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3일 광화문광장은 휴일 나들이 인파로 북적였다. 눈부신 초가을 햇살 아래 시민들의 표정은 밝았다. 아이들은 달리고 소리치고 웃었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안보불감증이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엄중한 정세라고 해도 이 정도의 행복과 평화조차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은 과도한 엄숙주의다. 70년 가까이 머리띠 두르고 북한 규탄 구호를 외쳤어도 달라진 것은 없지 않은가.

1주일 전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이 일본 상공을 통과해 날아갔을 때 일본은 발칵 뒤집어졌다. 학교가 휴교하고 신칸센이 멈춰서고 신문들은 앞다퉈 호외를 냈다. 일본 정부는 긴급 대피령인 ‘J얼러트’를 발령했다. 지진 때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반대로 한국인은 지진을 더 두려워한다. 북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사는 한국과 남의 동네 일로 보는 일본의 반응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 3일 오후 도쿄 거리에서 한 시민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을 배경으로 한 북한 핵실험 관련 보도를 보고 있다. 도쿄 _ AP연합뉴스

김정은은 핵 도박판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기대 이상으로 부응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쇼의 가장 충실한 관객은 도널드 트럼프다. 누구보다 빨리, 자주 반응한다. 반응 패턴은 불가측하고 피아를 넘나든다. 북한이 도발을 멈추면 김정은을 극찬하고 도발하면 장롱 속 군사옵션을 꺼내든다. 트럼프가 중심인 국제사회 북핵 대응체제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발언에는 사실과 의견이 섞여 있다. “미국은 지난 25년간 북한과 대화를 해왔고 터무니없는 돈을 지불했지만 대화는 답이 아니다”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죽 해온 게 아니라 하다 말다 했다. 클린턴이 대화 창구를 열어놓으면 부시가 창구를 닫는 식이었다. ‘터무니없는 돈’이란 말도 사실과 다르다. 미국은 북·미 제네바 합의로 북한에 중유와 식량을 제공했지만 북한은 그 대가로 핵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북핵 사태의 수혜자인 트럼프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트럼프는 북핵 사태를 주도하면서 러시아 스캔들 등으로 흔들리는 국내 정치적 기반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터무니없이 돈을 쓰는 건 북한이다. 가장 발사비용이 싼 스커드미사일만 해도 1발에 600만~1000만달러인데, 북한은 지난 6년간 60발이 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이 나라 곳간을 털어 도발하는 것을 트럼프는 감사해야 할 입장이다. 사학스캔들로 지지율이 폭락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북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김정은의 핵도박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의도치 않게 아베와 트럼프의 정치적 환경을 개선해주기도 했지만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쥐고 강대국들을 호령하는 편익이 훨씬 더 크다. 그러나 앞으로도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김정은은 핵보유국 지위와 영구적 체제생존을 최종목표로 추구한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려면 미국과 대등한 핵억지가 형성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핵무기 종류의 다양화와 운반체계 완비를 뜻하는 다종화다. 북한은 핵무기 종류는 구비하고 있지만 운반체계는 그렇지 못하다. 일종의 소모품으로 200대가량 보유 중인 미사일 발사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제작 기술은 없는데, 유엔 제재로 수입할 길은 막힌 상태여서 언제 동이 날지 모른다. 향후 발사대 부족으로 미사일이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북한은 과거 병뚜껑 제조기술 부족으로 생활필수품인 병 생산에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용 잠수함도 버거운 문제다. 발사관 3개짜리 대형 잠수함을 건조해야 하는 데 비용, 시간, 기술 모두 북한 편이 아니다. 미국과의 핵경쟁은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려는 것과 유사하다.

기술적 난관을 극복했다고 해도 문제가 끝나는 건 아니다. 미국이 자신을 핵으로 위협하는 북한에 핵보유국 지위를 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6차례 핵실험 후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한 ‘파키스탄 사례’를 내심 기대하고 있겠지만 두 나라는 차이가 크다. 파키스탄은 미국을 위협하지 않았고 국제사회와 반목하지도 않았다. 파키스탄의 핵이 숙적 인도만을 겨냥하고 있다는 믿음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은 이 중 어느 대목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김정은의 핵도박은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다. 핵무력 교리도 어느덧 안보와 생존의 수단에서 공격 중심으로 변질됐다. 자위 차원의 핵개발 명분도 상실했다. 생존을 넘어 국제정치 현실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강대국을 꿈꾸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불가능하고, 추구하면 안되는 끔찍한 망상이다. 묻고 싶다. 북한은 왜 핵국가가 되려고 하는가.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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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어제 새벽 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일본 상공을 지나 발사지점에서 2700㎞ 떨어진 북태평양에 떨어졌다. 비행거리로 볼 때 미국의 괌을 사정거리에 둔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로 추정된다. 이는 한·미 양국군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에 대한 대응 차원을 훨씬 넘어선 도발이다. 특히 이번 도발이 한국과 미국이 대북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와중에 이뤄진 것이어서 심각성을 더한다. 한반도 정세가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강력 반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강력한 대북 응징 능력을 과시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의 도발이 용인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섰다고 본 것이다. 군은 맞대응 차원에서 MK84 폭탄 8발 투하훈련을 실시하고, 한국형 탄도미사일 ‘현무2’의 발사 영상을 공개했다. B-1B 전략폭격기 등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일본 도쿄 시민들이 29일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했다는 뉴스를 전하는 대형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도쿄 _ AFP연합뉴스

정부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연 뒤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그간 외교적 해결을 시사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하면서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며 강력한 대북 압박을 강조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 전까지만 해도 긴장완화 조짐을 보이던 한반도 정세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로 일시에 긴장 국면으로 급변한 것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은 핵보유국 외길을 향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누가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않고 핵미사일 완성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달 초 북한 스스로 공언한 ‘괌 포위사격 방안’이 언제든 실현 가능한 실제적 위협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 어제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비행거리로 볼 때 북한에서 3000㎞ 떨어진 괌까지 도달 가능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최근 괌 포위사격을 유보하겠다면서 미국의 행보를 지켜보겠다고 말한 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대북 제재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핵개발로 체제안전을 보장받고 경제적 번영을 얻으려는 시도는 전혀 승산이 없는 무모한 싸움일 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지만 이에 굴복하는 나라가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북한은 과연 자신들의 핵보유 명분에 국제사회가 동의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끝 간 데 없는 도발에 중국과 러시아마저 인내심을 잃고 등을 돌려 유엔 안보리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한반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강력히 규탄한다.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해온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난관에 부닥쳤다. 북핵 문제의 대화해결과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하고 “전쟁은 안된다”며 강력한 대미 메시지를 보낸 정부로서는 당혹스러울 것이다. 물론 시민들의 불편하고 불안한 심정을 감안할 때 북한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이 비상식적이고 국제관행을 따르지 않는 국가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제사회에서 그런 북한을 설득해 대화 무대로 끌고 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다름 아닌 정부였다. 북핵 문제에서 감정적 대응은 금물이다.

북한이 도발하지 않으면 대화를 거론하고 미사일을 쏘면 금세 태도를 바꿔 응징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적절한 전략이라고 볼 수 없다. 정세에 따른 대응도 중요하지만 일관성을 잃고 일희일비하는 것은 김정은의 핵 위협에 놀아나는 격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와 제재 병행의 기조를 굳건히 하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을 세운 뒤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의 도발과 한·미가 맞대응하는 악순환은 이제 끝내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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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초·중학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초·중학교의 사회과 학습지도요령에 독도를 처음으로 명기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그 개정안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3월15일까지 일반 국민들의 의견을 공개 모집하고 있다. 이 개정안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가 끝나면 확정, 고시된다. 학습지도요령은 학교 교육의 목표와 내용 등을 정한 기준으로 교과서 집필과 검정에서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후 초·중학교 교과서는 개정 학습지도요령에 따라 집필되며, 교과서 검정과 채택 등의 과정을 거쳐 초등학교는 2020년, 중학교는 2021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각각 사용된다. 이번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은 초·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내용을 다룰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초등학교의 경우, ‘학습지도요령’은 물론 그것을 상세히 설명한 ‘학습지도요령 해설’에조차 독도가 기술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에는 이미 독도에 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고, ‘독도는 일본의 영토’ ‘1905년 시마네(島根)현에 편입’ ‘한국이 불법 점거’ 등으로 약간씩 다르게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개정 학습지도요령에 따라 집필되는 교과서에는 모두 통일적으로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내용을 기술할 것이다. 하지만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가 아니라는 것은 1877년 일본의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의 지령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울릉도 외 1도(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라는 태정관 지령은 지금도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잘 보관되어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초·중학교 신학습지도요령에 독도와 센카쿠 열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명기하기로 한 내용을 전한 지난 28일자 요미우리신문 1면 기사. 연합뉴스

한편,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은 지리, 역사, 공민 분야로 나누어져 있고, 그 내용은 ‘독도는 일본의 영토’라는 것에 입각하고 있으나 교과 분야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리 교과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점을, 역사 교과는 1905년 일본의 ‘독도 편입’에 관한 내용을 기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중학교 사회과 교과목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모순될 수밖에 없는 내용을 기술하도록 하고 있다. 즉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지리 교과의 내용과, ‘일본이 1905년 독도를 편입했다’는 역사 교과의 내용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이다.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였다면 새롭게 편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은 그 모순을 극복해보고자 궁여지책으로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보지만, 1905년 일본의 ‘독도 편입조치’는 러일전쟁 중 한국의 고유영토인 독도를 은밀히 탈취한 불법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그리고 공민 분야는 ‘독도에 관한 문제와 관련하여 평화적 수단에 의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기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학교 공민 교과서에는 일본 정부의 기존 주장을 반영하여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자고 한국에 제안하고 있다’는 내용을 기술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독도는 역사적으로 한국의 고유영토이며, 국제법적으로도 한국이 계속적으로 영유, 관할해오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독도의 분쟁 지역화를 의도하는 일본의 요구에 응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일본이 진정으로 평화적 해결을 원한다면 더 이상 독도에 대해 부당한 도발이나 거짓된 주장을 하지 않으면 된다.

이번 문부과학성의 학습지도요령 개정 작업은 2014년부터 시작되었고, 그에 앞서 일본 시마네현에서는 2005년 ‘죽도(竹島)의 날’ 조례 제정 이래 지속적으로 독도를 학습지도요령에 기재할 것을 정부나 교과서 출판사 측에 요청해 왔다. 시마네현의 요청서를 보면, 학습지도요령에 독도 기술을 요구한 의도를 알 수 있는데, 초·중·고등학생들에게 독도 교육을 시키는 것이 독도에 관한 국민 여론 확산에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본의 거짓된 주장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일본 사회 내부에서도 일본 측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양심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일본의 집요한 영유권 주장에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되겠지만, 조금도 흔들릴 이유는 없다. 독도의 진실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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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외교안보가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둘러싸고는 일본으로부터 공박당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 후 중국의 전방위적 압력에 직면해 있다. 박근혜 정부 외교정책 실패의 후과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형국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를 원칙 없이 오가다 덫에 빠지고, 미래지향적 결정이라며 성급하게 위안부 문제 합의를 했다가 일본으로부터 공격당하는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그런데도 당국은 대응책 하나 없이 외교 실패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그제는 중국군 폭격기 6대와 조기경보기 1대, 정찰기 1대 등 군용기 10여대가 제주도 남방 이어도 인근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해 들어왔다. 2013년 말 식별구역을 발표한 이후 중국 군용기가 간간이 침범한 적은 있지만 장거리 폭격기와 조기경보기 등이 한꺼번에 4~5시간 지속적으로 우리 경계선 안으로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한국군이 공군 F-15K 전투기 등 10여대로 대응 출격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류 연예인 방송 출연 금지와 한국행 전세기 운항 불허에 이은 외교적 보복 조치의 연장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 교류와 경제 통상에 이어 군사 위협으로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다.

(출처: 경향신문DB)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른 일본의 공세는 박근혜 외교의 완벽한 실패를 증명한다. 부산 총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것을 계기로 일본은 주한대사 소환과 한·일 통화 스와프 협상 중단 등 보복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10억엔을 냈으니 한국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도발도 했다. 가해자가 공세를 펴는 어이없는 상황에도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정부의 정책도 실패하면 수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국제적 신뢰를 내세워 잘못으로 드러난 정책까지 고수하겠다고 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상황 악화를 가져올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하는 게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마치 남의 일처럼 한·일 양측에 경고한 것도 잘못이지만,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주장하는 야당을 겨냥했다는 점에서도 매우 부적절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사드에 대해서도 대책은 내놓지 않은 채 중국을 방문한 야당 의원들만 비판했다.

실패한 박근혜 외교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그릇된 판단이 낳은 결과이다.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하면 또 어떤 외교적 난제가 떠오를지 모른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유산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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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어제 1년을 맞았다. 한·일 양국은 지난 1년간 화해·치유재단 출범, 지원금 10억엔 출연 등 합의 이행 절차를 밟아왔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라는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어제도 변함없이 위안부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가 열린 것이 그 증표다. 

한·일 양국이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합의의 동기가 잘못된 데서 기인한다. 중대한 인권침해나 전쟁범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한·일관계 개선 차원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이러니 합의의 의미나 내용보다 ‘2015년 내 타결’ 등 합의 시기를 더 중시하는 해괴한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명의로 사죄와 반성을 합의문에 담았으나 전쟁범죄나 법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은 일본의 10억엔 지원금을 받는 것으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약속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1년을 맞은 28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6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참가자들이 올해 별세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폐기를 촉구했다. 강윤중 기자

이런 위안부 문제 합의가 전쟁 시에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표준에 부합할 리가 없다. 실제로 합의는 분명한 사실 인정과 직접적 사죄 표명, 법적 배상금 지급, 재발방지 등의 국제 표준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포함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한국 정부는 합의 도출 과정에서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절차적 정당성도 없었다. 국제법적으로 구속력을 지니는 조약이나 협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 비준 절차도 밟지 않았다. 합의내용이 문서화되지 않고 양국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 형태로 발표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더욱 한심한 것은 양국 정부가 이런 부실투성이 합의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합의 후 고자세로 돌아서 “강제성이 없었다”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할머니들 마음의 상처를 덧내고 있다. 누가 봐도 사죄하고 반성한다고 할 수 없는 태도이다. 한국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고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사업 예산을 삭감했다. 위안부 백서 발간도 백지화했다. 피해 할머니들에게 일본 정부의 지원금을 개별 지급하는 것이 과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인지 묻고 싶다.

명분도 실효성도 없는 위안부 합의는 당장 무효화하는 게 맞다. 여론도 합의 무효화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국가 간 협상의 결과물이어서 되돌리기 어렵다지만 국회 비준 회부 등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전에라도 합의 무효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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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아르바이트·단시간 일자리 등은 청년층으로 채워진 지 오래다. 낮은 임금, 낮은 고용의 질, 낮은 삶의 질 등은 청년층을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가 돼 버렸다. 소득양극화와 취업난, 주거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은 ‘N포 세대’를 넘어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1일 내놓은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는 청년세대가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지난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하위 20%)의 한 달 소득은 80만7000원으로 집계됐다. 취업난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탓이다. 한때 저소득 청년층을 일컫던 ‘88만원 세대’가 ‘77만원 세대’로 대체될 시점이 머지않은 것이다.

청년 가구의 소득불평등도 심화돼 최상위 20%와 최하위 20%의 연평균 소득 격차는 9.56배에 달했다. 가계빚도 2년 새 900만원 넘게 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대 청년층 2명 중 1명꼴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겼다고 체념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가구의 경제난은 출산율 하락과 맞물리면서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효성 있는 청년고용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뒷짐만 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고용률 70% 정책은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것으로 변질됐다. 청년고용할당제는 공공기관에서 민간기업으로 확대되지 않아 ‘반쪽 대책’에 그쳤다. 내년 최저임금을 고작 7.3% 오른 시급 6470원으로 결정한 정부는 미취업 청년들에게 최장 6개월간 일정액을 지급하는 서울시와 성남시의 청년수당·배당 사업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무능한 정부가 보인 옹졸함의 극치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기본급·상여금·수당 차별을 없애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비정규직의 저임금 문제를 해결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청년세대가 꿈을 잃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나라의 미래는 기대할 게 없다. 청년세대가 광장에서 촛불을 든 것은 불평등한 사회를 바꿔보려는 간절함 때문이란 것을 정부와 정치권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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