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어제 출범 한 달을 맞아 정부·민간위원 구성을 마무리하고 첫 회의를 열었다. 민간에서는 전문가 외에도 상의·경총·민노총·한노총 등 노사단체 대표들이 참석했다. 대통령 주재 회의에 주요 노사단체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18년 만이라고 한다. 일자리 현황판 설치, 일자리 추경, 일자리 시정연설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일자리 총력전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일자리위원회 1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일자리 해결의 당위성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문 대통령이 말한 대로 “일자리는 경제성장과 경제민주주의의 토대이고, 저출산 대책이고, 복지정책이고, 국민들의 기본권”이다. 문제는 일자리 창출이 정부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회의에서 사측에는 “저는 친노동이기도 하지만 친경영, 친기업이다. 경영계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해 주신다면 언제든지 업어드리겠다”면서도, 노동계에는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내용이 많겠지만 1년 정도 시간을 주며 지켜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도 이를 의식한 제스처이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놓고 노사 간은 물론 노·노 간에도 이견이 첨예하다. 민노총이 일자리위원회의 첫 회의에 불참을 선언했다가 다시 참석하고 이번 회의에서 운영세칙이 합의되지 않은 것은 위원회의 앞날이 쉽지 않음을 예고한다.

일자리 정책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추경도 마찬가지이다. 추경이 시의성 면에서 절실하지만 야당의 동의 없이는 국회 통과가 어렵다. 다른 국정현안과 연계하는 야당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야당의 주장을 무조건 내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당장 정부 추경안에는 14개 부처의 조명 교체 비용 2000여억원 등 일자리 창출과 어울리지 않는 사업이 다수 포함됐다. 국회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정리하고 집행이 이뤄지도록 서두르는 게 바람직하다. 공무원 증원 문제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재원 역시 재정·조세개혁 등을 실시한 뒤 부족하면 대기업과 고소득자 증세로 채워넣는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일자리 문제는 이해관계가 얽힌 당사자가 많다. 따라서 누가 얼마나 양보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이 과정에서 일방통행은 결코 안된다. 조급해도 안된다. 정책은 더 정교하게 다듬고, 끊임없이 소통하고 설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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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국회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시정(施政)연설을 했다. 취임 후 34일 만에 하는 첫 국회연설이다. 대통령이 추경예산을 설명하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그만큼 일자리 추경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가 실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제발 면접이라도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구직 청년과 ‘다음 생에는 공부를 잘할게요’라는 문자를 남기고 자살한 청년의 안타까운 사례를 들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고달픈 하루가 매일 계속되고 있는데 우리 정치의 책임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민이 힘들면 지체없이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도 했다. 대통령의 말이 아니더라도 지금 청년실업은 재난에 가깝다. 올 들어 청년 체감실업률은 24%로 치솟았다.

이번 추경안은 11조2000억원 규모다. 2000년 이후 모두 15차례 추경을 편성했지만 오로지 일자리 목적의 추경은 처음이다. 일자리 창출에 4조2000억원, 일자리 여건 개선에 1조2000억원, 일자리 기반 서민 생활 안정에 2조3000억원이 할당됐다. 남은 3조5000억원은 지방 교부금으로 지역 일자리 창출에 투입된다. 정부는 공무원 1만2000명 등 공공부문 일자리 7만1000개, 고용서비스와 창업지원 등을 통한 민간 일자리 3만9000개 등 11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일자리 추경' 시정연설을 한 뒤 국회를 나서고 있다. 권호욱 기자

추경은 타이밍이라고 한다. 시의성, 필요성 면에서 이번 추경은 별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지역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배제함으로써 추경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선심성 나눠주기 논란도 원천 차단했다. 다행히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당초 추경안 심사를 거부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바꿔 추경 심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국회는 정부 예산안에 일자리로 포장된 불요불급한 사업이나 허점이 없는지 촘촘히 살피고 다듬어야 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고 7월부터 즉시 집행이 이뤄지도록 서두르는 게 바람직하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심사에 불참키로 했다. 여당이 국가재정법 준수를 단단히 약속했으니 다시 한번 대승적 차원에서 국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집권여당도 추경이 그만큼 시급하다면 한국당을 상대로 더 성의있게 설득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통해 소득을 늘리고 이를 다시 경제 활성화로 연결해 소득 주도 성장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처럼 추경에만 기댈 게 아니라 야당의 견해대로 근본적인 일자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야당도 설득할 수 있고, 협치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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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해왔던 과거 정부들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며 경제정책의 중심을 ‘사람’에 두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일자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동안 우리 경제정책에서 ‘노동’은 항상 뒷전이었고, 노동조합은 집단이기주의라고 매도돼 왔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고용안정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었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약속의 첫 행보라 해석된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가 있다. 노동시장의 ‘차별 문제’가 우선 개선돼야 일자리 정책이 기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칫 저임금 및 단순 업무직들만 양산될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진정으로 일자리 창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민간업체들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여전히 핵심 업무 외에는 대부분 비정규직 및 간접고용, 외주화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의 위치에서 이윤만 챙기고 책임은 지지 않는 나쁜 기업문화 행태다. 따라서 ‘직접고용’ 확대를 통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문화 정착이 가장 시급한 일자리 창출 과제라 할 수 있다. 청년실업 문제 해소 방안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 산업에 독버섯처럼 번져 있는 외주화 남용은 고용불안뿐만 아니라 산업재해까지 양산하고 있다.

5월 24일 문재인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상황판 앞에서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참모진에게 일자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필자는 지난 몇 년간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무료취업지원센터’ 센터장으로 일하면서 구인구직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며 느낀 바는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기업들에 대한 당근과 채찍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정규직으로 직접고용을 하는 업체들에는 각종 훈포장 및 세제혜택을 줘야 한다. 또한 각종 정부사업 입찰 시 가산점도 부여하고, 행정편의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반면에 상습체불과 불법파견, 위장도급, 기간제 남용 등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악덕기업은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채용 시부터 진입장벽이 투명해야 한다. 건설업의 경우 1000억원대 공사가 발주돼도 인력 채용공고 자체가 없다. 음성적 비리가 여기에서부터 싹튼다. 하청, 재하청 등 다단계 하청으로 내려가면 누가 진짜 사장인지 구분도 모호한 사업장들이 부지기수다. 상황이 이러니 청년 구직자들은 대기업 취업만 바라보며 세월을 보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후진적인 인맥 위주 채용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유료 직업소개소들은 고용시장을 왜곡하고 있다. 범람하고 있는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의 외국인 불법취업에 대한 철저한 단속도 필요하다. 구직자들이 ‘3D 업종’이라서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대우를 못 받으니 기피하는 것이다.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무료 취업지원사업에 대한 대폭적인 확대 지원과 점검이 필요하다. 일자리의 질보다는 머릿수 채우기식 단기 일자리 알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성과지표’만 챙기다 보니 나타난 풍선효과다. 취업지원 업무를 하는 직업상담사 등 알선 업무 직원들의 근로조건 개선도 필요하다. 대부분 비정규직이라 사기가 땅에 떨어진 채 알선 업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관리직 직원들도 취업지원 업무 부서를 맡는 것을 매우 꺼린다. 따라서 승진 1순위 대상자를 이 같은 업무에 배치하는 것도 유인책이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정규직 채용·전환이 선심 쓰는 양 내려지는 ‘시혜’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괜찮은 소득에 안정되고 질 높은 일자리는 가정의 번영과 행복에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며 이는 국가의 의무다. 결코 시혜적 조치가 아니다. 기업에 대한 지원은 ‘투자’라고 하면서 노동에 대한 지원은 ‘비용’처럼 인식하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불안정한 형태의 고용이 사라지지 않는 상태에서 정부의 각종 노동 지원 정책은 세금만 허비하는 일일 뿐 병 자체를 고치는 근본적인 치유책은 되지 못한다. 노동의 양극화로 인한 깊은 골을 하루속히 메꿔야 한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처하고 다가오는 4차산업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박종국 | 전 무료취업지원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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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지하철 2호선을 탔다. 구의역에 가기 위해서였다. 날씨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이 맑았고, 초록 잎들은 빛났다. 이렇게 찬란한 5월에 살아 있었으면 스무 살이 되었을 청년의 1주기라니, 그 역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구의역 9-4번 승강장 스크린도어는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하루 전날인 27일 추모제가 열렸을 때는 김군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스크린도어 여기저기에 붙고 바닥에는 흰 국화가 놓였다는데 28일에는 흔적도 없었다. 한적한 휴일 오후이다 보니 10-4번으로 끝나는 역사의 뒤쪽까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오는 승객들도 없어, 9-4번 승강장 앞은 고즈넉했다. 그래도 일부러 9-4번 승강장을 찾아온 사람들은 눈에 띄었다. “1호선을 주로 타고 다니는 중학생”이라고 밝힌 한 소년은 목에 맨 커다란 카메라로 9-4번 승강장의 모습이 잡히도록 역으로 달려 들어오는 지하철의 모습을 반복해서 찍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중년 여성이 청소년기의 아들과 함께 9-4번 승강장 앞을 두리번거리다가 발길을 돌렸다. “저희 큰애가 올해 스무 살이에요. 김군이 살아 있었으면 우리 아이와 같은 나인데, 너무 마음이 아파서…. 저도 노동자예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1주기를 앞둔 25일 사고 지점인 구의역 승강장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지난해 5월28일 비정규직 청년노동자가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전동차에 부딪혀 사망했다. 강윤중 기자

지난해 10월 드라마 제작현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이한빛 전 CJ E&M PD는 구의역에서 김군이 목숨을 잃은 직후 9-4 승강장을 찾은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생을 향한 노동이 오히려 생의 불씨를 일찍, 아니 찰나에 꺼뜨리는 허망함. 이윤이니 효율이니 헛된 수사들은 반복적으로 실제의 일상을 쉬이 짓밟는다.”

공고를 졸업하고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던 구의역의 김군은 정규직이 될 꿈을 품고 있었다. 끼니조차 거르며 ‘1시간 이내 장애발생 현장 도착’이라는 수칙을 지켰고 그 수칙을 지키기 위해 2인1조 작업 원칙을 어긴 채 혼자 수리를 하다 변을 당했다.

정규직이었던 이한빛 PD가 꿈꿨던 것은 “사회에 따뜻한 메시지를 던져서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정작 제작현장에서 해야 했던 일은 계약해지된 동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선지급금을 환수하는 일이었다. 월급을 쪼개어 KTX 해고 승무원들을 돕는 데 썼던 그가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고 이한빛 PD 유서 중) 하는 삶의 부조리를 견뎌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구의역에서 다시 2호선을 타고 시청 방향으로 15분을 더 달리면 평화시장이 있는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 평화시장 입구에는 생전에 평화시장을 ‘내 마음의 고향, 내 이상의 전부’라고 했던 전태일의 동상이 서 있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전태일 평전> 중)고 전태일이 고발했던 것이 거의 반 세기 전인데, 구의역의 김군도, 상암동의 이한빛 PD도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살자고 하는 노동이 삶을 꺼뜨리는 현실에 맞닥뜨려야 했다.

문재인 정부가 제1의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일자리 만들기다. 대통령 집무실에 걸린 ‘일자리 상황판’의 18개 지표 중에는 고용률, 취업자 증감뿐만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 근로형태별 연간 근로시간 등 일자리의 질을 나타내는 것들도 있다. 열아홉 살에 스러진 김군의 꿈도, 스물여덟에 생을 접은 이한빛 PD의 절망도 그 상황판에 별빛처럼 또렷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구의역 김군의 1주기 행사가 있었던 27일 이한빛 PD의 아버지는 9-4번 승강장을 찾아 이런 다짐을 적어 스크린도어에 붙여 놓았었다. “남은 일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어 줄테니 부디 편안하게 지내기 바라오. 젊은이가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줄게.” 부디 남은 우리가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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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다지 면식이 없는데도, 부고기사에 가슴이 멍해올 때가 있다. 지난 18일.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의 부고를 접했을 때가 딱 그랬다.

1995년 부산 YWCA 대학부에서 진행한 ‘여성영화 읽기’에 한 대학교수가 초빙됐다. 강연을 마치며 그가 말했다.

“곧 부산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릴 텐데, 여기 있는 학생들이 좀 도와줄 수 있겠죠?”

“그런 거는 서울에서나 하는 거 아닌가요?”

학생들이 미심쩍어하자 그가 정색했다. “아니 반드시 할 겁니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약속만 분명히 해주세요. 도와주겠다고.” 그가 김지석 부위원장이었다. 당시 부산예술대 교수였다.

칸 해변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 마련된 고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추모 공간.

6개월쯤 지난 어느날, 학내에 공고가 붙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 모집.’ 그와의 약속이 떠올라 무작정 지원했다. 부산 남포동에 있는 극장 몇 군데를 빌려 시작한 제1회 영화제는 참 열악했다. 어떤 영화는 번역이 채 안돼 자막 없이 상영됐다. 예고된 상영시간을 맞추지 못하는가 하면 이유 없이 상영이 중단됐다. 자원봉사자들은 영화제 진행보다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감독과의 대화에 통역자가 없자 보다 못한 관객이 통역에 나서기도 했다. 경험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맨손으로 일군 축제였다.

그런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해 쑥대밭이 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작업의 문제점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명박 정부 당시 ‘좌파영화제’로 낙인이 찍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시위 때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든 죄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종북영화제’로 격상됐다. 블랙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친박시장이 이끌던 부산시는 영화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기업들은 눈치를 보며 지원을 주저했다. 때마침 밀어닥친 태풍이 해운대 백사장에 설치했던 야외무대를 날리면서 지난해 영화제는 최악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김 부위원장과 함께 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했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횡령, 배임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특검은 부산국제영화제 탄압의 뒷배경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많은 것을 되돌려놓고 있다. 그간 농락당한 부산국제영화제도 새 정부가 시급히 명예회복시켜야 할 대상이다. 단순한 축제의 복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의 답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양질의 청년일자리를 낳은 거위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영화제의 성공은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아시안필름마켓을 통해 수많은 영화와 시나리오가 팔려나갔다. 이는 한류붐의 원천이 됐다.

영화는 콘텐츠산업의 꽃이다.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 제작, 배급에 수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지난해 국가재정운용계획의 문화체육관광 분야 자료를 보면 콘텐츠산업의 고용유발계수는 10억원당 12.4명으로 전기전자(5.1명)나 자동차산업(5.7명)을 앞선다. 콘텐츠산업 종사자의 32%는 29세 이하 청년들이었다. 새 정부가 찾는 청년일자리의 보고가 여기 있다는 얘기다.

가을 바람이 불 때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을 찾아 문화예술 분야에 붙여진 블랙리스트를 시원하게 떼주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대원칙에 대못을 박아주기를 더불어 기대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의 바다면서 일자리의 바다다. 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국내외 영화가 발전하고, 사상과 생각의 자유가 보장되며,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 어쩌면 김지석 부위원장이 꿈꿨던 세계일 수도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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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1호 과제인 일자리 정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어제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는 취임 13일 만에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됐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기획재정부에 신속한 추경 편성을 주문하는 등 일자리 추경도 시야에 들어왔다. 6월 임시국회에 10조원 규모의 추경안이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위원회도 산하에 공공·민간·사회경제 등 3개 소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업무영역 조정과 인선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일자리 상황이 최악이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 실제 일자리 부족은 양극화 심화, 소비부진, 가계부채 악화, 결혼 기피 등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신속한 대응은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조치임에 틀림없다. 문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은 공공 81만개의 일자리 창출, 노동시간 감소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 철폐 등을 통한 일자리 질 높이기, 4차 산업혁명을 통한 민간 일자리 동력 창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득주도 성장이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 가계소득을 늘리면서 성장에 필요한 수요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성장을 정책의 최우선에 두고 고용을 창출하려 했던 과거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접근법이다. 

24일 문재인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상황판 앞에서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참모진에게 일자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첫 시험대는 추경 편성이다. 자유한국당은 “공공 일자리만을 위한 추경은 안된다”고 반대하고 있어 순탄한 처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는 민간의 회복에 앞서 공공이 마중물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부 추경안에 공감한다. 다행히 세수 여건도 좋은 편이다. 다만 일자리 창출은 기업 몫이라는 야당의 지적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협치 차원에서도 야당의 이해를 구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된다. 야당도 뚜렷한 대안 없이 발목잡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일자리 정책은 느긋해서도, 조급해서도 안된다. 청와대 상황판에만 의존한 채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흘러서도 안된다. 비정규직 문제 등을 놓고도 노·노 간 갈등이 야기될 것이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장하는 재계·야당과는 눈을 흘기는 장면이 자주 연출될 수 있다. 이럴 때마다 일자리 정책이 최고의 성장전략이자 복지정책이란 인식을 바탕으로 인내심을 갖고 설득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들어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등 고용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진정성을 갖고 확산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정부 정책 중 수십조원씩 뭉칫돈을 쏟아부었음에도 성과를 내지 못한 청년창업 정책 등은 백지에서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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