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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04 [정동칼럼]‘혼자’가 안전한 사회를 위해

혼자서 제모업소, 이른바 ‘왁싱숍’을 운영하던 여성이 손님으로 온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사건 당일 곧 체포된 남자는, 인터넷 동영상에서 이 업소가 소개된 것을 보고 한적한 주택가에서 여자 혼자 운영하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범행을 계획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미리 피해자에게 연락해서 예약을 했고, 예약된 시간에 제모 시술을 받은 뒤, 가지고 간 흉기로 피해자를 가격하고 성폭행을 시도했다. 성폭행은 미수에 그쳤고, 샤워를 하고 나온 피의자는 피해자가 그때까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찌른 후 체크카드를 훔쳐 달아난 것으로 보인다. 참혹하다.

보도를 접한 많은 여성들이 지난해 5월의 강남역 10번출구 사건을 떠올리며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이 사건 역시 여성혐오 살인이라는 의견을 공유했다. 여성혐오를 규탄하는 집회도 기획 중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 사건이 여성혐오와 무슨 관련이 있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일부 보도는 특정 직업이 없던 이 남자에게 수백만원의 카드빚이 있었다는 정황을 함께 보도하여, 절도 동기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여성살해 또는 여성혐오살해는 피해자의 성별이 주요소로 작용한 살인사건, 즉 여성이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경우를 포괄한다. 여기엔 언제나 가부장사회 속 남성의 기득권, 우월적 지위에 대한 고정관념이 개입한다. 애인, 가족과의 친밀한 관계 내 지속적 폭력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만, 낯선 사람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강남역 10번출구 사건이 대표적이다. 사회적 박탈감을 느낀 남성이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여성을 무작위적 폭력행위의 대상으로 노렸다는 점에서 무작위적이 아닌 것이다.

‘왁싱숍’ 사건도 마찬가지다. 설령 절도를 목적으로 했다 해도, 피해자의 성별이 범행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 사건의 핵심은 절도가 아니다. 여성살해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설명에 따르면, 낯선 이에 의한 여성혐오살해는 성매매나 주류판매 등 흔히 사회적으로 주변화되는 직업군의 여성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 상품화와 상관이 있는 것이다.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문화, 음성적 성산업을 비롯해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이 남성의 쾌락을 위해 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왜곡된 성문화에서 제모, 마사지 등 신체 미용 관리 서비스는 성적 서비스와 쉽게 혼동된다. 그런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성적 대상화의 피해에 더욱 쉽게 노출된다.

피해자는 인터넷 방송으로 업소가 소개된 후 낯선 남자들의 성희롱에 시달렸고 그 때문에 해당 동영상의 삭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피해자가 범행의 대상이 된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영업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금품만을 절도할 목적이었다면 왜 예약을 해서 굳이 제모 시술을 받았을까? 게다가 시술 후 피의자가 흉기로 찌르고 결박하는 과정에서 성폭행까지 시도했다는 점은, 이 사건이 절도만을 목적으로 삼았던 범행이 아니고 특정한 성적 맥락 위에서 발생했으며, 예외적 불행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가 표출된 사건임을 말해준다.

사건에 대한 반응도 그렇다. 늘 그렇듯, 피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논리는 “그러게 조심했어야지” “직원을 뒀어야지” 식의 반응이다. 여성혐오 언급에 불편해하는 남성들은 특히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되는 것에 반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심했어야”라는 비난은 그런 반감의 자기모순을 드러낸다. 여성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모든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생각하라는 요청이 아니면 무엇인가. 조심은 또 어떻게 어디까지 한단 말인가. 비용 절감을 위해 모든 일을 혼자 했던 부지런함이 죽음으로 이어진 것은 억장이 무너지는 불행이다. 여성의 조심은 문제의 본질적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내 가게, 내 집에서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사회는 정상적이지 않다.

여성살해에 대한 논의는 개별 살인 행위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흉악범죄가 발생하는 배경과 패턴을 파악하고, 그런 패턴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풍토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확장하여, 적절한 처벌과 교육, 예방을 구조적으로 가능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폭력은 지배를 꿈꾸는 권력의 표출이다. 여성비하를 포함하여 여성에 대한 지배와 폭력적 통제로써 스스로를 확인하고 강화하려는 남성성은 가부장사회가 만들어낸 병리이자 가부장적 남성연대를 지탱하는 밀약이다. 여성혐오범죄와 여성살해는 그러한 범죄들이 여성을 특정한다는 사실, 여성혐오가 범죄의 구성요건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훨씬 더 많이 발생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개선을 위한 첫걸음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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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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