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까운 교수 한 분이 재미난 그림 하나를 보여줬다. 이정문 화백이 1965년에 그린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란 제목의 그림이었다. “앞으로 35년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달라질까”란 부제를 달고 있었다. 1965년이라면 필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이다. 그런데 그 그림에는 태양열을 이용한 집, 전파신문(오늘날 전자신문), 컴퓨터, 전기자동차, 움직이는 도로(요즘의 무빙워크), 소형 TV 전화기(영상통화 가능한 휴대전화), 청소 도우미 로봇, 원격진료, 원격학습 등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기기와 설비, 서비스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단 하나 지금과 다른 건 로켓을 타고 달나라로 수학여행 가는 상상뿐이었다.

만화가인 이정문 화백이 어떻게 그렇게나 미래를 잘 맞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1941년생으로 당시 청년이었던 그는 부지런히 신문을 읽으며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앞으로 도래할 세상을 상상했다고 한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현실에서 자라고 있는 변화의 씨앗을 놓치지 않은 거였다.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경주 지진발생 1년을 맞아 대규모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자 '안전의 여신상'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앞으로 35년 뒤는 2052년이다. 어림잡아 2050년경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까? 변화의 씨앗이 어디에서 자라고 있을까? 무엇보다 세계는 재생가능에너지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놓치기 어려울 정도로 분명하다. 많은 문서와 기사, 다양한 수치들이 그런 변화를 이미 입증하고 있다.

사실 미래라기보다는 이미 현실이다. 재생가능에너지는 2016년 전 세계 신규 발전 설비 용량 중 62%,신규 투자 중 63.5%에 달했다. BMW, GM,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필립스, 나이키, 월마트 등 굴지의 세계 기업들이 2025년이나 2030년까지 100%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을 쓰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선언 기업 수가 최근 106개로 늘었고 앞으로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적인 국제에너지기구(IEA)조차 2030년에는 재생가능에너지가 최대 전력원이 된다고 전망했다.

최근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서 해상 풍력 비용이 이전에 비해 절반 정도로 떨어지면서 정부가 35년간 발전단가를 보증하며 계약한 힝크리 포인트 C원전보다 싸지자 원전 건설 계약을 재고해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우린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그 갈림길의 지표가 바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이다. 이미 1조5000억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이 사업을 재개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추가 건설비용 7조원에다 폐로 비용과 사용후 핵연료 처분 비용을 고려하면 더 들어갈 비용이 10조원이 넘는다. 신고리 5·6호기가 설계수명이 다하는 때는 무려 2081년과 2082년이다. 이정문 화백이 상상한 35년 만에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바뀌었다. 앞으로 64년, 65년 이후의 세상은 얼마나 더 빠르게 바뀔까? 그 사이에도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싼(사실은 잘못 매겨진) 전력요금을 경쟁력으로 삼는 기업에 희망이 있을까?

게다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단순히 원전 2기를 추가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게 원전이 입지한 지역에, 30㎞ 이내 인구가 382만명으로 가장 많은 지역에, 핵심 산업시설이 들어서 있는 울산과 부산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활성단층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과 미래세대를 배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결정인 동시에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더 나은 투자 기회를 닫아버리는 어리석은 결정이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미래는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 오늘 우리의 결정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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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5일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가 시작되었고, 공사 재개에 대한 찬반 논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경제성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의 정당화에 동원되는 가장 강력한 명분이다. 그러나 경제성은 안전성을 전제로 한다. 생명을 잃는다면 돈이 소용없듯이, 안전성이 없으면 경제성도 의미가 없다. 한데 찬반 양측은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에 대해 입장이 정반대다. 공사 찬성 측은 한국형 3세대 원자로 APR1400을 채택한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며, 특히 방사성물질의 외부 누출을 막아줄 콘크리트 격납건물은 규모 7.0의 지진에도 견디며 손상 확률은 100만년에 1번 미만이라고 주장한다. 공사 중단 측은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원전의 중대 사고는 여전히 발생 가능하며,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보듯이 그 결과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라고 주장한다.

8월 28일 오전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 입구에서 서생 주민들이 피켓을 들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현장 방문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어떤 주장을 따라야 할까? 먼저, 원전 사고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렇다면,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 예측에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의 실태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올해 초, 영광의 한빛 1·2호기, 울진의 한울 1호기, 고리 3호기의 격납건물 내벽철판에서 부식이 발견되더니, 한빛 4호기에선 무려 120여곳에서 부식이 발견되었다. 철판 두께가 60%나 줄어든 곳도 있었다. 또한 격납건물 콘크리트 외벽 58곳을 조사했더니, 57곳에서 깊이 18.7㎝, 높이 1~21㎝의 구멍이 확인되었다. 두께 6㎜의 철판과 120㎝의 콘크리트로 만든 격납건물, 보잉 707 항공기가 날아와 충돌해도 끄떡없고, 사고가 나도 방사성물질의 외부 누출을 막아준다던 최후의 방호벽에 녹이 슬고 구멍이 뚫린 것이다.

하지만 부실의 끝은 여기가 아니었다. 이번엔 한빛 4호기 증기발생기에서 길이 110㎜, 폭 40㎜의 망치형 금속물질과 길이 10.5㎜, 폭 7㎜의 계란형 금속물질 등 이물질 4개가 발견되었다. 이 쇳덩어리들은 20년간 증기발생기 속 두께 1㎜의 수많은 세관들과 충돌하며 세관에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세관의 파손은 방사성물질의 누출로 이어지는 중대 사고의 원인이다. 이 같은 원전의 현실 앞에서,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 주장은 민망할 뿐이다.

원전의 안전을 위협하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은폐와 조작으로 점철된 한수원의 원전 운영 행태다. 2012년 고리 1호기 전원소실 은폐, 2013년 신월성 1·2호기와 신고리 1·2·3·4호기의 제어케이블 시험성적 자료 위조, 같은 해 한빛 2호기 증기발생기의 정비서류 조작, 2014년 신고리 1호기 재가동 전 냉각수 누출 사고 은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수원은 이번 한빛 4호기의 금속 이물질도 JTBC의 보도 후에야 시인했다. 한수원의 파행적 운영은 원전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방만하고 느슨한 감독과 규제도 영향을 미쳤다.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을 호언장담하던 원자력 전문가들은 한빛 4호기의 실태에 대해선 침묵한다. 콘크리트 방호벽 내부의 철판부식, 외벽의 구멍, 금속 이물질은 자신들의 전문 영역과 상관없다는 것인가. 그렇다 해도, 이것들 모두 원전의 안전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사고가 난다고, 자동차나 비행기를 없애지는 않는다. 원전 사고도 마찬가지다.” 원자력 전문가들이 탈원전 주장을 반박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정말 그렇다면, 자동차와 비행기가 대도시를 오가듯,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 주변에도 원전을 짓고 가동해야 맞다. 냉각수야 바다 대신 한강, 금강, 낙동강에서 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원전 사고는 자동차나 비행기 사고와 전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원전의 현실은 원전에서 안전을 구할 수 없다고 말해준다. 원전 말고 안전!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분명하고 상식적인 가르침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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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핵 위협, 환경파괴, 질병, 인권탄압, 기아 등은 한 나라에 국한하지 않고 전 지구적인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죠.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합니다. 그동안 지구, 인류, 문명과 같은 근본적인 가치는 가려졌죠. 세계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성장했지만, 자원감소와 환경파괴가 뒤따랐습니다. 이러한 패턴의 성장은 오히려 성장여력을 감소시켰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반세기 전, 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는 세계적인 연구기관 ‘로마클럽’이 발표한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 요지입니다.

민주주의는 어떨까요. 이전에 비해 더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정책이나 현안을 결정할 때 다수결 원칙이 작동합니다. 정치인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선거는 포퓰리즘을 동반합니다. 항상 옳은 선택만 할 순 없죠. 당연히 민주주의는 항상 옳은가라는 질문에 부닥칩니다. 선순환과 악순환이 공존하는 상호관계를 ‘되먹임 관계’(negative-feedback loops)라고 합니다. 마치 지렛대와 같습니다. 한 사람이 위로 올라가려면, 건너편 사람은 아래로 내려가야 하죠.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한 방향으로만 영향을 주는 관계는 없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한계를 향해 달리고 있다면,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겠다고요. 그건 인간의 수명이 짧아서겠죠. 긴 시간에 걸쳐 벌어지는 일들은 잘 보지 못합니다.

최근 신고리 5·6호기의 원전 공사를 중단할 건지 아니면, 완공할 건지를 두고 공론조사 준비가 한창입니다. 갈등지점은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및 환경문제와 전력수급 차질 여부 등인데요, 이 모두가 동전의 양면입니다.

원전이 안전해야 경제성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원전의 경제성이 입증되려면, 환경과 안전에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공론이란 무엇일까요. 어쩌면 원전 건설의 중단이냐 완공이냐 혹은, 찬성이냐 반대냐 등의 이분법적 결론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원자력발전소가 인류와 대한민국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공동체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공론이 형성되는 과정이죠.

공론조사나 타운 홀 미팅은 주권자가 권력을 심사숙고하여 행사할 수 있게 도와주죠.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정보의 투명성과 객관성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공론조사를 통해 우리는 전문가의 손에만 맡겼던 과학, 의사결정의 민주적 권위, 경제성의 새로운 판단기준 등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공적 의사결정이 이념과 진영의 논리,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논리 등 그 어떤 하나의 논리만으로 이뤄지는 실수를 줄여야 합니다.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국민께 소개되는 공론조사는 한 정권의 문제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2017년 촛불집회는 시민이 만든 공공과 시장의 실패에 시민이 직접 개입한 사건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과제에 공동의 상황인식이 없었다면, 촛불집회도 없었겠죠. 공론도 형성되지 못했을 거고요. 문재인 정부의 국정이 이와 같은 반석 위에 있다면, 숙의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일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직후, 문 정부의 바로 다음 과제가 될 것입니다.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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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하고, 신고리 5·6호기의 공사중단 여부를 공론조사로 결정할 방침을 세우자 원전세력이 똘똘 뭉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수십년간 독점했던 ‘전문가의 식견’을 앞세워 한국 원전의 기술력과 경제성이 세계최고라는 등의 원전지상주의를 원전지식이 부족한 시민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학계의 핵심학맥인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이자 한국수력원자력에서도 13년간 근무했던 박종운 교수(동국대)의 ‘원전 비판’이 눈에 띈다. 원자력계는 “세상에 이런 마피아가 없다”는 박 교수의 자아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가 지난달 31일 동국대 경주캠퍼스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 교수는 “좁은 한국 땅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확보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도 원전을 더 지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김창길 기자

박 교수는 “가뜩이나 원전밀집도가 높은 부산·울산·경주 인근에 또다시 신고리 5·6호기를 짓겠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월성원전 주변엔 150만명, 고리원전 인근엔 400만명이 거주한다. 한국의 원전위험도는 주변인구가 17만명에 불과했던 후쿠시마와 비교할 때 40배나 더 위험한 것으로 평가된다. 원전세력은 한국의 원전이 안전하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3차례의 사고도 모두 원전 선진국에서 발생했다. 스리마일 사고는 노동자의 실수, 체르노빌은 과학자의 실험, 후쿠시마는 자연재해로 일어났다. 수십수백만 시민의 생명을 전문가의 보증만으로 보장할 수는 없다. 이런 위험 때문에 원전은 온실가스를 덜 배출한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청정에너지’로 공인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원전세력은 사용후 핵연료 처리는 ‘나몰라라’ 하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의 방사능이 자연수치로 떨어지는 데는 10만년이 걸린다. 국토가 광활한 미국에서조차 주민 반발 때문에 폐기물 처리장소를 마련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좁은 땅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화장실 없는 아파트’의 뒤처리를 후손들에게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당장의 편의를 위해 미래세대에 폭탄을 돌릴 수는 없다.

연일 폭염이 밀려왔지만 지난 7월 발전 설비예비율이 34%에 달한다는 자료가 나왔다. 공급과잉으로 전력이 남아돈다는 뜻이다. 또한 2014년 주민투표 끝에 ‘탈원전’을 선언한 강원 삼척시는 신재생에너지의 메카로 떠올랐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의 허가를 받았거나 허가신청을 한 업체가 172곳에 이른다. 예정 발전용량(1916㎿)은 원전 1기의 발전용량(1000~1500㎿)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국은 이제 ‘원전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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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놓고 찬반논쟁이 뜨겁다. 탈원전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시민 배심원단이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을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을 비전문가들이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일까?

우리 시대의 과학은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 과학은 중세 이후 온갖 그릇된 믿음을 격파해오며, 종교가 차지하는 위상에 버금가는 위치에 올랐다. 왕이 스스로 신으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왕의 권리는 과학적 사실 앞에 상처를 입었다.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말할 때, 이는 믿을 만하다, 신뢰할 만하다고 해석된다.

과학의 위상은 올라갔지만 사회는 과학적으로 굴러가지 않고, 인간도 과학적으로 살지 않는다. 이는 과학이 가치에 대해 말하지 않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은 어떤 사실이 있고 없음, 많고 적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좋다 나쁘다,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종교가 아직도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천국이 있고 없음이 아니라, 돈·명예·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사랑·자비·헌신·봉사·희생이라는 가치를 설파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과학자들도 종교를 믿는다.

14일 한수원 이사회가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을 기습 결정한 가운데 한수원 경주 본사에 경찰 병력이 배치되는 등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연합뉴스

과학은 숫자나 확률 같은 ‘정해진’ 용어로 말한다. 가치가 아닌 관리를 중시한 용어다. 지난달 18일 고리 1호기를 영구정지했을 때, 언론은 원전업계의 표현을 빌려 원자로가 식었다고 표현했다. 핵물리학자들이 정해놓은 식었다는 온도는 93도였다. 환경론자는 그래서 원전을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한다.

세상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과학적 합리성 하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회적 합리성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나는 원전 유지론자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대체 에너지 개발에 어려움이 있고, 향후 전기료 인상 가능성도 있다. 3개월이란 시한도 문제 삼을 수 있다. 문제는 이걸 감안하더라도 원전 유지는 과학적 합리성마저 충분히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원전 유지론의 골자는 크게 세 가지다. 원전을 돌리니까 그나마 싸게 전기를 이용해왔다는 것이고, 대체로 안전하며, 대체 에너지가 부족해 원전산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동한 지 40년 만에 폐쇄된 고리 1호기는 엄청난 전기 에너지를 공급했다. 하지만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 관리해야 하는 큰 숙제를 남겼다. 핵쓰레기, 즉 핵폐기물은 방사능에 따라 중·저준위와 고준위 핵폐기물로 나뉜다. 문제는 고준위 핵폐기물인데 이건 오래 보관해야 한다. 보통 10만년, 독일은 100만년으로 잡고 있다. 기성세대는 그동안 원전을 잘 써먹었는데, 후손들은 부서지지 않고, 녹슬지 않고 새지 않는 창고를 지어 10만년 동안 보관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후대의 미래를 저당 잡은 셈이다. 이게 정당한가. 10만년을 비용으로 계산이나 할 수 있을까?

원전은 단 한 번 사고로 절멸에 가까운 재앙을 입을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원전 밀집도가 높은 부산·울산에서 사고가 나면 수백만명이 위험하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도시와 지역사회가 초토화된다. 원전사고는 교통 사고가 아니다. 확률로 얘기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안전신화는 과장되고 미화됐다.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사상으로서의 3·11>에서 각국의 원전사고를 낱낱이 열거했다. 1957년 영국의 셀라필드 원전사고는 30년이 지나서야 공표됐고, 1961년 미국 해군의 SL-1이라는 군사용 시험 원자로에서 난 사고는 규모조차 밝혀지지 않았으며, 1963년 프랑스 생로망 데조 원전은 연료 용해사고를 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참사, 2008년에는 프랑스의 트라카스탱 원전에서 방사선 누출사고가 터졌다. 미국과 러시아는 스무차례 이상 핵잠수함의 침몰과 노심용해를 공표했다. 군의 핵사고는 더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특성상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사사키는 “이게 전부라는 보증은 없다”며 “어느 나라든 숨기느라 애쓰고 있다”고 했다. 쓰나미 같은 천재지변뿐 아니라 실수나 실험 도중 사고가 나기도 한다. 체르노빌이 그랬다.

게다가 원전은 사양산업이다. 핵발전 비율이 75%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프랑스도 2020년까지 50%로 감축하기로 했다. 독일과 대만 등은 원전 폐지를 결정했다. 핵물리학계와 원전산업은 함께 성장해온 동반자적 관계다. 핵물리학이 원전산업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 원전산업은 그들의 연구를 지원해왔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탈원전 결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과 미래를 위해 사회적,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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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7일, 정부는 신고리 5·6호기를 공론조사 방식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공론화위원회가 공론화 과정을 설계, 관리하고, 최종 의사결정은 시민배심원단이 맡는 방식이다. 핵발전 전문가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에너지전환 정책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정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전문가가 배제된 채, 비전문가인 시민들이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은 문제라며, “전문가 참여와 합리적인 방식의 공론화”를 요구한다.

첫째, 합리적인 방식의 공론화. 민주사회에서 사회적 의제의 논의와 결정 과정에 시민대표들이 주체로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고 합리적이다. 나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의 최종결정권은 소수의 전문가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다. 핵발전 논의의 핵심 요소인 ‘안전’은 돈으로 환산하여 다른 경제적 요소들과 단순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의 문제다. 신고리 5·6호기는 전문가들이 풀어야 할 복잡한 계산식이 아니라, 시민들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숙의, 선택할 문제라는 뜻이다. 둘째, 전문가 참여. 전문가들은 공론화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논의와 결정을 제대로 하도록 돕는 막중한 역할로 공론화에 참여한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공론화 작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론화위원회는 이번 논의가 ‘사회적’ 공론화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공론화의 전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하고, 시민배심원단의 논의 과정을 TV 생중계 등으로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핵발전에 관한 기본적인 물음에 충실히 답하도록 하고, 사실관계를 다툴 땐, 이견들을 가감 없이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전문가 참여와 합리적인 방식의 공론화”를 통해 시민배심원단이 최종 결정을 하여, 그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핵산업계의 일방적인 홍보로 핵발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만연해 있고, 핵발전 정책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논의되고 결정되었다. 한동안은 깨끗하고 안전하고 경제적이라는 ‘원자력 신화’가 우리를 지배했다. 후쿠시마 사고로 안전 신화가 깨지자, 안정적 전력수급과 값싼 전기요금을 위해선 핵발전 외에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해왔다.

전문가들에게 묻는다. 한국에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같은 핵발전소 사고의 발생 가능성은 ‘제로’인가? 그렇지 않다면, 사고가 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원상회복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언제쯤인가? 고리의 경우, 핵발전소 반경 30㎞ 내의 지역주민 382만명의 대피 방안이 있는가? 제한된 시간 내에, 그 많은 사람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는가? 핵발전소 내 임시저장소는 곧 포화상태가 되는데,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은 무엇인가? 10만년 동안 완벽한 분리와 차폐를 요구하는 영구처분장 건설이 가능한가? 언제 가능한가?

에너지전환을 하면 전력의 안정적 수급이 어렵다는데, 전력수요 예측과 전력수요 관리는 합리적으로 해왔는가? 전기요금은 얼마나 인상되나? 안전 확보의 비용으로도 수용할 수 없는, ‘폭탄’ 수준인가? 핵발전 단가가 가장 싸다는데, 발전원별 단가 책정은 합리적인가? 발전소 설계에서 건설·운영·폐기 비용을 모두 고려하면, 사고의 사회적 비용까지 반영하면, 핵발전 단가는 어떻게 되는가?

시대는 변했다. 위험을 무릅쓴 값싼 에너지보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바람이 커졌다. 문 대통령의 탈핵·에너지전환 공약은 이런 시대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고, 대선에서 국민의 승인을 받았다. “어떤 것이 생명 공동체의 온전함, 안정성, 아름다움의 보존에 이바지한다면 그것은 옳다. 그렇지 않다면 그르다”(알도 레오폴드). 핵발전으로 생겨나는 방사성물질들은 “생명 공동체의 온전함, 안정성, 아름다움”을 파괴한다. 생명 공동체에 맞는 에너지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해와 바람, 바로 거기에 있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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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에너지공약에서 신고리 5·6호기를 포함한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원전 수명연장 금지, 월성1호기 폐쇄 등을 약속하였다. 이에 대해 국내 원자력계는 원자력 발전이야말로 가장 경제적이며, 탈원전의 경우 몇 배의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과연 원자력은 값싼 전력원인가?

2016년도 국내 발전 정산단가는 원자력 68원/kwh(킬로와트시)로, 석탄 78~89원/kwh, 석유 110원/kwh, 가스 100원/kwh, 풍력 90원/kwh였다. 이 수치만 따지면 원자력이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원전사고가 나면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현재의 원자력발전 단가는 원전사고시 배상을 계산하긴 하지만, 국내 원전에서 후쿠시마 같은 중대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원전을 관할하는 발전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최대 5000억원만 보상하고 나머지는 국가의 책임으로 돌린다.

원전사고의 피해규모를 보자. 1986년 1만㎢ 지역에서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피난시켰던 체르노빌 사고는 약 260조원의 손해를 입혔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사고 당시 방출된 총 방사능의 약 3분의 1 이상이 남아서 체르노빌 주변 지역을 방사선 피폭시키고 있다.

방출된 방사능의 90% 이상이 태평양 쪽으로 날아갔지만 나머지 방사능으로 인해 16만명 이상의 주변지역 사람들을 피난시켜야 했던 2011년 후쿠시마 사고에 대해 일본 정부는 방사능 제거 비용으로 약 220조원을 추정하였다. 그런데 일본경제연구센터는 지난 3월 일본 정부의 추정치는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 제거 비용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새로운 추정치로 약 690조원을 제시한 바 있다. 후쿠시마 사고 6년이 지난 현재 일본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전체 42기 중 단 3기밖에 없으며, 8만명 이상이 여전히 피난 생활 중이다.

다행히 현재까지 발생한 적은 없지만, 체르노빌 및 후쿠시마 사고와 다른 형태의 원전 중대 사고가 있다. 바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화재사고가 그것이다.

원자로에서 방출된 사용후핵연료는 계속해서 뜨거운 열을 방출하므로 최소 5년 이상 저장조 물속에서 식혀야 한다. 저장조 냉각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원자로에서 방출된 지 1년 이내의 뜨거운 사용후핵연료는 물 및 수증기와 반응하여 겉의 피복재가 녹으면서 화재를 일으키고 수소를 발생시켜 수소폭발까지 불러온다. 화재가 전체 사용후핵연료로 퍼지는 과정에서 사용후핵연료 속에 들어있는 세슘-137 등 고독성 방사성물질이 대량으로 누출되어 넓은 지역을 방사능 오염시킨다. 세슘-137은 체르노빌 및 후쿠시마 사고의 주된 방사성물질이다.

이러한 사고의 한 예로, 필자와 미국 프린스턴대학 연구팀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USNRC)가 공식적으로 이용하는 HYSPLIT 코드를 사용하여, 약 800t의 사용후핵연료가 담겨있는 고리3호기 저장조에 화재사고가 발생한다고 가정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 연구 결과 국내에서 평균 9000㎢, 최대 5만4000㎢ 면적이 피난지역으로 변하고, 평균 약 500만명, 최대 약 2400만명이 피난하여야 하며, 날씨 조건에 따라서는 주변 국가에 더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작년과 올해 발표한 바 있다.

프린스턴대학 연구팀은 또한 USNRC 보고서에 근거하여 주변 30㎞ 내에 큰 도시가 없는 버지니아주 서리카운티 소재 원전의 약 800t 사용후핵연료가 보관되어 있는 저장조 화재사고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평균 약 5만6000㎢ 지역의 1000만명이 피난해야 하며, 경제적 손실은 약 2400조원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를 이달 발간된 한 학술지에 게재하였다.

지역 및 인구밀도 사정이 미국과 다른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의 결과와 비슷할 수는 없겠지만, 국내 원전 저장조 화재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 가능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원전 중대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는 원자력발전의 단가에 근거하여 국내 원자력이 경제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강정민 | 미 NRDC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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