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광장에서 터져 나온 지 5주가 지났다. 촛불민심은 영하의 날씨에 들이친 진눈깨비에도 꺼지기는커녕 거세지고 있다. 그만큼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 열망이 뜨겁다는 증좌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일부 정치세력들이 개헌론을 끼워 팔려고 하고 있다. 촛불민심에 편승한 곁불 쬐기다.

최근 개헌 논의 불씨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폈다. 그는 23일 “문제 해결은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탄핵과) 개헌도 동시에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현 시국과 개헌 그리고 제3지대론’ 토론회에는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의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정 전 의장과 손 전 고문은 26일 따로 만나 개헌 논의를 주고받았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개헌 작업도 대통령 탄핵과 함께 추진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개헌 쪽에 서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 28일 (출처: 경향신문DB)

이들은 현시점에서 개헌을 주장하는 게 적절한 일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 시민 10명 중 8명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지만, 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이럴 때 각자 정치세력이 개헌을 부수 안건으로 끼워 팔면 탄핵 추진의 집중력이 떨어질뿐더러, 대오마저 흐트러질 수 있다. 개헌 저의도 의심받고 있다. 친박은 개헌이라는 복잡다단한 의제를 끼워 넣음으로써 탄핵을 늦춰 보려 하고 있다. 야당 내 개헌파는 굳어져 가는 대선판을 뒤흔들어 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개헌은 촛불민심과 동떨어진 것이다. 단 한 차례만 광화문이나 자신들의 지역구 촛불집회 현장에 가 봤으면 알 수 있다. 지난 5차례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외친 구호는 “박근혜는 물러나라, 재벌도 공범이다”였다. 개헌 논의는 여의도에 머물러 있지 광장을 파고들지 못했다.

이들이 진정으로 개헌을 하고 싶다면 탄핵 문제가 해결된 뒤 대선 혹은 총선 공약으로 구체적인 개헌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단지 헌법을 바꾸자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단일한 정치세력으로 뭉치자는 것만큼 정치공학적인 접근도 없을 것이다. 개헌파인 남경필 경기지사도 “정치권 안에서 계속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개헌 논의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했다. 얕은수로 개헌을 추진하다가는 촛불민심이 자신들을 향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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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또 졌다. 어쩌면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안토니오 그람시) 딱 그 상황이다. 여기저기서 야당 ‘씹는’ 게 국민 스포츠가 됐다. 망해야 한다, 무너져야 한다는 소리가 충격요법 축에도 못 낄 지경이다. 비슷한 패배, 비슷한 대책이 반복되면서다. 그래도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번 패배가 치명적이라는, 그 정도다. 역대 최대 의석(130석)으로 패한 선거다. 어디 그뿐인가. 소선거구제 도입 26년 만에 ‘안방’(전남 순천·곡성)까지 내줬다. 중요한 건, ‘그물코’가 빠져버렸다는 사실이다. 호남과 민주화를, 민주화와 새정치를 이어주던 제1야당의 ‘그물코’ 말이다. 앞으로 정치라는 망망대해에서 무엇을 건질 수 있을까. ‘손학규’라는 대어를 잡았다 놓친 세월을 들여다보면 절망적이다.

큰 바다(수권)를 꿈꾸지 않는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지난달 31일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2007년 3월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탈당한 지 7년4개월 만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손 고문을 “안(한나라당)에서도 춥고 밖(대통합민주신당)에서도 추운” 사람이라고 했다. 밖에서 더 추웠다. 손 고문의 한나라당 탈당 이후 “보따리장수같이 정치해서야 나라가 제대로 되겠나”(노무현 전 대통령), “손학규 영입은 정치적 매춘행위”(정청래 의원), “손학규가 민주개혁세력 정체성에 맞나”(이해찬 의원) 등 온갖 화살이 쏟아졌다. 그러면서도 제1야당은 손 고문을 불쏘시개로 썼다. 그것도 가장 추울 때만 골랐다. 두 번 당 대표를 맡겼다. 2008년 18대 총선 직전 수락한 대표직은 ‘독배’라 했다. 당시 통합민주당은 대선 패배 후 18대 총선에서 40석 건지면 다행이라 할 지경이었다. 2010년 10월에 또다시 대표에 올랐다. 7월 재·보궐선거 패배 뒤끝이다. 온갖 보궐선거에 내보냈다. 그것도 가장 어려운 곳만 골랐다. 2011년 4월 경기 분당을에서 이겼지만, 2014년 7월 수원병에선 졌다. 한 당직자는 “손 고문이 새누리당에선 배신자로 몰릴 수 있지만, 적어도 야당에선 헌신하고 희생했다”고 평가했다. 문학평론가 전영태의 저서 <낚시>에 나오는 “우정이란 날씨 좋을 때는 두 사람이 충분히 탈 수 있으나, 날씨가 나쁠 때는 오직 한 사람밖에 탈 수 없는 배”라는 말이 제1야당과 손 고문의 관계일 수 있겠다.

손학규의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 (출처 : 경향DB)


손 고문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는 제1야당 스스로 계파 연합체를 고백한 결과다. 친소관계가 정치의 본질인 정당. NL은 PD를 공격하고, NL과 PD가 연합해서 비운동권을 공격한다. 기어코 ‘나와’ 다른 점을 찾아 배척하는 버릇이 몸에 뱄다. 남 탓하고 반사 이익에 익숙한 정치는 이런 습성에서 비롯됐다. 당 대표보다 계파 수장이 더 잘 챙겨주니, 당 대표보다 계파 수장 의견을 더 따르는 정치문화도 필연적이다. 자꾸 야당만 하느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계파 연합체만 문제가 아니다. 여지껏 야당 정치를 상징하는 변변한 의제 하나 없다. 손 고문은 수권 비전으로 ‘저녁이 있는 삶’ ‘제3의 길’ ‘협동조합기본법’을 내놓았다. 하지만 손 고문은 정통성에 집착하는 제1야당을 극복하지 못했다. 물론 수권에 치중하느라 진보와 중도개혁세력 통합을 당심보다 우선시한 건 전술적 실패다. 야당 문법을 몰랐다는 말이다. 2007년 8월 당 대선 경선 때 “80년 광주에 갇혀선 안된다”고 한 것만 봐도 그렇다.

제1야당 그물코가 앞으로 얼마나 더 찢길지 모르겠다. ‘손학규’ 같은 대어가 줄줄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 뭘 어떻게 하자는 말은 그동안 할 만큼 했다. 당은 버리고 외면했어도 스스로 당을 사랑하고 키워온 사람들에게 이 상황이 얼마나 깊은 죄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지금은 “돌밭을 오래 걸어야 할 때, 발이 아파야 할 때”(신동호, ‘水石’)다.


구혜영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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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재·보선 투표함이 열렸을 때 크게 실망했다. 한마디로 “이건 아닌데…”였다. 심판받아야 할 여당이 되레 승리하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11 대 4로 스코어가 굳어지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차라리 잘됐다”는 거였다. 9 대 6이나 10 대 5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물 손학규의 낙선이 확정됐다. 그때는 벌떡 일어나 쾌재를 불렀다. “바로 이거다!”라며.

정치평론가는 아니지만 정치평론가 뺨치는 정치적 상상력을 보여주곤 하던 친구가 내게 해준 이야기다. 야당 지지 성향 유권자의 심정을 아주 잘 대변하면서도 마지막 부분에 찍은 방점이 독특해서 귀담아들었다. 그는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의 당락을 7·30 재·보선의 최고 관전 포인트로 삼았고 그 결과에 아주 만족했다. 다음날 손 고문이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것을 보고는 박수까지 보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정치적 해석은 이렇다. 손 고문은 인품이나 자질 면에서는 대통령감 1순위다. 하지만 지지도는 그런 평가를 좀처럼 받쳐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손 고문이 갖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다. 국민은 후보의 인품이나 자질을 일일이 따지지 않고 이미지를 보고 투표한다. 손 고문에게는 강렬한 이미지가 없다. 그래서 대통령을 가장 잘할 사람이면서도 대통령이 될 수는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낙선하면서 가능성이 생겼다. 정계은퇴를 하면 그것이 이미지가 되고 나중에 야권이 그를 불러낼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세계에서 전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썩 동의하기는 곤란한 시나리오다. 손 고문의 성격이나 그동안의 정치 행보를 보면 그런 복선을 상상하기도 어렵거니와 의도하지 않게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그가 쉽게 움직일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정계은퇴 선언 이후 그에 대한 정치적 재평가가 활발해지고 그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분명하다. “아름답게 물러나는 것이 보기 좋다” “한국 정치의 큰 손실이다” 등의 평가가 그렇다.

사실 손 고문과 같은 경험과 경륜을 가진 정치인을 현실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대학 졸업 후 민주화운동 8년, 영국 유학 7년, 학계 5년 등 정치권 밖에서 보낸 20년은 인고의 준비 기간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넘나들며 21년 동안 경륜을 쌓았다. 신한국당 등에서는 여러 당직과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했고, 민주당에서는 당 대표에까지 올랐다. 그때마다 수처작주(隨處作主·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뜻)라는 자신의 좌우명처럼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손 고문은 대학 시절 무기정학 중에 무기정학을 받았을 정도로 열혈 운동권이었다. 그런 과거를 내세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격하하지도 않는 그의 태도에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그의 이념 지향과 통합의 정치 노선 등 ‘손학규식 제3의 길’은 그런 깊은 고민과 공부와 경험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진정성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이 있는 삶’은 그런 바탕에서 나온 그의 정치적 꿈의 결정판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이스털린의 역설(경제가 성장한 만큼 사람들의 행복감은 늘지 않는다는 경제이론), 아니 그 함정에 빠져 있다. 성장해도 행복하지 않은 이 함정에서 과감하게 탈출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열심히 일하면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삶이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 시장경제, 즉 경제 민주주의, 복지, 진보적 성장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함께 잘사는 나라, 대한민국의 모습이다.”(손학규, <저녁이 있는 삶>에서)

손학규 著 '저녁이 있는 삶' 출판기념회 당시 모습 (출처 : 경향DB)


1993년 4·23 보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을 때 그는 기자에게 “조직·자금·지명도 면에서 절대 부족한 제가 참신하고 개혁적이라는 이미지만 가지고 뛰어들었는데 국민이 인정해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힘과 돈과 이미지에 의존하는 정치판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정치가 발붙일 여지는 별로 없었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제1야당으로 옮겼지만 야당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름 아닌 그의 은퇴가 증거다.

손 고문의 은퇴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그의 정치적 실패는 우울하다. 돈보다 생명, 성장보다 행복을 중심에 두는 정치에 대한 현실적 기대를 기약 없이 미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이제 누가 말할 것인가. 아니 그런 정치를 누가 할 것인가.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에 묻고 싶은 말이다.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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