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13일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됐다. 대선에서 낙선한 후 당 운영에서 뒤로 물러나 있다 보수통합 논의로 당이 흔들리자 전면에 나선 것이다. 그가 마주한 현실은 험난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당장 보수통합론으로 반쪽이 된 당을 수습해야 한다. 통합파 의원 9명이 탈당해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는 과정에서 남은 의원들끼리도 갈등의 골이 생겼다. ‘시한부 동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여서 유 대표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면 당의 존립 자체가 어렵다. 어제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에서 제외된 데서 보듯 교섭단체 자격 상실에 따라 축소된 입지 회복도 그의 몫이다.

바른정당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유승민 의원이 1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진행된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지명대회에서 당 깃발을 흔들고 있다. 권호욱 기자

여기에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가 유승민 자신의 리더십이다. 유 대표는 의원들이 탈당하는 과정에서 대안은 내놓지 못한 채 ‘원칙 있는 통합’만 강조해 지나치게 경직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통합파의 집단탈당을 막으려고 전당대회를 연기하자는 중재안을 내놨을 때도 단호히 거부했다. 유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마저 그의 태도에 실망해 등을 돌렸다고 한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함께할 세력을 모으지 못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결정적인 흠결이다. 이번에 당 소속 의원들이 ‘한 달 안에 중도보수 통합 논의를 진전시킨다’는 데 합의함으로써 당의 공중분해는 가까스로 막았다. 앞으로 유 대표 자신이 한국당, 국민의당과 연대·통합 논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당과 다를 바 없는 유 대표의 고루한 안보관 역시 문제다. 합리적 보수를 주장하려면 달라진 현실을 반영한 안보정책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유 대표는 “낡고 부패한 기득권 보수, 철학도 정책도 없는 무능한 보수의 과거를 반성하고 진정한 보수의 길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대선공약을 재점검하고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겠다고도 했다. 그의 말대로 바른정당을 정책과 지향점이 분명한 정책정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유 대표도 유연한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중도정당에 대한 시민의 수요는 분명히 있다. 다당 체제에서 시시비비를 명쾌하게 가리고 협치를 주도한다면 바른정당의 보수개혁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반면 유 대표의 독선이니 사당화니 하는 말이 나오면 당의 미래는 물을 것도 없다. 합리적 보수당의 성공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유 대표의 진화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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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 정당들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를 2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정당 후보는 10%, 3% 안팎의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두 당이 하는 양을 보면 마치 대선을 포기한 듯하다. 한국당 소속 의원들의 입에서 맥이 빠진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바른정당에서는 유승민 후보를 밀기는커녕 홍 후보와의 단일화를 언급하고 있다. 어제는 의총을 열어 유 후보를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두 당이 지리멸렬한 것은 보수 기득권에 빠져 새로운 보수의 통치철학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 정세에 편승한 대결적 남북관계와 그에 기댄 낡은 안보관을 금과옥조처럼 붙들고 있다. 시장만능주의와 대기업 중심의 경제관에 매달려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해법은 외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에도 진솔한 반성 없이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오만까지 보였다. 보수 우위의 정치·여론 지형 위에서 안이하게 권력을 즐기기만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후보가 2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 정당은 과거 한나라당 때도 이른바 ‘차떼기’ 대선자금 사건으로 존폐 위기에 몰린 바 있다. 당시 한나라당은 박근혜라는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고 천막당사에서 다시 출발해 결국 재집권에 성공했다. 보수 정당이 지금 맞닥뜨린 위기는 그때보다 몇 갑절 더 엄중하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활을 걸지 않고는 회생하기 어렵다. 회생을 위해서는 이번 대선을 잘 치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에는 정권을 잡지 못하더라도 야당으로서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하겠다는 각오로 새 출발하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그러자면 현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선거에 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보수는 진보와 더불어 사회를 지탱하는 양 날개다. 보수의 몰락은 모두의 불행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제부터 탈출구를 찾아내야 한다. 술수나 꼼수로 빨리 일어서려는 생각보다 건강한 보수라는 방향을 잡는 데 더 천착해야 한다. 낡은 경제관과 안보관을 답습해서는 새 길을 찾기 어렵다. 설득력 있는 보수의 가치와 비전을 세우는 게 먼저다. 깊은 성찰과 혁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자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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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를 두고 당 안팎에서 사퇴를 거론하고 있다. 그제는 이종구 당 정책위의장이 기자들과 만나 “오는 29일 이전에 의원총회를 열어 대선 전략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며 사퇴론에 불을 댕겼다. 대선 투표용지 인쇄가 시작되는 29일까지 당이 원하는 지지율이 나오지 않으면 사퇴나 후보단일화 등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내 몇몇 의원들도 사퇴를 거론했다고 한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도 심심하면 유 후보의 사퇴론을 제기하며 자기 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압박하고 있다.

유 후보와 당이 처한 상황이 엄중한 것은 사실이다. 당과 후보 모두 지지율이 2~5%에 묶여 좀처럼 뜨지 않고 있다.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은 이해한다. 득표율이 10% 미만에 그치면 100억원이 넘는 선거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후보의 사퇴는 명분이 없다. 여론조사 지지율 1·2위 후보를 남기고 모두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처사이다. 다른 당과의 후보단일화는 사실상 하나의 당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창당대회를 연 지 석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하나의 당으로 뭉치겠다는 발상은 시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더구나 자유한국당은 ‘친박근혜 새누리당’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 후보가 17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앞에서 열린 '바른정당 제19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출정식'에서 손가락 4개를 내보이며 자신의 후보 번호를 홍보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 후보는 지난주 원내 5개 정당 후보들 간 TV토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더불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 후보의 지지율 정체가 유 후보 개인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그보다는 바른정당이 내세운 보수의 가치에 부합하면서 바르게 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른정당은 건강한 보수, 따뜻한 보수의 기치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된다. 유권자들은 지금 바른정당이 진정한 보수의 대표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없는지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당이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선출한 후보를 스스로 흔든다면 그것처럼 낡은 행태는 없다. 바른정당이 선거자금을 아끼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리어카를 끌며 선거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의 재집권도 천막당사에서 시작됐다. 지금 바른정당이 할 수 있는 것은 유 후보를 중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바른정당과 유 후보가 진보적 시민들까지 맘껏 지지할 수 있는 합리적 보수정당을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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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유승민 후보가 승리했다. 유 후보는 어제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당 19대 대통령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남경필 경기지사를 꺾고 원내교섭단체 정당의 후보로는 가장 먼저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하지만 유 후보는 최근 지지율이 3%를 넘지 못하고, 당 지지율도 자유한국당은 물론 비교섭단체인 정의당에도 밀리고 있다. 보수당을 분열시킨 배신자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개혁보수의 길을 연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공당의 대선후보라는 영예를 안은 유 후보는 다른 당·후보와의 연대를 모색하면서 당의 활로를 열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떠안았다.

바른정당은 창당 후 두 달 동안 형식과 내용에서 의미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대선 경선에서 대본 없는 토론, 정책 중심의 토론 등 정치권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정책 선거를 지향해 지역과 연령, 계층, 직업을 고려한 국민정책평가단 4000여명을 모집, 후보 선출에 반영한 것은 획기적이었다. 두 후보도 경선 내내 전문적 식견과 젊은 스타일로 참신하게 경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진영을 뛰어넘은 연정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확대한 것도 이들의 공로다.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제19대 대통령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유승민 후보가 남경필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 후보에 선출되며 환호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정당이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시민들이 기대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창당 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영입과 개헌 시도 등 상황에 따라 왔다 갔다 한 것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투표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방안을 찬성하기로 했다가 반대로 돌아서기도 했다. 방송관련법 개정 등 개혁 입법이 표류하게 된 데 바른정당의 소극적인 역할도 작용했다. 안보정당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색깔론에 의지하는 구태도 보였다. 새누리당 시절 누렸던 기득권에 기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유 의원은 후보 수락연설에서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를 선언했다. 바른정당이 진정한 보수세력이 되려면 과거 보수정당의 적폐 및 기득권과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야 한다. 부유하고 학벌 좋은 정치인들의 정당이라는 이미지와 어정쩡한 자세를 버리고 합리성으로 똘똘 뭉친 새로운 보수의 길을 가야 한다. 세를 키우겠다는 생각만으로 친박근혜 세력과 연대하는 것은 창당의 취지를 저버리는 일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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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유력 정치인들이 속속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앞선 주자는 대세론을 주장하고, 후발 주자들은 ‘제3지대’ 연합이니 야권 공동경선 등을 제안하고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 등 젊은 후보들은 세대교체와 정책 중심의 경쟁을 외치지만 정국을 주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슈퍼우먼방지법’ 공약과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육아휴직 3년 보장법’, 이재명 성남시장의 기본소득 정책 등도 이목은 끌었지만 의제로 떠오르진 못했다. 오히려 유력한 대선주자들일수록 특정 지역에 한정된 약속들만 내놓고 있다. 현안에 대한 해법이나 국가 미래를 좌우할 정책 제안보다는 유리한 경쟁 구도 만들기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22일 서울 혜화동의 한 소극장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참석한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대선은 정당과 후보들이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을 공약으로 제시해 대결하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 공약의 기조는 당면한 안보·경제 위기를 극복하면서 재벌과 검찰, 언론 개혁 등 과제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급선무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와 교육 정상화, 일자리 창출, 복지 강화 등에 대한 종합적인 해법도 필요하다.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난제들이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돌발 상황에서 치러진다. 촛불민심으로 표출된 시민들의 요구도 대통령이나 집권 정당을 바꾸자는 수준을 넘어섰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국가와 시장의 실패를 넘어설 대안을 구현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좋은 정권 교체’를 위한 집권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가 후보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촉박한 대선 일정으로 정책 검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 특정 후보가 정책 토론을 회피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대로라면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정책이 뭔지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한 채 기표소에 들어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당선된 대통령은 인수위원회에서 정책을 조율할 틈도 없이 곧바로 집무를 시작해야 한다.

공약과 도덕성, 자질을 검증하지 못하면 또다시 실패한 정권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졸속으로 만들어 낸 공약으로 선거를 치른다면 그 길을 피하기 어렵다. 공약 없이 이미지로 선택받겠다는 것처럼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은 없다. 후보들 간 활발한 정책 경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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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유승민 의원 등 새누리당 비박근혜계 의원 29명이 어제 집단 탈당해 가칭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신당은 국회 원내교섭단체 등록을 마친 뒤 첫 의원총회를 열어 주호영, 이종구 의원을 각각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으로 뽑았다. 앞서 탈당해 있던 김용태 의원까지 합류해 의원 30명으로 출발한 신당은 내년 1월 말까지 조직을 정비한 뒤 공식 출범할 계획이다. 보수 정치권이 보수신당과 새누리당으로 양분되면서 정치권이 4당 체제로 재편됐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민자당·국민회의·자민련·민주당 체제가 만들어진 이래 20년 만에 다시 4당 체제가 형성된 것이다.

새누리당을 탈당한 비박계 의원 29명이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칭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선언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강윤중 기자

시민들이 신4당 체제와 보수신당에 거는 기대는 분명하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당 체제 또는 국민의당을 포함한 애매한 3당 구도를 허물어 대립 일변도의 정치 환경을 확 바꿔달라는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와중에도 시민의 뜻을 거스르며 박근혜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지원해온 친박계 새누리당이 원내 1당 지위를 내주었다. 새누리당 의석이 개헌 저지선(101석) 아래인 99석으로 줄고, 새누리당을 제외한 3당 의석이 국회선진화법 의결정족수 5분의 3을 넘김으로써 새누리당이 국정 주도권을 상실했다. 이념적으로 중도를 지향하는 정당이 두 당으로 늘고, 지역 정당의 굴레를 벗어난 새로운 정당이 탄생했다는 의미 또한 작지 않다. 다양한 정책으로 유권자들 선택의 폭을 넓히고, 다른 정당과의 연대를 통해 대화·타협의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기대 또한 높였다.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통해 제기한 개혁 과제들을 입법화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4당 체제와 보수신당에 대한 회의 역시 상존한다. 이는 신당이 새누리당 내 친박과 비박계 간 내홍의 결과라는 한계에서부터 출발한다. 새누리당과 이념·노선에서 차별성을 보여주어야 하는 과제를 보수신당은 안고 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대선 정국에서 원칙 없이 연대한다면 신당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이미 국민의당과 보수신당이 손을 잡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이런 상황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모시기 경쟁이나 야합이 벌어진다면 4당 체제는 무의미해진다. 진정한 보수의 길을 걸으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실천하는 것만이 신당과 4당 체제가 성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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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무성·유승민 등 비박근혜계 의원 30여명이 어제 회동한 뒤 다음주 탈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모임의 대변인인 황영철 의원은 “가짜 보수와 결별하고 진정한 보수 정치의 중심을 세우고자 새로운 길로 가기로 뜻을 모았다”면서 “패권주의를 청산하는 새로운 정치의 중심을 만들어 안정적·개혁적으로 운영할 진짜 보수세력의 대선 승리를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 등도 탈당 의사를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보수정당의 분당이 현실화한 것이다. 그만큼 보수 진영의 위기가 심각하고 새로운 보수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징표이다.

비박계의 탈당은 늦었지만 당연한 귀결이다. 새누리당 친박근혜 세력은 지난 4월 총선에 이어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의결로 여론의 매서운 심판을 받았음에도 반성은커녕 민심을 거스르는 길만 걸어왔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뉘우치는 듯하다 틈만 보이면 이내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였다. 막판에는 비주류에 비상대책위원장을 양보할 것처럼 하다가 뒤집는 치졸함까지 드러냈다. 총선이 3년 넘게 남았고, 촛불은 곧 사그라들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 등에 기댄 탓이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재창당 수준의 혁신과 변화를 통해 당을 재건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가 탈당 의원들을 비판하면서 ‘유일 보수정당의 법통’ 운운한 것은 가히 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비박계의 탈당은 그나마 시민의 질타를 두려워하는 보수세력과 기득권에 젖은 비양심적 가짜 보수의 결별이다. 보수 내부의 싸움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비박계 의원들이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 탈당 기자회견 후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이날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31명이 '집단 탈당'을 결의하고. 탈당 시점은 오는 27일이다. 권호욱 선임기자

지난 총선과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반칙 없는 세상과 더불어 책임지는 정치를 요구했다. 극우적 세계관과 영남 지역주의를 벗어난 건강한 보수, 명예와 도덕이라는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는 진정한 보수 정치세력을 시민들은 갈망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탈당파는 이 같은 새로운 보수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를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부산·경남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 의원들이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 수구적 이념과 지역의 한계를 넘어서는 진짜 보수당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앞서 탈당한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의원까지 가세하면 신당 추진은 더 탄력이 붙을 것이다. 탈당파가 중도보수 성향의 신당을 창당하면 정치권은 1990년 3당 합당 후 26년 만에 4당 체제로 바뀌게 된다. 다양한 정책의 대결과 함께 곧 있을 대선 정국에서 정책에 따른 연대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보수정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과제를 풀어야 한다. 과거에도 보수당은 위기 때마다 새로운 보수, 진정한 보수를 표방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전에는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보수의 혁신을 외쳤지만 결국 집권을 위한 한 편의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 보수의 정책과 가치에 충실한 정당이 아니라 파벌과 이권, 인물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번 탈당도 대선용, 위기모면용이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사에서 보수당을 박차고 나간 정치세력이 성공한 예는 없다. ‘보수정당의 분열은 필패’라는 말이 있을 만큼 탈당과 신당 창당은 고난의 길이다. 그러나 낡은 체제의 극복과 진정한 보수정당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흔들림 없이 보수의 가치를 추구하며 개혁을 한다면 한국 정치사를 새로 쓰는 진정한 보수세력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막 닻을 올린 새누리당 탈당파의 실험을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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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친박근혜(친박)계’ 행보가 목불인견이다. 국회 국정조사의 위증을 교사하고, 당이야 깨지든 말든 ‘비박계’ 찍어내기에만 힘을 쏟고 있다. 선거가 코앞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을 자행하는 이들의 행태는 불한당과 다를 바 없다. 국정조사특위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인 이만희·이완영·최교일 의원이 위증을 교사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이들은 지난 9일 이완영 의원실에서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따지기는커녕 방해하려 한 것이다. 이들은 주요 증인인 고영태씨 발언의 신빙성을 깎아내리고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절도범으로 몰려고 했다. 일반 재판에서도 중대 범죄인 위증을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이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도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은 어제 의원총회에서 해명 기회만 제공했다.

최순실 태블랫PC 관련 위증 논란 진상규명을 위한 국조특위 긴급 전체회의가 열린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친박계는 또 비박계가 유승민 의원을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천하자 사실상 거부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유승민 의원이 비대위원장이 되면)당의 내분과 내홍이 심해져 심지어 풍비박산과 분당 선택의 기로에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의원총회에서 친박계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지 않고 당을 수습하는 대통합 비대위원장’을 첫번째 조건으로 내세워 유승민 의원을 거부할 명분을 마련했다. 더 가관인 것은 친박계의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공식 해체다. 불과 일주일 전 친박계는 “당을 구하겠다. 새로운 보수를 만들겠다”면서 모임을 꾸몄다. 그간 혁신과 통합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자신들이 알 것이다. 변한 게 있다면 친박계 원내대표가 뽑혔다는 점이다. 결국 모임은 원내대표 자리를 비박계에 넘겨주지 않기 위한 표 단속용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여당 주도 세력의 처신이 이렇게 경망스럽다.

총선이 내년 4월 치러진다면 친박계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아마 명망있는 비대위원장 모시기, 당 쇄신, 보수 통합, 대통령과 선 긋기, 비리·물의 인사 축출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친박계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기득권 지키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도로 친박당’ 비대위원장을 맡겠다고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친박계에 남은 것은 단 하나, 유권자 심판이다. 3년 뒤 이들이 당을 쇄신하고 보수를 통합한다고 북새통을 떨어도 유권자들은 4년마다 되풀이되는 ‘신장개업 쇼’로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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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도자의 숙명 가운데 하나는 매 순간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그 결과가 정치적 자산이 될지, 부채로 남을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당장은 자산인 것처럼 보이는 선택이 부채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부담감을 용기와 의지로 돌파한 사람들만이 성공한 정치인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김무성 당 대표에게 주목하는 것도 그가 과연 집권당의 지도자다운 인물인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행보는 시종여일하다. 친박근혜계 최고위원들의 사퇴 요구에 “고민해보겠다”고 대답한 그는 “밤사이 심경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김무성 대표는 어제 “유 원내대표 스스로 결단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유 원내대표를 모양새 좋게 퇴진시키자는 것으로, 친박의 입장도 고려하면서 유 원내대표의 처지도 감안한 절충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29일 경기 평택시 평택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_경향DB



김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가 신임을 받으면 대통령은 뭐가 되며, 대통령 뜻대로 되면 유 원내대표는 어떻게 되겠느냐”며 “결론이 어떻게 나든 파국인데 그러면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의 위신 손상과 당 내분 모두를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씁쓸하다.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질타했을 때 그는 유 원내대표를 엄호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뜻을 읽은 뒤에는 “(유임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방향을 바꾸는 듯했다. 그러다 여론이 친박에 비판적으로 돌아가자 “(의원들의 뜻을 묻는) 의총에서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대통령 눈치 보기는 이번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가 이튿날 사과한 적이 있다. 여의도연구소장에 박세일 전 의원을 임명하려다 친박의 반대에 부딪히자 접기도 했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뜻을 거역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비이성적 태도에 균형을 잡아줄 이는 현재 집권당 대표뿐이다. 김 대표는 당초 유 원내대표의 사퇴에 부정적이었다. 당 대표로서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이고, 당내 여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대통령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든지, 당내 논의의 흐름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지금이라도 집권당의 대표이자 국정의 중심축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당의 중심을 잡고 유 원내대표 축출 운동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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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내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유승민 원내대표를 자리에서 내쫓기 위해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친박 핵심 의원들은 주말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모여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서 의원에게 일임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오늘 최고위원회의가 친박계 최고위원들의 집단 사퇴를 통한 유 원내대표 압박 무대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친박 의원들의 유 원내대표 축출 운동은 용납되기 어려운 부적절한 행동이자 명분 없는 행위다. 의원 다수에 의해 뽑힌 원내대표를 대통령이 비판했다고 하루아침에 쫓아내는 것은 민주적 절차와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자신들이 뽑아놓은 원내대표를 쫓아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잘못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유 원내대표의 그간 행동이 자리에서 축출돼야 할 상황인지 친박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유 원내대표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그동안 침묵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또 이명박 대통령 때 당의 뜻을 존중해달라고, 민의를 잘 살펴달라고 외쳤던 것은 무엇인가. 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화를 내자마자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집단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친박 의원들이 ‘영혼 없는 하수인’을 자임하는 꼴이다. 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29일 경기 평택시 평택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 대통령은 유 원내대표 등을 겨냥하며 ‘배신의 정치를 선거에서 심판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다음 선거에서 심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쪽은 박 대통령과 그를 옹위하는 친박계다. 이번 기회에 유 원내대표를 몰아내고 당을 장악하여 다음 총선에서 친박계 인사들을 공천하려는 의도를 간파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유권자는 없다. 유 원내대표가 두번 사과한 것으로 박 대통령의 뜻은 충분히 전달됐다. 대구·경북지역에서조차 박 대통령이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이 당 지도부 탓만 하면서 자신의 그릇된 국정운영에 복종하라고 강요한다면 원내 사령탑이 누가 되든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야당과 합의해온 여당 원내대표를 쫓아내는 것은 원내대표가 허수아비라는 인식을 강화할 뿐인데 그렇다면 여야 관계의 미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김무성 당 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 친박을 제외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대부분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당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해 집권세력 앞에 닥친 이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이성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자제력을 잃은 대통령이 축출하라고 찍은 당 지도자를 몰아내는 일이 성공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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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친 걸까 아니면 다른 이들이 다 미친 것인가? 어제 대통령의 일상으로 복귀 명령에 따라 오랜만에 애국하는 심정으로 극장에 들렀다. 메르스 여파로 극장은 한산했다. 텅 빈 객석에서 <매드 맥스>를 보고 나왔지만 계속해서 첫 장면에서의 주인공 독백이 자꾸만 머리에 맴돈다. 최근 마치 ‘닥터 둠’처럼 가는 곳마다 다가오는 대붕괴를 언급하면서 급진적 전환을 외치고 다니는 나도 주인공과 같은 독백을 하곤 한다. 영화에서의 황폐한 디스토피아 풍경처럼 대한민국의 대붕괴가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단단해보였던 기존 압축성장 시대의 경제, 정치, 사회의 모든 틀이, 심지어 지구 자체가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메르스, 저성장, 기후변화 등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기존 문명의 작동불가능을 시사한다. 영화는 녹색 유토피아를 찾아 나선 여정 끝에 놀랍게도 결국 사막만 남아있음에 절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나는 여기서 영화가 끝나는 줄 알고 우울증이 도질 뻔했다. 일어서려고 하는데 놀라운 다음 장면이 이어진다.

아직도 꼰대가 되지 않은 조지 밀러 감독은 도발적으로 다시 그 지긋지긋한 장소로 돌아가는 주인공들의 경이로운 결단을 보여준다. 미치지 않고는 그 지옥과 같은 장소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감독은 우리 모두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우리의 새로운 유토피아는 없음을 안다. 지구 자체가 지금 6번째 대멸종을 심각하게 이야기하는데 이주 준비 클럽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라리 그 지긋지긋한 장소로 돌아가 정면 돌파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정상적인 길은 아닐까? 아직은 너무나 불완전한 돌파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작은 씨앗은 있다. 나는 이를 박원순, 유승민, 손석희, 조성주에게서 본다. 휴, 벌써 지인들이 야단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환청처럼 들린다.

박원순현상. 나는 그의 조치에 다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박원순현상은 기존 압축성장 시스템이 이제 수명을 다해 헐떡이는 상태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시행착오 속에서도 자라나고 있음의 징후이다. 21세기는 연방제적 조직, 개방, 공유, 생명, 안전, 기후변화, 예방, 인간적 도시 등 압축성장 시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키워드의 시대이다. 최근 메르스 사태는 비극이지만 21세기의 모든 비밀을 다 드러내 보이는 시대정신의 출현이다. 만약 지금 혁신 지자체장들이 함께 만드는 박원순현상이 그 거칠고 부족함을 반성하면서 21세기 리더십으로 성숙해간다면 10년 후에는 그래도 다시 희망이 있다.

유승민의 고투. 나는 과거 박근혜 후보가 ‘규율있는 자본주의론’으로 대박을 터뜨렸을 때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당시 이 흐름을 주도했던 유승민 현 원내대표는 최근 천민 보수주의와 제왕적 대통령제에 맞서 연이어 정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극단적이고 자의적 정치, 경제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야말로 대한민국을 건국한 민주공화국 정신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의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그가 여의도의 진흙탕 현실 속에서 좌절하거나 혹은 기대의 배반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제 정신을 가진 보수주의자들이 있어 함께 유승민현상이 더 담대하게 확대되어 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좀 덜 불안할 것이다.

새누리당 유승민(가운데) 원내대표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을 경청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 : 경향DB)


손석희현상. 나는 가끔 이 채널의 <정치부 회의 시간>과 <손석희 뉴스>를 보곤 한다. <비정상회담>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예능 대통령 유재석마저 곧 합류한다고한다. 미디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이다. 극단적으로 힘의 균형이 일그러진 미디어 생태계는 대한민국의 붕괴를 재촉하는 인화물질일 수밖에 없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이 채널이 이후 미국의 MSNBC처럼 성장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조성주는 누구지? 최근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청년유니온 출신의 신세대이다. 난 그의 출마 선언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근래 5년간 이토록 내공과 영혼이 담긴 연설문을 처음 보았다. 그의 등장은 마치 <매드 맥스>에서 기존 체제에 반기를 든 청년처럼 가뭄에 단비와 같다. 그는 청년들을 조연으로만 취급하는 꼰대 체제에 대해 이제 잠자는 거인들인 청년들이 깨어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난 그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 과연 그가 어떻게 성장해갈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주류 언론의 조명 바깥에서는 수많은 조성주가 자라고 있다. 만약 이들이 향후 10년간 무럭무럭 자라난다면 대한민국의 디스토피아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이제는 정직한 절망과 담대한 정면돌파가 필요한 시기이다. 매드 맥스처럼 말이다.


안병진 |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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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자 생각을 공유하고 행동을 이끄는 좌표와 같다. 강제보다 설득에 의존하는 민주정치에서 말의 힘은 특히나 중요하다. 정치에서 적절한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따라서 좋은 말, 공정한 말을 쓰는 것이 정치인에게는 거의 의무에 가까운 행위 규범이 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규범성에 소홀한 정치인의 말은 시민의 생각을 가두는 감옥의 역할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정치 양극화’라고 부르는 현상은 부적절한 정치 언어에서 비롯된 바 크다. 여야 사이에서 혹은 같은 당의 계파 사이에서 그저 편을 나눠 ‘하게 되어 있는 말’을 반복하는 것, 마치 자신들만 옳음을 독점하고 있는 듯 내세우는 것, 상대를 마주 보고 차이를 좁히기 위해 대화하고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등을 돌려 자신의 지지자를 향해 상대의 잘못을 일러바치고 모욕하는 것, 이런 식으로는 일이 잘될 리 없다. 그렇게 해서는 정치가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할 수가 없다.

민주적 정당정치란 누가 더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두고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는 것을 말한다. 진보든 보수든 누가 더 공익적으로 유능한가를 두고 다투어야지, 진보는 반(反)보수, 보수는 반(反)진보를 표방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정치는 ‘유사 전쟁’으로 퇴락하게 된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거부감을 갖게 하는 언어를 앞세워 정치를 하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진보적이고 얼마나 보수적이냐의 문제 이전에, ‘정치적 범죄’에 가까운 일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 사이의 불완전한 상호이해는 인간의 정치가 감수해야 하는 고질적인 요소다. 그러나 그러한 불일치와 불완전함은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조건이지 좋은 사회로의 길을 방해하는, 단지 극복돼야 할 장애물이 아니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논의 기반을 늘려갈 수 있다. 아무리 논의해도 오해로 볼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때는 적극적으로 타협해야 한다. 타협과 조정, 합의는 차이와 이견을 전제한 개념으로 민주주의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의 하나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8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최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좋은 연설을 했다. 첫째, 그는 과거처럼 진보에 반대하는 것이 보수의 노선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진보를 좌파나 종북으로 몰아붙이지도 않았다. 진보 역시 공익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 역시 공동체를 지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정치 노선이 되어야 함을 천명했다. 신선했다. 둘째로 그는 진영을 넘어 합의의 정치를 개척하자고 말했다. 분열과 상처 대신 통합의 정치를 하자고 역설했다. 보수는 성장, 진보는 복지로 나뉘어 대립하는 것이 아닌 진보와 보수 모두 ‘성장과 함께하는 복지를 하겠다’는 합의가 이미 존재함을 확인해주었다. 양극화와 불평등, 재벌의 문제에 대해서도 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보수와 진보 누가 더 공동체를 위해 더 잘 기여할 수 있는지를 두고 경쟁하자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이 점 역시 좋았다. 셋째로 그는 공무원연금 개혁, 세금과 복지, 보육 개혁, 성장의 방법 등에서 보수와 진보가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정책적 합의의 공간이 넓게 열려 있음을 이야기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에게 공정하기만 하면 또 경제주체들 사이에 공정한 고통 분담의 원칙만 확고하다면, 합의의 공간을 얼마든지 더 넓혀갈 수 있음도 말했다. ‘공정성의 원리’를 제시한 이 부분도 좋았다.

유 원내대표의 연설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진보적인 이야기를 해서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가 다르지 않다고 해서도 아니다. 필자가 볼 때 그는 보수 정치인이 분명하다. 다만 보수적이되 민주적이고 또 ‘정치적 이성’을 갖춘 말을 했기에 좋았다. 실제 정책적 논의에 들어가게 되면 진보와 보수는 필연적으로 이견을 표출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원내대표처럼 정치를 이해하게 되면 말로 끝이 아닌 ‘실체적인 변화’를 진보와 보수가 함께 이끌어갈 수 있는 민주적 가능성은 커진다. 이 점이 중요하다. 정치란 차이를 없애고 같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가피한 차이가 있고 같아질 수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게 정치고 그렇기에 정치다. 아마 좋은 말을 했다고 좋은 정치가 곧바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말은 그에 합당한 행동을 이끌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실현된다. 좋은 말에 부응하는 보수의 좋은 실천을 기대한다.


박상훈 | 정치발전소 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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