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까운 교수 한 분이 재미난 그림 하나를 보여줬다. 이정문 화백이 1965년에 그린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란 제목의 그림이었다. “앞으로 35년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달라질까”란 부제를 달고 있었다. 1965년이라면 필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이다. 그런데 그 그림에는 태양열을 이용한 집, 전파신문(오늘날 전자신문), 컴퓨터, 전기자동차, 움직이는 도로(요즘의 무빙워크), 소형 TV 전화기(영상통화 가능한 휴대전화), 청소 도우미 로봇, 원격진료, 원격학습 등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기기와 설비, 서비스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단 하나 지금과 다른 건 로켓을 타고 달나라로 수학여행 가는 상상뿐이었다.

만화가인 이정문 화백이 어떻게 그렇게나 미래를 잘 맞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1941년생으로 당시 청년이었던 그는 부지런히 신문을 읽으며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앞으로 도래할 세상을 상상했다고 한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현실에서 자라고 있는 변화의 씨앗을 놓치지 않은 거였다.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경주 지진발생 1년을 맞아 대규모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자 '안전의 여신상'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앞으로 35년 뒤는 2052년이다. 어림잡아 2050년경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까? 변화의 씨앗이 어디에서 자라고 있을까? 무엇보다 세계는 재생가능에너지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놓치기 어려울 정도로 분명하다. 많은 문서와 기사, 다양한 수치들이 그런 변화를 이미 입증하고 있다.

사실 미래라기보다는 이미 현실이다. 재생가능에너지는 2016년 전 세계 신규 발전 설비 용량 중 62%,신규 투자 중 63.5%에 달했다. BMW, GM,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필립스, 나이키, 월마트 등 굴지의 세계 기업들이 2025년이나 2030년까지 100%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을 쓰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선언 기업 수가 최근 106개로 늘었고 앞으로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적인 국제에너지기구(IEA)조차 2030년에는 재생가능에너지가 최대 전력원이 된다고 전망했다.

최근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서 해상 풍력 비용이 이전에 비해 절반 정도로 떨어지면서 정부가 35년간 발전단가를 보증하며 계약한 힝크리 포인트 C원전보다 싸지자 원전 건설 계약을 재고해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우린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그 갈림길의 지표가 바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이다. 이미 1조5000억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이 사업을 재개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추가 건설비용 7조원에다 폐로 비용과 사용후 핵연료 처분 비용을 고려하면 더 들어갈 비용이 10조원이 넘는다. 신고리 5·6호기가 설계수명이 다하는 때는 무려 2081년과 2082년이다. 이정문 화백이 상상한 35년 만에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바뀌었다. 앞으로 64년, 65년 이후의 세상은 얼마나 더 빠르게 바뀔까? 그 사이에도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싼(사실은 잘못 매겨진) 전력요금을 경쟁력으로 삼는 기업에 희망이 있을까?

게다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단순히 원전 2기를 추가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게 원전이 입지한 지역에, 30㎞ 이내 인구가 382만명으로 가장 많은 지역에, 핵심 산업시설이 들어서 있는 울산과 부산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활성단층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과 미래세대를 배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결정인 동시에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더 나은 투자 기회를 닫아버리는 어리석은 결정이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미래는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 오늘 우리의 결정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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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신재생에너지의 단가가 빠른 속도로 낮아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영국에서는 원전의 단가에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영국 정부는 지난 11일 실시된 입찰에서 지금 한창 건설 중인 신규 원전의 공급가격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해상풍력 건설 사업 11건을 승인했다. 그중 2022~2023년부터 운영할 해상풍력발전 사업의 경우 ㎿h(메가와트시)당 58파운드(약 8만7000원) 이하로 전력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는 영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건설 중인 신규 원전(힝클리 포인트 C)의 공급가격(92.50파운드)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삼척시 에너지전략실 소속 공무원들이 지난 4일 근덕면 용화리에 자리잡고 있는 삼척태양광발전소(주)의 태양광판넬을 살펴보고 있다. 최승현 기자

이 획기적인 입찰 결과 소식에 영국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해상풍력의 경우 약정공급가격이 2012년 이후 5년도 채 안되는 사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신재생에너지의 기술발전과 단가하락 속도는 이처럼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 노후화한 원전을 차세대 신규 원전으로 대체하려는 영국 정부의 정책은 재검토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낙찰된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생산할 전력은 2025년 완공 목표인 힝클리 포인트 C 신규 원전의 발전량(영국 전력공급량의 7% 규모)과 비슷하다. 영국 내 전문가들도 “가장 강력한 가격경쟁력을 갖춘 기술발전 덕분에 더는 거스를 수 없는 신재생에너지 시대가 도래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영국뿐이 아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13일 “미국 내 전력망 공급용 태양에너지의 가격이 지난해보다 30% 줄었다”면서 “낮아진 인건비와 부품가격의 하락으로 비용감소 목표를 3년 앞당겨 달성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무리 반환경적인 정책을 펴도 신재생에너지의 도도한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원전을 값싼 에너지원으로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국내 친원전론자들은 영국·미국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좁은 국토에 풍력·수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부르짖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 좁은 국토에, 그것도 인구 380만명이 사는 밀집지역에 무려 10기의 원전이 들어선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좁은 땅에서 10만년이나 보관해야 할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어디서 찾는다는 말인가. 신재생에너지를 거부할 수 있는 이유는 사라졌다. 그만큼 원전 집착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시대착오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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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의 위험관리상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라는 말과 유사하게 에너지 소비에도 ‘에너지믹스’라는 원칙이 있다. 한 나라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어느 하나로 하지 말고 여러 개로 하라는 의미다. 물론 석유가 지천인 나라는 석유로 자동차를 굴리고 난방이나 취사도 하고 심지어 발전도 할 수 있다. 만일 우리나라가 그렇게 했다가 유가가 폭등하거나 석유 수입에 애로가 발생하면 경제적 피해는 차치하고 나라 전체가 결딴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에너지믹스’의 원칙을 준수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우리나라 에너지믹스에 다소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에너지 소비에서 전력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는 난방에너지를 석유와 가스에서 전기(시스템 냉난방기)로 바꾸었고, 최근에는 전기차와 전기레인지(인덕션)의 등장으로 수송과 취사에도 전기가 사용되고 있다. 얼핏 보기에 석유나 가스에 추가로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다양한 에너지원의 배합이라는 에너지믹스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는 않다. 이런 추세라면 전력이 난방을 넘어 수송이나 취사 등 모든 용도의 에너지 소비를 독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정부 계획에 의하면 이렇게 증가하는 전력이 다양한 발전원 간의 배합이 아닌 원전과 석탄발전으로 대부분 충당된다는 점이다.

에너지 소비의 전력 편중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부가 석유와 가스에는 높은 세금을 부과하면서 원전과 석탄에는 저렴한 전력요금을 위해 세제 우대와 숨은 보조 등 다양한 지원을 한 탓이다. 그 결과 가장 비싸야 할 고급에너지인 전기가 석유나 가스보다 저렴하게 되면서 난방을 비롯하여 모든 에너지가 전력으로 바뀌고, 낮은 요금으로 계속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원전과 석탄발전을 계속 늘리는 것이다.

지난번 경주 지진처럼 큰 지진이 발생하면 대규모로 원전 가동을 멈추어야 한다. 석탄발전은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문제로 국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조건이 걸려 있다.

원전과 석탄발전에 필수적인 송전망 건설도 불안요인이다. 더구나 전력은 대규모 저장이 어렵고, 다른 나라와 전력망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는 유사시 전력을 대량으로 수입하기도 어렵다. 에너지믹스는 위험 관리를 넘어 국가안보에 준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에너지믹스를 좀 단순하게 하더라도 경제적 차원에서 저렴한 원전과 석탄 비중을 높여 산업 경쟁력과 경제 성장을 우선하자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일리가 있고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다. 하지만 저렴한 전력요금이 지난 수년간 비효율적인 전력소비를 유발하고, 한국경제를 저부가가치형 전력다소비산업에 안주하게 만든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우리나라보다 2~3배 높은 전기요금 하에서 친환경적인 에너지믹스로 제조업의 경쟁력까지 유지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이처럼 현재의 에너지믹스 추세는 환경, 사회갈등 그리고 경제적인 측면을 넘어 우리나라 에너지수급의 안정성 측면에서 되짚어볼 점이 많다. 조만간 우리나라 에너지믹스를 결정하는 중요 계획들이 수립될 예정이다. 사회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여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에너지믹스에서 안정적이고 다양한 저탄소 에너지믹스로의 방향 전환을 고민해 볼 시점이다.

조영탁 |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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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3월11일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가 일본 후쿠시마에서 일어났다. 일본 동북부 지방을 관통한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후쿠시마 제1원전의 외벽이 무너지고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충격적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7등급으로 규정했다. 국가를 넘어 광범위한 지역으로 방사능 피해를 주는 대량의 방사성물질을 방출시킨 사고라는 의미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후쿠시마 이전의 유일한 7등급 사고였다.

최고등급 원자력 사고의 상흔은 깊다. 도쿄전력은 지난 2월9일, 후쿠시마 원전 2호기 내부의 방사능 수치가 시간당 650시버트(㏜)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사람이 피폭될 경우 수십초 이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수치이다. 이 때문에 원자로 내부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너무 높은 방사능 수치로 무인 탐색 로봇조차 2시간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폐로를 하겠다는 것만 결정했지 실제로 어떻게 폐로를 할지는 여전히 논의 중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폐로를 위해 원자로를 청소하는 작업만 수십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등 갈수록 태산이다.

핵발전소 없는 세상을 꿈꾸는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단이 충남 서산에서 당진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걷고 있습니다. 지난달 10일 영광 원자력발전소를 출발해 이달 18일 광화문까지 573.7㎞를 걸으며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는 순례단은 매년 여름과 겨울에 두 차례씩 도보순례를 하며 지금까지 4200㎞ 넘게 걷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25기이고, 그 중 30년 넘은 원전은 7기에 이릅니다. 원전수 5위, 밀집도 1위인 우리나라에서 강진이나 테러공격이 일어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하고, 피해는 남한 전체에 미칩니다. ‘햇빛 팔아 탈핵하자’는 순례단 머리 위로 햇살 가득한 파란 하늘이 탈핵을 희망하는 이들을 격려하는 듯합니다. 이상훈 기자

이로 인해 대처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경제산업성 등 일본 정부는 사고 배상 비용을 포함하여 후쿠시마 원전사고 처리 비용이 200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바로 이웃 나라에서 일어난 끔찍한 참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원전을 고수하며 ‘경제성 때문에 버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원전밀집 지역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지진에도 ‘안전하다’고 말하고, 영화 <판도라>가 국민적인 관심을 끌며 원전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해도 ‘허구’라고 일축한다.

환경운동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72%는 국내에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 국내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은 외면한 채 지금 이 순간에도 6기의 원전이 건설되고 있으며, 4기의 원전이 건설 준비 중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원전밀집도에도 불구하고 원전 건설을 멈출 수 없는 것은 국가 에너지 믹스를 중앙정부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하고자 하는 노력은 오히려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은 ‘원전하나줄이기’를 통해 시민참여로 원전 1기 분량의 에너지를 아끼는 데 성공하고, 에너지공사를 설립해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기는 전력자립도를 70%로 끌어올리는 ‘2030 에너지 비전’을 발표하였으며, 삼척은 주민투표로 원전을 거부하고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본격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재해는 언제나 인간의 인지를 넘어 발생했다. 도쿄전력 관계자들 역시 원전 사고 위험에 대해 ‘절대 안전하다’고 외쳤으나 지금은 뼈저리게 반성한다고 말한다. 원전사고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부가 지역의 에너지 정책에서 배워야 한다. 지금이라도 위험한 원전을 멈추고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한 뒤에는 어떠한 대책도 소용없다.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죽음의 땅이 된 후쿠시마가 말해주고 있다.

이세걸 |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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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이 경북 경주 월성원전 1호기의 수명을 10년 연장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가 환경·시민단체 80곳과 원전 근처 주민 등 2100여명의 국민소송단이 원안위를 상대로 낸 수명연장 무효 소송에서 국민소송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2015년 2월27일 원안위가 수백만 시민의 안전을 경시한 채 기습 표결 처리한 지 2년 만의 사필귀정이다. 재판부는 운영변경 내용 비교표를 제출하지 않았고, 운영변경 허가를 과장 전결로 처리한 점, 결격사유가 있는 원안위 멤버가 두 명이나 의결에 참여한 점, 월성 2호기에 적용한 캐나다의 최신 안전기준을 1호기에는 적용하지 않은 점 등을 취소 사유로 모두 인정했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원자력발전소인 ‘월성1호기’에 대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수명연장 결정은 위법하다며 취소하라는 판결이 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운영변경 허가처분 무효확인 국민소송대리인단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확인했듯 원전은 한번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참화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것도 30년 수명이 다 된 노후 원전을 재가동하는 일을 이렇게 남이 볼세라 얼렁뚱땅 처리했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수백만 주민의 생명 및 안전과 직결되는 원전의 안전성 평가서는 철저히 비공개됐다. 이른바 원전마피아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개입 정황도 드러났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고 김영한 청와대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2014년 6월17일자)에는 ‘월성 1호기-수명 10년 연장’ 메모가 적혀 있었다. 8개월 후 수명연장을 결정한 당일 원안위원들에게 ‘오늘 통과시킬 것’이라는 청와대 전화가 걸려왔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른바 원전마피아와 청와대의 입김을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이번 판결은 이제 시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원전 문제를 더는 밀실에서, 비공개로 진행해서는 안된다는 엄중한 경고라 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원전을 줄이고, 이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추세로 돌아서고 있다. 그런 마당에 정부는 월성 1호기를 재가동하고, 고리 5·6호기까지 신설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좁은 국토에 원전만 30기가 가동될 계획이니 가히 원전지뢰밭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경주를 중심으로 570차례가 넘는 지진이 일어났다. 0.68기가와트에 불과한 월성원전 1호기가 당장 폐로되더라도 전력수급에는 영향이 없다. 정부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월성 1호기를 폐기하는 절차를 즉각 밟아야 한다. 이번 판결을 원전정책을 바꿔 탈원전국가로 가는 첫걸음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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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2017년!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이 있은 지 꼬박 30년이 지난 시점이다. 올해에는 기필코 우리 사회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차고 넘친다. 10월29일부터 토요일마다 열린 촛불집회 참여시민 수가 2016년 마지막 날에 있었던 열 번째 집회에서 연인원 1000만명을 찍었다. 적폐를 일소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변화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큰 상태인 거다. 어둠을 밀고 나오는 새벽을 알리는 닭처럼, 닭의 해인 2017년도 우리의 역사에서 그런 해가 되길 소망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적폐 중 하나는 ‘원전(정확히는 핵발전)’ 문제다. 작년 12월20일에 1400㎿의 신고리 3호기가 1년간의 시운전을 거쳐 상업운전에 들어감으로써 이제 우리나라에는 25기의 원자로(정확히는 ‘핵반응로’)가 상업운전 중에 있다. 현재 시운전 중인 신고리 4호기도 얼마 있지 않아 상업운전에 들어갈 예정이며 신한울 1호기, 2호기도 이미 공정률이 90%를 넘어선 상태다. 신고리 5호기, 6호기는 작년 6월에 건설허가를 취득해서 본관 기초굴착에 착수한 상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신한울 3호기, 4호기, 천지 1호기, 2호기가 건설 준비 중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원전 밀집도로 세계 1위이며, 신고리 4호기까지 상업운전에 들어가면 부지 내 입지 원자로 수가 8기가 돼 한 발전소 내 입지 원자로 수로도 세계 1위가 된다. 주변 지역 인구 규모도 엄청나다. 고리원전의 경우 부지 30㎞ 이내에 340만명이 넘게 살고 있다. 당장의 손쉬운 전원 확보를 위해 우리의 안전을 내맡기는 위험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저탄소 에너지원이라며 기후변화 대응 방안으로 원전 건설이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배우 김남길이 출연하는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이런 때에 한 재난 영화가 절찬리 상영 중에 있다. 개봉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누적 관객 수가 450만명을 넘어선 영화, 바로 <판도라>다. 필자는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그 영화를 관람하였다. 숨죽인 울음이 상영관을 가득 메웠던 것 같다. 영화가 그려내는 가족애와 주인공 강재혁의 자기 희생적 결단에 목이 메였을 뿐 아니라 언제든 저 영화적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으리라.

영화적 상상이 현실과 다르다며, 과장되었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다. 원전업계나 학계 쪽에서는 판도라가 허무맹랑한 가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아마도 현실이 오히려 영화적 상상을 넘어서지 않을까 싶다.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 땅의 정치 현실이 우리의 상상력을 가볍게 넘어선 것처럼. 이미 지난해 7월에 울산 앞바다에서, 9월에는 경주 인근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진도 5.0과 5.8의 지진을 겪은 후이기에.

우리가 그냥 공포를 느끼는 데 머물거나 대면하기 버거워 외면해 버리면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상상 가능한 공포를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설계수명 30년을 넘어섰지만 수명을 연장해서 2022년까지 가동하기로 한 월성 1호기에 대해서는 수명연장 허가가 무효임을 다투는 소송이 제기되어 지난 4일에 열두 번째 재판이 열렸다. 고강도 지진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이루어진 신고리 5호기, 6호기 건설허가도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주민투표를 통해 주민들이 거부 의사를 표명한 영덕과 삼척에 대한 원전 입지도 해결된 것이 아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라도 올 상반기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이제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이런 쟁점이 후보들의 공약사항에 나와야 하고 중요한 투표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촛불로 드러난 시민인식이 원전문제까지 연결되기를 희망해본다. 판도라가 보여준 상상이 현실이 되어서는 안되기에.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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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가 상영되고 있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진흙으로 만든 최초의 여성인데 인간을 벌하기 위해 제우스가 만들었다고 한다. 호기심을 못 이긴 판도라에 의해 온갖 불행이 갇혀 있던 상자가 열려서 온 인류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판도라>라는 영화의 제목이 주는 의미는 원전 자체가 인간에게 불행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는 결과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 속 원전 사고는 ‘노후 원전에 지진 발생→밸브 등 중요 기기의 손상→냉각 불능→노심용융발생→발생 수소의 폭발로 격납건물의 폭발→대형 방사능 누출 사고’ 순으로 일어난다.

이런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졸속 보수공사를 바탕으로 결정된 계속 운전, 수만개에 달하는 노후 원전의 기기 중 위험으로 치달을 수 있는 기기고장의 가능성, 사용후핵연료의 위험성, 방사능 누출에 따른 비상사태에 대비한 매뉴얼 미흡 등이다.

원전 폭발이 가져오는 재앙과 혼란상을 실감나게 그린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영화 <판도라>가 그리고 있는 원전 사고는 원전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는 언제든지 대형사고로 전개될 수 있다고 실제로 우려되어 온 사례들이다. 2011년 3월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설계기준 지진을 초과하는 초고강도 지진에 따른 송전선로 파괴로 외부 전원 상실→해일로 인한 안전설비 침수로 비상전원 공급 기능상실→노심냉각기능 상실→노심용융→수소 폭발로 인한 원전 건물의 폭발→대규모 방사능 누출’ 순으로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효율적이라 평가됐던 방재대책은 무용지물이 됐음을 우리는 목도했다. 따라서 <판도라>가 제시하는 것은 단순히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필자는 최근 국내 일부 지역의 원전 현장을 둘러보며 현장 설비관리 실태를 확인하여 수백건의 개선을 요구했다. 또한 다른 원전들도 유사한 상태로 여겨지고 있어서 설비를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사업자의 주장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주민이 참여하는 설비관리 실태감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요구한 바 있으나, 사업자는 영업비밀과 국가보안시설이라는 이유로 원천 차단하고 있다.

기존 제도권에서 잘 관리하지 못하는 현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통과 감시가 강화된 현장중심 경영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최근의 사례만 보더라도 신고리 5·6호기 승인이 일방 통과됐다. 그리고 지반가속도 0.2g으로 설계된 원전을 0.3g으로 올리겠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경주 지진에 따른 지질조사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민간검증을 삭제하고 모든 원전 스트레스 테스트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리고 80여일간 정지 후 조사결과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월성원전을 재가동했다. 국민의 의구심을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폐쇄공간에서 일방적으로 질주하고 있다.

영화 <판도라>는 원전 사고가 현장의 사소한 곳에서 시작해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고 있다. 원전산업계는 이를 두고 도저히 발생될 수 없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다면서 논리적 모순만을 따질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에게 영화 관람을 권장하는 등 <판도라>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영하 <판도라>는 우리에게 언제 닥칠지 모를 원전 사고에 대비해 항상 정신 차리고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한다. 전국 어디에서건 멀지 않은 곳에서 원전을 볼 수 있는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진정 깨어 있는가?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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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대변 안전위, 새벽에 회의 열고
안전 기준 무시 월성1호기 수명 연장
일, 14만명 주민 대피에 자위대 투입
고리·월성 470만명 피할 곳도 없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국민으로서 불안해진 가장 큰 이유는 나와 우리 가족의 ‘안전’을 정부가 지켜주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곳곳에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당장의 상황을 벗어나려고만 하는 것 같다. 시설과 설비의 안전성 기준을 명확히 하고 타협 없이 보수적인 안전성 판단을 하는 행정부가 버티고 있다고 해도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전히 ‘안전은 뒷전’이라는 것을 수명 끝난 노후원전 수명연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확인하게 됐다.

원전에서 안전은 최우선이 아니고 사업자의 이익이 국익으로 둔갑돼 폐쇄해야 할 노후원전이 수명연장되고 있다. 지난 2월27일 새벽 1시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월성원전 1호기의 10년 수명연장 가동을 허가해 줬다. 최신 안전기준으로 평가하지도 않았고 원전 주변 62개의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단층과 해양의 활성단층들이 평가에서 제외돼 지진 위험은 축소되었으며 주민들 몸까지 오염시킨 삼중수소 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은 채였다. 또한 현재 월성원전 1호기는 안전한 상태가 아니니 32가지의 안전개선사항이 반영돼야 한다는 스트레스 테스트 민간검증단의 의견은 무시됐다. 더구나 개정된 원자력안전법에 명시된, 주민의견이 반영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하고 최신 기술기준을 반영해야 한다는 시행령도 무시됐다. 이런 사항들을 무시하고 표결하자는 제안을 한 원자력안전위원은 원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사업에 관여해 2000여만원의 돈을 받아 관련법에 의하면 자격이 없다고 확인된 위원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는 여객선 사용가능 연한을 늘린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후한 시설을 더 사용하려고 하는 데는 경제논리가 작동한다. 그러다 보니 연한을 늘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비용이 더 들어가는 안전성 보완에 인색하다. 원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는 설계수명이 끝난 노후원전 두 기가 있다. 부산광역시 바닷가에 있는 고리원전 1호기와 경주시 바닷가에 있는 월성원전 1호기이다. 고리원전 1호기는 10년 수명연장 가동이 승인돼 운영 중인데 2017년 이후에 10년 더 수명연장하려는 사업자 한국수력원자력은 연장된 수명이 마감되기 2년 전인 오는 6월18일 전에 재수명연장 신청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담당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6월 말에 발표할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수명 끝난 원전 폐쇄계획을 담을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고리원전 1호기는 국내 고장사고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문제투성이 원전인 데다가 비상 냉각수 투입과 같은 급격한 온도 변화로 핵연료를 담은 원자로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운영 중이다. 2007년 당시 규제기관은 원자로를 평가하는 기존의 방식을 바꿔 안전여유도가 줄어드는 ‘진취’적인 검사 방법을 적용하는 것을 허용해 줬고 그 결과 법적 기준치를 만족한다면서 수명연장을 허가해 줬다.

만약에 월성원전 1호기와 고리원전 1호기를 타협 없이 ‘보수적인’ 최신 안전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사업자는 안전성 보완을 위해 비용을 많이 들이느니 가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캐나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전성 보완 요구에 젠틸리 2호기 원전사업자는 이미 1조원을 투입했지만 추가 3조원 투입을 못하겠다며 폐쇄를 결정했다.

30년전 부터 원전반대 운동을 해온 일본 이와이시마 모습. 이 섬은 원전반대운동을 넘어 에너지 자립을 위한 준비를 하고있다. (출처 : 경향DB)


우리나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어떤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에 국제원자력기구는 한국과 일본에 원전 안전에 대해 권고한 것이 있다. 원전 안전을 담당하는 기구와 원전을 진흥하는 기구는 분리시켜야 한다는 권고였다. 우리나라는 원전을 개발하고 진흥하는 과학부처에 안전부서가 같이 있었다. 일본은 경제산업성 산하에 원전 안전보안원이 같이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한국과 일본 모두 원전 규제기구를 기존의 부처에서 분리했다. 그런데 일본이 원자력규제위원회를 환경성 산하에 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총리실 산하에 두고 있다. 현재 국무총리는 원자력진흥위원장이다. 우리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여전히 원전 안전의 가면을 쓰고 원전 진흥의 들러리를 서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안전성이 떨어진 수명 끝난 원전을 가동하는 데 편법이 동원되고 법과 안전성 원칙이 무시된다.

원전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지고 온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사고 수습은 지지부진하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2호기가 심상치 않다는 자료가 공개되고 있는데 인근의 방사능 수치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체르노빌 원전 역시 사고가 발생한 지 30년이 되어 가지만 사고 당시 방출된 다량의 방사성물질로 인한 오염과 인명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반경 30㎞ 안팎으로 14만명이 대피하는 데 자위대까지 투입됐다. 고리원전 1호기 주변에 340만명, 월성원전 1호기 주변에 130만명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디로 피난갈 수 있을까. 대피할 시간이라도 주어질까.

<경향신문·참여연대 공동기획>

<시리즈 끝>


양이원영 | 환경운동연합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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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원전

원전사고가 일어난다면 어떤 형태일까? 미국의 베크 박사는 1964년까지 21년간 원전 246개의 사건·사고를 분석해 결론을 내렸다. 상상가능한 사고는 반드시 발생한다는 것, 사고 시에는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예상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원인으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 세 가지다.

전문가들은 다음 원전사고는 테러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건 국토와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안보문제이다. 가령 사용후 핵연료를 임시보관하고 있는 원전부지 내 저장고는 작은 충격에도 폭발 위험이 있다. 그 외에도 위험요소는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산출된 ‘값싼 원가’만을 내세우며 원전을 고집하는 보수언론들의 안보관이 의심스럽다. 원전은 천문학적 폐기비용을 포함하면 그 어떤 에너지보다 몇 배나 비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회복 불능이 되어버린 자연과 삶의 파괴를 보더라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금 급한 것은 노후원전의 해체다. 지금 20개도 안되는 원전을 가동해 필요한 전기의 4분의 1 정도밖에 공급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생산량은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하고, 원전의 내구성은 심히 우려되는 수준이다.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면 이득을 챙기는 이는 있지만 사고가 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중요한 문제는 원전 해체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해체의 전후방 경제효과를 아는 사람도 없고 일을 할 전문가나 기술자도 없다.

하지만 원전 해체시장이 원전 건설시장보다 훨씬 크다. 원전 1개를 해체하는 데 1조~2조7000억원(독일 사례)이 든다고 한다. 전 세계 450개의 핵발전소 수명을 평균 50년으로 계산하면 매년 10조원 시장은 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50년까지 1000조원 시장을 예측하고 있다. 대폭 줄여 계산해봐도 그 정도는 된다.

지난 정권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5조원짜리 원전 하나 수출하려고 5년을 끌었는데 아직도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매년 10조원 시장은 엄청난 블루오션 아닌가. 정부와 국회가 이 경제성을 알고 원전해체센터 설립 예산을 세웠다. 일단 방향은 잘 잡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작년 3월 불교와 원불교가 공동주최한 ‘세계원전안전해체학회 준비 세미나’에 참가한 독일 전문가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첫째, 완전 해체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당장 해체하는 경우와 20년을 거치한 후 하는 경우의 두 가지가 있는데, 둘다 수십년에 걸쳐 해체한 후에도 핵폐기물의 보관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남는다. 둘째, 방사능 가득한 현장에서 고준위폐기물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표피를 벗기고 절단하는 로봇공학과 같은 첨단기술이 중요하다. 셋째, 공정을 세분하고 각 단계마다 숙련기술자의 치밀한 처리작업이 진행돼야 하고 그를 뒷받침하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노후원전 폐쇄를 주장하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들을 모두 잘하려면 원전 위험을 진단해 안전의 수준을 평가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줄 아는 기술적·정책적 능력, 결정을 실행하는 기업 조직, 현장에서의 맞춤형 실행을 뒷받침하는 연구능력, 전문기술자를 키우는 교육훈련 능력 등을 갖추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연구기능 강화와 사람을 길러내는 일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선진국의 지적·기술적 역량을 도입해 그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고, 우리의 기존 인력을 재교육시켜 해체 쪽의 기술자로 기르려면 방향부터 확고히 잡아야 한다.

그 방향은 수명이 다한 노후원전의 즉각적인 폐기와 해체다. 그래야 대내외의 협력을 구축할 수 있다. 무엇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엄청난 불안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에게 ‘안심’을 선물할 수 있다. ‘결단’이란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이원영 | 수원대 교수·국토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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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원전

도시의 삶은 화려하고, 자유분방하고, 모험적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도시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 도시는 발전과 팽창, 경쟁과 신분상승의 욕망이 응축된 공간이기도 하다. ‘기회의 땅’을 누리려는 열망이 없었더라면, 38억명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의 얼굴은 이중적이다. 소외와 경쟁, 갈등과 삭막함은 도시적인 삶의 또 다른 모습이다. 모든 도시에는 전통과 현대, 역사와 미래, 절망과 희망이 공존한다. 초고층 빌딩과 슬럼가를 구분 짓는 것은 신시가와 구시가의 시각화된 차이만은 아니다. 그곳에는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낸 도시화의 그늘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도시에서 밀려난 패자들의 목록이 있다면, 맨 앞자리에 놓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연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숲이 가득한 도시에서 자연의 원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도시는 미국의 언론인 빌 매키벤이 <자연의 종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이 자연과의 오랜 대립 속에서 자신의 승리를 선언한 공간”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도시가 주목을 받는 것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그곳에서 살아가는 ‘도시 인간(Homo Urbanus)’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역할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지구를 ‘도시 행성’으로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도시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도시는 전 세계 에너지의 75%를 쓰며 이산화탄소의 80%가량을 내뿜는다. 더군다나 도시는 식량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외부와의 연결이 끊기는 순간, 하루도 버티기 힘든 곳이 바로 도시다.

이렇듯 냉정한 현실 앞에서 세계의 도시들은 ‘지속가능한 도시’로의 탈바꿈을 서두르고 있다. 최고의 녹색도시를 꿈꾸고 있는 밴쿠버, 2층 굴절버스의 천국으로 불리는 쿠리치바, 전기자동차 수도를 꿈꾸는 샌프란시스코, 난방에너지의 대부분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뮌헨과 오슬로, 2020년까지 탄소중립도시 실현을 선언한 코펜하겐 등이 본보기다. 이들 도시에는 공통점이 있다. 도시가 바뀌면 국가가 바뀌고, 결국은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우리나라에도 같은 꿈을 꾸는 도시들이 많다. 대표 주자는 단연 서울이다. 서울과 인근 지역을 오가는 버스에는 ‘에너지를 아껴 쓰는 당신이 원전 하나 줄이는 발전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서울시가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원전 하나 줄이기’의 가치관이 담긴 슬로건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무심코 이 글귀를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신도 발전소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당당한 선언에서, 에너지 시민주권시대의 개막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2' 주요과제 (출처 : 경향DB)


‘원전 하나 줄이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전력자립률은 3% 수준에 불과했다. 지금은 5%대를 향해 가고 있다. 작년 전국 평균 에너지소비량이 증가한 것과 달리 서울에서는 전력, 도시가스, 석유 소비가 모두 줄어들었다. 시민들이 ‘생산’과 ‘절약’이라는 두 바퀴 수레를 끈질기게 밀어 올려 거둔 성과다. 하지만 아직은 첫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앞으로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얼마 전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의 후속편으로 ‘에너지 살림도시 서울’을 들고 나온 것은 도시혁신의 새 역사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에너지 분야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에너지 나눔 공동체를 실현하겠다는 구상은 에너지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기본 조건이라는 명제와 닿아있다. 서울의 ‘에너지 살림도시’ 실험은 도시화의 그늘을 걷어내기 위해 이제 막 시작된 꿈이다. 옥상과 아파트 베란다마다 햇빛나무가 자라고 시민 모두가 발전소의 주인이 되는 꿈을 다른 도시들도 함께 꾸었으면 한다.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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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원전

정부가 어제 한빛·고리 원전을 상대로 한 보안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원전 관제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한수원 직원 19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폐기물 처리업체는 이를 이용해 원전 내부를 자기 맘대로 휘젓고 다녔다. 원전 전산시스템은 접속기록 보관기간이 3일에 불과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국가 보안시설인 원전의 전산관리 실태가 고작 이 정도라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관제시스템은 원전 가동을 통제하고 기밀정보를 보관하는 핵심 설비다. 기밀사항이 담긴 만큼 아무나 접속할 수 없도록 이중 삼중의 보안장치가 필요한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직원들의 보안의식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내부 전산망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협력사에 건넨 것은 지폐가 보관된 한국은행 금고 열쇠를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이를 갖고 작업허가서를 자체 작성하고 방사성 폐기물 반출 승인도 스스로 했다고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으니 방사성 폐기물 처리도 제대로 이뤄졌을지 의문이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9일 노후원전 폐쇄를 주장하며 세종대로에서 청계천까지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원전 보안에 구멍이 뚫린 것도 문제지만 정부 대응은 더 한심하다.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한 인터넷언론의 문제 제기가 있고 나서야 늑장감사에 착수했다. 더구나 허술한 보안관리 실태를 확인하고도 실태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관제시스템에 보관된 원전 기밀이 유출됐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또 유출된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만에 하나 외부 불순세력의 손에 들어갔을 경우 그 파장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정부는 “우리는 해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부 전문기관에 맡겨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원전 보안을 책임진 정부가 전문가 타령만 하고 있으니 도대체 뭘 믿으라는 건가.

원전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툭하면 멈춰서는 잦은 고장 탓에 사고뭉치라는 오명에 시달리고 있는 터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검찰이 즉각 진상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관제시스템에 보관된 기밀사항 유출이나 아이디·비밀번호의 외부 반출 여부를 철저히 가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이번 점검 대상에서 빠진 나머지 원전도 예외일 수 없다. 산업부 공무원들의 무능이 확인됐으니 보안점검 체계의 개편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자리만 차고 앉아 “우리 역량 밖”이라고 하는 정부는 더 이상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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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원전

원자력 발전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대형 사고 위험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한국 원전에서는 이런 경고가 잘 먹혀들지 않는다. 사고가 빈발하지만 예방은 물론 대응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대응 과정에서 실수로 사고를 키우기도 한다. 실수나 사고 내용을 제때 공개하지 않거나 왜곡발표해 은폐 의혹까지 자초한다. 지난 17일 증기발생기 이상으로 가동을 중단한 전남 영광 한빛원전 3호기 고장이 좋은 사례다.

당초 한빛원전 고장은 증기발생기 세관의 균열로 발생했다. 응급 처치 차원에서 세관 균열을 정비하면 되는 ‘보통 사고’였다. 그러나 정비 과정에서 멀쩡한 증기발생기에서 고장이 난 것으로 알고 이것만 점검하느라 12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더 크고 새로운 사고를 불렀다. 균열이 난 증기발생기에서 평상시의 130배가 넘는 방사능이 외부로 누출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원전 측이 당초 멀쩡한 증기발생기 밸브를 잠근 채 안도했고, 방사능 누출도 사고 12시간 뒤에나 알게 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잦은 고장과 납품 비리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한빛원전 (출처 : 경향DB)


한빛원전 측은 방사능을 격납건물 내부로 전환하는 시설이 있는데도 방사능 외부 누출 사실을 파악한 지 11시간 후에야 이 시설을 가동했다. 누출된 방사능이 인체에 유해한 정도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원전 측은 방사능 누출을 파악했지만 언론과 주민에게는 이를 뒤늦게 공개해 은폐 의혹을 샀다. 멀쩡한 증기발생기를 정비한 직원들의 실수를 확인하고도 사고 직후 열린 공개회의에서 “세관 파손 문제를 잘 대처했다”고 허위보고했다. 도대체 안전을 다루는 기관의 태도라고 믿을 수 없다. 양파껍질처럼 계속 부실이 드러나는 사고 대응의 전 과정을 엄정하게 점검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18개월마다 한 번씩 하게 돼 있는 정기점검에서 사고 원인을 걸러낼 수 있었다는 얘기다. 과실이든 장비 부실이든 점검 과정도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러잖아도 한빛원전은 지난해 8건의 고장정지 등 사고가 잦아 불안감이 확산돼온 터이다.

이런 총체적 부실관리는 비단 한빛원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국내 원전사고는 17건이며, 갈수록 느는 추세다. 원전사고의 원인은 직원들의 나태와 부주의, 장비 노후, 기술 미숙 등 복합적이다. 그러나 사고가 느는데도 이를 성찰하기는커녕 국민에게 안전하다고 홍보만 하려는 당국의 책임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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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원전

원자력발전소 근처에 오래 살면서 갑상샘암에 걸렸다면 원전 측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인근 주민 박모씨가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박씨는 고리원전으로부터 10㎞ 안팎 떨어진 곳에서 20년가량 살면서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한수원 측에 위자료 1500만원 지급을 명령했다. 원전과 일부 암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첫 사례로, 시민 건강권 제고와 관련해 획기적 판결로 평가받을 만하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법원의 전향적 인식이 뚜렷이 드러난다. 재판부는 원전이 법에서 정한 기준치(연간유효선량) 이하의 방사선량을 방출했더라도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연간유효선량은 최소한의 기준일 뿐 절대적 안전을 담보하는 수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 손배 소송에서와 달리 피해자의 ‘인과관계 입증책임’을 완화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재판부는 공해 소송에서 피해자에게 인과관계의 엄밀한 증명을 요구할 경우 사법적 구제를 사실상 거부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한수원 측이 원전과 갑상샘암 발병 간 ‘인과관계 불성립’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논리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서울 프레스센터 건물외벽에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원전의 폐쇄를 주장하는 대형 현수막을 펼치는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원전 사고의 위험성은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등의 사례를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형 사고가 아니더라도 원전이 있다는 것만으로 지역 주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이 이번 판결을 통해 드러났다. 1심에서 승소한 박씨의 사연은 기구하다. 남편은 직장암 판정을 받았으며 아들은 발달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2012년 일가족 세 명이 함께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박씨에 대해서만 원전 측 책임을 인정했다. 전국의 원전 인근 주민 가운데 비슷한 고통에 시달리는 가족이 드물지 않을 것으로 본다.

언제까지 원전지역 주민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할 텐가. 이제는 국가가 답을 내놓을 차례다. 정부는 민관 공동검증단을 구성해 원전 인근 지역에 대한 건강 역학조사를 전면 실시해야 한다. 나아가 노후 원전의 연장 가동을 포기하는 등 기존 원전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 최근 강원 삼척 주민투표에서 원전 반대 의사가 압도적으로 나타난 데 이어, 경북 영덕 등 다른 원전 예정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는 터다. 탈(脫)원전으로 방향을 전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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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원전

원전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강원 삼척시에서 실시된다. 오늘 사전투표에 이은 내일 본투표 결과에 따라 삼척시민의 의사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원전 유치는 지역 주민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심각한 갈등 요인이 돼왔다. 직접민주주의 방식인 주민투표를 통해 주민의 뜻이 가감없이 확인되고 정책에 반영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번 주민투표가 원전 유치 문제를 둘러싼 정부 및 삼척시의 정책 결정과 갈등 해소는 물론 지역민주주의 복원의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번 주민투표를 있게 한 삼척시의 도전과 선택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전임 시장의 일방적인 원전 유치 신청과 중앙정부의 결정을 거부했고 그 뜻을 원전 반대를 공약한 김양호 후보를 62.4%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선출함으로써 구체화했다. 안전행정부와 삼척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원전 시설 입지·건설에 관한 사항은 관련법상 국가사무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라는 유권해석을 내리는 등 여러 장애 요인에도 불구하고 주민투표가 성사될 수 있었던 동력이 바로 주민의 지지와 적극적인 참여라고 할 것이다.

원전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사흘 앞둔 6일 강원 삼척시 남양동 거리에 원전유치를 반대하는 글귀가 쓰인 노란 리본이 걸려 있다. (출처 : 경향DB)


선관위의 위탁사무 거부로 주민투표는 민간조직인 ‘삼척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은 물론 선관위로부터 투표인명부조차 제공받지 못한 채 후원금으로 비용을 충당하고 무료 자원봉사자를 써 비용을 3억원 이상 줄였다고 한다.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의 투표’라는 말 그대로인 셈이다. 투표 전의 지역 분위기도 차분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10여년 전 원전 반대투쟁 때와 같은 ‘대동단결’ ‘결사항전’ 등 비장한 격문 대신 ‘시민주권’ ‘지방자치’ ‘민주주의’ 등의 현수막 문구가 많은 것이 그런 분위기를 잘 전해준다.

문제는 이번 주민투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태도다. 삼척시는 주민투표 결과의 법적 효력과 관계없이 이를 근거로 정부에 원전 철회를 요구할 공산이 크다. 투표율과 유치 철회 찬성률이 높을수록 그 요구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주민투표로 확인된 지역의 민의를 단순히 국가사무라는 형식논리로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알아야 한다. 삼척시 주민투표가 차분하고 성숙한 분위기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진다면 정부는 오히려 이제까지의 부정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민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것이 지방자치다. 삼척 주민투표가 지역민주주의를 복원하는 축제 한마당이 될 수 있도록 국민의 관심과 성원, 정부의 협력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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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9일 강원도 삼척에서는 원전 유치 찬반을 놓고 민간 차원의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본래는 주민투표법에 따라 주민투표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중앙정부가 방해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민간 차원의 주민투표로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주민투표의 의미는 매우 크다.

과거에 전북 부안에서 핵폐기장 유치 여부를 놓고 민간차원의 주민투표를 한 적은 있지만, 원전을 둘러싸고 주민투표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여러 차례 원전을 둘러싼 주민투표가 있었고, 투표 결과에 따라 원전이 백지화된 사례도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도 원전 확대 정책을 계속 펴면서, 단 한번도 민주적인 의견수렴과정을 밟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주민투표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원전도 민주주의의 사각지대였지만, 송전탑 문제도 그렇다. 최근 경남 밀양, 경북 청도 등지에서 ‘돈봉투’ 사건이 논란이 되었다. 송전탑 건설과 관련해서 한전이 ‘검은돈’을 뿌려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출처 불명의 돈이 주민들에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뿌려졌다. 심지어 경찰서장이 돈봉투를 전달하는 심부름을 하기도 했다.

이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송전탑 건설과정에서 민주주의란 없었다. 한전은 오로지 경찰력과 돈에 의존해 송전탑 건설을 밀어붙이기만 했다. 그래서 밀양, 청도 등지의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국가적인 법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막무가내식의 송전탑 건설을 가능하게 한 ‘전원개발촉진법’ 등의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건물외벽에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원전의 폐쇄를 주장하는 대형 현수막을 펼치는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1978년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은 일방적인 송전탑 사업을 뒷받침하는 법이다. 주민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경우에는 토지를 강제수용하도록 하고 있다. 밀양, 청도 등지의 주민들은 이 법을 개정해 제2, 제3의 밀양과 청도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송전탑 문제는 밀양, 청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근 경기 양평, 여주, 이천, 광주 일대가 들썩이고 있다. 한국전력이 신경기변전소 후보지로 발표한 다섯 군데가 이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신경기변전소’는 동해안의 신울진 원전에서 출발한 76만5000V 송전선이 도착하는 곳이다. 한국전력은 이 변전소까지 230㎞의 송전선을 건설하려 한다. 강원도와 경기도를 가로지르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유사한 초고압 송전선이 또 한 가닥 추진될지도 모른다. 동해안에 워낙 많은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서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발전소들은 수도권의 대공장, 대도시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전기소비가 증가하기 때문에 발전소와 송전선을 계속 지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이야기다. 지금 웬만큼 산다고 하는 나라들 중에 대한민국처럼 전기소비량이 급증하는 국가가 없다.

2011년 말 기준으로 국내 총 전력소비량은 45만5070GWh로 2002년에 비해 63%나 증가했다. 연 평균 전력소비량 증가율은 5.6%에 달한다. 경제성장률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유럽의 선진국들과 일본은 오히려 전기소비를 줄이는 추세다. 미국조차도 전력소비량이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의 전력소비만 이렇게 급증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잘못된 전기요금 정책에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너무 싸게 해 주다보니 전체 전기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력소비가 계속 늘어나 왔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며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다.

정부는 이렇게 전력소비 증가를 부추기는 전기요금 정책을 펴면서 원전과 송전탑을 계속 지으려 하고 있다. 이제는 이런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소 50% 이상 인상해야 한다. 국책연구기관인 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 따르면 이렇게 전기요금을 올려도 기업활동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동안 싼 전기요금으로 산업용 전기를 공급해 온 것은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에 엄청난 특혜를 줘 온 것이다. 이제는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승수 |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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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0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원전 하나 줄이기’ 2단계 계획을 통해 현재 4.2%인 서울의 전력자립도를 2020년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2012년에 발표한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앞으로 4년 동안 주요 정책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2년, 서울에서 실제 원전 하나만큼의 에너지를 줄였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외치며 원전을 확대해갈 때, 서울시는 에너지소비 절감과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으로 원전 1기에 해당하는 200만TOE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서울 에너지소비의 60%를 차지하는 가정과 상업부문 대책을 중심으로 10대 정책을 마련하고, 녹색에너지과, 에너지시민협력반을 신설했다. 상반기, 하반기 정책평가에서 시장이 직접 ‘원전 하나 줄이기’ 성과를 챙겼고, 민관거버넌스 기구로 실행위원회를 운영했다.

지난 2년 동안 서울에서는 냉난방 부하를 줄이는 건물에너지 효율화 사업이 2만건 진행되었고, LED전구가 679만개 보급되었으며, 태양광발전기는 3756곳에 설치되었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에너지공모사업도 늘었고, 시에서 에너지설계사를 직접 고용해 중소형건물에 대한 에너지 진단에 나섰다. 서울시는 6월 말을 기준으로 200만TOE 감축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은 에코마일리지를 통한 시민에너지 절감량과 서울시가 벌인 사업에 따른 절감효과를 총합해 계산한 것이다. 그런데 총량달성만큼 중요한 성과는 2013년 기준 서울시의 전력, 가스, 석유 소비량이 1년 전에 비해 모두 줄었다는 점이다. 전국 평균 전력소비량은 1.76% 증가했는데 서울시는 마이너스 1.4%를 기록했다. 전국적으로 에너지 소비는 증가하고 있는데, 서울시는 유일하게 모든 에너지 분야에서 절감에 성공했다. 지자체 차원의 에너지정책이 효과가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신규 상업건물이 여전히 통유리로 된 커튼월 방식으로 건설되고, LED 보급은 늘었지만 과도한 조명은 여전하다. 주택단열개선 사업도 90%가 창호교체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바이오디젤 주유소 폐쇄도 신중했어야 했다. 제2롯데월드 건설도 변수다. 완공되면 서울시내 단일건축물 중 에너지소비 1위를 차지할 것이다.

서울시는 ‘원전 하나 줄이기’ 2단계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에너지복지와 녹색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겠다고 한다. 문제는 서울시의 정책만으로 2020년까지 전력자립도 20%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차원에서 네가와트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전기요금 개편,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개선, 에너지원별 상대가격 조정 등의 정책을 펼쳐야 한다. 원전건설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고수하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러한 정책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박원순 시장의 '원전 하나 줄이기' 계획 프레젠테이션 _ 뉴스원


원전 추가 건설과 밀양과 청도에서 벌어지는 송전탑 갈등이 심화될수록 수도권의 전력소비에 대한 책임은 무거워진다. 인구 1000만 도시 서울은 그 자체로 지역의 엄청난 자원과 자본을 끌어다 쓰는 도시이다. 서울에서 지역의 원전과 송전탑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이참에 서울뿐 아니라 전력자립도가 낮은 광역지자체들이 각각 ‘원전 하나 줄이기’ 아니면 절반이라도 줄이는 정책을 세워보면 어떨까? 특히 경기도는 전력소비가 급증하는 데다 신경기-신울진 765㎸변전소 건설로 인해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전력소비 증가의 원인이 되는 지역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서울의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에 필적하는 지역에너지 정책을 수립해 집행하는 날을 고대해본다.


이유진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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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절약과 효율화,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통해 원자력발전소 1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을 절감하겠다는 서울시의 에너지 정책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그제 기자설명회를 열어 2012년 5월부터 시작한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을 결산했다. 2014년 12월까지 200만TOE(석유환산톤)를 절감하겠다는 당초 목표를 6개월 앞당겨 달성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실제로 사업 성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2013년 전국 평균 전력사용량은 1.76% 증가했으나 서울은 1.4% 감소하는 등 정책 효과가 각종 지표로도 확인되고 있다.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가 전력 소비를 줄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전력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이고 경제·기후·인구 등 별다른 감소 요인이 없었던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에너지 생산·효율화·절약의 세 부분 가운데 시민 참여를 바탕으로 한 에너지 절약 분야(약 91만TOE)가 가장 눈에 띄는 기여와 성과를 낸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70만명에 이르는 에코마일리지 회원, 가정 에너지 무료 진단 프로그램인 에너지클리닉, 학교·가정의 에너지수호천사단, 상업 부문 에너지 절감에 앞장서는 착한가게 등은 새로운 시민 참여형 에너지 문화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는 부분이다.

착한 에너지 광고 (출처 : 경향DB)


박원순 서울시장은 1단계 ‘원전 하나 줄이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2단계 ‘에너지 살림 도시’ 구상을 밝혔다. 1단계에서 신재생에너지 생산 기반과 시민 참여 에너지 문화 기반을 마련했다면 2단계에서는 제도 개선과 사회구조 혁신을 통해 에너지 자립과 나눔, 참여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2013년 기준 4.2%인 서울의 전력 자립률을 2020년까지 20%로 끌어올리고 온실가스 1000만t 감축, 총에너지 400만TOE를 절감한다는 기본 목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녹색일자리 창출, 에너지 빈곤층과의 나눔 등으로 개념을 넓힌 것이다.

‘원전 하나 줄이기’와 ‘에너지 살림 도시’로 표현되는 서울의 에너지 비전은 에너지 정책 당국과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함께 생각해봐야 할 방향이다. 무엇보다 경제에 충격이나 부작용을 주는 일 없이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각 지자체가 실질적인 의지를 가지고 전력 소비를 줄여나간다면 발전소 및 송전탑을 무한정 지을 필요도, 그로 인한 갈등도 훨씬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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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원전

전 세계에서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435기다. 수명연장을 고려하더라도 2030년대 120기, 2040년대 210기가 영구정지된다고 한다. 국내 원전도 가동 중인 23기 가운데 10기가 2020년대면 설계수명을 다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 폐로시장 규모가 2030년 500조원, 2050년 1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원전 건설은 정체해 있는 반면 폐로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향신문이 6회에 걸쳐 보도한 ‘눈앞에 닥친 원전 폐로’ 기사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무엇보다 원전 정책과 산업, 연구 등을 담당하는 원자력계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다.

원전은 30~50년 동안 전기를 얻는 편익을 위해 수천대에 걸쳐 후손에게 짐을 지우는 시설이다. 가동이 끝나고 원자로를 해체(폐로)하는 데만 짧게는 15년, 길게는 60년 걸린다.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고준위폐기물은 10만년 동안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고준위폐기물 영구처분은 지금 세대가 아직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기술이다. 우리는 중저준위방폐장은 짓고 있지만 사용후핵연료 문제와 관련해서는 겨우 공론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설계수명이 다한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를 폐로하지 않고 수명연장해 가동 중이거나 가동하려 하고 있다. 노후 원전을 수명연장하기보다 폐쇄하는 것이 국제적 추세임에도 국내 원전 정책과 업계 현실은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월성 원전 단지가 보이는 경북 경주시의 바닷가에 지난 5일 발전소 출입을 통제하는 팻말이 꽂혀 있다. (출처 : 경향DB)


국내 원자력계가 폐로 시대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폐로는 원전을 짓기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시간과 비용, 기술, 사회적 합의 과정 등 모든 면에서 결코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소형 원자로를 해체한 것 말고는 경험도 없다. 안전한 폐로를 위한 법도, 폐로를 담당할 기관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정책이나 연구·개발(R&D) 등이 원전 확대에 집중되다 보니 폐로나 폐기물 처리 등과 관련한 부분은 소홀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는 국내 폐로시장을 송두리째 외국 기업에 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어제 폐로 기술 개발과 정책 마련을 위한 부처 간 실무협의를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2012년 11월 총리실 주재로 원전 해체 문제를 논의한 지 21개월 만이다. 2021년까지 폐로 관련 기술 자립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정부 로드맵에 따라 연구·개발 노력을 기울여온 원자력계의 발걸음도 최근 빨라진 듯하다. 정부와 원자력계는 폐로 시대 준비에 만전을 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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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