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들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숙의 결과를 입맛에 따라 왜곡·과장하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어제 “숙의민주주의 이름을 빌려 국가 주요 현안을 결정하겠다는 발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탈원전을 명목으로 국가 에너지 정책을 급선회하는 것은 국익 자해행위”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공론화위원회를 법적 근거가 없는 단체로 규정했다.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은 정부가 국민의 결정이란 궤변을 앞세워 공론조사를 이용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공론화위의 발표 직후에는 집단지성이니 이성의 승리니 하더니 주말 사이에 평가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아무리 정치인의 말이라고 해도 그 표변이 당혹스럽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10월23일 (출처:경향신문DB)

공론화위의 결론은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를 재개하되 원전 비중을 줄여나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야당은 앞부분은 받아들이면서 탈원전 정책에 대한 지지는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편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아전인수식 행태이다.

공론화위가 원전 공사 재개를 넘어 탈원전 정책까지 권고한 것이 월권이라는 주장도 군색하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자체만 놓고 독립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향후 에너지 수급과 원전의 비중을 어떻게 할지, 거기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 능력은 어떻게 될지까지 다각도로 고려해야 한다. 공론화위 설치 근거인 국무총리 훈령에 ‘위원장이 (신고리) 건설 중단 여부 공론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을 심의 의결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이를 감안한 것이다. 따라서 원전 공사 재개 여부만 떼어놓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단순 논리이자 과장이다. 대통령이 국회를 거치지 않고 전문성이 없는 공론화위를 통해 결정한 것이 문제라는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라면 애초에 공론화위의 공사 재개 결정도 거부했어야 옳다.

정당의 주장이라 해도 최소한의 논리와 일관성은 갖춰야 한다. 집단지성이라고 한껏 상찬해놓고 나중에 비전문가인 민간인들에게 맡겨선 안된다고 하면 누가 그 당을 신뢰하겠는가.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방향에 찬성하는 의견이 60.5%로 반대한다는 응답(29.5%)의 2배를 넘었다. 탈원전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반영한 결과이다. 자기 입맛대로 왔다 갔다 하면서 뻔히 보이는 주장을 하는 것은 시민을 우롱하는 행위다. 정략을 위해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야당은 공론화위 왜곡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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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가까운 교수 한 분이 재미난 그림 하나를 보여줬다. 이정문 화백이 1965년에 그린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란 제목의 그림이었다. “앞으로 35년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달라질까”란 부제를 달고 있었다. 1965년이라면 필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이다. 그런데 그 그림에는 태양열을 이용한 집, 전파신문(오늘날 전자신문), 컴퓨터, 전기자동차, 움직이는 도로(요즘의 무빙워크), 소형 TV 전화기(영상통화 가능한 휴대전화), 청소 도우미 로봇, 원격진료, 원격학습 등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기기와 설비, 서비스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단 하나 지금과 다른 건 로켓을 타고 달나라로 수학여행 가는 상상뿐이었다.

만화가인 이정문 화백이 어떻게 그렇게나 미래를 잘 맞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1941년생으로 당시 청년이었던 그는 부지런히 신문을 읽으며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앞으로 도래할 세상을 상상했다고 한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현실에서 자라고 있는 변화의 씨앗을 놓치지 않은 거였다.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경주 지진발생 1년을 맞아 대규모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자 '안전의 여신상'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앞으로 35년 뒤는 2052년이다. 어림잡아 2050년경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까? 변화의 씨앗이 어디에서 자라고 있을까? 무엇보다 세계는 재생가능에너지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놓치기 어려울 정도로 분명하다. 많은 문서와 기사, 다양한 수치들이 그런 변화를 이미 입증하고 있다.

사실 미래라기보다는 이미 현실이다. 재생가능에너지는 2016년 전 세계 신규 발전 설비 용량 중 62%,신규 투자 중 63.5%에 달했다. BMW, GM,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필립스, 나이키, 월마트 등 굴지의 세계 기업들이 2025년이나 2030년까지 100%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을 쓰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선언 기업 수가 최근 106개로 늘었고 앞으로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적인 국제에너지기구(IEA)조차 2030년에는 재생가능에너지가 최대 전력원이 된다고 전망했다.

최근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서 해상 풍력 비용이 이전에 비해 절반 정도로 떨어지면서 정부가 35년간 발전단가를 보증하며 계약한 힝크리 포인트 C원전보다 싸지자 원전 건설 계약을 재고해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우린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그 갈림길의 지표가 바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이다. 이미 1조5000억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이 사업을 재개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추가 건설비용 7조원에다 폐로 비용과 사용후 핵연료 처분 비용을 고려하면 더 들어갈 비용이 10조원이 넘는다. 신고리 5·6호기가 설계수명이 다하는 때는 무려 2081년과 2082년이다. 이정문 화백이 상상한 35년 만에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바뀌었다. 앞으로 64년, 65년 이후의 세상은 얼마나 더 빠르게 바뀔까? 그 사이에도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싼(사실은 잘못 매겨진) 전력요금을 경쟁력으로 삼는 기업에 희망이 있을까?

게다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단순히 원전 2기를 추가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게 원전이 입지한 지역에, 30㎞ 이내 인구가 382만명으로 가장 많은 지역에, 핵심 산업시설이 들어서 있는 울산과 부산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활성단층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과 미래세대를 배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결정인 동시에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더 나은 투자 기회를 닫아버리는 어리석은 결정이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미래는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 오늘 우리의 결정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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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3일 그동안 논란이 됐던 역할과 결론 도출 방법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공론화위원회는 원전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기구가 아닌 독립적 자문기구로 규정했다. 따라서 위원회는 공론화 과정을 관리해 도출된 결론을 정부에 권고하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공사 중단 또는 재개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시민배심원단 명칭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대표 참여단(시민참여단)’으로 바꿨다. 국민의 의견 수렴 방법은 숙의 여론조사 형태인 공론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3개월 시한의 공론화위원회가 출범 열흘 만에 답을 내놓은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그동안 공론화위의 역할과 결론 도출 방법을 둘러싸고 혼선이 빚어졌다. 공론화위가 지난달 27일 브리핑에서 공론조사와 배심제라는 다른 결론 도출방식을 두고 명확히 정리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법적인 최종 결정은 정부가 내린다”고 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 같은 논란은 공론화위에 대한 불신을 낳았고, 이 때문에 위원회 활동이 사실상 중단되기도 했다. 이번 발표를 계기로 최소한 공론화위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은 끝나야 할 것이다.

3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3층 브리핑룸에서 신고리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붉은계열 넥타이)과 이희진 대변인(단발머리 여성), 이윤석 부대변인(노랑계열 넥타이)이 제 3차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 회의 결과 발표를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오른쪽)이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공론화위 회의 결과를 브리핑한 뒤 퇴장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제 공론화위가 해야 할 일은 공론조사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설계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공론화를 위한 시민참여형 조사는 약 2만명을 대상으로 1차 여론조사 후 최종 350명 내외의 시민참여단을 모집한 뒤 숙의 과정을 거친 다음 최종 조사 순으로 진행된다. 공론화위가 정부에 넘길 최종 권고안에는 건설 중단·재개 의견 비율과 찬반 선택에 대한 다양한 의견, 토론과정에 대한 쟁점과 다양한 대안 등이 담기게 된다. 그 과정이 복잡한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찬반 비율의 편차와 그것에 대한 평가와 분석 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신고리 5·6호기 원전 인근에 사는 부산·울산·경남 지역주민들의 시민참여단 참여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 1차 여론조사 결과를 공론조사가 벌어지는 기간 동안 공표할 것인지 등이다. 하나하나가 또 다른 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사안이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을 결정할 ‘로드맵’이 완성된 만큼 누구나 따를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하는 일이 중요하다. 공론화위원회는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개입을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론화 과정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다. 공론조사의 정당성 확보는 물론 결과에 대한 시비를 없애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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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7일 공론조사의 로드맵을 발표했다. 8월 중 시민 2만명 내외를 대상으로 1차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중 350명을 선발해 공론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 공론화위원회는 그동안 정부가 밝혀온 공론수렴과 의사결정 절차와는 다른 설명으로 혼선을 초래했다. 공론화위원회는 “공사를 재개할지, 안 할지 조사대상자들이 찬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것이 논란을 일으키자 부랴부랴 “찬반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결정한 바 없다”고 해명했지만 억측을 낳았다. 이는 지난 24일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그대로 정책에 수용할 것”이라고 밝힌 정부의 설명과는 배치된다. 일각에서는 공론화위원회가 민감한 사안인 원전 중단의 찬반을 결정하는 데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서울환경연합 탈핵자전거 원정대원들이 원전 신고리 5ㆍ6호기 백지화를 촉구하며 출발하고 있다. 이들은 9월26일까지 자전거를 타고 서울시내를 돌며 탈핵 선전전을 펼칠 예정이다. 서성일 기자

그러나 이날의 혼선은 정부가 자초했다는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정부는 애초부터 공론화 작업을 추진하면서 시민배심원제와 공론조사의 개념을 혼동하는 우를 범했다. 사실 시민배심원제와 공론조사는 사회적인 갈등관리 기법의 차원에서 완전히 다른 시민참여형 숙의의 실천방법이다. 시민배심원제는 법원의 국민참여재판처럼 판결의 성향이 강하지만, 공론조사는 참여진의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권자인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날 공론화위원회가 “공론조사는 찬반 의사 결정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시민배심원제와 공론조사의 용어를 혼용하면서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도 처음부터 이런 문제점을 알았다. 그렇지만 정부가 전통적인 공론조사의 방식에서 벗어나 ‘공론조사 결과-정책 반영’이라는 혁명적인 민의수렴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좋게 해석했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가 ‘찬반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공론조사의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공론조사는 한국 사회가 처음 시도하는 숙의 민주주의다. 시민의 손으로 미래세대의 안전 문제를 심도 있게 토론하는 소중한 기회이다. 하지만 원전 백지화는 찬반 양론이 각축하는 갈등 사안임을 잊어선 안된다. 시행착오가 잦아지면 자칫 원전 안전이라는 대의명분을 잃을 수도 있다. 정부는 혼선이 계속되지 않도록 고민해야 한다. 특히 혼선을 빌미 삼아 공론화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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