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철없는 행동’에서 비롯됐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최씨가 삼성의 뇌물을 받은 것은 당시 스무 살도 안된 정씨의 갑작스러운 임신·출산과 관련이 있다. 어린 딸의 장래가 걱정된 최씨는 사람들 눈을 피해 딸을 독일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승마 강국 독일은 승마 선수인 정씨가 그렇잖아도 전지훈련을 가고 싶었던 곳이다. 비선 실세의 존재를 일찍부터 간파한 삼성이 정씨를 위해 그랑프리대회 우승마와 생활비 등을 댔다. 최씨가 재벌·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K스포츠재단을 설립한 것도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딸이 금메달을 따는 데 도움이 되게 하겠다는 계산이 작용했다. 결국 정씨 임신이 ‘독일 승마 유학 → 삼성 뇌물 수수와 K스포츠재단 설립 → 언론 추적 보도와 검찰·특검 수사 → 대통령 탄핵 및 구속 → 조기 대선과 문재인 정부 출범’이라는 나비효과를 불러온 셈이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가 31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공항 게이트에 들어서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9월28일 독일에서 덴마크로 건너가 도피생활을 시작한 지 245일 만에 강제 송환된 정씨는 삼성의 승마 지원 특혜, 이화여대 입학 비리, 재산 해외 은닉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화여대 역사상 최초로 직선 총장이 등장한 것도 정씨가 원인을 제공했다. 이대는 2014년 수시모집 체육특기자 전형에 갑자기 승마를 추가했고 배후에 최씨 모녀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입시비리와 미래라이프 대학과 관련해 이대생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특검과 검찰 수사 결과 이대는 정씨를 뽑기 위해 최경희 당시 총장 주도로 입시 요강을 바꾸고 교수들에게 ‘금메달을 딴 학생을 뽑으라’는 지시까지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가 31일 강제 압송됐다. 지난해 가을 언론의 추적이 시작되자 독일에서 행방을 감춘 지 8개월, 불법 체류 혐의로 덴마크 당국에 구금된 지 5개월 만이다. 정씨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수혜자이자 이대 입학·학사비리의 당사자다. 그런데도 정씨는 “엄마와 박 전 대통령의 관계는 모른다. 저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죄를 짓고도 당당한 모습이 그 어머니에 그 딸임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정씨는 이대 부정 입학과 관련해서도 “학교를 한 번도 안 갔다. 전공이 뭔지도 모른다”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 그러나 부정 입학 의혹이 제기되던 2015년 정씨가 또래들을 조롱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글은 지금 이 순간에도 SNS에 떠돌고 있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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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물러나면 헌정(憲政)이 중단되는가? 대통령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물러나는 소위 하야든, 탄핵을 받아 물러나든, 두 경우 모두 헌정중단은 아니다. 헌정은 쿠데타 등에 의해 헌법과 법의 적용이 멈출 때 중단된다. 대통령이 물러나더라도 국가작용이 헌법과 법에 따라 행해진다면 헌정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원래 헌정이란 입헌정치, 즉 헌법에 의거한 정치다. 따라서 근대 헌법의 핵심인 국민주권주의, 법치주의, 기본권 보장, 그리고 권력분립의 원리가 지켜지는지가 헌정 계속의 판단기준이 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국민의 뜻이 아닌 최순실의 뜻에 따라, 법과 절차를 어기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치를 함으로써 헌정이 파괴되었다. 지금까지 대통령 본인이 담화를 통해 인정한 것이나 여러 언론보도, 사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대통령은 스스로 입헌정치를 중단시켰다. 따라서 정치적인 고려를 일절 배제하고 법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오히려 대통령이 물러나야 비로소 헌정질서가 회복된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공적 직함이 전혀 없는 최씨에게 남북관계 등 국가기밀이 들어 있는 기록물이나 연설문을 직간접으로 유출하고, 최씨나 그 일당에게 장차관 등 공무원 인사권을 위임하거나 또는 무단행사를 방치했다. 최씨의 딸인 정유라가 출전한 2013년 상주경마대회와 관련하여 승마협회를 감사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의 보고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을 좌천시켰다가 끝내 해임시켰다. 스스로 법치주의를 훼손한 것이다.

대통령은 또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 대통령은 무엇보다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선언을 어기고 최씨와 그 일당에게만 각종 특혜를 부여했다. 대통령은 최씨의 딸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부정입학하는 과정에서 불법을 행하거나 최씨의 불법을 방조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이화여대의 자율권을 침해했다. 대통령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이를 행동하는 자유를 가짐에도 재벌회장들의 손목을 비틀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돈을 내도록 강요함으로써 재벌회장들이 양심에 따라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즉 일반적 행동 자유권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

대통령은 또한 권력분립의 원칙을 훼손시켰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통령의 권력을 일개 사인인 최씨에게 양도하고, 친박이라고 하는 측근 여당 의원들을 통해 의회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으로 의회를 장악하거나 의회의 정상적 작동을 마비시켰다. 그리고 감사원이나 검찰 등 사정기관을 측근 인사로 채우는 등의 방법으로 감사기관이나 사정기관의 감시와 견제 기능을 제거했다.

오늘의 국기문란 사태는 대통령 권력을 제대로 견제하고 감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와 달리 우리 국회는 여당이 사실상 대통령에 종속되어 있다. 검찰은 대통령에게는 종속된 것에 비해 의회로부터는 거의 견제 받지 않고 있다. 결국 대통령이 검찰을 장악할 경우 대통령 권력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 입헌 정치의 핵심요소인 권력분립의 원칙이 참담히 무너져버린 것이다.

전대미문의 국기문란 사건을 대하며 국민은 참담하다.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 때,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국민을 불행하게 한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는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라 불리는 현행 대통령제를 폐지하거나 아니면 그 권력을 효율적으로 견제하는 방법을 하루속히 찾아야 할 것이다.

강신업|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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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부영그룹 최고위층이 지난 2월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나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장악한 K스포츠재단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록이 언론에 공개됐다. 재단 관계자가 “부영에서 체육인재 육성사업 5개 중 1개에 대한 시설 건립과 운영지원을 부탁한다. 70억~80억원 정도”라고 주문하자 이중근 부영 회장은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있도록 하겠다. 다만 저희가 부당한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이 부분을 도와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권력과 금력의 노골적이고 추악한 유착의 현장을 이토록 생생하게 보여주는 광경이 또 있을까 싶다. 최씨 측의 안하무인식 지원 요청이나 그 대가로 세무조사를 없던 일로 해달라는 이 회장의 발상은 개발독재 시절을 연상케 한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조사를 받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4일 새벽 조사를 마치고 서초구 중앙지검 별관에서 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해 있다. 연합뉴스

최씨가 ‘조건이 있다면 놔두라’고 말해 거래는 없던 일이 됐지만 아직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부영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지만 회의록 작성자가 만남에 동참한 K스포츠재단 관계자임을 감안하면 부영의 해명을 믿기는 어렵다. 당시 부영은 세금탈루 혐의로 국세청 조사를 받고 있던 터였다. 국세청은 올 4월 부영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된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서 삼성도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낸 출연금 204억원 외에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지원을 위해 35억원을 송금한 사실이 확인됐다. 최씨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그간의 얘기는 거짓이었다. 

기업들은 피해자라며 입을 다물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에 대가성이 없을 리 없다. 당시 SK, CJ, 롯데의 총수들은 검찰 수사를 받던 상황이었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승계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총수 신병 문제와 관련되지 않은 재벌들도 정부의 우대를 기대했을 것이다. 기업들은 박근혜 정권에 노동5법, 원샷법, 서비스산업특별법 같은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따지고 보면 회삿돈을 기업 최고위층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재단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업무상 횡령에 해당할 수 있다.

조만간 정경유착의 실상은 드러날 것이다. 재계가 감추고 부인한다고 은폐될 일이 아니다. 재계는 이제 권력에 의존해 이익을 챙기는 낡은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검은돈을 뿌려 부를 축적하겠다는 발상으로는 글로벌 기업이 될 수도 없다. 이 기회에 검은 거래를 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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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허탈감에 빠졌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교사는 제자가 주는 캔커피조차 부담스럽고 공무원들은 지인과의 일상적인 만남도 기피하는 상황이었다. 공적 영역을 뛰어넘는 초법적인 세계가 실재하고 있었음이 확인되면서 평범한 국민들의 분노와 상실감은 더욱 커져 간다. ‘한국은 샤머니즘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면서 국가 이미지는 추락하고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뻗쳤다.

한식 세계화 사업을 위해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을 지원받은 미르재단의 설립 취지가 무색해졌다. 최순실의 권력이 독버섯처럼 확장되었던 음습한 공간들은 ‘잘나가는’ 강남 사모님의 일상생활 세계, 그들의 권력 공간과 묘하게 겹친다.

언론에 등장하는 최순실의 주요 활동 무대는 강남 사모님의 마법이 시작되는 소비 공간이다. 카페, 레스토랑, 명품숍, 피부 마사지를 받는 사우나에서 호스트바까지. 일부 부유층 여성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사교의 장소이자 외모를 가꾸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뷰티 공간인 것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정권 초기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단정한 외모와 패션 외교를 칭송했다. 패셔니스타 최순실이 골라준 세련된 옷들이 신통한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어디 대통령뿐이랴? 최순실의 마법은 한국 사회에 팽배한 외모지상주의, 명품 소비시장과 결합되어 더욱 강력해졌다.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되는’ ‘미모가 곧 권력’인 한국에서 여성 정치인들은 피부 마사지를 받고 세련된 외모를 유지하느라 고달픈 서민들의 삶과는 자꾸 멀어져 간다.

이제는 초등학교 여교사들조차 예뻐야 학생들이 좋아한다며 방학 때면 성형수술을 받고 외모 가꾸기에 열중한다. 책보다는 옷과 화장품을 사고 도서관보다는 피부과를 찾는 게 한국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실력과 배짱으로 독일을 이끄는 여성 지도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한국에 오면 촌스러운 아줌마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 것 같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화여대마저 최순실의 마법이 통하는 무대로 전락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여자대학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대학가 앞에는 서점 대신 뷰티·소비공간만 즐비하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이대 졸업생들의 존재감은 공적 공간보다는 사적 공간에서 더 위력적이다.

한국의 고학력 전업주부들은 스스로 노력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는 좁은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막강한 재력과 정보력을 무기로 자녀와 남편을 뒤에서 조종해 억눌린 욕망을 실현하는 방식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실제로 요즘 강남에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옷 입고 진학하고 취업하고 결혼하는 ‘아바타’ 같은 젊은이들 천지다. 집 밖에서는 멀쩡한 대장부인데 부인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꼬리를 내리는 생쥐 같은 가장도 의외로 많다. 종교의 힘을 빌려서라도 현세의 부귀영화를 대대손손 누리기를 원하는 일부 강남 사모님들에게 최순실은 최고의 멘토일 수 있다. 재산을 눈덩이처럼 불리고 대학입시 규칙을 바꾸고 국정까지 좌우하는 신묘한 마법의 소유자이니 말이다.

최순실 일가가 수천억원대의 재산을 형성하게 된 배경은 1980년대 강남 빌딩 매입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동산 거래를 통해 막대한 재산을 순식간에 형성할 수 있었던 어수선한 시절, 강남은 복부인을 위한 ‘대박의 땅’이었다. 쉽게 번 돈은 고급 외제차, 명품 옷·가방 구입에 쓰였고, 자녀들의 사교육과 결혼시장으로 흘러갔다.

돈으로 거의 모든 걸 살 수 있는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녀의 결혼은 강남 사모님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젊은 판·검사를 강남 아파트와 고가의 혼수로 유혹해 사위로 삼으면 미래의 고위공무원이 저절로 내 가족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 딸도 커서 나처럼 판사 부인이 되면 정말 좋겠다’는 강남 사모님의 솔직한 고백은 애교에 가깝다. 지방의 가난한 집안 출신 검사가 초고속 승진을 하고 권력을 행사하려면 처가의 든든한 경제력이 필수라는 자조적인 농담 속에서 그녀들은 국가 권력마저 소리 없이 장악해 왔다.

재테크에 밝은 최순실은 국내외 승마장과 동계스포츠 관련 이권에도 주목했다. 실제로 최순실 일가는 동계올림픽 개발 호재를 놓치지 않고 평창 일대 부동산에까지 손을 뻗쳤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말을 구입해야 하는 승마, 장비구입과 빙상시설 이용으로 돈이 많이 드는 동계 스포츠 종목들은 일반인들이 넘볼 수 없는 특권층의 공간이 되기 쉽다. 외동딸의 승마 전지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독일에 거처를 마련하고 K스포츠재단을 통해 해외 진출까지 모색한 최순실의 지리적 상상력은 끝없이 확장 중이었다.

자, 이제 우리 모두 최순실의 마법에서 깨어날 때다. 막대한 돈과 권력을 가졌으나 공식적으로는 무직자이기에 더 자유롭게 활동 영역을 넓혀갈 수 있었던 최순실 세력의 허상을 깨닫고 ‘강남 사모님 공화국’의 실체를 직시하자. 프라다 신발, 명품가방 부러워하면 지는 거다. 어둠 속에 가려 있던 부패의 커넥션이 적나라하게 세상에 드러났으니 진짜 개혁을 시작할 기회가 왔다.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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