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입가에 모처럼 미소가 번졌다. 목소리와 표정에서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분이다 보니 기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자리는 16일 사퇴 기자회견이었다. 국정농단 사태에 떠밀려 임기 2년 당 대표직을 4개월 만에 물러나면서 웃음이 나온 것이다. 일주일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는 소식에 “혼밥, 혼술은 해봤지만 ‘혼박’은 처음이었다. 날아갈 것 같다”면서 박수치며 기뻐했던 사람들은 ‘이건 뭐지’라고 했을 장면이다.

 

이른바 친박이라는 사람들. 자신들이 따랐던 지도자가 국민들에 의해 쫓겨날 상황이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 작금의 현실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홀로코스트 같은 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국민들이 어떻게 보건 중요하지 않았다. 비박 인사들을 경멸하는 말을 쏟아내다가도 원내대표 경선이 임박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비굴 모드로 들어가도 상관없었다. 어찌됐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치열하게 정치를 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보였다.

 

원내대표 경선을 하던 날, 한국갤럽의 주간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새누리당 지지율은 15%. 더불어민주당이 40%를 찍었으니 반토막도 안되는 수준이다. 철옹성 같았던 ‘박근혜 지지율’은 흔적조차 없이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최소 지지율이 35%”라던 새누리당은 제2야당과 지지율 경쟁하는 처지가 됐다. 그 이유는 다 아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다수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귀 기울여 신속하게 과감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런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있다. 살아있는 정치집단이라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왼쪽에서 세번째)가 16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최연혜·조원진·이장우 최고위원(왼쪽부터)과 지도부 일괄 사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국민들은 국정농단 사태가 알려지자 ‘이것이 나라냐’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졌다. 돌이켜보면 세월호 참사 때도, 메르스 사태 때도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국민이 국가를 믿지 않게 되고, 국가와 국민은 분리됐다. 새누리당도 그랬다. 대통령의 오만·독선을 견제할 의지나 능력은커녕, 그 품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새누리당도 국민들로부터 분리됐다. 4·13 총선에서 ‘여소(與小)’로 전락한 이유였다. 대통령이 최순실이 엮어놓은 실에 따라 움직이는 허깨비였다는 것이 드러나도 대통령 지키기에 급급한 것이 친박의 실상이다. 이런 집단이 한국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으로 군림해왔다.

 

친박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념과 노선 따위는 애시당초 ‘살아야 할 이유’가 아니었다. ‘박근혜’를 버리면 더 이상 나란 존재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촛불 민심이 “새누리당을 해체하라”고 하고, 여의도 당사에 계란이 날아들어도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4·13 총선에서 갖은 무리수를 써가며 배지를 달아준 ‘진실한 사람들’은 믿는 구석이었다. 당의 생리도 잘 알았다. 새누리당은 보수적 정서와 행동, 현상유지적 가치를 통해 오랫동안 일관성과 동질성을 유지해왔다. 다른 정당을 흡수해 세를 불리기는 했지만 내부가 쪼개진 적은 없었다. 지금 상황에 대입하면 ‘비박은 집단적으로 뛰쳐나가지 못한다’는 게 친박의 구상으로 정리된다. 친박의 농단으로 4·13 총선에서 참패했음에도 넉 달 뒤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에서 둘째라고 하면 서러워할 친박 당 대표를 배출하지 않았던가.

 

비박도 한심하기는 매한가지다. 친박 추대 후보 정우택 의원이 경선에서 얻은 표는 62표.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서 반대 56표보다 6표가 더 많았다. 정 의원이 “내년에 좌파정권, 진보좌파가 집권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호소할 때, 비박 단일후보 나경원 의원도 같은 얘기를 했다. 친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란 이미지 이외에는 변화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진단도 틀렸고, 아무것도 버릴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보수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삼았으니 친박이나 비박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저희 당은 보수정권으로 대표적으로 추진한 정책이 뒤바뀌지 않게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비박들을 적당히 비상대책위원회에 끼워주는 방식으로 포장지만 바꿔 놓고 달라졌다고 할 태세다. 눈엣가시였던 이 대표를 위시한 친박 핵심들은 2선으로 물러나지 않았느냐면서.

 

친박이 비박과의 팽팽한 힘겨루기에 이겼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종종 쓰는 표현이 ‘제궤의혈(堤潰蟻穴·작은 개미 구멍이 둑을 무너뜨릴 수 있다)’인데 둑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3년4개월 뒤 21대 총선에서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안홍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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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친박근혜계가 요즘 하는 일을 보면 그 막무가내 행태를 표현할 마땅한 말을 찾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부른 폐족으로 자성하기는커녕 시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막 나가고 있다. 그제는 박 대통령을 징계하려는 당 윤리위까지 편법적으로 장악했다. 친박 일색의 최고위원회가 이진곤 윤리위원장과 사전 협의 없이 친박 성향 위원 8명을 추가로 임명했다. 기존 윤리위원 7명보다 더 많은 위원을 추가 투입해 대통령 보호막을 치고 나선 것이다. 그래 놓고 “애초 윤리위 구성에 균형이 맞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다. 꼼수와 편법도 모자라 오리발까지 내미는 처사에 할 말이 없다. 참다못한 이 위원장과 기존 위원들은 일괄 사퇴를 선언했다.

새누리당 친박계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왼쪽)이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친박계 주류 모임인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친박처럼 몰상식한 정치 집단은 헌정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민주 국가의 정상적인 정치 집단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박 대통령에 대한 친박의 맹목적 충성은 왕조시대를 방불케 한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노예라는 표현이 백번 맞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강요하며 후배 정치인들을 겁박하는 서청원 의원의 조폭적 행태 역시 목불인견이다. 촛불시민의 분노를 불렀던 김진태 의원은 어제 또다시 “친박이 아무리 주홍글씨라고 해도 나라를 팔아먹진 않았다. 종북 좌파들에게 나라를 넘겨주게 생겼다”고 했다. 국정농단 동조 세력이 순국자들인 양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사람들이 박 대통령을 에워싸고 국정을 이끌었으니 탄핵으로 귀결된 것이 당연하다. 친박은 자신들의 모임 명칭을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이라고 했다. 창립선언문에서는 “정통 보수세력으로서 헌법과 법치주의를 수호하겠다”고 했다. 혁신과 법치주의를 표방하다니 그 뻔뻔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친박은 16일 새 원내대표로 정우택 의원을 밀기로 어제 집단 결의했다. 탄핵을 부른 데 대한 반성은커녕 또다시 당권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촛불시민의 의식수준을 얕잡아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오만한 행동이다. 신임 원내사령탑은 조만간 이정현 대표가 사퇴하면 당 대표 권한대행까지 겸직하게 된다. 한 줌도 안되는 계파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오염시키는 친박세력이 다시 당을 장악하게 해서는 안된다. 정 의원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친박을 지금 징치하지 않으면 박근혜 정권 같은 불통 정권이 다시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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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의심스러운 대목은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소양에 관한 얘기는 그가 정계 입문한 18년 내내 입방아에 올랐다. 박근혜는 늘 짧게 말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동생이 아니라면 아니다”. 간단명료하다. 처음에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다. 알고 보니 그게 다였다. 2012년 대선 토론회에선 정책 현안을 묻는 문재인의 질문에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선 ‘경제회생론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계속되자 “저하고 싸움하시자는 거예요”라고 했다. 본질인 정책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박근혜가 그간 보여준 행적과 언행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수단과 방법은 전무했다. “대통령이 돼도 걱정”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58회, ‘무능과 독선의 대통령’이란 비판을 받았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210회 기자회견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50여회 기자회견을 했다. 박근혜는 4년 동안 5번 기자회견을 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도 질문은 받지 않았다. 토론 없는 회의, 대면보고 불가, 문답 기피는 박근혜의 실체다. 대통령 리더십은커녕 사회인의 기본 자질마저 갖추지 못했다. 그런 그가 국가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 적어도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집단 네다바이’를 당한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째는 보수·영남·고령층에 깔린 박정희 향수다. 이들에게 박정희는 신격화됐고, 박정희의 딸도 특별한 존재였다. 박정희의 후광을 빼놓고서는 박근혜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설명할 수 없다. 둘째는 미래 권력에 대한 기대다. 박근혜는 야당 시절에도 ‘여의도 권력’이었고 확고부동한 ‘차기 대통령’이었다. 불러주면 감읍했고, 부르지 않더라도 줄을 이었다. 셋째는 포장이다. 박근혜의 불통과 오기, 무능, 책임 회피는 철저히 감춰졌다. 모든 단점은 신비주의로 포장됐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신중하다고 했고, 어쩌다 한마디 하면 간결하고 힘 있는 메시지라고 했다. ‘식인종 시리즈’를 얘기하면 세상에 이런 재밌는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는 것처럼 배꼽을 잡고 웃었다. 영혼 없는 리액션이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를 만들었다. 비극의 전조는 있었을 테지만 외면하거나 은폐됐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곧바로 ‘레이저’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원로그룹 7인회의 좌장 김용환조차 ‘최태민’이라는 이름을 거명했다가 그 길로 정치생명이 끝났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된 9일 박근혜 대통령이 위민관에서 마지막 국무위원 간담회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마치고 메모를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여옥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외친 유일한 측근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내면서 박근혜 대표를 2년간 밀착 수행한 전여옥은 박근혜의 실체를 맨 처음 폭로했다. 전여옥에게 물어봤다.

-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이 많았는데.

“컴퓨터로 치면 저장 용량이 이미 꽉 차 있다. 새로 타인의 삶을 보고 배우고 공감할 능력이 없다. 야당 대표 시절엔 그나마 종이에 써서 외우기라도 했다. 대통령이 돼서 다시 나의 집이었던 청와대에 들어가는 순간 내 임무를 완수했다 생각하고 손을 놔버린 것 같다.”

- 박근혜 화법을 ‘베이비 토크’라고 했다.

“사용하는 단어를 세어 보면 100단어가 안된다. 문법도 표현도 안 맞는다. ‘우리 경제가 불쌍하다’는 말은 유치원생들이 ‘꽃이 아야야 해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사고가 청와대 공주 수준에서 딱 멈춘 것이다.”

-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나.

“왜 몰랐겠나. 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나보다 먼저 안 사람도 많다. 그런데 말을 안 하더라. 그게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란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 넘버원인 김기춘은 “우리 대통령은 차밍(매력적)하고, 디그니티(위엄) 있고, 엘레강스(우아)하다”고 했다. 이정현은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했다. 이들뿐 아니다. 박근혜를 인우(隣友)보증 선 인사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지금 이들은 서로 네 잘못이 크다며 싸우고 있다. 박근혜 코미디 2막이다.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다. 박근혜가 무사히 임기를 마쳤으면 전직 대통령으로 그 위세를 계속 떨쳐갔을 것이다. 친박계도 건재했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정치판을 휘저을 것이고, 현안마다 “좋아요” “나빠요”를 던지며 정치 영생(永生)을 누렸을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이런 꼴을 더 봤어야 할 판이다. 반면교사도 훌륭한 선생님이다. 이젠 인물을 요모조모 뜯어보는 눈도 생겼다. 지역·세대 투표도 달라질 수 있다. 천만다행이다. 그러니 박근혜에게 속았다고 속상해할 일만은 아니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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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탄핵안 표결에 임하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당의 협조를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당이 요청한 ‘내년 4월 퇴진·6월 조기대선 실시’를 수용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탄핵소추 절차를 밟아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탄핵이 아닌 자진 사퇴로 마무리하고 싶지만, 탄핵이 되더라도 헌재에서 법리를 다투면서 버티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두 사람이 전한 면담 내용을 보면 박 대통령은 이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3차 담화에서 밝힌 ‘임기 단축을 포함한 퇴진’ 방침에서 ‘내년 4월 퇴진·6월 대선’으로 시점만 조금 더 구체화했을 뿐이다. 국정농단에 대한 잘못을 시인하는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다. 어제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초래된 국정혼란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포괄적인 책임만 인정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이 정상적 국정 수행이며, 나머지는 비선인 최순실씨의 개인적인 비리라고 우겨온 태도 그대로다. 측근들이 모두 박 대통령 지시를 받고 범법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는데도 나홀로 법을 지켰다고 우기는 것을 듣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탄핵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역풍이 무서워 국민 앞에 나서 담화를 발표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 놀라운 것은 박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통해 끝까지 승부를 가리겠다는 발상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탄핵이 가결되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당에서 협조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법리 다툼에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이런 자신감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검찰 수사는 왜 거부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헌재에서 법리 논쟁을 벌이겠다고 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탄핵안이 가결되는 즉시 자신이 약속한 ‘4월 퇴진 수용’ 방침도 폐기하겠다는 말이다. ‘4월 퇴진’ 수용은 정말 사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 탄핵을 피하려는 술책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박 대통령을 면담한 새누리당 지도부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은 마찬가지다. 역풍이 무서워 4차 대국민담화조차 직접 하지 못하는 박 대통령에게 민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 대표와 정 원내대표는 대통령 얼굴이 수척하다느니, 당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느니 하면서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심을 조장했다. 탄핵을 막지 못했다는 오명을 피하려는 여당 지도부와 여당 의원의 탄핵 참여를 어떻게든 줄이려는 대통령의 합작품이 이날 면담임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시종 꼼수로 대응하다 민심에 의해 이미 탄핵당하고 이제 국회에서마저 탄핵당할 차례다. 이쯤 되면 즉각 퇴진하는 게 상식인데 끝까지 반전을 꾀하고 있다. 탄핵을 앞두고 친정인 여당에 마지막 호소를 하는 자리에서까지 시민을 향해 해볼 테면 해보자고 선언한 것이다. 이런 박 대통령에게 정상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해졌다. 탄핵안이 가결되어도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버틸 경우 그 혼란상은 불 보듯 뻔하다. “밤낮 없이 나라를 걱정한다”고 했지만 정작 나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참 나쁜 대통령이다. 이런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탄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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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어제 “당 대표로서 가장 힘들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도울 수 있도록 조금만 위기관리의 시간적 여유를 허락해 달라”며 또다시 사퇴를 거부했다. 그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실이 탄로 난 이후 이런저런 변명으로 한 달 가까이 사퇴 요구를 피해왔다. 이번에 대통령 도울 시간이 필요해 대표직을 좀 더 하겠다는 것은 시민 분노가 누그러질 때까지 버텨보겠다는 ‘시간 끌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와 내각이 공중분해되거나 올스톱된 마당에 대통령 사수의 마지노선인 새누리당 친박세력마저 무너져선 안된다는 위기감의 발로일 것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4일 오후 국회에서 비선 실세 의혹 관련 사죄 인사를 마친 뒤 의원총회장에 입장해 답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젖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는 “고립무원의 대통령이 힘들게 이 난국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하시고 괴로워 신음하시는데 나 혼자 맘 편하자고 유유히 곁을 떠나는 의리없는 사람이 되기 싫다”고도 했다. 지금 가장 힘들고 신음하는 사람은 바로 시민들이다. 지난 주말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한결같은 외침은 “이게 나라냐”는 것이었다. 그런 함성을 듣고도 집권당 대표가 분노한 민심에 답하기는커녕 대통령과의 의리 때문에 자리를 지켜야겠다니 억장이 무너지고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험한 꼴을 봐야 정신을 차릴지 앞이 캄캄할 뿐이다. 이 대표는 청와대 정무·홍보수석으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당에 돌아와선 친박계 핵심으로 호위무사 역할을 수행해왔다. 비선들의 국정농단을 방치해 오늘의 파탄을 낳게 한 공범 중 한 명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유일한 비주류인 강석호 최고위원이 공식 사퇴하고 비박계의 좌장 격인 김무성 전 대표도 지도부 사퇴와 박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대표 체제는 이제 국민은 물론 당내에서도 신뢰를 잃고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국정에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느낀다면 언필칭 그가 섬기겠다는 시민 여론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깨끗이 사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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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실상이 드러나면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어제 황교안 총리 주재로 긴급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었지만 아무런 수습책도 내놓지 못했다. 국정의 한 축인 새누리당은 이정현 대표 퇴진론이 분출하는 속에 친박근혜 세력까지 붕괴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물음에 탄핵 또는 하야해야 한다는 응답이 42.3%로 나와 내각·청와대 인적쇄신(21.5%)으로 마무리하자는 의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에게 90% 투표했던 대구·경북지역에서조차 박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경제 위기 극복과 민생, 안보 등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대통령이 자초한 국정문란으로 식물정권이 되어버린 비극적인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 소속 회원들이 27일 광화문 광장에서 최순실게이트에서 비롯된 국정농단 논란과 관련한 청소년 시국선언 선포 회견을 하고 있다. 김정근기자

청와대는 내주 중 총리와 청와대 일부 보좌진을 교체하는 방안을 거론한다고 한다. 안이하기 그지없는 생각이다. 지금은 박 대통령이 어떤 것을 들고나와도 시민이 용납하기 어렵다. 이미 대학가를 중심으로 박 대통령 퇴진 운동이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스스로 특검 수사를 자처하는 것이 옳다. 여야가 합의한 특별검사의 수사가 시작되면 어차피 박 대통령은 직무정지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이 하야하거나 박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시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은 또 다른 혼란을 부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이 탄핵과 하야 등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신속하고도 질서 있는 국정 수습책이지 선명성 경쟁이 아니다.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은 여야가 다 참여하는 거국적 중립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여야 합의로 새 총리와 주요 장관을 뽑은 뒤 중립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내년 대선까지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도 어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가 리더십으로 현 체제가 유지돼서는 안된다”면서 “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거국 중립내각이 구성돼서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여당의 전 대표가 동의했으니 일정한 공감대는 형성된 셈이다. 새누리당도 이 국면을 회피할 생각만 하지 말고 국정 안정화를 위해 중립내각 구성에 나서야 한다.

박 대통령도 중립내각을 수용해야 한다.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남은 임기 1년3개월 동안 최소한의 역할만 하겠다고 공개 선언해야 한다. 그게 박 대통령이 자신의 과오에 대해 최소한이나마 책임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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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해상에서 발생한 중국 어선의 해경 고속단정 침몰 사건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이 법 집행에서 무력 사용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는데 집행 권력을 남용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불법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에 벌컨포 등 공용화기로 강력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정면 반박한 것이다. 자국 어선이 불법조업을 단속하던 해경 고속단정을 고의로 침몰시킨 일을 두고 그렇게 공격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11일 오후 전남 목포시 삼학도 해경전용부두에서 진행된 중국 어선 소감어04012호 화재 사건 실황조사 중 해경 대원이 폭음탄을 투척했던 상황을 재연해 보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전남 신안군 홍도 해상을 항해하던 소감어호에서 해경 검문검색 중 불이 나 선원 3명이 숨지고 선장 등 14명은 구조됐다. 연합뉴스

양국은 2001년 발효된 한·중어업협정을 통해 배타적 경제수역에 근거한 어업질서를 유지해 왔다. 한국 정부는 매년 중국 어선에 할당제를 적용해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조업을 허가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이 갈수록 폭력적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 어선의 불법조업으로 한국과 마찰을 빚을 때마다 어민들에 대한 교육과 지도강화를 다짐했으나 말뿐이었다. 이번 사건도 한국 정부가 범죄를 저지른 어선을 특정해 통보한 만큼 즉시 체포해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지만 이를 외면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주권 수호 차원에서 중국 어선의 불업조업을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어업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강경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국과 불법조업 단속뿐 아니라 어족자원 보호 등 장기적인 협력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한국 정부의 강온 양면 대응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한·중 관계는 그러지 않아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수교 이래 최악의 상태에 직면해 있다. 양국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소통과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12일 중국 어선의 해경 공격을 두고 전쟁 운운한 것은 사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섣부른 감정적 비난은 서로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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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올여름 폭염만큼 뜨거웠던 것이 ‘전기요금 누진제’와 관련된 민심이었다. 성난 민심에 일단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선에서 정부가 수습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는 한 매년 여름 더위와 함께 성난 민심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트위터코리아가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와 함께 지난 8~14일 트위터상에서 가장 이슈가 된 핫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전기요금’이 1위를 차지했다. 폭염에 에어컨 사용이 늘자 전기요금 폭탄을 우려하는 가정이 늘면서 가정용 전기요금에만 엄격하게 적용되는 누진제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 데 따른 것이다.

정부가 “거실 스탠드형 에어컨의 경우 하루 4시간, 벽걸이형 에어컨의 경우 하루 8시간 사용하면 월 요금이 10만원을 넘지 않는다”며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12시간씩 틀면서 전기요금을 싸게 낼 방법은 없다”고 하자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격’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커졌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새 지도부의 11일 청와대 오찬 메뉴도 논란의 불을 지폈다. 역사학자 전우용씨(@histopian)는 “캐비아, 송로버섯 등 초호화 메뉴를 먹으면서 서민 전기료 6000원을 깎아줄 것인지 논의했다”며 “조선시대 임금도 가뭄, 혹서 등으로 백성이 고생할 땐 임금 밥상에 올리는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령’을 내렸다”면서 청와대 및 새누리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축구 8강 온두라스전 패배 소식에 ‘온두라스’ 키워드도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경기 후반 1 대 0으로 온두라스가 앞선 상황에서 온두라스 측 선수가 쓰러진 뒤 일어나지 않자 비매너 ‘침대축구’에 대한 비판이 가해졌다. 트위터에는 “노숙자도 아니고 왜 경기장에서 계속 누워 있냐”고 지적한 안정환 해설위원의 말이 다수 공유되는가 하면 이번 패배에 대한 아쉬움이 섞인 의견들이 다수 오갔다.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과 독립유공자 및 유족들이 가진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광복군 출신 김영관옹(92)이 “건국절 주장은 위헌이자 역사왜곡”이라고 한 발언도 핫 키워드에 이름을 올렸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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