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은 기후변화에도 의미 있는 해였다. 온실효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같은 용어가 그해 본격적으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해 6월23일, 기후변화의 새 역사가 쓰였다. 40대 후반의 한 과학자가 그날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역사적인 증언을 했다.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에 의해 강화된다고 99% 확신할 수 있다.” 그의 증언은 이튿날 ‘지구온난화는 시작됐다’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 1면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기후변화가 언론에 처음 대서특필된 순간이었다. 향후 가열되는 기후변화 논쟁의 예고탄이기도 했지만. 그날의 주인공은 훗날 ‘기후변화 선지자’로 불린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과학자 제임스 핸슨 박사였다.

당시 핸슨 박사가 말한 핵심은 세 가지였다. 첫째, 1988년은 역대 어느 해보다 더운 해라는 점이다. 둘째, 온실효과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기후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온실효과가 폭염 같은 극단적인 사태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2017년까지 지구의 5년 단위 평균기온이 1950~1980년보다 약 1.03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또 워싱턴을 비롯한 4개 도시의 극단적인 날씨 일수를 예측했다. 핸슨의 예측 결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 2017년까지 실제 기온 상승폭은 0.82도였다. 4개 도시의 극단적인 날씨 일수는 오히려 핸슨의 예측을 웃돌았다.

지난해 9월 중국 네이멍구 바우터우 쿠부치 사막의 조림지 대한항공 녹색생태원에서 임직원들이 황사 방지 희망 나무를 심기 위해 사막 능선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바우터우(중국) _ 이준헌 기자

그로부터 30년. 핸슨은 자신의 바람과 달리 예측대로 가고 있는 현실에 절망했다. 더욱이 올해 들어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최고기온을 갈아치울 정도로 지구는 더워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대기권 이산화탄소 농도가 410PPM을 넘어섰다. 지구온난화의 심리적 저지선이라고 불리는 400PPM을 넘어선 지 3년 만이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손을 떠났다는 섬뜩한 전망까지 나왔다. 8개국 13개 연구기관의 학자들은 지난 6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지구 곳곳에서 진행 중인 기후변화가 특정한 임계점을 넘어서면 지구가 자정작용을 멈춰 온실가스 감축 등 향후 인류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우울한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핸슨 박사도 회한을 드러냈다. 지난 6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로 “기후변화 이야기를 대중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게 하지 않은 점”을 꼽았다.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냉정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쓴 뉴요커 기자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30년 전 핸슨의 증언을 “침울한 이정표”라고 했다. 한 과학사 연구가는 핸슨을 “비극적인 영웅”으로 묘사했다. 핸슨이 기후변화의 위험을 알린 선지자였지만 대중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핸슨은 대중과의 소통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그는 기후변화 반대시위 현장에서 5번이나 체포될 정도로 과학자를 넘어 시민행동가로서의 소임도 다했다.

2012년 봄에는 ‘내가 기후변화에 대해 반드시 외쳐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TED 강연을 했다. NASA에서 은퇴하기 1년 전에 한 이 강연 동영상은 130여만명이 봤다.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빨리 예측하고 알리고자 했던 핸슨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기업의 이해관계에 부응해온 기후변화 부정자들이나 정치인들이 문제다. 그가 회한의 소회를 밝힌 이유는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TED 강연 동영상에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할아버지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했다.” 그가 손주들로부터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결국 그를 ‘기후변화 전도사’로 나서게 한 건 미래세대에게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구를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감이었다.

핸슨의 역사적인 증언으로부터 한 세대가 지났다. 기후변화는 거대담론이다. 찬반 논쟁이 끊이질 않는다. 핸슨 같은 선지자의 경고보다 에어컨 전기료 폭탄 문제에 우선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핸슨은 존재 그 자체가 희망이다. 그래서 당신이 있었기에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아직도 대처하기에 늦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 핸슨은 의회 청문회장에 나오기 전날 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경기를 보면서 다음날 날릴 멋진 문구를 떠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청문회에서는 그 말을 깜빡 잊어버렸다. 청문회 뒤 기자회견에서 그가 한 말은 이렇다.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 온실효과가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조찬제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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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폭염이 장기화하면서 정부가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열고 범정부 차원에서 폭염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행정안전부는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국회에 계류 중인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할 때 이 안이 관철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폭염을 재난으로 관리하기를 주저했던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최근 폭염 피해가 속출하면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옳은 결정이다.

경포해수욕장의 낮과 밤…경북 경산 39.9도 23일 오후 강원도 강릉 경포해수욕장은 피서객들이 뙤약볕을 피해 발걸음을 줄여 한산했다(위 사진). 피서객들로 모래밭이 붐비던 전날 새벽 풍경과 대비된다(아래). 24절기 중 연중 가장 덥다는 ‘대서’인 이날 오전, 강릉은 아침 최저기온이 31.0도였다. 1907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111년 만에 ‘가장 높은 최저기온’이었다.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도 29.2도로, 역시 서울 최저기온으로는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기상청은 제10호 태풍 ‘암필’이 보내온 구름이 하늘을 덮으면서 밤사이 열이 빠져나가는 ‘복사냉각’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낮 동안 달궈진 공기가 밤에도 식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낮에도 폭염이 계속돼 기상청 무인장비 측정값으로 이날 한때 경산 하양이 39.9도까지 올라가 1942년 대구의 40도 이래 두 번째 고온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올해 폭염은 매일 기록을 경신하며 위세를 더해가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8.0도까지 치솟았다. 최근 30년간 서울의 7월 기온으로는 3번째로 높다. 23일 최저기온은 29.2도로, 111년 관측 역사상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 11일 장마 직후 시작된 폭염이 열흘 넘게 계속되면서 무더위가 맹위를 떨친 1994년 7월의 폭염일수(최고기온 33도 이상인 날)를 갈아치울 태세다. 온열질환자는 1000여명에 달하고, 사망자도 10명을 넘어섰다. 더 큰 문제는 폭염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상청은 8월 초까지 현재와 같은 살인적인 더위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폭염은 가까운 미래에 가장 우려되는 재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금처럼 더워지면 2050년대에는 해마다 폭염으로 165명이 숨질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정부가 폭염 대책에 발 벗고 나서야 하는 이유다. 현재 폭염이 ‘자연재난’에서 빠져 있어 폭염 대처 매뉴얼도 마련돼 있지 않다.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그렇다고 국회 입법과정만 지켜보기에는 현재 상황이 너무 엄혹하다. 정부가 부처 합동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독거노인·농민·어린이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시스템은 더욱 강화해야 한다. 쪽방, 지하 생활자 등 에너지 빈곤층이 전력 공급에서 소외받지 않도록 철저한 배려가 필요하다.

폭염 피해 방지를 위한 단기 대책과 함께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는 노력도 가속화해야 한다. 한국은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2015년 기준으로 세계 6위이며, 배출량 증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화석연료를 줄이고 난개발을 자제하는 등 산업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민간에서도 승용차 이용을 자제하고 자전거 타기를 생활화하는 등 친환경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폭염 피해는 개인 차원에서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와 국민이 노력하면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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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의 위험관리상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라는 말과 유사하게 에너지 소비에도 ‘에너지믹스’라는 원칙이 있다. 한 나라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어느 하나로 하지 말고 여러 개로 하라는 의미다. 물론 석유가 지천인 나라는 석유로 자동차를 굴리고 난방이나 취사도 하고 심지어 발전도 할 수 있다. 만일 우리나라가 그렇게 했다가 유가가 폭등하거나 석유 수입에 애로가 발생하면 경제적 피해는 차치하고 나라 전체가 결딴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에너지믹스’의 원칙을 준수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우리나라 에너지믹스에 다소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에너지 소비에서 전력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는 난방에너지를 석유와 가스에서 전기(시스템 냉난방기)로 바꾸었고, 최근에는 전기차와 전기레인지(인덕션)의 등장으로 수송과 취사에도 전기가 사용되고 있다. 얼핏 보기에 석유나 가스에 추가로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다양한 에너지원의 배합이라는 에너지믹스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는 않다. 이런 추세라면 전력이 난방을 넘어 수송이나 취사 등 모든 용도의 에너지 소비를 독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정부 계획에 의하면 이렇게 증가하는 전력이 다양한 발전원 간의 배합이 아닌 원전과 석탄발전으로 대부분 충당된다는 점이다.

에너지 소비의 전력 편중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부가 석유와 가스에는 높은 세금을 부과하면서 원전과 석탄에는 저렴한 전력요금을 위해 세제 우대와 숨은 보조 등 다양한 지원을 한 탓이다. 그 결과 가장 비싸야 할 고급에너지인 전기가 석유나 가스보다 저렴하게 되면서 난방을 비롯하여 모든 에너지가 전력으로 바뀌고, 낮은 요금으로 계속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원전과 석탄발전을 계속 늘리는 것이다.

지난번 경주 지진처럼 큰 지진이 발생하면 대규모로 원전 가동을 멈추어야 한다. 석탄발전은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문제로 국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조건이 걸려 있다.

원전과 석탄발전에 필수적인 송전망 건설도 불안요인이다. 더구나 전력은 대규모 저장이 어렵고, 다른 나라와 전력망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는 유사시 전력을 대량으로 수입하기도 어렵다. 에너지믹스는 위험 관리를 넘어 국가안보에 준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에너지믹스를 좀 단순하게 하더라도 경제적 차원에서 저렴한 원전과 석탄 비중을 높여 산업 경쟁력과 경제 성장을 우선하자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일리가 있고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다. 하지만 저렴한 전력요금이 지난 수년간 비효율적인 전력소비를 유발하고, 한국경제를 저부가가치형 전력다소비산업에 안주하게 만든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우리나라보다 2~3배 높은 전기요금 하에서 친환경적인 에너지믹스로 제조업의 경쟁력까지 유지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이처럼 현재의 에너지믹스 추세는 환경, 사회갈등 그리고 경제적인 측면을 넘어 우리나라 에너지수급의 안정성 측면에서 되짚어볼 점이 많다. 조만간 우리나라 에너지믹스를 결정하는 중요 계획들이 수립될 예정이다. 사회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여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에너지믹스에서 안정적이고 다양한 저탄소 에너지믹스로의 방향 전환을 고민해 볼 시점이다.

조영탁 |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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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온실가스) 국외 감축은 감축 관련 국제사회 합의, 글로벌 배출권 거래시장 확대, 재원조달 방안 마련 등 전제조건 충족이 필요한 사항입니다.”

정부는 6일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을 국무회의에서 확정해 발표했다. 이 중 배출전망치(BAU) 대비 11.3%의 온실가스는 국외 노력을 통해 감축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제출한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 대비 37.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해 발표한 기본계획의 한 부분이다.

언뜻 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언급한 전제조건은 실체가 없는 허깨비에 가깝다. 온실가스 배출권에 대한 국제 거래시장은 구체화되기는커녕 아직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별 기후변화 건강영향 누적비용 (출처: 경향신문DB)

정부는 “제반 조건 진행 현황 및 감축수단별 세부사업 발굴 결과 등을 반영해 2020년까지 온실가스 국외 감축 세부 추진 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전문가들은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11.3%는 감축하지 못한다’는 포기 선언에 가깝다”는 혹평까지 내놓고 있다.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량 중 3분의 1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제22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정부가 언급한 국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에 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아직 자국 내에서의 감축계획 비준조차 끝나지 않은 나라들도 있기 때문이다.

국외 감축 계획을 제외하고도 이미 망신살이 뻗친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게 될지 걱정이 커지는 이유다.

국제 기후변화 연구기관들이 지난달 초 한국을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무책임하고 게으른 국가를 뜻하는 ‘기후 악당’ 국가로 선정했다. 이것이 국제적 비난 물결의 시작이 아니길 바란다. 정부는 허상을 버리고, 국내 감축에 더 집중해야 한다.

김기범 | 정책사회부 holjjak@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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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오는 12월 신기후체제 협상에 내놓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어제 확정했다. 203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의 37%를 감축한다는 내용이다. 일견 6월11일 제시한 4가지 감축 시나리오(14.7%, 19.2%, 25.7%, 31.3%)보다 강화된 목표로 보인다. 정부는 한국의 국제적 책임과 그동안 쌓아온 기후변화 대응 리더십을 고려하고 에너지 신산업 및 제조업 혁신의 기회로 삼기 위해 목표 수준을 상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의심스러운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5억3500여만tCO2-e 배출) 목표는 지난해 12월 페루 리마에서 채택된 ‘후퇴 금지 원칙’을 겨우 충족하는 것이다. 2009년 한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2020년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5억4300만tCO2-e 배출) 목표를 고작 700여만tCO2-e 줄이는 정도다. 10년 동안 거의 줄이지 않을 것이며 2020년 감축 약속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게다가 37% 감축 목표마저 배출권이라는 국제탄소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국외 감축분 11.3%포인트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감축분의 거의 3분의 1을, 남의 나라가 온실가스를 감축하면서 확보한 배출권을 돈주고 사는 것으로 메우겠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국내 감축 목표를 25.7%로 잡으면 사실상 기존 제3안을 채택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시나리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치_경향DB



산업 부문의 감축률을 12%로 낮춘 것도 정부의 감축 의지를 의심케 한다. 정부는 산업계가 14.7%를 줄이는 1안조차 부담스럽다며 강하게 반발하자 전체적인 감축률은 상향 조정하는 대신 산업 부문 감축률은 대폭 낮췄다.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가장 높은 산업 부문이 채우지 못한 감축 부담은 결국 국민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는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이나 수송·건물 등에서 추가적 감축 여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한다. 온실가스 포집 및 저장 기술 등 신기술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위험하고 비싼 감축 수단이 기후변화 대책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국이다. 누적배출량에서도 16위를 차지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며 주요 20개국(G20)의 일원이다. 유엔 사무총장 배출국이자 녹색기후기금 유치국이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의장 도전국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책임을 다해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후변화에 이렇게 소극적인 대응을 한다면 기후 의제를 주도하는 국가의 위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산업계와 정부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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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식히기 위한 ‘신(新)기후체제’ 출범이 임박했다.

올해 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총회에서 새로운 기후 의정서(가칭 ‘파리의정서’)를 채택하면, 선진국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담하던 교토의정서 체제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세계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해 지구촌이 합의한 것은 지구의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억제하는 ‘2도 목표’이다.

지구 온도가 2도 상승할 경우 생물 30%가 멸종위기에 빠진다고 유엔은 경고한다. 3도 이상 오르면 해수면 상승으로 매년 100만명 이상이 홍수에 노출된다.

지난달 27일 스위스는 세계 최초로 신기후체제에서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유엔에 제출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배출량 대비 50%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달 초에는 유럽연합(EU)과 28개 회원국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최소 40%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유엔에 제출했다.

이는 국제사회가 지난해 12월 채택한 리마결정문에서 모든 국가가 2020년 이후의 감축 목표를 올해 9월까지 제출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리마결정문은 특히 각국에 기존 수준을 넘어선 감축 목표를 요구하는 등 감축 수준과 관련해 가이드라인도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후퇴 방지’ 원칙이다.

또한 각국이 감축 목표를 제출할 때에는 자국의 목표가 ‘2도 목표’ 달성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경제수준이나 온실가스 배출량을 고려했을 때 자국에 공평한 감축 수준인지를 설명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스위스와 EU는 감축 목표 제출문서에서 유엔 기후변화패널이 제시한 감축권고(선진국은 2050년까지 2010년 대비 80~95% 감축)와 자국의 감축 목표를 비교해 자국 목표가 ‘2도 목표’ 달성을 가능하게 하는 의욕적 목표임을 설명하고 있다.

각국의 감축 목표 제출은 지구촌이 합의한 ‘2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감축량을 채워가는 과정이다.

모든 국가들이 의욕적인 감축 목표를 제출하지 않으면 ‘2도 목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감축 수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이 불가피한 이유이다.

한국은 경제규모 14위, 온실가스 배출량 7위에 올라 있다. 배출 책임에 상응하는 감축 목표를 적시에 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 500여개가 참여하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이 12일 문을 열어 부산 한국거래소 전광판에 거래 시작가 7860원이 표시돼 있다. _ 연합뉴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주요 20개국(G20)은 올해 상반기 내에 감축 목표치를 제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개도국도 상반기 제출을 예고한 상황이다.

한국은 그간 녹색기후기금(GCF)을 유치하고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리더십을 보여왔다. 이에 늦어도 상반기 내에 경제위상에 걸맞은 목표를 제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감축 목표의 형태 역시 중요하다. 한국이 지난 2009년 발표한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 목표’는 의욕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해 왔다.

배출전망치를 재산정해 국제사회에 공언한 목표를 수정하겠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어, EU 등이 사용한 기준연도 감축 목표로의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해볼 시점이다.

환경부 장관 재직 시절 수석대표로 참여했던 더반총회의 한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총회 막바지였다. 인도가 중국과 함께 신기후체제 출범을 끝까지 반대해 전 세계의 비판을 받았다. 어느 순간 중국마저 인도를 외면하고 사라지면서 인도가 전 세계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결국 신기후체제 형성에 떠밀려 동의하면서 명분도, 실리도 모두 놓쳤던 장면이다.

한국이 G20에 요구되는 올 상반기 제출의 때를 놓치고, 국제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감축 목표 제출도 놓칠 경우 국제사회의 비판에 떠밀려 추가적인 부담을 떠안을 수도 있다. 더반총회에서의 교훈을 되새겨볼 일이다.


유영숙 |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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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불이 켜졌는데도 멈추지 않는다. 그것도 역주행이다. 당장은 아닐지 모르지만 사고는 반드시 나게 돼있다. 차를 세우거나 방향을 돌리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브레이크도 말을 듣지 않고 운전자의 인지 능력도 형편없이 망가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제 피해를 줄이려면 도로를 통제하고 방어벽을 치는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결과를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장관들은 산업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 시행은 미루고 탄소 배출권거래제의 감축률과 부담금은 대폭 줄여주기로 했다고 한다. 둘 다 사회적 합의를 뒤집고 법을 어겨가면서 내린 결정이다. 이들의 뜻대로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분명해진 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들이 ‘갑’이고, 관료들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을’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자동차 부문은 올해 1월 정부가 발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 따라 2020년까지 1780만t을 감축해야 한다. 하지만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가 물 건너가게 되면 이 중 10% 정도는 줄일 방법이 사라지게 된다. 온실가스와 연비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맞춰 보완한다지만, 특정 기업의 뒤를 봐주려고 법질서마저 무너뜨리는 정부의 ‘백지 어음’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연비 규제보다 훨씬 약한 제도다. 약한 제도는 내팽개치면서 나중에 강한 규제를 펴겠다는 것은, 당장의 비난을 모면하려는 얄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출처 : 경향DB)


배출권거래제는 더 심각하다. 이 제도 역시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와 마찬가지로 시행을 2년 연기했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산업계의 단골 레퍼토리에 정부가 굴복했기 때문이다. 법률에는 수출주력업종과 에너지집약업종은 배출권을 계획기간에 관계없이 100% 공짜 할당한다는 특혜조항까지 포함돼 있다. 행여나 기업들에 무리한 부담이 갈까봐 이중 삼중의 보호 장치를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감축률을 대폭 줄여 향후 3년간 감축 로드맵에 따른 기준보다 5800만t을 더 할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배출권 가격이 1만원이 넘을 경우 정부가 개입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춘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5800만t은 2017년까지 산업계 전체가 감축하기로 한 양의 48%이고, 가정과 상업 부문 감축량의 80%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배출권 가격이 1만원 선에서 유지되면, 배출권 구입비용이 감축비용보다 더 싸기 때문에 기업들은 감축 부담을 별로 느끼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배출권 퍼주기’가 정부의 자기 부정과 신뢰성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배출권 기준가격 1만원 운운하는 건 말할 가치도 없다. 가격변동이 기본인 제도의 기본 성격조차 이해하지 못한 무지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행 법률과 제도는 배출권거래제의 도입 취지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 있음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대상 업체들이 내뿜는 양은 국가 배출량의 82%나 된다. 그런 점에서 배출권 할당 실패는 곧 국가 감축목표 달성의 실패를 의미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개다. 가정과 상업 부문에 부담을 지우거나, 산업계의 감축부담을 다음 정부로 대폭 떠넘기거나. 어떤 선택을 하든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정부라는 비난은 불가피하다.

오는 23일 박근혜 대통령은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대폭 후퇴한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들고 갈 생각이라면, 다른 국가 정상들로부터 받게 될 따가운 시선은 감수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브레이크도 없이 역주행하는 자동차에 몸을 실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선택은 순전히 그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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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국가배출권 할당 계획과 저탄소차협력금제 대응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배출권 거래제는 예정대로 내년부터 실시하되 감축률 완화 등으로 업계의 부담을 줄여주고, 저탄소차협력금제는 시행 시기를 2020년 말까지 연기하는 대신 친환경차에 세금감면 연장과 보조금 추가 지급 등 지원을 늘린다는 내용이다.

배출권 거래제는 대상 업체에 할당한 배출량이 많은 데다 감축률도 줄이고 t당 기준가격마저 지나치게 낮게 책정한 것이어서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산업계의 요구에 휘둘려 당초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누더기나 다름없게 만들었다. 2009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발표될 당시에 이미 시행이 예고됐던 저탄소차협력금제는 더하다. 이 제도를 도입한 2013년 대기환경보전법 개정 때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는 그 필요성을 인정했고 이해 당사자 간에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바 있다. 게다가 한국의 승용차 소비구조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중·대형차 비중이 70%를 넘는 것은 비정상적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산업계의 요구에 따라 정부는 시행 시기를 2015년으로 유예한 바 있다.

'지구를 위한 한시간. 어스 아워 지구촌 전등끄기' 행사가 열린 29일 저녁 서울 시청과 주변 건물들이 8시반부터 한시간 동안 불을 끄기 캠페인에 참여 했다. 어스 아워 캠페인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세계자연기금의 주도로 지난 2007년 호주 시드니에서 처음 시작한 행사다. (출처 : 경향DB)


그런데 정부가 5년 전부터 예고된 제도를 다시 6년 후로 연기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제도 시행을 불과 4개월도 채 남겨놓지 않고 내린 판단이다. 정부는 “저탄소차협력금제가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크지 않고 소비자와 산업에 미치는 부작용이 매우 크다”며 6년 추가 연기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사회적 합의와 국회 입법을 통해 결정된 제도를 특정 업계의 입김에 휘둘려 무산시킨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정부의 신뢰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결정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중·대형차 위주로 돼 있는 현 승용차 시장구조를 바꿀 수 있는 기회도 놓칠 수 있다.

자동차 업계도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저탄소·친환경차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하루라도 빨리 상황 변화에 적응하려 노력해야지 준비 부족 타령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추가 연기는 환경을 보호하고, 변화에 적응하며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해야 하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실망스러운 조치이다. 자동차업계는 대책 없는 연기가 대안이 아니란 걸 깨달아야 한다. 저탄소차협력금제는 예정대로 시행하는 게 옳다. 정부가 진지하게 재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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