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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20 ‘중세’로 돌아간 한국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시청하면 고통과 우울이 동반된다. 한국에서는 19일 종영한 다섯번째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사이, 시청자들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비감한 첼로 선율로 편곡된 타이틀곡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어수선한 마음은 내년 여섯번째 시즌이 시작할 때까지 이어질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선 너무 많은 사람이 죽는다. 믿음직한 아버지가 죽고, 무고한 소녀가 죽는다. 불굴의 장군이 죽고, 탁월한 지도자가 죽는다. 물론 악당도 죽는다. 그러나 악당이 죽을 때조차 통쾌하기보다는 씁쓸하다.

한밤중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 친족이 쏜 석궁에 맞아 죽는다면, 그런 죽음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는 어렵다. 여름 극장가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죽음을 직접 다루지 않는다. 죽는다 해도 단역, 조연, 악당이다. 간혹 주인공도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있지만, 이때는 대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는 식의 메시지를 덧붙여 관객이 비참해지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 어느 때에도 아이들은 죽지 않는다는 게 불문율에 가깝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에서 죽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아이들도 명분없이 죽어나간다. 북쪽에서 온 좀비들에게 물어뜯기거나, 포악한 군인의 칼에 죽는다. 심지어 아버지의 야망을 위해 산 채로 불태워지기도 한다.

<왕좌의 게임>은 가상의 대륙에 자리한 7개 국가를 배경으로 한다. 용과 마법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판타지이지만, 인물들의 복식, 행동양식, 세계관 등은 서양의 중세에서 따왔다. 원작자 조지 R R 마틴은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내 책이 역사에 근거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빛나는 갑옷을 입은 왕자가 아름다운 공주와 낭만적 사랑을 나누는 ‘디즈니랜드식 중세’는 없다.

중세는 극단의 시대였다. 중세인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에 무척이나 집착했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호이징가는 저서 <중세의 가을>에서 그 풍경을 묘사한다. 당시 <귀족들의 생활방식>이란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고 한다. “침대에 누울 때는 늘 이것을 생각하라. 잠자리에 들 듯이, 그대는 곧 다른 사람들에 의해 무덤에 들게 될 것이다.” 수도원은 창자가 벌레들에게 뜯어먹히는 시체들의 그림으로 장식됐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출처 : 경향DB)


반면 현대는 평평하다. 역병이 퍼지거나, 메뚜기떼가 창궐하거나, 마녀사냥이 벌어지거나, 귀족들의 자존심 싸움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빠르고 편리하게 목적지에 갈 수 있다. 조금 아프더라도 최신 의료장비를 갖춘 대형병원에 가면 노련한 의사들이 병을 고쳐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인터넷에는 또 얼마나 많은 정보와 여론이 있는가.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의사소통 수단을 가졌다. 이러한 현대 문명의 축복들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예측가능하고 안전한 궤도를 지난다고 알았다. 이제 ‘메르스 이후’다.

정부와 의료계는 메르스가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만 위험하고, 병원 안에서만 감염된다고 했다. 그런 줄 알고 안심했다. 그런데 자꾸 공식 발표를 의심케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언론과의 인터뷰에 당당히 임했던 젊은 의사가 며칠 사이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병원 바깥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들이 자꾸 나왔다. 1차 감염자, 2차 감염자, 3차 감염자에 이어 4차 감염자까지 나왔다. “이번 주말이 고비”라는 말이 몇 주째다. 정말 메르스가 병원 바깥에서도 감염된다면, 감염을 막을 길은 없다고 봐야 한다. 중세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우리의 목숨은 운에 맡겨야 한다.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쓰여진 문구를 패러디하면 이렇다. “죽음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중세인들의 경구를 차용하면 ‘메멘토 모리’다. 이렇게 우리는 중세로 돌아왔다. 아니 어쩌면 세상은 언제나 잔혹한 중세였는지도 모른다.


백승찬 |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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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