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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16 [시론]방향 잃은 방산비리 수사

얼마 전 한 방산업체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필자는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무기를 사용하는 수요군을 상대로 좋은 기술과 저렴한 가격으로 무기를 획득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시큰둥하게 딴청만 부린다는 이야기였다. 그보다는 해외에서 고가의 무기를 구매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비상한 관심을 기울인다. 이 관계자는 심지어 어떤 프로젝트를 설명하면 “사업비가 너무 적다”는 반응까지 서슴없이 나온다고 투덜거린다. 어떤 무기체계를 국산화하려고 하면 대부분의 군인은 짜증부터 낸다. “해외에서 좋은 무기를 바로 구매하면 되지 왜 번거롭게 개발하여 전력화 시기를 늦추느냐”며 일단 반대부터 한다. 그리고 가급적 사업 규모를 키워서 외국의 명망 높은 무기를 사들이는 데 정신없이 뛰어든다. 현역과 예비역이 따로 없는 한통속이다.

이명박 정부는 무기체계의 자주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해외 구매로 돌아선 잃어버린 5년이었다. 국내 업체가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을 성공적으로 개발했기 때문에 이를 공격형 헬기로 개조하면 육군과 해군이 중형 공격헬기를 구비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목표로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수송헬기 개발에 착수한 것인데 이명박 정부는 육군 공격헬기는 미국의 아파치 대형 공격헬기를 구매하고 해군은 영국제 헬기를 도입하는 것으로 단칼에 정책을 바꾸었다. 이미 개발해 놓은 수리온 헬기를 애물단지로 만든 돌연한 정책 변화는 필연적으로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만들었다. 당시 청와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였다. 해외무기, 특히 미국무기에 대한 보수정권의 열망은 박근혜 정부에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국제라면 개발이 채 되지도 않은 미성숙한 무기라도 상관없다. 작년부터 화제가 된 F-35 스텔스 전투기, 사드 미사일요격체계, 공중급유기 도입과 대형 무기구매 사업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개발에 차질을 빚어 미국 혼자만의 힘으로는 대량생산으로 나갈 수 없는 위기에 처한 사업들이다. 이 사업들이 존폐의 기로에 놓였을 때 한국에서는 어김없이 이 무기체계를 구입하자는 여론이 강력하게 형성된다. 군산복합체가 자기모순이 심화되어 사업이 존폐의 기로에 놓였을 때 한국 무기시장은 응급실의 산소 호흡기였다.

그 중심에는 무기 구매를 직접 통제하려고 한 청와대와 국방부·합참이 있다. 이런 한국 무기획득 정책의 약점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무기중개상들은 전직 고위 장성들을 거느리며 현직 후배들에게 비싼 해외무기를 앞세워 정책로비를 한다. 그러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너무도 쉽게 로비의 유혹에 넘어간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사업(EWTS) 비리 의혹이 제기된 무기중개업체 일광공영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돈암동 일광공영 본사에서 수사관들이 본사 건물에서 압수한 금고를 차량에 옮겨싣고 있다. (출처 : 경향DB)


최근 방산비리 합수단은 해외로부터 구매한 무기 가격을 부풀려 5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로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을 구속했다. 그런데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어떻게 중개인에 불과한 이 회장 한 명이 사업비를 두 배 이상으로 부풀려 무기를 도입하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이런 범죄를 부추기고 조장한 갑들은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무기중개상과 정책결정자들은 분리해서 접근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합수단은 무기중개상을 두들겨 패는 방향으로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것은 무기의 납품단계만이 아니라 그런 무기를 도입하게 하는 정책결정 단계, 즉 무기의 소요결정 자체를 조사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무기소요 정책에는 면죄부를 주고 계약 및 납품과정만 문제 삼게 되면 진짜 큰 도둑은 놓치고 작은 도둑만 잡게 되기 때문이다.

해외 무기도입은 자금 추적이 어렵고 단기간 내에 먹고 튀는 한탕주의가 만연한 영역이다. 최근 합수단이 적발한 방산비리의 대부분이 해외 도입에서 나타났다. 통영함의 엉터리 음향탐지 장비에서부터 헬리콥터에 이르기까지 비리는 바다를 건너서 온다. 그렇다면 방산비리라고 할 것이 아니라 무기거래 비리라고 명칭부터 바꾸어야 한다. 합수단 수사가 진행되는 이 순간에도 방위사업청은 그런 정책결정을 여전히 자행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2차 해상작전헬기 도입사업을 방산비리로 실형을 살고 나온 인물이 대표자로 있는 연구기관에 용역을 주어 타당성 조사를 하도록 했다. 그 결과는 1차 사업과 같은 해외 도입이다. 물론 여기에도 해군 예비역들이 깊이 관여되어 있다. 이에 국회가 엉터리라며 반발하자 방사청은 산하기관인 기술품질원에 재차 용역을 주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왜 이런 일이 자행되는지는 명확하다. 정책에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사가 진행되든 말든 진짜 비리는 이 시간에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지 않은가?


김종대 |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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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