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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15 [기자 칼럼]‘맞서 싸우라’는 교황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성경 누가복음에 기록된 구절로, 예수가 죽은 아들의 관과 함께 나온 한 과부에게 한 말이다. 예수가 이 죽은 아들을 살려내는 기적을 행한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으로 향하는 전세기에서 가자지구 취재 중 숨진 기자를 위해 기도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나이트클럽 화재 때는 당시 추기경이었던 교황이 누구보다 먼저 현장을 찾아 직접 구조에 참여하고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교황의 관심은 생명이며 심장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울지 말라’고 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다. 그래서 세월호의 비극을 뒤로하고 이제는 경제를 살려야 할 때라고 부르짖는 이 어두운 땅에서, 교황의 방한은 더욱 강한 빛으로 다가온다. 차가운 권력과 돈의 힘 앞에 깨지고 부숴지기 일쑤인 이들이 교황을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고갈됐기 때문일까. “좀 지겨워. 나도 처음엔 많이 슬펐지만 이제 그만 해야지. 솔직히 나라 지키는 군인들도 아니잖아. 말 그대로 사고야, 사고.” 식당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간혹 이처럼 섬뜩한 얘기를 듣게 된다. 세월호 진상규명은 ‘남의 일’이고, 조금이라도 수입이 느는 것은 ‘나의 일’이다. 물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만, 곡기를 끊고 목숨을 걸 만큼 처절한 ‘남의 일’을 뭉개려 하는 것은 문명에 반하는 야만일 따름이다. 지난 봄, 우리가 흘렸던 눈물이 싸구려가 아니라면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바라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에 힘을 보태야 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경제’라는 논리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속임수로 보인다. 이미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왔고 진상규명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가족들뿐 아니라 이 땅에는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 속의 노동자들이 있다. 오는 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교황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초청받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라는 단 한마디의 메시지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25명의 목숨을 앗아간 쌍용차 사태는 ‘노동계의 세월호’로 불리기도 한다. 구할 수 있는 목숨을 거짓말처럼 잃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이날 광화문광장에는 신도와 시민들 100만 인파가 운집했다. (출처 : 경향DB)


하지만 교황 방한 이튿날인 15일 아침부터 날아든 소식은 심란했다. 노조 파괴 공작과 대량 해고 횡포에 맞서 39일째 노숙 농성 중인 케이블방송 씨앤앰 노동자들을 경찰이 밀어내려 한다는 것이었다. 노조는 “16일 광화문에서 열리는 시복미사를 이유로 경찰이 새벽부터 농성장 주변을 차벽으로 막고 농성대오를 둘러쌌다”면서 “평화와 자비를 바라는 교황의 역사적인 방한 취지에 반해 박근혜 정부가 반인권적 작태를 보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씨앤앰 노동자 99명은 외주업체 변경 과정에서 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해고된 상태다. 앞으로도 더 많은 해고자가 나올 수 있다.

세월호 참사라는 역사적 비극 앞에서도 한국 사회의 민낯은 여전해 보인다. 교황의 메시지가 타인의 아픔을 제 것으로 여기고, ‘돈보다 생명이 우선’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가장 이상적이지만 너무 순진한 바람이라는 것도 안다. 보다 현실적인 바람은 교황의 메시지가 낮은 자들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돼 주는 것이다.

교황은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빈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결단의 시간이다.


박철응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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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