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카이스트에서 넉 달 동안 학부생 4명이 연달아 자살해 사회적으로 충격을 안긴 적이 있었다.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카이스트의 학사제도 등에 연일 거센 비판이 쏟아질 무렵, 한 교육 월간지에 실린 글을 읽게 됐다. 사회학자 엄기호씨가 카이스트 사태에 대해 여러 대학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쓴 ‘동시대인의 죽음’이란 글이었다.

“무한경쟁으로 인한 ‘모욕감’은 대학서열체제와 상관없이 모든 대학생들이 공유하고 있는 경험”인 만큼, 그가 만난 학생들 대부분은 자살한 카이스트생에게 ‘동시대인’으로서 공감을 표했다. 그런데 그중 한 지방대생은 조금 다른 고백을 했다. 그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내 주변에는 카이스트는커녕 연·고대 다니는 친구도 한 명 없다. 내가 이 사건과 엮일 아무런 이유가 없다.”

우리 사회가 학벌과 계층에 따라 분할되는 ‘칸막이 사회’가 돼 가고 있다는 것은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칸막이가 얼마나 어릴 때부터 촘촘히 형성되는지에 대해선 그전까지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왜 그 학생은 카이스트·연대·고대생과 자신 사이에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고 느끼게 된 걸까. 중·고등학교 동창 중 소위 상위권 대학으로 진학한 친구가 한 명도 없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 폐지 정책에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광장에서 열린 자사고 학부모 집회에 참가해 '자사고 폐지 반대'를 주장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중·고등학생들의 교우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전국 단위 자사고를 나온 서울대생과 일반고를 졸업한 지방대생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서울대 안의 한 카페에서 전국 단위 자사고 출신인 김현수씨(가명·당시 19세)를 만났다. 그는 당시 친한 친구들과의 인연이 중3 때 다닌 서울 목동의 한 유명 입시학원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시험을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그 학원의 ‘자사고 및 특목고 준비반’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내로라하는 소수 정예 학생들로 구성됐다. 그는 학원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들과 함께 자사고에 진학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엔 친한 고교 동창이자 서울대 입학 동기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유명 자사고나 특목고 학생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그룹 짓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에 동의했다. “고등학교 밴드부끼리 가끔 합동공연을 하거든요. 그런데 참가 학교를 보면 다 외고·국제고·자사고예요. 일부러 일반고를 배척하려고 그랬다기보다는 서로 아는 친구들이 거기서 거기다 보니 결국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반면 부산지역의 한 일반고를 나와 부산에 있는 지방대로 진학한 이수정씨(가명·당시 22세)는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 대부분이 지방대나 전문대생이라고 말했다. 고1 때 수준별 보충반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 ㄱ씨는 서울의 2년제 전문대를 졸업한 후 어린이집 교사로 취업했다. 친구 ㄴ·ㄷ씨는 고3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도시락을 함께 까먹으며 친해진 사이다. 이들은 이씨와 마찬가지로 부산에 있는 또 다른 지방대에 진학했다.

이씨는 같은 반 친구 중 포항공대나 카이스트에 진학한 아이들도 있지만, 그들과는 상대적으로 함께 공유한 추억이 많지 않다고 했다. “걔네들은 보충학습도 ‘SKY반’에서 따로 받았고, 야간자율학습도 공부 잘하는 애들만 들어갈 수 있는 별도의 정독실에서 했어요. 공간이 분리되니까 자연스럽게 친구 그룹도 성적에 따라 나뉘는 경향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6년 전 취재수첩을 다시 펼쳐든 이유는 짐작했겠지만, 최근 다시 쟁점이 된 특목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문제 때문이다. 사실 옛날에도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이 단짝 친구가 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그때는 모두가 ‘동급생’이란 동질감만큼은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대학 서열화도 모자라 고등학교는 특목고와 자사고, 일반고로 나누고, 중학교도 일부 학교는 일찌감치 수준별 이동식 수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학제 시스템은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성적순으로 ‘끼리끼리’ 헤쳐 모이게 만들고, 기성 사회의 잘못된 칸막이 구조가 아래로 확산되는 효과를 더욱 강화한다. 6년 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 이름이 아이를 분류하는 꼬리표가 돼 버렸다.

일각에선 특목고와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할 경우 ‘하향평준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경계해야 하는 것은 중·고교 시절부터 비슷한 배경의 친구들에게만 둘러싸여 자라난 소수의 ‘인재’가 한국 사회 전체를 좌우하는 것이다. 이미 법조계에서는 신규 임용되는 판검사 중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교과서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달러 돌파를 달성해 줄 싹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곳도 아니다. 학교의 1차적 존재 이유는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낼 줄 아는 ‘좋은 시민’을 키워내는 것이다.

정유진 토요판팀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외고와 자사고 폐지와 관련하여 교육계에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학교교육을 망치는 주범이 외고와 자사고라는 주장과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 교육을 위한 작은 부분도 용납할 수 없느냐는 반론이 충돌하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법 제34조에는 대학에서 공부할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으로 일반전형이나 특별전형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입학전형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 시행되는 시험이 수학능력시험이다. 그런데, 제34조의2에서는 교육부 장관이 시행하는 시험의 성적 외에 국가는 대학의 학생선발이 초·중등교육의 정상적 운영과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입학사정관의 채용 및 운영을 권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조문 안에서 초·중등교육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주범으로 수능시험을 지목하고 있다. 이렇듯 수능시험이 사회적인 논란이 되면서 근래 들어 수능 정시전형이 축소되고, 수시에서도 외고와 자사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특별전형이었던 특기자전형이 급격하게 축소되면서 외고와 자사고의 인기는 이미 예전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특목고입시 전문 학원들이 대거 문을 닫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분위기이다. 자사고를 반납하고 일반고로 전환하는 사례가 발생하는가 하면 재학생들 중에서 일반고로의 전학을 고민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된지 오래다.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이화여고에서 자사고 학부모 연합회 관계자들이 자사고 폐지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중학교 졸업성적 상위권 학생들은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쓸 때 ‘특목고나 자사고를 선택해서 수능점수를 잘 받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내신성적을 높게 받을 수 있는 일반고가 나을까?’라는 고민을 한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중학교를 같이 졸업한 친구들의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중학교 때 비슷한 성적이었던 친구들이 각기 다른 유형의 학교로 진학했는데 대학진학을 이야기하면서 희비가 엇갈렸다는 것이다. 그 지역의 평범한 학교에 추첨배정을 받은 학생은 높은 내신등급에 학교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여유도 많아서 학교생활을 너무 재미있게 하고 있는데, 자사고와 그 지역에서 가장 학력이 높은 일반고에 배정된 친구는 내신경쟁에 몰두하느라 학생부 관리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어서 고민이란다. 결국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몇몇 학교에 몰려있다 보니 그 외의 학교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내신등급 관리는 물론 각종 교내 활동에도 여유 있게 참여해서 학생부전형에 딱 맞는 준비를 할 수 있었단다.

자사고와 외고 폐지와 관련하여 학부모들이 대규모 시위를 하고, 정부에서는 폐지강행으로 대응할 것 같다. 그러나 폐지강행보다는 입시전형에서 수능과 학생부전형을 보다 조화롭게 전개해 나가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공부 잘하고 가정환경이 좋은 학생들에게는 수능의 길을 일부 열어주고, 학생부전형을 통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진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지금과 같이 고등학교 교실이 정상화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입시전형의 개혁에 따른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전의 수많은 교육정책들이 해내지 못했던 교실의 정상화가 학생부전형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수능이 절대평가가 되면 내신성적과 학교활동이 입시의 중심이 된다. 이것만으로도 학교교육의 정상화는 상당한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서울시교육청이 2015년 기준 미달로 판정했던 서울외고와 장훈고·경문고·세화여고 등 자사고 3곳, 영훈국제중이 기준 점수를 넘은 것으로 평가하고 지정을 취소하지 않기로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과거 정부가 애초의 취소 기준 점수를 70점에서 60점으로 내려 기본점수만으로도 지정 취소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취임 이후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해왔던 조 교육감이 외고·자사고 일괄 폐지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그는 교육감 권한으로는 외고·자사고 폐지에 한계가 있는 만큼 교육부가 법령 개정을 통해 추진해야 한다며 중앙정부로 공을 넘기는 모양새를 취했다. 당장 외고·자사고 폐지에 반대하는 학부모 단체는 “폐지 주체를 교육부로 넘긴 ‘꼼수’ ”라고 비난했다. 폐지에 찬성하는 교육단체는 “고교 서열화가 고착되는 현실을 무시한 결정”이란 반응을 보였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0일 서울 신문로2가 시교육청에서 2015년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운영성과평가 최종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하지만 조 교육감은 외고·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육부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모든 외고와 자사고를 즉각 일반고로 전환하거나, 5년마다 돌아오는 평가 시기에 맞춰 일반고로 전환하는 ‘일몰제’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또 외고·자사고의 우수학생 독점을 막기 위해 특성화고 전형만 먼저 하고, 특목고·자사고·일반고 전형은 한꺼번에 진행하는 고입 전형개선 방안도 제시했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교육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일몰제’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런 측면에서 외고·자사고 폐지는 예상보다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대개 중장기 과제는 ‘없던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내년에는 교육감 선거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외고·자사고 폐지는 교육계와 학부모들에게 공감도가 높은 교육정책이다. 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폐지 의견이 52.5%로 유지 의견(27.2%)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학교 선택권 확대와 수월성 교육 강화라는 명분 아래 추진된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은 입시 사교육을 부추기고, 일반고의 몰락을 가져왔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정부는 충분한 의견수렴과 사회적 논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실효성 있는 외고·자사고 폐지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정부와 시·도교육청의 외국어고 및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추진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울지역 자사고 관계자들의 모임인 서울자사고연합회가 그제 폐지 반대 목소리를 낸 데 이어 어제는 서울지역 학부모연합회가 뒤를 이었다. 전국외국어고 교장협의회도 모임을 갖고 폐지 반대 성명을 냈다. 이들의 안타까운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이들의 주장과 요구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들은 외고, 자사고가 입시 사교육을 부추기지 않고 고교서열화를 조장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자사고, 외고는 일반고교보다 일찍 학생을 선발한다. 이 같은 우선선발제도를 통해 우수학생들을 독점할 수 있다. 이는 곧바로 소위 명문대 입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결과로 이어지고, 그 때문에 자사고, 외고 입학을 위한 사교육을 번성하게 만든다. 자사고와 외고가 추첨과 인성 면접 등 학생 선발 절차를 일부 개선했지만 우선선발이라는 특권은 온존한다. 이런 특혜를 받지 못하는 일반고는 ‘슬럼화’되지 않을 수 없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자사고, 외고의 폐지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자사고는 학비가 일반고의 2배가 넘는 ‘귀족학교’다. 설령 서민 자녀가 사회적 배려 전형을 통해 자사고에 입학할 수 있다고 해도 졸업 때까지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학교야말로 경제적 소득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부조리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외고와 자사고를 없앤다고 사교육이 잡히고 공교육이 정상화되느냐는 주장에는 일면의 진실이 있다. 사교육의 원천인 대학입시와 학력사회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외고와 자사고 탓만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외고, 자사고 폐지 문제와 대학입시, 학력사회 개선 문제는 선후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공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사교육을 조장하며 특권 논란을 낳는다면 그것이 제도든 기관이든 개혁해야 할 적폐일 뿐이다. 이미 오래전에 외고와 자사고는 설립취지와 달리 명문대 입시통로로 전락했다. 학생 우선선발과 턱없이 비싼 학비, 국·영·수 집중 교육 등의 학교 운영은 바로 이 사회의 특권과 반칙이 바로 여기에서도 뿌리내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학교들은 자기 성찰은커녕 교육당국의 잇단 개선 권고도 외면해왔다. 폐지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있는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