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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18 [정동칼럼]세상 꾸짖던 대학의 지성이 그립다

고려대학교 사람들은 ‘정경대 후문’이라고 부르는 서쪽의 작은 출입문을 많이 이용한다. 지하철 접근성이 높고 상권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이 서문은 언제나 붐빈다.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릴레이 대자보나 ‘김예슬 선언’으로 알려졌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도 바로 이 서문 통에 처음 붙었다. 며칠 전 바로 그 자리에 올해 새로 취임한 염재호 총장에 대한 불만 섞인 대자보가 붙었다.

최근 염 총장은 광폭의 소통 행보에 공을 들여 캠퍼스별로 ‘교수와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총장이 전체 교수와 한자리에서 듣고 답하는 형식으로 교수의원들이 패널로 교내 핵심 사안을 질의하고 참석 교수들도 자유롭게 의견을 낸다. 참석하지 못한 교수들을 위해 인터넷 포털로 생중계를 하고 동시에 SNS로 질의응답도 한다. 얼마 전에는 ‘학생과의 대화’를 시작했는데 이 자리에서 염 총장이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열어놓겠지만, 피교육자인 학생들이 학교 행정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신을 밝힌 모양이다. 피교육자라는 표현과 학생들을 배제하는 듯한 염 총장의 생각이 비민주적이라는 것이 대자보의 내용이다.

그 내용이 어떻든 염 총장의 소통 행보와 학생들의 반응에서 모처럼 대학의 미래를 여는 빛 같은 것을 볼 수 있어 반갑다. 염 총장은 “고려대가 미래의 대학에서 가장 앞서고 모범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문제를 풀어낼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고, 바로 문제해결의 출발을 소통에서 찾은 듯하다.

축구선수 이천수(왼쪽)가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 총장실에서 운동부 육성기금·체육교육과 학생 장학금으로 1억을 기부한 후 염재호 고려대 총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_ 연합뉴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일이라 민망하지만, 고려대는 지난 세 번의 총장 시기 동안 한국 대학의 일그러진 상업적 경쟁지상주의를 선도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필 세계적으로는 신자유주의가 위축되던 시기에 그와는 거꾸로 간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주의에 편승한 듯해 불편함이 더 했다. 등위를 높이는데 학교의 명운을 걸고 주요 신문의 한 면을 통째로 사서 총장의 얼굴을 전면에 내걸어 세상을 술렁이게 하기도 했다. 뿌리 깊은 정신의 대학으로 알려진 바로 그곳이 벌거벗은 이익과 맹목적 효율의 시장판으로 변해 갔다. 끝없는 평가와 스펙 경쟁에 지친 교수와 학생들이 탈출구 없는 궤도에 갇힌 듯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도처에서 대학이 질식할 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두산그룹이 인수한 중앙대에서는 교수와 학생의 비명이 요란하다. 최근 사퇴한 중앙대의 박용성 이사장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인사권을 가진 내가 법인을 시켜서 모든 걸 처리한다”면서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목을 쳐 줄 것”이라고 했다. 도살장을 연상시킨다. 못된 짓은 빨리 배우는 법이다. 한림대 노건일 총장은 ‘교원의 의무’ 서약을 강행하고 강압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다 교수들의 총장 퇴진운동에 부딪혔다. 한림대 교수평의회는 “대학이 대화는 실종되고 일방적인 지시와 명령만 난무하는 병영체제로 변했다”고 했다. 수많은 박용성과 노건일의 뒤틀린 리더십이 우리 시대 대학을 죽이고 있다.

한 사회의 미래로 가는 출구를 막으려면 대학의 숨통을 틀어막으면 된다. 세상이 아무리 헝클어져도 대학의 이성과 지성이 살아 있어 이를 꾸짖을 수 있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 그러나 교수들은 논문 편수를 채우는 기계가 되었고 학생들은 취업을 위한 스펙에 목을 매는 오늘의 대학은 진리도 지식도 가치도 생산할 수 없는 식물이 되고 말았다.

대학에서 세상을 향한 목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시장의 논리로 가득 찬 대학에서 철학이 죽고 문학이 죽고 역사가 죽고 있다. 생동하는 아카데미즘은 자유로운 소통에서 나온다. 그래서 대학의 공기는 자유로워야 하고 대학을 경영하는 리더십은 자유로운 소통을 보장하는 리더십이어야 한다. 대학의 총장이나 이사장의 일그러진 리더십이 대학을 죽이면 비극은 대학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학의 침묵은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문을 닫는다.

‘메르스’보다 심각한 것이 병든 리더십이다. 병든 리더십으로 가득 찬 시대에 염재호 총장의 열린 리더십은 청량하다. 학교 본관만 보면 생기던 오랜 ‘우울증’이 사라졌다. 출근길이면 통과하는 서문 통에는 총장을 비판하는 학생들의 ‘싱싱한’ 대자보가 눈에 띄고, 총장은 그럼에도 교수와 학생과 직원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있다. 고려대학교의 캠퍼스 혁신을 눈여겨볼 일이다.


조대엽 |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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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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