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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08 “하느님, 눈 좀 똑똑히 뜨쇼!”

1980년 광주 참극을 초래한 뒤 출범한 신군부는 1981년에 반도체, 컴퓨터, 통신기, 전자제품 등 4개 부문을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장기발전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사업 중 당장 돈이 되는 것은 아마 전자사업이었을 것입니다. 1980년 12월의 컬러TV 방영 결정은 그중 전자산업부터 활성화하겠다는 야심이 드러난 결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982년부터 컬러 방송이 시작됐지만 콘텐츠가 문제였습니다. 쇼 프로와 드라마로는 모두 채울 수 없었습니다. 1981년에 88올림픽 유치권을 획득한 5공 정부는 1982년에 프로야구를 출범시켰습니다. 잔디가 깔리지 않고 야간 조명 시설도 없는 운동장에서 서둘러 시작했습니다. 다음 해에는 프로축구와 민속씨름이 뒤를 따랐습니다.

1982년 1월5일 새벽 4시를 기해 37년간 이어져오던 야간 통행금지 조치가 해제되었습니다. 50년 이상 군사독재가 이어지는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것을 국제사회가 비판하자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심야 작업 교대가 가능해지자 기업들은 2교대를 3교대로 바꾸어 공장을 24시간 내내 가동할 수 있었습니다. 극장, 술집, 학원 등도 심야 영업이 가능해지자 극장에서는 <애마부인> 시리즈를 비롯한 에로영화가 봇물을 이뤘고, 여관방에서는 포르노테이프가 난무했습니다.

이른바 섹스, 스포츠, 스크린의 3S가 넘쳐나자 섹스 향락산업이 날개를 달았습니다. 때마침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등 ‘3저 호황’이 맞물리자 기업들은 독재정권의 비호 아래 노동자들을 혹사시키며 이익을 늘려나갔습니다. 3S가 열기를 띠자 88올림픽이 개최될 때까지 700만대의 컬러TV 수상기가 팔리면서 탄탄한 내수시장이 형성됐습니다. 그렇게 확보한 자금 중의 일부가 권력 상층부로 전달됐습니다. 컬러화로 말미암아 패션, 화장품, 광고 등 새로운 산업이 부상하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들떴습니다.

김홍신의 <인간시장>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때였습니다. 악의 패거리는 언제든 응징할 수 있지만 연약한 애인 오다혜에게는 쩔쩔매는 장총찬의 이야기는 젊은이들의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납본이라는 사전검열 제도로 판매금지도서를 남발하면서도 욕설과 과도한 섹스 장면만은 허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고도성장의 이면을 그린 <옛날 옛날 한옛날>과 빈민들의 처참한 생활을 담은 <꼬방동네 사람들>과 <어둠의 자식들> 등에서 애타게 하느님을 찾는 소리가 넘쳐날 때 하느님과 ‘맞짱 뜨겠다’는 22살의 장총찬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간시장>이 베스트셀러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1981년 9월에 1권이 출간된 <인간시장>은 1983년에 100만부를 돌파하며 한국 출판 역사상 최초의 공식적인 밀리언셀러로 등극했습니다. 영화와 TV 드라마로 제작된 이 소설은 모두 560만부나 팔려나갔습니다. <인간시장> 1부 전 10권이 완간된 지 30년 만에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작가는 <인간시장>의 후속편을 쓰려고 했는데 지금의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재출간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지난 주말에 이 소설을 열심히 읽어보았습니다. 이 소설이 처음 쓰이던 34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더군요. 주인공 장총찬은 돈과 권력에 희생당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조직폭력배, 돈독에 오른 의사, 부패한 개신교 목사, 권력의 하수인이 된 법관, 교육은 뒷전에 두고 제 배에 기름창고를 만드는 사립학교의 젊은 이사장 등을 응징하기 위해 ‘표창’을 과감하게 날립니다.

장총찬은 하느님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불량 학용품, 교과서 부정, 채택료 받고 교재 선택하는 교수, 자기가 지은 책 안 사면 점수 주지 않는 선생들, 치맛바람에 휩싸여 점수 요리를 하는 치들, 반장 선거를 부정으로 치르는 교사범, 실력보다는 돈으로 입학하는 가진 집 자식들, 월급보다 치맛바람으로 받는 봉투가 커 보이는 양반들…. 젊은이들은 그걸 다 안다고요. 두 눈 감고 아웅 하지 않게 좀 해주세요.”

그 시절에는 이런 사실이 드러나면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만성 담마진(두드러기)으로 인한 병역면제, 변호사 시절 전관예우와 고액 수임료, 종교적 편향성, 법무장관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등 정치적 사건에 대한 부적절 대처 논란” 등의 혐의를 받는 황교안이라는 분이 국무총리에 지명되는 세상 아닌가요? 이것만 보아도 엘리트형 부패로의 역주행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황 후보자는 법무법인 재직 3년여간 17억원을 받은 것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비춰 과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급여를 받은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요지를 담은 답변서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만 갖고도 조용히 찌그러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분석해 2014년 11월26일에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시간당 5580원인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전체의 12.1%인 180만여명이나 되고,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 수준인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45.2%인 852만명이나 되는 나라, 그래서 자살률과 저출산율이 세계 1위를 달리는 나라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장총찬처럼 소리치고 싶습니다. “하느님, 눈 좀 똑똑히 뜨쇼! 그리고 장총찬 같은 부패 청소부 한 사람만 빨리 내려보내주세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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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