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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25 의리 의리 의리

배우 김보성씨가 철 지난 마초풍 분장에 주먹을 치켜올리며 “남자는 의리!”를 외치기 시작한 건 꽤 된 일이다.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 웃긴 했으되 그 웃음에 존중은 적었던 것 같다. 차라리 조소의 맥락마저 보였다고 할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모습이 광고와 선거에 무수히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분명한 호감이 들어 있었다. 사회 정의도, 인간에 대한 신뢰도 깡그리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 투박한 의리 주장에 조소 대신 호감을 보이게 된 것이다.

물론 김보성의 의리를 포함, 의리라는 말은 얼마간 걸러질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의리라는 말은 대개 남성들의 인간관계에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현실적 이득을 도모하는 일을 뜻해왔다. 그러나 그건 의리가 아니라 ‘기리’다. 기리는 의리와 한자가 같은 일본말로 ‘자신이 받은 만큼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루스 베네딕트의 일본 문화 연구서 <국화와 칼>은 기리, 즉 일본식 의리를 아예 한 장으로 다루기도 한다.

의리(義理)란 본디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뜻한다. 의리는 남성적인 말도 아니고 사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사적 관계에 불편이나 손실을 초래하더라도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 것, 눈앞의 이해득실을 넘어 대의를 따르는 것이 의리다. 의리라는 말에 정서적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많지만(나 역시 그렇다) 알고 보면 인간의 삶에서 의리만큼 귀한 것도 없다. 공자는 말한다.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의리는 역사와 현실의 큰 흐름과 맥락을 읽게 해주며, 내가 누구인지와 뭘 하고 있는지를 또렷하게 밝혀준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행태는 정치에서 의리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세월호특별법의 두 번째 여야 합의안을 유족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광화문팀, 안산팀 등 네 개의 팀까지 만들어 작업했다. 매우 주도면밀했으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었다.

물론 세월호 유가족도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인이니 정치인들의 ‘현실적 제안’에 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의사자 지정, 대학 특례입학 따위 회유책을 마다하고 ‘기소권과 수사권이 있는 특별법’으로 진실 규명에 집중하기로 했다. 의리를 선택한 것이다. 많은 시민이 그들을 단지 ‘불쌍한 사람들’로 여기지 않고 각별한 존중심을 보이는 이유도 그것이다.

의리를 선택한 사람의 마음을 한낱 정치적 기술로 흔들 순 없는 법이다. 그런데 왜 새정치연합은 이 당연한 이치를 모르고 되도 않는 뻘짓을 해댄 걸까. 그들의 정신세계가 이미 쓰레기통이기 때문이다. 의리가 실종된 정치, 정치적 기술과 타협과 조율은 단지 쓰레기일 뿐이다. 의리를 잃은 정치인은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뭘 하는지조차 모른다.

박영선이 비대위원장 취임 일성으로“투쟁정당을 벗어나겠다” 말하고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 임종석과 이인영이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중도 노선으로 가야 한다” 말한 건 그 일단이다. 그들은 ‘새누리와 다른 게 뭐냐’ 항의하는 사람들 앞에서 매우 진지한 얼굴로 ‘새누리와 다른 게 문제’라고 대꾸한다.


▲ “‘인간이 마땅히 할 도리’가 의리
교황은 예수님에 대한 의리 좇고
김영오씨 단식은 딸에 대한 의리
정치인들은 민심에 의리 지켜야”


오늘 전 지구적으로 정치인의 의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교황이다. 교황이 정치인인가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교황은 정치인 중의 정치인이다. 프란치스코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를테면 왜 교황은 강우일이 아니라 염수정을 추기경으로 임명했으며 기어코 꽃동네를 방문했을까.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교황이 속아서, 몰라서 그렇게 한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만일 그렇게 어리숙한 사람이었다면 애당초 교황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길 위의 신부’ 문정현이 교황이 될 수 없듯 프란치스코는 길 위의 신부가 될 수 없다. 프란치스코는 고도로 세련된 정치인이되, 예수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정치인이다. 그래서 그는 특별한 교황이고 마몬의 세상이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교황이다.

한국 정치인들이 정치에서 의리가 무엇인가를 좀 더 쉽고 생생하게 배우고 싶다면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보면 된다. 그는 메말라가는 제 신체로 한국 정치에서 의리가 얼마나 바닥이 났는지, 민심이 얼마나 의리를 갈구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알다시피 그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금속노조 깃발마저 마다하고 어떤 정치적 기술이나 타협 조율도 거부한 채 오로지 억울하게 죽어간 딸에 대한 의리만 좇았다. 가장 비정치적인 선택으로 일관한 그는 역설적이게도 정치의 중심이 되어갔다.

오늘 대한민국이라는 지상의 지옥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치인에게 바라는 건 단지 의리다. 진정성이 담겨 있는가, 쇼인가를 꼬치꼬치 따지려들 여력도 없다. 그저 눈앞의 이해득실보다 대의를 좇는 정치인을 보며 구멍 뚫린 마음부터 달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멍청하고 멍청한 정치인들아, 민심을 얻고 싶다면 무슨 연합이니 타협이니 조율이니 쓰레기 정치 기술일랑 당장 걷어치우고 의리에 우직해라. 우직한 시늉이라도 해라. 극우 정치인이라면 국가에 대한 의리에, 자유주의 정치인이라면 시민에 대한 의리에, 진보 정치인이라면 민중에 대한 의리에.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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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