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친구가 분양받은 새 아파트에 집들이를 갔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서울 도심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남향이라 낮에는 볕도 잘 든다고 했다. 친구가 이 뉴타운 아파트에 ‘입성’하면서 얻은 것은 쾌적한 주거환경과 가까워진 통근거리, 아름다운 야경만은 아니다. 이 아파트는 입주가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수억원이 올랐다. 지금의 내 저축 속도대로라면 15년 넘게 걸려야 겨우 모을 수 있는 돈이다.

배가 아팠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는 분양가조차 감당할 수 없었으니 그 엄청난 시세차익의 ‘행운’은 애초부터 내 것일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저 다시 한번 절감했을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돈을 모으는 길은 역시 아파트밖에 없다는 것을. 비슷한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와 나의 자산은 이 아파트를 기점으로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격차가 벌어졌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순간 틈이 나면 포털사이트에서 아파트 시세를 검색해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지난 10년 동안의 아파트 시세를 보고 있노라니, 앞으로 10년 후에도 내가 서울 밖으로 밀려나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새 아파트는 새것이라 비싸고, 오래된 아파트는 인근에 있다는 이유로 덩달아 가격이 상승한다. 호재는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아파트는 그렇게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앞으로도 내가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가격이 오를 것이다.

어차피 서울에서 내가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아파트는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한번 물어나 볼까 싶어 찾아가 본 부동산 중개업자는 오래된 아파트 하나를 추천했다. 그 아파트 주변이 재개발 예정지라 호재도 있다고 했다. 중개업소 벽에 붙은 지도상에서 그 일대의 오래된 빌라와 연립들은 벌써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대신 그 자리에는 매머드급 아파트 단지 조감도가 그려져 있었다. 마음이 동했다. 재개발이 완료되면 이 아파트 가격도 함께 오르겠지. 혹시 아파트를 사기에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가 아닐까.

그러나 며칠 후 접한 뉴스는 꼬리에 꼬리를 물던 달콤한 상상에서 나를 번쩍 깨어나게 만들었다. ‘“재개발 날강도” 아침 8시 유서…보상 40만원 장위동의 비극’(한겨레 5월23일자). 뉴타운 사업으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성북구 장위4구역에서 니트 공장을 운영하던 한 세입자는 턱없이 작은 보상금 때문에 이전할 곳을 찾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이렇게 썼다. “재개발 개새끼들 날강도 도둑놈들” 그리고 그 아래 연필로 다시 이렇게 남겼다. “어떻합니까 어떻합니까(어떡합니까 어떡합니까)”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떠오른 얼굴 하나가 있었다. 사실 나는 친구가 아파트를 분양받은 그 뉴타운 사업 때문에 가게를 강제철거당하고 쫓겨난 상가 세입자를 취재한 적이 있다. 쥐꼬리만 한 보상금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한 그는 부서진 가게 건물 잔해 앞에서 수백일 동안 천막 농성을 했다. 오랜 노숙생활 때문인지 수염은 하얗게 세어 있었다. 재개발 일정을 지연시켰다며 조합 측으로부터 수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당한 상태였다.

재개발을 둘러싼 ‘아파트 게임’에서 승자와 패자는 무섭도록 명확하게 편이 갈린다.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재개발은 누군가를 쫓아내는 ‘크레인’으로도, 나의 노후를 보장해 줄 ‘호재’로도 보일 수 있다. 한때 그 철거 세입자를 취재하며 그의 처지에 함께 분노했던 나는, 막상 그를 쫓아내고 지어진 아파트가 황금알을 낳는 현실을 목도하고 난 후 재개발이란 단어에서 ‘호재’란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들이 또다시 앞다퉈 재개발 공약을 내놓고 있다. 나처럼 개발할 ‘내집’이 없는 사람들조차 달콤한 꿈을 꾸게 만드는 마법같은 공약.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는 서울 용산 재개발사업 구역에서 4층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나자 한 걸음에 현장으로 달려가 재개발·재건축을 규제한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후보는 자신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면 취임 첫날 당장 재개발 도장부터 찍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느 후보도 장위4구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철거 세입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어느 후보도 아파트에 대한 우리의 욕망이 누군가를 더 열악한 곳으로 밀어내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채워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장위7구역에서 용역과 대치하며 끝까지 버티다 쫓겨난 마지막 철거민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어떤 분이 묻더라고요. 앞으로 계획이 뭐냐. 저한테는 향후 계획을 세울 여력도, 계획을 세울 아무것도 없는데….” 서울 아현동에서, 용산에서, 장위동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그 후 어디로 갔을까. 늘어만 가는 서울의 아파트 불빛을 보면서, 그곳에서 꺼져간 더 많은 집들의 불빛을 떠올린다.

<정유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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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하나가 아이 한 명을 키운다는 말이 있다. 서른 넘어 몇 살 더 먹고보니 나로 말하자면 온 동네 하나가 사람 하나를 살렸다는 실감이 든다. 한창 시절에는 제 잘나서 어찌어찌 살아 있는 줄로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 사소하게 살아 있는 하나하나의 순간들에 내가 잘한 것은 없고 거의 다 남의 덕이었다.

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옥수역을 지나면서 옥수동 산꼭대기를 바라보니 근사한 새 아파트들로 가득했다. 듣기로는 강남으로 보낼 수 있는 학군도 되고 교통도 괜찮아서 집값도 꽤 올랐다고 한다. 내가 살던 5년쯤 전에는 재개발이 확정되긴 했지만 까짓거 들어오기 전까지 버티자, 하는 식이라서 내가 가진 우스운 돈으로도 방을 얻을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 옥수역 부근 옥수8구역 재개발지역 전경 (출처 : 경향DB)


직장이 강남이라 교통이 편리했으나 퇴근길에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식식대며 산꼭대기를 올라야 했다. 돈 모으면 이사가야지, 하지만 죽자고 해도 양지바른 지상에 내려가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때는 술이 왜 그렇게 잘 들어가던지. 실은 맛있어서 마신 게 아니라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마셨을 것이다.

요즘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나는 도대체 내가 그때 뭘 그리 견디지 못했는지 지금도 도통 알 수가 없다. 아마 새파랗게 젊다는 사실 자체가 버거웠던 게 아닐까. 이놈의 계집애야 젊음을 그렇게 쓸 거면 날 줘, 하는 소리가 그때의 나를 향해 저절로 튀어나오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세월이다.

화려하거나 예쁜 인테리어나 아기자기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언제나 약수시장 반경 100m 안쪽으로 세 군데의 꼭짓점을 그리며 마셨다. 40년 된 순댓국집, 30년 된 치킨집, 술을 시키면 안주를 거저 내주는 막걸리집이었는데 순댓국집은 새벽 다섯 시, 치킨집은 오후 세 시부터 문을 열었으므로 휴일에는 대낮부터 혼자 여유롭게 마시는 적이 많았다. 두꺼운 책 한 권 끼고 책갈피 한 장에 막걸리 한 모금은 참 달았다. 물론 술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 모두 이렇게 달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얼마든지 더 담즙처럼 씁쓸해질 수 있었던 것을 막아준 것이 바로 동네가 아니었을까. 음주운전을 할까봐 오토바이 키를 맡기지 않으면 술을 내주지 않던 어떤 이모가 아니었더라면 큰일이 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돼지 간을 푹푹 썰어주며 옥수동 옛날 풍경을 들려주던 팔순 넘은 할머니, 그 집 국물이 아니었으면 마음을 어떻게 데웠을까. 게다가 그들은 내가 슬슬 취할 것 같다 싶으면 반드시 합심해서 누군가 올 때까지 나를 붙잡고 있었다. 누가 찾으러 오면 치킨집에 가봐라, 방금 전까지 순댓국집에 있었다, 제보도 신속했다. 취해서 나 갈래요 하고 일어나면 가긴 어딜 가, 누구 올 때까지 여기 있어 하고 몇 번이나 내 팔을 붙들곤 했다. 지금 보니 아 그렇게 붙잡아준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살아 있구나 싶다. 술이 나를 죽여간 만큼 술집 주인들이 살려낸 것이다. 참 구차하게 이어온 목숨이구나, 앞으로는 구차한 목숨을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살아야지 싶다. 재개발에 밀려 지금은 다들 떠나신 분들, 안녕들 하십니까….


김현진 |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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