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상영 중인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김군자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귀국한 뒤에도 잊혀지지 않는 고통의 기억으로 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괴로움과 증언이 담겨 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이미지

1991년 8월, 과거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를 증언한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이슈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화제가 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과거 역사사실에 대해 사죄할 필요성을 전혀 못 느낀다는 일본 혐한론자들의 발언들이 일본의 최대 유력 종합월간지인 ‘문예춘추(文藝春秋)’ 1992년 3월호에 특집대담 기사로 실렸다. 기사는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역사 등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반(反)과 혐(嫌)의 감정을 분출시키는 내용과 비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기사를 계기로 우리나라와 일본 일간지에 ‘혐한’(한국·한국인에 대한 혐오)이라는 담론이 출현하게 되었고, 혐한은 지금도 한·일관계에 있어 현재 진행형이다.

따라서 한·일관계에 있어 혐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역사왜곡과 아픔을 넘어 양국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본군 ‘위안부’의 본질을 응시하며 어떠한 이해득실도 따지지 않고 오로지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노윤선 | 고려대 중일어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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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 이맘때쯤 신년회가 있었다. 예약한 중국집이 번화가에서 떨어진 곳이라 오후 5시45분에 전철역에서 모여 가기로 했다. 5시35분쯤 도착하니 개찰구 앞에 상당수가 있었고, 5시44분에 마지막 멤버까지 40여명이 모두 모였다. 당시 어느 변호사단체의 옵서버이기도 했다. 여름 총회에서 2년 임기 회장을 새로 뽑았다. 이날 이사진이 모여 2년치 이사회 날짜도 정했다. 수첩들을 펼쳐 약속이 없는 날짜를 맞춰 가는데, 다다음해 봄의 약속이 잡힌 사람이 여럿이었다. 

“조센진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 시절 동네 술집 옆자리에서 들려온 얘기다. 나의 변변찮은 일본어를 알아채고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역사와 정치를 시비하려는 것이었을 테다. 그리고 올해 한국에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위안부 합의에 재협상을 요구한다고 하니, 일본 인터넷에 비난이 들끓는다. “처음부터 조센진과 약속 따위 하는 게 아니었다.”

‘정의의 회복’이라는 낭만적인 발상의 재협상 요구는 ‘조센진은 거짓말을 한다’는 프레임에 뛰어드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프레임은 ‘약속의 절대성’이 아니라 ‘청구권의 유효성’이다.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합의는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의 결함을 반세기 만에 되풀이한 것이다. 두 가지 모두 국가가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킨 협약으로, 이러한 약속은 있을 수 없다는 게 현대 국제사법의 상식이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 정부가 야만적인 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2차 가해’를 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박근혜 정권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니라고 우기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1년 동안 고령인 7명의 할머니들은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의 말 한마디 못 들어보고 한 많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정기 수요시위에서 일곱 명 할머니들의 사진 앞에 시민들이 바친 꽃이 정부를 대신해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듯합니다. 이상훈 기자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이렇다.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2조1항). 이후 1980년대까지 군사정권이 계속됐고, 일본에 소송도 제기하지 못했다.

1990년대 들어 위안부와 징용공들의 소송이 시작됐다. 하지만 2000년대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모두 패소했다. 주요한 이유는 한일청구권협정이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인 한국이 식민지 조선을 대표해 최종적으로 청구권을 소멸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 사법부의 입장은 기존 행정부의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아무리 부정해도 일본의 사법부와 행정부는 유난히 긴밀하다).

사실 1990년대까지 일본 행정부는 일본 국민이 피해자로서 제기한 소송에서 개인의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주장했다. 1963년 일본인 원폭피해자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샌프란시스코 협정에도 불구하고 청구권이 남아 있다고 했다. 또 시베리아에 억류된 일본인들이 소련 정부에 제기한 소송에서도 1956년 일·소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배상 요구가 가능하다고 법무성이 밝혔다.

일본 사법부의 청구권 소멸론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7년 최고재판소는 “국가 간의 행위로 개인의 실체적 청구권이 소멸된 것은 아니고, 재판상 청구권이 소멸된 것”이라고 했다.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다. 이에 따라 니시마쓰 건설은 화해 형식을 빌려 자발적으로 보상했다. 중국과 일본 역시 1972년 공동성명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중·일 양국 국민의 우호를 위해 일본에 대한 전쟁배상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했다.

상대로 나눠서 보면 일본은 미국, 소련, 중국과 달리 한국에만 청구권 소멸을 주장한다. 여기에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이란 불필요한 문구가 한몫한다. 하지만 그 어떠한 문구로도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키지는 못한다. 2015년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도 마찬가지다. 위안부 같은 반인도적인 문제는 더더욱 그렇다. 합의는 무효다.

사회부 | 이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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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위안부 문제가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로 한·일 간 외교갈등 사안으로 재부상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0% 이상이 위안부 합의의 무효화나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고, 주요 대권주자들도 합의에 부정적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합의를 실행하는 게 나라의 신용 문제’라며 일본의 아베 총리는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차기 정부도 압박하고 있다.

12·28 위안부 합의를 쫓기듯 졸속으로 결정한 지도자의 시대적 의제에 대한 통찰력 부족, 그리고 인간의 존엄 특히 여성의 존엄을 지켜주지 못한 박근혜 정부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는 물론 여론도 비판적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성의있는 이행’ 압박에 위안부 문제가 국내 정치 이슈로 재부상한 것이 다른 측면에선 12·28 합의에 대한 재평가와 문제점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어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가 밀실에서, 여론도 무시한 채 졸속으로 ‘얼렁뚱땅’ 끝낼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도 인정한 반인도적 범죄인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재협상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열린 우리겨레하나되기의 ‘윤병세 장관 사퇴 촉구’ 기자회견 참석자가 ‘왜’자가 적힌 종이를 들어 ‘왜교부’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첫째,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들고나온 ‘영사 문제 관련 비엔나협약’ 위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 시기 민족차별 문제고, 여성인권 유린 문제고,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성폭력 문제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정권이 바뀌어도 진정성 있게 사죄하고 보상해야 하는 국가범죄다. 이 문제는 10억엔을 받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면죄부를 일본에 주고 마무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차기 정부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에 대해 밝혀야 할 것이다.

둘째, 부산 소녀상 설치에 대해 일본 관방장관이 ‘약속은 지키라’고 큰소리쳤다. 일본 총리와 장관의 고압적인 행동에 한마디 항의도 못하는 이유가 혹시라도 ‘이면합의’ 때문이라면 이 또한 재협상해야 하는 이유다. 분명 정부는 2016년 9월12일 ‘소녀상과 관련해서 이면 합의는 없었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3월부터 유지해온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의 도덕적 우위가 박근혜 정부 들어 무너졌다.

만약 소녀상 철거를 포함한 이면합의 토대 위에서 위안부 문제가 봉합됐다면 일본은 앞으로 두고두고 물고 늘어질 것이다. 차기 정부는 위안부 문제만은 국민 대다수의 여론을 수렴하여 밀실협상이 아닌 투명한 협상을 통해 일본과 재협상해야 한다.

셋째,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동안 한국 정부가 견지해 왔고 박 대통령 자신도 지켜온 입장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2015년 12월 쫓기듯 합의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국민들은 궁금해한다. 혹시라도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3국의 ‘권유’성 ‘강박’이 있었다면, 그것 때문에 위안부 합의는 원천적으로 무효다. 국제법상 ‘강박에 의한 조약의 효력은 무효’이기 때문이다.

효력이 무효화된 합의는 어차피 파기되거나 재협상돼야 한다. 국제정치적 강박을 통해 합의를 해놓고, 비엔나협약을 들먹이면서 약속을 지키라고 일본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재협상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이 냈다는 ‘거출금’ 10억엔부터 돌려줘야 한다. 외교의 기본원칙이 무너졌는데 ‘외교협상 결과는 존중돼야 한다’느니 ‘국제관계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 외교관들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외교부가 강조하는 국가신용,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신용보다 중요한 것이 인권이고 국민의 자존이다. 조기대선으로 곧 차기 정부가 들어선다. 일본이 힘 잃은 박근혜 정부를 휘둘러 12·28 위안부 합의에 대못을 치려고 하지만, 국민은 받아들일 수 없다. 탄핵소추된 식물대통령의 권한대행과 식물정부의 외교안보팀도 차라리 그냥 가만히 있어 주는 게 더 큰 재앙을 막는 길이다. 차기 정부는 일본에 10억엔을 돌려주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위안부 문제를 재협상해야 할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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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어제 1년을 맞았다. 한·일 양국은 지난 1년간 화해·치유재단 출범, 지원금 10억엔 출연 등 합의 이행 절차를 밟아왔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라는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어제도 변함없이 위안부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가 열린 것이 그 증표다. 

한·일 양국이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합의의 동기가 잘못된 데서 기인한다. 중대한 인권침해나 전쟁범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한·일관계 개선 차원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이러니 합의의 의미나 내용보다 ‘2015년 내 타결’ 등 합의 시기를 더 중시하는 해괴한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명의로 사죄와 반성을 합의문에 담았으나 전쟁범죄나 법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은 일본의 10억엔 지원금을 받는 것으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약속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1년을 맞은 28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6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참가자들이 올해 별세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폐기를 촉구했다. 강윤중 기자

이런 위안부 문제 합의가 전쟁 시에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표준에 부합할 리가 없다. 실제로 합의는 분명한 사실 인정과 직접적 사죄 표명, 법적 배상금 지급, 재발방지 등의 국제 표준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포함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한국 정부는 합의 도출 과정에서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절차적 정당성도 없었다. 국제법적으로 구속력을 지니는 조약이나 협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 비준 절차도 밟지 않았다. 합의내용이 문서화되지 않고 양국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 형태로 발표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더욱 한심한 것은 양국 정부가 이런 부실투성이 합의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합의 후 고자세로 돌아서 “강제성이 없었다”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할머니들 마음의 상처를 덧내고 있다. 누가 봐도 사죄하고 반성한다고 할 수 없는 태도이다. 한국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고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사업 예산을 삭감했다. 위안부 백서 발간도 백지화했다. 피해 할머니들에게 일본 정부의 지원금을 개별 지급하는 것이 과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인지 묻고 싶다.

명분도 실효성도 없는 위안부 합의는 당장 무효화하는 게 맞다. 여론도 합의 무효화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국가 간 협상의 결과물이어서 되돌리기 어렵다지만 국회 비준 회부 등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전에라도 합의 무효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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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아미티지 보고서’의 일부다. “2012년 6월 미·일·한 합동해상훈련 참가는 분열적인 역사문제를 제쳐두고, 현재의 더 큰 위협에 대처하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한 걸음을 의미한다. 덧붙여 한·일 간 체계적 대북정보 공유를 위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과 군수물자 공유를 촉진할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등 계류 중인 방위협정 체결을 위한 신속한 움직임이야말로 3동맹국의 안보이익을 위해 유익한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움직임이다.”

‘아미티지 보고서’란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전략통들이 모여 만든 초당적 대일·대아시아 전략보고서다. 2000년, 2007년, 2012년 세 번에 걸쳐 발표되었다. 정권을 넘어선 미국의 대일·대아시아 전략의 청사진 같은 것이다. 보고서 참여자들은 조야를 넘나들며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예컨대 제2차 ‘아미티지 보고서’에 이름을 올린 커트 캠벨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지냈다.

미국의 전략통들은 진즉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피로감을 나타내며, 신속한 ‘해결’을 한·일 양측에 압박해 왔다. 그리고 지소미아와 군수지원협정의 조속한 체결을 종용해 왔다. 하지만 2012년 성사 직전 엎어졌다. 4년을 기다려 임계점까지 왔다. 한편으로 미 대선의 행방이 문제였고, 다른 한편 내년 한국 대선이 문제다. 힐러리 클린턴이 집권에 실패할 경우, ‘재균형(rebalancing)’은 실종이 우려되었고, 한국에서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 지소미아는 물 건너간다. 물론 지금의 탄핵 국면은 상상조차 하기 전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가서명 후 본서명까지의 절차를 9일 만에 해치웠다. 그만큼 미국이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말이다.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21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서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중지를 촉구하는 24시간 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위안부 합의와 지소미아는 동일한 과정의 서로 다른 국면일 뿐이다. 그것은 오바마 대표상품인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적 재균형의 핵심 구성요소다. 남한의 강점인 대북 인적 정보, 즉 휴민트(HUMINT)와, 일본의 강점인 신호정보(SIGINT)를 정보자산화해서 중국 견제·대북 억지라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지소미아 다음은 무언가? 당연히 군수지원협정이다. 지금은 국방부가 눈치보고 있지만 때가 되면 언제든 들고나올 거다.

2014년 한·미·일은 ‘군사정보공유약정’을 체결했다. 미국을 매개로 3국은 군사정보를 이미 공유하고 있다. 우리도 미국과 이미 엄청난 신호정보를 공유하고 있는데 한·일 지소미아가 왜 또 필요할까?

이는 미국이 또 다른 무엇을 기획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일 군사협력을 정보·군수 그 다음 병력으로까지 확장시켜 궁극적으로 한·일 상호방위조약으로 가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한·일 지소미아를 한·일 군사동맹, 나아가 한·미·일 군사동맹 혹은 아시아판 나토의 ‘전’ 혹은 ‘전전’ 단계로 가는 신호탄으로 본다.

사드(THAAD)와 더불어 지소미아는 북·중·러 북방삼각과 끝없는 군사적 긴장과 대결, 남북의 무한대결이라는 재앙을 불러온다. 박근혜가 자초한 ‘외환(外患)의 우(愚)’로 인해 우리는 미국 군사전략의 영원한 ‘졸’로 전락, 국가전략의 중장기 전망은 고사하고 그저 내일의 일을 걱정해야 할 저주받은 민족이 될 것이다. 미군의 지휘하에 한·일 동맹군이 북한군과 전쟁을 하는 장면이 소설에 불과할까?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국내적으로는 국회에 제출된 한·일 지소미아 효력정지를 위한 특별법이나 헌재 권한쟁의 심판 등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효력이 대한민국 영역에만 한정돼 한·일 지소미아의 국제법적 효력을 무력화하진 못한다. 그래서 두 번째 경로가 있어야 한다. 한·일 지소미아 제21조에는 조약의 ‘종료’가 규정되어 있다. 협정은 1년 동안 유효한데, 만기 90일 전에 서면통보가 없으면 자동갱신된다.

그렇다. 이 말은 만기 90일 전에 협정의 종료를 팩스 등을 통해 서면통보하면 협정은 종료, 즉 폐기된다는 뜻이다. 당장은 첫 번째 경로를 추진하되, 두 번째 경로를 통한 협정의 폐기가 우리의 선택이다. 한·일 지소미아는 사실 미국이 요구한 것이다. 쉽지 않다. 성공하자면 정권교체로 탄생한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의 첫 번째 과제로 위안부 합의와 지소미아 폐기를 올려놓아야 한다. 여기에 또 하나, 트럼프는 이른바 오바마 ‘업적’의 두 축 중 하나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했다. 나머지 하나인 재균형을 대략 1년에 걸쳐 재검토할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경로, 즉 폐기 프로세스를 작동시키되, 트럼프의 아시아 전략에 개입하기 위한 협상을 해야 한다. 할 일이 많다. 단, 박근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

이해영 |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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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미스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의미가 통하지 않는 발언들도 그렇지만,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 수많은 정책들이 과연 누구에 의해 어떤 이유에서 나온 것인지, 심각한 물음표가 국민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는 그 대표 사례 중 하나다.

첫째, 취임 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유달리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취임 직후부터 한·일 과거청산에 관해 강한 발언들을 쏟아낸 박 대통령은, 2013년 10월29일에는 “문제가 하나도 해결 안된 상태에서, 일본이 거기에 대해 하나도 변경할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 그 정상회담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정상회담 개최와 연계시켰다. 여성 대통령으로서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졌기 때문일까? 설사 그렇더라도 경제와 문화 등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있는 한·일관계를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올스톱시키겠다고 나선 것은 분명 ‘비정상 외교’다.

김복동 할머니(가운데)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일본군 위안부 관련 단체 시국선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둘째, 그럼에도 지난해 12월 ‘최악의 합의’를 덜컥 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정부가 내놓은 것은 한국인 피해자들에 의해 이미 거부된 1995년 국민기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데, 최종적·불가역적 해결과 국제사회에서의 비난·비판 자제, 심지어 평화비(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려가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취임 후 2년8개월 이상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초강수를 둔 끝에 이런 허망한 합의를 해버린 것이다. 합의 이후 일본은 10억엔을 내놓는 것으로 한국에 대한 과거청산이라는 짐을 벗어던졌다. 아베 총리는 합의를 ‘외교 치적’으로 내세워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하고 자민당 총재 3기 연임을 얻어내 최장수 총리와 ‘평화헌법’ 폐기라는 ‘숙원사업’ 해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반대로 한국은 새로운 갈등을 떠안았다. 박 대통령은 피해자와 시민들이 1990년대 초부터 4반세기 이상 지난한 노력 끝에 어렵게 얻어낸 일본의 법적 책임이라는 성과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합의의 폐기를 주장하는 그들에게 맞서며 전에 없던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누가 봐도 ‘외교 참사’다.

셋째, 다시 그럼에도 그 잘못된 합의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합의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명명백백하게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이행 강행’에 목을 매고 있다. 정부기관도 아니고, 민간단체도 아닌 정체불명의 ‘화해치유재단’ 설립을 강행했다. 일본 정부가 ‘절대로 배상금이 아니고 치유금이다’라고 거듭 못 박는데도 10억엔을 서둘러 받았다. ‘성노예’라는 극한적인 아픔을 겪은 피해자들을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누는 짓까지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관련 사진도 지웠다. 여성가족부가 추진하던 백서 사업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을 중단시키고, 이미 편성되어 있던 예산조차 집행하지 않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정부에 대해 역사교과서 교사용 지도서에 합의가 게시된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주소를 실어달라고 부탁했다고도 한다. 합의에 포함돼 있지도 않은 이 참담한 일들을, 가해국 정부가 그렇게 하더라도 비난받아 마땅할 터인데, 피해국 정부가 나서서 하고 있으니 참으로 ‘괴기스러운 집요함’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외교 실책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는 마땅히 폐기해야 하고, ‘화해치유재단’은 즉각 해산해야 한다. 국회가 국정조사를 실시해 그 잘못된 합의가 나오게 된 이유, 합의의 범위를 넘어서까지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역사 지우기에 매달리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 이 전대미문의 혼란 속에서 ‘박 대통령은 외치만 맡는 수습책’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하나만 보더라도 외치도 맡아서는 안되는 이유는 이미 넘치고 넘친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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