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어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2013년 4·24 국회의원 재선을 앞두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3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성완종 리스트’ 8인 중 홍준표 경남지사에 이어 두 번째, 친박 실세로는 첫 검찰 소환이다. 이 전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국무총리직에서 사퇴한 지 17일 만에 검찰에 불려 나갔다. 형식적으로는 전직 총리 신분이지만 사실상 ‘현직 소환’이나 다름없다. 바로 직전까지 내각을 통할한 국무총리가 피의자로 추락해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 자체가 국민에게 참담함을 안긴다.

이 전 총리는 검찰에 출두하면서 “세상에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여전히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 총리의 혐의는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검찰은 ‘3000만원 전달’ 당시 이 전 총리의 행적과 동선을 대부분 확인했다고 한다. 특히 성 전 회장 측근들로부터 당일 부여 선거사무소에서 이 전 총리와 성 전 회장이 독대했고, 현금 3000만원이 든 쇼핑백이 독대 장소에서 건네졌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 전 총리의 측근이 ‘독대 사실’을 폭로한 전직 운전기사에게 입단속을 하는 등 핵심 증인들을 회유하려 했다는 의혹도 불거진 상태다. 회유 시도들이 사실이라면 이 전 총리의 금품수수를 입증하는 정황 증거가 될 수 있다. 검찰은 ‘면죄부’ 수사를 했다는 의심을 사지 않도록 ‘이완구 의혹’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의혹을 받고있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홍 지사에 이어 이 전 총리 소환 조사가 이뤄지면서 일단 검찰 수사가 본맥으로 한 걸음 진입한 양상이다.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은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권 실세들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불법 대선자금 의혹이다. 혹여 검찰 수사가 구체적 증거 부족을 핑계로 서면조사 등으로 관련자들의 해명 듣기에 머문다면 국민적 의혹만 키우게 될 것이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의 ‘금고지기’로부터 ‘대선 직전 2억원을 마련해 새누리당 선대위 관계자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성 전 회장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2012년 새누리당 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이던 홍문종 의원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사 의지만 있다면 지금까지 나온 단서와 정황으로도 충분하다. 말로만 성역 없는 수사를 외칠 게 아니다. 검찰 수사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불법 대선자금 의혹을 규명하는 데까지 중단없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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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이완구 총리 사표를 수리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연루된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지 일주일 만이다. 부정부패 문제로 이 총리가 취임 70일 만에 낙마함에 따라, 출범 2년여밖에 안된 정부에서 여섯 번째 총리를 찾아야 하는 기막힌 광경이 벌어지게 됐다. ‘총리 부재’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총리직을 대행하는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도 최소 한달 이상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이 총리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가타부타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완구 사태’로 빚어진 나라의 혼란과 국정의 난맥에 대해 임명권자로서 응당 사과부터 했어야 마땅하다.

이제 국정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새 총리 인선이다. 박 대통령은 새 총리 인선을 국정의 혼선을 수습하고 정권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전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 도덕성이 새 총리 인선의 최우선 기준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박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후보자 5명 가운데 3명은 청문회에 서 보기도 전에 낙마했고, 한 명은 ‘최단명 총리’란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거듭된 ‘총리 인사 실패’가 낡은 수첩에 얽매여 내 사람을 고집해 도덕성 기준을 무시·간과하면서 빚어졌음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이번에도 총리 후보자가 도덕성에 걸려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진퇴 논란에 휩싸이고 낙마 지경에 몰리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면 박 대통령은 심각한 레임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이임식을 갖고 황교안 법무장관과 어색한 조우를 하고 있다. 이완구 총리는 고 성완종 회장 리스트에 오르며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출처 : 경향DB)


그렇다고 인사청문회 통과만을 우선해 현직 각료나 친박계 정치인 등을 물색하는 것은 또 다른 실패를 예비하는 길이기 십상이다. 다분히 정치공학의 산물인 특정 지역 총리론도 마찬가지다. 둘 다 ‘이완구 총리 실패’가 보여주는 바다. 인사청문회 관문을 걱정하지 않고, 도덕성과 통합·소통 마인드 등 현 상황에서 요구되는 총리 자질을 갖춘 인물을 찾으려면 인재 폭을 넓혀야 한다. 박 대통령이 ‘수첩’ 밖으로 나와서, ‘진영’의 틀을 벗어나 폭넓게 사람을 구하는 변화를 보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야권에도 총리후보자 천거를 요청하는 등 발상의 전환도 불사해야 한다. 이번 총리 지명 결과가 박 대통령의 변화 여부를 판단하고, 남은 임기의 성패를 가름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더 이상 박 대통령에게 실패의 교훈을 학습할 기회는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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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의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믿을 만한 증언이 있었고 불법 자금 수수 현장을 목격했다는 여러 사람의 목격담도 나왔다. 검찰은 그의 계좌를 추적 중이고,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그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런 현실에서 그가 내각의 지휘자로서 또한 부패 척결의 사령탑으로서 도덕적, 정치적 권위를 행사하기는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패 척결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고, 이 총리 역시 자기 최우선 임무를 부패 척결로 천명한 조건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총리는 총리로서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기 위해 필요한 도덕적 정당성, 정치적 권위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거듭 “국정이 흔들림 없이 가야 한다. 국정을 챙기겠다”면서 총리직 고수 의사를 표시했다. 그는 자신이 총리 자리를 하루라도 더 지키고 있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정당성을 상실한 내각의 지휘자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어제 그가 4·19혁명 유공자와 유가족들이 참석한 4·19혁명 기념식에서 정부를 대표해 기념사를 했을 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19일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55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기 위해 발언대로 가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는 기념사에서 “부정과 불의에 맞선” 민주 영령과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를 거론했다. 그때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된다. “국가의 품격” “세계 속에서 당당한 선진사회”를 말할 때는 이중성, 모순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그런데 지난해 4·19혁명 기념사의 한 문장이 이번 기념사에는 빠졌다. “정부는 비리와 부정부패를 뿌리 뽑는 전면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라는 대목이다. 최근 정부가 부패 척결 의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의아한 일이다. 아마 이 총리가 자신의 처지를 의식한 결과였을 것이다. 설사 그걸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부패 척결을 주장했다 해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가 부패 척결을 주장해도, 주장하지 않아도 어색하다.

그의 기념사가 의미 없는 말의 잔치처럼 느껴지는 건 표현이 진부해서라기보다 기념사의 내용과 기념사를 하는 주체 간의 부조화 때문이다. 누구를 가르치는 듯한 그의 말을 듣는 일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언제까지 시민에게 이런 불편함을 강요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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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전·현직 비서실장 3명과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진 이후 첫 입장 표명이다. 일단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측근이라도 비리가 확인되면 예외 없이 법과 원칙에 따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내 문제가 아닌 남의 문제’라는 식의 특유의 ‘유체이탈’ 대응이다. 그랬으니 “대통령을 위해 일했던 최측근들이 부정부패 의혹에 관계된 데 대한 유감 표명”(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조차 하지 않았을 터이다.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검찰이 청와대나 정권 실세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의지부터 밝혔어야 한다. 국민의 의구심은 검찰이 과연 정권 실세들의 불법 정치자금과 ‘살아 있는 권력’의 대선자금 문제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에 쏠려 있다. 현직 총리가 ‘수사 대상 1호’인 판국이다. “누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다짐만으론 미흡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는 16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분향소를 찾아 입구에 놓은 실종자 알림판을 둘러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우리 정치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부문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과거 정권의 정치자금 의혹까지 대상을 넓혀 수사하라는 지침으로 들린다. 물론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서 야당이나 과거 정권의 불법 증거가 드러날 경우 당연히 조사해야 한다. 하지만 미리 ‘과거부터 현재’라고 지침을 내림으로써 대대적인 사정 국면을 조성해 ‘성완종 정국’을 돌파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완구 총리는 연일 맹렬히 부인하지만, ‘3000만원 의혹’은 갈수록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비타500 음료수 상자’에 넣어 전달했다는 성완종 측 인사의 직접 증언도 나왔다. 돈을 준 시점과 장소, 명목을 적시한 성 전 회장의 진술에 이어 ‘돈 박스’를 들고 간 증인까지 나온 상태다. 이것만으로도 이 총리는 피의자 신분을 면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오늘 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하면 사실상 직무 대행을 할 총리가 부패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질 판이다. 끝내 현직 총리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사에 출석하는 참담한 꼴을 보이겠다는 건가. 여당마저도 사퇴를 압박하는 마당에 이 총리 스스로 거취를 정리하는 게 순리다. 아니면 ‘임면권’을 가진 박 대통령이 읍참마속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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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어제 국회에서 가까스로 통과됐다. 당초 이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인준 반대를 외쳐온 새정치민주연합이 막판 표결에 참여함으로써 파국적 사태는 면했다. 표결 결과 여당에서 일부 이탈표가 나와 이 후보자는 인준에 필요한 141표보다 고작 7표를 더 얻어 박근혜 정권의 두번째 총리가 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적격’ 응답이 과반을 넘은 상황에서, 인준안도 전체 재적 의원의 딱 절반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내용적으로 완전히 ‘반쪽 총리’란 걸 알려주는 지표다. 이런 총리가 과연 내각을 통할할 권위와 리더십을 발휘하고,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는 역할을 할지 의문이다.

과반수 새누리당의 도움으로 인준 터널은 통과했지만, 이 후보자는 청문 과정에서 공직자로서의 자질과 도덕성에 치명적 결함이 드러났다. 그간의 인사청문 기준에서라면 능히 낙마 사유다. 하지만 ‘3연속 총리 후보 낙마’에 따른 정권의 부담에 급급한 여당과 청와대는 수적 우위를 앞세워 ‘이완구 총리’를 관철했다. 숱한 진통과 갈등을 겪으며 어렵게 구축해온 공직 기준을 무너뜨린 것이다. 한국 사회의 윤리 수준을 퇴행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가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여야의 첨예한 대치로 흐르던 임명동의안 처리는 새정치연합이 막판 표결 참여를 결정함으로써 정국의 파행은 모면했다. 여당의 강행 처리에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새정치연합이 ‘의회주의’라는 명분을 택한 결과다. 애초 청문 과정에서 안이한 자세와 ‘여론조사 발언’처럼 전략 없는 임시방편적 대응으로 궁지를 자초한 새정치연합으로서는 달리 길이 없었을 터이다. 결과적으로 민주적 절차가 지켜지는 모양은 연출되었지만, ‘반쪽 총리’ 탄생 과정에서 드러난 새정치연합의 실력과 정치력 부족 문제는 남았다.

이완구 총리는 법적으로는 총리가 됐지만 국민에게는 커다란 빚을 지게 됐다. 그 채무를 갚는 길은 그야말로 “대오각성”하고 총리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해 국정에서 성과를 내놓는 것이다. 물론 전망은 어둡다. 도덕성과 공정성, 정직성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총리가 각 부처를 통할하고 공직기강을 다잡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덕적 하자에도 불구하고 인준안을 통과시켜준 대통령 앞에서 소신 있는 자세를 견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이 총리가 무너진 권위를 회복하려면, 스스로 약속했듯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총리로서 권한을 확실히 행사해야 한다. 이 총리가 박 대통령의 불통과 질주를 제어하는 조정·견제자 노릇을 해주지 못한다면 본인은 물론 국민 모두에게 불행이다. 대통령에게 국정 문제 등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역할과 책임을 보여줄 때야 ‘반쪽 총리’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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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국 사회는 어느 시간을 살고 있는가?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다거나, 국가가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다가 군부대에 감금한 채 폭력을 가한다는 것은 2015년 현재를 사는 한국인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 경찰관들이 무고한 시민을 고문하고 죽인다거나, 이들을 수사하던 검사가 고문에 참여한 경찰관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덮어둔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된다.

1980년 6월 이완구 경정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내무분과위원회에 파견됐다. 내무분과위는 악명 높은 ‘삼청교육대’ 사건에 관여했다. 국보위는 사회정화를 한다며 영장도 없이 6만여명을 붙잡아 4만여명을 군부대로 끌고 갔다. 당시 20대였던 이 경정은 국보위 근무 공로로 훈장을 받았고, 2015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1987년 1월 박상옥 검사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에 투입됐다. 박 검사는 3월 초 선배 검사로부터 고문 경찰관이 구속된 2명이 아니라 5명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박 검사가 알고도 묻어뒀던 사실은 5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폭로됐다. 당시 4년차였던 박 검사는 훗날 검사장이 됐고 2015년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공교롭게도 1980년대 전두환 군부 정권 시대의 시작과 끝을 알린 사건에 깊이 연루됐던 두 사람은 “20대의 경정에 불과했다”(이 총리 후보자)거나 “막내 검사로서 지휘를 받는 입장이었다”(박 대법관 후보자)고 말한다. 새누리당도 국보위에 참여했던 고위 인사들이나, 박종철 사건을 맡았던 다른 검사들에게는 별다른 문제제기가 없었는데 이제 와서 막내급인 두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과하다고 말한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1930년대 독일을 전근대·근대·탈근대적 요소가 공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 사회라고 분석했다. 그는 비동시성 세계의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살고 있으나, 같은 시간 속에 살고 있지 않다”고 썼다고 한다. 앞의 시간은 달력 위의 시간을, 뒤의 시간은 역사적 시간을 말한다.

삼청교육대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축소는 1980년대 당시에도 엄청난 국민적 공분을 샀다. 그럼에도 이·박 후보자의 선배들이 이후 별탈없이 고위 공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군부 정권의 유산이 남아 있었고, 그 시대와 그들의 경력 사이의 객관적·주관적 비동시성이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이다. 이제 1980년대와 2015년은 달력의 시간으로도, 역사의 시간으로도 거리가 멀어졌고 비동시성은 커졌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삼청교육대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됐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크다는 것은 그 사회의 내적 모순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이런 사회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비동시성을 동시화하려는 운동이 나오게 된다. 동시화 방식은 논리적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를 과거로 돌리거나, 현재 시간에 남아 있는 과거를 지우거나이다.

민가협, 박종철기념사업회, 민변 등 사회단체 회원들이 4일 서울 종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 동의 철회를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블로흐에 따르면 1930년대 독일의 중산층 시민들은 전자를 택했다. 결과는 나치정권의 득세였고 유례없는 재앙을 낳았다. 1980년대 군부 정권의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에 깊숙이 관여했던 사람들이 2015년 총리가 돼 행정부를 지휘하고, 사법부 최고기관의 재판관석에 앉는다면 그렇지 않아도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큰 한국 사회의 모순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역사적 시간을 현재의 달력 시간에 가깝게 맞출 수밖에 없다는 답이 나온다. 1980년대의 ‘막내’를 자처한 이·박 후보자가 역사에 기여하는 것은 총리·대법관이 되는 게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는 게 한국 사회의 비동시성을 동시화하는 데 기여하는 길이다. 블로흐가 말했듯 ‘과거 시간의 찌꺼기’는 지양(止揚)돼야 한다.


김재중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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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났으나, ‘적격성’에 근본적 의문을 일으킨 각종 의혹과 비위는 그대로 남았다. 민주 국가의 총리로서 치명적 결함을 드러낸 ‘언론 외압’과 관련해선 추가로 언론인을 겁박하고 희롱·모욕한 발언이 공개됐다. 이토록 비뚤어진 언론관을 가진 사람이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가 될 경우에 언론을 어떻게 대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청문회 과정에서 이 후보자는 고위공직자의 기본 덕목인 정직성에서도 문제를 드러냈다. 병역 문제에 대한 이 후보자의 ‘거짓 해명’은 병역 기피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좌와 직결되어 있다. 병역 기피 의혹을 덮으려 거짓을 둘러댄 거라면 그것만으로도 고위공직자로서 결격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사임했던 결정적 이유는 ‘도청’이라는 불법보다 사건을 은폐·축소한 거짓말 때문이었다. 이 후보자는 ‘언론 외압’ 발언을 두고도 청문회에서 허위 증언을 했다.

청문회를 통해 총리 후보자로서 ‘적격성’에 물음표가 찍혔다면, 이러한 결과가 청문보고서 채택과 임명동의에 반영되어야 마땅하다. 인사청문제도는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공직자를 철저히 검증하고, 적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당이 청문 결과와 상관없이 단독으로라도 무조건 임명동의안 처리를 공언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여야가 합의한 일정대로 가야 한다”며 12일 표결 방침을 밝히고 있고, 유승민 원내대표도 유사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청문회를 통해 도덕성과 자질에 심대한 흠결이 드러난 상황에서 2월 임시국회 협상 때의 ‘합의 일정’을 내세우는 건 견강부회다. 여권으로선 앞서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상황에서 이 후보자마저 중도 하차할 경우 정치적 타격을 걱정할 터이다.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에 비춰도 ‘낙제’로 판명난 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를 밀어붙인들 국정동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야당 의원 빈자리 국회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위 한선교 위원장(뒷모습)과 새누리당 의원들이 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단독으로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인사청문 결과를 토대로 적격과 부적격을 놓고 충분한 토론과 검증을 거친 뒤에 청문보고서를 채택하고, 임명동의 절차를 밟는 게 순리다. 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자의 생명인 도덕성에 결정적 문제가 있는 사람은 절대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입에 올리면서 애써 세워진 정상을 비정상으로 돌리는 짓을 해서 되겠는가. 물론 이미 정국의 골칫거리가 되었고, ‘의혹 완구점’으로까지 조롱받는 이 후보자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최선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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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의혹 백화점’을 방불케 했다. 언론 외압, 병역 기피,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황제 특강’ 등 일일이 재론키도 구차한 의혹·비위들이 검증대에 올랐다. 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을 법한 ‘보도 통제’와 언론사 인사개입을 자랑스레 떠벌린 ‘녹취록’ 내용에 이 후보자는 모두발언을 통해 “통렬히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그는 청문회 내내 각종 의혹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보다 “송구하다” “죄송하다”며 몸을 낮추고 고개를 조아렸다. ‘언론 외압’ 등 해명이 불가능한 사안이 속출하자 동료의원들에 대한 읍소로 인사청문회 관문을 어떻게든 지나가려는 셈법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대오각성” “사과” 정도로 양해될 만한 상황이 이미 아니다. 공직자로서의 기본 자질을 의심케 하는 ‘언론 외압’ 외에도, 이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은 과거 인사청문 기준에 대입해도 낙마 사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청문회에선 병역 문제와 관련해 이 후보자의 ‘거짓 해명’이 도마에 올랐다. 이 후보자는 징병 신체검사를 여러 번 다시 받으며 현역 복무를 고의 회피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첫번째 신체검사를 X레이 장비가 없는 충남 홍성에서 받은 탓에 현역 판정을 받았다고 해명해왔다. 그러나 첫번째 신검은 서울 육군수도병원에서 실시됐고, 보충역 판정이 내려진 재검을 홍성에서 받은 게 드러났다. 이 후보자는 “기억 안 난다”고 회피했지만, 병역 면제가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느냐는 의구심은 더 짙어졌다. 언론 외압 ‘녹취록’의 추가 내용도 공개됐다. ‘김영란법을 통과시켜 언론인을 혼내주겠다’ ‘언론인들 대학총장도, 교수도 만들어줬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 후보자의 비뚤어진 언론관이 단순 실언이 아니라 뼛속 깊이 새겨진 사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심각한 부동산 투기 의혹엔 “투기가 아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도, “국민께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렇게 모든 걸 사과 한마디로 어물쩍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특위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총리 인사청문회 정회 중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외압과 관련한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음성파일을 공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완구 청문회’는 고위 공직자로서 도덕성에 치명적 결함이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언론 외압, 의혹이 증폭된 병역 면제, 여전히 해명되지 않은 부동산 투기만으로도 총리로서 자격 미달이다. 도덕성은 공직자에게 능력 이상으로 중요하다. 도덕성이 결여된 능력은 권력의 흉기가 되기 십상이다. 인사청문 기준이 그때그때 다르면 사회의 윤리와 공직의 청렴성을 유지·제고시킬 수 없다. 이 후보자가 이런 흠결을 지닌 채 총리가 된다면 내각을 통할할 권위를 세울 수 없고,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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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방송사 간부들에게 전화해 자신에 대한 의혹 보도를 막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후보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본인 입으로 말해놓고 발뺌하는 것 같아 설득력이 약하다. 이 후보자는 또 자신이 언론사 인사에 개입할 수 있다는 회유성 발언도 했다. 비뚤어진 언론관과 경솔한 언행을 보면 행정부를 통할하는 총리로 합당한 인물인지 중대한 의문이 든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기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방송사 간부들에게 전화해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를 빼라고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다고 밝혔다. 그가 거론한 방송사 간부들은 전화를 받기는 했지만 방송을 막은 적이 없다거나 아예 통화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청문회를 통해 밝혀야 하겠지만 공개된 발언만으로도 그는 총리로서 자격 미달이다. 방송 외압 의혹이 사실이라면 언론 자유에 심각한 위협이 될 터이고, 사실이 아니지만 무용담 삼아 지어낸 것이라면 그 같은 부박한 언행으로 엄중한 총리 업무를 순탄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는 나아가 “(언론사) 윗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기자는 클 수도 있고 자기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해당 기자들이 이 후보자의 검증 취재를 하고 있었고, 여러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식사 자리에 동석한 점을 감안하면 이 발언은 회유나 압박으로 들렸을 수밖에 없다. 그는 사석에서 편하게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언론계 고위층과의 친분을 이용해 자기 입맛에 맞는 기자들은 키워주고, 불리한 기사를 쓰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통제하겠다는 게 본심이라면 경악할 노릇이다. 이 후보자의 추가적인 해명을 요구한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출근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 후보자에게는 이미 부동산 투기와 본인의 병역 문제 등 의혹이 여럿 제기된 상황이다. 이 후보자는 1971년 첫 신체검사에서 ‘평발’임에도 현역입영 대상 판정을 받았지만 입영을 미룬 뒤 두 차례 더 재검을 받은 끝에 방위(보충역)로 군 복무를 마쳤다. 첫 신체검사 후 특별한 신체 변화가 없는데도 보충역 판정으로 바뀐 경위가 석연치 않다. 또 서울 강남에 투기붐이 일던 시기에 타워팰리스 단기매매를 통해 9개월 만에 2억원가량의 시세차익을 올린 점도 규명이 필요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부동산투기의 전형적 수법인 미등기전매, 속칭 딱지 매매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내일부터 열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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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부동산 투기 의혹이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이야기다.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준비된 총리 후보라기에 좀 다를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나다.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의 단골 메뉴인 부동산 투기 의혹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온다.

요 며칠 새 확인된 ‘팩트’만 추려보자. 이 후보자는 2003년 1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아파트의 8억8000만원대 분양권, 이른바 ‘딱지’를 11억7980만원에 사들였다. 원소유자가 건설사에 지급해야 할 미납금 8800만원은 따로 떠안았다. 웃돈을 얹어 ‘딱지’를 매입하는 건 부동산 투기에 흔히 쓰이는 수법이다. 이 후보자는 이 아파트를 10월 16억4000만원에 되팔았다. 불과 9개월 만에 3억7000여만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취득세·등록세와 양도소득세를 빼고도 앉은 자리에서 2억2000여만원을 벌었다.

2억2000만원은 월 급여 200만원인 직장인이 9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액수다. 올해를 기준으로 최저임금(시간당 5580원) 노동자가 주말을 제외하고 매달 22일 하루 8시간씩 총 18년6개월간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이 후보자의 장인·장모는 경기도 분당의 토지를 2000·2001년 7억5600만원에 매입한 뒤 2002년 딸(이 후보자의 부인)에게 증여했다. 이 후보자의 부인은 이 땅을 2011년 다시 차남에게 증여했다. 현재 이 땅의 공시지가는 20억원대, 실거래가는 30억원대다. 증여세 5억원을 제하고도 14년 새 20억원에 이르는 시세차익이 생긴 것이다. 최저임금 노동자가 169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한 액수다.

검증을 요하는 사안도 수두룩하다. 분당 토지를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들, 이를테면 당시 공동 여당 소속 의원으로 국회 재경위에 있던 이 후보자가 개발 호재를 미리 알고 땅을 사들인 것 아니냐는 의혹 등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공직자가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활용해 사익을 취했다면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총리의 자질·자격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혹여 부동산을 매매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과정에 한 점이라도 위법이 있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위법이 없었다고 만사형통은 아니다. 고위 공직자, 특히 국정 운영의 한 축인 총리가 갖춰야 할 자질은 단지 ‘위법이 없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답답한 ‘불통의 시대’에 총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시민과 공감하는 능력이다. 시민이 눈물 흘릴 때 함께 울고, 시민이 분노할 때 함께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잘 안되면 노력이라도 하고, 그것도 힘들면 연기라도 해야 한다. 총리의 몸짓, 말투, 표정 하나하나가 시민에게 전하는 메시지이자 정치행위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왼쪽)와 유성엽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위 야당간사가 28일 국회 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 후보자가 타워팰리스 투기 의혹을 해명하며 내놓은 문구를 곰곰이 되씹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매각 후 5년 동안 가격이 30억원 가까이 올랐다면 투기 목적의 매매는 아니다”라고 했다. 타워팰리스를 팔지 않고 계속 보유했더라면 십수억원의 시세차익이 생겼을 텐데, 일찌감치 팔아치워 3억7000여만원의 시세차익만 남겼으니 투기는 아니라는 논리다.

이 후보자가 집 없는 서민이나 학자금 대출금을 갚느라 허리가 휘는 대학생, 해고 불안에 떠는 비정규직, 최저임금을 밑도는 급여를 받고 하루하루 열정을 소진당하는 알바·인턴 청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9개월 시세차익 3억원대’가 그들에게 줄 박탈감과 허탈감을 다소라도 감안했다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투기 목적의 매매가 아니었다’고 관료주의적 언어로 해명하기 전에 ‘죄송하다’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속마음이 그렇지 않다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척이라도 했을 것이다.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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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시사회에서 본 <쎄시봉>은 복고음악을 배경으로 순수한 첫사랑의 추억을 그린 영화다. 재미도 있고 흥행할 요소도 두루 갖췄다. 그런데 누리꾼 평점이 죄다 10점 만점에 1점이다. 쓰레기 같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도 이 정도는 아니다. 이유인즉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한효주 때문이란다. 그의 동생은 지난해 군대 가혹행위 가해자로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고, 이 사건은 군 검찰에서 기소유예로 일단락됐다. 후폭풍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공인’이자 ‘가해자의 누나’인 한효주가 광고에서 퇴출돼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진행됐고, 그가 도의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러고는 개봉을 앞둔 그의 출연작에 대한 평점테러로 이어졌다.

엉뚱한 대상에 대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가 안타깝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제도 개선을 누가 바라지 않겠나만 화살의 방향은 잘못된 것 같다. 물론 대중의 분노는 이해된다. 지난해 윤모 일병 사망사건에 치떨리지 않았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군복무에 대한 거부감도 강해졌다. 높은 분 자제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는 이야긴 못 들어봤으니. 하긴 그분들이 그런 일 당할 계제인가. 군대를 안 가는데 무슨 수로. 그 분노의 바닥엔 억울함과 깊은 상실감이 뒤섞여 있을 게다.

10여년 전 병역비리가 연예계를 뒤흔들었다. 당시 소변검사 조작으로 사구체신염 판정을 받는 수법을 썼다고 밝혀졌던 배우 송승헌, 장혁, 한재석 등은 결국 군복무를 했고 자숙하며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가수 싸이는 3년간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했지만 부실근무 판정을 받고 재입대를 했다. 미국 시민권을 따서 병역을 피했던 가수 유승준은 한국땅에 입국조차 안된다. 병역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가수 MC몽은 여전히 ‘죽일 놈’이다. 간혹 합법적으로 면제를 받더라도 왠지 죄스러운 분위기는 감내해야 한다. 신성한 의무를 훼손하거나 완수하지 못한 데 따른 대가다.

그런데 연예인과 함께 종종 ‘공인’으로 묶이는, 나랏일 하시는 분들에겐 병역면제가 ‘스펙’이다. 증거까지 흔들어대며 큰소리치는 모습을 보면 벼슬도 이런 벼슬이 없다. 김진태 검찰총장 아들의 병역면제 사유는 사구체신염이었다. 사회지도층에만 생기는 희한한 병의 이름을 오랜만에 다시 듣게 돼 웃었던 기억이 난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군복무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싸이라면 정말 억울할 것 같다. 조신 미래전략수석은 45㎏이 안돼서 군대를 못 갔다. 하루 대여섯 시간 춤연습을 하면서도 새 모이만큼 밥을 먹는 걸그룹 가수들은 45㎏을 넘기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 병역뿐인가. 탈세나 탈루 의혹에 대한 공직자들의 대응과 반응은 방송인 강호동이나 배우 장근석 등 연예인과는 사뭇 다르다. 같은 망언을 해도 연예인은 한방에 훅 가는 반면 공직자들은 확신범이 된다. 이러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집단이 연예인이라는 한탄이 나온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 집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_ 연합뉴스


많이 누리고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는 점에서 연예인과 공직자들은 상대적으로 엄한 대중의 비판과 감시의 칼날에 서 있다. 때로는 사생활도 보호받지 못한다. 그렇지만 두 집단을 재단하는 대중의 잣대가 전자에겐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엄격하고 후자에겐 맹탕이다. 한쪽에 과도한 화력을 쏟다보니 정작 다른 쪽에 쓸 여력이 없는 걸까? 전경으로 복무했던 후배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한쪽은 원래 그렇게 해먹던 놈들이라고 접고 보잖아요. 그게 사각지대가 되는 거지. 정말 머리 잘 썼어. 연예인들이야 눈앞에 보이고 만만하니 퍼붓는 거고요.”

분명히 기억해야 할 건 이들 중 누가 내 삶에, 내 자식의 앞날에 더 큰 영향을 미칠지다. 한쪽은 순간 배 아프고 말면 그뿐이지만 또 한쪽은 배 아프고 배까지 고파야 한다. 그것도 오랫동안.


박경은 대중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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