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2.01 자유를 ‘허가’ 받는 ‘이상한 나라의 집시법’
  2. 2016.11.22 혁명학교

처음엔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까지였다. 청와대로부터 1.8㎞. 10월29일의 첫 번째 촛불집회와 11월5일의 2차 촛불집회까지는 그랬다. 매주 광장의 함성이 커질 때마다 시민들은 조금씩 청와대 근처로 갈 수 있었다. 3차 집회는 800m 거리인 내자교차로까지, 4차 집회는 400m, 그리고 지난 주말엔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갈 수 있었다. 청와대 200m 앞까지 진출한 거다.

집회와 시위를 신고하면, 경찰은 금지하고 법원이 조금 더 허용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법원의 행진 허용은 경찰의 금지조치에 빗대면 전향적인 일이지만, 법원도 기본적인 입장은 경찰의 금지와 같은 맥락이다. 다만, 경찰보다는 조금씩 더 허용하겠다는 것뿐이다.

법원이 제시하는 허용의 단서도 웃긴다. 지난번 집회를 보니 질서를 잘 지키고 평화롭게 했으니 이번엔 조금 더 앞으로 나가도 좋다는 허가다. 이건 100만 또는 200만 시민에게 준법서약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찰의 행정작용이 헌법과 법률의 원칙에 맞는지만 판단해야 할 법원이 자기 역할에서 훌쩍 더 나아가 시민의 도덕교사처럼 굴고 있다. 기본부터 다시 확인해보자. 대통령이 앞장서 헌법질서를 유린하는 상황이라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원칙은 원칙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집회의 자유를 가지고, 집회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1조).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집회나 시위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만의 권리가 아니다. 질서를 잘 지키고 평화로운 집회를 한다거나 남들이 버린 쓰레기마저 잘 치우는 착한 시민들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선량하냐, 그렇지 않으냐를 묻지 않고, 이전 집회에서 어떻게 행동했느냐며 전력을 따지지도 않는 거다. 경찰이나 법원 등 국가가 허용하고 말 계제도 아니다.

그런데도 경찰과 법원이 집회를 허용하는 건 희한한 악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때문이다. 집시법은 1962년 12월 제정됐다. 군사쿠데타 직후에 국회가 아니라,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가 만든 법이다. 이 법을 만들었다는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박정희에게 임명장을 받은 쿠데타 부역자들로 구성된 반헌법 유령조직이었다. 여기서 만든 최소한의 형식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법이 여태껏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청와대 근처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건,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선 집회나 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제11조의 규정 때문이 아니다. 집시법 제12조의 ‘주요 도로’ 규정 때문이다. 교통 소통 때문에 주요 도로에서는 집회나 시위를 금지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주요 도로는 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정하는데,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와 모든 자동차 전용도로에다, 서울 16개, 부산 10개 등 전국 88개 도로를 주요 도로로 지정해 놓고 있다. 서울의 1번 주요 도로는 자하문 터널 북단부터 한강대교 남단까지다. 효자동, 광화문, 남대문, 서울역, 삼각지를 아우르는 꽤 긴 코스다. 그나마 1번 주요 도로는 좀 낫다. 2번 도로는 아예 서울 서남부 끝에서 동북부 끝까지다. 부천시와의 경계부터 구리시까지의 경계다. 여기에는 오류동, 영등포역, 여의도, 광화문, 종로, 청량리, 상봉동, 망우동까지가 모두 들어간다. 시내 어디든 경찰이 맘만 먹으면 집회와 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거다.

악법을 만든 박정희도 이렇게까지 무도하지는 않았다. 1962년의 집시법에도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다는 개념은 있지만, 그건 관공서 출퇴근 시간을 기준으로 1시간 전과 1시간 후까지로만 한정된 개념이었다. 만약 박정희가 만든 집시법이 여태껏 남아 있었다면, 주요 도로를 핑계로 집회 금지 통고를 반복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우리는 주로 출퇴근이 없는 토요일에 모인다. 54년 동안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 존속하고 있다는 것도 통탄할 일이지만, 그냥 존속 수준에서 멈춘 게 아니라, 오히려 박정희 때보다 퇴행했다.

청와대는 다섯 번의 촛불집회 내내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기는커녕 꼼수만 부리고 있다. 어차피 기댈 게 없는 사람, 진작 쫓아냈어야 할 사람이니 그렇다 치자. 문제는 국회다.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의 의중만 쫓는 여당은 제쳐놓더라도, 야당이 이러면 안 된다. 촛불 행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반헌법, 반인권 악법을 폐지할 생각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떤 야당 의원이 청와대 앞으로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개정안을 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른 의원들에 비하면 반가운 일이지만, 집시법 문제는 청와대 앞 100m를 30m로 당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집회와 시위를 경찰이 허가하는 근거 법률인 집시법이 남아 있는 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침해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에는 집시법이란 법 자체가 없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집회와 시위가 못마땅할지도 모르겠다. 집회와 시위가 자신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고, 언제나 민원인에게 시달린다고 여길 테니 말이다. 집회와 시위는 기본적으로 평소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우리 시민들, 특별히 가난한 시민들의 권리다. 말로만 민심을 좇는 게 아니라면, 당장 광장을 여는 일부터 해야 한다. 광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집시법이다. 쿠데타 시절보다 못한 퇴행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경찰의 공권력 남용으로 국민의 인권이 침해되고, 헌법질서가 일상적으로 파괴되는데도 잠자코 있는 까닭이 뭔가.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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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오늘 시위가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장면들의 한 주인공은 10대들이다. 그들은 이번 시위에서 최초이자 거의 유일하게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급진적인 성인들도 꺼렸을 단어를 그들은 거리낌없이 내걸었고, 이 싸움이 박근혜 퇴진을 넘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임을 환기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감동할 것 하나를 빠트린 듯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걸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가 가르친 건 이 고약한 자본 체제에서 나만 살아남는 법이었고, 그들의 미래를 위한 최선이라 믿었다. 그런데 혁명이라니, 세상에. 나는 잠시 어쭙잖은 감회에 젖는다.

15년 전 어느 날, 불현듯 나는 한국의 아이들이 전에 없던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발견했다. 동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일제히 사라졌다는 것과 함께 늘 이어오던 중요한 가르침이 일제히 중단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하지만 공부만 잘한다고 훌륭한 사람 되는 건 아니다.’ ‘돈 많이 벌면 좋지. 하지만 사람이 돈만 알면 죄 받는 법이란다.’ 상하좌우를 막론하고 제정신을 가진 어른이라면 으레 아이에게 거듭하던 가르침이었다. 한국 교육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아니라 ‘얼마짜리가 되는가’에 관한 일이 되면서 가르침은 사라졌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죄책감을 물리치기 어려웠고, 어린이 책 출판과는 전혀 무관하던 나는 ‘고래가그랬어’를 만들게 되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2014년 ‘고그’(아이들은 ‘고래가그랬어’를 이렇게 부른다)의 지면 개편은 전에 없이 심각했다. 고그는 ‘어린이 교양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아이들에게 직접 강의하는 방식의 콘텐츠는 지양해왔다. 학과 공부에 짓눌린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공부거리를 만들어줄 게 아니라, 함께 놀며 느끼는 동무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이 원칙을 재고하게 했다. 동료들과 나는 ‘그들은 왜 가만있었을까’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즈음 방한한 놀이터 연구가 귄터 벨치히는 우리에게 ‘독일 학생들이라면 절대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고, 대부분 생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의 실종이 아이들의 목숨마저 위협하는 긴급한 현실에서 고그의 원칙은 지나치게 낭만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조기 교육을 해야 할 건 영어도 수학도 아닌 민주주의였다. 사회, 경제, 역사, 과학, 생태 등 전문가들의 흔쾌한 참여로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라는 이름의 지면 강의 섹션이 생겨났다.

옛 혁명가들이 파업을 ‘노동자의 정치학교’라 일컬었듯, 시위는 ‘시민의 민주주의 학교’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순간 전국 도처의 공간에서 각양각색의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자치적 민주주의 학교를 목격한다. 이번 시위는 고질적인 진영 논리를 넘어서 합리적 성향의 보수 시민들까지 참여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늘 시민들의 일반적 의식 수준과는 워낙 동떨어진 1970년대의 망령이 부활한 사건이다 보니 생긴 역설적 현상이다. 덕분에 시위는 왕의 목을 잘라본 경험이 없고, 스스로 공화정을 만들지 못한 탓에 살아남아 내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전근대적 병증들을 치유하는 학교 노릇을 하게 되었다.

이 시위가 갖는 또 하나 각별한 의미는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태어나 거의 처음으로 무기력한 각자도생의 태도를 벗어난 어른들을, 나와 내 새끼를 넘어 ‘사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며 함께 싸우는 어른들을 보고 있다. 시민의 민주주의 학교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민주주의 학교가 되고 있다. 이 귀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좀 더 긴장하고 좀 더 성찰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교육에 대한 전향적 태도 변화를, 교육을 아이가 ‘얼마짜리가 되는가’에 관한 일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관한 일로 바로잡는 일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이 시위에서 갖는 자부와 희열만큼이나, 이 시위가 배제한 시위와 배제된 사람들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주요한 노동 의제를 가진 시위에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참여했던가. 우리는 단지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동정하지 않은 게 아니라, 대다수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싸움을 외면해왔다. 우리는 시위의 방식을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외면했다. 가장 간절하게 평화 시위를 원하는 사람들은 까마득한 고공이나 길바닥에서 몇달 몇년을 먹고 자며 싸워야만 하는 사람들과, ‘폭력적’이라 손가락질받으면서도 공권력과 격렬히 충돌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왔다. 10대들은 이미 ‘비폭력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위는 시민의 민주주의 학교이자 아이들의 민주주의 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학교는 시위의 시간을 넘어 지속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학교는 상당 기간 사회와 사회 성원의 가장 중요한 일이자 사명이어야 한다. 민주주의 학교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아가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힘과 지혜를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 민주주의 학교는 가급적 평화로워야 한다. 그러나 평화의 진열이 민주주의 학교의 목적은 아니다. 민주주의 학교의 목적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 혁명이어야 한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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