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5.17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울보 1학년 선생님
  2. 2015.05.13 대뿌리 선생님

스승의날 카네이션을 다느니 못 다느니 시끄러운 뉴스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새삼 내 삶에서 만난 수많은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좋은 선생님이 많았다. 어떤 분은 전쟁터에 나가려면 반드시 총을 챙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고, 어떤 분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하셨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으니 절망은 금물이라고 얘기해 주신 분도 계셨다. 내가 그나마 남 탓하지 않고 제 깜냥만큼 사는 건 훌륭한 선생님들 덕분일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다.

그는 화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1학년 담임을 맡은 그는 툭하면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아이들 앞에서 난감한 얼굴로 출석부를 교탁에 내리치다 속이 터져 울었고, 교장한테 싫은 소리를 들은 얘기를 은밀하게 전하다가 분통이 터져 울었다.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칠판 쪽으로 몸을 돌려 흐느낄 때면 아이들은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아이들도 1학년, 선생님도 1학년이었다.

스승의날인 15일 오전 서울 풍납동 풍성초등학교 정문에서 한 학생이 선생님에게 꽃을 달아주고 있다. 박민규 기자

여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담임이 울면 시의적절한 위로를 할 줄 알게 되었고, 담임은 울고 나서도 통지표 도장을 받아오지 않은 아이한테 아무렇지 않게 화를 낼 줄 알게 되었다. 양쪽 다 좀 더 편해진 것이다. 그러면서 학교 아래에서 자취를 하던 담임선생님은 체육대회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선뜻 방 열쇠를 내줬다. 아이들은 회의를 하고 나서 담임선생님이 퇴근할 때까지 방에 벌렁 누워 수다를 떨었다. 나로서는 선생님이 먹고 자고 화장하고 음악을 듣는 방을 드나드는 게 세상의 금기를 깨트리는 도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아마도 노련한 선생님이었다면 철없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세상을 선뜻 열어놓지 않았겠지만, 아이들과 좀 더 친밀해지려는 초보 선생님은 모든 것을 드러내줬다. 굳이 훌륭해 보이지 않으려고 했던, 때론 투정하는 친구 같고, 때론 잔소리하는 언니 같았던 선생님과 보낸 일 년은 즐거웠다. 서툴렀던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은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게 덜 두렵지 않았을까? 스승의날, 어디선가 곱게 나이 들고 계실 선생님을 생각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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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담양은 대나무 고장이라 눈에 뵈는 것이 모조리 대나무다. 어려서 대나무 뿌리로 만든 날쌍한 매를 들고 출석부와 함께 교실로 들어오시던 선생님들을 잊지 못한다. 유감스럽게도 저 대나무들이 죄다 매로 보인다. 지금은 대부분 남녀공학이지만 우리 자랄 땐 남녀가 유별하여 거의 합숙소 같은 딴살림. 그 합숙소에선 매일같이 교사에 의한 폭력이 이뤄졌다.

국가폭력으로 국민들을 때려잡던 군사정권. 교사들도 학생들을 상대로 계엄군처럼 군림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자기 기분 따라 매질을 즐겼다. 남학교에선 군대식 얼차려와 귀싸대기로 입시 지옥보다 무서운 주먹세계가 펼쳐졌다. ‘사랑의 매’라는 말은 몽둥이로 개를 잡을 때 쓰는 말로 여겨졌다. 물론 있는 집 자식들은 따로 빼돌려서 매를 아껴주는 센스. 스승의날마다 부끄러움을 아는 일이 먼저라고 난 생각해. 요즘이라고 나아졌는가?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느니 호들갑이지만 더 못 패고 더 차별하고 더 군림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특정일에 노골적으로 돈과 선물을 요구하던 분, 가난한 아이들의 자존심을 짓밟던 분, 개성 넘치는 아이들의 기를 죽이던 분들이 교단에 높이서서 큰소리치던 시절. 그렇게나 애들을 몽둥이로 잡던 교사가 어느 날 갑자기 참교육 전사로 돌변하던 상황도 참 허무극이었다. 시험을 본 다음날이면 온종일 성적순으로 매질이었고 술에 취해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로 첫 교시에 등장하던 이들을 우리는 스승이라 불렀다. 대뿌리 선생님이란 대처럼 꼿꼿해서가 아니라 대뿌리 회초리를 들고 다니던 분의 어이없는 별명이었다. 그런 교사만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지만, 동료를 뜯어말리지 못한 나약한 교사도 결국 한패가 아니었을까?

우리 아이들은 진실하게 눈물 뿌리며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를 수 있길. 구시대의 부끄러움을 아는 이들에게는 스승의날을 한껏 축복하고 싶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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