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종전과 함께 영국 정부는 전후 복구 계획을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제출받았다. 존 볼비라는 정신과 의사도 동료들과 함께 복구 계획안을 제출하였다. 전쟁 후 국가 재건과 복구 계획에 정신과 의사는 무엇을 복구하자고 계획을 냈을까. 그는 주거를 위한 건물 복구뿐 아니라 국민의 마음 복구도 같은 비중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한 고아와 아동들의 정신적 충격과 교육에 대한 복구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고아원이나 시설에 있는 아동 수를 대폭 줄이고 이 아이들이 위탁가정과 공공유치원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펼쳤다. 건물만이 아니라 마음과 교육도 복구하라는 그의 정책이 오늘날 영국 정부의 외로움부 장관이나 자살예방부 장관 임명으로까지 이어지는 문화적 전통이 아닌가 생각한다.

60년 전 아동들의 마음 복구를 주장했던 존 볼비의 문헌을 보다 국내 뉴스를 보니 마음이 울컥한다. 세계 최고의 저출생국인 이 나라에서 일부 유치원 운영자들이 벌인 행각이 기막혀서다. 원아들을 위해 써야 할 돈을 보석 구입 등 개인 치장하는 데 쓰고 자녀 용돈도 주는 등 비리백화점과 다름없었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일부 운영자들의 비리를 밝힌 이들은 초선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엄마들이었다.

“교육부는 사죄를”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들이 교육부의 비리유치원 비호·방조에 대해 감사를 청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아이들에게 먹일 빵을 가로채는 동화 속 악당들의 일을 관행으로 여기는 사회였다니! 그 관행이라는 부도덕의 카르텔에 오랜 기간 서로 협력하며 지내온 관료와 정치인들에게 놀란다. 또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눈을 감았던 국가의 무관심에도 놀란다.

정부의 우선순위 설정 기능도 걱정이다. 고등학교 무상교육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공공화와 무상화가 국가교육의 차원에서 훨씬 우선 순위가 높은 일 아니던가. 작금의 결혼기피, 저출산, 국가의 위기상황을 보면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은 위기대응의 제일 과제이지 않은가. 지금 이 나라는 아이들의 삶을 복구하고, 부모로서의 삶도 복구하는 가장 혁신적인 정책이어야만 구제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유치원, 어린이집의 중요성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더욱 커졌다는 사실을 국가는 기억해야 한다. 유치원은 국가가 주체로서의 시민과 만나는 첫번째 교육적 접촉점이다.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포함한 반편견교육, 세계시민교육도 유치원 수준에서 가장 효과가 높다. 그래서 사회통합교육도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미국 교육부는 이미 1980년대에 강조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유치원에서부터 공공문화를 가르치고, 시장과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시작한다. 협력과 상생의 공동체를 경험하고 공감을 배우는 것도 나이가 어릴수록 더 효과가 좋고 오래가는 것으로 밝혀졌다. 온갖 디지털 기기에 대한 감수성과 문해력도 달라서, 유치원부터 디지털 문화에 대한 문해력을 배워야 향락적 소비자가 아니라 상호적 생산자가 되면서 창의적인 사용자가 될 수 있다.

사립유치원에 다니며 교사와 부모로부터 떠받듦만 받던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 갑질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부가적 사교육비를 대느라 엄마들이 알바를 하면 할수록 아이는 더 비뚤어진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우리는 더욱 아동을 위한 나라가 되어야만 국가가 회생할 수 있다. 존 볼비는 “사회는 아동이 가정다운 가정을 경험하게 해줄 의무가 있고, 배워야 할 좋은 것들을 공적인 학교에서 배우게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즉 국가는 마땅한 육아와 교육환경을 아동에게 제공해야 하고, 가정다운 가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아버지와의 저녁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부지런한 엄마의 번호표 뽑기에 아동의 유아교육을 맡긴다는 말인가. 온갖 사교육에 시달리며 아동 본인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거만한 사교육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또 속임수와 학대가 빈번한 교육현장에서 자라나는 슬픔을 아동의 가슴에 맺히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번 비리로 상처받은 부모의 마음까지도 국가와 유치원들은 복구해 주기를 바란다. 조속히 유치원 교육은 무상·공립화되어 걱정 없게 해야 한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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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누리과정 보육료를 둘러싼 ‘보육대란’이 재연될 것 같다. 지난해 보육대란 당시 급조한 ‘2015년 3개월치 예산 편성’ 미봉책의 시한이 이달 말이기 때문이다. 당시 내부 재정 문제로 2개월치만 편성했던 광주시교육청 보육예산은 벌써 바닥났고, 나머지 시·도교육청도 4월 이후 차례로 예산 고갈 사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각 시·도교육청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지난해 긴급 편성한 누리과정 예비비 5000여억원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영·유아 보육을 볼모로 교육청 길들이기를 하자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이만 낳아주면 국가가 책임지고 키워주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정부가 앞장서 깨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올 초 어린이집 보육대란이 재발하는 것은 사실 시간 문제였다. 지난해 보육료 부담 주체를 놓고 중앙 정부와 시·도교육청, 여야 정치권이 대립한 끝에 2015년 3개월치 예산을 시·도교육청이 우선 편성키로 하고 봉합했기 때문이다. 대신 누리예산 부족액 1조7000억원 가운데 1조2000억원은 지방교육채 발행으로, 나머지는 정부가 예비비를 편성해 각각 충당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지자체가 지방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지방재정교육법 개정안이 지난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정부는 이를 빌미로 5000여억원의 예비비 집행을 보류함에 따라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이다.

울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들이 영·유아들을 돌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는 개정법안이 통과되고 지자체의 지방채 발행이 현실화돼야 예비비 지원이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목적예비비 5000여억원을 지원한다 해도 전체 부족 보육료의 3개월치에 불과해 근본 처방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목적예비비는 국회 입법을 전제 조건으로 편성한 것이 아니다. 국회가 의결한 예비비 집행을 정부가 타당한 이유 없이 보류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다.

거듭 지적하지만 어린이집 보육료는 국책 사업인 만큼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이는 어린이집 소관 부처가 보건복지부란 점만 봐도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정부는 당장 예비비를 풀어 교육청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 다음 정치권과 협의해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에 진력해야 한다. 어린이집들은 이미 지난달부터 시위를 시작했다.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정부는 그들의 ‘창끝’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음을 무겁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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