 타도’를 외쳤지만 정권이 정말 타도될 것이라고 심각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시대였다. 몸에 밴 비장함은 영화 속 찰리 채플린의 기계적 움직임처럼 우스웠고, 저마다 비극의 주인공을 자처했지만 실은 소극의 주인공일 뿐이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9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

내가 손석희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도 그 시기였다. 한 장의 사진이 특히 강렬했다. 푸른 수의를 입고 수갑과 포승에 묶인 채 법정에 들어서는 손석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당시 MBC 파업의 도덕적 자신감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기억이 흐릿해 기사를 검색해보니 1992년 사진이라고 나온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른 농가의 피해를 보도하려는 걸 사측이 막자 노조가 파업에 나섰고, 당시 MBC 아나운서였던 손석희도 파업에 참여해 구속됐다.

그때부터 손석희는 내게 직업윤리의 어떤 표상처럼 느껴졌다. 바야흐로 혁명가의 시대는 가고 전문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는데, 손석희는 모름지기 전문가의 마음자세와 직업윤리는 어때야 하는지 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받은 그런 인상에는 이미지 시대의 도래라는 흐름도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다. 여러모로 손석희는 그 시대가 호출하기 제격인 사람이었다.

jtbc가 경향신문의 ‘성완종 인터뷰 녹음파일’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 습득해 내보내는 것을 보고 우울했던 건 그것이 손석희의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매우 단순하다. jtbc는 한 보안 전문가가 경향신문 측으로부터 빼돌린 녹음파일을 받아 경향신문이 인터뷰 전문을 보도하기 7시간 전 방송에 내보냈다. 취재윤리? 어겼다. 남의 것을 훔치고 가로채면 안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논하기 위해 언론학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보도의 공익성, 다시 말해 jtbc의 7시간 전 육성 보도로 새롭게 얻게 되는 진실은? 아무리 봐도, 없다. 간혹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부당한 수단의 사용’류의 윤리적 딜레마 비슷하게 이번 일을 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손석희가 보도의 명분으로 ‘사실과 진실’ ‘국민의 알 권리’ 등을 내세우며 짜놓은 프레임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도해서 얻는 부가적 진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누구도 설명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음성이 문자보다 더 생생하다’는 정도인데, 그 ‘생생함’을 통해 진실의 어떤 부분이 베일을 벗고 드러났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4월 16일자 jtbc 뉴스룸 방송캡쳐. (출처 : 경향DB)


더욱이 경향신문은 김기춘, 허태열, 홍준표, 이완구의 금품수수 의혹 등 주요 내용은 음성파일을 공개한 터였다. jtbc의 보도가 미친 영향은? 하나 있다. 그 시간대 jtbc 뉴스 시청률이 2배 가까이 올랐다고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웠지만 공익보다 사익을 위한 보도였다. 정작 jtbc가 ‘국민의 알 권리’라는 기준을 들이댈 곳이 있다면 jtbc가 보도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진실 혹은 사실과 관련된 건이다. 이를테면 지난해 말 파문을 일으켰던 비선농단 의혹 사건 때 민정수석실로부터 회유를 받았다는 한모 경위와의 인터뷰 음성파일 같은 것이다.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 음성파일을 왜 온전히 방송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손석희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환호는 그가 곧은 언론인으로 살아온 데 따른 응당한 결과물일 것이다. ‘기레기’라는 말에서 보듯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시대에 손석희처럼 신뢰받는 언론인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영향력의 크기만큼 윤리적 책임도 무거워지는 법이다. 이번 잘못을 거울삼아 시민의 지지를 공적으로 선용하는 언론인으로 남기를 바란다.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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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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