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8.16 [정동칼럼]“경찰만 보면 부들부들 떨렸어요”
  2. 2015.03.08 펑펑 그리고 엉엉

지난달 말 용산참사, 백남기, 쌍용자동차, 밀양, 강정 대책위 관계자 10여명이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경찰의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리였다. 당초 모임 장소는 남영동 경찰인권센터. 하지만 장소는 옮겨졌다. 당사자들이 경찰 근처로 가는 것조차 거부감이 든다고 토로했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노조간부가 입을 열었다.

“경찰을 보면 부들부들 떨려요. 보기 싫을 뿐만 아니라 분노마저 치밀어 오릅니다. 2009년 평택공장 점거 파업 때 물과 음식물을 차단하더군요. 대신 2급 발암물질이 섞인 최루액을 뿌리고, 대테러 진압용인 테이저건을 마구 쏘았어요. 그러고선 진압 때 경찰특공대가 사용했던 기중기 수리비 등 1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파업에 참가했던 동료와 가족 일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다수는 그때의 트라우마로 은둔 생활을 하거나 약을 먹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옆자리의 용산참사 유가족 한 분과 진상규명 대책위 관계자가 말을 이어받았다. 유가족의 목청은 높고 카랑카랑했지만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힘없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철거민들입니다. 그래도 지나가는 차 한 대, 사람 한 명도 다치게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경찰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적절한 주거대책을 세워달라는 사람들을 농성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특공대와 물대포로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집회·시위 현장의 법집행 매뉴얼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어요. 세입자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죽었는데 재판은 경찰관의 죽음만 다루더군요. 경찰과 철거민, 어느 한쪽에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판결은 다섯 분의 죽음은 싹 지워버렸고, 그 원통함을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경찰이 하루아침에 돌변하고선 믿어달라고요? 피가 거꾸로 솟을 뿐입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던 한 주민의 얼굴은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점차 굳어져갔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대표를 경찰이 연행하자 이웃들이 일하다가 농기구를 들고 이를 막았어요. 그랬더니 국가 전복을 노린다며 경찰청장이 ‘공안사태’를 선포하고 일절 집회를 못하게 하더군요. 주민 2명만 모여도 불법집회라며 마구잡이 연행을 했는데 그게 무려 700여명이나 됐습니다. 구럼비 바위를 화약으로 파괴할 때 주민들이 팔짱을 끼고 인간 사슬을 만들었는데 망치로 팔을 때려 다친 사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고선 주민들을 생떼 쓰는 집단이라고 매도하더군요. 이런 경찰을 어찌 공권력이라 할 수 있겠어요?”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던 할아버지 한 분은 “억울한 일이 너무 많아 말문이 막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표정엔 슬픔과 절박함과 분노가 가득했다. 다른 주민 한 분이 감정을 억누르며 무겁게 입을 뗐다.

“공권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던 2013년에는 약 9개월 동안 무려 연인원 38만명의 경찰이 농성장 아홉 군데에 투입됐습니다. 경찰의 숙식비만 모두 100억원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 한 명당 30명의 경찰이 붙어 온갖 인권침해를 했어요. 경찰이 너무 무서워 할머니들이 알몸으로 저항하자 할머니들이 모여있던 천막을 칼로 푹푹 찢더군요. 칼날이 오가는 것을 알몸으로 바라보면서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그 일을 겪고 할머니들이 정신과 진료를 250회 정도 받았고 항우울제 없이는 생활을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안함과 부끄러움과 무거운 책임감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그 깊은 슬픔과 분노를 스치듯 느껴온 무신경함에 대한 자책으로 말을 건네기도 힘들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당선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진실화해위원회를 운영했다. 극심한 인종차별과 국가범죄를 조사하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인권침해를 당한 희생자들의 증언을 텔레비전을 통해 직접 중계했다. 피해자들이 일차적으로 간절히 원했던 것은 진실을 말할 기회와 그들이 겪은 고통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조만간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될 예정이다. 2005년 유엔이 채택한 ‘인권피해자 권리장전’은 진실에 대한 권리, 책임자 처벌을 포함한 정의에 대한 권리, 배상에 대한 권리를 해결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슬픔과 우울증을 치유하는 길은 철저한 진실규명과 그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다. 시늉만의 진상규명은 당사자들을 또다시 절망과 고통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인권국가로의 첩경이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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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정말 읽고 싶지 않았다. 밀쳐냈고, 모른 척했다. 그래도 난 아마 읽게 될 것이다. 책 이야기다. 먼 곳으로 출장을 가기 전,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에 삽화로 참여한 동료가 책을 건네주었다.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딱딱하게 굳어진 내 감정들이 그 순간 파르르 살아나 책을 쥔 손끝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도저히 못 읽겠네. 울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힘들었어.” 그가 말했다. 감정이 화석이 된, 때론 그 단어만으로 혐오의 대상인 중년 남성들이 눈물이라니. 정신없이 떠돌다, 이제 더 이상 뿌리내릴 곳 없어 겨울가지처럼 말라가는 중년 남성들에게 눈물이 있을 리 있을까? 휴우, 깊은 한숨 내뱉고 감정과 ‘그 책’을 구석으로 밀어놓고 출장을 떠났다.

낮밤이 바뀐 그곳에서 일을 보고 지난 5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영화 두 편을 내리 보고, 아내가 권해준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을 꺼냈다. 몇 장 넘기다 2009년 말에 선생이 쓴, 당시 시점으로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용산참사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니 혹시라도 잊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손이 떨렸다. 애써 밀어놓은 그 책이, 아마도 그 책의 활자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담았을 고통이, 팽목항의 쓰린 바람처럼 불어닥쳤다.

지난 1월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지난 2009년 벌어진 용산참사를 추모하는 전시회가 개막됐다. 사진, 판화, 설치미술, 영상등이 전시됐다. (출처 : 경향DB)


마침 비행기에서 틀어주는 최신 가요에서 알리의 ‘펑펑’이라는 노래가 나왔다. 가수도 꾹꾹 어떤 감정을 눌러담듯 노래를 불렀다. “잘 지내란 말은 마요. 슬퍼지려 할 때면 따뜻했던 목소리 자꾸 내 귓가에 맴돌아서. 오늘도 널 잊어버리려 애써도 안간힘을 써봐도 잊혀지지가 않아. 펑펑 울고 싶은 날엔 널 보고 싶은 날엔 그리움이 울컥 차올라 미쳤나봐. 엉엉 울고 싶은 날엔 널 안고 싶은 날엔 사랑하나봐 난 아직도.”

펑펑 그리고 엉엉. 타인의 슬픔과 상처는 그의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슬픔과 상처를 안고 괴로워하고 울고 싶은 이들에게 그만두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그 자리에 가서 펼침막을 펼치기도 한다. 그런데, 딱 한번만 생각해보자. 누구의 잘못 그런 거 말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그래서 거기에서 넘실거리는 수많은 사연들을 생각해보자. 그런데 그 슬픔마저 제대로 추모하지 못하는 그들을 떠올려보자. 이제는 귀찮으니 다 잊자고 하지 말고. 그게 진정 잊을 수 있는 일인가를 한번만 생각해보자. 그리고 슬프다면, 그 슬픔에 공감하고, 감정의 한 조각이라도 그 슬픔에 반응한다면 그냥, 펑펑, 엉엉 그렇게 울자.

그들 옆에 다른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순수하지 못하다고, 그래서 자꾸 뭔가를 더 달라고만 한다고,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경제가 어려우니까 이제 그만두자고 생각한다 해도, 딱 한번만 순수하게 슬픔에 반응해보자. 그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1년 동안 안간힘을 다해 잊으려 했던 사람들이니까. 혹 당신이 함께 울기 싫다면 우는 이들을 울도록 내버려두자. 슬픔의 울음조차 허락해주지 않는 세상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은 지옥일 터이니 그렇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며 불구덩이에 고통받는 지옥의 모습만 떠올렸다. 하지만 적당히 나이를 먹고 보니, 울음을 참는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여기가 지옥이다. 차라리 지옥불에서 함께 위로해준다면 거기는 어쩌면 천국이겠다. 이제 펑펑 울 마음으로 그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펑펑, 엉엉 울 것이다. 아, 비행기에서 읽었던 황현산 선생이 2009년에 쓴 글의 제목은 ‘그 세상의 이름은 무엇일까’이다. 선생의 글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다.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맞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증오와 조롱이 넘치는 이 세상은 지옥이다. 더 악독하게만 변해간다.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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