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사법농단 사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다.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에서 피의자로 조사받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검에 나가기 직전 인근 대법원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검찰청사 앞에 설치될 포토라인에선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대법원장 재직 중의 범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가 기소 후 재판을 맡게 될 법원을 들러리로 세워 ‘시위성 퍼포먼스’를 벌이겠다니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전직 대통령들도 청와대 앞이 아닌 검찰 포토라인에서 소회를 밝혀왔는데, 이 무슨 망발인가.

양승태 전대법원장이 11일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해 조사를 받기 이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본인이 최근까지 오래 근무했던 대법원에서 입장을 밝히는 게 좋겠다”는 이유를 댄 모양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짐작 못하겠는가.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원 건물을 등에 지고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검찰을 겁박하고, 사법농단 수사에 반대해온 법원 내 적폐세력을 결집하려는 의도임이 명백하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당초 대법원 경내에서 기자회견을 하려 했으나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정문 앞에서 강행키로 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법원노조)는 “사법농단 몸통 양승태의 오만이 극치에 달했다”며 원천봉쇄를 예고했다. 사법농단에 분노한 일반 시민까지 현장에 몰릴 경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해치고 헌정을 문란케 한 중대 범죄의 피의자다. 검찰 조사를 앞둔 그가 대법원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여론전을 펴는 일은 또 다른 사법농단에 다름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제라도 기자회견을 포기해야 마땅하다. 회견을 강행해 불상사가 빚어진다면 온전히 그의 책임으로 돌아갈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3월 이명박 전 대통령 출석 때와 같은 안전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또한 과잉의전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헌법 11조는 ‘법 앞의 평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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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에 대한 징계 결정이 또다시 미뤄졌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지난 3일 징계가 청구된 고법 부장판사 4명, 지법 부장판사 7명, 평판사 2명 등 13명에 대해 3차 심의를 진행했으나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법관징계위는 이달 중순 4차 심의기일을 열어 올해 안에 징계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헌법과 법률로 신분을 보장받는 법관에 대한 징계절차가 신중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이 징계를 청구한 시점이 지난 6월인 점을 감안하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징계심의를 3차례나 진행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2월4일 (출처:경향신문DB)

법관징계위의 행태는 신중을 기하는 차원을 넘어 ‘고의 지연’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국회에서 추진 중인 법관 탄핵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법관징계법상 징계 결과는 관보에 게재해야 한다. 비공식 루트를 통해 알려져온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의 명단이 공식적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회가 추진하는 탄핵소추 대상 법관들의 윤곽도 드러난다. 징계가 확정되면 법관 탄핵 논의에 속도가 붙을까 두려워 징계절차를 미루고 있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징계의 실효성을 의문시하는 시각도 있다. 법관에 대한 징계 조치는 정직·감봉·견책뿐이고, 정직에 처한다 해도 기한은 최대 1년에 불과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 징계 시효가 3년으로 정해져 있어 2015년 6월 이전 의혹에 대해선 책임을 묻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징계는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사법농단은 전직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되고 전직 대법관 2인이 구속 위기에 놓일 만큼 중대한 위헌·위법행위다. 그럼에도 이들의 손발 노릇을 한 법관들은 6개월째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고 있다. 그사이 주권자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사법적·사회적 정의에 반하는 일이다.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절차는 진행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탄핵만 기다리며, 위헌·위법행위를 저지른 법관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법원은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해 엄정한 징계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징계로 어물쩍 넘어가거나 탄핵 대비용 ‘면죄부’를 줄 생각은 아예 접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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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검은 3일 “이 사건(사법농단)은 특정인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업무상 상하관계에 의한 지시·감독으로 이뤄진 범죄행위”라며 “두 전직 대법관은 이미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속 상급자로서 더 큰 결정권한을 행사한 만큼 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전직 대법관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2월 4일 (출처:경향신문DB)

두 전직 대법관은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차장으로 근무할 당시 상관인 법원행정처장을 역임했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부터 2년간 행정처장으로 재직하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대선개입 사건,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지방의원 소송 등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대법관 후임으로 행정처장을 지낸 고 전 대법관은 ‘최유정 전관로비 사건’ 당시 법관들에 대한 수사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일선 법원으로부터 검찰 수사기록을 빼낸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장기간 조직적으로 자행된 법관사찰 등에는 박·고 전 대법관 모두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두 전직 대법관 수사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사건 가해자 측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만난 정황도 포착했다고 한다.

대법관은 사법 정의의 상징이며 인권 수호의 최후 보루다. 개별 법관들로서는 일생을 걸고 도달하고픈 목표이기도 하다. 지금 구속의 기로에 놓인 전직 대법관 2인을 보며, 법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통렬히 자성해야 마땅하나, 혹여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전히 검찰이 과잉수사를 한다고 생각하거나 ‘징계사유에 해당할지는 몰라도 형사적 범죄는 안된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 혹여 그런 법관들이 다수라면, 법원에 더 이상의 희망을 걸기는 어렵다.

박·고 전 대법관의 구속 여부는 이번주 중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결정된다. 영장심사를 맡을 법관은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다. 법과 원칙, 사실과 증거에 따라 판단하면 그뿐이다. 법원이 이번 기회마저 놓친다면 사법 신뢰를 회복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사법권은 법관의 것이 아닌, 주권자의 것임을 새겨야 한다. 검찰도 수사의 고삐를 죄어 사법농단의 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을 조속히 소환조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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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재판 1심을 맡게 될 서울중앙지법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기소를 앞두고 형사합의 재판부 3곳을 늘리기로 했다. 사건이 배당될 수 있는 재판부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겠다는 것이다. 신설된 3개 형사합의부의 법관 9명은 모두 법원행정처 심의관이나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력이 없다. 기존 13개 형사합의부 재판장 가운데 6명(46%)이 사법농단 관련자들과 함께 근무했거나 참고인·피해자 신분인 것과 대비된다. 결국 형사합의부 3곳 증설은 국회와 재야법조계·시민사회의 ‘특별재판부’ 도입 압박에 대한 응답으로 읽힌다. 앞서 법원행정처는 국회에 낸 의견서에서 “특별재판부는 헌법상 근거가 없고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등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1월 12일 (출처:경향신문DB)

우리는 사법농단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고 독립적·중립적 법관에게 심리를 맡겨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별재판부가 위헌적이라는 법원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임 전 차장 기소 이전 특별재판부 도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법원 차원의 특단의 조치가 절실하다고 본다. 1심 재판부 몇 군데 늘리는 정도로는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우선 서울중앙지법 차원에서 사법농단 사건 배당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제척·기피·회피 사유도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법원행정처·대법원 근무 경력이 없는 법관으로 재판부를 늘려놨으니 법원을 믿어달라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출신 학교·사법연수원 기수 등의 인연을 매개로 촘촘한 연고관계를 형성하는 법관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사법농단 재판의 공정성 문제는 서울중앙지법에만 맡겨놓을 일도 아니다. 임 전 차장을 필두로 전직 대법관들은 물론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줄줄이 기소될 가능성이 짙다. 사상 초유의 사건이고 피고인이 법률가인 만큼 치열한 법리다툼이 예상된다. 2심은 물론 3심까지 가게 될 공산이 크다. 마땅히 대법원 차원에서 사법농단 재판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지난 9월 사법부 70주년 기념사)을 하겠다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법원과 법관에 대한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는데, 대법원장은 팔짱만 끼고 있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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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30일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과 고영한 전 대법관의 자택, 박병대·차한성 전 대법관의 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지난 6월 수사에 착수한 이후 ‘양승태 대법원 최고위층’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한 것은 처음이다. 전직 대법원장이 범죄 혐의에 연루돼 압수수색을 당한 것도 헌정 사상 최초다. 양 전 대법원장 자택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기는 했으나, 전직 대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일부 발부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윗선’ 수사를 끈질기게 차단해온 법원이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방어벽에 균열이 시작된 신호로 받아들인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0월 1일 (출처:경향신문DB)

압수수색을 당한 3인의 전직 대법관은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의 핵심에 있는 인사들이다.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재직 중인 2011년 10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대법관이 겸임하는 법원행정처장을 연이어 맡았다. 차·박 전 대법관은 박근혜 정권 시절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만나, 일제 강제징용 민사소송에 대해 논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은 전국교직원노조 법외노조 소송과 부산지역 법조비리 재판에 개입한 의혹 등을 사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들을 지휘하는 사법행정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사법농단 사태의 ‘몸통’이자 ‘정점’이다.

물론 압수수색영장이 일부 발부됐다 해도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만큼 주요 증거들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대법관을 지낸 법률가들이 고의로 증거를 인멸한 행위가 확인된다면, 그 사실 자체가 범죄 혐의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검찰은 이번 모멘텀을 놓치지 말고 조기에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법원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각성할 때다. 100일 넘는 검찰 수사를 통해 다수의 물증과 진술이 축적돼 있는 터다.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타조가 모래밭에 머리 파묻듯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증거자료가 있을 개연성이 낮으니, 자택은 압수수색하지 말라’는 유의 언설로 법원을 방어하려는 시도는 이제 포기해야 옳다. 주권자는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 법원은 치외법권지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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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 건설국장이라는 자리가 있다. 대법관도 바라보는 출세코스다. 실제로 건설국장을 거친 대법관이 부지기수다. 사법행정권 남용에 관여된 고영한 전 대법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변호인이던 차한성 전 대법관, 양승태 대법원에서 진보라던 이상훈 전 대법관 등이다. 이들의 업무는 ‘건축·토목공사의 설계, 전기·기계 등 설비공사의 설계 등’이라고 대법원 규칙에 적혀 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누구도 건축이나 토목을 알지 못한다. 이들이 실제로는 무슨 일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다만 대법관 제청권을 쥔 대법원장을 위해 공식·비공식 업무를 추진하고 수행한 것은 확실하다. 건설국장은 2005년 사법시설국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결국 폐지된다.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김선수·노정희·이동원 대법관 취임식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이 신임 대법관들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건설국장의 애매한 위치와 성격, 의혹들은 2009년 만들어진 전산정보관리국장(전정국장)으로 이어진다. 판사들은 “이 자리에 왜 간단한 전산시스템도 이해하지 못하는 판사가 앉아있는지 모르겠다. 양형실장과 함께 업무가 불분명한 대표적인 자리다. 양승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에 전정국장과 양형실장이 개입된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지적대로 많은 의혹과 불법이 여기에서 나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하드디스크 디가우징, 임종헌 전 차장 이메일 기록 삭제, 법원 내 학술모임 중복가입 금지 등이다. 전정국장의 면면을 보면, 초대 이정석 다음 최창영 국장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그다음 이영훈 국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대상이다. 현직 정재헌 국장은 부실조사로 비난받는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원이다.

전산정보관리국이 법원행정처 퇴직자 부인이 설립한 회사에 10년 동안 243억원 규모의 입찰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최근 제기됐다. 이 문제의 책임자인 정 전산정보관리국장은 김명수 대법원장 인사청문회를 준비한 대법원장의 복심이다. 정 국장은 경향신문 취재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사실과 다른 데이터를 제시했다. 오스트리아산 실물화상기가 전국 법원에 353대라고 했지만 취재진이 확인한 것만 549대였다. 구입가격도 270만~370만원이 아니라 500만원에서 시작했다. 누군가 조작된 데이터를 정 국장에게 주면서 현직 법관인 그와 언론사를 시험했지만 대법원은 지금까지도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기사- [단독]대법, 행정처 퇴직자에 243억 ‘입찰 특혜’ 의혹

대법원이 보도 이후 내놓은 해명자료는 문제해결 능력이 없음을 드러냈다. 사실 대법원은 가족을 앞세워 회사를 세운 전직 공무원과 입찰을 담당한 법원행정처 공무원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은폐를 시도한 정황을 파악했다. 그런데도 문제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 회사는 유지관리 사업까지 하도급 형태로 맡아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전체 인력의 12%만을 원청업체에 대면서 사업비의 30%를 가져갔다. 이 사업을 수주한 키맨이 누구인지 의심케 하는 정황이지만 이 역시도 대법원은 모른 체했다. 대법원이 내놓은 나머지 해명도 대부분 손쉽게 반박이 가능한 것들이다.

유럽과 미국의 대형 병원 수술실에서나 쓰는 실물화상기 구입이 불가피했다는 해명도 그렇다. 대법원은 오스트리아산을 대신해 미국산을 사들일 계획이었다. 서류가 실물화상기 다리에 걸려 불편하다는 이유다. 수십억원의 세금을 다시 써야 할 이유도 아니거니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런 실물화상기를 사느라 20억원 넘게 낭비한 담당자와 납품한 회사를 고발해야 맞다.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에도 벌어진 일이라서일 터다. 근본적으로 초고화질(Full HD) 입력장치(실물화상기)라야 검찰 조서가 보인다고 했지만 전국 법정 출력장치(빔프로젝터)는 표준화질(SD)이 대부분이다. 다리가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실물화상기를 교체할 상황이 아니다.

의혹은 여전히 산더미다. 가령 대법원은 2013년 전자법정 제어시스템을 구축했다. 특정 사기업이 개발·관리하던 프로그램을 대법원 소유로 바꾸는 일이었다. 국가예산 23억원을 들여 대법원이 소유하게 됐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5년이 지나서도 특정사가 가지고 있다. 법원이 어떤 전자법정 장비를 도입해도 이 회사가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수정한다. 이 때문에 법정장비 공급 사업에서 다른 업체들은 참여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이 회사가 법정장비 공급에도 참여하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가 어렵사리 물품공급을 따내도 이 회사가 늑장을 부리면 지체보상금을 법원에 내야 한다. 업계에서는 “국가가 소유한 프로그램 코드를 특정사가 소유, 수정, 배포하는 경우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면서 “대법원이 국가예산 23억원과 물품공급 사업권을 특정사에 상납한 셈”이라고 말한다.

지난 10년간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권력과 야합해 재판을 거래하는 동안, 법원행정처 직원들은 업자와 결탁해 국가시스템을 팔아넘긴 의혹을 받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이 실패한 계기가 ‘상고법원 게이트’라면, 김명수 대법원이 실패할 이유는 ‘전자법정 게이트’다. 시인 최영미는 “피기도 전에 시드는 꽃들을 집요하게, 연민했(다)”고 했다. 나도 김명수 대법원을 연민한다. 집요하게.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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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은 이제 딱히 새롭지 않다. 당사자들은 부인하지만 의혹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가 기소되지도 않은 사건을 두고 법률 검토를 했다는 보도는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온다. ‘양승태 행정처’가 사실상 박근혜 정권의 ‘법무참모’ 노릇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지난달 3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 196개(중복파일 제외)를 추가로 공개했다. 이 문건은 국회·언론을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를 시도한 정황을 보여준다. 사진은 문건과 양 전 대법원장. (출처:경향신문DB)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2015년 3월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습격당한 후 행정처는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방지법안’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은 피습 사건을 ‘외로운 늑대의 백주테러’로 규정하고 “현재가 테러방지법 입법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또 입법 시 “영장주의 예외, 증거능력 부여 완화, 불시 검문 가능”을 포함해야 하며 “입법 전에라도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을 적극 해석·집행해야 한다”고 적었다. 리퍼트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가 재판에 회부된 것은 4월1일이다. 행정처는 2015년 6월 ‘박근혜 가면 민형사 책임 검토’라는 문건도 만들었다. 온라인에서 ‘박근혜 가면’이 판매되고 있어 법적 책임을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는 관련 사건이 검경에 접수되지도 않은 시점이다. 두 문건 모두 법원과 무관한 사안에 대해 사전 법리 검토를 한 것이다.

양승태 행정처가 정부 부처의 소송서류를 사전에 받아본 정황도 드러났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컴퓨터에서 ‘(141007)재항고 이유서(전교조-Final)’ 문건이 발견됐다고 한다. 서울고법이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결정을 하자 고용노동부가 반발해 재항고하며 낸 이유서다. 제목으로 미뤄볼 때 문건 작성일은 2014년 10월7일로 추정된다. 재항고 이유서가 재판부에 제출된 것은 다음날인 10월8일이다. 검찰은 행정처가 서류를 미리 보고 노동부에 법적 조언을 해줬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행정처가 개별 법관의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만으로도 시민의 충격과 분노가 크다. 하물며 법원에 오지도 않은, 아니 수사기관에 접수되지도 않은 사건에 행정처가 개입했다면 상상을 넘어서는 사태다. 삼권분립 위반을 따지기조차 사치스럽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소송을 도왔다는 의혹 또한 마찬가지다. 행정처가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을 했는지, 청와대 지시에 의한 것인지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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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고영한·김신·김창석 대법관이 1일 퇴임했다. 모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임명된 이들이다. 퇴임사에서 고 대법관은 ‘사법의 권위’를 역설했다. 김신 대법관은 ‘상고제도 개선’을 호소했다. 김창석 대법관은 ‘법치주의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다. 법원을 떠나며 당연히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사상초유의 사법농단이 없었다면 말이다. 3인의 퇴임사가 전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시민의 충격과 분노를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심 어린 반성도 후회도 묻어나지 않는 퇴임사에 절망감을 느낀다.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 퇴임식에서 고영한 대법관이 퇴임사를 하고 있다. 뒤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보인다. 연합뉴스

이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지난달 31일 추가로 공개된 ‘양승태 법원행정처’ 문건 196건을 접하고도 재판거래는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 고 대법관은 특히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사법농단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단초가 된 국제인권법연구회 무력화 조치의 장본인이다. 재판거래 의혹 대상으로 거론되는 KTX 해고승무원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의 주심을 맡았다. 부산 법조비리 은폐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그는 퇴임사에서 “제가 관여한 모든 판결에 대해선 학문적·역사적으로 비판과 평가가 이뤄질 것”이라며 “모두 제가 짊어질 몫”이라고 했다. 작금의 사태에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느꼈다면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검찰에 제출하고, 출석 요구가 있으면 성실히 응하겠습니다.’

남아있는 대법관들도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들은 떠난 3인과 함께 ‘재판거래 의혹은 근거 없다’는 입장문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재판거래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수백건의 문건과 관련자들의 진술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오불관언하는 대법관들의 모습은 머리를 모래에 파묻은 타조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타조가 머리를 파묻는다고 위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법원 판결과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이 분리돼 있다는 해명을 믿을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대법관들은 재판거래 의혹 제기가 합리적 의심에 근거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사죄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의혹 사건에 관여한 대법관들은 실정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판결과 관련된 진실을 밝혀야 한다. 대법관들이 이 같은 요구를 외면한다면 더 큰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미 양승태체제에서 임명된 대법관 전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터다. 퇴임 대법관들이 말한 ‘사법의 권위’와 ‘법치주의에 대한 믿음’을 되찾는 일은 전·현직 대법관들 스스로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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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앞서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을 출국금지한 검찰은 두 사람이 재임 당시 임 전 차장의 ‘윗선’으로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된 각종 조치를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직 대법원장·대법관에 대한 출금 조치는 극히 이례적이다. 법원이 두 사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하자, 검찰 자체적으로 강수를 둔 것으로 본다.

대법원은 인권과 정의의 최후 보루이며, 대법원장은 그 수장이자 표상이다. 전직 대법원장이 재임기간 권력을 남용한 혐의로 출금된 것은 사법부의 불행이고 수치다. 물론 모두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고구마 줄기 캐듯 쏟아지는 의혹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행태가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보여준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행정처는 전·현직 판사가 연루된 법조비리 수사상황을 보고받고,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사돈의 형사재판 상황을 관리했다고 한다. 대법원 재판예규에 어긋나는 행태로 직권남용이나 공무상 비밀누설이 될 소지가 짙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출처:경향신문 자료사진)

사법농단의 정황이 연일 보태지는데도 법원이 요지부동인 것은 유감스럽다. 검찰 관계자는 “자료제출 범위와 관련해 법원과의 입장 차가 크다. 저희가 필요하다고 한 것의 아주 일부만 주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처 내에서도 기획조정실 외에 사법정책실·인사총괄심의관실 등의 하드디스크는 접근조차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법정책실은 상고법원 추진 주무부서이며, 인사총괄심의관실은 대법원이 특정 법관들을 사찰한 후 인사상 불이익을 가했다는 의혹과 관련된 부서다. 기조실 자료는 내놓고 다른 부서 자료는 못 내놓겠다는 것은 수사를 거부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23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농단 관련 문건 410건 중 아직 공개되지 않은 228건을 공개해야 한다고 의결했다. 진상규명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법원행정처에 대한 우회적 반발로 해석된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관료화에 대한 반성으로 상설화한 법원 내 공식 기구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의 개혁과 독립을 갈망하는 법관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문건 전면 공개와 자료 제출 협조는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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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임 전 차장이 은닉한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는 실패했다. 법원이 임 전 차장에 대한 압수수색영장만 발부하고 나머지는 모두 기각했기 때문이다. 수사 차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7월 23일 (출처:경향신문DB)

압수수색은 강제수사의 기초단계이며, 인신 구속을 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혐의 일부라도 소명되면 영장을 발부해온 것이 관행이다. 영장을 기각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거권을 침해할 만큼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각 사유가 사태의 심각성과 동떨어진 데다, 담당 판사의 이력도 석연치 않다. 해당 판사는 영장이 청구됐던 박 전 처장이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할 때 배석판사를 지냈다. 서울중앙지법은 “함께 근무한 경력은 형사소송법상 재판 회피 사유가 아니다”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언론에서 이미 해당 판사와 박 전 처장의 관계를 들어 공정성 논란 가능성을 보도한 터다. 법원에서 지시하든, 본인이 선택하든 영장심사를 다른 영장전담 판사에게 넘기는 것이 옳았다.

애당초 검찰이 강제수사에 착수한 것도 법원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이후 대법원의 행태는 약속과 달랐다. 폐기되지 않은 임 전 차장 등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제출을 거부하고, 자의적 기준으로 선별한 파일만 검찰에 냈다. 양 전 대법원장의 하드디스크 데이터가 디가우징으로 영구 삭제된 사실도 드러났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법원 내에서 자료를 열람한 뒤 복제하는 일은 허용했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 컴퓨터에서 의심스러운 문서를 발견하고도 여전히 법원의 거부로 반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김 대법원장은 왜 자신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지, 지금 ‘김명수 코트(court)’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시하기 바란다. 사법부의 신뢰 회복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만 가능하다. ‘제 식구 감싸기’로는 시민의 분노만 키울 뿐이다. 법원이 검찰 수사에 계속 협조하지 않는다면, 국회가 나설 수밖에 없다. 특별법 제정을 통해 사법농단 사태 특별재판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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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제헌절이다. 특히 올해는 제70주년 제헌절이라 더더욱 뜻깊다. 1948년 7월17일에 제헌헌법이 만들어져 공포된 이래 70년의 헌정사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민주헌정이 권력자들에 의해 유린당하는 위기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헌법을 지켜낸 이들은 주권을 실현하려는 평범한 국민들 자신이었다. 그래서 제헌절 70주년이 더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촛불혁명의 현장에서 국민들에 의해 가장 많이 애창되었던 현행헌법 제1조 제2항은 제헌헌법에서는 제2조에 규정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썼다. 이때 “주권”은 추상적 권력으로서 ‘국가의사를 전반적·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최고권력’으로 정의되며,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권력”의 “권력”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과 같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권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법원이 행사하는 사법권도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위임받은 사법권의 행사가 주권자인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것일 때에는 이 국민주권조항에 반하는 위헌적인 사법권 오남용이 된다. 제헌헌법은 이러한 사법권을 위임받은 법원의 판사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제대로 소신껏 사법권을 행사하라고 ‘사법권 독립’을 헌법에 규정해 주었다. 법관이 재판을 함에 있어 누구의 지시나 명령에도 구속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심판한다는 원리 말이다. ‘사법권 독립’은 모든 헌법교과서들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 구현장치의 하나로서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다. 제헌헌법은 제77조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이를 조문화하였고, 1962년의 제5차 개헌에서 “헌법과 법률” 이외에 법관의 “양심”이 추가되면서 현행헌법 제103조로 이어지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70년의 헌정사 동안 국민을 위한 공정한 사법권의 행사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위해 애쓴 대법원장들도 없지 않았다. 특히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대법원장은 당시 야당의 맹장인 서민호 의원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구체적 사건 재판에 대한 각종 간섭을 막아내고 법관들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다가 지병이 도져 한쪽 다리를 절단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사법권의 국민을 위한 공정한 행사와 이를 위한 개별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제헌헌법 이래로 70년간 일관되게 이어져온 우리 헌법의 엄숙한 명령이었다.    

최근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하의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한 사법농단 사태는 그래서 국민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이미 법원의 특별조사단이 조사하고 검찰에 임의 제출한 410개의 법원행정처 문건 등에서도 여러 위헌·위법한 사법행정권 오·남용 사례들이 담겨있다. 대법원장이, 또 법원행정처가 법관의 독립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재판을 하는 법관들을 뒷조사하고 이를 문건화하는 데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국민들의 피와 눈물이 담긴 사건들의 재판에서 공권력의 오·남용으로부터 국민들의 인권을 지켜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 힘쓰기는커녕, 오히려 당시 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제 도입을 위해 당시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한 정황이 담긴 문건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상고법원제 도입에 반대한 전 대한변협 회장이나 다수의 민변 변호사 등 민간인들까지 불법사찰한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과거 독재시대의 국정원이나 기무사가 한 민간인 불법사찰을 감행한 것이다. 실로 점입가경이다. 법을 잘 알고 재판을 했던 법원행정처의 법관들이 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이다. 앞으로 국민들은 이런 사법농단 사태 때문에 얼마나 더 놀라야 하고 얼마나 더 분노해야 하는가. 민주헌정 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도 법원은 이미 스스로 진행한 자체조사에서 검토한 자료들을 제외하고는, 여러 이유를 들어 검찰의 자료 제출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국민들의 눈에는 이것이 사법농단에 관여한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야 할 당사자인 법원이 스스로의 자의적인 판단을 내세워 어떤 자료는 줄 수 있고, 어떤 자료는 줄 수 없다는 식으로 선별적인 자료 제출 거부에 나선 것으로 비칠 뿐이다. 정녕 법원은 법원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제헌절을 즈음해 헌법 제1조 제2항의 국민주권조항과 제103조의 사법권 독립 조항을 다시 소리 내어 읽어본다. 마음이 아프다. 지금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같을 것이라 믿는다. 사법부가 지금부터라도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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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는 픽션, 즉 만들어진 사회이다.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비근대적 사회의식은 픽션에서 불안을 느끼지만, 근대정신은 픽션의 가치와 효용을 믿고 재생산한다”고 했다. 이렇게 근대를 구성하는 픽션의 정점에 헌법이 있다. 국가라는 거대한 픽션의 설계도이다. 군사정부의 성실한 마름이던 대법원이 공정하고 독립적인 사법부라는 서구적인 픽션을 갖춘 것은 역설적이게도 1987년이 계기다. 시민혁명의 대상은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정권과 법원이지만 6월항쟁은 법원에 손을 대지 않았고, 법원은 혁명에 무임승차했다. 어설픈 타협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실체를 드러낸다.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판사가 이명박 정부 당시 대법관이 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관여한 검사가 박근혜 정부에서 대법관이 됐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7월2일 (출처:경향신문DB)

세상의 모든 픽션은 내러티브를 요구한다. 경험하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고 공유하게 만들어 픽션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일본헌법이라면 일왕의 존재가, 한국헌법에는 임시정부의 시간이 있다. 독재정권에 협력한 사법부에 공정함이란 픽션을 제공한 내러티브는 우리법연구회라는 존재다. 1988년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은 군사독재 시절 인물인 김용철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했다.(1982년 7월 문재인 사법연수생에게 판사임용 불가를 통보한 사람이 김용철 법원행정처장이다.) 6월15일 서울민사지방법원에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문건이 돌며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이들은 김용철에 반대했다. 이광범, 유남석, 김종훈, 한기택 등이 주축이었다. 이에 노태우 대통령은 김용철 대신 비슷한 정기승을 대법원장에 부쳐보지만 국회에서 부결된다. 2차 사법파동이고, 이 사건 주역들이 만든 모임이 우리법연구회다.

지난해 시작된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공정한 사법부라는 픽션은 위기에 처했다. 우리가 믿어온 재판의 공정함이 실재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이 자리를 파고든 것이 ‘보수적인 양승태 대법원의 악행’ 때문이라는 소문이다. 얼마 전 어느 방송사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와 “ ‘양승태 대법원’과 ‘이용훈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의 고등부장 승진율 자료를 달라”고 했다. 나는 “지난해 기사에서 양쪽 모두 100%라고 밝혔다”고 했지만 상대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러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추진한 이유가 퇴임 이후 변호사로서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냐”고 물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느 언론사의 기자는 “상고법원을 추진한 사람은 모두 징계 대상이 아니냐”고도 했다.

양승태도, 상고법원도 악이 아니다. 대법관 12명이 연간 4만여건을 처리하는 상황은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용훈 대법원’이 추진한 고등법원 상고부와 ‘양승태 대법원’이 추진한 상고법원이 다르지 않다. 변호사로 돈을 번 걸로 치면 양 전 대법원장이야말로 깨끗하다. 대법관을 마치고 하루도 변호사로 일하지 않다가 대법원장이 됐다. 그에 비해 이 전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마치고 삼성 등의 사건을 맡아 거액을 챙기고 세금도 누락했다. 행정처의 관료화가 본격화한 것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이다. 그런데도 눈앞의 상황을 보혁구도로 파악하는 것은 진실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1987년에 구축된 공정한 사법부라는 부당한 픽션을 재생산하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양승태 개인이 아니라 관료화한 사법부 그 자체다.

재판거래 의혹을 비롯해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 작성자 상당수가 우리법연구회 회원이다. 여기에 몇 명 되지도 않는 행정처 심의관 숫자, 그보다 조금 많은 우리법연구회 회원 숫자를 생각하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는 우리법연구회가 주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검찰 손에 들어간 어마어마한 문건을 발견하고도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결론을 적어 김명수 대법원장을 궁지로 몰아넣은 특별조사단에도 우리법연구회 회원이 있다. 끝이 아니다. 우리법연구회 초기 멤버들은 불법적인 문건을 작성한 후배 판사들을 만나 수사와 재판에 대비하고 있다. 보혁구도 같은 무책임한 상상으로는 이런 상황이 설명되지도, 부당한 픽션이 붕괴되지도 않는다.

엊그제 발표된 대법관 후보자를 두고 순수 변호사 출신이라서 의미가 있다거나, 우리법연구회 소속에 여성이라서 이번 사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낡은 픽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오히려 지금까지 판례를 바꾸어온 주인공은 서·오·남(서울대, 50대, 남성)들이 더 많고, 반대로 사형제에 합헌 의견을 내거나 쌍용차 노동자를 일터에서 몰아낸 민변 회장과 여성 변호사 출신도 있다.

사법이라는 제도는 픽션이지만, 재판이라는 작용은 현실이다. 지금 당장은 제대로 된 대법관을 가려내는 것부터 해야 한다. 부당한 현실에 저항해온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가진 대법관이 무너진 사법부를 살려낼 것이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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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24일 검찰의 ‘양승태 사법농단’ 관련 자료 제출 요청과 관련해 “검찰이 보낸 공문을 검토해 제출할 자료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9일 검찰이 자료를 요청했는데도 대법원이 계속 침묵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검찰이 요구한 자료에는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특조단)이 조사한 컴퓨터 하드디스크 8개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하드디스크 등이 포함돼 있다. 검찰은 의혹에 연루된 인사들의 업무추진비 집행내역과 관용차량 이용내역, 특조단이 자체 조사 과정에서 생산한 문건 등도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대법원은 “방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입장에서 임의제출이 관련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는 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해달라”고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농단 파문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 5일 대법원 철문 틈새로 청사 건물이 보인다. 김영민 기자

법원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검찰이 달라는 자료를 모두 건넸다가 법원의 독립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법도 하다. 그러나 헌정 사상 초유의 사법농단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선 비상한 조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미 제기된 의혹만으로도 사법부의 독립에 대한 믿음은 금이 간 상태다. 자료 제출을 미루거나 최소한의 자료만 내준다고 법원과 법관의 독립이 지켜질 리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수사가 진행될 경우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법원은 이 약속대로 신속하게, 적극적으로 자료 제공에 협조하는 게 옳다.

검찰도 고발인 조사를 모두 마치고, 법원으로부터 필요한 자료를 제출받는 대로 실체적 진실 규명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 사법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 오래가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다만 수사 목적을 넘어 과잉수사로 흐르는 일이 있어선 곤란하다. 하드디스크 자료의 경우 수사범위를 벗어난 내용은 빼낼 수 없도록 법원 측이 참관하는 가운데 복사하겠다고 했는데,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법원과 검찰 모두 사법농단 수사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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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31일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연루 인사들에 대한 고발·수사의뢰 여부는 법원 안팎 의견을 종합한 뒤 최종 결정하겠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이 공식 사과한 것은 당연한 일이나,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조치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보고서가 나온 지 이미 엿새가 지났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사법농단 앞에서 시민의 분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언제까지 의견 수렴만 할 것인가.

김명수 대법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대법원장은 담화문에서 “참혹한 조사 결과로 심한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법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들의 질책을 사법부 혁신의 새로운 계기로 삼고,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징계를 신속히 진행할 것이며, 조사자료 중 의혹 해소를 위해 필요한 부분의 공개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대법원이 형사조치를 하는 것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및 각계 의견을 종합해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자 한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조직을 인적·물적으로 분리하고 법원행정처 상근 법관들을 사법행정 전문인력으로 대체하는 등의 제도적 쇄신 방안도 제시했다.

담화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법원의 재판에는 누구도 부정한 방법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면, 사법부는 더 이상 존립의 근거가 없고 미래도 없다. 사법부 구성원 모두와 함께 그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 지금 그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김 대법원장이 할 일은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들을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하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를 대법원 청사 외부로 이전한다는 약속 정도로 시민의 충격과 분노를 달랠 수는 없다. 관련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유용하고 확실한 재발방지책이다. 심판하던 이들이 심판받는 처지가 될 때에야 연루 인사들은 물론 모든 법관들이 법의 준엄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심판대에 세우는 주권자를 진정으로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대법원장의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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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한 장의 사진이 수백쪽 분량 책보다 많은 말을 한다. 김승하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이 29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절규하는 사진이 그랬다. 김 지부장 등 KTX 해고노동자들은 이날 대법정에 뛰어들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했다. 앞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보고서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KTX 승무원 판결’을 두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2006년 해고된 KTX 승무원들은 2008년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내 1·2심에서 이겼지만 2015년 대법원은 이를 파기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승무원 한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 대법원장에게 묻고 싶다. 이 사진을 봤는지,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KTX 해고승무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정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후 면담 요청서 전달이 저지 당하며 대법원으로 진입한 KTX 해고 여승무원들이 대법정 안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김 대법원장은 양 전 대법원장 추가 조사 여부와 관련해 “특별조사단에서 최종 정리한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라며 “보고서 내용과 여론 등을 모두 검토해 결정한 뒤 말씀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후속조치 시점에 대해선 “신중하게 대책을 마련하겠다. 날짜나 시간을 약속드릴 수는 없다”고 했다. 고심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특별조사단 조사를 이미 거부한 터라 대법원에서 추가 조사 요구를 한다 해도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검찰 수사로 갈 수밖에 없다. 김 대법원장은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만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사법농단 의혹에 온 나라가 분노하는 마당에, 전직 대법원장의 명예 따위는 고려 대상조차 될 수 없다. ‘재판 거래’가 사실이라면 이는 위법을 넘어 위헌이다. ‘셀프 면죄부’로 그칠 사안이 아니다.

검찰에는 이미 양 전 대법원장 수사를 요구하는 고발장이 8건 접수돼 있다. 추가 고발을 예고한 단체들도 있다. 언제든 수사 착수가 가능하다. 그러나 수사권력을 구성하는 검찰이 법원 수사에 먼저 나서는 일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법관들을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하는 게 정도다. 검찰 수사로 미흡하면 특별검사를 도입해서라도 의혹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모든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13년째 싸우고 있는 KTX 해고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그래야만 나락에 떨어진 법원의 명예와 신뢰도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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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가 판사회의 의장 선출에 개입하려 했다는 정황이 나왔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 중인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이러한 내용이 담긴 문서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정당은 물론 민간단체 선거에서도 외부의 개입은 용납되지 않는 부정행위에 속한다. 하물며 사법부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추가조사위는 의혹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차량에 오르기 전 직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추가조사위는 행정처 컴퓨터에서 2016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출 관련 대책을 담은 문건을 찾아냈다고 한다. 문건에는 당시 유력 후보이던 특정 판사의 성향과 활동을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른바 ‘대항마’를 내세운다는 부분이다. 해당 판사는 2015년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검사로서 국가안전기획부·경찰의 은폐·축소 기도를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취지의 글을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인물이다. 당시 양 대법원장은 자신이 임명 제청한 박 후보자가 법원 안팎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비판의 표적이 됐다. 결국 대법원장의 수족과 같은 행정처가 나서 ‘눈엣가시’ 판사의 의장 선출을 저지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의장으로 해당 판사가 선출되긴 했으나, 경선 과정에 ‘의외의 인물’이 나섰던 것도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문제의 행정처 문건 중 일부를 작성한 전 행정처 심의관(판사)은 “행정처 고위관계자의 지시로 문서를 만든 것”이라고 추가조사위에 진술했다고 한다. 이 판사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이런 엄청난 문건을 실무자 단독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자율적 기구의 선거에 행정처가 개입하려 했다면, 이는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추가조사위는 양 전 대법원장이 문건 작성 사실이나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 ‘대항마’ 계획이 실행됐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법원 내부게시판에서 일부 판사들이 ‘행정처 컴퓨터 강제 조사’ 등에 반발하는 데 휘말려서도 곤란하다. 법관의 독립은 주권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법원 기득권세력을 위한 것이 아니다. 추가조사위는 이를 명심하고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모를 낱낱이 파헤쳐 시민 앞에 드러내야 한다. 양 전 대법원장도 조사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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